지난 17~19일, 22~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김동률 콘서트. [사진 뮤직팜엔터테인먼트]
사락사락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푸른 밀밭 한 가운데 누워있는 듯 포근했다. 17~19일, 22~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김동률의 콘서트 ‘오래된 노래’ 얘기다. 김동률은 150분 동안 21곡을 차분히 불렀다. 정성 들인 편곡, 연주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을 붙여가며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스탠딩이나 떼창 없이 조용히 노래를 감상하던 관객들은 그 의미를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익숙한 멜로디를 들으며 눈물 짓기도 했다.
19일 콘서트는 배우 이동욱의 목소리로 문을 열었다. 사진 촬영 금지 등 유의 사항을 안내하는 공지 방송을 이동욱이 녹음해줬다. 이동욱은 2011년 김동률이 발표한 ‘리플레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콘서트가 김동률 데뷔 이래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없이 서는 무대라는 점을 강조하며 “형(김동률)이 칼과 방패를 내려놓고 전쟁에 나가는 기분으로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그의 말처럼 시작은 단출했다. 깜깜한 무대 위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는 오롯이 피아노 앞에 앉은 김동률을 비췄다. 그는 ‘겨울잠’ 첫 소절을 반주 없이 부르며 등장했다. 특유의 저음이 수초 간 넓은 대극장에 울려퍼졌다. 뒤이은 후반부도 밴드 없이 피아노 반주로만 채워졌다.
노래를 마친 김동률은 “특별한 편성인만큼 그간 무대에서 안 불러서 소외받았던 곡들도 좀 부르겠다”며 인사를 건넸다. 실제로 이날 김동률은 다른 가수가 불렀던 자신의 자작곡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이소라), ‘같은 꿈’(알렉스)이나 이상순과 함께 작업했던 ‘베란다 프로젝트’ 앨범의 ‘바이크 라이딩’ ‘기필코’ 등 평소 콘서트에서 잘 부르지 않았던 노래들을 들려줬다.
지난 17~19일, 22~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김동률 콘서트. [사진 뮤직팜엔터테인먼트]
레퍼토리 확장 말고도, 김동률이 오케스트라 없는 공연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또 있었다. 답은 ‘여름의 끝자락’ ‘문라이트’ 무대에서 드러났다. 김동률이 멘트를 하는 사이 잠시 막으로 가려진 무대 위엔 어느새 무릎 높이의 푸른 밀 모형이 쫙 깔렸다. 스크린에는 민들레 홀씨가 날리는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다면 공간, 시간 부족으로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김동률은 “‘여름의 끝자락’ 가사를 쓰면서 떠올렸던 시상을 무대에 구현해봤다”며 “이렇게 어쿠스틱한 연주에는 아날로그적인 무대가 어울릴 것 같아서 단순히 영상을 트는 대신 우리 기획사 식구들과 함께 한땀 한땀 밀 모형을 심었다”고 설명했다.
한 편의 렉처 콘서트 같았다. 김동률은 노래를 세 곡 이상 연달아 부르지 않았다. 모든 곡엔 노래를 쓰고 편곡한 김동률의 친절한 설명이 따라붙었다.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에 대해서는 “원곡 반주는 피아노 아르페지오가 메인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콘셉트에 맞춰 기타로 메인 악기를 바꾸고, 키도 하나 올려서 노래를 했다”거나, ‘바이크’를 부르고 나서는 “1부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코러스들이 무대에 올라와서 소리가 풍성해졌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대중음악 콘서트로는 이례적으로 15분의 인터미션도 마련했다.
신 스틸러도 있었다. 멜로망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정동환이었다. 그는 이날 김동률의 목소리에 맞춰 그랜드피아노와 키보드를 연주했다. 건반을 세게 친 후 팔을 뒤로 늘어뜨리는 특유의 열정적인 제스처는 관객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피아노가 메인 반주를 책임진 ‘여름의 끝자락’에서는 쇼팽의 왈츠처럼 화려한 크로매틱 스케일을 보여주며 연주, 편곡 실력을 뽐냈다.
2부에서는 세션이 바이올린, 첼로부터 퍼커션, 브라스, 코러스 등 20여명으로 늘었다. 탱고, 재즈, 어쿠스틱 팝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기 위함이었다. ‘기필코’ ‘첫사랑’ 등 비교적 빠르고 신나는 노래도 불렀다. 콘서트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취중진담’ ‘그건 말야’ 등 김동률표 발라드가 울려 퍼지며 절정으로 치달았다. 화려한 변주로 이목을 끌었던 세션들도 이 세곡에서는 최대한 원곡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줬다. 김동률은 “짝꿍 따라서 억지로 오신 남자분들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지난 17~19일, 22~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김동률 콘서트. 김동률이 무대를 마친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뮤직팜엔터테인먼트]
앵콜곡은 ‘그 노래’와 ‘동행’ 두 곡이었다. 김동률은 “음악을 하다보면 신 안에서도 변화가 많고 빨라서 좀 버거울 때가 있다”면서도 “고민도 많이 되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속도를 지키면서 나답게 음악을 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 조금만 나이 들어서 또 보자”고 인사하며 무대를 내려갔다.
총 7일간 진행된 이번 콘서트는 전석 매진돼 하루 3000여명, 총 2만1000여명이 다녀갔다. 김동률은 지난 2023년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돔에서 ‘멜로디’ 콘서트로 6만 관객을, 2025년 ‘산책’ 콘서트로 7만 관객과 만나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티켓 파워를 입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