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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세대교체 가로막는 세대 차이

“이젠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인 단체 관계자들이 25년 전부터 하던 말이다. 한때는 오렌지카운티 한인 단체마다 앞다퉈 ‘세대교체’를 슬로건처럼 내세우던 시절도 있었지만, 제대로 결실을 봤다고 할 곳은 매우 드물다.   지금도 여러 단체가 세대교체의 당위성을 주장하긴 하나, 이젠 공허한 구호처럼 들린다. 이민자 커뮤니티 단체에서 세대교체를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경험칙은 오렌지카운티 한인 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OC한인회가 2007년 출간한 ‘오렌지카운티 한인 이민사’에 따르면 OC에 한인 사회가 태동한 시기는 1970년대 초반이다. 1975년 이후 가든그로브에 많은 한인이 모이게 됐다. OC의 첫 한인 단체인 오렌지카운티 한인상공인친목회가 설립된 것이 1976년의 일이다. 이듬해인 1977년엔 OC한미노인회(현 OC한미시니어센터)가 발족했으며, 1979년엔 OC한인회가 출범했다.   당시 이민 1세대가 모여 한인 단체를 구성한 지 어림잡아 50년이지만, “우리 단체는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루었다”고 말할 만한 곳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세대교체를 단순히 나이 든 이들이 물러난 자리를 상대적으로 젊은 인사들이 채우는 것으로 본다면 OC 한인 단체들은 세월의 흐름을 거슬렀다고 볼 수 있다. 과거 한인 단체를 이끈 이들은 30~50대가 많았다. 빈손으로 태평양을 건너와 험한 일을 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이들은 패기와 도전 정신, 한인끼리 뭉쳐야 하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인 사회를 위한 봉사에 나섰다. 이후 한인 단체 회원, 특히 단체장의 나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고 있다. 현재 많은 한인 단체의 중추 역할을 60~80대가 맡고 있다. “대다수 한인 단체들이 노인회가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세대교체를 나이가 아니라 이민 1세대에서 1.5세, 2세로의 전환으로 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일부 직능 단체를 제외하면 한인 단체에서 이민 1세대와 젊은이들이 공존하며 발전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 단체가 한국어에 서툰 젊은 1.5세, 2세를 여럿 영입하는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영어가 익숙한 젊은이들은 한국어로 진행되는 회의에서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말을 제대로 못 해 침묵을 지켜야 했다. 간혹 어른의 말씀에 토를 달면 버릇없다는 말을 듣기 십상인, 이른바 꼰대 문화도 젊은이들에겐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으로 느껴졌다.   1세들도 할 말은 있다. 1.5세, 2세를 바라보며 느끼는 세대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에 온 한 1.5세 인사는 “1세들은 투박해도 추진력이 있어 뭔가를 해낸다. 반면, 1.5세와 2세는 자신과 가족 외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관심사도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 머문다”며 1세의 시각에 동의했다.   결국 이민 1세로 구성된 단체의 세대교체를 세대 차이가 가로막는 형국이다. 박진방OC한인회 초대 회장은 이를 두고 “거의 모든 이민자 커뮤니티는 처음 형성되고 35~40년쯤 지나 이민 1세대가 전면에서 퇴장하고 나면 급속히 미국화된다”고 늘 말해왔다. 그런 박 초대 회장도 한인 단체들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늘 역설해왔다. 맞는 말이다. 세대교체를 포기하면 한인 단체들의 명맥을 이을 길이 없다.   OC 한인 사회 역사가 반세기에 이르렀고 한인 단체들이 세대교체 방안을 고민한 지도 25년째다. 지금이 세대교체를 고민할 마지막 기회인지 모른다. 언제까지 세대 차이가 세대교체를 가로막게 놓아둘 순 없다.   설립 목적에 따라선 세대교체가 필요 없는 단체들도 있다. 단, 세대교체가 절실한 단체라면 1세들이 1.5세, 2세가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무대 전면에서 물러나 뒤에서 지원한다는 결심을 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세대 간 공존은 과정일 뿐이고, 애초 목적은 세대교체이지 않은가. 임상환 / OC취재담당·국장중앙칼럼 세대교체 한인 단체들 오렌지카운티 한인상공인친목회 세대교체 방안

2025-03-11

[중앙시론] 이경원 대기자를 추모하며

이경원 대기자가 지난 토요일 오전 8시17분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시안 아메리칸 언론인 대부로 불리는 이경원 기자는 미 주류 사회에서는 K.W. Lee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철수 사건을 파헤쳐 무죄를 증명한 것으로도 유명한 탐사 보도 대기자이다.   이철수 사건은 할리우드에서 ‘True Believer’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사건의 주역인 이경원 기자에게는 전혀 알리지도 않았고 주인공은 백인으로 둔갑해 백인 영웅을 만들기도 했다.   이철수 사건은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중국 갱단원 살인 사건으로 비롯됐다. 사건의 용의자로 이철수가 체포되었는데 동양인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백인 여행객들이 이철수를 지목하면서 유죄 평결을 받고 수감됐다.     중국 갱단들의 싸움에 엉뚱하게 영어가 미숙했고 미국에 이민온 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은 한인 이철수가 누명을 쓴 것이다. 수감 중 백인 갱단원들이 이철수가 라틴계 갱단 소속이라고 믿고 칼로 찔러 죽이려고 했는데 이철수가 칼을 빼앗아 백인 죄수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여 사형수가 되었다.   이경원 대기자는 당시 새크라멘토 유니온지 탐사보도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철수 사건을 끝까지 파헤쳤고 이철수 구명 위원회를 결성하고 무죄를 증명하여 석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23년 줄리 하가 이철수 사건을 다큐 영화로 제작하여 에미상을 수상하면서 이철수 사건이 최근 다시 부각됐다. PBS에서도 상영되었고 여러 대학과 커뮤니티에서 상영되고 있다.   이경원 대기자의 언론인으로서의 업적은 실로 눈부시다. 1950년대 동양인 최초로 미 주류 언론사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인종 차별이 극심했던 남부에서 백인 정치인들의 부정 선거를 파헤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9년 이경원 대기자는 LA에서 ‘코리아타운 위클리’라는 영문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는데 매주 자신이 거주하던 새크라멘토에서 LA로 자동차를 몰고 왕복 운전하면서 신문을 발행했다. 당시 영어를 구사하는 한인의 숫자는 매우 적었고 결국 폐간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이경원 대기자는 한국일보 영문판 편집국장으로 부임하면서 당시 사회문제로 부각된 한인 상인과 흑인 갈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1992년 LA 폭동 당시에는 한인 사회의 입장을 주류 언론에 보도하는 맹활약을 했다.   이경원 대기자는 25개 이상의 공로상을 수상했고 LA에는 이경원 기자의 이름을 딴 이경원 리더십 센터가 차세대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필자는 이경원 기자와는 가까운 사이였다. 다행히 여려차례 인터뷰를 했고 영상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앞으로 차세대 교육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경원 기자는 또한 초기 한인 이민자들과의 구술사를 남겼는데 필자가 한국어로 번역하여 고려대학교 출판부에서 ‘외로운 여정’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경원 대기자는 미국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강사였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UC 리버사이드 대학교에서도 여러번 초청하여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2024년 4월 새크라멘토 주립대학 특강을 갔을 때 마지막으로 만나 필자의 책 파차파 캠프 영문판을 전해 주었다. 책에 사진들이 부족하다고 필자를 마구 야단을 쳤는데 요즘은 책에 사진들이 많이 있어야 주목을 받는다는 조언을 한 것이다.   이경원 대기자의 개인적인 삶도 파란만장했다. 소위 ‘나인 라이브스’ 즉 고양이는 9개의 목숨을 가졌다는 뜻으로 이경원 대기자를 비유하는 말이 될 것이다. LA 폭동 당시 응급 상황이 발생하여 응급실로 실려갔는데 간 이식 수술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간 이식 수술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경원 대기자는 술과 담배도 즐겼는데도 불구하고 올해 6월이면 97세가 되는 나이까지 오래 사신 것이다.   이경원 대기자는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는 물론 한인 사회에 많은 족적을 남기고 떠났다. 한인 2세들뿐만 아니라 아시안 아메리칸 그리고 타 인종 언론인들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이경원 대기자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시면서 후배들을 응원해 주세요.”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이경원 대기자 이경원 대기자 이경원 기자 한인 이철수

2025-03-11

[이아침에] 친구 S를 그리며

계절로 치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스무 살에서 몇 번의 봄이 지난 시절이었다. 고래 한 마리 정도는 너끈히 잡을 것 같던 그때, 만만해 보인 인생 위에 설계된 나의 완벽한 계획에는 실패란 없었다. 하지만, 고난이 계속되자, 앞으로 살아갈 새털처럼 많은 나날이 오히려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 시간을 같이 보낸 S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시리다. LA한인타운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같이 살았다.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은 하찮은 일에 상처받고 축 처져 있는 내게, “왜 그래”라고 묻기에 요즘 사는 것이 버겁다고 하자, 대뜸 자기는 가시나무로 이리저리 후리게 맞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 당당하게 맞서서 사는 그녀였다.   어느 날, 일도 가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눈을 떠보니 해는 저문 지 오래였고, 7시면 퇴근해 들어오는 S는 아직 안 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파트가 무섭고 배가 고팠지만,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한참 후, S가 조심히 방문을 열며 “아파?”라고 묻길래, 고개만 끄떡였다. 이까짓 몸살이 뭔 대수라고 되뇌며, 불 꺼진 방에서 혼자 훌쩍였다. 잠시 후, 그녀가 나지막하게 “나와서 밥 먹어”라고 했다.   느릿느릿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방금 지은 밥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일이 늦게 끝나서 지금 들어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왠지 모를 설움에 꾹꾹 눌렀는데도 굵은 눈물방울이 뜨거운 김칫국에 떨어졌다. 때로는 울음을 참는 것이 우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다. 온종일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위는 그제야 만족했는지 포만감이 몰려왔다.   궁둥이를 바닥에 제대로 붙이고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친구 대신 다 식은 S의 밥과 국만 보였다. 야근하고 와서 배가 고플 텐데. 미안한 마음에 S의 방문을 두드리고, 나와서 밥 먹으라고 했지만, 끝내 말을 다 잇지는 못했다.   다시 국 데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서 고맙다고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퉁퉁 부은 눈으로 대하기가 민망했다. 처량히 비가 오길 바랐지만, 창밖으로 네온사인만 빛났다.   순자의 성악설이 피부에 와닿는 날에 우린 공평하지 않은 삶을, 불완전한 세상을, 카르마가 어떻게 그들에게 임할까를 두 번째 커피가 식을 때까지 토론했다. 그렇게 이십 대가 흘러갔다.우린 살다가 풀썩 주저앉고 싶을 때 만났으니, 서로의 삶이 순탄해지면 다시 만날 것이다. 불현듯 S가 떠오르니, 아마 어딘가에서 나를 생각하나 보다. 평안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오늘 밤은 유난히 짧다. 이리나 / 수필가이아침에 친구 친구 대신 친구 s 마음 한편

2025-03-11

[우리말 바루기] 손이 ‘시려울’ 수 없는 이유

‘겨울’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노래가 있다.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 꽁! 꽁!”으로 시작하는 ‘겨울바람’이라는 동요다. 이 동요 가사에서와 같이 많은 이가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려워 혼났다” “퇴근길에 버스를 오래 기다렸더니 발이 너무 시려웠다” 등처럼 ‘시렵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몸의 한 부분이 찬 기운으로 인해 추위를 느낄 정도로 차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는 ‘시렵다’가 아닌 ‘시리다’가 바른 표현이다. 우리말에 ‘가렵다, 두렵다, 마렵다, 어렵다’와 같이 ‘~렵다’로 끝나는 말이 많다 보니 ‘시렵다’도 맞는 표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시렵다’를 ‘시리다’의 복수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시렵고, 시렵도록, 시려워, 시렵지, 시려운, 시려우니, 시려우면, 시렵더라, 시려웠다’ 등은 모두 ‘시렵다’를 활용한 표현이므로, ‘시리고, 시리도록, 시리어(시려), 시리지, 시린, 시리니, 시리면, 시리더라, 시리었다(시렸다)’와 같이 ‘시리다’를 활용한 표현으로 고쳐 써야 한다. 따라서 위 예문 역시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리어 혼났다” “퇴근길에 버스를 오래 기다렸더니 발이 너무 시렸다”와 같이 써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동요 ‘겨울바람’을 맞춤법에 맞게 고쳐 보면 어떨까. “손이 시려 꽁! 발이 시려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 꽁! 꽁!”으로 불러 보면 음률이 맞지 않아 영 어색하다. 따라서 가사 속의 ‘시려워’는 운율을 맞추기 위한 시적 허용으로 이해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겨울바람 때문 동요 가사

2025-03-1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날갯짓으로 남을 희망에 대하여

절망의 뿌리를 자르면 희망이 돋아날까. 뼈저린 그리움 접어 은쟁반에 담으면 청포도처럼 눈물방울이 영롱할까. 마음 붙여 지낼 방 한칸 없는 타향 같은 고향땅을 이방인처럼 혼자 헤맨다.   어쩌면 태초에 우주에서 떨어져 나온 별인지 모른다. 1000억개가 넘는 은하계 중에서 작은 행성으로 떠돌다가 갈 곳 없어 먼지로 사라지는 이름 없는 별.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 그리워 살별처럼 긴 꼬리 달고 애처롭게 타원형의 포물선 그리며 지구로 떨어지는 별이였을지 모른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카뮈는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가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는다. 인간의 숙명에 직면한 죽음과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인간 존재 자체의 실존에서 드러나는 부조리와 죽음에 대한 성찰에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다.   뫼르쇠의 슬픔이 외부로 표출되든 그렇지 않든 어머니의 죽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동반한다. 다만 뫼르쇠는 슬픔을 눈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부와 타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이방인은 엄마의 죽음, 아랍인의 죽음, 뫼르소의 선고된 죽음을 통해서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뫼르쇠의 거짓 없는 자기 드러내기를 통해서 카뮈는 인간의 삶에서 ‘이방인’이었던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상의 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시지포스의 바위덩어리처럼 인간은 밀어올리기를 죽기까지 계속한다.   타인을 위해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 마주하는 슬픔과 아픔에 징징대지 않기위해 행복을 소품처럼 선반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슬픔이 강물처럼 가슴 적시는 날에는 잘 채색된 명주 한필 뽑아 햇살에 말리며 그대 만날 날을 기다렸다. 그대가 돌아오지 않아도 기다림의 시간은 아름다웠다.   행복은 살아가면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마음이다. ‘행복’이란 단어를 가슴에 간직하고 살면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패랭이꽃처럼 작은 위로를 준다.   새들은 간혹 한치 앞을 못본다. 너무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새들은 유리창이 있는지 인지 하지 못해 머리를 박는다. 유리창에 반사된 풍경을 실제 풍경으로 착각해 목숨을 잃는다. 새들도 인간도 한치 앞을 못 보며 착각 속에 산다.   행복은 전염병이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희망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이다. 멈추지 않는 날갯짓으로 퍼득이며 버티고 살면 종국에는 행복이 선물로 찿아온다.   고통과 상처의 틈바구니 속에서 헤매일 때나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흐느낄때도 행복은 북두칠성 따라 길을 열어준다, 절망에서 희망을 품고 불행에서 행복을 꿈꾸며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날개를 퍼득인다.   지금까지 행복했던 것처럼 다시 행복하게 살기로 한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날갯짓 죽음 아랍인 실존주의 문학 인간 존재

2025-03-11

[사설] 국민통합 과제는 팽개쳐버린 정치권의 헌재 협박

━ 경쟁하듯 극단적 언행과 고발 쏟아내는 여야 ━ 지지층 결집에만 매달리는 윤 대통령도 문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헌법재판소를 향한 여야의 압력이 점입가경이다. 서울중앙지법의 구속취소 결정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로 윤 대통령이 8일 석방된 이후 정치권의 압박은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어제 야당 의원들이 헌재의 신속한 결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한 가운데 민주당 박흥배·김문수·전진숙 의원은 삭발식을 했다. 전 의원은 “제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지어 재판관에게 보내겠다”고 말했다. “금요일(14일)까지 선고하지 않으면 이번 주말 대한민국은 찬반으로 완전히 뒤집어진다”(박지원 의원)는 섬뜩한 발언도 이어졌다. 여당 의원들도 헌재 앞에서 탄핵 각하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앞서 3·1절 서울 도심 집회에서 국민의힘 서천호 의원은 헌재 등을 겨냥해 “모두 때려부숴야 한다”고 협박했다. 집회에선 “불법 탄핵 재판을 주도한 문형배·이미선·정계선(재판관)을 즉시 처단하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옥중 서신까지 공개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제·외교·안보가 총체적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나라를 안정시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을 대통령 불법체포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데 맞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 5당은 심우정 검찰총장을 ‘내란공범’이라며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국민연금이나 추가경정예산·상속세같이 시급한 현안은 뒷전인 채 정쟁에만 몰두하는 여야 모습에 국민은 절망감을 느낀다. 이 모든 파국에 원인을 제공한 윤 대통령은 석방돼 관저에 돌아와서도 국민 화합 노력은 외면하고 있다. 석방되면서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90도로 절하는 모습은 국민 전체의 대표자가 아니라 특정 진영의 지도자라는 인상만 심어줬다. 석방 직후 대통령실에선 “겸허하게 헌재 선고를 기다릴 것”이라고 했으나 석방 다음 날 관저에서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를 만나는 등 ‘관저 정치’에 나선 모습이다. 공수처장 고발 등 여당이 강경 대응에 나서는 게 윤 대통령과 강경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헌재는 내일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심판을 선고한다. 이 때문에 당초 이번 주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미뤄질 공산이 커졌다. 탄핵 찬반 갈등도 당분간 이어지게 됐다. 국민 통합은 안중에 없는 정치권의 행보와 맞물려 광장의 혼란도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경찰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당일 헌재로부터 100m 이내 구역을 “진공 상태로 만들 것”이라고까지 밝혔다. 정치권은 탄핵심판 이후 국민 통합을 생각해서라도 자중하기 바란다.

2025-03-11

[사설] 미국의 한국 ‘민감국가’ 지정 움직임…외교력으로 막아야

━ 미 에너지부, 다음달 15일부터 분류 가능성 제기 ━ 기술협력 차질 불가피, 동맹관계 악영향 우려도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국가 안보나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의 이유로 민감국가 목록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올해 한국을 이에 포함하려는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 등 자신들이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을 리스트에 올려 왔다. 그런 만큼 한국을 민감국가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아직 미국의 공식 발표가 나온 건 아니지만, DOE가 산하 국책 연구기관에 다음 달 15일부터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하라는 지침을 내린다고 하니 당혹스럽다. 한국이 최종 리스트에 포함되면 DOE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가 제한된다. 한국인이 관련 시설을 방문하려면 45일 전에 신청하고,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에 큰 지장이 초래되는 것이다. 한·미가 지난해부터 추진하는 AI 공동연구 플랫폼이나 차세대 먹거리로 평가받는 양자컴퓨터 개발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조선 및 함정 분야 협력도 장담할 수 없다. 2023년까지 최근 3년간 한국의 대미 투자액은 800억 달러(약 116조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에 한국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국을 향해 강경 카드를 꺼내든 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이나 잠재적 핵 능력 보유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동북아 핵 도미노를 우려하고 있는 미국이 이를 차단하기 위해 견제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동맹인 한국의 ‘약한 고리’를 때리기에 앞서 북핵이라는 원인 제거에 나서는 게 먼저다. 트럼프를 비롯해 미국 당국자들이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우리에겐 핵 공포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을 향한 확고한 핵우산 제공 공약의 철저한 이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게 미국이 우려하는 핵 확산을 막는 길이다. 아울러 우리 내부에서도 득보다 역효과가 큰 어설픈 핵무장론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야 부랴부랴 상황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공세적인 수단을 쓸지 모르는데 동향조차 모른 채 있었다니 어처구니없다. DOE가 밝힌 민감국가 적용 시한까지 아직 한 달 남짓 남았다. 자칫 동맹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 문제다. 정부는 외교적 총력을 기울여 한국을 향한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을 막아야 한다.

2025-03-11

[중앙시평] 비생산적인 재테크로 각자도생하는 나라

우리 개인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진 세 가지 자산시장의 지난 한 달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첫째, 서울의 부동산 시장이다. 한 달 전 서울 일부 지역의 토지거래허가지구가 지정 해제되면서 잠잠하던 부동산시장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5년간 눌려있던 해당 지역의 부동산가격이 상승하며 무주택자들을 불안하게 한다. 부동산 시장의 열기는 대출 통계에서도 확인되는데, 지난달 시중 5대 은행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7조4878억원으로 전월 대비 34% 증가했다. 여기에 한은 기준금리 인하, 금융기관들의 대출금리 인하 경쟁, 지방소멸로 인한 서울 주요지역 부동산의 희소가치까지 더해져 이러한 상승세는 당분간 꺾기 힘들어 보인다. 위험자산은 하락, 부동산은 상승 개인투자자들 재테크 힘든 상황 우리 연금제도 성숙도 낮기 때문 건전한 자본시장 생태계 갖춰야 둘째, 미국 증시를 살펴보자.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최근 한 달간 나스닥종합지수는 6.8% 하락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 레버리지 ETF 종목들에 투자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률이 20∼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매수액 1위인 디렉션 데일리 테슬라 2배 ETF는 한 달간 계좌 평균 원화 환산 수익률이 -30.7%에 달했다. 셋째, 가상자산시장은 어떠한가. 주식보다 위험한 자산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미국 증시가 하락하면, 가상자산시장은 더 큰 폭으로 하락한다. 지난 금요일 기대를 모았던 백악관의 크립토서밋 행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비트코인은 하락세를 이어갔다. 정부는 몰수된 비트코인만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유할 것이라 밝혔으나, 시장에서 기대했던 추가구매 조치는 없어 실망이 컸다. 3월 둘째 주 동안 비트코인은 -11%, 이더리움은 -17%, 리플은 -23% 하락했다. 세 가지 시장 상황은 대다수 개인투자자에게 힘든 상황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청년들이 노동소득만으로는 접근이 힘들다. 그래서 미국 주식 레버리지 투자나 가상자산에 투자하지만, 이런 고위험 투자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개인은 극히 드물다. 위험자산은 큰 폭으로 하락해 손실이 나고, 부동산은 더 멀어져 보이니 견디기 쉽지 않다. 정책당국 입장에서도 난감하다. 서울 주요지역은 재건축 외 추가 주택공급이 어렵고, 내수 침체로 금리는 인하할 수밖에 없다. 금리가 떨어지면 대출수요가 증가하고 부동산으로 자금이 쏠려 소비는 진작되지 않고 자영업은 더 어려워진다. 또한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투자는 원화 약세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직접투자 규모는 작년 여름 기준 900억 달러를 상회하는데, 국내 시가총액의 약 6% 수준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가상자산거래 비중이 세계 1위로, 주식거래액보다 가상자산 거래액이 더 큰 유일한 나라이다. 부동산, 해외주식, 가상자산의 공통점은 한국경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우리는 본업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미국 경제지표와 트럼프 발언까지 분석하며 개인들이 직접 투자를 하고 있을까? 한 가지 이유는 미국과 유럽보다 우리의 연금제도의 성숙도가 낮아 노후를 개인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1988년, 퇴직연금은 2005년에 도입되었다. 독일은 1889년, 영국은 1908년에 공적연금을 도입했고, 미국도 1935년 사회보장법, 1974년 퇴직소득보장법을 시행했다. 공적연금이 발달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일정 기간 노동시장에 참여했다면 노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은 공적연금, 401(k)와 같은 퇴직연금, 뮤추얼 펀드 등이 주식시장거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성숙한 기관투자 환경을 갖추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은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기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기업 경영진은 기업의 성장과 주가관리에 최선을 다한다. 미국 근로자들은 퇴직연금을 통해 자연스럽게 미국 주식에 간접 투자하게 되고, 이 자금은 혁신기업들의 대규모 장기투자자본으로 활용된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성장은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주가 상승의 혜택은 다시 근로자들의 노후소득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미국 경제의 저력이자 근간이다. 반면에 1997년까지 정년보장형 고용시스템, 부모봉양이라는 전통, 인구가 계속 성장한다는 낙관적 전망 속에서 노후보장 시스템에 대해 크게 대비하지 않았던 우리는 지금 노후생존을 위해 각자도생하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 자본시장에서는 주주권익 침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투자자본이 국가 생산성 향상과 무관한 영역으로 이탈하고 있다. 개인의 노후 안정과 미래 성장동력 창출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자본시장 생태계가 받쳐주고, 국민의 노후보장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3%와 44% 사이만 협의하면 되는 다 차려진 밥상도 걷어차는 여야 정치권에서 아무리 몇십조원 펀드를 조성한다며 AI 테마에 숟가락 얹으려고 해도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2025-03-11

[고정애의 시시각각] “헌재·수사기관 수준 이런 줄 몰랐다”

“국가기관들 수준이 이런지 정말 몰랐다.” 검찰 출신의 한 지인이 술잔을 기울이며 한 토로였다. 수긍했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그 이후 탄핵·수사·재판 과정에서 보인 국가기관들의 선택엔 동의하기 어려운 게 많았다. 물론 현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비상계엄을 ‘평시’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으로 여긴 건 경악할 일이었다. 더 경악한 건 체포 직전 “2년 반 임기를 더 해서 뭐하겠느냐”라고 한 것이다. 굴러떨어질 걸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적인 숙명이 정치에 있다. 그 본질을 이해 못 했다면 윤 대통령은 정치 하면 안 됐다. 민주당에도 엄연한 잘못이 있다. 지금 위기의 하부구조 자체(수사권 혼란, 탄핵 등 입법 독주 등)는 민주당이 깔아놓은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대법원 선고 전 대선’을 겨냥한 듯 조여드는 그물망이었다. 윤 대통령이 순진했다. 일련의 헌재 결정, 논란 키우고 수사 경쟁이 수사 망친 측면 있어 국가 아닌 이익집단 행보 아닌가 그러나 누구나 “승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승복하겠다”고 말하지 않는 상황을 심화시켜온 데엔 국가기관들의 '기여'도 상당하다고 본다. 국가가 아닌, 자기 이익(그게 어디든)에 봉직하는 듯하면서다. 먼저 헌법재판소다. 이미 초기에 ‘심판대 오른 건 헌재도 매한가지다’라고 썼다. 8년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달리 윤 대통령의 잘못이지만 윤 대통령만의 잘못은 아닌 걸 지적하면서다. 헌재가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해내길, 지혜롭고 신중하길 바랐다. 헌재의 최근 결정을 보면, 그러나 그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며칠 일하지도 않은 방통위원장이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잘못을 했다고 본 재판관이 4명이나 됐다. 헌재를 9인 체제(현 8인)로 만들라고 결정했는데, 권한쟁의 청구 자격이 논란이 되자 국회에 보완하라는 ‘힌트’를 줬고, 보완했다는 이유로 인용했다. 자구(自求)였다. 감사원의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선관위가 헌재와 마찬가지로 헌법기관이란 동류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선관위가 헌법기관이란 외피를 두른 채 방만했던 건 외면했다. 헌재는 정작 국정 안정을 위해 절실한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에 대한 판단은 미뤘다. 민주당이 내란죄도 철회했겠다, 복잡할 게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헌재의 선행 판단이 이러하다면 대통령 탄핵심판이 아무리 멀쩡하더라도 오해받기에 십상일 것이다. 그런데 절차적으로 “헌재에 상급법원이 있다면 문제 삼을 것”(최재형 전 감사원장)이란 비판마저 나오게 진행했다. 과연 현명했나. 검찰·공수처·경찰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내란죄 수사권을 가진 정도는 동료 기자(임찬종)의 표현에 따르면 경찰〉 검찰〉 공수처다. 서로 드잡이하다가, 하면 가장 안 되는 데가 낚아채 갔다. ‘판사 쇼핑’ 논란까지 낳으며 윤 대통령을 체포·구속하곤 수사는 못 했다. 복잡다단한 ‘현직 대통령의 내란죄’ 수사는 그렇게 망가져갔고 결국 구속취소 결정까지 나왔다. 사전 경고가 있었음에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직 간 경쟁심이 눈을 흐렸다. 이로 인해 불온한 공기가 더욱 불온해지고 있다.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욕을 먹게 돼 있고, 법원·수사기관은 성향 따라 고르는(또는 욕하는) 대상이 됐다. 미래를 내다보기도 어렵다. 더욱이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해도 이후 법원에서 공소제기 절차를 문제 삼아 공소기각 판결을 하는 가능성(최재형·김웅)까지 걱정하게 생겼다.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든 특검이든 수사해 기소하면 된다지만 그 혼란은 어떻게 할까. 만에 하나 일부 헌법학자들의 주장대로 법원에서 내란죄에 의문을 표시한다면? 한때 우리도 어느 정도 국가 수준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아니었다. 누구보다 국가의 높이에서 성찰해야 할 위기에, 국가기관이 개인이나 조직·집단 수준에서 행동했다.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이끄는 기관들이 오히려 위기를 키웠고 키우고 있다. 참담한 일이다. 고정애([email protected])

2025-03-11

[차세현의 글로벌 이슈 진단] “동풍이 서풍에 우세할 것”…장기전 대비하는 시진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도 채 안 된 11일 현재 미국의 대중 평균 관세율은 45% 수준이다. 올 초 평균 약 25%의 관세율이 적용됐는데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전 품목에 대한 20% 추가 관세가 더해진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60% 선에 육박할 태세다. 일부 영향도 감지된다. 중국의 올해 1~2월 대미 수출은 2024년 1~2월과 비교할 때 약 2.3%가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율 7.1%와 비교할 때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수치다. 중국은 10일부터 미국산 농축산물 등 특정 품목을 대상으로 10~1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일부 미국 기업에 전략물품 수출 통제 제재를 가하는 ‘표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달 보복 때와 마찬가지로 전면적인 무역전쟁 대신 미국에 대화를 요구하면서 수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왜 이런 대응을 할까. 독해진 2기 트럼프 스톰에 맞서 내수 부양, 이웃국과 관계 개선 관세전쟁에 따른 동맹 균열 기대 “트럼프 임기 4년 견디겠다는 것” 중국, 수위 조절하며 표적 대응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달 열린 민영기업 좌담회에서 ‘동풍(東風)이 서풍(西風)을 압도한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1957년 모스크바 세계공산당 발언을 변형해 “장기적으로 동풍이 서풍에 우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풍은 중국식 사회주의, 서풍은 서구의 자본주의를 가리킨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지난 7일 양회(兩會)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미국은 이 별에 오래 존재할 것이고, 따라서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오래’라는 표현에서 감지되는 중국의 대응 기조는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장기전’으로 본다는 점이다. 중국의 대응 방안 중 최근까지 눈에 띄는 대목은 대략 세 가지다. 먼저 강력한 국내 경기부양이다. 지난 5일 전인대 업무보고에서 중국은 올해 10대 과제 중 첫 번째 과제로 내수를 올렸다. 지난해엔 세 번째였다. 구체적으로 3000억 위안(약 60조원) 규모의 초장기 특별 국채 발행 자금을 소비재 이구환신(以舊換新·낡은 제품의 신제품 교체를 지원하는 정책)에 쓰고, 중앙정부 예산 7350억 위안(약 147조원)을 국내 투자에 쓰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올해 재정 적자율 목표를 역대 최대인 국내총생산(GDP)의 4%(약 1122조원)로 높였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 직후 이미 지방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중앙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느슨한 통화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와 함께 시 주석은 지난달 좌담회에서 중국 내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21년 자신이 내세웠던 공동부유(共同富裕·함께 부유해지자) 정책을 수정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 “민영기업가가 먼저 부유해진 뒤 공동의 부유를 촉진하라”(先富促共富)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울타리 수리’ 전략, 인도·일본과 협력 중국은 이웃 국가와의 적극적인 긴장 관계 해소에 나섰다.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울타리를 먼저 수리하는(mending fence)’ 작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와 일본이다. 지난해 12월 중국과 인도는 2020년 군사 충돌 이후 긴장이 고조됐던 히말라야 국경지대의 평화 유지를 위한 6개 항에 전격 합의했다. 지난 1월엔 5년 만의 직항기 운항 재개와 비자 발급 간소화도 발표했다. 중국은 미국의 동맹인 일본에도 손을 내밀었는데, 지난해 9월 기존 강경 입장을 변경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후 단행됐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를 점진적으로 해제하겠다고 했다. 11월엔 일본 방문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 허용, 12월 중·일 외교장관회담 개최, 올 1월 자민당과의 교류 재개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중국은 한·중·일 3국 협력에도 적극적이다. 3국은 이달 중 일본 도쿄에서 외교장관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올해 일본에서 3국 정상회의가 열릴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미국의 ‘뒷문’ 국가와 밀착 강화 중국은 트럼프 1기 때 미국시장에 우회 접근할 수 있는 ‘뒷문(backdoor)’을 제공한 국가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비록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들 ‘뒷문’ 국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은 밀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리창 총리는 지난 5일 전인대 보고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협력 기조를 작년 ‘강화’에서 올해 ‘중점 프로젝트 추진’으로 높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은 아시아,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투자를 집중해왔다. 대표적인 국가는 멕시코, 브라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 등에 위치한 신흥개도국)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의 관세 전쟁에서 피해를 본 국가가 향후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활로를 찾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얀쉐통 중국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소 명예원장은 한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힘과 관용에 편승해온 동맹국을 질책하고 있다”며 “유럽과 동아시아에 있는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제 중국과 미국 간 헤지(위험 분산) 전략의 장점을 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미국 리더십에 피해 줄 것” 이런 움직임은 당장의 폭풍을 피하면서 중장기적 성과를 내기 위한 중국의 행보다. 트럼프의 임기는 2029년 1월 종료된다. 세 번째 연임 중인 시진핑의 임기는 2027년이지만 네 번째 연임(2032년까지 집권)도 예고한 상태다. 시간은 중국 편이란 얘기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스팀슨 센터의 윤선 중국담당 디렉터는 지난 2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국은 트럼프 4년 임기 동안 중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겠지만, 본격적인 위기에 빠지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2기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의 신뢰도와 세계적 리더십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미국을 대체할 중국의 부상을 종종 ‘1세기 동안 보지 못한 변화’라고 설명한다”며 “이에 따라 현재 중국의 최우선 과제는 트럼프발 스톰을 견뎌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세현([email protected])

2025-03-11

가난 대 끊은 89년생 '미친X'…"돈 없어도 뭐든 할 수 있더라" [안혜리의 인생]

박재병 케어닥 대표 인터뷰 박재병(36) 케어닥 대표는 한국 1세대 여행 인플루언서다.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ROTC 장교로 제대한 후 무작정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아일랜드부터 볼리비아·호주·미국·일본까지 전 세계를 거의 무전 여행하며 쓴 SNS와 블로그 글로 당시 2030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이런 이력만 보면 집에 돈 좀 있는 한량 아닐까 싶지만 정반대다. 집에서 차로 1시간이나 떨어진 초등학교 분교 입학 전까진 부지깽이 연탄 때는 9평(30㎡) 초가집에 살았고, 중학교 가서야 처음으로 친구 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봤다. 원래 넉넉하지 않았는데 중학교 때 아버지의 뇌졸중, 어머니의 독박 병시중이 겹쳐 빚이 걷잡을 수 없이 늘며 더 가난해졌다. 이때부터 가난은 그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왜 우리 집은 가난할까, 어떻게 이 대를 잇는 운명과도 같은 빈털터리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 흔히 2030은 이미 선진국 된 한국에서 태어난 세대이자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거라고들 한다. 그런데 서울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에 태어나고도 웬만한 60~70년대생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놓였던 박 대표는 "부의 세습에 따른 양극화, 계층 사다리 단절" 운운하는 자조적 한국 사회 분위기를 뚫고 혼자 힘으로 보란 듯 가난의 고리를 끊었다. 지난 2018년 원룸 보증금 500만원 빼서 시작한 노인 돌봄 스타트업 '케어닥'이 2023년까지만 315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흙수저 3세 가난 탈출 프로젝트 운명 바꾸려 떠난 세계 무전여행 결국 노숙자·쪽방촌 할머니가 답 500만원을 수백억 투자 만든 비결 지난 5일 서울 선릉역 케어닥 본사에서 박 대표를 만나 4시간 가까이 바닥부터 치고 올라온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농업적 근면 성실을 가르쳐준 아버지와 시어머니 치매 독박 간병에 이어 남편 병시중 중에도 가족 몰래 장롱에 한글 연습장 두고 독학했던 무학의 어머니를 필두로 방랑길에서 만난 노숙인, 부산 쪽방촌 할머니까지 그가 방랑길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어떻게 그의 스승이 됐는지도 흥미로웠다. 남다른 여정을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가난과 연민, 아버지 어머니 대대로 쌀농사 짓던 경남 진주 덕오리 박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키우던 소 외양간보다 작은 아홉 평 초가집에서 부모님과 누나 넷까지 일곱 식구가 살았다. 이웃 20여 가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농기계 실은 트럭이 아니라 세단 타는 부모 둔 친구들 보며 빈부 격차를 처음 실감했다. 급기야 보일러 때는 집으로 이사한 후 기름값 아낀다고 겨울 냉골에서 주무시던 아버지 혈관이 터져 뇌졸중이 오면서 가세는 더 기울었다. 아버지가 석 달 병원에 입원할 동안, 어머니 혼자 새벽에 차로 1시간 떨어진 병원에 가서 남편 수발드느라 수확한 토마토 내다 팔기도 어려웠다. 철없던 시절이지만, 수년간 시어머니 독박 치매 간병도 모자라 집안일과 농사일, 남편 병시중까지 드는 어머니가 불쌍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할 순 없었다. 퇴원 후 성치 않은 몸임에도 농업적 근면 성실함은 여전했다. 또 배움은 짧았지만 농사에 관한 판단은 빨랐다. 쌀농사에서 비닐하우스로, 토마토에서 딸기로 발 빠르게 전환하면서 몇 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 대대로 가난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안정적 월급 나오는 지역 농협 텔러, 아니면 교사를 권했다. 자식들 생각은 달랐다. 어느 날 누나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듯 우리도 가난할 게 뻔한데 취업해서 고작 한 달 100만~200만원 벌어봐야 달라지지 않는다"며 "너는 좀 다르게 살아라"고 했다. 이때부터 '가난의 대(代) 끊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누나들은 막내에 '몰빵'할 마음이었고, 난 가난 끊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찾은 답은 대기업이었다. 형님뻘 동네 어른이 '삼성전자 연구원 됐다'고 동네에 플래카드 걸렸던 게 떠올랐다. 세단 타고 와서 1000원 아닌 1만 원짜리 용돈 쥐여주는 걸 보고 "대기업 가면 인생이 바뀌는구나" 싶었다. 삼성 가려면 좋은 대학을, 좋은 대학 가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그렇게 고3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한테 MP3와 인터넷강의 수강권, 문제집을 사달라고 했다. 그리고 남들이 4당5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기에 난 매일 3당4락 마음으로 살았다. 국어 3, 영어 6, 수학 7등급이던 성적을 수능 때 수학(3등급) 빼고 모두 1등급으로 올려 부산대 경영학과에 갔다. 사회적 냉담, 노숙자 대기업 가기 위한 스펙 쌓으려면 회계학 같은 전공 학점을 잘 받아야 했는데 어려웠다. 감이 왔다. 공부로는 안 된다. 다른 경쟁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뚫은 돌파구가 리더십이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학생회장하고, 대기업 취업에 유리하다는 ROTC를 했다. 전역 무렵 삼성물산·CJ·이랜드에 합격해 이 대기업 다니는 ROTC 선배들을 만났는데, 그 삶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인생 바꿀 꿈을 꿨던 선배들이 연봉과 시계·차 타령하는 걸 보니 첫 질문으로 돌아갔다. "왜 돈을 벌려고 했지, 아니 왜 태어났지?" 일단 한국을 뜨기로 했다. 회피와 도피를 순례와 수행으로 포장했다. ROTC 하며 모은 2000만원 들고 나선 생애 첫 해외여행지로 아일랜드 더블린을 택했다. 홈스테이하며 어학원 다니면 1년은 버틸 줄 알았는데, 3개월 만에 잔고가 바닥났다. 지금껏 어렵게 살아온 데 대한 보상심리였는지 술 먹고 클럽 다니며 탕진해버린 거다. 일본 레스토랑에 무작정 찾아가 제안했다. "무급으로 일할 테니 밥만 줘. 일주일 시켜보고 마음에 안 들면 잘라. 신고 안 할게. " 수 셰프(부주방장)가 청소를 맡겼다. 무급이었지만 쉬지 않고 일하며 새것처럼 닦았다. 그걸 본 사장이 유급 자리를 제안했고, 난 "다른 매장 청소까지 하겠다"고 역제안했다. 거기에 재료 준비까지 맡으면서 하루 18시간씩 8개월을 일했다. 돈은 벌었지만 자괴감이 들었다.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없을까 봐 무섭기도 했다. 당시 쉬는 짬짬이 길에서 노숙자들이랑 담배 나눠 피며 사는 얘기할 만큼 친해졌는데, 한 젊은 노숙자가 "넌 우리를 절대 모른다"길래 아일랜드 떠나기 전 딱 일주일만 노숙하기로 객기를 부렸다. 아메리카노 한 잔 사서 그 컵으로 구걸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 사이에서 난 그냥 없는 사람이었다. 반나절 만에 공포가 엄습했다. 그날 밤 공원에서 만난 나이 든 한 노숙자 아저씨가 "젊은 친구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며 자기 밥 나눠주며 돈 몇 푼 쥐여줬다. 사람대접받곤 눈물이 터졌다. 노숙은 바로 접었지만 이를 계기로 사람을 더 만나기로 했다. 모아둔 800만원, 여기에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를 내걸고 모은 크라우드 펀딩(와디즈)까지 더해 2년 동안 비행기 17번 타고 히치하이킹하며 여행을 이어갔다. 최종 목표인 오바마 미 대통령 만나기는 실패했지만, 돈 없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겼다. 사각 속 돌봄, 쪽방 할머니 긴 여행 끝에 인생을 바꿀 답은 못 찾은채 한국에 돌아왔다. 페이스북 팔로워 8만, 때로 1000만 뷰 이상 나오는 '대박' 포스팅으로 얻은 유명세를 바탕으로 선배 형과 부산에서 여행사를 했는데 재미가 없었다. 이상하게 저소득층 교육 관련 볼리비아 자선단체에서 봉사하던 때가 생각났다. 카메라 들고 부산 쪽방 할머니들 사는 동네에 출사를 갔다. 넉살 좋게 물 얻어 마시겠다고 집에 가보니 이런 참상이 없었다. 그런데 말 몇 마디 걸어줬다고 할머니들은 숨겨둔 쌈짓돈 5만원을 내줬다. 다시 안 갈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버스 대절해서 같이 여행가는 등 내 돈 수천만 원은 족히 쓰며 봉사했는데, 할머니들 삶은 1년 전과 똑같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정부는 왜 이걸 알면서도 내버려 둘까. 완벽한 사각지대였다.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평생 고생한 엄마에 대한 연민이 겹치며 노인 문제가 갑자기 가족 문제, 내 문제로 훅 다가왔다. 가뜩이나 유명세 팔아 탐탁지 않은 여행 상품 파는 게 싫었던 터라, 여행사를 나와 창업했다. 뭐든 노인 문제를 하자. 문제는 또 돈이었다. 원룸 보증금 뺀 500만원이 전부였다. 여행 중 알게 된 사람 소개로 어찌어찌 개발자 2명을 찾긴 했는데 월급 줄 돈은 없었다. 꿈을 팔았다. "토스, 배달의민족 될 거야. 보장은 못 하지만 나랑 하자. " 이후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회사 첫 매출은 창업한 2018년 12월 무슨 대회 상금 80만원이었다. 닥치는 대로 대회에 나가 5000만원을 벌었다. 어떤 대회에서 누가 "투자자"라며 명함을 주길래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진짜 큰 투자를 하는 곳이었다. 2019년 3월 1억 1000만원을 투자받았다. 투자심사역 4명 중 3명이 반대했는데, 나머지 1명이 "노인 스타트업은 서울대·카이스트나 의대 나온 고상한 애들 말고 미친놈이 해야 한다"고 관철했다고 한다. 그 "크레이지 가이"가 나였다. 요양시설 찾기 플랫폼, 간병인 매칭에 이어 최근엔 KB 등 굵직한 금융회사와 현대건설 등 대기업 계열 건설사, 글로벌 사모펀드까지 뛰어든 시니어 하우징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각종 규제는 여전하고, 덩치 큰 기업 공세는 점점 거세지만 난 자신 있다. 이 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크레이지 가이'라서다. 가끔 회사 팔라는 제안이 온다. 100억, 아니 500억원에 회사를 사 가면 노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까, 그보단 수익화만 좇을 거 같다. 가난의 고리를 끊고 한국 현안을 해결해 내 애국심까지 충족시킬 인생의 답을 여기서 찾은 만큼 어려워도 버틸 거다. 안혜리([email protected])

2025-03-11

[장석광의 세계는 첩보 전쟁] 살해 위험 속 임무 수행하는 공작원의 운명

비밀 요원들의 기밀을 유출한 정보사령부 A팀장이 지난 1월 법원에서 징역 20년에 벌금 12억원 등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정보 요원들의 생명에 명백한 위험이 발생했고 정보 수집을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이 더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을 중형 이유로 밝혔다. 지난해 정보사는 신분이 노출된 중국과 러시아 등지의 비밀 요원 수십 명을 급히 귀국시켰다. 언론은 ‘정보 역사상 초유의 사건’ ‘정보망의 궤멸적 타격’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8개월이 지나도록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한국 요원들에게 협조했던 현지 공작원들이 검거되었다는 소식도 전혀 없다. 왜 그럴까. 한반도 준전시 때 피살된 최 영사 시신 온전히 확보 위해 비밀 작전 요원은 신분 드러나면 죽음 몰려 해외 공작은 국익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서 법과 도덕의 경계를 넘나든다. 일반 행정부처는 언감생심 상상할 수 없는 정보기관 고유의 영역이다. 공작관은 칼날 위를 걷고 죽음과 춤을 춘다. 성공한 공작은 드러나지 않고 실패한 공작만 알려진다. 실패한 공작관은 죽어 귀환하거나 배신자가 되어 돌아온다. 1996년 10월 1일 강릉 무장공비 사건으로 한반도에 준전시 상태가 보름 가까이 이어질 무렵 국정원 소속 최덕근 영사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괴한에 의해 피살됐다. 북한 공작원 소행으로 직감한 국정원은 최 영사의 시신을 최대한 빨리 서울로 운구할 것을 지령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시신의 완전한 보존이 쉽지 않은 실정이어서 부패가 진행되면 독극물 검출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확보한 최 영사 살해 독극물 국정원 요원들은 블라디보스토크는 물론 인근 도시의 호텔·식당·시장 등을 돌면서 구할 수 있는 얼음이란 얼음은 전부 확보했다. 최 영사의 관은 세 겹, 네 겹 비닐로 싼 얼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최 영사는 그렇게 10월 5일 서울로 운구되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최 영사의 시신에서 ‘네오스티그민 브로마이드’라는 독극물을 검출해냈다. 1995년 10월 부여에서 검거된 직파 간첩 김동식이 소지하고 있던 만년필형 독침용과 같은 성분이었다. 최 영사가 피살되던 날 오전에 함께 있었던 한 인사는 몇 년 전 ‘최 영사 추념 세미나’에서 필자에게 그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최 영사는 옆에서 보기에 지나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특히 연해주 일대에서 북한의 위조 슈퍼노트(100달러 지폐) 유통경로를 추적하는 데 밤낮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식당에서 내가 최 영사에게 ‘뭘 그렇게 열심히 하십니까. 손해를 봐도 미국이 보지 우리가 봅니까. 미국 영사관도 가만히 있는데 왜 영사님이 그렇게 애를 씁니까’라고 말했더니 최 영사는 ‘우리나라 돈이 아니고 미국 지폐라곤 하지만 북한이 위조한 슈퍼노트는 김정일 정권을 유지하는 데 사용됩니다. 국가가 나를 여기로 보낼 때는 이런 일을 하라고 보낸 것입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더는 할 말이 없어 ‘여기는 북한 벌목공도 많고 보위부에서도 많이 나와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니 ‘알겠습니다’라며 살짝 웃더군요.” 죽어서 돌아온 대한민국 공작관의 유품에선 자필 메모지 한장이 발견됐다. ‘사나이가 태어나서 나라를 위해 죽는다! 그것은 여한이 없는 일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스파이 세계에서는 최 영사처럼 강직한 인물보다는 변절한 사례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스파이가 배신하거나 정보를 유출하는 주요 동기를 ‘3W’로 설명한다. 와인(wine), 여성(woman), 돈(wealth)이다. 그러나 3W가 모든 스파이에게 먹히지는 않는다. 옛 소련의 드미트리 폴랴코프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돈을 받지 않았다. 전동 공구, 작업복, 낚시 장비, 산탄총 등 가벼운 선물만 받았다. 그것도 1년에 3000달러를 넘지 않았다. 술은 거의 안 마셨고 아내에게 충실한 가장이었다. 칼날 위에서 죽음과 춤추는 스파이 드미트리는 우리나라 방첩사령부와 정보사령부의 기능을 합쳐 놓은 옛 소련 총참모부 정보총국(GRU) 소장으로 냉전 당시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운영하던 최고위급 이중 스파이였다. 1961년 드미트리가 미 연방수사국(FBI)을 통해 미국과 접촉하게 된 동기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어린 아들의 비극, 소련 체제에 대한 환멸, 핵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도덕적 신념이었다. 드미트리는 정치적 망명을 제안한 CIA 요원에게 “저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저는 절대 미국에 가지 않을 겁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조국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러시아인으로 태어났고 러시아인으로 죽을 것입니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1986년 7월 드미트리의 25년 이중 스파이 활동이 그가 신뢰했던 FBI와 CIA의 배신자들에 의해 막을 내렸다. FBI의 로버트 한센은 KGB와 GRU로부터 140만 달러를, CIA의 올드리치 에임스는 270만 달러를 받고 드미트리를 팔았다. 1988년 3월 드미트리의 총살형이 집행됐다. 아버지와 같은 기관에 근무하던 아들은 자살했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알면서도 가만두는 중국 정보기관 삼십여 년 전 일이다. 중국에 블랙(비밀 요원)으로 나간 후배가 3년도 채 못 돼 서울로 소환됐다. 신분 노출 때문이었다. 4년 전 단기 어학연수를 갔을 때 이미 신분이 노출됐고, 중국 정보기관은 그때부터 쭉 후배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배는 살아 돌아온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고 국내 부서에서 근무하다 퇴직했다. 역시 그즈음이었다. 우연한 계기에 동남아의 한 우방국 정보 요원을 만났다. 중국을 경유하는 탈북자들의 귀순이 잦던 시절이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필자가 “당신들은 중국에 어떻게 들어가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은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는 순간 바로 체포되기 때문에 절대 직접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라고도 했다. 정보사 A팀장은 현지 공작망 접촉을 위해 2017년 중국에 갔다가 공항에서 체포됐고 그때 포섭을 제의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자의 직간접 경험상 A팀장의 공작망은 실상은 중국의 방첩망이었고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A팀장을 포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30여 년 전 단기 연수를 갔던 국정원 요원의 신원을 파악하고 몇 년간 일언반구 없이 지켜봤던 중국이다. 14억 인구에 7억 대의 CCTV가 관찰하며 걸인들도 QR코드로 송금받는 세계 최첨단 디지털 사회가 중국이다. 최덕근 영사, 드미트리, 정보사 A팀장…. 누구는 ‘왕관의 보석(the jewel in the crown)’이라고 추켜세우고 누구는 ‘조국의 배신자’라고 비난하지만, 스파이는 ‘칼날 위를 걸으면서 죽음과 춤을 추는 극단적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2025-03-11

[시론] ‘암수범죄’ 아동학대 사망, 지켜만 볼 건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아동학대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 희생자는 44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월 3~4명씩 어린 생명의 비극적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때그때 들끓는 여론 속에 상황 대응에만 집중하다 보니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아동보호 사각지대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때다. 정부는 학대 조기 발견과 신속한 개입, 심리적·의료적 회복 지원, 재학대 예방을 위한 전문 사례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등 발굴체계 구축과 사회적 보호망 조성에 그동안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단순한 안타까움과 감정적 비난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반복되는 아동학대 사망의 구조적 원인을 찾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실효적 대책을 찾아 시행해야 한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모든 아동 사망사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과 제도를 꾸준히 개선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아동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월 3~4명, 끊이지 않는 아동 희생 단순 사망 사건으로 덮을 일 아냐 미국·일본처럼 법·제도 보완해야 미국은 1990년대 중반 아동학대 및 방임으로 인한 사망 사건 분석을 시작했다. 아동학대 사건은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았거나 검거하지 못한 ‘암수(暗數) 범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사건 규모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단 한 건의 억울한 아동의 죽음도 발생하면 안 된다는 기조에 따라 모든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분석해왔다. 지금은 모든 아동 사망 사건으로 분석 대상을 확대했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법 집행자, 아동보호서비스 관계자, 검시관, 소아응급의학과 의사 등 다학제적 팀을 구성해 조사·분석하고 있다. 국가 및 지역의 아동 사망 패턴과 추세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아동 사망을 예측·예방함으로써 아동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있다. 가까운 일본도 2004년 아동학대 사망 분석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사망 사례 분석을 추진하고, 중앙정부인 후생노동성이 매년 주요 분석 주제 등을 선정해 종합보고서를 발간한다. 한국에서도 중앙정부 차원의 아동학대 사망분석 제도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학대위기·피해 아동 발굴 및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아동학대 사망 분석 상설화를 위한 대책을 수립했다. 그러나 정책의 근간인 실태 파악부터 관계 기관별 통계가 엇갈린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주요통계, 대검찰청 범죄통계, 통계청 사망 원인 통계 등에서 아동학대 사망 건수조차 일치하지 않고 있다. 수사기관의 협조 없이는 조사내용 열람과 공유가 불가능해 실질적 분석이 어려운 상황이다. 학대 사망 정보의 수집과 면담 절차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의료진이 판단한 아동 사망 원인이 ‘기타 및 불상’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사망 원인을 분석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런 경우에도 전문가들이 사망 원인을 분석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범죄 혐의 판단과 가해자 처벌은 수사기관 몫이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망 분석 제도를 통해 다학제적 전문팀이 투입된다면 학대 피해 아동이 사망에 이르게 된 환경적 원인과 제도적 취약성을 찾아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유사한 학대 사망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범부처 차원에서 총괄적으로 아동보호 체계를 개선하는 환류 시스템을 만들고, 개선 방안에 대한 법적 이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아동학대 사망 사례를 분석하기 위한 법안 4건이 발의됐으나 끝내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관련 법안 2건이 발의돼 심의 중이다. 실질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조속한 법안 통과가 절실하다. 아동이 사망에 이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해야만 세상이 아이들의 안전과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 사후 대책을 마련한다면 후진적이다. 얼마나 더 많은 아동 사망 사고를 접해야 법적 기반을 제대로 마련할 것인가. 올해는 반드시 아동학대 사망 분석 제도를 법적으로 확립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마련돼야 한다. 바로 지금이 소중한 아동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2025-03-11

[천인성의 시선] 중국의 대학 굴기

‘중알못’인 기자가 저장대(浙江大)를 알게 된 건 2011년, 국내 대학의 경쟁력을 다룬 기사를 준비할 때다. 기초자료 삼아 영국 대학평가기관 타임즈고등교육(THE)이 발표한 세계 1~200위 대학을 나라별로 정리했는데, 중국(홍콩 별도)에선 베이징대·중국과학기술대·칭화대·난징대·중산대에 이어 이름 올린 곳이 바로 저장대(당시 197위)였다. 덕분에 중국판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9개 대학(구교연맹) 중 한 곳으로, ‘진실을 찾고 혁신을 추구한다’는 인상적인 모토의 공학 분야 명문대란 걸 알게 됐다. 기자의 호기심은 거기서 멈췄는데, 그땐 관심이 대학의 면면보다 ‘스코어’에 쏠렸던 탓이다. 그해 200위 내 국내 대학은 포스텍·KAIST·서울대·연세대 등 4곳이었다. 중국과 한국이 ‘6대 4’인 셈이었는데, 기자는 “경제력·인구를 고려하면 중국 대학도 한국만큼이나 신통치 않네” 생각하고 말았다. 세계 일류 목표로 선택·집중 30년 저장대,‘항저우의 스탠퍼드’로 커 뒷걸음 한국 대학 구할 대안 시급 한참을 헛짚었다. 막 기지개를 켜던 중국 대학을 과소평가했다. 지난달 초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이 저장대 출신이란 뉴스를 보고 THE 랭킹을 다시 살폈다. 지난해 저장대는 세계 47위로 평가됐다. 15년도 안돼 150여 계단을 뛰어올라, ‘한국 1위’ 서울대(62위)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다. 그새 중국의 ‘국대’ 칭화대(12위)·베이징(13위)은 아시아 선두 대학이 됐고, 200위 내 중국 대학은 홍콩(5곳)을 빼고도 12곳으로 늘었다. 반면 한국 대학은 6곳에 그쳤다. 연구 역량에 중점 둔 랭킹(ARWU)에선 격차가 더 벌어졌다. 1~100위 중 중국은 14곳(저장대는 27위), 한국은 단 1곳(서울대·86위)이다. 더 놀라웠던 건 국내에선 구호에 그치는 산학연 협력, 맞춤형 인재양성이 중국엔 이미 정착했다는 점이다. 저장대는 2018년 중국 최초로 학부에 AI전공을 개설했는데, 딥시크 엔지니어 40%가 이곳 졸업자로 알려졌다. 저장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한 석·박사생의 30% 이상이 대학 소재지 항저우에서 창업 활동 중이다. 딥시크와 함께 ‘항저우 6소룡’(유망 스타트업)으로 불리는 로봇제조사 딥로보틱스의 창업자, 3D프린팅업체 매니코어의 창업자 모두 저장대 출신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처럼 저장대와 항저우의 AI생태계, 중국 대학과 차이나테크가 동반 성장 중이다. 사실 중국도 한국처럼 서구에 비해 대학의 역사가 길지 않다. 베이징대·저장대 등 명문대도 대부분 19세기 말, 20세기 초 설립됐다. 특히 문화대혁명(1966~76년) 때 지식인 탄압의 광풍 속에 치명상을 입었다. 80년대 개혁·개방 이후 다시 출발선에 돌아온 셈인데, 이후 30~40년 만에 미국·유럽·일본을 따라잡은 거다. 이 같은 중국의 대학 굴기는 당과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1991년 덩샤오핑은 21세기까지 세계 일류 수준 대학을 100곳 육성한다는 ‘211공정’을 선언했다. 뒤를 이은 장쩌민은 저장대 등 구교연맹 등을 중심으로 재정수입 1%를 투자하는 ‘985공정’을 천명했다. 시진핑 주석도 211·985공정을 계승해 40여 개 대를 중점 지원하는 ‘쌍일류(세계일류대학·일류학과 건설)’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도자가 바뀌고 대내외적 환경이 변해도 세계 일류란 목표를 지키면서 될성싶은 대학에 예산 및 정책 지원을 몰아주는 ‘선택과 집중’을 이어갔다. 중국의 대학 혁신 시기, 한국 대학은 제자리걸음에 머물렀다.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연구력 향상(BK21, WCU), 산학협력(LINC, CO-OP), 교육 강화(ACE, CK, PRIME)를 목표로, 그럴듯한(?) 영어 약칭의 지원 사업이 이어졌다. 하지만 돈을 부을 때만 ‘반짝’ 했을 뿐 체질 개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권이 바뀌면 사업도 변했고, 형평성·공정성·지역균형 등을 이유로 지원 대상과 목표가 바뀌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정치권과 정부의 관심이 표심과 직결된 ‘반값 등록금’(국가장학금 확대+등록금 동결)에 쏠리면서 재정난에 시달린 상당수 대학이 연구력·교육 질 향상 대신 생존을 위한 버티기에 급급하고 있다. 지난달 말 중국 정부는 저장대의 두장펑 총장을 교육부 부부장(차관)에 임명했다. 저장대를 ‘항저우의 스탠퍼드’로 키운 인물을 중용해 대학 혁신을 확산시키려는 포석일 테다. 부러워만 할 일이 아니다. 하루빨리 빈사 상태에 놓인 국내 대학을 구출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더 늦는다면 한국 대학은 국가·사회를 선도하는 연구,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고등교육기관 본연의 모습을 영영 되찾지 못할 지도 모른다. 천인성([email protected])

2025-03-11

[김도연의 마음 읽기] 내 친구 수종최

초등학교 저학년을 넘어서면서부터 개학 날 나의 최대 관심사는 옆자리에 과연 어떤 여학생이 앉을 것인가였다. 누가 내 짝이 되어 1년 동안 같은 책상을 쓰게 될까.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기대하는 친구도 몇몇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번 내 기대는 어긋났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상대방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대체 담임은 어떤 기준으로 짝을 정해준단 말인가! 할 수 없이 나는 대부분의 다른 남학생들처럼 책상 가운데에 칼로 줄을 긋고 책이나 공책이 조금이라도 넘어오면 짝들을 향해 으르렁거리기만 하다가 졸업했다. 콧물 흘리던 화전민 집안 친구 한자 교육 탓 최종수 거꾸로 써 싸운 적이 더 많았던 숱한 짝들 이름 갖고 놀려 미안해 종수야 4학년 때였던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짝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내 짝은 화전민 정리로 오대산에 있는 분교를 다니다가 전학을 온, 아직 누런 콧물을 질질 흘리는 친구였다. 어느 날 국어 시간에 주관식 모의시험을 보고 짝의 시험지와 바꿔서 채점하게 되었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시험지의 상단에다 자신의 이름을 수종최라고 적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답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두 빵점 처리를 한 뒤 그 사실을 즉각 큰소리로 선생님에게 알렸고 반 아이들은 웃음으로 답변했다. 왜냐하면 그 친구의 이름은 최종수였으니까. 선생님에게 불려 나갔다가 자리로 돌아오는 녀석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종수의 할아버지가 한문을 배워 그렇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뒤따랐지만 그 까닭을 이해하기엔 우리는 아직 어렸다. 한동안 그 친구를 보면 수종최, 수종최… 놀리느라 바빴다. 그게 한자의 세로쓰기와 우종서(右縱書)의 영향이란 걸 훗날 소설가가 되어서 알았을 때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내 짝들은 당연히 모두 남자 녀석들이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남학생반과 여학생반으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 저 학교에서 모인 사내 녀석들은 장난치고 싸우고 선생님들에게 야단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짝이라고 해서 특별한 우정이 생길 리가 만무했다. 같은 나이지만 더 예민했던 여학생들은 아마 조금 달랐겠지만 남학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춘기의 거친 바다를 건너가느라 허둥거렸다. 대관령에서 춘천으로 유학 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일인용 책상이라 아예 짝이라는 용어조차 사라지고 앞번호 뒷번호가 겨우 그 역할을 유지했다. 마음이 맞는 녀석들(어쩌면 패거리들)끼리 영화관·음악감상실을 찾아가거나 자취방 뒤편 담벼락 아래에 모여 잘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뻐끔거린 게 전부였다. 그러던 중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토요일 오후 고향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앉는 것이었다. 맙소사, 짝이 생기다니! 춘천에서 홍천까진 침묵을 고수한 채 뛰는 가슴만 달랬다. 버스가 홍천에서 횡성으로 향할 땐 용기를 내어 어디까지 가냐, 문과냐 이과냐를 물어보았다. 버스는 수시로 고개를 넘고 구부러진 길을 달려가고 있었기에 애를 써도 가끔 몸이 닿게 되는데 그때마다 서로 화들짝 놀랐다. 잠시 쉬어가는 횡성에선 터미널 옆 상점에서 산 귤을 먹으라고 내밀었다. 횡성에서 장평까지의 영동고속도로에서 우린 귤을 까먹으며 우리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눴다. 이름도 모르는 토요일 오후의 짝은 검문병이 버스에 올라와 검문하는 장평에서 내렸다. 나는 어두워지는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들어 주었고. 이후 소설을 쓰겠다고 천방지축 돌아쳤던 대학 시절, 소설가가 되겠다고 아등바등 매달렸던 수원 시절에도 많은 짝이 길고 짧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가 떠나갔다. 즐거운 적도 많았지만 싸운 적은 더 많았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냐고 호소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소설까지 동원해 그 분노를 다스리느라 정작 해야 할 공부마저 게을리했다. 그런데…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니 과연 나는 내 짝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기나 하고 분노했던가. 나로 인해 마음 아파했던 짝들은 과연 없었을까. 자신할 수 없다. 요즘 텔레비전과 유튜브를 켜면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들만의 짝을, 어쩌면 패거리를 모집하느라 봄밤의 개구리들처럼 울고 있다. 깊은 밤 그 아우성을 듣고 보다가 문득 옆자리가 허전해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썼던 내 친구 최종수가 떠올랐다. 미안하다, 종수야. 김도연 소설가

2025-03-11

[로컬 프리즘] 금강 끼고 있는 충남, 물 부족 시달리는 이유는

충남은 늘 물 부족에 시달린다. 15개 시·군에 인구가 213만 명에 달하지만, 용수 공급원이 마땅치 않다. 충남에서 대규모로 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은 보령댐이 유일하다. 1998년 10월 완공된 보령댐(보령시 미산면)에서는 당초 하루 28만5000t의 물을 공급해 왔다. 하지만 요즘 목표치의 47% 수준(11만t)만 공급한다. 보령댐과 연결된 하천이 별로 없어 수자원 공급이 원활치 않아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담수량이 급격히 줄기 때문이다. 고육지책으로 댐에서 21.9㎞ 떨어진 부여군 금강에서 물을 공급받고 있다. 2016년 640억원을 들여 만든 도수로(導水路)를 통해서다. 충남에서 필요한 나머지 물(108만t)은 대전·충북에 건설된 대청댐에서 공급한다. 충남도 용수 자립도(약 10%)는 전국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앞으로도 충남 물 공급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2035년 정도 되면 대규모 산업단지 건설 등으로 지금보다 하루 18만t의 물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에 정부와 충남도는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청양군과 부여군 사이에 있는 지천에 소규모 다목적댐을 만드는 방안이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지천댐은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다. 지천댐 예상 저수 용량은 5900만㎥로, 하루 11만t(38만명 사용)을 공급할 수 있다. 정부와 충남도는 1991년부터 세 차례 지천댐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 등 각종 규제를 걱정하는 주민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에도 일부 주민이 반발하고 있다. 물론 찬성하는 주민도 꽤 있다. 반대 주민은 “댐을 지으면 청양군민은 피해를 보고 이익은 다른 지역이 가져간다”고 주장한다. 댐에서 발생한 녹조에 노출되면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청양군도 댐 건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주민 반대를 의식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양군 생활용수도 대부분 대청댐에서 공급한다. 충남도는 댐 건설 지역에 파격적인 지원 대책을 내놨다. 산업단지 조성과 기업 유치를 지원하고 수몰 지역 주민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이주단지도 만들기로 했다. 주민 생계를 위해 태양광 시설과 스마트팜 조성에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댐 건설 지역에 도로 건설 등 인프라 예산도 770억원 정도 마련했다. 전망대·출렁다리 등 관광 시설도 조성한다. 이런 대책이 댐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에게 설득력이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어떤 대책을 내놔도 거부하겠다는 주민도 있다고 한다. 충남도는 이런 상황을 감안, 대책을 내놓는 데 그치지 말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지속해서 설득해야 한다. 주민들도 대승적 차원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방안을 생각했으면 한다. 김방현([email protected])

2025-03-11

[노트북을 열며] 대륙의 천재들

때로 어떤 취재 경험은 너무나 선명하다. 그중 하나가 10년 전인 2015년 1월 중국 베이징대 출장이었다. 우중충한 회색 벽돌 건물, 깨진 유리창, 낡은 복도, 한눈에 봐도 구형 컴퓨터…. 명문대에 기대한 첫인상은 실망이었다. 공대 연구실에 들어섰다. 먼지 쌓인 구석 수조에 노란색 ‘로봇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반전은 다음부터다. 자세히 살펴보니 물고기 꼬리 움직임이 놀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대학원생은 “고성능 수중 카메라만 달면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미국에서 2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22억원) 이상 투자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비결은 단순했다. 대륙의 천재들의 ‘노오력’. 대학원생 면면부터 화려했다. 중국 광둥성(2014년 기준 인구 1억800만 명), 쓰촨성(8100만 명) 등에서 대학 입시 1~5등을 차지한 인재라고 소개했다. 확률로만 따졌을 때 대한민국 수능 수석보다 나은 천재들이다. 하루 몇 시간씩 연구하느냐고 물었다. “15시간쯤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천재끼리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뺀 대부분을 연구에 매달린다는 얘기다. 우연히 들른 연구실이 그렇다면, 대체 중국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짐작조차 어려웠다. 당시 경험이 떠오른 건 연초부터 인공지능(AI) 업계를 흔든 중국발 ‘딥시크(DeepSeek) 쇼크’를 취재하면서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梁文鋒·40)은 2002년 중국 대학 입시 수석(저장대) 출신이다. 량원펑 같은 대륙의 천재 수천수만 명이 하루 15시간, 어쩌면 그 이상 AI에 매달리는데 한국이 경쟁에서 이기기 바란다면 욕심이다. 감탄은 여기까지만. “중국에 한참 뒤진 AI 판세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우울한 결말은 아니다. 모든 문제가 인구 때문이라면 저출산·고령화 롤러코스터를 탄 우리는 항상 질 운명이다. 하지만 인구가 곧 승패는 아니잖나. 축구 인구만 따지면 한국은 중국에 비교 불가할 정도로 적다. 그런데도 중국은 국가대표 A매치 경기마다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린다. 영일만 허허벌판에 제철소를 세우고(포스코), 조선소도 없는데 배를 수주하고(HD현대중공업), 모두가 뜯어말린 반도체 사업에 도전해 성공한(삼성전자) 나라가 한국이다. 길이 막히면 새로 냈고, 답이 없으면 문제를 뒤집었다. 한국의 맨 파워가 중국에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가장 뛰어난 인재가 의대·로스쿨에 몰리는 현실이 찜찜하다. ‘K량원펑’이 눈을 번뜩이는 대학 연구실, 한국판 딥시크는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김기환([email protected])

2025-03-11

[김명화의 테아트룸 문디] 꽃 한 송이에도 세상이 달라진다

산수유가 피었다. 춘설에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조금 펴진다. 이제 연달아 꽃들이 피어나면 이 회색의 도심도 달라 보일 것이다. 꽃 몇 송이에도 세상이 달라지니 절망하지 말라고, 세상을 다시 보라고 봄이 왔다. 연극의 시작도 봄과 인연이 깊다. 잘 짜인 희곡을 갖춘 본격적 연극은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시작하는데, 바로 봄의 축제였다. 신화에 의하면 디오니소스신은 제우스신과 인간 세멜레의 자식이다. 어미 세멜레는 디오니소스를 잉태한 채 제우스의 번갯불에 타 죽지만, 디오니소스는 아비의 신통력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태어난다. 겨울 이후의 봄처럼 죽음을 이겨낸 재생의 신이라 할 수 있다. 고통을 이기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 누군들 쉬우랴. 더구나 아비의 본처인 헤라의 질투를 피해 이방을 떠돌아다녀야 했으니, 이 외톨이 신은 자신의 고통을 잊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늘 술에 취해 있는 포도의 신이고, 무아 즉 광란과 황홀의 신이기도 하다. 봄이 오면 그리스 사람들은 겨울이 끝난 것을 기뻐하며 디오니소스를 찬미했다. 술에 취해 춤추고 노래하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 음주가무의 제의가 디티람보스라는 합창으로 발전했고, 또 그 합창에 배우의 존재와 이야기가 들어가면서 구체적인 연극의 형식이 빚어졌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알려주듯, 이방에서 도입된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해방의 축제가 그리스 본토의 아폴론적 이성의 힘과 만나 갈등하고 분별하면서 비극의 형식으로 고양된 것이다. 자 봄이다. 새 출발의 기쁨 속에 대학가의 신입생들은 술을 마실 것이다. 그 디오니소스적 취흥에 아폴론적 분별과 조화가 깃들기를.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마주할 세상에도 혹한의 갈등과 대립을 이겨낸 꽃들이 피어나길 소망한다. 우리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2025-03-11

[알렉스 조이너의 마켓 나우] 글로벌 3대 트렌드와 한국 경제의 기회

불확실성의 확대로 예측이 어려울 때는 미시적 접근보다 거시적 흐름을 바탕으로 한 판단이 더욱 중요하다. 시대를 관통하는 장기 트렌드를 3D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디지털화(Digitalization). AI 기술 발전으로 데이터센터 산업은 2016년 이후 연평균 25%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앞으로도 성장세 지속이 예상된다. 다만, 충분한 부지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라는 두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선제적인 인프라 구축이 활발하다. 지난해 IFM이 실시한 ‘프라이빗 마켓 700’ 설문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6%가 2025년 인프라 시장에서 디지털 인프라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둘째, 탈탄소화(Decarbonization). 기후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탈탄소화는 세계적으로 이미 장기적인 거대 흐름(megatrend)으로 자리 잡았다. 태양광·풍력 프로젝트와 같은 전통적인 재생에너지 섹터뿐만 아니라, 바이오매스·바이오가스 같은 신기술 및 대체연료 관련 섹터도 부상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에너지 공급망과 교통수단의 탈탄소화가 진행되면서 전력망 연결을 위한 송전 인프라와 전기차용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수요도 커질 것이다. 전력 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미국의 경우, 향후 10년간 약 500기가와트(GW) 규모의 신규 발전 용량이 전력망에 연결될 것이다. 셋째, 탈세계화(Deglobalization). 현재 관세 정책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된다. 물론 지금 중국을 비롯한 나라에 부과된 공격적인 관세가 이대로 확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향후 협상으로 품목이나 관세율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 경제에 분명히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며, 이미 무역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탈세계화는 3D 중에서도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 때문에 한국은 글로벌 무역 긴장의 심화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불가피하다. 내수 부진이 여전한 가운데, 경제를 뒷받침하는 수출마저 둔화할 리스크가 있다. 관세전쟁으로 중국경제가 둔화하면 한국의 대중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이 한국과의 무역수지 적자 확대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한미 금리 차 확대와 달러 강세로 인한 원화 약세 리스크까지 더해지고 있다. 민간소비 회복과 환율 경쟁력 유지에 더해 가계부채 급증 억제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달성하려면, 탈세계화의 영향을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세계 경제는 끊임없이 도전과 변화에 직면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주요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회를 포착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알렉스 조이너 IFM인베스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20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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