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송 남용 가능성, 허위정보 판단 기준 등 문제 소지 ━ 네이버 등 자체 검열, 정부 정책 비판글 줄어들 수도 ━ 표현의 자유는 헌법적 권리, 법 개정해 문제 없애야 표현의 자유 위축 논란을 빚어온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7일부터 시행된다. 개정 정통망법은 고의적 허위사실을 퍼뜨리거나 조작된 정보를 유통시키는 행위에 대해 무거운 금전적 책임을 지워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는 명분으로 더불아민주당이 주도해 지난해 12월 통과시켰고 공포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 법은 입법 단계에서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규제의 기준이 모호하고 징벌적 배상 등 규제가 과도하며, 언론사·유튜버 등을 상대로 한 정치인·고위공직자·대기업 등의 입막음용 소송, 이른바 ‘전략적 봉쇄 소송(SLAPP)’ 남발 가능성이 해악 요소로 꼽혀 왔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강력한 규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의 표현의 자유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야권은 이 법을 두고 ‘입틀막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으나 시행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왔다. 가령, 개정 정통망법 44조는 ‘사실이나 의견 전파를 업으로 하는 자’가 고의 또는 부당 이익을 목적으로 허위 정보를 유포해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 인정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할 수 있도록 했다. 2회 해당될 경우는 10억원의 과징금까지 가능토록 했다. 언론사와 직업적으로 활동하는 유튜버 등이 1차적으로 이 조항의 규제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권력이나 경제력 있는 이른바 ‘공적 주체’가 허위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단계에서도 소송을 제기하거나, 혹은 소송을 걸겠다는 태세만을 보여도 언론 활동은 위축될 수 있다. 허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애매하게 규정되어 있어 정부 기관의 자의적 해석이 작용할 여지가 있다. 이 법안에 대해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위헌성을 지적했고,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징벌적 처벌조항 등을 삭제한 정통망법 개정안을 지난달 26일 발의했다. 국회 소통마당에 올라온 ‘정통망법 철회 청원’은 한 달 동안 14만 명이 동의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국내에 주재하는 외국 언론사들도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은 지난 1일 “정통망법이 표현의 자유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 언론인과 언론사의 활동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건강한 디지털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정부와 국회의 노력을 존중”한다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률은 그 시행 전후를 막론하고 지속적인 사회적 검토와 폭넓은 공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SFCC는 전 세계 약 100개 언론사의 외신기자 등 46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 단체다. 개정 정통망법에 대한 우려는 진보진영 언론단체나 언론사들도 마찬가지로 표명했다. 또한 네이버·카카오 등 하루 이용자가 100만 명 이상인 대형 플랫폼 사업자가 허위조작정보로 의심되는 게시물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의 판정 절차를 건너뛰고, 곧바로 플랫폼에서 내려버리는 경우 표현의 다양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플랫폼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게시물을 필터링할 경우 건전한 정부 정책 비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위조작정보나 가짜뉴스는 이재명 대통령 말대로 민주주의 시스템을 훼손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역시 양보할 수 없는 헌법적 권리다. 허위 정보 대응과 표현의 자유 보호는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되어야 할 원칙이다. 문제 있는 법은 개정을 통해 얼마든지 바로잡으면 된다. 가짜 뉴스 근절이라는 좋은 명분이 과잉 우려와 악용 가능성이 있는 조항들로 인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은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정통망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주기 바란다.
2026.07.03. 8:34
요즘 재밌게 월드컵을 즐기고 있다. 원래 스포츠에는 별 관심이 없어 유명 선수 이름만 아는 정도고 큰 대회가 아니면 보지도 않는 편이지만 월드컵은 다르다. 월드컵 관련 뉴스는 열심히 챙기고 스케줄도 체크하고, 경기를 볼 때는 어설픈 관전평까지 해 함께 보는 사람들을 실소케 한다. 나름대로 확실한 응원 기준도 있다. 대한민국이나 미국이 아니면 무조건 약체국 편이다. 그래서 이번엔 조별리그 초반부터 신이 났다. 월드컵이 막을 올리자마자 한국이 체코를 눌러 기분이 좋았고, 서아프리카 작은 섬나라 카보 베르데가 무적함대 스페인과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을 때는 정말 기뻤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 새롭게 느낀 점은 미국이 축구를 매우 잘한다는 것, 그리고 미국의 축구 열기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멕시코, 캐나다와 공동 주최국인 데다 대다수 경기가 미국에서 열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하여간 요즘은 가는 곳마다 축구 얘기고 월드컵이 화제다. ’풋볼‘하면 아메리칸 풋볼만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이렇게 축구 열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보니 기쁘고 신난다. 미국에서 40여년을 거주해 왔지만 솔직히 아직 이 나라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게 어디 한두 가지던가. 하지만 미국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은 있다. 이 나라에는 분명 천사가 이곳저곳 참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그 천사들을 여러명 만났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에인절이 몇 있는데 유독 자동차를 탈 때마다 떠오르는 '찐천사'도 늘 기억이 생생하다. 아주 오래전 휴대폰도 없던 시절, 뉴포트비치에서 열린 결혼식 참석 후 집으로 돌아오던 중 깜깜한 도로에서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주말 늦은 밤이라 도로에는 오가는 차도 별로 없어 겁이 덜컥 나며 몸이 떨리기까지 했다. 일단 진정하고 도로변에 차를 세운 후 궁리 중이었는데 누군가 뒤에 차를 세우고는 도움을 주겠다고 다가왔다. 두려운 눈빛을 느꼈는지 차창 밖으로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주며 안심시키는 행동에 외양도 반듯해 보이는 청년이라 믿음이 가 일단 도움을 받기로 했다. 트렁크를 열고 스페어타이어를 꺼냈는데 기가 막히게도 이 타이어 역시 바람이 빠진 상태였다. 난감하고 미안함으로 쩔쩔매자 그가 차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인근 자동차 수리점을 찾아 스페어타이어에 바람을 넣어 오겠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돌아온 이 천사는 차 타이어를 교체해 준 후 오히려 “무섭고 힘들지 않았냐”며 나를 위로해 주고 활짝 웃으며 떠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흘렀다. 또 한명의 ‘찐천사’는 마켓 주차장에서 만났다. 차 사고 후 전기차를 빌려 타고 다니던 중 마켓 주차장에서 충전할 때였다. 처음 타는 차라 이것저것 다루기가 불편했는데 결국 마켓 주차장에서 사달이 났다. 충전을 마치고 충전기를 차에서 빼려는데 요지부동, 꼼짝달싹을 안 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허둥대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았는지 아내와 함께 쇼핑한 물건들을 차에 싣던 한 남성이 도와주겠다면서 다가왔다. 자기도 전기차를 타고 다니지만 차종이 달라 모르겠다며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충전기는 꼼짝을 안 했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곧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와 이리저리 검색하며 남편을 도왔다. 그래도 해결이 안되자 이 부부는 차 매뉴얼을 원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고 책자를 뒤적여 가던 부부는 방법을 찾아내 결국 충전기를 빼내는 데 성공했다. 함께 하이파이브하며 춤추듯 자기 차로 돌아가던 이 부부의 뒷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이가 빨리 가자고 칭얼대는데도 달래가며 오랜 시간 남을 도와주던 멋진 부부를 마음속 보물 창고에 소중히 담아놓고 그 마음을 닮으려 노력한다. 이들 외에도 그동안 생면 부지의 사람에게 받았던 너무 많은 도움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을 강한 나라로 이끌어 가는 파워는 바로 이런 천사들에게서 피어나는 힘이 원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곧 250세 생일을 맞는 미국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축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50개 주가 참여해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서 열리는 대규모 축제를 포함해 각 주, 각 도시와 카운티 별로 ‘그레이트 아메리카’ 축제가 올해 말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미국의 250년 생일을 함께 축하했으면 한다. 최근 일부 정치인으로 인해 국제사회로 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지만, 이것은 미국이 아니다. 많은 천사가 사는 미국은 여전히 아름답고 위대한 나라라고 굳게 믿는다. ‘해피 버스데이 아메리카!(Happy Birthday America!)’ 유이나 / 칼럼니스트무대와 시선 천사 나라 섬나라 카보 마켓 주차장 이번 월드컵
2026.07.02. 19:51
미국 건국(독립) 250주년은 여러모로 깊은 의미를 갖는다. 지금 미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더욱 생각이 깊어진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7월4일 독립기념일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서 ‘아메리카 250(America 250)’ 및 ‘프리덤 250(Freedom 250)’ 등 대규모 기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그 규모가 대단하다. 7월3일부터 9일까지 뉴욕 항에서 세계 각국의 범선이 참여하는 ‘세일4스(Sail4th 250)’가 개최되며, 워싱턴 D.C. 내셔널 몰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축제가 열리고, 독립선언문이 채택된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스홀, 뉴욕 자유의 여신상, 독립전쟁 전적지 등에서도 특별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또한, 미국 전역의 국립공원과 역사 유적 등 400곳이 건국 250주년 축하 무대로 꾸며진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등 대통령 4명의 얼굴을 새긴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 산에서는 독립기념일 전야에 대형 불꽃놀이가 열린다. 산불 위험과 원주민의 반대 등으로 중단됐다가 트럼프의 지시로 5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이 행사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참석 연설한다. 유명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디자인한 기념 우표와 기념주화도 발행된다. 한편, 미국 정부는 250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약 86만발의 폭죽을 약 40분간 쏘아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년의 50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다. 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서라고…. 이처럼 250주년 행사를 임기 내 최대 사업으로 준비해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뿐 아니라 주 정부와 기업까지 온 나라가 ‘애국 마케팅’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요란하고 화려한 행사들에 비해, 미국 국민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건국 250주년을 진정으로 기리는 일은 보여주기식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 건국 정신의 참 의미를 되살리고, 오늘의 현실을 냉철하게 성찰하는 일일 것이다. 갤럽이 지난 5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인의 77%가 건국의 아버지들이 오늘날의 미국에 실망할 것이라 응답했는데, 이는 지난 2013년과 2001년 조사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현재의 미국에 만족할 것이라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이러한 인식은 특정 정당, 연령, 소득, 인종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반면, 미국인의 69%는 미국이 건국 이념을 실현하는 데 적어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에는 생명, 자유, 행복 추구가 포함된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한 구절이다. 이런 기본 정신이 지금도 살아 있는가?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MAGA가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곧, 지금은 미국이 위대하지 않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세계 지도자의 권위도 영광도 잃어버렸다는 자백으로도 들린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의 ‘고맙고 선한 지도자’ 노릇을 하며, 막강한 영향력으로 세계 질서를 이끌고, 베푸는 강대국으로 존경도 받아왔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고 빠른 속도로 성장 발전한 것은 미국의 덕이 컸다. 누가 뭐래도, 미국은 우리에게는 큰 은혜를 입은 혈맹이다. 그런데 지금은? 물론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하지만…. 우리는 이 나라를 미국(美國) 즉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른다. 과연 지금도 아름다운가? 지금도 세계 평화를 지키는 믿음직한 ‘정의의 보안관’인가? 미국 건국 250주년을 축하하며 던지는 소박한 질문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미국 건국 건국 정신 독립기념일 전야 건국 250주년
2026.07.02. 19:49
평소 크루즈를 즐기던 친구에게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LA 샌피드로를 출발해 캐나다의 빅토리아를 거쳐 밴쿠버로 향하는 4박 5일 일정이 1인당 단돈 200달러라는 것이다. 게다가 50달러를 추가하면 발코니 객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행운까지 따랐다. 이 크루즈는 선박 이동 과정에서 판매하는 이른바 ‘리포지셔닝 크루즈’였다. 빈 배로 이동하느니 저렴하게라도 객실을 채워 운영비를 충당하려는 것이다. 최근 비싼 외식비를 생각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누리는 호사여서 미안할 정도였다. 며칠 동안 육지를 보지 못하고 바다만 달리는 지루함을 염려했으나 기우였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밤늦도록 둘러앉아 웃고 떠드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준비해 간 똑같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마스크 팩을 붙인 채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던 시간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부지런한 친구들 덕분에 아침에는 줌바댄스와 타이치를 배우고, 저녁에는 각종 공연을 즐겼다. 각자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친구 누군가는 친구와의 여행이 우정을 시험하는 무대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다정한 추억만 남았다.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나이가 들수록 친구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깨달았다. 함께 일상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큰 행복이었다. 첫 기항지인 빅토리아의 부차트 가든은 온통 꽃들의 축제였다. 형형색색의 튤립이 만개해 있었고 소박한 꽃이라 생각했던 철쭉도 다양한 색깔과 커다란 꽃송이로 감탄을 자아냈다. 꽃향기에 취해 걷는 내내 미소가 절로 나왔다. 강세인 미국 달러 덕분에 우버 비용과 입장료, 식비까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져 가성비를 따지는 은퇴자로서 마음이 흐뭇했다. 마침내 도착한 밴쿠버에서 뜻밖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모든 일정을 완벽하게 준비한 친구의 착각으로 호텔 예약이 누락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다. 퀸사이즈 침대 두 개가 있는 넓은 방 하나에서 넷이 함께 묵게 되니,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이 추억은 더 풍성해졌다. 마침 워킹홀리데이를 와 있던 한인 여학생을 만나 따뜻한 격려를 건네기도 했다. 최근 밴쿠버를 다녀온 친구 덕분에 전문 가이드 못지않은 알찬 안내를 받았다. 유명 식당과 카페를 찾았고, 도심 속 거대한 스탠리 파크를 걸었다.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에서는 아찔한 공중 산책을 즐겼다. 개스타운의 고풍스러운 증기 시계와 그랜빌 아일랜드의 예술가 거리도 인상적이었다. 여행경비를 따져보면 250달러 크루즈 비용은 사실 미끼였다. 5일간의 크루즈 팁, 호텔 숙박비, LA로 돌아오는 항공료까지 더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일상에는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 비록 미끼에 걸렸어도 함께 웃고 추억을 쌓은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값진 수확은 크루즈가 아닌 친구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달러짜리 미끼 친구들 덕분 친구 덕분 리포지셔닝 크루즈
2026.07.02. 19:48
더위가 시작되면 “왼종일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어 다음 달 전기료가 걱정된다” “덥기도 덥지만 습도가 높아 금세 꿉꿉해져 에어컨을 왼종일 틀어 놓을 수밖에 없다” 등과 같은 대화가 오가곤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동안’을 나타낼 때 이같이 ‘왼종일’이라 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온종일’이라고 써야 한다. ‘온’보다 ‘왼’이 강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온종일’을 ‘왼종일’이라고 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왼’이 아닌 ‘온’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왼종일’이라 쓰면 틀린 표현이 된다. 민요 ‘새타령’도 많은 사람이 “새가 날아든다. 왼갖 잡새가 날아든다”와 같이 부르곤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여러 가지의’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는 ‘왼갖’이 아닌 ‘온갖’이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온종일’을 ‘온 종일’과 같이 띄어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온’은 ‘전부의’ 또는 ‘모두의’라는 뜻을 지닌 관형사로서, ‘온 국민’ ‘온 세상’과 같이 띄어 쓰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종일’의 경우 오랜 세월에 걸쳐 ‘온’과 ‘종일’이 만나 한 단어처럼 쓰이면서 굳어져 합성어가 된 것으로 보아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쓴다. 정리하자면, ‘왼종일’과 ‘왼갖’은 ‘온종일’, ‘온갖’으로 고쳐 써야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2026.07.02. 19:47
2026년 6월 30일, 일리노이 주정부는 Cook County를 포함한 11개 카운티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올해 봄과 초여름 동안 토네이도, 폭풍, 홍수, 강풍 피해가 이어졌고, 주정부는 복구와 지원을 위해 추가 자원과 인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재난지역 선포라는 말은 행정적으로는 건조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무너진 집, 끊어진 전기, 물에 잠긴 도로, 병원으로 가지 못하는 환자, 그리고 “우리는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는가”라는 잔인한 질문이 숨어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유명한 질문이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달려가고 있다. 그대로 가면 선로 위의 다섯 사람이 죽는다. 하지만 선로의 방향을 바꾸면 옆 선로의 한 사람만 죽는다. 당신이 선로를 바꿀 수 있다면 방향을 바꿀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하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그 한 명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리고 그 한 명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답은 더 이상 쉽지 않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덮쳤다.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제방이 무너지고 도시가 물에 잠겼다. Memorial Medical Center에는 환자, 의료진, 직원, 그리고 직원들의 가족들까지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병원이 피난처였다. 그러나 곧 병원 자체가 고립된 섬이 되었다. 병원이 병원 구실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 깨끗한 물과 전기다. 신장투석을 해야 하는 환자에게는 깨끗한 물이 필요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중환자에게는 전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카트리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빼앗아 갔다.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에어컨도 멈췄고, 인공호흡기도 위태로워졌다. 병원 실내 온도는 100도 가까이 올라갔다. 화장실에는 오물이 쌓였고, 오랫동안 씻지 못한 사람들의 냄새가 병원 안에 퍼졌다. 병원은 더 이상 치료의 공간이라기보다, 구조를 기다리는 거대한 난파선 같았다. 처음 며칠 동안 의료진은 필사적으로 환자들을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헬기와 배가 오기는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구조는 느렸고,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원 안 사람들은 혹시 자신들이 영원히 구조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때 병원 안에서는 환자들을 등급으로 나누는 일이 벌어졌다. 혼자 걸을 수 있거나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는 1등급 환자는 먼저 구조될 수 있었다. 반대로 상태가 위중하거나, 스스로 움직일 수 없거나, 심폐소생술 거부 지시가 있는 3등급 환자들은 뒤로 밀렸다. 평상시라면 가장 위중한 환자부터 돌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당시 Memorial 병원에서는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 옮기기 쉬운 사람, 빨리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이 먼저 구조되었다.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뒤로 밀렸던 것이다. 재난 상황이 수습된 뒤 Memorial 병원에서는 45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후 일부 환자들에게 모르핀과 진정제 미다졸람이 과다 투여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Dr. Anna Pou와 간호사 두 명은 2급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2007년 대배심은 이들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형사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구조될 수 없는 위독한 환자들에게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안락사가 행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memorial 병원 환자 의료진 병원 실내
2026.07.02. 14:15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과 관련해 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원전 증설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김 장관은 어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호남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이 6.3GW 정도라며 “현재의 전력원을 추가로 조금만 보충하면 채울 수 있는 양”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현재 계획 수준에선 서남권의 기존 한빛원전과 재생에너지 등으로 감당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김 장관은 호남 반도체 단지가 현재 계획된 팹 4기 수준이 아니라 용인 클러스터급으로 규모가 커질 경우에는 원전 증설도 고민해 볼 영역이라고 했다. 이 역시 지역 수용성을 전제로 달았다. 전력 주무장관의 이런 인식은 반도체 업계의 판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반도체 업계는 단순히 전력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보다 전력 공급의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력은 안정적인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원전 확대와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 발전 추진 등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내세우지만, 재생에너지는 시간대와 자연환경에 따라 발전량이 제각각이다. 전력이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하는 반도체 산업에선 안심하고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선 기저 전원인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게 업계 요구의 핵심이다. 게다가 전력은 비단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각지에 계획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엔 18.4GW의 전력이 필요하고,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는 아직도 3GW를 확보하지 못했다. 다 합치면 원전 20기가 필요한 규모다. 정부는 국가의 명운을 건 사업이라며 이번 메가 클러스터 계획을 주도했다. 기업에는 위험이 따르는 대규모 투자를 서두르라 해놓고, 정작 정부가 책임져야 할 핵심 인프라 조성에 추상적이고 모호한 입장을 보이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사업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에너지 정책 기조를 전향적으로 수정하고, 주 52시간 근로 등 업계의 발목을 잡는 규제 해소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2026.07.02. 8:24
22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더불어민주당이 소수 야당의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제도까지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병도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 신청 및 유지 기준 강화와 패스트트랙 기간 단축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입법 독주를 대놓고 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다수 의석을 가졌다고 국회 운영의 룰마저 입맛대로 뜯어고치겠다는 발상은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횡포가 아닐 수 없다.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의 합법적인 입법 저지 수단으로 도입된 제도다. 몸싸움을 막고 소수당에 밤새워 토론하며 버틸 권리를 부여한 것인데, 시작 후 24시간이 지나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180석)의 동의로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무제한 토론은 고사하고 그저 단독 통과를 24시간 늦추는 수단으로만 기능하고 있다. 이마저도 민주당은 의사당에 나와 있는 의원 수가 재적 5분의 1 아래로 줄면 필리버스터를 멈추게 하는 방식으로 무력화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야당 시절 이 제도를 활용해 여론전을 벌였던 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다고 태도를 바꾼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민주당은 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이 처리까지 최장 330일이 걸리는 기간을 축소하겠다는 명분으로 민생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들고 있다. 하지만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한 마당에 야당의 제동 장치마저 무너뜨린다면 견제와 균형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은 충분한 토론과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이 전제될 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반대 의견을 제도적으로 억압하고 의석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은 패권주의일 뿐이다. 민주당이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내달리니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가 가능한 조작기소 특검법 등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수순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 아닌가. 우리 정치사는 오만과 독선이 민심의 역풍을 부른다는 것을 보여줘 왔다. 민주당이 늘 거대 여당이리라는 보장도 없는 만큼, 당장의 편의주의를 위해 의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시도를 거두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기 바란다.
2026.07.02. 8:22
지난달 29일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응원 구호가 나와 큰 파문이 일었다. 경기 중 배재고의 선수 일부가 상대인 광주제일고팀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를 연호하고 “탱크 데이”를 외쳤다는 것이다.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파문에 이은 것으로, 고교 야구 경기 도중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은 컸다. 이 사건으로 배재고 야구부는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유를 막론하고 상대를 조롱하거나 혐오성 발언을 하는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는 스포츠맨십을 저버린 것이기도 하다. 적절한 징계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국제 스포츠계에서도 차별과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은 엄격해지고 있다. 해서는 안 될 행동이지만 그렇다고 선수나 학생·학교를 대상으로 한 과도한 징계나 낙인 찍기 역시 문제를 증폭시킬 뿐이다. 학생들의 진학이나 진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6개월 출전 정지란 징계의 적정성은 다시 한번 검토해 봐야 한다. 더구나 미성년자인 학생 선수에 대한 무차별적인 신상털기가 이어지고, 배재고 정문 앞에 학교와 야구부를 규탄하는 근조 화환이 늘어서는 등의 사적 제재는 학생들이 외친 구호보다 조금도 더 나을 게 없는 잘못된 행동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비틀린 단면을 드러낸 축소판이다. 각종 이슈를 정쟁화해 진영과 지역 갈등이 격화하면서 절제와 배려의 시민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른들부터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으니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생각조차 못 했고, 학생들은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무비판적으로 은연중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이 달라지지 않으면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조롱과 비하의 응원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공식 경기에서 표출될 때까지 지도자와 학부모는 제 역할을 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학생 경기 과정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해법도 교육에 있다. 학생들의 잘못을 바로잡고, 이들이 건강하고 건전한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역사와 인권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한다. 이게 성숙한 사회의 대응이다.
2026.07.02. 8:20
세상 변화가 빠르다 보니 예기치 못한 일들이 현실로 되어 나타난다. AI는 이미 사람과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고, AI 스스로 자기 개선을 통해 ‘초지능’ 단계에 이르는 특이점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산업혁명보다 더한 문명사적 대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지금 인류는 진입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살아온 세상과 크게 다를 것이다. 주요국들의 분배 악화와 정치토양 변화는 지정학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첨단기술·무역 제재가 무기화 된 시대로 들어섰다. 이러한 기류들이 함께 뭉쳐지면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가격이 급등하여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들은 전례 없는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구조적 정체를 겪고 있던 한국경제에 예상치 못했던 단비다. 그러나 이것이 축복이 될지, 훗날 저주로 돌아올지는 지금 우리 하기에 달렸다. 반도체 초호황은 지나가는 단비 활용방식이 축복, 저주 나누게 돼 초과이익에 대한 과세 기금화해 미래 국가경쟁력 위해 사용해야 이미 많은 분들의 칼럼에서 언급되었듯이 네델란드의 경우 1959년 북해의 대규모 천연가스전 발견이란 횡재는 가스 수출과 외화유입 급증, 인플레, 임금상승, 길더화 강세, 제조업 쇠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며 ‘네델란드 병’으로 발전했다. 1970년대 북해에서 유전이 발견되자 노르웨이는 이를 교훈 삼아 막대한 석유수입을 국부펀드로 만들어 주로 해외에 투자해 현재와 미래세대가 그 과실을 나누도록 했다. 이 펀드는 지금도 2조달러 규모로 세계최대 국부펀드다. 오늘의 노르웨이 번영은 석유가 아니라 석유를 다룬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국도 1980년대 북해 석유수입이 크게 증가하자 마거렛 대처 정부는 이를 감세, 재정지출, 구조조정 비용으로 썼고, 파운드화가 크게 절상되며 제조업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그 결과 산업혁명 원조국인 영국은 제조업 쇠퇴와 금융중심 서비스경제로의 이동이 가속화되었다. 금년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을 합치면 6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후 내년에는 각각 800조원, 1000조원 이상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대미문의 규모다. HBM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한 2024년만 해도 이들의 합계 영업이익은 약 56조원, 지난 해에는 90조원 정도였다. AI 투자붐, 미국의 대중국 기술·무역제재, 두 기업의 투자와 혁신 성과, 국가적 지원이라는 기류들이 합쳐지며 갑자기 열대의 스콜 같은 폭발적 이익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행운의 폭우가 그리 오래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회를 어떻게 국가미래를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지금 국민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필자는 평상시 수준 이상의 기업이익에 대해서 다소 높은 법인세율을 적용해 여기서 나오는 세수는 일반재정지출로 사용하지 않고 ‘국가미래기금’화 할 것을 제언해 보고 싶다. 현재 국내기업의 세전이익이 3000억원 이상인 구간에는 25%의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각종 세제감면 등을 포함하면 기업에 따라 실효세율은 이보다 낮다. 여태까지 국내기업의 순이익이 50조원을 넘긴 경우는 드물었다. 10조원을 겨우 넘긴 기업도 현대차, 일부 금융지주회사 등 몇 되지 않는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약 50조원 규모에 이르렀다. 가령 세전이익이 50조원, 100조원 이상이 되는 구간에는 세율을 27%, 30%로 적용해 이 구간에서 나오는 세수는 전액 기금에 적립해 국가미래를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이익규모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는 법인세율 인상이라기 보다 한시적 초과이익세가 될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반도체특수 전망이 실현된다면 이 기금에 적립할 세수규모는 향후 3년간 수백 조원이 넘을 것이다. 이렇게 적립한 기금은 미래 한국을 위해 필요한 분야에 사용하면 좋겠다. 첫째,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바이오 등 첨단산업 연구개발투자를 통한 미래성장동력 확보, 둘째, 전력망, 용수, 산단 조성 등 첨단산업 인프라, 셋째, 이공계 인력양성과 청년세대 장학금, 넷째, 구조조정과 사회 안전망, 다섯째, 기초과학과 문예진흥을 위한 장기적 지원 등이 그 것이다. 이 기금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첨단기술연구소, 국제정세연구소를 만들어 차세대에 남겨주는 것도 뜻있는 일이다. 이는 시장경제원칙과 기업의 투자여력, 평상시 조세수입을 지키면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현재와 미래세대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방법이다. 또한 반도체 특수기의 유동성 증가로 인한 인플레와 부동산 과열을 막는 거시경제적 대책이 될 것이며, 과다한 금리인상 필요성을 막아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금융안정을 기하며 여타 제조업들의 쇠퇴를 막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삼전닉스’ 두 기업은 이를 통해 큰 ‘사업보국(事業報國)’을 하게 되는 것이다. AI 시대의 도래를 맞아 이제는 어차피 새로운 국가재정의 역할 모색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지금이 좋은 계기라 생각된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2026.07.02. 8:18
지난달 30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 열린 서남권 국민보고회의 가장 인상적인 참석자는 이근배 전남대 총장이었다. 800조원 규모의 ‘호남 반도체’ 소식에 그는 기뻐서 밤잠을 설쳤다며 “이제 우리 지역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일자리를 찾고 뿌리내리며 살 수 있겠단 희망이 생겼다”고 연신 감사를 표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광역시의 청년(19~34세) 순유출 인구 비율(2.5%)은 7대 특광역시 중 1위, 청년 고용률(49.9%)은 전국 17개 시·도 중 꼴찌다. 매년 5월 혹은 선거철에나 소환되는 도시, ‘전라디언’이라는 멸칭과 함께 혐오 대상이 되기 일쑤인 곳, 민주주의의 성지라지만 근로임금 수준은 전국 평균의 92%(2025년 292만6800원)에 그치는 광주가 반도체 투자 세례를 맞았다. 들뜬 지역 분위기와 달리 광주 밖에선 반론이 거세다. ‘왜 꼭 거기여야 하느냐’고. 이날 행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적 원리에 따른 기업의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간 차별과 설움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켜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 보상”이라고 했다. 여당 전당대회 때문이든,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 때문이든 호남 반도체의 배경은 정치적이다. 하지만 국가 주도 산업정책이 정치적이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대일청구권자금을 종잣돈 삼아 ‘영일만의 기적’을 만든 포항제철소, 부산·울산·경남에서 굴지의 주요 대기업이 집중 탄생한 배경 등을 살펴보면 한국의 지역 격차는 한국전쟁 이후 주류 정치 엘리트의 정치적 선택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 정권의 정책 의지와 무관한 진공 상태에서 기업 활동이 이뤄진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아내는 게 기업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모두 향후 시장 상황에 맞게 투자 속도나 규모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주목해야 할 건, 호남 반도체의 정치성보다도 광주의 실력이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용수·전력 문제보다 인재 유치, 즉 광주의 정주 여건 조성 역량에서 이 투자의 성패가 판가름날 수 있다. ‘경기도 평택이 반도체 구인 남방한계선’이라는 냉소에 광주는 답해야 한다. 수백조원 투자를 받을 광주는 남방한계선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인재를 끌어당기는 도시의 핵심 요소는 교육과 병원, 그리고 문화다. 일자리가 있어야 사람이 오고, 살 만해야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며 다시 인구가 는다. 이 뫼비우스의 띠가 선순환할지, 악순환할지는 지방 정부에 달렸다. 안타깝게도 이제까지의 광주는 이 지점에서 취약했다. 이번 6·3 지방선거 때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광주로 이전시키겠다고 했던 민형배(현 시장) 후보의 공약이 단적인 예다. 광주는 노무현 정부 때 7000억원을 지원받아 거대한 건축물(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지었지만, 개관 10년이 넘도록 그 안팎을 채울 예술가와 문화산업 생태계를 키우지 못했다. 수도권으로 모든 자원이 빨려들어간 마당에 광주라고 별 수 있겠나 싶지만, 이 공약의 문제는 그 게으름과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에 있다. 서울에서 한예종을 떼어와 간단히 해결하려 한 방식 말이다. 물론 광주의 잘못만은 아니다. 고도 성장기에 산업화에서 배제됐고, 지역 출신 기업가도 적다 보니 광주엔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적고 중산층도 얇다. 치열한 경쟁 없이 민주당 공천을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도시에서 경쟁력 있는 행정가가 길러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역 토건 세력과 행정이 얽히고설킨 구조가 어떻게 광주를 좀먹어 왔는지는 조귀동 작가의 『전라디언의 굴레』에 잘 나와 있다. 그러나 이제는 광주가 중앙정부의 시혜적 지원이 아닌 스스로의 실력으로 도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도시의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운영할 행정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민형배 시장의 광주가 그런 준비가 돼 있는지 5000만 명이 지켜보고 있다. 박수련 콘텐트3부국장 겸 기업연구부장 박수련([email protected])
2026.07.02. 8:16
일본의 작은 섬 미나미토리시마는 도쿄에서 1850㎞ 떨어져 있다. 둘레 6㎞ 남짓한 서태평양 외딴 섬이지만 일본은 이곳 주변 해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희토류가 대량 매장돼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2028년부터 본격 채굴이 목표다. 현실은 만만치 않다. 올해 시험 채굴에 성공했지만, 해저 6000m에서 진흙더미를 끌어올리는 일부터 난제다. 내년에는 하루 350t 규모의 해저 진흙을 건져 희토류 분리 가능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네오디뮴·디스프로슘 같은 희토류는 반도체·전기차·방산·로봇 산업에 필수적이다. 희토류 찾아 태평양 섬까지 뒤져 자원과 첨단 기술 자립이 곧 국력 한국도 더 치열한 생존 전략 필요 문제는 채굴과 정련 과정에서 배출되는 폐수 등 오염물질이다. 미국도 캘리포니아 마운틴 패스에 막대한 매장량을 갖고 있지만, 환경 규제 등으로 생산 확대에 제약을 받아왔다. 그 틈을 중국이 파고들었다. 1992년 덩샤오핑이 “중동엔 석유, 중국엔 희토류”라고 한 뒤 중국은 희토류를 전략 자원으로 키웠고, 이제는 희토류를 무기화하고 있다. 일본이 희토류 확보에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일본의 첨단 제조업과 안보 전략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피지컬 AI 시대가 본격화하면 반도체와 배터리, 로봇, 전기차, 방산 수요는 폭증할 수밖에 없다. 이때 희토류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산업 전체가 발목 잡힌다. 일본이 2022년 이후 경제안보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핵심광물 확보, 중요 기술 보호, 공급망 재편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제안보는 잠자던 일본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2012년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은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화·재정·구조개혁을 병행해왔다. 실질 성장률은 엔화 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여파로 여전히 1% 안팎에 머물지만, 경상 성장률은 최근 3년 연속 4~5%대를 기록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기력했던 ‘잃어버린 30년’의 일본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증시 밸류업과 임금 인상, 기업 지배구조 개선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그 마지막 퍼즐이 일본의 새 성장전략이다. ‘강한 일본’을 내건 일본 정부는 AI와 반도체, 정보통신, 방산, 우주항공, 자원·에너지, 양자 컴퓨팅 등 17개 전략 분야에 2040년까지 3500조원을 투입한다. 과거처럼 한산한 지방 도로를 깔거나 현금성 수당을 마구 뿌리지 않는다. 자원과 기술, 안보와 산업을 하나로 묶어 국가 경쟁력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갖춘 일본 기업에 정부 지원이 더해진다면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도 다시 전열을 갖추고 있다. 대만 TSMC의 구마모토 공장은 일본 반도체 생태계 재건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고, 라피더스는 내년부터 2나노급 시스템 반도체 양산을 개시한다.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가 최근 일본 시가총액 1위에 오른 것은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일본이 한때 한국과 대만에 반도체 주도권을 내주고 IT 혁명에서 뒤처졌지만, 경제안보의 압박은 오히려 국가적 결집을 일으키고 있다. 자원 확보와 첨단기술 자립을 함께 밀어붙이는 지금의 일본은 과거의 일본과 다르다. 우려스러운 점은 반도체 중심 전략에 의존하는 한국이 일본의 절치부심과 중국의 기술 굴기에 맞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은 국가가 방향을 정하고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속도를 낸다. 일본은 17개 전략 분야를 62개 세부 분야로 나눠 투자 계획까지 구체화했다. 위기의식이 큰 만큼 이 과정에서 정치적 논란은 없었다. 반면 한국은 3대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해 정쟁이 뜨겁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주도로 입지까지 선정했지만, 규제 해소를 비롯해 어떻게 기업을 뒷받침할 것인지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895조원 규모의 호남 반도체 투자를 선언했지만, 전력·용수·토지·인력 등을 뒷받침할 인프라와 제도 지원이 확고하지 않으면 계획은 현실화하기 어렵다. 일본의 목표 시점은 2040년이다. 중국이 ‘제조 2025’를 통해 제조 강국으로 도약한 데 이어 일본은 ‘성장전략 2040’에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한국도 속도전을 내세워 이재명 정부 임기 내 반도체 클러스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주 52시간 규제 등 제도 개선 없이는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 희토류와 반도체, AI와 양자기술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국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중국에 이어 일본까지 국가 전략을 다시 쓰고 있다. 이제 한국도 경제안보를 국가 전략의 중심에 놓고 생존 전략을 다시 써야 한다. 김동호([email protected])
2026.07.02. 8:14
한국 디지털 금융의 발전사와 남은 과제 클라우드·블록체인·인공지능(AI) 등 기술혁신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금융 서비스가 놀랍게 진화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친구에게 돈을 보내려면 계좌번호를 받아 적고, 은행에 직접 가서 송금하거나, 컴퓨터를 찾아 은행 웹사이트에 로그인하고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지금은 휴대폰 메신저나 결제 앱에서 받는 사람을 선택하고 지문이나 패턴 한 번이면 끝난다. 하나씩 확인해야 했던 은행·증권 계좌들, 가입한 사실조차 깜빡했던 보험금도 이제는 자산관리 앱 하나에서 전부 볼 수 있다. 한국은 실시간 결제 가장 많은 국가 오픈뱅킹·마이데이터도 비약적 발전 디도스 사태 이후 도입한 망분리 규제 AI·클라우드 등 혁신 활용에 큰 걸림돌 보안기술 키우고 금융기관 많은 노력 필요 공공부문 망분리 규제 완화도 속도 내야 디지털 금융은 지난 10여년 동안 급속히 성장해왔다. 2013~2015년은 정보기술(IT)과 금융의 융합이 처음 논의되고 핀테크 개념이 처음 등장한 태동기라 할 수 있다. 발전기인 2015~2017년은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폐지, 인터넷 은행 설립, 비대면 실명인증 도입 등이 핀테크와 금융산업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숙기인 2017~2019년에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이 제정되고 핀테크 사업예산이 마련되는 등 예산과 제도가 구축됐다. 2020~2023년은 고도화가 진행된 시기로 금융규제 샌드박스, 마이데이터 서비스, 오픈 뱅킹 플랫폼, 핀테크 혁신펀드 등이 도입됐다. 2024년부터는 AX(AI transformation), 즉 AI 전환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금융권 AI 플랫폼 구축, AI 가이드라인 정비, 망분리 규제 개선 등이 진행되고 있다. 국민의 일상 바꾼 간편 결제·송금 디지털 금융의 발전이 국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는 간편 결제와 간편 송금이다. 카드 계좌, 선불금 정보 등을 모바일에 저장하고 비밀번호, 생체인증, 단말 접촉 등으로 결제하는 간편 결제 서비스의 일평균 이용금액은 불과 6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그림 1).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우리의 2024년 1인당 실시간 결제 이용 빈도는 세계 2위, 결제 1건당 평균 금액은 세계 3위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실시간 결제를 이용하는 국가다. 모바일 충전금, 계좌이체를 기반으로 전화번호·SNS 등 수취인 정보로 송금하는 간편 송금도 6년 동안 4배 이상 증가해(그림 1) 2025년 평균 하루 742만 건, 1인당 월평균 여덟 차례를 기록했다. 또 다른 대표사례는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다. 오픈뱅킹이란 하나의 앱에서 여러 은행의 계좌를 조회하고 이체까지 할 수 있게 한 제도다. 한국은 금융결제망 개방을 통해 핀테크 기업들이 각 은행과 표준화된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방식으로 한 번에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오픈뱅킹 개념 자체는 영국이 2018년 먼저 시작했고 호주도 2019년부터 법제화했으나 확장속도가 느리며, 미국과 일본도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반면 국내 오픈뱅킹은 출범 2년 만에 순 가입자 3000만명, 순등록계좌 1억개를 달성하며 전 국민이 사용하는 핵심 금융 인프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은행을 넘어 증권·카드·보험 등 전 금융업권이 참여해 금융회사와 핀테크기업 모두 다양한 혁신서비스를 출시하는 공정한 생태계로서 금융산업의 혁신과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이러한 오픈뱅킹을 발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마이데이터다. 마이데이터란 여러 은행·카드사·보험사에 흩어져 있던 내 금융정보를 본인이 동의하면 하나의 앱으로 모아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2022년 1월 API 기반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전면 시행됐는데 2025년 12월 말 기준 가입자는 중복 포함 무려 1억 7949만 명, 일평균 API 전송 건수는 8억 5000만 건, 누적 1조 2417건에 이른다. 흩어진 본인 정보를 통합 관리하고 전체 자산 현황을 한눈에 파악하면 효율적인 금융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고 AI 분석을 통한 맞춤형 금융 상품 추천도 가능하다. 이렇듯 한국 디지털 금융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디지털 금융의 발전은 소비자 편의와 비용절감뿐 아니라, 빅테크·핀테크 등의 등장으로 금융권 혁신을 자극하고 경쟁을 촉진하며, 빅데이터와 AI 기반의 신용평가 등은 자본 배분의 효율을 높이고 금융포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데이터 경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으며, 실시간 결제·오픈뱅킹·마이데이터 같은 선진 인프라 자체가 국가의 디지털 경쟁력이 된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금융의 발전은 생산성 향상과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디지털 금융의 가장 중요한 발전 방향인 AX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규제가 있는데, 이는 바로 망분리 규제이다(그림 2). 망분리 규제란 금융기관·공공기관의 업무용 컴퓨터와 인터넷을 완전히 분리하도록 강제하는 보안 규제다. 냉전 시대 때 군사·정보 기관이 기밀 네트워크를 보호하기 위하여 시작한 개념으로, 사이버 공격 등을 막기 위해 도입되었다. 2003년 1월 25일 디도스(DDoS) 공격으로 인터넷 대란이 일어난 후 2007년 공공기관 망분리 규제가 도입되었다. 2013년 3월 20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이버 공격으로 농협·신한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 전산망이 마비되는 사고가 일어난 후 2014년 금융기관에도 망분리 규제가 도입되었다. AI 격차, 금융산업에선 더 커 이전에는 망분리 규제가 효과적인 규제라는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2017년 5월 12일 워너크라이 랜섬웨어가 150개국 20만여 대의 컴퓨터를 감염시키고 40억 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입히며 전 세계를 강타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권에서는 망분리 규제로 악성코드가 들어올 경로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디지털 금융이 더욱 발전하면서, 특히 AI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평가는 급변하였다. 망분리 규제로 인해 한국 금융기관은 AI·클라우드 등을 적극 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 보안을 위한 최고의 방패라고 여겼던 망분리 규제가 혁신에 대한 장벽이 된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AI를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시대에, AI를 자유롭게 쓰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생산성 차이는 상당할 것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 적용이 빠른 금융산업에서 그 격차는 더 크다. 세계화된 금융 시장에서, 외국 금융기관들은 AI를 자유롭게 활용하는데 한국만 제약이 크다면 그 경쟁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금융 당국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2024년 8월 13일 단계적으로 금융 회사의 생성형 AI 활용을 허용하고 클라우드와 같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Software as a Service) 이용 범위를 확대하며 연구개발 환경을 적극 개선한다는 내용의 금융분야 망분리 개선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2024년 11월 샌드박스를 통해 생성형 AI를 활용한 혁신금융 서비스를 지정하기 시작했고, 2026년 4월 일정한 보안 규율을 준수하면 금융회사가 내부 업무망에서 SaaS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망분리로 보안기술 수준 더 낮아져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고 향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사이버 보안기술 발전이 시급하다. 망분리 규제를 완화하려면 망분리 없이도 사이버 공격 등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그동안 망분리 자체로 보안이 유지되다보니 보안기술을 개발할 유인이 없어 그 수준이 낮아졌다는 문제가 있다. 금융 당국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자율보안 원칙 중심의 새로운 법과 체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고, 보안을 목적으로 AI와 SaaS를 활용하는 경우 망분리 규제를 긴급히 완화하여 ‘AI를 AI로 방어하는’ 고도화된 보안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10여년간 손대지 않았던 보안기술을 당장 개발, 적용하기 쉽지 않으므로 더욱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금융회사 자체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금융회사가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영·영업·개발·보안 시스템 등을 전면적으로 변경해야 하고, 이러한 총체적인 시스템 전환과 보안기술 개발, 적용에는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든다. 하지만 주식시장 활황, 지속적인 신용 증가 등으로 많은 수익을 거두고 있는 금융회사들이 현 상태에 안주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많은 금융회사가 AI 직접 개발·활용 대신 부분적으로 외주를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체계적인 시스템 전환이 어려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금융회사의 경쟁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공공 부문의 망분리 규제에 대해서도 숙고해봐야 한다. 공공 부문도 국가망보안체계(N²SF)를 바탕으로 데이터 중요도에 따른 차등 적용 등 완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좀 더 속도감 있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보와 기밀이 있는 부문에서는 망분리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모든 개인과 기업이 AI를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시대에 망분리 규제에 막혀 있는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2026.07.02. 8:12
토종 미디어 아티스트 박현기의 설치 작품 지난봄 개봉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뒤늦게 본 바로 다음날이었다. 옆자리 동료가 매일 야근하며 개막을 준비 중인 전시장에 들어가 보고 남몰래 깜짝 놀랐다. 전시 공간 여기저기에 돌이 나와 있었다. 체중계 위에 올라가 있는 돌, 정지용의 시를 배우고 있는 돌, 그리고 마치 떼창을 하는 군중처럼 하나의 마이크 주변으로 둥글게 모여 있는 수십 개의 돌들. 오사카에서 태어나 원폭 피해 귀국 초2 때 6·25, 전차 등 전쟁 풍경 그려 30대 초반 백남준 접하고 방향 전환 간절한 소망 담은 돌, 평생의 오브제 제자리뛰기 탈진 퍼포먼스 등 유명 죽기 몇 시간 전까지도 행사 걱정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돌처럼 생긴 외계 생명체 ‘로키’가 나온다. 라이언 고슬링이 분한 주인공과 우주에서 만나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존재이다. 영화 속에서 로키가 자신을 희생해 친구를 구하고 돌무덤처럼 쓰러져 있을 때 속으로 울컥한 사람이라면 이 전시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꽤 귀여운 구석이 있는 돌들이 등장한다. 전시의 제목은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주 전에 개막했다. 언급한 작품들은 각각 곽인식·김범 그리고 박현기의 작품들이다. 이 중에서도 돌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인물은 박현기이다. 조각의 재료로 썼다는 얘기는 아니다. 박현기는 돌에 나름의 존재감을 부여하고 때로는 의인화하기도 했다. 박현기는 백남준과 함께 한국 미디어 아트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국제무대에서 화려하게 활약한 백남준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이른바 국내파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구의 첨단 기술을 이용한 백남준과는 완전히 반대 지점에서 출발했다. 박현기는 1942년, 오사카의 가난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 살이 되던 해, 미국이 곧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해지자 가족들은 한국으로 도망쳐 대구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뛰어나고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차·군함·비행기 등 전쟁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는 미술부 활동을 하며 각종 미술대회에서 수상했다. 자연스레 예술가의 꿈을 품고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인테리어 생업 틈틈이 작업 그런데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이 쉽지 않았다. 그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어야 했고, 이를 계기로 대학 3학년 때 건축과로 전과했다. 당시 홍익대에 출강 중이던 유명 건축가 김수근의 영향도 있었지만, 졸업 후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적 부담감도 작용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고향 대구로 돌아가 인테리어 사업체를 운영했다. 현실적인 선택을 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돈을 벌면 곧바로 작품을 만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시에 참여했다. 1974년, 나이 서른두 살의 박현기는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전까지 평면과 설치를 주로 만들던 그는 이때부터 비디오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 박현기보다 열 살이 많았던 백남준은 당시 이미 전 세계를 무대 삼아 비디오 아트 거장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백남준이 선진국의 첨단 기술을 활용한 화려한 작업을 펼쳐냈다면, 박현기는 훨씬 더 소박하고 토속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정적이고 명상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는 주어진 환경조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현기가 한국의 전통문화에 심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현기는 학교에서 받은 교육이 서양으로부터 억지로 이식된 것이라는 자각이 있었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는 방학마다 대구 남평 문씨의 원로 학자를 찾아가 강론을 들었고, 귀향 후에는 시골의 향교와 사찰을 찾아다니며 선조들의 미의식을 탐구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새로운 전위미술의 형식에 동양의 자연관과 미학이 결합된 독특한 분위기를 띠었다. 전위의 최전선, 대구현대미술제 이끌어 1970년대의 대구는 서울을 능가하는 한국 전위 미술의 중심지였다. 고향에서 건축가로 자리 잡은 박현기는 이강소·최병소 등과 함께 당시 전위 미술의 최전선이었던 대구현대미술제를 이끌었으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연달아 발표했다. 그의 첫 영상 작품은 물에 비친 사물의 모습을 촬영한 ‘반영’ 시리즈였다. 특히 낙동강에 거울을 수직으로 세워 물결이 거울에 비치게 만든 후 실제 수면과 거울에 비친 장면을 함께 비디오에 담은 작품은 큰 주목을 받았다. 1979년과 80년에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파리 비엔날레에 연달아 초대되었다. 이때 출품한 ‘무제(TV 돌탑)’는 그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한국의 전통적인 돌탑 쌓기 형식을 빌려, 실제 돌과 화면에 돌이 등장하는 TV 수상기를 겹쳐서 쌓아 올린 설치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사연이 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초등학교 시절, 대구의 무태 고개를 넘는 피난민 행렬 속에서 어린 박현기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며 “돌 주워라”라는 말을 릴레이식으로 전달하고, 저마다 조그마한 돌을 준비해 들고 돌무더기에 정성스럽게 올려놓고 가는 것이었다. 바닥에 나뒹굴던 평범한 돌 하나가 인간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소중한 존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 기억의 강렬함 때문인지, 돌은 그에게 평생 특별한 오브제였다. 특히 서구식 교육이 ‘미신타파’라는 말로 배척하려 한 우리의 민간 신앙과 관련된다는 점이 그에게는 오히려 매혹적이었다. “돌이란 태고의 시간과 공간을 포용하는 자연이다. 돌 작업은 자신을 표현하고 서구과학의 한계를 느낀 우리 입장과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수십 개의 돌 사이 나체 퍼포먼스 이런 그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1983년 대구 수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이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 재현된 것이 바로 당시의 설치 장면이다. 이때 박현기는 수십 개의 돌을 전시장 바닥에 늘어놓고 그 사이를 나체로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를 행했다. 등에는 ‘I am not a stone(나는 돌이 아니다)’, 가슴에는 ‘Stone and so forth(돌 그리고 기타 등등)’라고 적은 채 돌을 들거나 그 위에 앉는 등의 행위였다. 자신의 몸을 통해 돌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잠시나마 흩뜨리는 작품이었다. 한편 돌들이 깔려 있는 전시장 한쪽에는 스피커가 놓여 있었고 천장에는 마이크가 매달려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길에서 녹음한 거리의 소음이 흘러나왔고, 마이크에서는 당시 갤러리의 나무 바닥을 밟는 관람객의 발소리가 증폭돼 전시장에 울려 퍼졌다. 이 소리를 마치 돌들이 듣고 있는 것처럼 돌 하나에 헤드폰을 씌워 놓기도 했다. 결국 박현기에게 돌은 자연이자 자연이 되고 싶은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귀 기울여 듣고 내면화하는 존재이기도 했던 것 같다. 박현기는 독특한 퍼포먼스로도 유명한데, 필자는 제자리뛰기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을 가장 좋아한다. 작가가 똑바로 서서 위아래로 뛰는 동작을 반복하는 지극히 단순한 영상이다. 두발로 땅을 힘껏 구르면서 시작되지만 2분 47초 만에 탈진 상태가 되어 주저앉는 모습으로 허무하게 끝난다. 그런데 무의미한 제자리뛰기를 하다가 점차 힘이 빠져나가는 과정이 묘하게 감동적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두 주인공은 각자의 행성을 구해야 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우주에 내던져진 존재들이다. 사실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떤 상황 속에 던져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연달아 발생한다. 기력이 다할 때까지 평생 제자리뛰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박현기에 대한 여러 기록을 읽어보면 그는 참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57세에 갑작스레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프랑스 니스 시립미술관 초대전과 광주 비엔날레 기획 준비로 바쁜 와중이었다. 그런데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까지도 자신이 기획위원을 맡은 행사를 걱정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분명 삶의 허무와 무의미에 대한 관조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예술에 그토록 열정을 바친 원동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삶이 무의미 속에 침잠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삶의 허무를 견딜 수 없어서 무엇이든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이렇게 공허한 질문들을 떠올리다 보니 작품 속 돌들이 조금 달라 보인다. 말없이 단단하고 무거운 돌들은 왠지 현답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어리석은 질문은 무심하게 넘기는 담대함이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답이 없는 문제들로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무의미한 제자리뛰기를 하며 소진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박현기도 자꾸 돌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2026.07.02. 8:10
참외는 수박과 더불어 여름철 대표 과일이다. 영문명에 멜론이 공통으로 들어간다. 영어로 워터 멜론인 수박은 세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코리안 멜론인 참외는 한국 특산이다. 전 세계 참외의 99.9%가 한국산이다. 참외의 인기가 해외에서 높아지고 있다. 2022년 61t이던 대일본 수출이 지난해 271t으로 늘었다. 올해는 4월까지 99t이다. 미국 대형마트에서도 한국산 참외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인기의 또 다른 증거는 관련 소셜미디어 콘텐트 급증이다. ‘#チャメ(차메)’ ‘#chamoe’로 검색하면 K참외 콘텐트가 쏟아진다. 참외의 조상인 야생종 멜론은 서양에서 멜론, 동양에서 참외로 분화했다. 한반도는 삼한시대 무렵 유입된 거로 추정한다. 2000년 전 진한 무덤에서 참외 씨가 출토됐다. 한자어로 호과(胡瓜)인 오이와 대비해 진과(眞瓜)로 쓴 전통 참외는 초록색 얼룩무늬 개구리참외다. 일본도 그랬다. 지금의 일본 기후현에 위치했던 마쿠와 마을은 12세기 참외 명산지였다. 일본 전통 참외 이름이 마쿠와 마을에서 나는 오이라는 뜻의 마쿠와우리(真桑瓜)인 이유다. 개항 후 서양에서 유입된 머스크멜론 등에 마쿠와우리가 밀렸다. 1936년 일본 나라현 농업시험장이 마쿠와우리를 개량해 당도 높고 식감 좋은 새 품종을 내놨다. 긴센(銀泉) 참외다. 오늘날 노란색 참외의 원형이다. 1950년대에 은천 참외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들어와 신은천 참외(70년대), 금싸라기 참외(80년대)로 개량됐다. 이제는 K푸드 인기를 등에 업고 역수출되는 상황이다. 참외를 보니 쏙 빼닮은 다른 뭔가가 떠오른다. 그래, 반도체다. 1947년 미국 AT&T가 발명한 트랜지스터 기술은 야생종 멜론처럼 전 세계로 퍼졌다. 전후 폐허에서 재기를 모색하던 일본이 기술을 받아들여 전자산업을 부흥시켰다. 마쿠와우리가 자리 잡던 모습 같다. 미국산에 맞서 자체 기술을 키웠던 일본 산업계 상황은 긴센 참외 육종과 닮은꼴이다. 그리고 일본 기술을 들여와 오늘날 반도체 최강국으로 우뚝 선 모습에서 긴센 참외로 K참외를 키워낸 한국을 본다. 참외가 반도체이고 반도체가 참외다. 장혜수([email protected])
2026.07.02. 8:08
지난달 26일 벨기에 브뤼셀의 플라지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김세현(19)이 마지막 앙코르곡을 시작했다(사진). 재즈풍의 샹송으로 유명한 ‘4월, 파리에서’. 그의 연주는 원곡의 언어인 프랑스어처럼 유연하고 자유로웠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 지역에서 김세현은 이렇게 벨기에 데뷔 공연을 마쳤다. 파리 롱티보에서 우승한 김세현 우아한 포레 해석, 잇단 러브콜 19세 연주자의 원대한 미래 예고 공연 전체가 프랑스 음악에 보내는 헌사와도 같았다. 프랑스의 대표적 작곡가인 가브리엘 포레의 작품으로 시작했고, 파리에 오래 머물렀고 거기에서 세상을 떠난 작곡가 쇼팽으로 끝났다. 두 작곡가의 서로 다른 뱃노래를 나란히 배치한 프로그램 또한 흥미로웠다. 김세현은 프랑스가 사랑에 빠진 피아니스트다. 한국보다 프랑스가 먼저 알아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파리에서 롱티보 콩쿠르를 우승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불과 17세였던 김세현에 반한 심사위원들은 2위 자리를 비우며 압도적 1위를 인정했다. 그의 이력은 화려한 프랑스풍으로 채워지고 있다. 파리의 개선문, 베르사유 궁전, 에펠탑, 루이뷔통 재단, 앵발리드에서 연주했고 프랑스의 대표적 피아노 축제인 라 로크 당테롱에도 초청됐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프랑스도 유럽도 아닌 미국 유학파라는 사실.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며 하버드 대학,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복수 학위 과정에 재학 중인 이 피아니스트에게 프랑스가 러브콜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지난해 라 로크 당테롱 축제의 독주회에 대해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는 “터치가 우아하며 프레이징의 뉘앙스는 무한하다”라는 찬사를 보냈다. 여기에 대한 김세현의 답가 또한 지극히 프랑스적이다. 지난해 파리의 롱티보 콩쿠르에 참가할 때부터 “센 강변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참가를 결심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의 ‘숨은 보석’과 같은 작곡가 포레의 작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지만 진지하게 다루는 피아니스트가 많지는 않았던 음악이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라는 편견으로 다소 손해를 보는 작곡가이지만, 실제로 그의 음악은 낭만주의와 현대를 연결하고 있다. 김세현은 “스승의 영향”이라며 포레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그의 작품을 메인 연주곡으로 삼았다. 포레와 쇼팽을 엮어 독주회 프로그램을 구성했고, 두 작곡가의 작품으로 첫번째 음반(워너 클래식스)을 9월 발매하고 한국 독주회도 연다. 그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배우고 있는 당타이손은 포레의 작품을 주요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피아니스트다. 198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며 쇼팽의 연주 비중이 압도적이지만 포레의 세계 또한 재해석해 왔다. 김세현은 “또 다른 스승인 피아니스트 신수정·백혜선 선생님에게는 독일 음악의 정수를 배웠고, 지금은 무게감이 보다 적고, 또 자유로운 프랑스 음악을 탐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전승기념일에 개선문에서 쇼팽의 녹턴을, 혁명기념일에 에펠탑에서는 포레의 즉흥곡 등을 연주했다. 프랑스 음악에 대해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말처럼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음악을 꿈꾸며 연주한다”고 했다. 프랑스 음악의 뉘앙스는 어렵다. 실체가 없는 향기처럼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듯하고, 음색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이날 공연에서 김세현은 정공법을 택했다. 페달을 조절하고 손끝을 단단하게 하면서 소리를 오히려 명료하게 만들어냈고, 깨끗하고 영롱한 프랑스 음악을 들려줬다. “더 또렷하고 싶었다”고 했고 청중은 그의 해석에 기립 박수로 답했다. 9월 나오는 앨범 중에서 먼저 공개된 두 곡에 대한 해석도 우아하다. 포레의 뱃노래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음악의 진행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감정 표현은 지나치거나 덜하지 않다. 김세현의 프랑스 일정은 계속된다. 여름에는 몽펠리에·노앙·낭트의 무대에 서고 라 로크 당테롱의 축제 무대에도 다시 선다. 파리에서는 매년 독주회를 예고하고 있다. 유럽을 순회하는 방학이 끝나면 하버드 대학의 세번째 학기로 영문학 공부를 계속한다. 지휘자 정명훈과 도쿄 필하모닉,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협연 무대에도 오른다. 김세현은 최근 정명훈 지휘자가 계속해서 선택하는 협연자다. 10대 끝자락에 있는 피아니스트의 미래가 아득할 정도로 원대하다. 김호정([email protected])
2026.07.02. 8:06
지난 5월, AI 산업의 전장이 바뀌는 신호가 나왔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각자 AX, 즉 ‘AI를 통한 기업 운영 혁신’ 사업을 본격화하며, 경쟁의 초점을 ‘가장 큰 모델’에서 ‘가장 잘 쓰이는 AI’로 옮겼다. 지난 몇 년간 경쟁을 지배한 질문은 “누가 가장 강력한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드는가”였다. 이제 질문이 바뀐다. “누가 AI를 기업과 국가의 실제 운영 체계 안에 심을 수 있는가.” 이때 진짜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다. 방산·제조·의료·금융·행정 분야에서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AI 성능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핵심 데이터가 경쟁자의 지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다. 반도체 산업의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종합 반도체 기업들(IDM)이 TSMC를 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한 기술 격차 때문만이 아니었다. 고객들은 자신의 설계 자산을 경쟁사가 활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TSMC는 생산 능력이 아니라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신뢰로 승부했다. 미래의 승자는 고객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하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 데이터를 맡길 수 있는 기업이다. 데이터와 모델 운영을 분리하고, 고객이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신뢰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AX는 데이터 위에 LLM를 올리는 단순 작업이 아니다. 데이터의 출처와 책임 소재가 추적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AI가 활용할 지식이 아니라 정보 더미일 뿐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AX 운영 레이어’다. 즉, 기존 시스템과 AI를 연결해주고 데이터의 권한을 관리하며 결과를 검증하는 AX 운영 플랫폼이다. AX는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과 국가의 판단과 움직임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다. 역설적으로 산업화가 깊은 국가일수록 AX는 더 어렵다. 제조 설비, 공급망, 의료 기록, 금융 거래, 행정 문서는 막대한 자산이지만 동시에 복잡한 책임 구조를 가진 레거시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더 정교한 통제 체계가 필요하다. 이 관점에서 ‘소버린(sovereign) AI’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서버가 국내에 있고 현지 언어 모델을 사용한다고 해서 주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진짜 주권은 누가 데이터를 통제하는가, 누가 모델을 선택하고 교체할 수 있는가, 그리고 AI의 판단에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가에 달려 있다. 주권은 선언이 아니라 통제권의 축적이다. 앞으로 AI 패권은 모델의 크기가 아니라 통제권의 깊이에서 갈린다. 자신의 데이터와 의사결정 체계를 통제하면서 AI를 운영 시스템 안에 심은 기업과 국가가 승자가 될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모빌리티학부 및 미래자동차석사과정 전임교수
2026.07.02. 8:04
조세르는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파라오다. 카세켐위의 뒤를 이어 중앙집권 체제를 사실상 완성했고, 이집트 남쪽 경계를 제1 급류 지역까지 확장시켰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피라미드의 건설이다. 이집트 역사 속 최초의 피라미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4왕조 시대 피라미드들과는 다르게 계단식이긴 했지만, 최초의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다. 피라미드의 규모 역시 압도적이었다. 높이 62m, 네 밑변은 125×109m에 이른다. 높이 100m가 넘는 훗날 4왕조의 피라미드들보다는 작지만, 충분히 거대하다. 중앙집권 체제 확립과 정치적 안정, 대규모 노동력을 조직할 수 있는 행정 능력 등 국가역량이 없었다면 건축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 조세르가 피라미드라는 새로운 형식의 왕묘를 선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후대의 문헌들을 근거로, 하늘로 오르고자 하는 파라오의 욕망을 물리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사실 계단식 피라미드는 처음부터 피라미드로 설계되지도 않았다. 고고학자들은, 이 건축물이 적어도 5차례 이상의 증축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6단 피라미드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세르의 무덤은 애초에는 이전 초기왕조 시대 왕묘 형식인 마스터바로 설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마스터바 구조물의 측면이 확장되었고, 이후 여러 개의 마스터바를 층층이 쌓은 4단의 계단식 피라미드 구조로 바뀌었다. 여기에 다시 증축이 이루어져 최종적으로 6단의 피라미드가 완성된 것이다. 궁정 내에서 새로운 왕권 개념과 사후 세계관에 관한 토론과 논쟁, 이데올로기적 선택과 건축적 결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세르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에서 지어진 최초의 석재 건축물이기도 하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피라미드 시대의 시작을 알린 건축사의 기념비였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한양대 겸임교수
2026.07.02. 8:02
LA인근 글렌데일에서 발생한 초등학생들의 한인 비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이들은 같은 학교 한국어 이중언어반(DLI) 학생들을 향해 눈을 찢는 시늉을 하며 “한국인은 나가라”는 등의 폭언을 했다. 아무리 철부지 초등학생들이라 해도 도를 넘어선 행동이다. 이들은 당연히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학교 측은 정학 등의 징계를 했다고 밝혔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피해 학생들에게 직접 사과토록 하고, 학부모 면담도 진행해야 한다. 아직 자아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초등학생이 인종 혐오 인식을 갖게 된 데는 부모나 주변인의 영향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성인이 된 후에도 인종적 편견을 갖지 않도록 인식 자체를 바꿔 놓아야 한다. 특히 글렌데일은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이번 사태의 파문이 더 크다. 해당 학교와 교육구 측은 즉시 재발 방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일단 발등의 불만 끄고 보자’는 식의 땜질 처방은 곤란하다. 학생들이 인종적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사법 기관은 인종 혐오 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가중 처벌을 원칙으로 한다. 그만큼 인종 혐오 행위를 심각한 범죄로 분류한다는 의미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서 인종 혐오는 공동체의 기반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공론화되고 그나마 빠르게 조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인 학부모들의 조직적인 대응 덕분이다. 한인 학부모 162명이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학교 측에 조사를 촉구한 결과다. 한 사람보다는 열 사람의 목소리가 훨씬 울림이 크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부당한 대우에는 힘을 합해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 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인 사회가 나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사설 초등학생 한인 초등학생 처벌 한인 비하 한인 학부모들
2026.07.01. 19:15
LA한인축제재단 이사회의 분란 이 끝나지 않고 있다. 최근 가주 항소법원이 2024년 제명된 이사 3명의 복귀를 허용한 1심 판결의 유지 결정을 내렸지만, 기존 이사회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주 대법원 상고 계획까지 밝혔다. 법정 공방을 지속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우선 이 일이 주 대법원까지 갈만한 사안인지 의문이다. 축제재단은 LA한인축제를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봉사단체다. 이런 단체의 이사 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법정까지 간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인데 주 대법원의 판단까지 받겠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혹여 축제재단 이사직에 무슨 큰 이권이라도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당장 우려되는 것이 올해 축제다. 10월 초 개최 예정이라 준비 기간이 불과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서 이사회의 분란은 큰 위험 요소다. 신속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양측 모두 본인들이 행사 주체라고 주장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준비 부실은 물론, 행사 개최마저 불투명해질 우려가 있다. 축제재단 이사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축제의 주인은 축제재단이 아니라 한인 사회라는 사실이다. 한인들로부터 외면받는 ‘한인 축제’는 의미가 없다. 축제재단은 행사 주관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볼썽사나운 분란은 한인 사회의 분노 지수만 높이고 있다. 양 측은 신속히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더는 법원의 개입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지만 해법은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 당연히 감정은 뒤로 하고 , 합리성을 앞세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축제를 발전시키고 축제재단을 살리는 길이다. 무용론이 고개를 들기 전에.사설 la축제재단 이사회 la한인축제재단 이사회 la축제재단 이사회 기존 이사회
2026.07.01.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