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역사에서 대논쟁이라고 하면 은하와 우주에 관한 논쟁을 말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경제, 문화, 과학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중 과학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은 중대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에드윈 허블이 대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하룻밤 사이에 우주의 규모를 엄청나게 늘려 놓은 일이다.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은하와 우주라는 말은 구별 없이 쓰였는데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가 우주 전체라고 생각할 때였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증명할 수 없어서 숨을 죽이고 있었고 그 대표적인 사람이 히버 커티스였다. 커티스는 우리 은하 바깥에도 다른 은하가 있으며 이것을 섬 우주(Island Universe)라고 했다. 섬 우주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처음 썼던 말로 그의 시대를 앞선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1920년 스미소니언 박물관 강당에서 토론회가 열렸는데 이를 섀플리-커티스의 대논쟁이라고 한다. 커티스는 우리 은하 바깥에도 섬 우주처럼 존재하는 은하가 있다고 했지만, 섀플리는 우리의 은하가 바로 우주 전체라고 생각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바로 에드윈 허블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호사가 되었으나 천문학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시카고대학에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관측 장비가 좋아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캘리포니아주 LA 근교의 윌슨산 천문대에 가서 일하려고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져 참전하느라 미루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의 원대로 윌슨산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직속 상사가 바로 할로 섀플리였고 그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다투었는데 세상에는 까닭 없이 미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섀플리는 우리 은하 속 태양계의 위치를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빅뱅 이론을 주창한 벨기에의 가톨릭 신부였던 조르주 르메트르의 지도 교수를 했고, 피는 못 속이는지 최근에 그의 아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섀플리는 평화주의자였지만, 허블은 양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으며 영국에서 기껏 몇 년 유학했음에도 영국식 악센트를 썼고 시건방지게 보이는 파이프 담뱃대를 물고 다니면서 사사건건 섀플리와 충돌했다. 직장 상사였던 섀플리는 허블에게 실내에서는 담배 피우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허블은 듣지 않았다. 다행히 2년도 안 돼서 섀플리가 하버드 천문대로 자리를 옮기자 그들의 악연은 끝난 것 같았다. 당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힘들었던 때였는데도 헨리에타 리빗이란 여자가 변광성을 발견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녀는 변광성의 특징을 이용해서 지구에서부터 그 별까지의 거리를 구하는 법을 알아냈다. 허블은 이 법칙을 이용해서 당시는 우리 은하에 속했다고 생각하던 안드로메다 성운 속 변광성까지의 거리를 구했고,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보다 훨씬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몇 번 더 확인한 다음, 지난날 상사였던 섀플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허블의 편지를 본 섀플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편지가 내 우주를 깨버렸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허블은 외부 은하의 존재를 밝혔고, 은하끼리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자 시간을 역추적하여 모든 것이 시작했을 때를 상상했다. 바로 빅뱅의 순간이었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은하가 우주 외부 은하 우리 은하
2026.06.05. 14:27
━ 환율·물가·금리 ‘3고’에 증시·부동산 불안 ━ 취약층·자영업자 직격하며 ‘K자 양극화’ 심화 ━ 선거 없는 2년, 미뤄 놓은 구조개혁 속도 내야 6·3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면서 ‘민생 청구서’들이 날아들고 있다. 물가·환율·금리의 ‘3고(高)’가 본격화하는 데다 증시는 변동성을 키우고 있고, 수도권 주택시장의 불안도 여전하다. 반도체 수출이 만들어 낸 화려한 지표에도 ‘K자 양극화’ 심화에 취약층인 청년과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구조개혁 숙제들도 선거 뒤로 미뤄진 채 첩첩이 쌓여있다. 하나같이 쾌도난마식으로 단박에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여·야·정은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을 겸허히 받들어 협치를 통해 난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당장 발등의 불은 물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2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폭(3.1%)으로 올랐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앞당겨 시행하며 가격을 눌러왔는데, 이런 착시효과를 걷어내면 실제 물가 상황은 더 심각했을 것이다. 심상치 않은 물가 움직임에 지난주 한국은행은 7월 기준금리 인상을 강력하게 예고했다. 시중은행의 5년 고정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이미 7%대까지 올랐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가계 소비는 위축된다. 물가 걱정을 더 키우는 건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환율이다.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매도세가 연일 이어지며 어제 환율은 장중 달러당 1540원대까지 올라섰다. 물론 당국자들의 설명처럼 고환율이라고 곧 경제 위기는 아니고, 외환 수급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환율이 한 나라의 경제 체질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게다가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올려 해외 원자재를 많이 조달하는 기업의 제조원가를 높이고 국내 물가를 더 불안하게 한다. 부풀어 오른 자산시장의 위험관리도 필요하다. 반도체발 랠리에 코스피 9000선 문턱까지 치솟았던 증시도 선거 이후 하락세를 보이며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불안도 여전하다. 수도권 주택 매매가격 상승에 더해 규제 일변도 대책에 씨가 마른 전셋값까지 무섭게 뛰면서 무주택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반도체 호황과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자는 이를 ‘성공의 비용’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성공의 과실을 거두는 계층과 비용의 부담만 짊어져야 하는 계층이 뚜렷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3고의 타격은 특히 우리 경제의 약자인 서민·자영업자와 청년층에 집중된다. 1분기 저소득층의 필수 생계비 부담은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AI(인공지능) 확산의 직격탄까지 맞은 청년 고용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기간인 24개월째 하락 중이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중앙정부는 다소 안이했던 경제 인식을 바로잡고, 소모성 재정 투입도 자제해야 한다. 또 표심을 얻기 위해 지역화폐 등 현금성 복지를 내걸었던 당선자들도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고물가를 심화시키는 공약은 깨끗이 포기하기 바란다. 선거에 밀려있었던 민생 입법과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반도체 호황은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불확실하지만,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예고된 미래다. 추세를 돌려놓기 위해선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와 함께 과감한 규제개혁,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개혁, 교육제도 개혁 등이 필수적이다. 마침 2028년 총선까지 향후 2년간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 반도체 초과세수에 재원 걱정도 덜었다. 또다시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26.06.05. 8:35
학점도, 자격증도, 성과 수치도 나무랄 데 없다. 그런데 해마다 승진 명단에 이름이 없다.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말은 늘 비슷하다. “리더십이 좀 더 필요해요.” 그 리더십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차별이라는 증거를 손에 쥘 수 없으니 항의할 수도 없다. 좌절을 삭이고 다시 일 년을 버틴다. 미국 직장에서 한인 청년들이 되풀이하는 장면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학계는 이것을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라 부른다. 아시아계는 대졸 인력의 12%를 차지하지만 경영진 비율은 2%에 그치며, 임원 승진율은 백인 남성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Ascend Foundation, 2020). 이 장벽은 실력이 아니라 문화 코드로 작동한다. 경청, 겸손, 절제, 가정과 교회에서 덕목으로 배운 것들이 직장에서는 약점으로 번역된다. 퇴근 후 해피아워, 주말 골프, 복도의 짧은 농담. 이 비공식 관계망의 총합이 ‘리더십 잠재력’으로 환산되는 자리에, 신앙 때문에 그 바깥에 머무는 청년들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놓친 채 경쟁을 시작한다. 그런데 불편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자랑해 온 아시아계 성공 신화가, 이 천장을 오히려 보이지 않게 만들어 온 것은 아닌가. ‘아시아계는 잘 살잖아요’라는 인식은 차별의 현실을 덮고, 벽 앞에 선 청년에게는 ‘네가 더 노력하면 된다’는 침묵의 압박을 가한다. 성공 신화는 개인의 영광이기 전에, 구조적 불평등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서사 장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박수를 보낸 그 성공담이 정작 다음 세대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 더 불편한 질문이 있다. 교회는 이 청년들에게 정말 다른 공동체였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열심히 하면 된다’, ‘기도하면 길이 열린다’를 가르쳐 왔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구조적 불평등을 읽는 언어 대신, 그 앞에서 침묵하는 미덕만 훈련시킨 것은 아닌가. 대나무 천장은 직장에만 있지 않다. 청년의 목소리가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는 당회와 제직회 안에도 그 벽은 존재한다. 주류 사회의 문화 코드를 비판하기 전에, 공동체 안의 위계 코드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 바깥의 벽을 허물자고 말하는 이가 안의 벽 앞에서는 침묵한다면, 그 말은 위선이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최고 성적으로 엘리트 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제국은 사자굴로 응답했다. 그가 살아남은 것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은 성공 공식이 아니다. 구조의 압력 앞에서 공동체를 붙드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본문을 ‘저들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는 설교로만 소비할 때, 우리는 다니엘을 또 하나의 성공 신화로 만들고 만다. 그것은 본문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배반이다. 대나무 천장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뚫리지 않는다. 교회가 응답하려면 설교 너머로 나아가야 한다. 멘토링의 정례화, 직종별 한인 네트워크, 인터뷰 코칭, 주류의 비공식 관계망에 함께 진입할 플랫폼을 공동체가 실제로 만들어야 한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 나온 것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동체 없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교회 안의 청년이 지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를. 벽을 넘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그 벽이 우리 안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먼저다. 이상명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성서로 세상 읽기 아시아계 성공 대나무 천장 한인 청년들
2026.06.04. 20:50
유월이 오면, 우리 집안에는 한 소년이 먼저 떠오른다. 빛바랜 사진 한장 속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그리움이 고여 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아버지는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책가방 대신 총을 들고 전장으로 나서야 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시절, 펜을 쥐어야 할 손으로 총을 들어야 했던 열여덟 소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큰아버지가 속한 부대는 치열하게 남하하던 중공군에 맞서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처절한 고지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포성으로 뒤흔들리던 1951년 6월, 큰아버지는 그날의 포화 속으로 청춘을 남긴 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의 잔인함은 남겨진 이들에게 더 가혹한 상처를 남겼다. 전황이 너무도 급박했던 탓에 그의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다. 사망통지서 한장만을 손에 쥔 채, 자식의 뼈 한 조각 찾지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들의 이름 석 자를 가슴 깊이 묻고 살아가야 했다. 기다려도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보낸 세월은 두 분에게 또 다른 전쟁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유월이 오면 할아버지는 유난히 말씀이 없으셨고 할머니의 눈가에는 늘 물기가 어려 있었지만, 그때는 그 이유를 미처 알지 못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젖은 눈망울 뒤에 아직도 마르지 않은 전쟁의 상흔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휴전선 어느 고지의 차가운 흙 속에 홀로 남겨졌을 아들을 가슴에 품은 채, 두 분은 평생을 견뎌 오셨다. 그것은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 이 땅의 수많은 부모가 감당해야 했던 전쟁의 가장 크고도 쓸쓸한 대가였다. 온 나라가 눈물로 출렁이던 해가 있었다. 1983년 여름, 밤낮없이 이어지던 TV 프로그램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통해 ‘잃어버린 30년’의 애달픈 선율이 온 거리에 울려 퍼지던 때였다. 사망통지서를 받았으면서도 할머니는 어쩌면 아들이 어느 곳에서 기억을 잃은 채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끝내 놓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름과 군번을 신청해 두고, 밤새 화면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끝내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헤어진 가족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모습은, 할머니에게 오래전부터 멈춰 있던 자신의 시간이 되살아난 듯했다. 그것은 죽는 날까지도 자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마지막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내 품의 자식들이 어느새 그때 큰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지나고 나서야 조부모님의 아픔이 비로소 내 가슴으로 건너왔다. 털끝 하나만 다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앞에 어린 자식을 내보내야 했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아들을 기다리며 흘려보낸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자식을 키워낸 시간의 무게만큼, 두 분이 품고 살아야 했던 슬픔 또한 더욱 깊이 다가온다. 그리운 아들의 묘소 하나 가져보지 못했던 한은 세월이 흘러 현충원 위패봉안관에 새겨진 이름 앞에서 작은 위안을 얻었다. 큰아버지는 지금 유해를 찾지 못한 수많은 호국영령과 함께 그곳에 잠들어 계신다. 비록 육신은 차가운 DMZ 어느 고지에 남아 있을지라도, 나라를 위해 바친 젊은 영혼만큼은 현충원의 품 안에서 안식을 찾았으리라.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 곁으로 떠나셨다. 이제 포탄 소리도, 긴 한숨도 닿지 않는 곳에서 고등학생 모습 그대로인 아들을 품에 안고 있을 것이다. 헤어진 세월만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평생 가슴에 묻어 두었던 그리움도 풀어내고 있을 것이다. 다시 찾아온 현충일의 하늘은 눈부시도록 푸르다. 전쟁은 한 소년의 시간을 열여덟에 영원히 묶어두었고, 한 어머니의 가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새겼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비극이 멈추기를, 더는 그 어떤 삶도 포화 속에 멈춰 서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 소년은, 끝내 열여덟에 머문 시간 속에서 지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 있다. 김윤희 / 수필가열린광장 유월 소년 할아버지 할머니 그때 큰아버지 품의 자식들
2026.06.04. 20:48
‘금시에’는 줄어 ‘금세’가 된다. ‘금시에’는 “바로 지금”을 뜻하는 ‘금시(今時)’에 ‘낮에’ ‘밤에’의 ‘에’가 붙은 말이다. ‘밤사이’를 줄인 ‘밤새’, ‘요사이’를 줄인 ‘요새’, ‘그사이’를 줄인 ‘그새’의 ‘새’와 아무 상관이 없다. ‘새’와 달리 ‘금세’의 ‘세’는 어떤 뜻도 없다. ‘오히려’는 줄어 ‘외려’가 되고, ‘도리어’는 ‘되레’가 된다. ‘외려’와 ‘되레’가 표준어다. 그런데 표준어로 쓰려고 하면 은근히 헷갈린다.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 ‘오히려’는 끝 글자가 변하지 않는다. ‘려’가 그대로다. 앞의 ‘오히’만 ‘외’로 줄어든다. 끝 글자가 그대로라는 게 포인트다. ‘도리어’에선 ‘도’가 뒷소리의 영향을 받아 ‘되’가 되고, ‘리어’는 ‘레’가 된다. 모습이 다 바뀐 ‘되레’는 기억하기가 조금 더 어렵다. ‘어떻게 해’는 줄어서 ‘어떡해’가 된다. 간혹 “큰일 났다. 어떡해”라고 줄여 놓고 ‘어떡해’가 잘못인 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든”도 “어떡하면 좋을까?” “어떡하든”으로 줄여도 된다. ‘푸념하지’는 줄이면 ‘푸념치’가 된다. 그런데 ‘생각하지’는 ‘생각치’가 아니라 ‘생각지’로 줄여야 한다. ‘하’ 앞의 받침 소리가 ‘ㄱ, ㄷ, ㅂ’이면 ‘하’가 통째로 줄어든다고 본다. ‘갑갑하지’는 ‘갑갑지’로, ‘깨끗하지’는 ‘깨끗지’로 준다. ‘생각하다 못해’는 ‘생각다 못해’, ‘생각하건대’는 ‘생각건대’로 줄어든다.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준말
2026.06.04. 20:46
고국에서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일이다. 선배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같은 대학에 먼저 다니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본능적으로 나갔다. 학교생활뿐 아니라 훗날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배 한 분이 전화를 걸어 대뜸 여의도로 나오라고 했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일하던 분이었다. 갔더니 설문지 한 다발을 주며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설문을 받아 오라고 했다.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며칠 동안 학교를 돌아다니며 설문을 받고, 그것을 다시 그분에게 가져다 주었다. 꽤 많은 일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또 다른 대학 선배는 나에게 소위 '학습'을 시켜 주었다. 그는 당시 총학생회와 전대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매주 읽을 책을 정해 주고 카페를 옮겨 다니며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사회주의를 설명했다. 선배라는 이유로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었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훗날 그는 이른 바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되어 남파 간첩 혐의로 7년간 복역했다. 지금은 프랑스에 살면서 한국의 젊은 학생들이 찾아오면 여전히 '자주'와 '주체사상'을 이야기한다고 들었다. 이 두 사람은 참 극단적이다. 한 사람은 재벌과 기업을 대변하는 경제 단체 간부였고, 다른 한 사람은 지금도 사회주의를 믿는 강성 좌파였다. 그들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도움이나 기회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면 생각도 좁아진다. 반대로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세상을 입체적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인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맥에 대한 환상을 믿지는 않는다. 정말 소중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대개 공정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특별히 나를 봐 주지 않는다. 판사라면 나와의 친분 때문에 판결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공무원이라면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규정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무조건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의 대부분은 나에게서 더 큰 도움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원칙을 무시할 만큼 부패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인맥 때문에 특별히 유리한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일을 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사람은 결국 중요한 자리에 오래 남기 어렵다. 나는 이것을 '인맥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정말 영향력 있고 훌륭한 사람은 인맥 때문에 나를 도와줄 수 없고, 인맥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대개 그만큼 훌륭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인맥을 넓히는 것보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명함을 수백 장 모으는 것보다, 오랫동안 신뢰할 수 있는 친구 한 명을 곁에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인맥은 성공의 지름길이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준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진짜 이유는 그에게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 더 넓고 다양한 시각을 배우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이익이나 도움을 받기 위한 사람이 인맥이라면, 인맥은 필요 없다. 하지만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인연이라면, 인연은 여전히 필요하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 활력 인맥 자체 인맥 때문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2026.06.04. 13:49
6·3 지방선거 중 서울·경기·인천 17개 투표소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선거가 끝났지만 서울 송파구 잠실7동에서 투표한 약 2000명의 표가 담긴 투표함은 어제도 열리지 못했고, 부실 선거 관리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도 이어졌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용지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 유권자 참정권이 침해되고, 투표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했다”며 선관위를 질타했다. 민주당은 허철훈 사무총장의 거취를 거론했고, 국민의힘은 노태악 선관위원장 등 부실 선거 관리 책임자 전원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사안의 엄중함으로 볼 때 책임자 몇 명 사퇴만으로 들끓는 여론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후진국형 행정 착오는 총체적 기강 해이가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다. 투표용지 준비의 엉터리 의사결정 과정 전반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은 기본이고, 그에 따른 법적·행정적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사실 중앙선관위는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 출범한 이래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초법적 지위를 누려 왔다. 국민들은 선거 관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기대했지만, 정작 선관위는 소쿠리 투표 등 수많은 시비를 일으켰다. 독립기관이란 이유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은 채 감사원의 회계감사를 거부해 왔고 직무감찰도 회피해 왔다. 선관위 간부 자녀 특혜 채용은 그 같은 국민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터진 내부 비리였다. 공정성이 생명인 선관위에서 걸핏하면 투표 관련 의혹과 비위가 터지는 바람에 근본적 개혁 필요성이 누차 거론됐지만, 그때마다 용두사미였다. 현행법상 중앙선관위원장과 각 지역 선관위원장은 비상임 명예직이다 보니 내부 통제가 취약하다. 선관위가 고발권을 휘두르기 때문인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도 선관위 앞에서는 약해졌다. 견제받지 않는 기관은 방만해지고 쉽게 썩기 마련이다. 이번 사태를 절대로 어물쩍 넘기지 말고 선관위 조직과 선거 관리 시스템을 전면 수술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불식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2026.06.04. 8:24
6·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광역단체장 16곳 중 12곳를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와 호남 등 5곳 승리에 그쳤던 데 비해 부산·울산 등 영남으로까지 세를 확장했다. 표면적으로는 여당의 성공으로 보이지만, ‘이겨도 못 이긴 선거’라는 탄식이 여당 내부에서까지 나온다. 어렵지 않게 이길 것이라 예상되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정원오 후보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 후보가 이재명 대통령이 점찍은 ‘명픽’ 후보여서 여권을 강타한 충격파가 간단치 않다. 지상파 출구조사의 예측마저 무색하게 만든 서울시민의 표심은 집권 세력을 향한 경고장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은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로 꼽히는데, 민생 경제나 정책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 패배에는 이 대통령과 여당이 보여온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민심의 경고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서울 민심의 이탈 원인으로는 우선 정권의 일방적 독주와 밀어붙이기식 행태가 꼽힌다. 선거를 앞두고 여당 의원 100여 명이 이 대통령을 위한 ‘공소취소 모임’을 만들더니 조작기소 특검법을 발의했다. “대통령의,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법”이라는 지적에도 여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급기야 선거일 전날 이 대통령이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잘못하면 사과하고 취소하는 것”이라고 말해 공소취소를 시사하며 압박한 것이란 논란이 일었다. 중도층의 표심에 부정적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여권이 띄운 ‘1주택자 장기보유특별공제 폐지 시사’는 집 한 채 가진 유권자에게도 불안감을 안겼다. 집값 안정에 반대하지 않지만, 집 한 채 마련하려고 평생을 살아 온 은퇴자나 중산층마저 잠재적 규제 대상으로 모는 듯한 태도는 과거 진보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떠올리게 했다. 실제 개표에서 부동산 문제에 민감한 강남 3구와 한강벨트에서 여당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여당은 최대의 승부처라던 서울에서의 패배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후반기 국회 원 구성부터 야당과의 협치를 지향하고, 겸손한 자세로 민심을 살피는 쇄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2026.06.04. 8:22
국민의힘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몇 개의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의석을 얻었느냐보다 더 중대한 민심의 명령을 받았다. 보수의 가치를 대표하는 제1 야당으로의 쇄신, 보수 진영의 재건이 그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제 자신의 승리에 대해 “보수 회생의 플랫폼”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선거운동 때 호소한 “엄동설한의 까치밥”처럼 유권자들이 마지막 기회를 줬다고 보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독주를 견제할 힘을 가지려면 보수의 재건이 시급하다는 지지자들의 표심을 온몸으로 느낀 데 따른 답변일 것이다. 계엄과 윤어게인을 확실히 끊어내지 못한 채 이번 선거에 임했던 국민의힘 지도부가 과연 그런 절절함을 체감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두 달 전 오 시장이 공천 신청을 거부할 정도로 강성 지지층의 눈치만 살폈다. 그랬던 지도부가 극적인 역전승에 고무돼 마치 국민의 신임을 되찾은 것처럼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국민의힘은 서울시장과 대구시장·경북지사·경남지사 등 4개의 광역단체장을 가까스로 지켰지만, 민주당에 12개 지역을 내준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조차 8.87%포인트 차로 힘들게 이겼다. 지난해 대선 때 김문수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44%포인트 넘게 앞섰던 격차가 확 줄었다. 국민의힘 텃밭인 부산과 울산을 박빙의 승부 끝에 민주당에 내준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이처럼 격전지 곳곳에서 국민의힘 리더십의 한계를 절감하는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제명 카드까지 꺼내 내쫓은 한동훈 전 대표가 당선된 것도 새로운 보수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향후 국민의힘 안팎에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분출할 것이다. 선거 이후의 백가쟁명은 지리멸렬했던 제1 야당이 환골탈태할지, 자멸할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장 대표는 어제 SNS에 “저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새 길을 찾겠다”며 책임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입장을 암시했다. 지방선거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기 정치에 연연했다가는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보수 재건을 바라는 민심 앞에 보다 겸허하고 결연한 자세로 임해야 할 때다.
2026.06.04. 8:20
“모든 복잡한 질문에는 거의 항상 깔끔하고 그럴듯하지만 틀린 쉬운 답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제왕적 대통령제’도 그런 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곤 한다. 한국정치의 문제를, 대통령들이 불행하게 되는 원인을, 개헌을 논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답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권력분산이다.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들에게 일어난 잔혹사는 실로 현대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렵다. 전후 가장 성공적 발전을 이룬 나라에서 망명, 시해, 투옥, 탄핵, 자결, 검찰조사를 거치지 않은 대통령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그것이 한국 대통령제의 제왕적 권력 때문인가?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왜 그 제왕적 권력을 제대로 사용해 정당하고 효율적으로 국정운영을 하지 못하고, 비난 받고 응징 받도록 사용해왔는가? 투명하고 엄정한 법질서 요구되나 현 법제도에선 국가정체도 가져와 국가체제 정비는 지금 시대적 과제 투명하면서도 역동적 체제 갖춰야 퓰리츠 상을 두 번이나 받은 존 업다이크(1932~2009)는 ‘The New Yorker’지에 미국 대통령직은 “전직 대통령이 되는 축복받은 상태로 가는 길목에 있는 중간기착지에 불과하다”는 익살 섞인 논평을 실은 적이 있다. 트럼프라는 특이한 대통령 임기 중에도 오바마 전 대통령부부는 강연, 출간, 자문, 사업 등으로 수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하와이 별장을 지으며, 부호들과 호화 요트여행을 즐기는 사진이 심심찮게 올라와도 다수 국민들로부터 훌륭한 전직 대통령으로 존중 받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부부도 별로 다르지 않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퇴임 후 수익성 좋은 위스키 양조장을 세웠고, 윌리엄 태프트는 연방대법원장이 되었으며, 허버트 후버는 낚시 책을 출간할 만큼 낚시를 즐겼다. 필자가 영국과 미국에서 근무하며 본 바로는 그 나라의 총리,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 못지 않은, 오히려 더 큰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신생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서구 국가들이 수백 년에 걸쳐 진화시킨 국가체제와 제도를 하루아침에 이식하면서 사회현실과 제도 사이에 큰 간극이 발생한 가운데 출범했다. 제헌헌법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전범으로 삼아 불과 한달 여 만에 작성, 심의, 통과된 것이었다. 한반도 수천 년 역사상 3권분립 민주주의제도를 경험해보지 않았으며, 이 제도의 토대가 된 계몽주의사상운동을 거치지 않았던 한국민의 의식구조, 행동양식과는 간극이 큰 법·제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국가운영과 경제발전을 이뤄가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한국의 압축성장은 국가운영이 법과 제도를 충실히 따라서 이루어낸 결과가 아니었다. 그 기적과 같은 성공은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비공식적, 편법으로 메워온 역사였다. 좋게 보면 융통성이었고, 사실적으로 보면 부패, 불법이었다. 정부 지도자뿐이 아니었다. 기업인, 개인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발전사, 기업발전사는 재벌총수들의 구속사, 특별사면사이기도 하다. 재벌이 한국경제를 주도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법에는 재벌이라는 개념자체가 없다. 계열사들은 모두 상법상 독립된 기업이다. 수많은 계열사를 세워 신규사업에 진출하고 국내외 경제상황에 따른 부침을 겪으면서 분식회계, 일감몰아주기, 교차지원, 정부로비는 재벌경영에서 일상화되다시피 했고 계열사들의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는 재벌총수는 배임, 탈세, 횡령죄가 쉽게 엮어질 수 있는 구조였다. 국민 개개인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한국의 인사청문회가 자주 파행을 겪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검찰은 털면 먼지 나지 않는 기업과 사람이 드문 물 좋은 세상에서 막강 권력기관이 되었고, 미운 사람, 표적이 된 사람들을 쉽게 구속시킬 수 있었다. 경찰인들 다르랴. 지나온 세월 한국 정치, 사회, 경제는 그렇게 운용되어 왔고, 아직도 그 그늘이 다 걷히지 않았다. 그것이 자랑스러웠다는 것이 아니다. 불법과 탈법행위를 비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국가, 사회제도와 한국인 행동양식과의 정합성,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에 기대하는 역할과 그들이 실제 법적으로 가진 권능을 냉철히 분석하여 새로운 국가지배구조, 보상·징벌체제를 숙고해보자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 단계에 들어섰고, 국민들도 과거의 편법적, 탈법적 국가, 기업 운영에서 탈피해 투명하고 엄정한 법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지금의 체제, 제도 하에서 복지부동, 구조조정과 혁신 지연, 국가정체를 초래해 오기도 했다. 과거에는 편법이 성장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제도 자체가 경쟁력이 되어야 한다. 격변하는 국제질서, AI 시대의 도래는 우리에게 수많은 도전과 사회개혁 과제를 던지고 있다. 국가전략을 마련하고 때로 여소야대가 되더라도 이를 실효성과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국가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제도운영이 투명하고 정당하면서도 역동적일 수 있는 K-국가체제, 제도와 조직을 갖추는 것이 이 시대 국가과제라 생각된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2026.06.04. 8:18
‘AI(인공지능) 황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의 방한 소식에 지난 일주일간 한국 주식시장은 심하게 출렁였다. 황 CEO와 회동할 계획이 공개된 기업들 주가가 폭등해 상한가·신고가 기록을 쓰더니, 하루이틀 만에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져 하락하기를 반복했다. 압권은 황 CEO가 잠실 야구장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시구한다는 소문 하나로 두산그룹 상장사 주가가 일제히 급등한 대목이다(정작 시구 계획이 발표된 4일엔 하락). 그간 AI 붐에 꿈쩍 않던 LG전자·네이버 주가도 황과의 삼겹살 회동 소식 하나로 치솟았다. ‘젠슨 황과의 만남=AI 수혜주’라는 내러티브에 빠진 개인투자자들, 그런 개미들을 노리는 단타족이 뒤엉켜 만든 변동성이었다. 그 며칠간의 시장을 지배한 건 AI에 대한 기대라기보단 돈을 향한 탐욕이었다. 이벤트에 휘둘리는 한국 증시 반도체 쏠림, 개미 투기성 극심 대통령의 낙관주의 강박은 위험 엔비디아와 함께 기업 가치가 급등한 ‘삼전닉스’ 보유국이니 이 정도 과열은 감당해야 하는 걸까? 한국만 그런 게 아니고, 미국 증시도 비슷하지 않냐고? 글쎄다. 누군가에겐 단기 차익이 수시로 가능한 도파민 시장이겠으나, 개인투자자 특히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 개미들에겐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정부가 이 불장(bull market)에 기름을 더 부었다. 지난달 말 ‘단일 종목’(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이익률 2배 추종 ETF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시됐다. 홍콩 증시의 유사 ETF로 자본이 빠져나가는 걸 막겠다고 정부가 허용했다. 결과적으로 반도체 투자 쏠림은 더 심해졌고, 하루에도 손바뀜이 두 번 이상 일어나는 이들 ETF 때문에 코스피의 변동성도 더 심해졌다. 이게 정말 개미들에게 기회의 시장인가. 한국 개미들의 투자 열기는 반도체 호황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1년 전 이재명 정부 출범 때부터 부동산에 묶인 돈을 증시로 끌어오겠다고 한 여권의 2연속 상법 개정과 부동산 대출 규제의 역할이 컸다. 게다가 개미들의 믿음대로 국민연금은 리밸런싱을 미루고 국내 투자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행여 개미들의 투자심리를 꺾을까 우려해서인지 정부는 주식 거래 차익에 대한 과세(금융투자소득세)를 재검토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근로소득의 가치는 점점 더 초라해지고 있건만, 진보를 자처하는 정권의 과세 형평 기준은 이렇게나 선택적이다. 정부의 촘촘한 설계 위에서 코스피는 이제 9000을 바라본다. 그러나 행복한 이들은 소수다. 돈을 벌었든, 못 벌었든 대다수 개미는 불안에 찌들어 산다. 삼전닉스에 지나치게 쏠린 코스피(전체 시총의 50%), 역대 최대 규모의 주식 빚투(38조원)와 공매도(22조원) 등 이젠 탐욕이 과열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는 신호가 즐비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반도체 빼면 코스피는 4100’이란 증권사의 분석 보고서를 전한 기사를 두고 “반도체를 빼도 4100이나 된다고 해야 한다”며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현 시장의 불균형을 분석한 보고서일 뿐인데, 그조차 듣기 싫다는 말인가. ‘이번은 다를 것’이란 시장의 낙관주의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낼 만한 신호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독선으로 보인다. 문제는 시장에 반론이 허락되지 않는 순간 모두 다 함께 탐욕의 다음 단계로 빨려들어갈 수 있다는 데 있다. 17세기 튤립 버블부터 1929년 대공황,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탐욕이 절정에 이른 이후 시장엔 언제나 공포가 찾아왔다.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지금 버블 사이클 어디쯤 서 있는지 모르겠다면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금물이다. 정부는 조용히 거품 요소를 점검하고 금융 약자를 챙겨야 한다. ‘경제의 혈액과도 같은 신뢰가 사라지는 방식은 서서히 그러다 갑자기’ 찾아오고(앤드루 로스 소킨, 『1929』), 언젠가 버블이 터진다면 개미들이야말로 가장 오랫동안 가장 극심하게 고통을 겪어야 할 이들이기 때문이다. 박수련([email protected])
2026.06.04. 8:17
지난달 20일 국무회의 영상 중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전 국민 AI 무료 제공 사업인 ‘모두의 AI’와 관련된 대화였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AI 기본사회’ 구상의 일환이다. 이날 이 대통령이 진척 상황을 묻자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올해 11~12월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배 부총리는 “2028년까지는 확실히 무료로 제공하고, 그 이후는 기업이 주도해서 서비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그 이후에 돈을 내라면 안 쓰지 않겠나. 모두 똑같이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최저선은 모든 국민에게 허용하고, 업그레이드 기능은 유료로 쓰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기업인 출신인 배 부총리에게 “경훈님은 지금 공무원입니다”라며 “효율성과 공정성을 잘 조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말 에이전트 서비스 계획 비용 많이 들고 성능도 불투명 지원하되 간섭 않는 원칙 지켜야 배 부총리의 말은 정부가 초기 수요를 만들되, 이후엔 민간 기업이 서비스를 주도한다는 산업정책적 관점에 가깝다. 반면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 최소한의 AI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본사회의 관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의 AI 접근권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계획이 너무 앞서가는 측면이 있다. 배 부총리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말 시작하는 모두의 AI 서비스 계획을 밝혔다. 챗GPT나 제미나이처럼 문답을 하는 챗봇은 물론이고, 비서처럼 일하는 AI 에이전트에 노년층과 소외계층을 위한 특화 서비스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따져 봐야 할 문제가 있다. 먼저 비용이다. 무료 이용자가 많아진다고 해서 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이용자 데이터가 맞춤형 광고의 기반이 됐고, 빅 테크가 상당한 광고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생성형 AI 시대에는 이 공식이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 일상적 사용 데이터가 서비스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막대한 추론 비용을 상쇄할 수익모델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요청을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며, 여러 단계를 반복 처리해야 한다. 챗봇보다 비용 예측이 어렵고 운영 부담도 크다. 성능과 책임 문제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모두의 AI가 전 국민 서비스가 되려면 기존 상용 AI 서비스에 익숙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기본 답변 품질부터 확보해야 한다. 아직 서비스의 품질과 운영 안정성이 공개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에이전트 기능까지 약속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AI 에이전트가 공공서비스와 연결될 경우 잘못된 정보나 부정확한 안내가 행정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전 국민 무료 서비스를 내세울수록 이용자는 이를 공적 서비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고, 오류에 대한 책임론도 정부를 향할 수밖에 없다. 무료 서비스의 수준을 누가 정할지도 문제다. 민간 AI 서비스는 무료 사용량과 유료 기능의 경계를 업체가 스스로 정한다. 그러나 모두의 AI는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전 국민 무료 제공을 추진하는 구조다. 선정된 기업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무료 사용량이나 기능을 제한하면 불만은 정부로 향할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이용자 불만을 줄이기 위해 무료 한도와 기능 수준을 요구하면, 민간의 서비스 설계와 가격 전략에 개입하게 된다. 정부는 여러 AI 서비스가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이후에는 과도한 개입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8년 이후에도 무료 서비스를 사실상 강제하다 보면 시장 왜곡을 부를 수 있다. 자칫 모두의 AI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서비스가 되어 혁신과 경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AI 경쟁에선 뒤처질 우려가 있다. AI 접근권 확대가 필요하다면 방식은 달라야 한다. 정부가 범용 AI 서비스를 직접 떠안기보다, 시장에서 검증된 AI 서비스를 국민이 일정 수준 이용할 수 있도록 사용권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취약계층과 공공서비스 영역에는 특화된 AI 지원을 제공하고, 일반 이용자는 다양한 민간 서비스 중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래야 국민의 접근권도 넓히고 민간의 경쟁도 살릴 수 있다.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지켜온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바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I 시대에도 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모두의 AI가 제 기능을 하려면 무료 제공이라는 구호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를 갖추는 것이 먼저다. 김원배([email protected])
2026.06.04. 8:14
김용범 정책실장이 던진 화두 ‘신용평가 문제의 해법’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하는 등 신용평가체계의 개선 움직임이 한창이다. 기존의 신용평가시스템은 과거 금융이력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중·저신용자를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청년층에게도 불이익을 준다. 중금리 대출시장을 무너뜨려 가운데가 비어있는 ‘도넛경제’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김용범 정책실장이 SNS에 쓴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은 실시간 매출·입출금 등 현금 흐름을 정밀분석해 대출 결정 한국은 오픈뱅킹·마이데이터 잘 구축해 놓고도 단편적으로만 활용 금융위·행안부·개인정보위로 나뉜 칸막이 규제로 데이터 융합 차질 빅테크 비금융데이터 공개하고 법 체계도 중장기적으로 일원화를 해법으로는 대안신용평가 활성화 등이 부각하고 있다. 정책보증 확대, 정책금융 연계 등의 방법을 쓸 수도 있는데 정부의 재정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연체 여부’보다 ‘현재 경제활동과 현금 흐름’ 데이터를 활용하는 대안신용평가는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금융 사다리를 복원하는 생산적인 대안이다. 데이터가 ‘인공지능(AI) 시대의 석유’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 정부의 AI 활성화 정책 기조와도 맥을 같이한다. 데이터는 비경합적, 소유권이 중요 그런데 데이터는 석유와 중요한 차이점도 지닌다. 석유는 쓸수록 고갈되지만, 데이터는 그렇지 않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무한히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다른 데이터와 결합할수록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특성이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찰스 존스 교수와 크리스토퍼 토네티 교수는 2020년 발표한 논문 ‘비경합성과 데이터 경제학(Nonrivalry and the Economics of Data)’에서 이러한 데이터의 비경합성에 주목했다. 이 논문은 두 가지 소유권 시나리오를 비교한다. 먼저 기업이 데이터를 소유할 때 기업은 경쟁 우위를 지키고 지대를 추구하기 위해 데이터를 자신들의 서버에 가두고 되도록 공유하지 않는다. 이러한 데이터 독점과 파편화는 사회 전체적인 데이터 활용도를 떨어뜨리고 후생을 감소시킨다. 반면에 데이터 소유권을 소비자에게 부여하면, 소비자는 비경합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데이터를 여러 기업(다수의 은행 및 핀테크사)에 전송해 활용함으로써 개인의 후생은 물론 경제성장에도 기여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각 소비자는 자신의 데이터 공유에 따른 사생활 침해 가능성과 효용을 스스로 저울질하며 판단을 내리게 된다.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을 확립하려는 현실에서의 움직임은 이 논문의 결론과 맞닿아 있다. 데이터 주체의 기본권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도 타당한 것이다. 이를 금융 부문에서 실현하는 사례로 미국의 현금 흐름 기반 언더라이팅(Cash Flow Underwriting)과 영국의 오픈뱅킹(Open Banking) 등을 들 수 있다. ‘내 데이터의 진짜 주인은 은행이 아니라 나(개인)’라는 관점에서, 개인이 주도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해 실질적인 이득을 얻어내고 있다. 미국의 현금 흐름 기반 언더라이팅은 전통적인 신용점수(credit score)나 부동산 담보 대신, 차입자의 실시간 매출이나 은행 계좌의 실시간 입출금 내역(현금 흐름)을 정밀하게 분석해 대출 한도와 금리를 산정하는 고도화된 심사기법이다. 기존의 신용평가체계에서는 신용 점수가 낮거나 담보가 없어 금융에서 소외됐던 소상공인·청년·취약계층이 자신의 실시간 현금 흐름 데이터(행동 데이터)를 직접 증거로 제출함으로써 정당한 금융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개인이 데이터 권리를 행사해 금융 장벽을 허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상으로는 영국의 오픈뱅킹이 더 먼저다. 이 제도는 고객이 동의하면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해당 고객의 금융 데이터(계좌 잔액, 입출금 내역 등)를 핀테크 기업 등에 안전하게 전송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한 제도다. 과거에는 내 금융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은행이라는 거대한 ‘성벽’ 안에 갇혀 있어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 때 활용하기 어려웠다. 오픈뱅킹은 “내 데이터의 통제권은 나에게 있으니, 내가 원하는 기업에 이 데이터를 넘겨 더 좋은 서비스를 받겠다”는 데이터 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주요 사례이다. ‘고속도로에 차 못 다니는’ 한국 그럼 우리 상황은 어떠한가? 사실 한국은 이러한 선진 제도들을 빠르고 과감하게 도입한 인프라 강국이다. 2019년 오픈뱅킹을 통해 금융권의 이체·조회 장벽을 낮춘 데 이어, 2022년 금융 마이데이터를 전격 시행했고, 최근에는 전 산업 마이데이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특히 정부 주도의 강력한 표준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데이터의 품질·안정성·보안성이 탁월하다. 데이터의 유실이나 오염 확률이 극히 낮아 대안신용평가를 활성화하고 포용적 금융을 확대할 수 있는 훌륭한 ‘고속도로’를 닦아놓은 셈이다. 그러나 이토록 훌륭한 고속도로를 구축해 놓고도 “왜 현장에서 대안신용평가와 현금 흐름 언더라이팅은 미흡한가?”라는 뼈아픈 비판이 제기된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의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가 여전히 ‘결제 편의 중심’이거나 ‘단순 정보 조회 서비스’ 수준의 단편적인 도구에 머물러 있을 뿐, 진정한 데이터 주권 시스템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데이터 고속도로를 잘 구축하고서도 대안신용평가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우선 한국의 오픈뱅킹은 간편 송금과 대시보드식 통합조회 등 생활금융 UX 혁신에는 성공했으나 데이터의 민주화와 신용 창출이라는 심층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마이데이터 역시 초기 설계부터 정보의 이동(API)과 표준화된 조회(Display)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소비자가 자기 데이터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권리 행사’ 관점은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더해 신용평가시스템으로 유입되는 데이터의 ‘질적 분절’과 ‘파편화(Data Silo)’ 문제도 심각한 병목이 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마이데이터는 소관 부처와 근거 법령에 따라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신용정보법에 근거한 금융 마이데이터는 금융위원회, 전자정부법에 근거한 공공 마이데이터는 행정안전부, 개인정보보호법에 근거한 비금융(전 분야) 마이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소관이다. 부처가 다르다 보니 인증 방식, 데이터 전송 규칙, 표준화 포맷이 다르다. 데이터 주체와 직접 연관이 없는 칸막이 규제 때문에 데이터의 융합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반쪽짜리 한국형 마이데이터 플랫폼 대기업들의 ‘데이터 폐쇄성’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며 “한국형 마이데이터는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금융회사들은 법에 의해 계좌거래 내역과 카드 결제 데이터 등을 개방하고 있는 반면, 거대 플랫폼 기업(빅테크, e커머스, 배달 플랫폼 등)들은 자신들의 서버에 모인 비금융 활동 데이터(배달 앱 매출 패턴, 리뷰 평판, 정산 주기 등)를 영업비밀, 개인정보 등의 명분 아래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데이터의 심각한 비대칭성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 주체의 관점에서 금융이든 비금융이든 모두 ‘나의 경제활동을 증명하는 내 데이터’들은 데이터 주체의 명령으로 다수의 사용처에 동시 전송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 주권의 확립은 단순히 선언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프라 등 여건이 조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양한 금융·비금융 데이터가 통합 활용될 수 있는 역동적인 데이터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 데이터는 다양할수록 가치가 커지는데 특히 금융·비금융 데이터의 결합 시 부가가치 증대 효과가 매우 크다. 이에 따라 금융·공공·전산업 등으로 구분된 마이데이터 정보들이 손쉽게 연결되고 결합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신용정보법과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이원화된 법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인신용정보 등 금융정보가 신용정보법뿐 아니라 개보법에 의해서도 중복 규제를 받는 문제도 해소하면 좋겠다. 아울러 마이데이터업 및 데이터 거래를 활성화하는 한편 공공데이터 개방을 더 확대하고, 대규모 플랫폼 데이터 일부를 공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신생 핀테크 스타트업이나 지역 소형 금융기관들이 겪는 데이터 부족, 즉 ‘콜드스타트(Cold Start)’ 문제를 해결해 줘야만 시장의 독과점이 깨지고 건전한 금리 인하 경쟁이 유발된다. 표준화된 통합 데이터 플랫폼을 조속히 구축해, 금융기관 간의 데이터 단절을 막고 다양한 대체데이터(Alternative Data) 활용이 여신 심사 현장에서 실시간 가동될 수 있도록 튼튼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그동안 소외되거나 불리한 처지에 있던 데이터 주체들을 돕는 동시에 경제 전체의 후생을 늘리는 길이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2026.06.04. 8:12
주명덕·김옥선·요코미조 시즈카의 사람 사진 선거와 전쟁의 한복판에서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시기이다. 미술은 세상 돌아가는 일과 무관해 보이지만, 사실 타인과 공동체는 언제나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화두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에도 타자와 이방인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이 제법 있다. 흥미롭게도 대체로 사진이다. 사진은 시선과 프레임의 예술이다. 타인의 얼굴을 담을 때 가장 흥미로워지고, 동시에 가장 위험해진다. 주명덕의 1960년대 고아원 연작 혼혈 고아들의 존재 널리 알려 국제결혼 커플 다룬 김옥선의 연작 어디에나 있는 부부 사이 장벽 포착 이방인 체험 살린 요코미조 시즈카 일면식 없는 타인 승낙할 때만 촬영 소장품 중 타인의 얼굴을 가장 강렬한 방식으로 마주하게 하는 작품은 주명덕(1940~)의 ‘섞여진 이름들’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사의 기념비적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수작이다. 이 사진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국적인 고아 외모에 충격 사진의 촬영 연도는 1965년, 한국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조금 지난 해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주명덕은 누나가 자원봉사로 일하던 서울 불광동의 보육원에서 놀라운 모습을 발견했다. 바로 이국적인 외모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광경이었다.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보육원에 보내진 아이들. 당시로써는 이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보육원은 한국의 전쟁고아를 보살피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사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물론 한국인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의 시선이 닿은 곳은 따로 있었다. 출생부터 보육원에 오기까지, 말 못할 사연이 겹겹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얼굴들. 더구나 다름을 유난히 불편해하는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쉽지 않으리라 예상되는 얼굴들이었다. 이 사진들은 1966년, 서울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전시의 제목은 ‘홀트씨 고아원.’ 아이들의 초상 95점은 관람객의 심금을 울렸다. 여러 매체에서 전시를 비중 있게 다루면서 ‘혼혈 고아’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얼굴 자체로 전쟁의 비극성을 고발하는 아이들이었다. 이는 1960년대라는 시대적 맥락 안에서 충분히 유효하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사회의 그늘진 곳에 시선을 던지는 것은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화하는 일에 훨씬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함을 안다. 그 이미지가 비극의 상징으로 전시될 때는 더욱 그렇다. 이 사진들이 다큐멘터리로서 지닌 강력한 힘과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은 이유이다. 한편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이 사진들이 아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6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인구 구성도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한국의 인구 20명 중 1명 이상이 ‘이주 배경인구’라는 통계가 발표됐다. 이주 배경인구란 본인이나 부모 중 한쪽이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적자가 아닌 경우를 뜻한다. 3개월 이상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귀화한 사람, 이민자 2세 등도 포함된다. 이런 이주 배경인구의 삶에 일찍이 주목해 온 사진작가로 김옥선이 있다. 그의 2008년작 ‘영어 선생들’은 제주도의 학교나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들을 담은 사진이다. 원어민 강사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한국이 지금처럼 인기 있는 나라는 아니었던 시절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6월부터 11월까지, 이들은 주말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래사장에 모였다. 해수욕이나 일광욕을 하다가 해가 지면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것이 일과였다. 출신 국가와 한국에 온 이유만큼, 사진 속 표정과 자세도 제각각이다. 이방인이라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공통점도 없는 이들이지만 어쩌면 이런 결핍의 공유야말로 서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유효한 조건인지도 모른다. 결핍의 공유가 이해의 조건 김옥선이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진 데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1968년생으로 줄곧 서울에 살던 그는 외국인 남성과 결혼을 하고, 제주도로 이주하면서 처음으로 ‘주변부’의 삶을 경험하게 되었다. 당시의 한국은 외국인과 결혼한 여성에게 한층 더 가혹했다. 예컨대 1998년 국적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외국인 남성과 결혼해 낳은 자녀는 아버지를 따라서 외국인 국적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김옥선이 모국에서 타자화된 삶을 경험하면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2000년 무렵 발표한 ‘해피투게더’였다. 한국에 살고 있는 국제결혼 커플을 찾아가 가족의 모습을 촬영한 연작이었다. 작가 본인이 직접 모델로 등장한 ‘옥선과 랄프’에서 부부는 썩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지만 자세와 표정부터 상반된 두 사람 사이에는 무언가 심리적인 장벽이 있는 것 같다. 한편 ‘미련과 슈테판’에서는 유일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미련에게 시선이 간다. 이 가족에서는 아무래도 유일한 ‘자국민’인 아내이자 엄마에게 좀 더 막중한 임무와 역할이 주어질 것이라 짐작이 된다. 두 사진 모두 전형적인 한국 집의 거실을 배경으로 한다. 공간이 유난히 답답해 보이는 것은 인물들이 정서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싸우면 집이 숨 막히게 좁아지는 법이다. 이 사진들의 흥미로운 지점은 ‘국제결혼 부부’라는 특수한 설정이 오히려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성찰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저 가족의 갈등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차원의 것인가.’ 애초에 부부라는 관계에는 수많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같은 문화권이라고 서로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좁은 공간 안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며 살아간다. 타인과의 공존은 늘 어렵다. 다르면 달라서, 비슷하면 비슷해서 힘든 것이 타인과의 관계이다. 타인을 다룬 미술관 소장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요코미조 시즈카의 ‘타인’ 연작이다. 영어 원제는 ‘stranger’. 의미상으로는 ‘낯선 사람’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다. 실제로 작가가 일면식도 없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작업이다. 이 작품은 촬영 과정 자체가 핵심이다. 작가는 먼저, 낯선 사람의 우편함에 편지를 넣는다. “낯선 당신에게(Dear Stranger), 저는 모르는 사람을 촬영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사진작가입니다”로 시작되는 편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기를 정중하게 권한다. 그리고 동의한다면 약속된 시간에 거리로 난 창문 앞에 서서 커튼을 젖힌 채 몇 분간 머물러 달라고 요청한다. 작가는 정해진 시간에 창문 밖 거리에 카메라를 세워두고 기다리다가, 상대방이 창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면 조용히 셔터를 누르고 사라진다. 이후 촬영된 결과물을 다시 우편으로 보내 최종 사용 허가를 받으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작가와 모델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으며, 끝까지 ‘낯선 관계’로 남는다. 작가 요코미조 시즈카는 1989년부터 영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일본인이다. 이방인으로서 겪은 관계 맺기의 어려움이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사진 속 인물들은 모르는 사람의 편지를 받아 들고, 아마도 고심 끝에 조심스럽게 커튼을 열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이들이다. 그래서인지 약간 긴장한 듯한 표정도 보인다. 카메라가 포착한 것은 생면부지의 타인이었던 사람들이 단 몇 분이나마 창문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낸 마법 같은 순간이다. 타인은 나를 이해하게 만드는 존재 사진에는 확실히 시대의 인장이 찍힌다. 이방인을 다루는 방식도 시대와 함께 변화했다. 주명덕의 사진에는 사회상을 고발하는 직접적이고 강렬한 시선이, 김옥선의 사진에는 내부자로서 주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담담하고 유보적인 태도가 담겨 있다. 한편 각 시대의 문제의식과 감수성에 빗대어 2026년의 한국사회를 보면, 다름 자체에는 좀 더 관대해지고 타인을 대하는 문제에는 좀 더 엄격해진 것 같다. 그럼에도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타인은 곧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외모든 생각이든,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가 결국 나의 세계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타인을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하는 존재로 상정하는 일도 위험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고 이해와 동조를 요구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낯선 존재들이다.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너도 나와 같은 이방인이라는 마음으로 서로 연민을 가지는 것도 괜찮다. 그리고 가끔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줄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간혹 무언가 근사한 것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요코미조 시즈카의 사진에 담긴 마법 같은 순간처럼 말이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2026.06.04. 8:10
2009년 6월 나는 추모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청춘은 끝이 났다.” 17년 뒤 영화 ‘마이클’을 본 뒤 생각했다. 내 청춘은 끝났지만, 마이클은 영원히 끝나지 않겠구나. 영화는 청소년 시절을 온통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와 겹치게 보냈던 ‘586세대’의 가슴을 크게 일렁이게 만든다. 천사 같은 목소리로 ‘벤’을 부르던 어린아이가 어느 날 천지개벽할 문워크와 ‘스릴러’ 뮤직비디오를 들고나와 세상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아, 지금 한 시대가 바뀌고 있구나’라는 짜릿한 깨달음이 전율과 함께 왔던 때. 팝송 키드가 아니었더래도 그 시절을 지낸 청춘들이 공유하는 선명한 기억이다. 영화 ‘마이클’, 옛 감동 일깨워 젊은 세대는 틱톡·쇼츠로 즐겨 당신의 혁신은 인류가 받은 선물 사실 영화는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아버지와의 평생의 갈등 외에 그의 인생을 깊이 있게 파고들 의지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그가 낯선 옛날 인물이 되면 어쩌지?” 같은 걱정만큼은 덜어준다. 적어도 관객의 머릿속에 역사적 ‘팩트’ 하나는 콱 박아주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 막 시작된 ‘뮤직비디오’라는 플랫폼을 어떻게 통째로 뒤바꿔놓았는지, 그 안에서 인종 장벽을 허물고 안무와 서사의 문법을 어떻게 혁명적으로 재정의했는지를 말이다. 특히 “흑인이기 때문에 MTV에 틀 수 없다”던 방송사를 설득해 대작 ‘스릴러’가 방영되는 순간은 새삼 전율을 일으킨다. 브루노 마스 같은 수퍼스타가 흑인임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된 것, 노래와 춤이 동등한 예술이 된 것, 1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 퍼포먼스, 서사를 가진 뮤직비디오 스타일까지. 지금 대중문화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법은 결국 그가 인생을 바쳐 이룩한 거대한 DNA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정수로 물려받아 눈부시게 피워낸 꽃이 바로 지금의 K팝이다. 방탄소년단 정국의 솔로곡 ‘스탠딩 넥스트 유’를 보자. 시선을 장악하는 화려한 스텝과 강렬한 골반 튕김, 정(靜)과 동(動)을 오가는 퍼포먼스 등은 단순한 오마주를 넘어선다. 그것은 자신의 음악이 어떤 거대한 계보 위에 서 있는지를 공표한 ‘헤리티지의 선언’이었다. 마이클 잭슨이 살아있었다면 정국과 나란히 서서 세기를 교차하는 댄스 챌린지를 하며 전 세계 알고리즘을 폭파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똑 닮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흐뭇해했을까. ‘저 문워크가 지금의 숏폼 시대에 나왔더라면’ 하는 상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그래서다. 숏폼을 흔히 ‘바이럴 매체’라 부른다. 바이러스처럼 인기를 퍼뜨린다는 의미다. 1983년 모타운 레코드사 25주년 무대에서 그가 처음 ‘빌리진’과 문워크를 선보이던 순간, 전 세계는 마이클이라는 바이러스에 자발적으로 감염됐다. 몇 주가 지나서야 겨우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방구석에서 친구들 앞에서 문워크를 흉내 냈다. 나도 모르게 발을 뒤로 밀게 만들던 전 지구적 챌린지였다. 지금의 틱톡과 쇼츠가 작동하는 원리도 정확히 이와 같다. 첫 번째 몇초에 시선을 훔치는 압도적인 직관성, 그는 그 강렬함을 쇼츠의 수십초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내내 유지했다. 그는 인간의 뇌가 청각뿐 아니라 시각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던 선구자였다. 우리 뮤직비디오 세대는 무대 위의 완벽한 마이클만 알았다. 반면 지금의 쇼츠 세대는 우리가 몰랐던 그의 인터뷰와 고난, 그리고 사운드를 까다롭게 체크하다가도 이내 “잇츠 올 러브”라고 나직하게 속삭이는 무대 뒤 진짜 목소리를 숏폼으로 접한다. 무대 위에선 천상의 존재로 찬양하다가도 무대 아래에서는 ‘기괴한 은둔자’로 치부했던 그를, 요즘 세대는 가장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이해해가리라 믿는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한 추문과 논란. 그러나 무대 위에서 그가 이룩한 것은 그 모든 것과 별개로 인류가 받은 선물이었다. 그가 그리워질 때면 1983년 그 전설의 무대로 늘 돌아간다. 수줍게 “뉴 송(New song)”이라 말한 뒤 소박한 핀 조명 아래서 그는 마치 어린 새가 파드닥거리듯 혼자 춤을 추며, 외롭게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오늘날 케이팝이 되고 숏폼이 되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시공간을 초월한 위안이다. 고마워, 마이클. 당신은 여전히 여기 있어.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2026.06.04. 8:08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경우에,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일세. 훌륭한 사람들이 정작 통치를 맡게 될 때는 그런 벌을 두려워해서 맡는 것으로 내겐 보이네.”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역주한 플라톤의 『국가론』(역주본 제목 ‘국가·政體’)의 한 구절이다. 플라톤의 형 글라우콘의 질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이다. 지난달 31일 이재명 대통령은 6·3지방선거 투표를 독려하는 소셜미디어 글에 “정치 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플라톤”이라고 썼다. 단순한 독려냐 지지층 결집이냐 논란이 일었다. 철인정치를 꿈꾼 플라톤은 대중정치 경계 차원에서 소크라테스를 인용했다. 반대로 이 대통령은 대중민주주의 옹호 관점에서 플라톤(의 책)을 소환했다. 이처럼 명언의 맥락이 거세·치환되는 경우가 있다. 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 속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도 그런 사례다. 원문은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든다면 (신에게) 기도할 만한 일일 텐데”이다. 내면보다 외모 가꾸기에 집착하던 세태 비판이 반대 취지로 쓰였다. 때로는 명언이 만들어진다.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가 대표적이다. 오다카 도모오 경성제대 교수가 1937년 저서 『법철학』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썼다. 이 대목이 소크라테스 말로 둔갑했다. 정치인이 애용하는 명언에 비슷한 사례가 많다.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에이브러햄 링컨),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고 늙어서 사회주의자면 머리가 없다”(윈스턴 처칠 또는 카를 포퍼),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알렉시스 드 토크빌) 등이 그렇다. 해당 인물은 그렇게 말한 적 없다. 다른 사람 말이 명언으로 탈바꿈했다. 지선 최종 투표율이 61%다. 역대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플라톤까지 소환했던 이 대통령 의도는 적중했을까. 부디 최악의 저질이 지배하는 일은 없는 4년이기를 바란다. 장혜수([email protected])
2026.06.04. 8:06
실리콘밸리의 홈파티 풍경이 달라졌다. 개발자들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한 채 SNS나 주가가 아니라 상시 작동하는 AI 에이전트의 작업 상태를 확인한다. 벤처투자자 니쿤지 코타리는 이를 ‘토큰 불안증(Token Anxiety)’이라 불렀다. 토큰은 AI의 연산 단위다. AI가 쉬지 않고 일하는 동안 인간은 불안에 떤다. 토큰에는 비용 문제도 있다. AI가 토큰을 많이 쓸수록 지출이 늘어난다. 그러나 토큰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AI를 ‘통제’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배경은 ‘바이브 코딩’ 열풍이다. 개발자가 코드를 직접 쓰는 대신 자연어로 원하는 결과만 설명하면 대규모 언어모델(LLM)이 구현을 맡는다. 화면에는 식탁 위의 요리처럼 완성된 결과만 보일 뿐, 주방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델 호출과 디버깅의 복잡한 반복은 가려진다. 과정이 불투명할수록 보이지 않는 비용은 뒤에서 빠르게 누적된다.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이것이 혁신처럼 보이지만, 실제 운영에 들어가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AI가 만든 코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작은 오류조차 수정하기 어렵다. 사용자는 개발자라기보다 관리자에 가까워진다. 맥락을 설명하고, 결과를 검증하고, 오류를 감시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바이브 코드가 남기는 기술적 부채와 유지·보수 비용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통제 비용은 눈에 보이는 AI 서버 비용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물리 세계를 다루는 피지컬 AI에서도 본질은 같다. 인간이 물리적 시공간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개입할 수 없기에, 자율주행 같은 시스템은 수십 밀리초 안에 완벽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경쟁력은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있지 않다. 최소한의 연산으로도 인간이 안심할 수 있는 ‘신뢰성’을 확보하는 능력에 있다. 이 점에서 앞으로의 AI 경쟁은 단순한 모델 성능 싸움이 아니다. 더 많은 토큰을 소비하는 비대해진 시스템보다, 더 적은 토큰으로 더 높은 신뢰성을 달성하는 시스템이 이긴다. 핵심은 연산량이 아니라 ‘의미 밀도’다. 결국 토큰 불안증의 실체는 연산 비용이 아닌 통제 비용에 대한 공포다. AI가 어떤 조건에서 멈춰야 하는지, 어느 단계부터 인간의 검증을 거쳐야 하는지 잘 정의되지 않은 자동화는 새로운 형태의 낭비를 만들 뿐이다. 주말 저녁에도 에이전트의 진행률을 확인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나는 생산성을 높이고 있는가, 아니면 통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 불안해야 할 것은 AI가 멈추는 순간이 아니다. 인간이 통제권을 잃은 채 루프만 계속 돌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스마트모빌리티학부 및 미래자동차석사과정 전임교수
2026.06.04. 8:04
초기왕조 시대의 파라오 페르이브센과 그 뒤를 이은 카세켐위의 세레크(왕의 이름을 둘러싼 표식)가 보여주는 변화는, 통일 이집트의 중앙집권 체제가 공고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파라오는 곧 호루스 신’이라는 이데올로기 역시 아직 정립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호루스가 세트를 물리치고 아버지 오시리스의 왕권을 회복했다는 신화는 후대에 체계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초기왕조 시대는 호루스 신봉 세력과 세트 신봉 세력이 주도권을 다투던 경쟁의 장에 가까웠을 수 있다. 1·2왕조 파라오들의 세레크에 주로 호루스를 상징하는 매가 그려진 것은 호루스 진영이 우세했기 때문일 것이다. 페르이브센 시대에 ‘야당’이었던 세트 세력이 일시적으로나마 정권 교체를 이뤄냈고 그래서 그의 세레크 위에 매 대신 세트를 상징하는 네발 동물이 올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카세켐위는 두 진영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그의 세레크에 매와 네발 동물이 함께 그려진 것은 갈등이 해소됐거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시사한다. 그의 이름도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탠다. ‘카세켐위’는 ‘두 힘이 나타나다’ 또는 ‘두 권력이 함께 드러나다’ 정도의 뜻이다. 초기 기록에는 그의 이름이 ‘힘이 나타나다’라는 뜻의 ‘카세켐’이었으므로, 반목하던 두 세력의 통합을 기념해 이름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 이집트학자들은 내부 갈등을 해결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완성한 카세켐위 이후를 ‘고왕국’으로 구분한다. 이는 최초의 통일 이후 약 400년 동안 지속된 ‘초기왕조 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대다. 이때부터 피라미드가 건설되고, 이집트는 약 500년간의 전성기에 들어선다. 사회적 갈등이 언제나 부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건 아니다. 합의로 해소되면 체제 안정성을 떠받치는 토대가 된다. 4700년 전 나일강 유역의 이야기가 요즘 정치 현실에 시사하는 바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한양대 겸임교수
2026.06.04. 8:02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와 미 전역의미교협 회원단체들(뉴욕/뉴저지 민권센터, 펜실베이니아 우리센터, 미교협 텍사스, 일리노이 하나센터, 버지니아 함께센터)은 함께 ‘살림살이(A Livable Life) 캠페인’을 시작했다. 살림살이 캠페인은 커뮤니티 구성원 모두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누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 참여 운동이다. 사람은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아갈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도 렌트비, 식료품비, 의료비, 교통비 등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생활비는 계속 오르고, 그 짐을 견뎌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지역사회 곳곳의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이 실제로 마주하는 현실을 알릴 예정이다. 모든 이가 존엄과 안정,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갈 길을 찾을 것이다. 월급에서 월급으로 간신히 버티는 삶이 당연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살아갈 만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캠페인의 첫 단계로 미교협은 미 전역 한인 커뮤니티를 상대로 설문조사(bit.ly/livablelife)를 진행하고 있다. 설문에서는 저렴한 주거, 저렴한 의료보험,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 필요한 때에 이용 가능한 어린이 돌봄 서비스, 생계유지를 위한 일자리 등 여러 항목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서대로 표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또 국토안보부(DHS)에 배정된 1700억 달러 규모의 이민 단속 예산에 찬성하는지, 만약 반대한다면 이 예산이 대신 어디에 쓰이기를 바라는지도 묻는다. 미교협은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한인 커뮤니티의 진정한 요구를 파악해 활동을 집중할 계획이다. 집은 기초가 튼튼해야만 제대로 설 수 있다.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이웃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병원을 제때 찾지 못한다면, 공동체는 그만큼 불안해진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도 흔들린다. 사람들이 기본적인 필요를 감당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공동체를 안전하게 지키는 힘이다. 책임 있고 효율적인 정부는 국민을 섬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오로지 이윤만을 위해 운영하면 안 된다. 의료, 대중교통, 교육, 공공요금처럼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은 더욱 그렇다. 정부가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나서 가격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단순한 복지 정책 차원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책임의 문제다. 진정으로 신뢰를 받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정부는 바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부다. 미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다. 우리가 모두 충분히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풍요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일부가 그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의 공정한 분배와 재분배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모두의 살 만한 삶은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살림살이 캠페인에 함께 해 변화를 만들어 가자.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살림살이 캠페인 살림살이 캠페인 이번 캠페인 한인 커뮤니티
2026.06.03. 19:09
가주 예비선거가 끝났다. 11월 결선 진출 후보들이 속속 결정되고 있고, 당선자가 이미 확정된 선거도 있다. 주지사, LA시장 선거가 접전 양상을 보이면서 과거 예비선거보다 투표율이 다소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선거에도 많은 한인 후보가 다양한 선출직 공직에 도전했다. 최종 개표 결과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괜찮은 성적표를 얻었다. 우선 데이브 민(민주·가주 47지구) 의원은 재선 성공이 유력하다. 민 의원은 압도적 1위로 예선을 통과 11월 결선에 진출했다. 영 김(공화·가주 40지구) 의원도 4선 도전의 희망을 살렸다. 다만 같은 당 소속 후보에 뒤져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한인 최초로 가주 보험국장에 도전한 제인 김 후보는 1위로 결선 진출이 확실해 보이고, 가주 하원 66지구에 도전한 폴 서 후보도 결선 가능성이 높다. 그런가 하면 LA카운티 수피리어코트 판사에 도전한 아이린 이 후보는 5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어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반면 많은 기대를 했지만 결선 진출에 실패한 후보들도 있어 안타깝다. 이번 선거 기간 한인 사회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유권자 등록 캠페인이나 후원 행사도 과거보다 활발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주지사, LA시장 선거전으로 관심이 높았던 전체 분위기와는 온도 차가 있었다. 혹시 정치력 신장에 대한 의지가 식은 것은 아닌가 우려될 정도였다. 11월 결선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물론, 친 한인계 후보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적극적인 투표 참여다. 예선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선에선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선거가 많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인 표’가 충분히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 한인 유권자의 한표가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사설 결선선 한인표 한인계 후보들 한인 후보 결선 진출
2026.06.03.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