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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란 와니가세케라의 마켓 나우] 사모대출의 축, 뉴욕·런던에서 아시아로

아시아·태평양(아태) 지역 사모대출, 즉 비은행 기업 대출 시장이 글로벌 자본의 새로운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중산층 확대와 선진국을 웃도는 성장률,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자금 흐름이 맞물리며,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모색하는 투자자들의 시선이 뉴욕과 런던을 넘어 아태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아태 지역 사모대출 시장은 지난 15년간 약 네 배 성장했으며, 2024년 590억 달러에서 2027년 91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이 지역이 향후 수십 년간 글로벌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GDP에서 아태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40%를 넘어섰지만, 글로벌 사모대출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한참 못 미친다. 이 간극 자체가 기회다. 성장의 이면에는 구조적 동인이 있다. 첫째, 은행 대출 중심 구조에서 발생하는 신용 공백이다. 기업 대출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은행들이 규제 자본 요건 강화와 보수적 심사 기준으로 대출 여력을 점차 줄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바젤 III·IV(국제 자기자본 규제)가 자본 부담을 가중시킨 결과, 자본 소모가 큰 중견기업 대출과 특수금융 영역에서 은행의 참여가 위축되고 있다. 아태 지역은 특히 은행 의존도가 높은 금융 구조를 가진 만큼, 이 공백을 사모대출이 메울 여지가 서구보다 크다. 둘째, 인프라와 디지털화에 대한 투자 수요 확대다. 중산층 확대와 소비 성장에 힘입어 인프라, 통신, 교육, 헬스케어, 차세대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본 수요가 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과 그린 인프라 투자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구조적 복잡성과 자본 효율성 측면에서 전통 금융기관이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유연한 구조 설계와 맞춤형 금융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모대출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셋째, 공모시장과 시장 유동성의 구조적 한계다. 아시아는 서구 대비 채권시장 비중이 작고 공모시장 유동성도 제한적이다. 이러한 환경은 사적 금융의 입지를 넓히는 동시에, 투자자에게 보다 유리한 조건과 가격을 확보할 여지를 준다. 비상장기업 비중이 높은 시장 특성상 사모대출이 효과적인 투자 경로로 자리 잡을 여건도 충분하다. 물론 통화 리스크와 법적 불확실성, 유동성 제약은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구조적 기회의 무게가 이를 압도하고 있다. 낮은 시장 침투율, 은행 유동성 축소, 맞춤형 금융 수요 확대가 형성하는 기회는 아직 초기 단계다. 사모대출의 다음 장은 아태 지역에서 펼쳐질 것이다. 히란 와니가세케라 IFM인베스터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각화 대출부문 공동헤드

2026.05.12.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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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의 심리만화경] 노는 것도 기술이다

올해의 5월은 더욱 싱그러워 보이는 듯하다. 아마도 시작과 함께 찾아온 휴일이란 선물 때문이리라. 이 기간 우리 집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다. 하지만 항상 손에는 핸드폰과 컴퓨터가 들려있었다. 이 놂은 괜찮은 걸까? 네덜란드의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 칭했다. 인간은 놂을 통해 관계를 만들고, 규칙을 배우고, 상상력을 키우며, 문화를 만들어 낸다. 놀지 않고 일만 하는 삶을 떠올리면 얼마나 끔찍한가! 그런데 이 중요한 놂을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시간을 써서 공부하고 일하는지에 대해서는 반복적으로 학습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노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어떻게 놀아야 하는가? 심리학에서는 좋은 놂에 대해서 자기 결정성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하곤 한다. 이 이론에서는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자율성)과 무엇인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유능감), 그리고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관계성)이 충족될 때 가장 건강하게 성장하고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노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은 게임이라도 ‘친구들과 전략을 세우며 즐겁게 하는 게임’은 관계성과 유능감을 줄 수 있지만, ‘딱히 할 게 없어서 시작했다가 도파민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새벽까지 하는 게임’은 놂이 아닌 노동이 된다. 같은 운동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즐겁게 도전하는 운동’은 좋은 놂이지만, ‘SNS용 사진을 위하거나 자기 혐오에서 비롯된 운동’은 자기 학대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을 하고 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노느냐가 더 중요한 셈이다. 인간은 원래 놀이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키워온 존재였다. 어쩌면 지금 학생들에겐 죄책감 없이 즐기고 몰입하며 스스로를 살아 있게 만드는 ‘좋은 놂’의 감각을 알도록 해 주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최훈 한림대 교수

2026.05.12.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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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석 만평] 5월 13일

" [email protected] " 박용석([email protected])

2026.05.12.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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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민주주의’

옛 시대 ‘민주(民主)’는 ‘민이 주인’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민의 주인’, 즉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성종실록에는 ‘민주’가 두 번 보이는데, ‘임금’ ‘백성의 주인’으로 번역돼 있다. 고종실록에서는 ‘민이 주인’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에 ‘주의’가 붙은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제도다. 영어 ‘데모크라시(democracy)’를 번역했다. 민중(demo)이 지배(cracy)한다는 뜻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주의’를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굳게 지키는 주장이나 방침’이고, 둘째는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이즘)’이다. 그렇지만 ‘데모크라시’는 ‘주의, 이즘’이 아니다. 군주제의 반대쪽에 있는 하나의 제도다.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로 번역한 건 일본인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다. 후쿠자와는 ‘민주주의’에 앞서 ‘하극상’을 생각했었다.  후쿠자와가 생각하기에 ‘데모크라시’는 ‘하극상’ 같은 것이었다.   후쿠자와가 살던 시대의 일본은 ‘민이 주인’이라는 제도를 인정할 수 없었다. ‘위험한’ 제도여서 사실 그대로 번역하기 어려웠다. 후쿠자와는 ‘민주제’ 정도로 번역하지 않고 ‘민주주의’로 번역했다. ‘데모크라시’를 ‘제도’가 아니라 ‘주의, 주장’으로 변질시켰다. 의도적으로 틀린 번역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우  ‘민주주의’를 오해하는 일은 없는지 모르겠다.우리말 바루기 민주주의 후쿠자와 유키치 주의 주장

2026.05.11. 18:40

[이아침에] 추억이 머무는 동네, 옥인동 일기

3년 만에 서울을 다시 찾았다. 서울은 정말 변화무쌍한 도시다. 경복궁 앞은 한국인보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더 활발하게 거리를 누비고, 세종대왕 동상 앞 대형 스크린에는 입체감이 넘치는 영상이 매 순간 돌아가며 첨단 도시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나는 마치 촌사람이 된 듯 어리둥절해져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을버스에서 내려 전철역 출구를 찾아 헤맨다.   다행히 내가 머문 종로구 옥인동과 필운대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행인지 불행인지 청와대 인근이라 건물을 4층까지만 지어야 하는 법적 규제가 있다고 한다.  천편일률적인 고층 아파트 대신, 빨간 벽돌로 지어진 4층 빌라들이 서로의 앞마당을 마주하며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나는 3년 전과 이번 방문을 합쳐 이곳에서 3주 정도 생활했다. 참 재미있는 동네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골목마다 작은 가게들이 숨어 있다. 커피숍, 빵집, 파스타와 피자 전문점, 설렁탕집까지. ‘손님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나’ 싶지만, 늘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침 7시쯤 골목을 나서면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절로 군침을 돌게 한다. 그 작은 빵집들은 앉을 자리조차 마땅치 않다. 어떤 집은 가게 앞에 작고 귀여운 의자 몇 개를 내놓았는데, 마치 유럽의 노천카페를 모방한 듯하면서도 정겹다. 그곳에서 담소를 나누는 젊은이들의 표정은 마냥 즐거워 보인다. 이 동네는 50~60년 된 한옥들이 여전히 그 자태를 지키고 있고, 대를 이어 사는 사람도 많다.     나는 장충동과 마포 공덕동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왔다. 가끔 옛 동네를 가보면  높은 아파트들이 어릴 적 추억을 모두 뽑아버린 것 같아 씁쓸했는데, 그런 면에서 옥인동 주민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 같다.   골목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마트와 약국, ‘머리깎기’라는 정겨운 간판의 미용실, ‘라 블루’라는 빵집, 그리고 ‘이태리총각’이라는 파스타 집이 있다. 특히 그곳의 파스타와 피자는 미국의 어느 맛집보다 훌륭하다. 한국에 오면 꼭 들러야 할 나만의 맛집 명단 1순위다.   한국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어느 오후, 남편과 시청 앞 마을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였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걷고 있던 젊은 여성이 선뜻 길을 안내해 주었다. 따라가는 내게 아이가 갑자기 먹던 과자를 쑥 내밀었다. 무지개색 꽈배기 모양의 마시멜로였다. 남편은 사양했지만, 나는 고마운 마음에 한 입 베어 물고 정말 맛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한번은 온천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옆자리의 여성이 발바닥을 닦고 있던 도구가 좋아 보여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묻자, 그녀는 자기가 쓰던 것을 선뜻 건네며 미국 가져가서 쓰라고 주었다. 또 오른쪽에서 머리를 감던 여성은 내게 샴푸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순간 뭉클한 동포애가 느껴지며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미국 생활 중에는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한 ‘정’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서울이 너무 그리워 아예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반대하는 남편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은 다시금 크게 동요한다.   미국과 한국, 각기 장단점이 있겠지만 서울 골목골목에서 느낀 이 뜨거운 ‘정’만큼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싶다. 김규련 수필가이아침에 옥인동 추억 동네 옥인동 종로구 옥인동 옥인동 주민들

2026.05.1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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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개스값·물가 올리는 ‘전쟁 인플레이션’

지난 2일 새벽 댈러스 포트워스행 스피릿 항공 비행기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스피릿 항공은 오늘 새벽 3시부터 영업을 중단합니다. 이 비행편은 우리의 마지막 비행입니다. 40년 동안 애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 항공사 하나가 하룻밤에 문을 닫았다. 승객들은 휴지조각이 된 비행기표를 쥐고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수백대의 비행기가 내려앉았고, 1만5000여명의 직원들이 길바닥에 나앉았다. 이 항공사 변호사는 법원에 “최근 연료비 급등으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지속되며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석유는 연료가 아니라 현대 문명의 혈액이다. 핏줄이 마르면 몸 전체가 앓는다.     개스값 상승의 여파는 주유소에서 먼저 느껴진다. 각 가정마다 자동차 1대 당 수십달러에서 수백달러의 추가 개스비를 지출하고 있다. 주유소 가격표가 바뀌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트럭이 멈추면 마트 진열대가 비고, 비료값이 오르면 농부는 씨앗을 덜 뿌린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의 라이언 넌 소장은 이 현상을 ‘전쟁 인플레이션(warflation)’이라 부른다. 최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한 달 사이 1% 가까이 뛰었다. 그는 “숫자는 작아 보여도 그 무게는 가계마다 다르다. 전쟁이 직접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아도, 긴장만으로도 경제는 먼저 무너진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물건 가격이 오를 때와 내릴 때의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유가가 하락해도 마트 가격표는 한참 뒤에야 바뀐다. 넌 소장은 이를 ‘비대칭적 움직임’이라 표현한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고통은 유가 그래프보다 훨씬 오래, 훨씬 깊이 지속된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계층은 저소득층이다. 소득에서 연료와 난방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전기차로 갈아탈 여유도, 유기농 대신 다른 식품을 고를 여지도 없다. 경기 둔화로 일자리마저 줄면 그 압박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   이 충격은 미국 안에서 멈추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이 긴장으로 출렁이면, 한국 자동차 운행이 중단되고, 인도 농촌의 부엌불이 꺼진다. 한국 정부는 이미 기름 부족에 대비해 자동차 10부제를 시작했다. 인도는 요리용 LPG의 상당량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UC리버사이드의 아닐 디올랄리카 박사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예멘, 수단, 소말리아 등 개발도상국들은 식량 위기 한가운데 있다”며 “비료값이 오르면 올해 심은 씨앗이 줄고, 그 결과는 연말 식탁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란 전쟁의 근원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복잡하다. 미네소타대의 윌리엄 비먼 교수는 “이란을 경제적 압박이나 군사적 위협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오류”라고 지적한다. 이란의 주권 의식은 혁명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상대의 역사와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강압만 반복하면, 협상 테이블은 열리지 않고 유가는 계속 오른다.   결국 지금 전세계가 치르고 있는 비용은 트럼프 행정부 외교 실패의 청구서다. 그 청구서는 전투기 조종사나 핵 협상가에게 날아오지 않는다. 휴지조각이 된 비행기 티켓을 들고 당황하는 미국 승객, 10부제로 운전을 못하는 한국 운전자, 비싼 개스값을 고민하는 텍사스의 트럭 운전사, 수확하지 못하는 뭄바이의 노점상, 나이로비의 어머니에게 먼저 도착한다.  전쟁은 항상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굶긴다.  이종원 변호사열린광장 인플레이션 개스값 전쟁 인플레이션 개스값 상승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2026.05.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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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행복통신문] ‘건강한 가정’ 토대는 지지와 소통

 건강한 가정이라고 완벽한 가정은 아니다. 다만 갈등과 스트레스, 실수와 변화 속에서도 가족 구성원끼리 지지하고 의지는 것이 건강한 가정이다. 건강한 가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은 행동과 대화, 그리고 어려운 시기에도 서로를 지지하려는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다.     한인 가정을 비롯한 이민자 가정에서는 가족의 희생과 성취, 인내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치는 매우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정서적 연결과 진솔한 소통의 의미가 간과되는 경우도 있다. 많은 부모가 의식주와 교육, 재정적 지원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지만, 칭찬의 말이나 감정 표현, 깊은 대화는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   어느 가정이든 갈등과 실망, 긴장과 어려움을 경험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함께 극복하느냐에 있다. 가족 구성원이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 도움이 필요할 때 가족들에게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가? 실수를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비난 대상으로 삼는가? 건강한 가정은 가족 모두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며,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환경이다.   건강한 가족을 위한 첫 번째 토대는 서로에 대한 꾸준한 지지다.  지지란 단순히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좋은 일이 있을 때뿐 아니라 힘든 순간에도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지지다. 시험을 준비하는 자녀를  도와주는 것도 학교생활에 대해 들어주는 것도 지지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또  슬픈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로 힘들어할 때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지지가 된다.     자녀가 불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부모는 성적표를 보자마자 화를 내거나 실망감을 나타내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것이다. 부모는 그것이 동기부여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자녀에게 두려움을 주고 정서적 거리감을 갖게 할 뿐이다.  오히려 “아주 힘들겠구나.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반응일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책임감은 유지하면서도 아이를 향한 지지와 동반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자신감과 인내심을 갖게 되고, 가족 관계에 대한 신뢰 역시 높아진다.     이러한 지지는 부모에게도 필요하다. 잦은 감사의 표현이나 집안일을 돕는 것, 그리고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가족 간의 유대감은 훨씬 깊어질 수 있다.    건강한 가정을 위한 두 번째 토대는 열린 마음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소통이다. 많은 가족 갈등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해와 추측,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발생한다. 진정한 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했을 때 즉시 이를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자녀가 “요즘 스트레스가 너무 많고 외로워”라고 말했을 때, “너무 예민하다”라거나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다”는 반응을 하면 자녀는 마음을 닫아버릴 수도 있다.  대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더 이야기해줄래?”라고 묻는 것이 신뢰와 연결의 문을 연다.   가족 간 소통은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 식사 시간에토 휴대폰을 내려놓고 함께 대화하기, 하루가 어땠는지 서로 묻기, 잘못했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기, 갈등이 생겨도 차분히 말하려 노력하기, 가족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며 듣는 태도 등이 그 방법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5분간의 대화, 일주일에 한 번의 가족 식사, “요즘 괜찮아?”라는 짧은 물음도 정서적 안정감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녀도, 완벽한 관계도 존재하지 않기에 ‘건강한 가정’ 역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끼리도 때로 다투고 상처를 주지만 서로 소통하고 용서하려고 노력할 때 가족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아직도 감정 문제나 가족 갈등, 정신 건강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커뮤니티가 많다. 또 부끄러움이나 체면 때문에 어려운 대화를 피하기도한다. 그러나 침묵은 상처를 치료하기보다 더 깊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커뮤니티 단체나 종교기관의 상담을 받거나 믿을 만한 멘토를 구하는 것은 결코 나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이다.   건강한 가정은 완벽함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고, 서로 지지하는 마음을 갖고,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때 가정은 건강해질 수 있다. 오늘 저녁 잠깐 휴대폰을 내려놓고 가족들에게  “요즘 어때?”라고 물어보자. 어쩌면 짧은 대화 하나가 치유의 시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캐서린 염 한인가정상담소 소장가정 행복통신문 건강 토대 가족 구성원들 가족 갈등 가족 관계

2026.05.1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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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정성일 미국 지식재산권의 뿌리:미국헌법의 지식재산 조항(IP Clause)

미국 지식재산권 제도의 출발점은 미국 헌법에 있다. 미국 헌법 제1조 제8항 제8호는 의회가 “저자와 발명가에게 그들의 저작물과 발명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한시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발전을 촉진할 권한”(The Congress shall have Power... To promote the Progress of Science and useful Arts, by securing for limited Times to Authors and Inventors the exclusive Right to their respective Writings and Discoveries)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흔히 지식재산 조항, 즉 IP(Intellectual Property) Clause라고 불린다. 이 짧은 문장에는 미국 특허법과 저작권법의 기본 철학이 압축되어 있다.     첫째, 지식재산권의 목적은 단순히 개인에게 이익을 주는데 있지 않다. 헌법은 그 목적을 “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발전”이라고 명시한다. 즉, 발명가와 저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는 이유는 개인의 창작과 연구를 장려하고,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지식과 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혁신을 촉진하는 제도적 설계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보호 대상은 “저자와 발명가”이다. 저자는 책, 음악, 미술 등 창작물을 만든 사람으로서 저작권의 주체가 되고, 발명가는 새로운 기술이나 장치를 고안한 사람으로서 특허권의 주체가 된다. 여기서 미국 헌법은 창작과 발명을 단순한 사적 활동이 아니라 국가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으로 보고 있다. 개인의 창의성과 노력이 공공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바로 이 지점에서 형성된다.   셋째, 그 수단은 “독점적 권리”이다. 특허권자나 저작권자는 일정 기간 동안 타인이 자신의 발명이나 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배타적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연구하고 창작할 유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권리는 영원하지 않다. 헌법은 “한시적으로” 보장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보호 기간이 끝나면 해당 지식과 기술은 공공의 영역으로 돌아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이 지식재산권의 균형이다. 개인에게는 보상을 주되,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그 성과를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조항에 상표권과 영업비밀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표권은 주로 소비자 식별과 공정한 거래 질서를 위한 제도로서 헌법의 상거래 조항에 근거해 발전했고, 영업비밀은 오랫동안 주법과 관습법을 중심으로 보호되어 왔다.     결국 미국의 특허법과 저작권법은 헌법 속 한 문장에서 출발했다. 1790년 특허법과 저작권법의 제정, 그리고 이후 수많은 발명가와 창작자의 성공은 모두 이 헌법적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지식재산권은 개인의 권리이지만, 그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사회 전체의 발전이다. 이러한 헌법적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 혁신 생태계의 중심에서 작동하고 있다. (공학박사•특허변호사)       정성일미국 지식재산권 지식재산권 제도 지식재산 조항 헌법적 철학

2026.05.1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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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신용융자 36조·레버리지 광풍에 빚투 경고한 금감원

국내 증시 상승이 파죽지세다. 연초 430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가 어느새 8000선마저 눈앞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반도체 수퍼사이클이란 호재 때문이라 하더라도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어제 증시 점검에 나선 금융감독원은 “추가 상승 가능성이 제기되고 유동성도 풍부하다”면서도 “단기매매와 빚투는 주가 하락 시 손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신용융자가 시가총액 대비로는 0.58%에 그쳐 관리 가능 수준이지만, 변동성도 높아지고 있다면서다. 실제로 지금 증시는 곳곳에서 과열 신호가 켜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빚투’와 공매도 대기 물량 급증이다. 신용융자 잔고는 최근 36조원 안팎까지 불어났다. 반면에 공매도 순보유 잔고는 약 28조원에 이르고, 공매도의 선행지표인 대차거래 잔고는 180조원까지 늘었다. 사상 초유의 ‘롱-숏(상승 대 하락)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로 측정하는 버핏지수는 200%를 훌쩍 넘어 미국과 유사한 수준이 됐다.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의 기준으로 봐도 위험 구간에 들어섰다. 또 하나의 과열 신호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광풍이다. 상승에 베팅하는 레버리지 ETF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ETF의 회전율은 70%까지 치솟았다. 투자자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초단기 매매를 반복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다 정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고배율 레버리지 상품까지 조만간 허용한다. 과열 장세에 기름을 붓는 꼴인 만큼 지금은 출시할 때가 아니다. 버핏은 최근 세계 증시에 대해 “도박 열풍이 정점에 달했다”고 경고했다. 최근 1년 사이 세 배 가까이 상승한 한국 증시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과열 양상이다. 큰 걱정거리는 국민연금이다. 최근 증시 급등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은 목표 한도를 10%포인트 이상 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이 자산 재조정에 나설 경우 증시에 악재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의 리스크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꺾이고 증시가 급락할 경우엔 국민 노후자금까지 불안하게 만들 우려도 있다. 당장의 주가 급등에 환호하기보다 위험 관리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

2026.05.11.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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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방통행 불사한다는 국회의장 후보들 자격 없다

향후 2년 동안 제22대 국회 후반기를 이끌어갈 국회의장 후보 자리에 더불어민주당 조정식(6선), 박지원(5선), 김태년(5선) 의원이 도전장을 냈다. 당 소속 의원 투표로 국회의장 후보를 뽑아 온 민주당은 이번부터 의원 투표 비율을 80%로 줄이고, 당원 투표를 20% 반영한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만큼 민주당 경선에서 이기면 사실상 국회의장이 된다. 어제부터 당원 투표가 실시 중인데, 세 후보 모두 이재명 정부 지원을 앞세우느라 중립적 국회 운영이나 야당과의 협치는 뒷전이다. 강성 당원의 구미에 맞추려고 국회의장의 직분을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지내고 대통령 정무특보를 역임한 조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의장은 중립이지만 여당 출신 의장으로서 정부와 손발을 맞춰야 한다”며 입법 과정의 협치보다 속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박 의원 역시 “야당이 위원장인 상임위가 회의를 안 열어 법안 통과가 안 된다”며 협치가 안 되면 단호하게 책임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21대 국회 원내대표로 민주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맡는 과정을 주도했던 김 의원 등은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박 의원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규정까지 바꿔 국회의장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은 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당적을 가질 수 없다.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과 국회의 공정한 운영을 보장하려는 취지다. 2002년 국회법 개정 때도 이 조항 신설 이유를 “의장의 중립성을 보장하고 국회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었다. 과거 국회의장이 권한을 편파적으로 사용하면서 국회가 파행하거나 헌정 질서가 흔들린 경험을 반영한 것이었다. 지금 정치권의 대립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그런데도 국회의장을 맡겠다는 다선 의원들이 여당의 선봉대 역할을 자임하고 있어 개탄스럽다. 의장 후보들은 저마다 개헌안 처리를 공약하고 있지만, 타협이 사라진 국회에서 쟁점이 크지 않은 개헌안도 무산되는 것을 보지 않았나. 여야 간 갈등을 끈기 있게 중재하기는커녕 정파적으로 국회를 끌고 가겠다고 공언하는 이들이라면 국회의 수장이 될 자격이 없다.

2026.05.11.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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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포퓰리즘 공약 판치는 교육감 선거

6·3 지방선거 후보 등록(14~15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 맞춰 시·도 교육감 예비후보들도 얼굴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번에 새로 선출되는 16명의 교육감은 미래 세대의 교육 방향을 결정하는 막중한 권한을 갖고 있다. 한 해 약 80조원의 지방교육재정을 집행하고 교원 인사권까지 행사한다. 하지만 정당 공천을 받지 않아 인지도가 낮고, 초중고에 다니는 자녀가 없으면 관심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금을 지급하는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초중고 신입생에게 현금을 지급하겠다거나 중학생에게 100만원 규모의 펀드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이 나왔고, 매달 교육수당이나 바우처를 지급하겠다는 공약까지 등장했다. 이름은 ‘AI 펀드’ ‘진출지원금’ 등으로 다양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선거를 앞두고 세금으로 현금을 나눠주겠다는 약속이다. 물론 취약계층 학생에 대한 지원과 교육 격차 완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현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식이 과연 교육의 본질과 맞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교육감은 복지 행정가가 아니라 교육 정책의 책임자다. 학력 저하와 교실 붕괴,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시대에 맞는 인재 양성 같은 중대한 과제를 해결해야 할 자리다. 그런데 정작 선거에서는 교육 혁신 전략보다 현금성 선심 공약을 더 내세우고 있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경직된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학생 수가 줄고 있음에도 내국세의 20.79%와 교육세의 일부가 자동 배정되다 보니, 시·도 교육청은 확보된 돈을 어떻게든 쓰고 보자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러고도 쓰지 못한 이월·불용액이 2024년 기준으로 5조원을 넘었다. 교육감 선거는 단순한 지방선거가 아니다. 미래 세대의 교육을 실제로 좌우하는 장이다. 유권자들도 이제는 ‘얼마를 주겠다’는 공약보다 ‘어떤 교육을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비전을 봐야 한다. 현금 살포 공약에 솔깃하면 교육도 포퓰리즘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의 성숙하고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2026.05.11.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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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의 세사필담] 돈잔치 하자는 노조에 뿔난 한국

SK하이닉스가 대박을 터뜨렸다. 하이닉스 구성원들은 물론 반도체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한 천상의 선물이다. 인수 후 10년 동안 한 번의 반짝 경기를 제외하고 불황에 헤맸다. CEO가 주가 총액 100조원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한 때가 2019년이니 7년 만에 1000조원 기업이 됐다. 당시 10년 고투에 대한 보상과 격려가 필요했다. 약간의 성과급과 주식 지급으로 사기가 올랐다. 매출액이 급증했던 2024년에는 영업이익 10조원을 기준으로 10% 성과급이 채택됐다. 영업이익 수십조원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2026년도 예상 영업이익은 200조원. 재조정이 없다면 성과급은 20조원, 직원이 3만4000명이니 연봉 제외하고 1인당 5.8억원에 달한다. AI와 HBM 궁합은 천상의 선물 자본과 과학기술자 고난의 행군 명마는 언제든 대체될 위험 직면 돈잔치는 실직과 기업 파산 초래 1 인당 5.8억원. 부러움도 잠시, 배가 아프다. 하이닉스는 취업 시장 최고 명품관에 들었다. 일등기업 삼성이 가만있을 리 없다. 삼성전자 노조원 7만6000명이 하이닉스 정도의 성과급을 받으려면 예상 영업이익의 15%, 40조원을 웃돈다. 노조는 파업을 선언하고 내부 단속에 들어갔는데, 오늘까지 정부가 중재하는 ‘사후조정’에서 어떤 합의가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대박과 성과급은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영업이익의 15%가 맞는가? 이건 대박의 주역 HBM(고대역폭메모리)을 향한 고난의 집념을 살펴야 한다. 하이닉스 이사회에서 HBM의 존재가 의제에 오른 것은 고작 2022년 말이었다. HBM 혁신을 담당하던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다가 회사를 떠나기도 했지만 하이닉스는 과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반면 삼성은 1% 파생상품에 불과했던 HBM 공정을 파기했다. HBM은 기술혁신의 총아다. 현미경으로 겨우 보이는 8Gb(기가비트) 반도체(DRAM) 12개를 쌓아 집적 기둥을 만들고, 그 반도체 기둥을 2048개 세워 만든 것이 HBM이다. 두께는 950㎛, 넓이는 126㎟크기다. 이것이 엔비디아 프로젝트를 가능케 했고 AI 고용량 데이터 연관기능을 활성화했다. 삼성은 포기했던 공정을 재가동해 HBM4E를 제조하는 데에 성공했다. 단가가 조금 비싸기는 하다. 두 기업의 HBM 시장점유율은 70% 수준, 한국은 HBM 제조왕국이 됐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왜 일본이 아닌가? 한국은 AI 시대 최고의 군마를 조달하는 갑마장(甲馬場)이다. 갑마장 주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옥을 들락거려야 했던 재벌. 일본의 자이바쓰(財閥) 중심에는 은행이 있다. 은행 경영자의 결재를 받아야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할 수 있지만, 한국은 재벌 일가의 결기와 무한 책임이 자금 조달과 투입의 최종 결재자다. 반도체는 엄청난 규모의 설비산업이자 첨단 인력산업이다. 재벌이 없다면 용인, 평택 클러스터 같은 것은 꿈도 못 꾼다. 100만 평에 달하는 용인 클러스터에는 팹(제조공장) 4개가 건설 중인데 팹 한 개에 120조원, 2035년까지 약 600조원을 쏟아야 한다.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노광장비(EUV) 한 대가 5000억원, 팹 한 곳에 수십 대가 설치돼야 공정이 가동된다. 용인과 평택 클러스터 구축 비용은 우리의 2년 치 국가 예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여기에 첨단 인력이 운집한다. 기술연구소와 공정 혁신에 수천 명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인생을 쏟아붓고, 주요 대학과 MOU를 통해 반도체 미래 인력이 배양된다. HBM 흥행 시점에서 가장 먼저 고민할 사안은 이런 것들이다. 2035년까지 클러스터와 팹 구축에 필요한 자금은 충분한가? 기술 인력과 과학자 양성에 전력하고 있는가? 생산 공정을 묵묵히 지키는 노조원들의 복지와 안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시황은 어떤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HBM 수요 폭증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혹시 HBM을 대체하는 혁신제품이 출현해 하이닉스와 삼성의 운명을 뒤바꿔 놓지 않을까? 최고의 명마(名馬)도 언제든지 낙타, 코끼리, 혹은 하마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러면 용인, 평택 클러스터는 일시에 쪼그라든다. 일자리가 날아갈 뿐 아니라 수만 개 협력기업과 일반 주주들도 파산에 직면한다. 영업이익은 법인세, 자본비용, 연구개발(R&D), 판관비, 장비, Opex, 인건비와 인력 수급, 사원들의 복지와 안전, 무엇보다 전략적 미래투자에 쓰인다. 법인세만 해도 24%다. 다시 묻는다. 영업이익 15%가 맞는가? 그것은 미래를 파괴하는 돈 잔치다. 공익에 조금이라도 눈을 뜬 노조라면 이렇게 요구하겠다. 향후 10년 클러스터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라, 그게 우리의 일자리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우리의 연봉은 최상급이니 사원 복지와 협력업체를 돌봐라. 남는 여력이 있다면 성과급을 지급해 달라. 다른 국가처럼 영업이익의 1~3%에 불과할지라도 진심 어린 보상에 최고의 노동을 제공하겠다고. 스웨덴 노조가 그랬다. 당신들의 돈 잔치 요구는 자식들의 미래를 해치고 타인의 피땀을 독점하겠다는 망국 행위다. 한국인 모두가 뿔났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2026.05.11.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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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의 시시각각] ‘잔인한 금융’ 넘어 기본금융으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달 초 SNS에 ‘금융의 구조 시리즈’ 4편을 올렸다. 과거만 보는 지금의 신용평가시스템은 문제가 있고, 잘못 설계된 구조 탓에 은행이 중·저신용자를 배제하고 있으며, 서민 금융기관이 비과세 혜택은 누리면서도 서민을 돕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왜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비싼 이자를 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처음엔 헛웃음이 났고, 신용의 기본을 모르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금융은 도대체 누구를 지키고 있는가”라는 고민으로 이어졌고, “한국 금융은 왜 이렇게 잔인합니까”라는 대통령의 말이 송곳처럼 가슴에 박혀 더는 웃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은행은 “준공공기관”이라는 표현도 썼다. 국가의 면허 위에서 예금자 보호라는 공적 안전망을 등에 업고, 위기 때면 구제금융의 보호를 받기에 완전한 민간 기업은 아니라는 거다. 이 대통령은 며칠 뒤 국무회의에서 “뜻대로 하세요”라며 김 실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보수정부도 은행의 공공성 강조 은행 압박만 말고 시스템 개선을 결국 이재명식 기본시리즈 되나 세월 참 많이 변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도 망하는 시대가 도래하자 은행의 수익성이 중요해졌다. 정부도 2001년 공식 자료에서 ‘금융기관’ 대신 ‘금융회사’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은행도 상업성을 추구하는 엄연한 회사라는 뜻이 담겼다. 하지만 그 후 은행 수익이 많이 날 때마다 논란에 휩싸였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은행 수는 줄었고, 엄격한 ‘면허 비즈니스’라는 진입 규제 덕분에 국가로부터 ‘과점 영업’을 보장받았다. 이런 점에서 은행이 ‘준공공기관’이라는 표현은 어느 정도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다. 은행의 부동산 담보 위주 대출 관행은 ‘전당포 영업’으로 비판받지만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 자체가 규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건전성 규제를 잘못해서 은행이 거덜나면 결국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 미국처럼 주택담보대출을 은행이 아니라 패니메이 같은 기관에서 전담하게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은행을 압박하기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은행의 공공성 강조는 보수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임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은행은 공공재”라며 상생금융을 압박했다. 은행을 준공공기관으로 보는 이재명 정부의 시각은 뿌리가 더 깊다.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부터 키워온 기본사회의 꿈과 연결돼 있다. 2023년 4월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당 기본사회위원회 주최 기본금융 토론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이젠 국민 최저한의 삶을 보장하는 복지가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본사회로 가야 한다.” 그런 기본사회의 한 축을 기본금융으로 봤다. 김 실장은 단순히 금리를 낮춰주자는 동정론도, 위험을 무시하자는 무책임한 이야기도, 은행의 팔을 비틀겠다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3년 전의 이 대통령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능력에 따른 금리 차이는 시장경제 측면에서는 당연하지만 “그건 시장의 입장”이며 “금융은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주권에서 오는 국가 정책의 소산”이라고 했다. 저신용자의 금융접근권을 기본금융 차원에서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 사회가 합의 가능한 수준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하순 민주당은 민병덕 의원 등과 서민금융진흥원이 주최하는 금융기본권 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금융위는 이달 중 ‘포용금융추진단’(가칭)을 출범해 김 실장이 제기한 신용평가시스템 개선과 중·저신용자의 금융 소외 해결에 나선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비롯한 이재명식 기본사회가 기본금융으로 진화하고 있다. 김 실장은 ‘금융의 구조 시리즈’ 직전엔 적극재정을 옹호하며 재정 보수주의를 비판했고, 직후엔 반도체 특수로 인한 역대급 초과세수를 거론했다. 설마 재원 문제로 접었던 기본소득이 다시 논의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일시적 초과세수는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과 성장 동력 발굴에, 그리고 빚 갚는 데 써야 한다. 서경호([email protected])

2026.05.11.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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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저출산 위기는 초등교육 개혁 골든타임

이재명 대통령이 교사들의 현장 수업 기피 현상을 지적하면서 “사고 책임을 안 지려고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교사들은 열악한 현장 실무와 무거운 법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불합리한 점은 개선하고, 각계 여론을 수렴해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라는 취지로 재차 지시했다. 이 논란의 이면에는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공교육 체계의 문제가 있다. 선진국 중 유일한 반일제 수업 초등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하고 교육 내용·방식·과정 재설계해야 한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초등학교에서 ‘반일제 수업’을 한다. 초등학생의 연간 수업 시간은 655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5시간보다 150시간이나 적고, 순위도 최하위다. 이렇게 적은 수업 시간을 메우는 것은 ‘학원 뺑뺑이’다. 90% 이상의 초등학생이 정규수업 후에 사교육 시장을 헤매는 현실은 비정상적인 한국 교육의 자화상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한 원동력은 인적자본이었고, 그 중심에는 교육이 있다. 초등학교 의무교육 도입 당시 가난했던 정부는 모든 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저비용·고효율을 선택했다. 2년제 교육대학을 만들어 교사를 단기간에 양성했고, 공교육 시간은 최소화했다. 교사는 교육을 책임졌고, 학부모는 행사에 동원됐다. 이것은 산업화 시대와 부합하며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2000년대로 접어들며 맞벌이 가정이 보편화했고, 정보화 시대로 변화했다. 변화를 빠르게 느낀 곳은 초등학교다. 학부모는 안전한 학교가 많은 책임을 져주길 원했다. 정보화 시대로 교육 수요도 다양해졌다. 맞벌이 가정을 위해 ‘돌봄교실’이 만들어졌고, 다양한 교육 수요는 사교육이 대신했다. 학교는 오히려 공교육 시간을 줄이며 학생들을 밖으로 밀어내기 바빴다. 심지어 안전사고 책임을 이유로 현장학습마저 기피하며 공교육의 기능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지금 초등교육의 시계는 고장 난 채 멈춰 있다. 올해 초등학교 신입생은 3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아이들 숫자가 감소하는 속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낡은 시스템을 방치하며 문제의식조차 없는 현실이다. OECD 평균을 훨씬 웃도는 교육 예산을 자랑하면서도, 의무교육 도입 시절의 유산인 반일제에 갇혀 있다. 획일화·정형화한 수업방식과 교육과정도 여전하다. 초저출산 현상은 역설적으로 초등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다. 학생 수 감소로 2030년 6만 명가량의 교사 과잉이 발생할 전망이다. 교육 재정과 교사 수를 줄이자는 하책이 아니라 저출산을 계기로 공교육 시간을 정상화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맞게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수업방식과 교육과정도 바꿔야 한다. 시대 변화에 맞춰 공교육이 아이들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는 세계적 흐름이다. 주요 국가들도 초등교육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반일제의 원조인 독일조차 올해부터 전 학년 오후 4시까지 수업 시간을 늘렸고, 학교가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도록 했다. 덴마크는 2014년부터 초등학교 수업 시간과 체험 학습을 대폭 늘렸다. 한국도 초등교육 시간을 정상화하기 위해 전일제 도입을 시도했으나 교육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 대신 손쉽게 돌봄만 늘려왔다. 행정 부담과 학생 피로를 이유로 학생을 학교 밖으로 밀어낸 교육계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사교육의 무한경쟁 시장에서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다양한 교육 수요를 공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 개혁이고, 이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그동안 교육개혁은 대학입시 제도를 바꾸는 것과 동일시했다. 초등교육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었다. 초등교육부터 공교육의 역할을 다시 세워야 한다. 단순히 수업의 양을 늘리는 게 교육개혁의 전부는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른 다양한 교육 내용·방식·과정을 전면 재설계하는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계 눈치만 보던 과거 정부들과 달리 이재명 정부에서는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담대한 개혁을 추진하길 바란다. 교사는 가르치는 즐거움을 회복하고, 아이들은 꿈을 키우며, 부모는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윤숙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초대 사무처장

2026.05.11.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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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환희의 혁신창업의 길] 노벨상감 알아본 선견지명 살려 AI 신약 개발 승부수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104〉 갤럭스 석차옥 대표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인공지능(AI) 협력 협약(MOU)을 맺은 지난달 27일. 협약식 직후 비공개로 이어진 후속 논의 자리에 석차옥(56) 갤럭스 대표가 한국 측 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했다. 23년 차 서울대 화학부 교수이자 국가AI전략위원회 과학인재분과장을 맡고 있는 그지만, 이 자리엔 그보다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그는 2018년과 2020년,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국제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 심사위원으로 ‘알파폴드’를 직접 평가했다. 2년 전 허사비스에게 노벨화학상을 안겨준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의 등장을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다. 국제대회 심사하며 방향 확신 수십 만 개 항체 후보 실험 없이 AI로 암 항체 설계 기술 개발 전 세계 기술 보유사 10곳 안 돼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갤럭스 본사에서 만난 석 대표는 “2018년 알파폴드1을 심사하고, 2년 뒤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알파폴드2를 봤을 때 굉장히 흥분했다”면서 “데이터와 물리화학적 통찰을 결합하는 방향이 맞다는 확신이 섰다”고 말했다. 알파폴드2를 접하기 한 달 전인 2020년 9월 제자 셋과 창업한 갤럭스는 그 확신을 현실에 실현하는 통로가 됐다. 갤럭스는 항암제 등에 쓰이는 단백질 치료제 항체를 AI로 처음부터 설계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회사다. 제자들이 제안해 함께 창업 Q : 제자들과 함께 창업했다. A : “원래 창업 생각이 전혀 없었다. 30년 가까이 단백질 분자 연구를 해왔지만, 산업에서 활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연구가 성숙해지고, 때가 되면 누군가 창업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제자 셋이 찾아와 창업을 제안했다. 훌륭한 제자들과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Q : 어떤 제자들인가. A : “공동창업자는 총 4명이다. 먼저 당시 박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박태용 부사장은 현재 경영과 사업 개발을 맡고 있다. 연구실에 있었던 양진솔·원종훈 전무는 AI 기술 개발을 맡고 있다. 저는 나머지를 맡고 있다고 해야 할까. (웃음) 교수 혼자 창업해서 다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인데, 이들 덕에 지금까지 왔다. 가끔 창업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있는데, 역할 분담이 잘 돼야 하고 사업 모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Q : 2004년부터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병행은 힘들지 않나. A : “물론 쉽지 않다. 한때 학생도 안 받고, 휴직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최근엔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회사는 한 목표에 리소스(자원)를 집중적으로 쏟아붓는 곳이지만, 학교는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훨씬 더 넓은 공간이다. 두 곳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병행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또 타 분야 교수들과 새 관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도 자극이 된다.” 지난 6일 제17회 홍진기창조인상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도 석 대표의 오랜 제자다. 학부부터 박사까지 서울대 화학과에서 배우고 석 대표 연구실을 거친 뒤,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베이커 연구실에서 단백질 구조 예측 AI ‘로제타폴드’ 개발에 참여했다. 서울대로 돌아와 현재 석 대표와 함께 서울대 바이오 인공지능 연구센터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석 대표는 “다른 연구자를 무조건 좇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 연구 철학인데, 백 교수도 그런 면에서 생각이 같다”며 “제자이자 좋은 연구 동료”라고 말했다. 알파폴드 충격, 드노보 개발의 초석 Q : 창업 후 자리 잡기까지는 어땠나. A : “처음엔 기술이 실험실 밖에서 통하는지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쉽지 않았다. 물리화학자로서 기존에 나온 수식이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알파폴드2를 보면서 AI와 데이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2~3년 기술 개발에 집중했고, 2024년부터 드노보(de novo) 항체 설계에서 처음으로 성과를 냈다.” 항체 치료제는 바이러스나 암세포 표면의 특정 분자 부위에 정확하게 달라붙어야 제 역할을 한다. 갤럭스는 AI로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항체를 설계하는 드노보 기술을 개발했다. 전 세계에서 이 기술을 보유한 곳은 10곳도 채 안 되며 국내에선 갤럭스가 유일하다. Q : 드노보 기술은 왜 개발이 어렵나. A : “드노보는 처음부터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기존엔 동물에 항원을 주입하거나 수십만 개 항체 후보를 하나씩 시험해 잘 붙는 것을 골라냈는데, 드노보는 그 과정 없이 컴퓨터로 처음부터 설계한다. 항체는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해야 한다. 암세포와 정상 세포가 공유하는 부위를 건드리면 정상 세포까지 손상된다. 그래서 암세포에만 있는 특정 부위에 딱 맞게 달라붙도록 설계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Q : 투자 유치가 어려웠을 텐데. A : “다행히 초기부터 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투자자가 먼저 찾아왔다. 경제적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고 기술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그 덕이 크다. 사업 모델은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 연구를 시작해 계약금을 받고, 이후 마일스톤과 로열티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아직 이 시장 자체가 초기 단계다. 그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도 지금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 지금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A : “AI는 실제 실험실과 달리 분자를 일일이 정밀하게 다룰 수 있다. 그래서 잘만 되면 기존 실험실 방식이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정밀도를 가질 수 있다. 신약 개발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현재 폐암·유방암·자가면역질환 등 원인이 되는 표적 단백질 15종 이상에서 드노보 항체 설계를 성공했다.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BI)과 공동 연구 계약을 맺은 것도 그 성과의 연장선이다.” 글로벌 무대를 향해 Q : 한국 스타트업으로서 글로벌 무대에서 넘어야 할 벽이 있다면. A : “기술력은 자신 있다. 다만 충분한 네트워크 없이 시작하다 보니, 글로벌 제약사 결정권자와 처음부터 만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미국 실리콘밸리 생태계는 최상위 제약사 관계자를 바로 연결해 주는 구조인데, 우리는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야 했다. 그래도 지금은 돌파하고 있는 단계다. BI와 계약 이후 글로벌 제약사들이 먼저 연락해 오는 경우도 생겼다.” Q : 갤럭스의 궁극적 목표는. A : “신약 개발은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까지 가치 사슬이 다 연결돼 있다. 지금은 신약 개발 초입에 있지만, 전체를 연결하는 사슬에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기술 증명은 됐다. 아직 누구도 완성하지 못한 그 사슬을, 갤럭스가 먼저 잇고 싶다.” 허남구 에임드바이오 대표 갤럭스는 AI를 통해 단백질을 예측하는 단계를 넘어 목적에 맞게 설계하는 시대를 열고 있다. 석차옥 대표는 깊이 있는 과학적 통찰과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는 연구자이자 창업가다. 갤럭스는 이미 뛰어난 기술력과 다양한 협업 성과를 통해 높은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한국 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수영 셀트리온 부사장 갤럭스는 항체를 포함한 고난도 단백질을 정밀하게 설계하고, 실제 공동 신약개발과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해 가며 바이오 AI의 산업적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석차옥 대표는 연구자로서 깊이와 창업가로서 실행력을 바탕으로 갤럭스를 차세대 바이오 혁신의 중요한 주체로 이끌고 있다. 향후 갤럭스가 국내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혁신창업의 길’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창업 대한민국(SNK) 포럼’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합니다. SNK포럼은 중앙일보ㆍ서울대ㆍKAIST를 중심으로 혁신 딥테크(deep-tech)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이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기반한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 이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어환희([email protected])

2026.05.11.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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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의 퍼스펙티브] 전 생애 이민 경로 만들어 ‘제2의 일론 머스크’ 키우자

세상을 바꾸는 최고 수준의 인재는 특정 국가에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지구촌 곳곳에서 균등한 확률로 태어난다. 세계 각지의 천재들을 우리 사회로 끌어올 수 있다면, 이는 국가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압도적 혁신을 자랑하는 미국이 가장 좋은 예다. 미국 7대 빅테크 기업 중 4곳의 최고경영자(CEO)가 이민자 출신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대만계 1.5세다. 세계를 구한 mRNA 백신을 개발한 독일의 우구르 샤힌 부부 박사 역시 튀르키예 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지방에 저렴한 국제학교 수십 개 세워 외국 영재 키우고 박사 후 영주권까지 비자·정착 통합하는 컨트롤타워 필요 노동력을 넘어 ‘이웃’을 받는 전략으로 최근 법무부가 발표한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이다.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고숙련 우수인재 유치 의지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자 제도를 손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한민국이 살아나는, 가슴 뛰는 시나리오를 상상해야 한다. 예컨대, 15세 우즈베키스탄 영재가 장학금을 받고 포항의 국제학교에 입학해 한국어와 영어를 배운다. 연세대에서 학부를, KAIST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후 한국 시민이 되어 판교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45세에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CEO가 된다. 이런 ‘전 생애 경로’가 실재해야 이민자가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동유럽 10대 영재 데려와 키우는 미국 이를 위해 범부처 ‘외국인 인재 마스터플랜’이 가동돼야 한다. 우선 어린 영재를 기숙형 국제학교와 과학고에 받는 게 첫 단추다. 미국의 FLEX(Future Leaders Exchange) 프로그램은 1992년부터 동유럽 10대 영재들을 전액 장학금을 줘 데려온 뒤, 대학과 사회 정착 발판을 마련해주는 방식으로 전 세계 영재들을 자국 자산으로 흡수했다. 이처럼 외국인 인재가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성장해야 정착 가능성이 커진다. 대학은 최고급 인재를 묶어두는 베이스캠프다. 기업에 취업한 인재는 조건이 안 맞으면 언제든 한국을 떠난다. 하지만 대학은 최고급 인재를 안정적으로 묶어두는 베이스캠프로서 대한민국의 연구개발(R&D) 역량에 직접 기여하고 수많은 후학을 양성한다. 대학 캠퍼스가 글로벌 톱클래스의 외국인 교수로 가득 차야 하는 이유다. 1991년 설립된 홍콩과기대는 북미·유럽의 최상급 인재를 영입하고자 파격적인 전방위 패키지를 구사했다. 압도적 연봉, 탁월한 연구 환경, 캠퍼스 내 주거 시설과 자녀 국제학교 입학까지 모두 책임졌다. 그 결과 단 10여년 만에 아시아 최정상급 대학으로 도약했다. 과연 우리에게 이런 비전과 실행 의지가 있는가. 현실은 참담하다. 내가 연세대에 부임하기로 결정하던 날의 일이다. 당시 나는 홍콩과기대 신임 교수 채용 회의에 참여했었다. 홍콩 측은 신임 조교수에게 연봉 2억원과 거액의 주거비를 제안했다. 반면 한국 대학의 연봉은 그 절반 미만이었고 경직된 호봉제에 묶여 있었다. 이 비대칭이 한국이 최고 인재 유치를 놓치는 뼈아픈 단면이다. 지표도 실망스럽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 85%가 졸업 후 한국을 떠나며, 정착률은 15%에 불과하다. 한국 주요 대학의 외국인 교수 비율도 5~10% 수준으로, 50%를 넘는 홍콩·싱가포르와 대조적이다. 인구 750만 명 홍콩엔 국제학교 80개 자녀 교육 인프라는 더 심각하다. 인구 750만 명의 홍콩에 80개 국제학교가 저렴하게 운영되는 동안, 한국은 5200만 인구에 학교 수가 40여 개며 학비도 비싸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이 있는 포항조차 국제학교가 없다. 우리의 민낯이다.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최근 미국은 자국 내 외국인 인재를 향해 사실상 ‘당신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배타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수많은 인재들이 비자 장벽에 밀려 캐나다·유럽·싱가포르 등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치안, 의료, 첨단 인프라, 매력적인 한류 소프트파워를 가진 한국은 새로운 정착지가 될 폭발적 잠재력을 가졌다. 현실의 장벽을 그대로 두고 이 기회를 놓치면 국가적 손실이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외국인 인재의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5대 정책을 제시한다. 첫째, K글로벌 스쿨(Global School) 신설이다. 전국 주요 거점, 특히 지방 도시에 양질의 국제학교 20~30개를 지어 저렴하게 운영하자. 이는 내국인 인재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지방 도시로 이동할 강력한 인센티브가 된다. 이와 더불어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의 초·중등 영재를 데려와 기숙형 학교에서 공부하게 한 뒤 국내 주요 대학으로 진학시켜야 한다. 둘째, 박사 졸업 후 자동 영주권 트랙이다. 국내 주요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재에게 졸업 즉시 거주(F-2) 비자를 준다. 이들이 영주권으로 직행할 수 있게 길을 열어야 한다. 셋째, 글로벌 대학교수 유치다. 대학이 재정 여력을 확보하도록 등록금 동결을 풀고, 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정상급 대학에 10개의 영어 공용 캠퍼스를 지정하자. 낡은 호봉제를 폐지하고 인재에게 파격적인 소득세 감면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K글로벌 탑 인재 비자(Top Talent Pass)의 대폭 확대다.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높은 탑티어 비자 문턱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세계 100위권 대학 석·박사, 글로벌 500대 기업 3년 등 8년 경력,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3배 근로소득’ 같은 요건은 사실상 오지 말라는 뜻이다. 2030년까지 350명을 유치하겠다는 정부의 목표치도 너무 소극적이다. 적어도 그 10배인 3500명은 받아야 한다. 홍콩처럼 세계 100대 대학 졸업생에게는 취업 여부와 무관하게 2년간 체류하며 구직할 기회를 주자. 다섯째, 통합 컨트롤타워 신설이다. 이민청이든 총리실 직속 기구든, 여러 부처로 쪼개진 비자와 정착 정책을 하나로 일원화해야 한다. 나아가 관공서와 은행의 영어 행정을 전국적으로 표준화해야 한다. 모든 이민은 이웃으로 귀결 “모든 이민은 노동력을 찾아 시작되었으나 이웃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처음부터 영구 정주를 계획한 나라는 없지만, 들어온 노동력의 일부는 반드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이민자를 단순한 ‘노동력(Labor)’이 아닌 함께 살아갈 ‘이웃(Neighbor)’으로 대하는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리는 이웃을 선택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저출산이 굳어진 지금, 이 이점을 십분 활용한 전략적 이민 정책이 절실하다. 전 세계 천재들이 앞다퉈 찾아와 평생을 기여하도록 전 생애 경로 시스템을 완성하자. 대한민국이 문화 전성기를 누리는 지금이 글로벌 인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김현철 연세대 의대 교수·인구와인재연구원장

2026.05.11.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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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칼럼] 미국 기업 쿠팡의 배신, 그리고 결자해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친숙한’, ‘국가를 대표할 만한’ 무엇을 일컬을 때 단어 앞에 ‘국민’을 붙인다. 국민 가수, 국민 간식이 한 예다. 이런 기준이면 쿠팡을 국민 기업으로 불러도 손색없다. 지난해 유출된 개인정보가 3370만 명분에 달했으니, 어린이와 고령자를 빼면 국민 대부분이 고객이다. 한국계 미국인 범 킴이 국내에서 창업하고 상장은 뉴욕증시에 했지만, 우리는 창업자를 김범석 의장으로 부르고 쿠팡을 국내 기업으로 대했다. 성 김 현대자동차 사장,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처럼 미국식 이름을 쓰지 않아 더 친근했다. 유출 사고를 계기로 쿠팡은 자신의 정체성은 미국 기업이라고 커밍아웃했다. 사고와 피해가 발생한 한국에서 수사당국·고객과 풀어야 할 문제를 미국 정부에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면서다. 지금까지 쓴 풍성한 로비자금이 JD 밴스 부통령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고위급을 움직였다. 미국에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은 아니지만, 지난해 트럼프 취임식에 상한액 100만 달러(약 14억원)를 기부하고, 올 1분기 로비자금으로만 109만 달러(약 16억원)를 지출한 ‘돈의 힘’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 의장 입국 시 신변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면 한·미 외교·안보 고위급 협의는 없다는 입장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 문제가 한·미 간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위성락 국가안보실장)로 확인됐다. 쿠팡은 차별이 아니라 특혜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대형마트에 대한 새벽 배송 규제는 쿠팡이 공룡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길을 터줬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다. 온·오프라인 통틀어서 유통업계 1위다. 차별받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국회의원들이 쿠팡 대표를 앉혀 놓고 고함 지르기 대회를 연듯한 모습을 본 미국인들은 차별과 괴롭힘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쿠팡 사태의 실상을 알면 트럼프 진영조차 마냥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 보안 관리 부실을 틈타 중국인 직원이 대규모 정보를 유출하고, 쿠팡이 범행에 사용된 노트북을 확보한 뒤 하천에 버려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혐의는 중국으로의 정보 유출을 경계하고 공권력의 권위를 중시하는 미국의 가치관과도 배치된다. 사건 발단의 책임은 전적으로 쿠팡에 있다.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지속해야 할 주체도 쿠팡이다. 일개 기업이 한·미 관계를 흔드는 것은 브랜드 가치에 독이다. 김 의장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박현영([email protected])

2026.05.11.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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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없어서는 살지 못할 부모님 은혜

원불교 교무가 된 지 몇 해 안 되었을 무렵, 신앙심이 깊으신 교도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할머니 교도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교도님의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모녀의 다정한 통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기업인의 배우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이지만, 국내외 어디에 있던지 어머니의 시간에 맞춰 하루도 빠짐없이 안부 전화를 챙긴다고 했다. ‘본받을 만하다, 전화 정도는 나도 해볼 수 있겠다’ 싶어,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오랜만에 전화한 딸의 목소리에 어머니께서는 반가워하셨다. 다음 날은 시간을 맞추지 못했지만 잊지 않고 전화를 드렸다.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하루 사이에 얼마나 이야깃거리가 생겼겠는가. 사흘째 되던 날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야 생각이 났다. ‘전화 정도야’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인데 시간을 맞추는 것은 고사하고, 매일 전화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꽃 같은 출가 발심 난 딸에게 꾹꾹 사랑 담아 쓴 어머니 편지 우뚝 선 큰 산에 큰 부처 되라는 그런데 내 마음을 챙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전화를 받으시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나는 ‘공인으로 내 몫을 다하는 것이 효도’라는 생각으로, 다정한 딸 대신 멀리서 소식으로만 전해 듣는 교무 딸로 지내 왔다. 그런 딸에게 갑자기 사흘 연속으로 전화가 오니, 어머니께서는 반가움보다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앞서셨나 보다. 별일 없다고, 이제 철이 들어서 효도 좀 하려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어머니의 걱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으신 모양이다. 언니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하셨단다. 효도를 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어머니께 괜한 걱정을 드리고 만 것이다. 결국 효도는 못 할망정 걱정을 드리지는 말자는 생각에, 매일 전화 드리기는 사흘간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았다. 이 짧은 경험은 효도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원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는 은혜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이라도 천지(天地)·부모(父母)·동포(同胞)·법률(法律)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네 가지를 ‘없어서는 살지 못할 근본적인 은혜’, 곧 사은(四恩)이라 한다. 사은 가운데 부모의 은혜를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부모님이 계셨기에 이 몸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고, 자력(自力) 없는 몸을 양육하고 사람의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 인류 사회로 이끌어 주신 것 또한 부모님 은혜다. 그러니 힘닿는 대로 심지(心志)의 안락과 육신의 봉양으로 보은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나아가 내가 자력이 없을 때 부모님께 은혜 입은 것을 알아서 힘이 미치는 대로 자력 없는 이를 보호하고 타인의 부모라도 내 부모처럼 보살피는 것이 부모 보은의 길이라고 한다. 또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 부모의 이름까지 빛나게 하는 것, 그것이 효도의 온전한 완성이라 한다. 나는 얼마나 보은하며 사는가를 돌아보다가, 문득 어머니께서 주셨던 편지가 떠올랐다. 처음 출가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을 ‘꽃발신심’이라고 표현한다. 꽃이 피어나는 순수하고 고운 마음을 출가의 발심(發心)에 빗댄 말이다. 어머니께서는 꽃발신심이 난 딸에게 한 글자 한 글자에 사랑을 담아 편지를 써 주셨다. “원래, 진경이는 내 딸이 아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를 피하려고 내 품 안에 의지하였지만 어느새 쏟아지던 소낙비는 그치고 밝은 햇살이 환하게 비추니 진경이는 떠나거라. 가야 할 부처의 길을 즐겁게 가거라. 사랑하는 우리 막내딸.” “진경이는 큰 산이 되옵소서. 크고 높고 넓은 큰 산에 골짜기 깊은 명산이 되어 온 세계 중생들을 한 품에 안으소서. 혼자만 부처 되지 말고 온 세계 중생들과 다 함께 큰 부처가 되옵소서. 우뚝 선 큰 산 명산에 큰 부처 되옵소서. 나는 크고 높은 산 큰 골짜기에 흐르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 되어 크고 아름다운 명산을 항상 촉촉하게 해주리라. 사랑하는 우리 막내딸.” 어머니의 편지를 떠올릴 때마다, 출가할 때의 초발심을 챙기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내게 바라신 것이 당신을 향한 효도가 아니라 진정한 출가자로서 살아가는 것임을 되새기고, 그렇게 살고 있는지 성찰하게 된다. 실버타운에 계신 어르신들을 모시며 부모 보은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오랜만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한진경 원불교 청라교당·더시그넘하우스청라 교무

2026.05.11.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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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장으로 읽는 책] 사람이 죽었다, 모두가 행복해졌다

툭, 가슴 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연결되고 싶었던 나의 미련이었다. 사람으로서, 인간이기에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엄마는 더 이상 내게 인간이 아니었다. -조승리의 『용궁장의 고백』 “부모가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자식을 하느님은 용서해 주실까?”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가족이란 보는 사람만 없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낡은 모텔 용궁장에서 의문의 화재가 발생해 투숙객 전원이 사망한다. 언론은 재난의 희생자들을 애도하지만, 사실 피해자들은 끔찍한 폭력의 가해자들이었다.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해졌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란 허상일 뿐이다. 살기 위해 악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있다. 선악이 뒤엉켜 악다구니치는 삶의 현실을 푹 떠다 놓은, 날 것의 힘에 소설가 장강명은 “머리에 불도저가 쳐들어온다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올해로 마흔인 조승리(사진) 작가는 열다섯 살부터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2003년 복지관의 비대면 수업으로 글쓰기를 배웠다. 지금은 일주일에 사흘은 본업인 마사지사로 일하고 나머지 날에 글을 쓴다. “서쪽 창으로 해가 넘어가는 광경이 보였다. 석양의 붉은 띠가 빌딩 사이로 숨더니 점차 어둠에 잡아먹혔다.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어둠이 빛을 잡아먹는 순간을 좋아했다. 그 파괴적인 풍경이 내 안의 지루함을 잠시나마 달래주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려오자 나는 억지로 끌어 올렸던 안면 근육에 힘을 풀었다. 어둠은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감춰 준다.” 서문 격인 작가의 말도 옮겨온다. “(이 이야기는) 눈물 대신 안도의 한숨이 내려앉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던 어느 장례식장에서 구상됐다. 인간의 가슴 속에는 포악한 어둠 한 점이 산다. 그 어둠은 유독 가깝고 연약한 존재를 향해 ‘인륜’이라는 올가미로 그들을 옥죄고 만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인륜은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다. 천륜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채 각자의 지옥을 버텨내고 있을 이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2026.05.11.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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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의 마켓 나우] 반도체의 다음 도약, 우주가 무대다

스페이스X의 상장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저궤도 위성망을 활용한 통신을 넘어 ‘우주 데이터센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상 데이터센터가 전력 소모와 냉각 문제로 한계에 직면하자, AI 연산의 일부를 우주로 옮기는 시나리오가 현실적 대안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이다. 태양광을 24시간 끊김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우주 환경, 극저온을 이용한 냉각 효율 극대화, 그리고 엣지 컴퓨팅(현장 분산 처리)을 통해 지상과 우주 간 통신 트래픽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우주 데이터센터의 핵심 매력으로 꼽힌다. 하지만 우주 환경에서 고성능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가혹한 도전이다. 지구 자기장에 포획된 고에너지 입자층인 밴앨런대(Van Allen Belt)는 지상 생명체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하지만, 그 아래 위치한 저궤도 위성들은 여전히 우주방사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지구 자기장이 약해 방사선대가 지표면 가까이 내려앉는 남대서양 이상(SAA) 지역을 통과할 때, 반도체 회로는 고에너지 입자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지상의 미세 회로조차 우주방사선에 의한 오작동을 피할 수 없음을 고려할 때, 우주 궤도에서 고성능 서버급 컴퓨팅을 유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난제다. 기존의 반도체 칩을 우주에서 사용하기 위한 기술적 접근은 세 갈래로 나뉜다. 물리적 방사선 차폐(shielding), 설계 단계의 오류 보정, 그리고 복수의 연산 결과를 대조하는 상호 보정 방식이다. 나아가 실리콘 반도체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2차원 초박막 소재를 활용해 우주방사선의 영향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신소재 연구도 병행 중이다. 이러한 시도들이 현실 의제로 떠오른 배경에는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 서로 다른 공정의 칩을 하나로 결합하는 이종 집적 기술은 기존 반도체와 우주용 특수 소자의 융합을 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AI 연산이 자율형 하드웨어를 넘어 우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돌파구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1947년 트랜지스터의 발명 이후, 80여 년 만에 반도체 기술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우주 반도체 기술은 우주·국방용 특수 반도체 시장을 거대한 민간 상업 생태계로 전환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진화를 선도할 인적 자원과 물적 인프라, 탄탄한 후방 산업을 드물게 모두 갖춘 국가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주라는 극한 환경을 미래 반도체 기술로 돌파하려는 연구자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국가 시스템이다. 우주는 이미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시험대이자, 대한민국 산업의 다음 챕터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학과장

2026.05.11. 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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