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성의 시선] 직선제 18년, ‘묻어 가는’ 교육감 선거
교육감 직선제의 첫 무대는 부산이었다. 2007년 2월 14일, 중도 퇴진한 전임자를 대신할 새 교육감을 뽑기 위해 전국 최초로 주민 직접 선거를 치렀다. 언론과 교육계의 이목이 부산에 쏠렸지만, 정작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는 드물었다. 투표율은 15.3%. ‘소중한 1표’를 행사한 유권자가 6명 중 1명에도 못 미쳤다. 역대 최저급 투표율의 원인으로 매체들은 홍보 부족과 서툰 선거운동을 꼽았다. 법 개정 50여일 만에 치러 선거를 몰랐던 시민도 많고, 후보들의 준비도 부족했다. 마냥 비관적이었던 건 아니다. 시간이 흘러 선거가 정착되면 ‘자녀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공감대가 확대될 거고, 투표도 활발해질 거라 기대했다. 재보선 투표율 저조, 20%대 그쳐 인물·정책 대신 단일화가 변수로 교육 정치화 초래…대안 마련 시급 지난 2일, 부산에서 직선제 이후 여섯번째 시교육감 선거가 치러졌다. 교육감의 당선무효형 확정에 따라 실시된 재선거였는데, 투표율은 22.8%에 그쳤다. 18년 전 첫 선거보다 조금 낫긴 하나, 선거 때마다 나오는 직선제 무용론을 되레 커진 듯하다. 투표율을 학교 성적에 빗댄다면 교육감은 낙제감이다. 같은 날 치른 5개 기초단체장 선거 중 1등인 전남 담양군수(61.8%)의 3분의 1에 그쳤고, 꼴찌인 서울 구로구청장(25.9%)보다 약 3%p 더 낮았으니까 말이다. 부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치른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의 투표율(23.5%)도 같은 날 실시한 구청장 선거(부산 금정, 47.2%), 군수 선거(인천 강화, 전남 곡성, 영광 각각 58.3%, 64.6%, 70.1%)에 한참 뒤졌다. 2007년 직선제 도입 후 광역단체장·대통령 선거와 겹치지 않은 교육감 단독 선거가 총 8번인데, 투표율은 죄다 15~26%에 머물렀다. ‘교육자치의 꽃’으로 불려야 할 교육감 선거가 여전히 ‘(시장·도지사 선거에) 묻어가는 선거’란 조롱을 받는 신세란 얘기다. 2006년 12월 여야 합의로 관련 법을 개정할 때와는 딴판이다. 당시엔 정치권 줄대기, 돈 선거, 밀실 선출로 지탄받던 간선제로부터 교육자치를 구출할 대안으로 부각됐다. 시행 15년 동안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지방의회·교육위원회 중심 간선제를 직접 선거로 대체하면 교육의 자율성과 선거·행정의 투명성 모두 높일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지난 18년 간 국민이 목격한 직선제의 모습은 ‘깜깜이 선거’, ‘정당 없는 정당 정치’, ‘무늬만 무소속인 여야의 대리전’에 머물렀다. 교육감 선거의 최대 변수는 인물도, 정책도 아니다. 이념 성향에 따라 진행되는 단일화다. 후보의 관심과 노력도 공약 개발과 홍보 대신 진보 혹은 보수 진영의 ‘단일 후보’ 되는 데 쏠린다. 규칙도, 심판도 애매한 단일화 과정은 정당 경선보다 더 혼란스럽고 혼탁하다. 법은 정당인 출마, 정당 공천, 정당 지지를 금지하나 정작 후보들은 자신을 정당과 연결지으려 안간힘을 쓴다. 학생이 볼까 민망한 ‘색깔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2022년 교육감 선거에도 상당수 진보 후보는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점퍼, 보수 후보는 국민의힘을 연상케하는 빨간색 점퍼를 입고 유세했다. 특정 정당의 ‘텃밭’에선 후보들이 너도나도 같은 색 옷을 입고 다닌다. 직선제가 선거와 교육 행정의 투명성을 높였는지도 의문이다. 지금까지 선거 부정, 특혜 시비, 측근 비리로 법정에 섰거나 수사받은 직선 교육감의 수가 20명이 넘는다. 지난 12일에 선거 재판과 관련한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된 전북교육감의 처남이 숨진 채 발견됐다. 정당 지원도, 조직도 없는 아마추어가 도지사급 선거운동을 하니 선거법을 어기거나 ‘검은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게 민주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투명하지도 않은 직선제를 개선하자는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2년 전 정부와 여당은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야당은 미온적이다. 직선제만 진짜 민주주의라고 믿는 건지, 흠은 많아도 ‘내 편’ 승률이 높아 괜찮다는 건지, 가장 많은 직선 교육감을 배출한 전교조의 입김 탓인지 기자는 잘 모르겠다. 2000년 3월 헌법재판소는 교육위원 선거운동 제한에 대한 결정문에서 “지방교육자치는 민주주의·지방자치·교육자주란 세 가지 헌법 가치를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가운데 민주주의의 요구만을 절대시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간선제 시절 나온 선고이나, 직선제 시대에도 유효한 듯 싶다. 직선제가 직접 민주주의란 이상에 부합하는 방식일지라도 당초 목표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면 더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안타깝지만, 직선제 실험의 실패를 선언하고 서둘러 대안을 모색할 때다. 천인성([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