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테니스 메이저대회 US오픈 여자 단식 4강전 1경기는 ‘미리 보는 결승전’으로 주목 받는다. 99주 동안 세계랭킹 1위를 질주 중인 아리나 사벨렌카(벨라루스)와 3위 제시카 페굴라(미국)가 맞붙기 때문이다.
사발렌카는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미국·2012~14년) 이후 12년 만에 US오픈 여자 단식 3연패에 도전장을 냈다. ‘현존 여자 테니스 최강자’로 불리는 이유다. 대항마 페굴라의 발자취도 만만찮다. 지난 2022년부터 5년간 단 한 번도 세계 7위 밖으로 밀린 적 없이 월드클래스 기량을 유지 중이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미국 여자 선수 중 랭킹이 가장 높아 ‘미국 테니스 간판’으로도 꼽힌다.
페굴라에겐 우승 못지 않게 ‘비운의 스타’라는 달갑잖은 꼬리표를 떼어내는 게 중요하다. 정상급 실력을 갖추고도 메이저 우승 트로피와 인연을 맺지 못해서다. 프로 데뷔 12년차인 그의 메이저대회 최고 성적은 4강(2026년 호주오픈, 2025년 US오픈)이 전부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사발렌카에 막혀 페굴라의 ‘무관 징크스’가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페굴라의 어머니 킴(오른쪽)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아버지 테런스는 억만장자다. AP=연합뉴스
한국 팬들은 페굴라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어머니(킴 페굴라)가 한국계 입양아다.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5세 때인 1974년 미국으로 입양돼 뉴욕에서 성장했다. 1993년 사업가 테런스 페굴라와 결혼했다.
일각에선 페굴라가 간발의 차로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품지 못 하는 이유로 ‘든든한 배경’을 꼽는다. 아버지 테런스는 미국프로풋볼(NFL) 팀 버펄로 빌스와 북미프로아이스하키리그(NHL) 버펄로 세이버스 구단주다. 지난 2014년 빌스를 인수할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 전이던 도널드 트럼프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주목 받기도 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테런스의 총 자산은 118억 달러(약 15조8000억원)로 세계 286번째 부호다.
‘금수저’ 배경 탓에 페굴라는 상대 선수 뿐만 아니라 “테니스는 취미”라거나 “헝그리 정신을 모른다”는 등의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그는 “성장 과정에서 남들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많은 기회를 누린 건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론 부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헤쳐나가는, 남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다”고 강조했다. 평범한 신체 조건(1m70㎝, 68㎏) 탓에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진 못하지만, 정교한 플레이로 흐름을 장악하는 그는 이제껏 대회 상금으로만 428만3469달러(약 57억원)를 벌어 들였다. 부모의 금전적 지원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사발렌카는 대회 3연패를 노리는 여자부 최강자다. AP=연합뉴스
페굴라는 “아버지는 노동자 출신으로 자수성가했다”면서 “항상 ‘어떤 상황에 처해도 포기해선 안 되고, 무엇을 하든 전력을 다하라’고 강조하셨다. 아버지의 가르침이야 말로 내가 물려받은 진정한 유산”이라고 말했다.
페굴라는 사발렌카와의 상대 전적에서 4승 9패로 열세다. 하지만 올해 맞붙은 베를린오픈 준결승에선 2-1로 이겼다. 홈 코트인 US오픈에서 첫 메이저 우승 기회를 맞이한 페굴라는 “사발렌카는 (우승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허들”이라면서 “날카로운 샷과 변칙적인 플레이를 적절히 섞어 내가 가진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