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우정으로 맺은 선택 받은 자매들
이기희
윈드 화랑의 고객 리스트에 첫번째로 꼽히는 Huber 여사는 남편이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대궐 같은 집에서 검정색 털이 비단처럼 빛나는 개 두 마리와 산다. 미스 오하이오 출신인 여사는 잘록한 허리와 세련된 몸매, 한 올 흐트러짐 없는 금발 웨이브가 아름답다. 내가 사는 이웃 동네 이름이 ‘Huber Height’인데 땅 부자인 휴버씨 이름 따서 지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정보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 화랑에는 두 가지 철칙이 있다. 첫째는 고객의 개인 정보를 알려고 하지 않고 유출하지 않는다. 둘째는 고객은 오로지 고객일 뿐 친분(친구 포함)을 쌓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화랑 앞 파킹랏에 차를 세우면 우선 고객이 타고 온 승용차부터 살핀다. 화랑에 들어오면 고객의 시선이 멈추는 작품에 집중한다.
여사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달콤하고 낭만적인 작품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러시아 출신으로 토론토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Figure Painting의 대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Anna Razumovsky의 작품들이다.
여사는 새집을 짓는 중이라며 대저택에 소장할 작품 의뢰를 전적으로 내게 맡겼다.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인 여자의 눈은 반짝였지만 슬퍼 보였다.
안나의 작품은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낭만적이고 구상적인 작품은 전통과 독창성을 바탕으로 여성의 우아함을 포착한다. 안나의 매혹적인 인물들은 르네상스를 연상시키는 아우라를 가지는데 루벤스나 렘브란트와 같은 옛 거장들과 나란히 배치하여도 손색이 없다. 역동적인 기법과 작품의 표현적인 자유로움과 관능미는 신선하게 현대적이며 남녀 간의 사랑과 아름다움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흰 대리석으로 장식한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새 집을 직원들은 ‘작은 베르사유(Little Versailles)라고 불렀다. 집을 완공하는데 5년이 걸렸고 화랑에서 작품을 주문하고 위탁 주문(Consignment)까지 하는데 3년이 소요됐다. 고객으로부터 특별히 주문 받아 제작하는 ‘Consigning Artwork’는 딜러에게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화가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고객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창조하는 일은 고난도의 작업이다.
첫 작품인 여사의 초상화를 중세 여신처럼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화가를 초청해 모델과 이틀 동안 식사하고 소통하며 분위기를 연출하고 사진 촬영을 했다.
문제는 두 번째 작품이다. 두 여인이 마주 보며 우정을 나누는 모습인데 세상에서 가장 믿고 사랑하는 친구라며 타이틀은 ‘선택 받은 자매들(Chosen Sisters)’이라고 했다. 피를 나눈 자매는 아니지만 친자매로 선택한 친구라고 설명했다. 스케치를 위한 사진 촬영에서 만난 친구는 조용하고 평범한 분이었다. 피를 깎는 노력으로 작품은 완성된다. 참된 우정을 나누는 친구는 곁에만 있어도 힘이 되고 말없이 위로가 되는 사람이다.
3년 동안 함께 미술작품을 수집하며 조금씩 여사에 대해 알게 됐다. 날씨가 좋은 날은 화랑에 들리는데 초콜릿을 좋아해서 화랑의 상비품목이 됐다. 재산이 많은 것 빼고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다. 자선 단체들은 후원금을 더 받기 위해 전용 비행기를 보낸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와 프로포즈 받은 순간들, 투병하는 대목에선 눈물이 맺힌다.
‘벗이 없으면 이 세계는 황야에 지나지 않는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이 생각난다. 재물과 명예가 인간의 삶에 위로와 축복이 되지 않는다. 길을 잃고 목이 말라 허덕일 때, 피를 나눈 형제처럼 우정을 나눌 한사람만 있으면 인생은 선택 받은 사람들 속에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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