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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늪에서 헤어나려면

덫에 걸리면 꼼짝 못한다. 발버둥 쳐도 벗어나기 힘들다. 늪도 마찬가지다. 늪에 빠지면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숙이 빠진다. 늪지대는 한번 푹 빠지면 중력에 의해 점토나 모래가 몸과 압착돼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늪’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빠져 들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위협하는 경지를 ‘늪에 빠지다’라고 한다. ‘도박의 늪’, ‘사채의 늪’, ‘유혹의 늪’ 등등 매우 부정적인 단어라서 ‘늪’이란 말은 이미 답이 없다는 뜻이 된다.   살면서 실수나 부주의로 늪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눈 부릅뜨고 살면서 늪에 빠지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 과욕의 끝은 파산이다.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능가하는 과욕은 파멸의 길을 간다.   ‘대박’과 ‘쪽박’은 한 끗 차이다. 한쪽은 웃고 다른 한쪽은 울지만 둘 사이에 공통점은 성공했던 실패했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점이다. 대박 나면 행운의 여신을 믿고 다시 배팅 해서 본전까지 날린다. 쪽박 찬 사람은 자기도 행운이 올 것 같은 조짐에 비비대기로 발목 잡혀 결국 알거지가 된다.   피테르 브뢰헬의 그림 ‘사순절과 사육제의 싸움’(1559, 판넬에 오일, 118cmx164cm, 빈 미술관 소장)’은 두 개의 구도로 나누어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결 양상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사순절(Lent)은 부활절을 앞두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서 겪은 고난에 감사하며 경건과 절제로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카니발Carnival)의 어원인 사육제(謝肉祭)는 고난 기간인 사순절을 맞이하기 전 인간 본능에 맞춰 마음껏 고기 먹고 한바탕 놀자는 축제다.   작품에는 200여명이 등장하는데 왼쪽은 술집 식당 여인숙, 오른쪽에는 교회가 보인다. 방탕한 축제 행렬과 경건, 속죄, 자선, 금식의 행렬이 그림 앞 가운데에서 마주친다. 사육제를 의인화한 인물은 돼지머리와 소시지, 닭들이 꽂혀 있는 꼬치를 들고 술통 위에 앉아 있다. 오른쪽 사순절을 상징하는 수레에는 나무 의자에 앉은 빼빼 마른 여인을 신부와 수녀가 힘들게 끈다. 이마에 재로 십지가를 그린 아이들과 불구자가 뒤 따르고 거지에게 음식을 나누어 준다.   브뢰헬은 이 그림을 통해 종교적 관행에 매몰된 채 사회와 유리된 종교인들의 위선적인 모습과 사순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사순절의 고행을 억지로 따르거나, 반대로 사육제에서 방탕하게 즐기는 신구교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맹목적인 절기 준수보다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작품은 말한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립관계가 아니라 마음 속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치열한 싸움에서 벗어나 영혼과 육신의 부활을 간구하는 사순절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내 금식은 삼 일을 넘기지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흔들린다. 위선과 탐욕의 허울을 벗지 못하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세상의 부정한 것들을 위해 TV 금식, 핸드폰 금식도 생겼다니 약간의 변명이 된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는 좋아하는 주기도문이다.     몸과 마음이 늪에 빠진 것처럼 생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위로를 준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사순절과 사육제 오른쪽 사순절 축제 행렬

2025-04-0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자유가 충만케 하리라

나이 들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것도 많다. 존경 받지 않고 무시 당한다고 서글퍼하지 마라. 존경도 위로도 가을 오후에 스치는 바람이다. 날아가는 방구 잡고 시비거는 꼴이다. 무너지지 않고 도태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살아서 움직여라. 누구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내 인생 내가 산다.   죽은 뒤에 후회할 일 있으면 지금 바로 잡으면 된다. 나쁜 짓 많이 하다 죽으면 바가지로 욕 먹을텐데 변명도 못하고 싸울 수도 없어 속상할 게 뻔하다.   나이 들수록 용감해져야 한다. 주눅 들 필요 없다. ‘운명’이란 단어에 매달려 살았으면 큰 맘 먹고 나이태 숫자만큼 힘찬 발길질로 ‘뻥’ 차서 날려 버려라. 골대 앞에서 내 공을 막을 사람은 없다. 두려워 하지 말라. 누구를 위해 목숨 걸고 살던 시절은 흘러갔다. 내가 없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뜬구름처럼 흘러갔다 해도 빛바랜 일기장을 펼치면 어제의 추억이 먼지처럼 켜켜이 남아있다. 이제 그 흔적을 찿아 길을 떠난다.   인생의 남은 시간은 내 편이다. 남편 자식 친구 이웃, 명예와 물욕, 성공과 좌절, 행복과 불행마저도 타인의 방에서 손을 흔든다. 아무도 내 인생을 닥달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지 못한다. 나이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살아 남았다.   눈물샘이 마르도록 절망으로 허우적거리던 모습을 인생이란 화폭에 그려 낸다면 비록 훈장은 받지 못해도 몇 개의 동메달은 목에 걸 수 있지 않을까.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발목 잡는 실수 범하지 말기를. 사랑이던 미움이던 함께한 순간은 축복이였다. 슬픔도 고통도 사랑의 꽃망울로 피어오른다.   치사하게 살지 않기로 한다. 먹다 남은 음식은 싫으면 버린다. 떠난 사랑을 잊어버리듯 해묵은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죽도록 사랑했던 시간들도 아낌없이 떠나보낸다.   흉내 내지 않고, 고집 부리지 않고, 잘난 체 하지 말고,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는대로 생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사소한 일에 목 매달며 작은 일에 흥분하고 남 일에 참견하는 신경 끄고 소수의 정예 인원만 곁에 두면 사는게 수월해진다,   자식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켜도 크게 유산 남길 처지도 아니면서 서운해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기로 한다.   인생은 싸워서 이기는 투쟁이 아니라 담담하게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는 것.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길을 나홀로 간다. 망설이지 말고 소풍 가듯 김밥 몇 줄 주머니에 넣고 길을 떠난다. 오늘이 이 땅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도 별이 빛나는 길은 슬프지 않다. 간혹 멍 때리며 시간을 낭비해도 된다. 비어 있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위로 받는 시간인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은 망설이지 말고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고마운 사람에겐 예쁜 카드를 보낸다. 인사 못하고 떠날 수도 있으니까.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다듬고 정리하면 마음이 풍요롭고 살아갈 공간이 넓어진다. 부족한 것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넘치는 것들은 주워 담기 힘들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소중한 무엇이 되면 멍에를 벗고 하늘 높이 날 수 있다. 이제 늙을 일만 남았다 생각하면 늙다가 죽는다. 살아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면 자유가 인생을 충만케 하리라.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남편 자식 editions 대표 좌절 행복

2025-04-0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살아있으면 다시 만나리

‘늙은 산 노을 업고 힘들어 하네/ 벌겋게 힘들어 하네/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하얀 구름 한 조각/ 여보게 우리 쉬었다 가세/ 남은 잔은 비우고 가세/ 가면 어때 저 세월 가면 어때 이 청춘’-‘나훈아 작사 작곡 노래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조각’은 2006년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나훈아 특유의 감성적인 목소리가 시적인 가사와 어우려져 인생의 무상함과 세월의 흐름을 슬프고 애잔한 곡조로 가슴 저미게 한다.   오랫만에 조국땅을 밟는다. 고향땅이라고 부르기엔 북극성보다 아득히 먼 곳을 헤메다 돌아온 느낌이다. 모두 떠나버린 부둣가에서 가슴이 깃발처럼 펄럭인다.   뱃고동 소리는 세 차례 울린다고 한다. 떠나는 배에서 들려오는 첫 소리는 잘 있으라는 작별의 뜻이고 두 번째는 잘 다녀오라는 안녕을 기원하는 고동 소리다. 세 번째 뱃고동 소리는 재회를 약속하는 다짐이다.   재회의 약속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비행기가 끝없는 허공을 날 때도 금의환향 돌아올 모습을 생각하며 가슴이 부풀었다. 익숙하던 모든 것들과 다정했던 사람들과 작별해도 울지 않았다. 새로운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낮선 땅 어눌한 언어로 부딫히는 일상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절망하지 않았다. 돌아가야 할 내 땅, 고향이 있는 나의 뿌리는 단단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깊고 맑은 우물과 봄이면 천지를 뒤덮는 비슬산 참꽃, 툇마루에 걸터 앉아 찔레꽃 향기에 스르르 잠이 들면 들 일을 나간 삼만이 아재가 샛노란 고들배기꽃과 아기똥풀 엮어 머리에 화관을 씌워 주었다.   나는 가난한 나라의 공주였다. 비록 멋진 옷과 화려한 치장이 없어도 공주는 울지 않는다. 빌 붙지 않으며 낮은 것과 타협하지 않고 고개 숙이지 않는다.   세월은 믿고 바라는 모든 것들을 바람에 날려 버린다. 원점으로 되돌리지 않는다. 내 것이 남의 것이 되고, 내 땅과 남의 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랑과 미움이 엇박자가 되면서 악함과 선함, 진실과 거짓이 분간하기 힘든 형국으로 바뀐다.   서울에 가면 택시를 즐겨 탄다. 택시 기사는 한국 정세를 밝히는 민중의 지팡이다. 신문 방송 볼 필요 없다. 현실의 맥을 잡는 살아 숨쉬는 생방송 뉴스다.   우리 국민은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두뇌가 명석하고 창의력과 손재주가 탁월한데 얼빠진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곤경에 처한다는데 전적으로 합의 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6천600달러를 기록해 세계 6위를 유지했다.   독불장군은 외롭다. 자기 고집대로 행동한다. 군중 속에 파묻혀 살면서 늘 외로웠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혼신을 다해 싸웠다.   회의 참석이나 사업 관계로 한국을 방문할 때도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시간에 쪼들려 만나기 힘들었다. 조금 벌어지면 점차 사이가 금이 간다.   살아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난다. 노을 베고 누운 구름처럼 이 하늘 저 하늘 떠돌다가 바람이 머무는 곳에 둥지 튼다. 떠나간 사람은 잊었지만 남은 자는 흔적을 품는다. 긴 세월의 떼를 벗고 고교 동창생이 살갑게 일정을 챙겨준다.   수 십 년이 지났는데도 어제 만난 동무처럼 낯설지 않다. 흘러간 시간은 재생이 불가해도 추억의 필름 속에 세월 베고 누운 구름 한 조각 떠오르지 않을까.   늙은 산 노을 업고 힘들어 하기 전에 소녀처럼 까르르 웃을 만남을 기다린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세월 가면 구름 한조각 뱃고동 소리

2025-03-25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대 있음에 내가 있으니

허생원은 젊은 시절 꽤나 돈을 모은 적도 있었지만 노름으로 다 날리고 집도 절도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도는 장돌뱅이다. 하지만 지난날 봉평 물레방앗간에서 마을 처녀와 보낸 하룻밤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무더운 여름 조선달과 봉평장을 파하고 가던 길에 충주집에서 애송이 장돌뱅이 동이와 시비가 붙어 손찌검을 한다. 그날 밤 하얀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것 같이 산골 언덕배기를 수놓고 달빛마저 머금은 몽한적인 풍경 속을 세 사람은 장터로 떠난다. 이럴 때마다 허생원은 그 옛날 봉평에서의 애틋한 추억을 떠올린다.   냇가를 지나다 미끄러져 동이에게 업혀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동이가 왼손잡이인 걸 보고 아들임을 눈치채며 감회에 사로 잡힌다.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은 소설의 영역에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서정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가슴 저미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헤어져도 마냥 슬프지 않다. 긴 겨울 밤 삭풍에 문풍지 해져도 사랑은 얼어붙은 심장에 따스한 피를 돌게 한다.   사랑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해답이다. 사랑은 천만 개의 언어와 백만 개의 꽃송이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의 꽃을 피운다.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쳐도 사랑은 사랑을 위해 길을 터준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내 것이 되는 순간 타인의 존재가 내 삶의 무게와 합해진다. 사랑은 길이가 아니라 무게다. 가슴 뚫고 지나가는 바람이 허수아비라 해도 사랑은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영원히 그대를 기다린다.   산다는 것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발을 땅에 굳건히 딛고 누군가를 위해 빛이 되고 그림자가 되는 일이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함께 있어도 넘치지 않는 사랑으로 서로의 가슴을 끈으로 묶는다.   길을 떠났다. 빈자리를 채워 줄 무엇인가를 찿기로 했었다. 빈 손으로 돌아왔다. 연민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손에 잡힌 연날리기 줄을 놓아버리면 사는 것이 한결 자유로워진다. 뒤척임을 끝맺으면 별들이 어둠과 작별하는 새벽이 온다.   다시 시작 할 무엇이, 사랑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존재하는 것들의 은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해도 그대 있음에 내가 있다면 나의 존재는 살아가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존재(存在)’는 정신적인 ‘존’(存)함과 물질적인 ‘재’(在)함을 포괄하는 단어다.   실존하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 존재는 실존의 객관과 주관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눈을 뜨면 다시 저녁이 오기를, 하루가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픔으로, 기대도 희망도 없이 허무의 일기장에 낙서 하며,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해도 살아있는 것만큼 소중한 기적은 없다.   강력한 부정은 긍정으로 가는 첫 단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사실 만큼 정신적이고 물질적이며 살아가야 할 구원의 희망을 준다.   연결되지 않는 삶은 없다. 사랑은 모든 관계를 잇는 구심점이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듯이 그대 사랑은 절뚝거리며 인생의 먼 길을 걷게 한다.   존재하는 것이 한 때 피어나고 사라지는 꽃잎 송별이라 해도, 메밀꽃 필 무렵 그대 손잡고 꿈결 같은 꽃 길 떠나는 사랑의 흔적으로 남는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그대 사랑 장돌뱅이 동이 가슴 저미

2025-03-1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날갯짓으로 남을 희망에 대하여

절망의 뿌리를 자르면 희망이 돋아날까. 뼈저린 그리움 접어 은쟁반에 담으면 청포도처럼 눈물방울이 영롱할까. 마음 붙여 지낼 방 한칸 없는 타향 같은 고향땅을 이방인처럼 혼자 헤맨다.   어쩌면 태초에 우주에서 떨어져 나온 별인지 모른다. 1000억개가 넘는 은하계 중에서 작은 행성으로 떠돌다가 갈 곳 없어 먼지로 사라지는 이름 없는 별.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 그리워 살별처럼 긴 꼬리 달고 애처롭게 타원형의 포물선 그리며 지구로 떨어지는 별이였을지 모른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카뮈는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가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는다. 인간의 숙명에 직면한 죽음과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인간 존재 자체의 실존에서 드러나는 부조리와 죽음에 대한 성찰에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다.   뫼르쇠의 슬픔이 외부로 표출되든 그렇지 않든 어머니의 죽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동반한다. 다만 뫼르쇠는 슬픔을 눈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부와 타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이방인은 엄마의 죽음, 아랍인의 죽음, 뫼르소의 선고된 죽음을 통해서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뫼르쇠의 거짓 없는 자기 드러내기를 통해서 카뮈는 인간의 삶에서 ‘이방인’이었던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상의 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시지포스의 바위덩어리처럼 인간은 밀어올리기를 죽기까지 계속한다.   타인을 위해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 마주하는 슬픔과 아픔에 징징대지 않기위해 행복을 소품처럼 선반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슬픔이 강물처럼 가슴 적시는 날에는 잘 채색된 명주 한필 뽑아 햇살에 말리며 그대 만날 날을 기다렸다. 그대가 돌아오지 않아도 기다림의 시간은 아름다웠다.   행복은 살아가면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마음이다. ‘행복’이란 단어를 가슴에 간직하고 살면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패랭이꽃처럼 작은 위로를 준다.   새들은 간혹 한치 앞을 못본다. 너무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새들은 유리창이 있는지 인지 하지 못해 머리를 박는다. 유리창에 반사된 풍경을 실제 풍경으로 착각해 목숨을 잃는다. 새들도 인간도 한치 앞을 못 보며 착각 속에 산다.   행복은 전염병이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희망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이다. 멈추지 않는 날갯짓으로 퍼득이며 버티고 살면 종국에는 행복이 선물로 찿아온다.   고통과 상처의 틈바구니 속에서 헤매일 때나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흐느낄때도 행복은 북두칠성 따라 길을 열어준다, 절망에서 희망을 품고 불행에서 행복을 꿈꾸며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날개를 퍼득인다.   지금까지 행복했던 것처럼 다시 행복하게 살기로 한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이기희 날갯짓 죽음 아랍인 실존주의 문학 인간 존재

2025-03-1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행복 찿아 떠나는 길섶에서

돌아오기 위해 길을 떠난다. 돌아올 마음이 없다면 애초에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사는 것이 힘들 때, 고독의 그림자가 발목을 잡을 때. 주름진 생의 고비마다 떠나고 싶었다. 피하고 싶었다. 허무와 방랑의 끝자락에서 그래도 돌아가야할,지켜내야할 무엇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행복인가.   리사가 마지막 내게 남긴 편지 접어 가방에 넣고 여행길에 오른다. 리사는 이제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믿기 어렵지만리사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은 태양이 지고 뜨는 것처럼 확실하게 아프다.   리사는 장애아로 태어났지만 순수하고 착한 천사였다. 퍼즐과 레고 게임 천재고유머가 가득한 멘트로 가족들과 이웃들의 사랑을 받았다. 리사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탈없이 건강하던 리사가 응급실에 실려가기 5일 전에 쓴 편지다.     ‘Mom you deserve to be happy. You are a very special person. Be happy allthe time. Everybody loves you. You deserve happiness always. Thank you,Lisa. (마미는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입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모두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리사)     또박 또박 눌러쓴 편지가 너무 기특해서 냉장고 문에 붙여 놓았더니 리사는 햇살처럼 밝은 미소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것이 리사가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가 됐다.   나를 두고 홀로 떠나는 자신의 죽음을 리사는 감지하고 있었을까.   인생의 길은 수만 갈래다. 여러갈래로 흩어져 있어 가야할 길이 어딘지 알지못한다. 꿈꾸고 염원하는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길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는지 모른다.   어릴 적 연날리기 할 때 연실을 한없이 풀어내야 하는데 기술 부족으로 내 연은 잘 끊어 먹히거나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기 예사였다. 그래도 찔레꽃 넝쿨 앞에 앉아 어질어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취해 졸음을 참던 순간은 따스하고 행복했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살면 살아진다. 청춘은 늙지 않는다. 길위에서 길을 찿는 바보짓이라도 하늘 끝까지 치솟는 연 따라 창공을 나르고 아지랑이 품에 안고 사랑하는 날들은 감미로웠다.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에 집착 했지만 다섯 번째 천하 순행 때 길위에서 49세로 죽는다. 절인 생선을 마차에 실어 그의 죽음을 은폐했는데 진시황제의 최후는 냄새나는 생선과 함께 썩어갔다 .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얻기위해 살아왔던가.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인간에 대한 연민, 삶에 대한 열정과 노력, 나는 그냥 살아왔을 뿐이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없다.’-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리사의 마지막날들을 사랑으로 지켜준 딸과 아들에게 감사 이메일을 보낸다. 리사를 보내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내려 놓고 리사가 남긴 편지의 약속처럼 살기로 한다. ‘I am going to leave the pain and suffering behind on this tripand start anew.’ 길 위에서 다시 행복하기로 했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마지막 편지 everybody loves special person

2025-03-04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과 손이 잉태하는 아름다움

세월은 쉬지 않는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돌아온다. 눈사태로 꽁꽁 얼어붙었던 천지가 밝고 따스한 햇살 아래 녹아내린다. 서글프고 차갑던 가슴이 열리고 마음도 어느새 말랑말랑해졌다. 날씨가 풀리면 몸도 마음도 따스해진다. 봄이 오면 텃밭에 생명을 일구는 푸성귀처럼 세월에 묻혀 살아갈 생각을 한다.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1472-1475, 목판에 유채, 우피치(Uffizi) 미술관)는 성모마리아가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예수의 잉태를 고지 받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가브리엘 천사 날개 깃털의 세밀함과 순결을 뜻하는 푸른 옷을 입은 마리아가 읽고 있는 성서의 펄럭임, 미세하게 떨리는 마리아의 섬세한 손가락 등은 예수의 잉태 사실을 그린 수많은 그림들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에서 사용한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했는데 ‘Sfumato’는 ‘연기처럼 흐린, 흐릿한’이란 뜻이다. 색상 간의 전환을 부드럽게 그려 눈이 초점을 맞추는 영역 너머 초점이 맞지 않는 면을 모방하는 회화 기법이다.   사실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색깔과 톤 사이의 부드러운 전환을 만들어내는 정교한 음양법이다. 주로 밝은 영역에서 어두운 영역으로 선이나 경계 없이 미묘한 단계적 변화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다빈치는 먼 배경의 객체를 흐릿하게 표현하는 대기원근법을 최초로 사용한 화가다. 뒤쪽 사선의 돌 건축물을 통해 시선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이는 투시원근법을 사용했는데 투시원근법은 소실점에 맞춰 선을 연장시켜 입체감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원근법은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으로 옮길 때 일정한 시점에서 본 것을 멀고 가까운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게 표현하는 기법이다.   네이처지가 인류 역사를 바꾼 10명의 천재 중에 가장 창의적인 인물 1위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선정했다. 다빈치는 평생 기술과 과학, 예술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창의적인 노력을 끓임없이 시도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과학자, 발명가, 엔지니어, 해부학자, 음악가, 지질학의 선구자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다빈치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이고 창조를 꿈꾸는 도전자였다. 다빈치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였다. 새가 날 수 있다면 인간도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었다.     다빈치의 천재성은 호기심과 창의성에서 비롯된다. 호기심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행동으로 연결해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새로운 무엇을 꿈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하찮은 작은 일에도 새로운 도전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의 계절은 싱그럽고 아름답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영혼이 손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했다. 뜨거운 영혼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돌이켜보면 아름답지 않는 어제는 없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봄이 오면 호기심 가득한 눈 비비며 대지를 가지각색으로 물 들일 창조자의 손길을 그리워한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살아있는 모든 것이 창조다.   그대 떠나도 세월이 다시 오는 것처럼, 오늘보다 나은 내일 위해 옷깃을 여민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레오나르도 다빈치 잉태 사실 가브리엘 대천사

2025-02-25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 외로움인가

코끝을 향긋하게 맴도는 커피 잔 들고 줄지어 선 나목을 바라보는 시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올 해는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이른 새벽부터 목화꽃처럼 사뿐히 내려 앉는 눈은 뒷마당에 줄지은 나무들을 감싸며 어머니 소복처럼 애잔하다.   서로 부딪히며 엉기지 않고 질척거리지도 않고 지축을 향해 조용히 쌓인다. 멀리 하늘 끝에서 하얀 망또 입은 천사가 보내는 축복을 혼자 맞는 것처럼 마음이 평화롭다.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홀로 맞는 이 달콤한 자유를 얻기까지 얼마나 부대끼며 종종거리고 살았던가.   사업하며 집안 식구와 자식들 챙기고, 일상의 짐에 파묻혀 허덕이며, 인연의 끈에 달려 한치도 뒤돌아볼 틈 없이 달려온 시간들! 사라지고 떠나 간 세월의 끝자락 붙잡고 외로움과 쓸쓸함을 추스리는 일은 어쩌면 복에 겨운 칭얼거림이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눈 밭에 장미꽃 한송이 그려넣는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 가야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첫 문장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시마무라는 부모가 남겨 준 재산으로 무위도식 하며 여행을 다니는 한량이다. 애처롭게 시마무라를 사랑하는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게이샤 고마코, 사랑에 온 몸을 불사르는 아름답고 순수한 소녀 요코.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 이끌려 온천장을 찿아가지만 그녀의 정열적인 애정을 ‘헛일’이라고 외면한다.   ‘설국’은 눈 덮인 풍경을 감각적인 문체로 섬세하게 그려 유한한 인간 존재를 주인공의 내밀한 의식의 목소리로 형상화시켜 허무의 세계 속에 빠져들게 한다.   사는 것이 허망한 날개짓처럼 처량하고,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서 기댈 곳 없어 흐느낀 적이 한 두 번이랴. 무기력과 쓸쓸함, 외로움과 고독은 해 질녁 황혼의 끝자락에 스며드는 땅거미처럼 발목을 잡는다.   ‘고독’은 세상에 나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누구도 나의 슬픔을 달래 줄 수 없다. 스스로 극복하고 견뎌내야 살아남는다. 속도는 줄었지만 깊이 있는 삶, 용량은 줄었지만 무게 있는 몸짓,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는 용기로 벼랑 끝에서 당당해지는 사람은 위대하다.   불세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고 했다.   유명한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마음의 평온과 영혼의 피로를 씻어 줄 수 있는 어떤 작은 몸짓도 소중하다.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데로 살면 두려워할 것도 더할 것도 없다. 외로움이나 고독에 익숙해졌을 때 진정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는 대신 혼자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면 눈이 펑펑 쏱아지는 창밖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포근하고 따스해진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두 손 모으고 하얀 눈더미 속에 작은 불씨 하나 태운다.   여태 향긋하고 따스한 커피가 반쯤 남아있어 인생은 외롭지만 달콤하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외로움 성냥팔이 소녀 소녀 요코 editions 대표

2025-02-1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이 집착이 되면

내 것이 아닌 것은 남의 것이다. 집착은 어떤 대상에 마음이 쏠려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 타인이나 내 것이 아닌 것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현상이다.   과도한 집착은 인간 관계를 무너트리고 불행의 화근이 된다.   사랑이 집착이 되면 종국에는 파멸의 길로 간다. 누군가를 끔직이 사랑하면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집착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니다.   흔히들 사랑이 집착이라고 착각한다. 사랑과 집착은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 자체가 다르다. 사랑이 상대를 배려하고 입장을 존중하는데 비해 집착은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구속한다.   사랑에는 배려심이 포함되어 있지만 집착은 이기심이 포함되어 있는 감정이다. 사랑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해 줄까 끝없이 고민하고 희생하며 노력한다.   집착은 상대방이 고통스럽든 슬프든 상관없이 자기 자신이 행복하면 그만이다. 상대방을 소유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면 그것은 집착이다.   인형놀이가 지루해지면 인형은 버려진다. 사랑은 아끼고 배푸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면 결별이 해답이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도 잊혀진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집착은 불행의 원천이 된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간섭은 자식을 병들게 한다. 부모의 어긋난 자식 사랑과 이기심, 과잉된 경쟁으로 미혼으로 혼밥을 먹고 결혼을 외면하는 자녀들이 속출한다.   토끼나 다람쥐는 새끼가 필요로 할 때는 목숨 걸고 보호하다가 자라면 새끼에 대한 집착을 끊고 각자도생 하게 내버려둔다.   남편은 남의 배에서 나왔지만, 자식은 내 배에서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찌질하다. 자빠지든 엎어지든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쿨하게 대처하는 게 상수다,   ‘헬리콥터 부모’는 헬리콥터처럼 자녀 주위를 빙빙 돌며 전반적인 생활을 간섭하는 부모를 말한다. 자식이 잘 되면 온 가족이 신분상승 하는 것처럼 수다 떠는 부모가 있는 한 자녀들은 사랑과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새장에서 날려 보내라. 돌아오면 내것이고 돌아오지 않으면 애초에 내 것이 아니였다(If you love someone, let them fly out of the cage. If they come back, they are mine. If they don’t come back, they were never mine in the first place.) 내가 즐겨 사용하는 문구다.   사랑은 상대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고 노력한다. 집착은 상대가 고통스럽고 슬프든지 상관없이 자신만 행복하면 만족한다.   나는 생명공학을 전공한 아들이 근무하는 회사 이름을 모른다. 새로 직장을 옮긴 사위 회사 직함을 딸에게 물었더니 딸도 잘 모른단다. 그래도 애들 부부는 알콩달콩 잘 산다. 내 간섭과 보호없이 자기들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도 손주들에겐 애교를 떤다. 알록달록한 발렌타인 카드 사서 눈꼽 만큼 적은 수표 넣어 침 발라 보낸다. 애들이 동쪽 끝에서 서쪽 끝에 살아 늦게 도착할까 봐 우체국에 가서 직접 부친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나이 들면 친구다.   집착을 내려 놓으면 사는 것이 편해진다. 집착은 스스로의 삶에 올가미를 씌운다. ‘치열하게 살다가 편하게 죽는다’가 삶의 목표다. 집착을 버리고 사랑으로 남은 날들을 채워가면 생명이 푸르게 돋아나는 봄이 늘 온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자식 사랑 헬리콥터 부모 회사 이름

2025-02-1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 우연이 필연이 되기까지

어젯밤 꿈 속에 너를 만났다. 너는 왼편 윗쪽에 나는 아랫쪽에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는 닿지 못할 공간이 있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는 모호한 간극이 이승과 저승처럼 우리를 갈라 놓는다. 얼굴이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실루엣으로 서있는 뒷모습 보며 네 이름이 생각났다. 가슴이 널 기억하고 있으니까.   꿈 속에서도 나는 꿈꾼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꿈 속에서 찿아 헤맨다. 소슬바람에 흩날리는 가랑잎처럼 뒹굴다가 어느날 우연히 동무가 됐다. 여태 우정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누구에게 매달려서 정신적인 유대감을 갖거나 외로움 그리움 괴로움 쓸쓸함 같은 단어들로 위로를 받기에는 사는 것이 너무 각박했다.   이국 땅에서 아이 셋 키우며 사업하고 화랑과 창작예술센터를 운영하며 차별 받지 않기 위해 이를 악다물고 버티며 살았다. 사업이나 행사로 한국을 가도 동창이나 친구들에게 연락할 겨를이 없었다. 이국 땅에서 홀로서기는 땅따먹기 할 때 한 발로 뛸 때처럼 고달프고 힘들었다.   친구는 명석하고 너그럽고 이해심 많고 다정했다. 일년 내내 전화 한통 안 하다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에 알려주면 젊은 느티나무처럼 날 기다리며 그 자리에 있었다. 무얼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묻지 않는다. ‘배 고프지. 먹으러 가자’며 소문난 냉면집이나 갈치백반 식당으로 데려가 주린 배를 채워준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너를 마지막 본 지도 유수 같은 세월이 흘렀다. 지친 나의 이국생활을 보듬어 주며 도착부터 출국까지 스케줄을 꿰고 있던 네가 없는 내 나라는 이국처럼 낯설다. 이제 한국을 가면 끈 떨어진 연처럼 나는 펄럭인다.   너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반 평생 넘는 이국 생활에도 자음과 모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사무치도록 집착하는 나에게 ‘꼭 할 수 있다’며 용기와 희망을 주던 친구여. 너의 격려와 믿음이 없었다면 자전소설 두권과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을 출간할 엄두도 못냈을 것이다.   인간이 죽는다는 현상은 필연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 사고(事故)로 죽는 것은 우연이다. E.T.처럼 필연이 우연을 통해서 나타나 필연이 되기도 한다.   어느 한적한 마을 숲속에 우주선이 나타난다. 우주선에서 내린 외계인들은 지구의 각종 표본들을 채취하는데 인간들이 나타나자 서둘러 지구를 떠나고 뒤쳐진 한 외계인만 남게 되고 꼬마 엘리어트를 만난다. 엘리어트는 외계인에게 E.T.(Extra-Terrestrial)란 이름을 붙여주고 형 마이클과 여동생 거티와 끈끈한 정을 나눈다. 그러나 E.T.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야할 몸. 우여곡절 끝에 E.T.는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항상 네 곁에 있을께”란 약속을 남긴 채 지구를 떠난다.   그리운 친구여. 다시 만날 수 없는 작별이여. 우리의 만남은 우연에서 출발했지만 필연으로 남아있다. 별에서 혹은 달에서, 유성처럼 떠돌던 두 물체가 지구에서 만나게 되듯이 필연은 항상 우연을 동반한다.   인생은 우연히 태어나서 필연적으로 죽는다. 아인슈타인은 ‘우연은 신이 익명을 유지하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는다 해도, 달과 별이 빛나는 밤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사랑을 꿈꾼다. 찰나의 만남이라 해도 그 곳에 우리가 있었기에 행복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이국 생활 꼬마 엘리어트 외로움 그리움

2025-02-04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 별이 빛나는 밤에는, 사랑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P.85) 중에서.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 청년 괴테의 대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청춘의 열병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젊은 날의 생명감 넘치는 순수한 열정에 담아 사랑의 열병을 앓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을 울린 작품이다.   괴테는 25세 되던 해 봄, 약혼자가 있었던 샤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괴테는 자신의 체험을 엮어 불과 14주 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했다. 출간 되자마자 젊은 독자층을 감동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는데 젊은 남자들은 베르테르처럼 노랑 조끼에 파랑 상의를 입었으며 실연 당한 남자들이 베르테르처럼 자살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랑은 우주 탄생의 빅뱅처럼 찰라의 순간에 포착된다.   지구는 태양이라는 별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크고 작은 암석들이 뭉치면서 1억 년 정도의 긴 과정을 거치며 행성이 된다.   사랑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지상에서 천국까지 한 순간에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슬프고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노래한다. 별에서 온 이름 모를 그대를 만나 단 한 순간에 사랑에 빠지고, 억겁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날개짓에 운명을 묶는다.   피할 수 있었다면, 돌아설 수 있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불장난이다.   테풍의 눈은 고요하고 잔잔하다. 창공에 떠 있는 오아시스 같다. 비는 멈추고 바람은 잔잔해지고 태양이 빛을 품으며 푹풍의 울부짖음은 멀어진다.   하지만 이 평화는 속임수다. 태풍의 눈은 잠잠한 폭력의 영역이다. 이곳의 기압은 주변보다 훨씬 낮아 급격한 압력 변화를 일으킨다. 태풍의 눈은 폭풍에 자각을 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폭풍의 혼란 속에서도 고요함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고요함 속에는 파괴와 위험이 숨어 있다.   사랑은 태풍처럼 무서운 힘으로 눈과 귀를 멀게 한다. 사랑의 회오리 바람에 좌절 하지 않기 위해서는 태풍의 눈과 같이 침착함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은 진심으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자신의 모든 걸 내 줄 수 있는 감정을 나누는 일이다. 계산을 하거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사랑이 아니고 흥정이다.   사랑은 증오와 더불어 인간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의 크기와 파동이 거대해서 사랑에 빠지면 이성이 마비되고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영원히 아름답고, 끝나지 않는 사랑은 없다. 평생토록 함께 동행하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별을 전제로 하는 한시적인 만남일 뿐이다.   베스비오 화산 폭발로 18시간 만에 폼페이 도시와 2만여명의 사람들이 4미터 깊이의 화산재에 묻힌다. 폼페이 최후의 날 사랑하는 두 남녀는 부둥켜 안고 죽음을 맞는다. 재가 되어도, 찰라라고 해도 사랑의 흔적은 남는다.   황량한 인생길에서 사랑은 떠돌이 별로 모여 어둔 하늘을 은하수로 가득 채운다.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 생각난다. 밤하늘 별처럼 손에 닿지 못해도, 별이 빛나는 밤에는 지나간 사랑을 노래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어둔 하늘 청년 괴테 폼페이 최후

2025-01-2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 세월의 꽃반지 끼고

살아온 모습 그대로 살기로 하다. 사랑하며 살기로 한다. 조금 허물어져도 나를 아끼며 다독거리기로 한다. 온갖 좋은 것 다 챙겨 먹고 죽자고 운동해도 죽을 사람은 죽는다. 태어난 날은 알 수 있지만 죽는 날은 아무도 모른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는 영원히 살기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고 국고와 인력을 낭비했는데 남아있는 진시황릉의 유물과 규모를 가늠하면 진시황의 집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말년에 미신에 빠져 국고를 탕진하고 수은을 불로불사 약인 줄 알고 먹어 생명을 단축하는 비참한 결과를 얻게 된다.   모든 사무를 직접 결제했는데 매일 처리한 공문이 죽간으로 120근가량이었다니 일중독 스트레스가 심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재패한 천하를 둘러보기 위해 다섯 차례나 전국 곳곳을 순시했는데 다섯번째 순행 도중 50세의 나이로 객사한다.   황제의 죽음을 숨기려고 시신이 있는 수레 옆에 절인 생선을 운반하며 시체 썩는 냄새가 들키지 않게 했다. 평안하게 제 명에 죽는 것도 축복이다.   요즘 혼란한 시국을 보며 민초로 사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높은 자리에 있지 않으니 아래로 추락할 일 없고, 탐욕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니 빼앗길 일 없고, 권력을 탐하지 않았으니 수갑 찰 걱정도 없다. 남길 유산이 넉넉하지 않지만 자식들이 우애있게 지내며 의리 상할 염려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모두 늙고 누구든 죽는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건강한 사람 늘 골골대는 사람,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한평생 살아온 생의 도표를 그려보면 그게 그거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둥근 달처럼 복스럽던 얼굴도 주름이 패이고 초롱초롱 빛나던 눈빛도 가을 오후처럼 스산해졌다. 백옥 같이 곱던 손도 힘줄이 드러난다. 거울 보다가 한심해서 “눈밑에 쳐진 주름 수술받을까” 딸에게 슬쩍 물었더니 “그냥 우아하게 늙어요”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 우아하게 나이 먹기 위해서, 어떤 건강식을 먹고, 운동은 뭘 하고, 어떤 옷으로 치장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하다가 빨리 늙을 판국이다. 생긴대로 살다가 생긴대로 늙어 죽기도 힘든 세상이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웠던 추억(중략)/ 생각난다 그 바닷가/ 그대와 둘이서 쌓았던 모래성/ 파도가 밀리던 그 바닷가도/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웠던 추억- 은희 ‘꽃반지 끼고’ 중에서   젊음의 꽃밭에서 그대를 만난 시간은 축복이였다, 청춘의 날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불로초의 꽃말이다. 세월의 흔적 지우며 그대가 준 민들레 꽃반지는 시들지 않고 영원히 가슴 속에 피고 진다   나이는 필수, 행복은 선택이다. 늙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선택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다.   나이 들면 스스로 자기 얼굴을 만든다. 나이 먹어도 밝은 얼굴 선한 인상으로 호감을 주면 ‘늙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이에 매달려서 웅크리며 초조해하지 않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모습 그대로 멋지고 우아하게 살 작정을 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꽃반지 민들레 꽃반지 자기 얼굴 일중독 스트레스

2025-01-2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은쟁반에 구르는 포도알처럼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부질없는 위로가 아니다. 어느 천지에 볕들 날을 기다릴까 고심했는데 드디어 작은 햇살이 보인다. 무작정 기다린다고 쥐구멍에 볕이 안 든다. 캄캄한 쥐구멍에 웅크리고 빛이 들기를 기다리는 건 바보짓이다.   ‘노력은 성공의 아버지’라 굳건히 믿고 활용할 모든 지혜와 방법을 동원해 희망의 빛이 보이는 쪽으로 헤쳐나가면 끝이 보인다. 궁지에 몰려도 살길을 찿으면 산다.     새해부터는 정말 하고 싶은 것, 꼭 필요한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찿아 세월 속에 묻힌 유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한다. 자식과 가족, 타인이나 친구를 위한 염려를 접고 인생의 지도를 새로 그리기로 한다. 인생의 후반기에 적합한 색깔의 깃대를 꼽고 남은 시간 나를 위한 일에만 열중하기로 한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무심하게 스쳐간 세월 속에 파묻혀 흔적조차 사라진 내 모습을 복원하기로 한다. 크게 이룩한 부와 명예도 없고 남보다 특출하게 잘나고 내세울 것이 없지만 열심히 살아왔던 흔적들은 여기 저기 남아있다. 뒤돌아볼 시간도 없었고. 내일을 염려할 여유조차 없어, 매일 씨름하듯 싸우며 살아왔다.   가족과 아이들 챙기고, 사업에 몰두하며 고객들 돌보고, 이웃과 친구, 동료들 틈바구니에서 욕망을 실은 전차는 바퀴가 닳도록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부를 축척하기 위해 레스트랑 체인을 운영하고, 돈을 벌기 위해 화가의 꿈을 접고 화상이 되었다. 차별의 벽을 넘기 위해 현대미술 화랑을 열고 창작예술센터를 건립하고 아트스쿨을 개관했다. 발뒤꿈치에 피멍이 들도록 아트쇼를 드나들며 안목을 키우고 결코 뒤지지 않을 다짐을 했다. 절벽 끝에서 이판사판 살아남을 이유는 충분했다. 남의 땅이지만 뿌리 깊은 나무로 자라고 싶었다.     내일은 없다. 내일의 태양은 영원히 뜨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오늘 이 순간 찬란한 빛을 가슴에 품지 않으면 내일의 태양은 없다.   격투는 끝났다. 인생의 전쟁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이들은 학업을 마치고 짝을 만나 결혼해 손주 둘씩 낳아 가족사진에 숫자가 늘었다. 손주들은 이기적인 유전자 덕분에 만나면 그림공부 하자고 졸라댄다. ‘할머니!’라고 부르는 애들의 목소리가 은쟁반에 구르는 포도알처럼 달콤하다.   인생에는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다. 각자의 펼쳐진 길 위를 걸어왔을 뿐이다.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될까 두려워서 앞만 보고 그냥 달려왔다. 생의 후반기는 허비할 시간이 없다. 지난 날들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말기! 남은 시간이 부질없고 안타까워 넋놓고 살면 두려움의 그림자가 커진다.   겁도 없이 무작정 설치던 청춘의 시간은 찬란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장수처럼 적을 무찌를 준비가 돼 있던 장년은 풍성하고 싱그러웠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꿈도 희망도 사라진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사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절벽 위에서 혈투가 벌어져 수십길 낭떠러지로 떨어져도 주인공은 구사일생 살아남는다. 목숨을 구걸하지 않을 결심을 하면 남은 시간은 축복이다.   폭풍이 지나간 언덕에도 태양은 찬란하게 빛나고 꽃은 피어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를 위해 새로운 출발을 꿈꾼다. 욕심 부리지 않고 자랑하지 말고, 머리 숙이지 않고, 작은 뿌리로 남아 봄을 꽃피울 나무 한그루 찿아나선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은쟁반 땅이지만 뿌리 나무 한그루 손주 둘씩

2025-01-14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허투루 살지 말기

절망이 나락으로 바뀌면 끝없이 아래로 추락한다. 나락은 지옥을 뜻하는 불교식 용어로 밑이 없는 구멍이다. 나락은 산스크리트어인 “나라카(Naraka)”에서 유래했는데 불교의 여러 지옥 중 하나다. 죄를 짓고 심하게 괴로운 세계에 태어난 중생이나 그런 중생이 사는 곳으로 철위산의 바깥 변두리 어두운 곳에 있다고 한다.   나락은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나락(奈落)으로 떨어졌다’는 표현은 절망적이고 극한 상황에 처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절망이 생을 나락으로 몰고가도 밧줄을 부둥켜 잡고 있으면 밑바닥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아둥바둥 부대끼며 살아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오늘을 버티면 내일이 올 것이란 믿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고난의 끝이 보인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도 살기로 작정하면 살아남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지푸라기 잡을 힘이 있는 한 어떤 불행과 고통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치 못한다. 체념하지 않고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면 살아 남는다.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 살아 있는 모든 것, 마주하는 사람들의 정겨운 눈망울, 드라이브에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치워주는 다정한 이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순간들은 작은 기적의 징표다. 기적은 기적을 믿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크고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살뜰하고 정겨운 만남으로 매일 일어난다.   ‘허투루 살지 않기’가 새해 좌우명이다. 아무렇게나 되는 데로 살지 않기로 한다. 인생 후반부에는 바겐세일을 기다릴 시간 없다. 사는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덧셈보다 뺄셈을 잘 하는 것이 인생을 수월하게 만든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바보짓이다. 서두르지 말고 주저하지 않고 말 할 수 있을 때 ‘사랑한다’ 고백하고, 형편 될 때 가족 친구 이웃들과 밥 한끼 나눠 먹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자식에게 재산 줄 생각 말고, 나를 위해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고,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 만들어 실행에 옮기는 것이 정답이다.   그동안 잊었거나 미뤄왔던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메모지에 적는다. 겨울학기에 컴퓨터 클래스와 영작문법에 수강 신청을 했다. 젊은 애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공부하면 사그러지는 청춘과 열정이 다시 용솟음칠지 모른다.   미국 국민화가 그랜마 모지스는 78세에 그림그리기를 시작해 1600여점을 그리고 250점은 100세가 넘어 완성했다. 내게도 충분히 도전 할 시간이 남아 있다.   외국에 오래 살면 한국어도 아리송하고 영어도 잘 못해 외계인 취급 받는다. 무식이 유식을 이긴다. 세월이 가면 유식도 무식의 반열에 오른다. 모르면 밀린다. 자식에게 밀리고 나이 때문에 밀린다. 미룰 시간의 여유가 없다.   허투루 살면 뒤죽박죽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산다. ‘허투루란 ‘남을 속이기 위하여 거짓으로 꾸미는 겉치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실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 꾸며, 상대를 속이는 뜻으로 사용된다.   세상 모든 사람을 속여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살면서 제일 슬픈 일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냉장고에 남은 음식은 먹기 싫으면 과감하게 버리고,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과는 작별하고, 나를 위해 꼭 하고 싶은 일에 올인하며, 푸른 뱀띠 해를 싱그럽게 시작할 작정을 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불교식 용어 인생 후반부 눈망울 드라이브

2025-01-07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 한겨울, 그래도 봄은 온다

살면 살아진다. 사는 것이 모질어도 견디면 살아남는다.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았는데 폭망하고, 한치의 희망도 없이 막막하던 일들이 풀리기도 한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산다. 세상만사 뜻대로 순리대로 되지 않는다.   한 해 마지막 날이면 고객들과 칼럼 독자,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로 송부할 카드를 이메일이나 문자로 보낸다. ‘당신의 새해가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고 번창하는 날들 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쓴 카드를 고쳐서 ‘슬픔과 아픔을 참고 견디며 새해에는 찬란한 봄이 충만하기를 간구합니다.’로 적어 보낸다.     청천벽력 같은 비상계엄과 무질서한 정국, 총체적 위기에 빠진 나라를 살리기는커녕 당파 싸움과 이념전쟁으로 끝없는 혼란이 지속된다. 이 판국에 무안공항에서 항공기 추락 사고로 179명이 사망한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그 충격적인 현장 장면은 모든 사람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상처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공개한 탑승자 명단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휴가 시즌에 가족 단위로 여행을 떠난 승객들이 많다. 80세 아버지 생신을 맞아 18명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A 씨는 3시간 전 일찍 출국해 목숨을 건졌다. 17명의 생명을 앗아간 악몽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운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뿐 아니라 할아버지 생신이라고 따라온 6세 여자 꼬마아이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여행한 18명 중에 혼자 살아남았다” “왜 고통은 저의 몫이냐”며 참담한 괴로움을 토로했다.   ‘세상 모든 일들이/ 되다가도 안 되고/ 슬퍼하다 웃다가/ 하늘보면 둥근 해/ 이 한 세상 산다는 거/ 생각하기 달렸는데 (중략)/ 인간 세상 이런저런/ 할 얘기도 많다지만/ 어느 세월 그 많은 말/ 하고 듣고 보내겠소 (중략)/ 세상 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 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 -송골매 ‘세상만사’ 중에서.     세상만사 덧없음을 되새겨도 충격과 슬픔은 가라앉지 않는다. 외신들도 “한국이 최근 발생한 계엄사태와 잇단 탄핵으로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 최악의 여객기 사고까지 더해졌다”며 “이번 사고가 한국이 잇따른 권력 이전을 둘러싼 정치적 격변 속에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미국 국적이지만 태어난 나라가 나의 나라, 내 조국이다. 국가의 안위를 지키고 법과 질서를 따르고 절약과 근면으로 버티며 사는, 착하고 성실한 국민이 있는 한 비상계엄과 탄핵의 소용돌이를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봄은 온다. 꼭 온다. 폭풍이 몰아치고 천지가 개벽하고 겨울이 몸서리치게 잔혹해도 봄은 다시 돌아온다.     늦가을 가지치기 한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로 죽은 듯 서 있다. 혹한과 눈보라에 죽었나 가지를 꺾어보면 못 버티고 말라 죽은 것도 있고 푸르른 빛 감도는 여린 나무가지도 있다. 뿌리만 썩지 않으면 생명은 싹을 틔운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초반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함께 이내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진다. 건반 위에서 섬세하게 혹은 춤추듯 우아하고 로맨틱한 임윤찬의 손가락 사이로 봄은 온다. 가지를 흔들고 생가지를 꺾어도 뿌리만 살아있으면 생명의 꽃 피운다. 뿌리는 민심이다.   절망과 혼돈 속에서도 봄은 온다. 민주주의의 승리로 꽃 피는 ‘민족의 봄’이 온다.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한겨울 비상계엄과 탄핵 세상만사 덧없음 정치적 혼란

2024-12-3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세월이 지나간 풍경

지나간 것들은 그립다. 고향집 마을 옹기종기 붙은 삼거리 초가집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은 텃밭에서 돋아난 버섯처럼 동그라미를 그린다. 먼 산 봉우리에 살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비슬산을 감싸고 지천으로 핀 참꽃(진달래)은 핏빛 사랑을 품고 광활한 참꽃군락지를 이룬다.   삼만이 아재는 땔감을 장만하러 산에 갈 때마다 참꽃 한아름 꺾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옥이 언니는 양지 바른 툇마루에 날 앉히고 ‘꼬마 공주님’ 하며 머리에 참꽃을 매달았다. 왠지 가슴이 떨려 왔다. 하모니카 불듯 꽃잎 따서 입 안에 넣으면 쌉쌀하고 달콤한 향기가 혀 끝을 맴돌았다.   ‘늙마에 미국 가는 친구/ 이메일과 전화에 매달려 서울서처럼 살다가/ 자식 곁에서 죽겠다고 하지만/ 늦가을 비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인사동에서 만나/ 따끈한 오뎅 안주로/ 천천히 한잔할 도리는 없겠구나./ 허나 같이 살다 누가 먼저 세상 뜨는 것보다/ 서로의 추억이 반짝일 때 헤어지는 맛도 있겠다’-황동규 ‘이별 없는 시대’ 중에서.   시인은 스코틀랜드 위스키 발렌타인을 좋아한다. 나는 술을 전혀 못 마시지만 서울 갈 때 가끔식 여행 가방 속에 발렌타인21을 챙겨 간다. 선생님은 소중하게(?) 아껴 드시고 반쯤 남으면 뚜껑을 닫아 주머니에 넣으신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건 그냥 수양버들에 묶인 그네가 하늘 높이 나는 신선한 자유로움이다.   ‘이별 없는 시대’의 ‘늙마’는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 마종기다. 마종기 시인은 1965년 군의관으로 군 복무 중 ‘한일 굴욕외교 반대 재경 문인 82인 서명’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미국으로 추방되듯 이민을 간다.   마종기 시인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진단방사선과 전문의를 거쳐 톨리도에서 방사선의사로 역임한 후 은퇴했다. 주립대학 시절 타계한 친구 기일이 오면 4시간을 운전해 꽃을 들고 우리 동네에 있는 데이빗 묘지를 찿아왔다.   ‘지금도 아빠를 기억하는 친구 있을까?/ 없어도 친구가 있으니까./ 기억도 못 해 주는 친구는 뭐해?/ 내가 사랑하니까. (중략)/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거야?/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느니까.(중략)/ 오래 전 고국을 떠난 이후 쌓이고 쌓인 눈으로 내 발자국 하나도 식별할 수 없는 천지지만 맹물이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난다. -마종기 ‘대화’ 중에서 아픔과 고통, 사랑과 미움, 이별과 그리움은 살아있는 동안 넘치는 축복이였다. 사라져 별이 되는 순간에도 언약의 말들은 사랑의 끈을 놓치 않는다.   ‘누군가 조용히/ 풍경 속으로 들어온다/ 하늘가에 별이 하나 돋는다’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의 존재론적 의미를 ‘홀로움’이라는 새로운 경지로 승화시킨다.   바람이 매섭게 심장을 헤집고 폭풍이 몰아치는 날에도 그대가 풍경 속에 있기에 외롭지 않았다. 찬란했던 시절. 그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걸어가면 눈물이 방울져 내리는 내 손에 안개꽃 한아름을 건네준다.   세월이 지나간 풍경 속에 따스한 햇살로 남은 그대여! 다시 만날 수 없다 해도 작별이 끝이 아닌 것처럼, 사랑이 재가 될 때까지 불꽃으로 타오르기를.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친구 마종기 마종기 시인 그네가 하늘

2024-12-24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무엇을 남길 것인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빈 말이다.     옛날 조상들은 호랑이는 죽은 후에도 가죽을 남겨 물질적 가치가 있다는 말인데 요즘 호랑이 가죽을 귀중한 자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름을 남긴다는 건 죽은 후 명예나 업적을 칭송 받는다는 뜻이다. 속담의 본 뜻은 삶의 가치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명예와 업적,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남긴 행위와 업적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추억으로 남는다. 세월이 흐르고 생의 굴레를 벗어나도 기억의 문턱을 너머 서면 작은 파도의 진동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꽃이 피는 날에는 찬란한 빛깔의 호랑나비로 동그라미 그리며 코발트 빛 하늘을 맴돌고 꽃잎 지는 때에는 고추잠자리 되어 억새풀에 지친 몸을 기댄다.     만나고 나눠지는 것이 생명과 소멸의 법칙을 따른다 해도 가슴 속 이끼처럼 남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지구는 얼마나 많은 공전을 지속해야 하나.     공룡은 2억 5천만 년 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등장해 6천 6백만년 전 멸종했지만 거대한 뼈의 흔적으로 남아 죽음의 위용을 자랑한다. 알타미라 동굴 유적에는 구석기 시대의 거대한 들소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동굴을 뛰쳐나올 것만 같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역사의 등불을 밝힌다.   인간은 위대한 업적으로 이름을 남긴다. 부서진 뼈 조각이나 화석, 부패되지 않는 미라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 속에 번영과 발전을 위한 노력과 공적으로 칭송받는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명언이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이름을 남긴다. 시공을 초월한 역사 속에 중요한 획을 긋는다.   바르셀로나를 빛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는 스페인 건축학의 아버지로 꼽힌다. 가우디는 건조한 기하학식 고전주의 건축에서 벗어나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 속 사물들을 건축에 투영해 자연이 주는 곡선과 아름다운 빛이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건축물을 창조한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최고의 걸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미완성으로 현재진행중이다. 다채로운 빛깔의 바다를 헤엄치듯 아름답고 성스러운 성당은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로 가우디가 그의 남은 생애를 바친 대표작이다.     1926년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다 전차에 치여 치명상을 당했는데 노숙자로 여겨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여러날 방치된다. 뒤늦게 알게 된 가족들이 치료 받기를  닦달한지만 가우디는 “옷차림만 보고 이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걸 보여주게 해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며 치료를 거부한 후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다.   가우디가 건축학교를 졸업할 당시 학장은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바보에게 주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라진다.     예술가는 죽지 않는다. 죽어도 살아 숨쉬며 작품 속을 걸어나와 시대를 앞서 간다. 살아있는 것들의 축복을 작품 속에 담고 미래의 안식처로 우리를 인도한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고민하지 말고, 한송이 선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있기를. (Q7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천재 건축가 나무 하늘 건축가 안토니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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