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애착의 실타래

sooim lee, in Madrid, 2025, ipad drawing.
느긋하게 햇볕 아래 끝 간데없는 들판이 누워 잠든 듯 뭉게구름 아래서 조는 듯했다. 덤불들은 서로 기대어 속삭이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렸다. 저항이나 부딪힘이 없는 아득한 평온만이 숨 쉬는 풍경 속을 차는 계속 달렸다.
드넓은 들판 한 귀퉁이에 있는 윤 작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단색화 초기, 색채가 실종된 무채색 환경에 물들여진 나로서는 그의 주황과 노랑 그리고 보라색의 강렬한 색감에 잠시 숨을 멈추었다. 따사로운 스페인 날씨와 자연을 옮겨 놓은 듯한 소박함과 순수함, 솔직 담백한 그의 화풍이 나를 순수한 어린 시절로 이끌었다. 단색만을 고집하면서 억지로 만들어 낸 작품이 아니다. 뉴욕 작가와 LA 작가가 사용하는 색감이 다르듯이 그만의 독특한 스페인 색감 작업에 매료되었다.
윤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아가는 풍경과는 또 다른 마드리드 도심 속 윤 작가 부인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그들은 마드리드에서 아이 여럿을 키우며 작업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뉴욕에서 온 우리를 반겼다. 우리를 폭스바겐 밴에 태워 마드리드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저녁 식사에도 초대했다. 부부의 배려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구석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어둑해지는 마드리드 번화가였다.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윤 작가 부인이 어둠에 묻혀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피곤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보자 가슴이 뭉클, 몹시 아렸다. 얼마나 힘들까? 마드리드에서 유학 생활하며 화가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 여럿을 키우는 중에 전시한다고 몰려와 들떠 있는 우리를 대접하느라. 고개 숙인 그녀의 모습이 잊히지 않고 내 뇌리에 박혀있다. 윤 작가는 같은 해인 1994년 스페인을 떠나 뉴저지에 정착했다.
윤경렬 작가의 개인전이 4월 10일~6월 7일까지 맨해튼 Po Kim Gallery, (417 Lafayette Street)에서 전시 중이다. 나는 오프닝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일찍 갤러리에 들어섰다. 그의 작품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바뀌긴 했지만, 스페인 색감의 끈을 놓지 않은 그의 작품의 성실함과 진실함이 나를 애착의 끈으로 또 끌어당겼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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