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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자랑스러운 한인 후세들

한인 이민 역사도 오래되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고국을 떠난 1세들은 먼 미국까지 와서 몸이 부서져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그 결과 1.5세와 2세들이 어느 민족보다도 교육을 많이 받았다. 1세와는 달리 그들은 전문직을 가졌고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친구의 자식이 잘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그들과 같은 힘든 이민 생활을 거쳤기에 내 자식 일인 양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인이라는 생각에 마구 자랑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자랑하고 싶은데 그 부모야 오죽하겠는가! 커다란 징이라도 두드리면서 큰소리 내어 자랑해도 된다.     아주 오래전, 내가 퀸즈 어느 성당에서 라인 댄스를 춘다는 중앙일보에 난 내 글을 읽고 독자가 찾아와 함께 춤을 춘 적이 있다. 그녀는 무용을 전공했다. 키가 크고 인물이 훤칠했다. 나는 그녀의 외모에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소탈한 그녀 성격으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북클럽에 조인했고 지금까지도 좋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그녀의 딸 아그네스 김(Agnes Kim)이 애니메이션 시리즈 그렘린: 모그와이의 비밀(Gremlins: Secrets of the Mogwai)로 제3회 어린이 및 가족 창작 예술 에미상에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부문 최우수 캐스팅상을 받았다. 이 시상식은 2025년 3월 15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텔레비전 시티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이 작품은 인기 있는 그렘린 프랜차이즈의 프리퀄로, 많은 팬에게 사랑받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캐스팅상은 목소리 연기자들을 잘 선정하고 조합한 공로를 인정받는 상이므로, 기여가 높이 평가된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온 동기 중 회화 전공자는 월트 디즈니에서 만화를 그렸고 조각 전공자는 치공 쪽 일하며 이민 생활 기반을 다졌다. 독창성이 요구되는 예술 분야인 애니메이션으로 에미상을 받은 친구 딸이라서 무척 자랑스럽다.     나는 이민 생활 어려움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잘됐다고 부모들이 소식을 전할 때마다 만성 체증이 확 뚫리는 쾌감을 느낀다. 이민자 부모들은 누구나 똑같은 어려움을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먼 타국에서 언어에 늘 주눅이 들어 힘겹게 살면서 자식을 그만큼 키웠다는 것은 물론 아이들도 노력했지만, 부모의 뼈 깎는 노력 없이는 힘들다. 우리는 누구의 자식이든 잘 되면 한국인으로 함께 아주 큰 소리로 자랑하고 또 자랑합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한인 후세 한인 후세들 한인 이민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2025-04-03

[글마당] 작은 것에 대한 예찬론

나는 키 크고 덩치 큰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작은 나를 싫어하겠지만, 키 작은 우리 친정아버지도 나와 같았다. 친정 언니가 결혼한다고 데려온 남자는 키도 컸지만 덩치가 너무 컸다. 그를 올려다보며 인상 쓰던 아버지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작은 키로 험난한 세상을 단단히 버티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키 큰 남자의 시선이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건 아닐까? 사람 됨됨이도 보지 않고 무조건 키 큰 사람이 싫어지는 심리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크면 내가 숨 쉴 공간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나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으로 자리를 뜨고 싶다.   나는 길가에 핀 크고 화려한 꽃보다는 앙증맞은 작고 소박한 꽃들을 좋아한다. 화려한 꽃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다. 있는 듯 없는 듯 핀 작은 꽃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애처롭다. 작은 것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애착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큰 것은 그냥 스쳐도 작은 것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서서 자세히 살피며 말을 걸고 싶은 심리는 아마 동병상련 때문일 것이다.     난 굵은 선보다 가는 선을 좋아한다. 그래서였을까? 판화 중에서 가는 선을 기본 기법으로 화면을 만들어 가는 동판화를 전공했다. 나의 작은 손으로 가는 선이 그어질 때 희열을 느낀다. 작은 캔버스 위에 그릴 때 더 집중하고 파고들어 내 마음을 전달하면 애정 어린 작업이 나온다. 작고 가는 선으로 만들어진 내 작품은 거창한 장소에 걸리는 것보다는 화장실 가는 통로라던가 복도 끝 벽에 걸리면 작품은 제자리를 찾은 듯 차분해진다.     볼일 보러 가면서 본 듯 만 듯 스치거나 긴 좁은 복도를 지날 때 누군가가 슬쩍 봐주면 제자리를 조용히 지키던 그림은 밝은 표정으로 반긴다.     내 이름 영어는 전부 소문자 sooim lee다. 얼마 전 갤러리에서 만난 여자로부터 ‘이름을 왜 소문자로만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전에도 서너 번 내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대문자보다는 소문자를 선호해서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 않는 작은 모습인 나에 대한 합리화인 것 같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예찬론 우리 친정아버지 아버지 얼굴 이름 영어

2025-03-20

[글마당] 가자미식해와 낫또

“네가 이렇게 음식 솜씨가 없으니, 아비가 성인병이 없는 거야.”   나만큼이나 음식 솜씨 없는 시어머니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는 맛없다는 표현을 돌려서 말씀하셨다. 시어머니 말처럼 내가 만든 음식은 내 남편 이외는 아무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맛없다. 물론 설탕도 참기름도 조미료도 아예 집에 없다. 시어머니는 LA에서 오실 때마다 혼다시를 가지고 오셔서 “맛이 통 나지 않으니, 이거라도 음식에 조금씩 넣어라. 내가 뉴욕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만큼 괴로워한다. 남편은 아무리 음식 맛을 불평해도 내 실력이 나아지지 않자 포기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같은 소리를 한다.     “음식 솜씨 좋은 부인과 사는 남자들이 나이 들어서 성인병 때문에 약들을 한 움큼씩 먹는데, 나는 마누라의 희한한 요리 솜씨 덕에 건강을 유지하네. 복도 가지가지야.”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되잖아. 적게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산데요.”   음식도 못하는 주제에 나는 잘났다고 빼놓지 않고 토를 단다.   나도 잘하는 음식이 있다. 음식 솜씨 없는 함경도 시어머니가 그나마 잘하는 것이 가자미식해다. 좋아하는 음식이라 옆에서 따라 하다가 전수하였다. 나는 시어머니처럼 거창하게 식해를 만들지 않는다. 가자미를 사다가 지져 먹고 구워 먹다가 남은 가자미를 통째로 소금을 듬뿍 붓고 냉장고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살이 물러진 것 같으면 잘라서 소금 다시 붓고 또 냉장고 구석에 밀어 넣는다. 그러다 가자미 삭힌 것을 잊어버려 한 달이 지난 후 허겁지겁 메조 밥을 만들어 고춧가루와 다진 생강과 마늘을 넣어 가자미와 섞어 놓고 무채를 굵직하게 썰어 버무린다. 맛없는 음식만 먹던 남편과 나는 그나마 맛있다고 잘도 먹는다. 저희끼리 얽히고설켜 삭혀져 맛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나의 엉뚱한 아이디어다. 내가 만든 맛없는 김치 종류들은 냉장고 구석에서 세월아 네월아 신세가 된다.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면 김치찌개용으로 변신한다.   내가 또 잘하는 것이 낫또다. 겨울만 오면 만들어 냉동고에 넣어 놓고 된장국에 한 수저 듬뿍 넣어 끓인다. 남편은 콩 씹는 맛이 일품이라며 무척 좋아한다. 콩을 하루 동안 불린다. 불린 콩을 압력밥솥에 밥처럼 한다. 물기가 없는 상태의 뜨거운 콩에 볏짚 같은 재료가 없으니, 시중에서 판매하는 낫또 두 팩을 넣어 섞는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방 스팀 위에 낡은 담요 서너장을 덮고 하루 이상 처박아 두면 진이 찐득찐득 올라온다. 남편은 가자미식해와 낫또를 잘하면 요리 솜씨가 대단한 거라며 나를 띄운다. 속셈은 낫또와 식해만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수시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제 낫또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식혜 만들 때가 지난 것 같은데?”     남편은 내 표정을 살피면서 은근히 만들라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야만 하는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김치 쪼가리처럼 찌그러져 없는척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가자미식해 낫또 음식 솜씨 함경도 시어머니 냉장고 구석

2025-03-06

[글마당] 온돌방과 된장국

“어쩜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산책해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도”   갑자기 눈이 쏟아져 쌓인 날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도어맨이 말했다.   “아침에 산책하지 않으면 종일 몸이 찌뿌둥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요.”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산책한다. 눈 오는 날은 세상 소음이 눈에 덮어 고요하다. 눈 위를 걷는 내 발자국 뽀드득 소리만 들린다. 비 오는 날은 비에 젖은 숲 냄새 맡으며 빗물에 씻겨 내려간 깨끗한 인적 없는 길을 걷는 맛이 상쾌하다. 흐린 날엔 사색에 잠긴 철학자라도 되는 양 걷는다. 화창한 날, 햇볕 받은 몸은 늘어져 바람에 실려 가듯 걷는다.   일 년 중 며칠 없는 눈 오는 날은 산책 후 야외 자쿠지 사우나 탕에 들어가 푹 잠기고 싶다. 마침, 친구가 눈이 꾸무럭거리며 오려고 발버둥 치던 날, 찜질방에 가자고 했다. 40년 전 친구가 미국에 오려고 준비하던 중 이태원에 가서 쇼핑하다가 나의 친정아버지를 만났다. 내 아버지는 무척 상냥한 사람이다.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예쁜 여자에게는 더욱 친절하시다. 두 사람이 어떻게 죽이 맞았는지 미국에 가면 우리 딸에게 연락해 보라고 해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도 친정아버지 닮아 상냥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싹싹하다. 한자리 떡 차지하고 앉아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 아버지가 소개해 준 친구는 어딜 가나 모두와 친해질 만큼 사교적이다.     “나 몸이 찌뿌둥해. 찜질방 가자?”   찜질방 갈 기회가 없는 나는 눈 오는 날의 사우나 탕을 상상하며 두말하지 않고 친구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찜질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 잘못 왔구나.’ 했다. 시설이 낙후되어 깨끗하고 산뜻한 맛이 없다. 뭔가 구질구질하달까? 이왕 왔으니 어쩌겠는가. 지저분한 곳은 시선을 피하고 대충 샤워하고 온돌방에 들어가 누웠다. 등을 지졌다. 몸이 가뿐해졌다. 배를 채우고 다시 소금방 무슨 방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방들을 친구 따라 돌아다녔지만, 온돌방이 제일 좋았다.     오래전 한국 여행길에, 사찰에 머문 적이 있다. 뜨끈뜨끈 끓는 온돌에 누워 잠깐 눈을 붙였다. 오래 푹 자다 일어난 듯 겨울 여정의 피로가 다 풀려 몸이 홀가분했다. 매서운 산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눈길 위에 새겨진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된장국 냄새가 피어나는 사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심심한 간으로 고유한 맛을 그대로 살린 된장국에 감자 졸임과 고추나물의 간소한 상차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또 그곳으로 가고 싶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온돌방 된장국 된장국 냄새 사찰 식당 오래전 한국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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