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쿠폰에 낚여서

최숙희 수필가
쿠폰을 사용하면 돈을 버는 것이고 사용하지 않으면 돈을 잃는 것이다, 라는 이상한 계산기가 내 머릿속에 있나 보다. 돈을 쓰지만 돈을 번다고 착각한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송금되는 돈에 의존해서 살던 1997년, 당시 IMF 사태가 터져 환율에 유난히 민감한 시기였다. 네 살배기 아들이 당시 유행하는 장난감 ‘요요’를 사달라고 조르며 토이저러스 바닥에 굴러도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환율이 하늘을 찔러 곱하기 2000을 해야 했다. 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가성비를 따지는 DNA가 그때 생긴 듯싶다. 한국 음식에 꼭 필요한 파가 겨울이면 한 단에 99센트로 너무 비쌌다. 그래서 세일하기를 기다려 한꺼번에 사서 냉동시키기도 했다.
한인 일간지를 구독하면 일요일판 LA Times를 무료로 넣어주었는데 일요일판 신문에 각종 쿠폰이 끼어왔다. 영어로 쓰인 기사를 보기보다는 쿠폰이 주관심사였다. 50센트나 1달러를 절약하기 위해 당장 필요 없는 물품까지 쿠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서 쟁이기도 했다.
물건을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쿠폰을 사용하면 옥시토신 수치가 오르면서 짜릿한 감정, 즉 ‘쿠폰 쾌감(coupon high)’을 느낀다고 하니 내가 정상이었나.
사실 환갑을 지나니 새로 필요한 것도 거의 없다. 기껏해야 운동화를 쿠폰 나올 때 남편과 내 것을 사이좋게 살 뿐이다. 세일즈 택스와 팁이 올라 외식이 겁나는 요즘, 쇼핑이라면 식료품 사는 게 거의 전부다. 사회가 노령화되면 소비가 침체하게 마련인데 그것이 내 개인 생활에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물건을 사기보다는 여행하는 ‘경험’에 돈을 쓰고 싶다. 할인 쿠폰 챙기는 것이 알뜰 주부의 의무라 믿었는데 쿠폰을 챙기는 자잘하고 귀찮은 일을 감당하기에 나이도 먹었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사용으로 종이 쿠폰 대신 디지털 쿠폰이 대세이다. 어떤 물건을 검색하면 맞춤형으로 쿠폰이 떠서 소비를 유발하니 감시당하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3일간만 유효한 특별요금이라고 여행사의 광고가 컴퓨터를 켜기만 해도 뜬다. 너의 계좌에 다음달이면 소멸할 크레딧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지, 하고 이메일이 온다.
쓴 돈만 내 돈이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떠나야 한다, 는 여행사의 광고 문구에 흔들린다. 아직 못 가본 세계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너의 행복에 투자하라’는 광고 문구에 낚인다. 굳이 변명하자면 기업의 상술에 넘어간 것이 아니고 나의 행복을 위함이니 ‘득템’일까.
최숙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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