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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쿠폰에 낚여서

은퇴 후 해외여행을 많이 했다. “숙희씨는 여유가 많아 해외여행을 1년에 몇 번씩이나 가느냐”고 묻는 이들이 가끔 있지만, 사실은 쿠폰 탓이다.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한 여행사의 상품을 샀는데 다음 여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딧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이 유효기간이 있어서 두서너 달 안에 사용하지 않으면 없어진다. 기업의 마케팅 수법인 줄 알지만 안 쓰면 손해라는 강박감이 생긴다. 쿠폰에 낚인 것이다.   쿠폰을 사용하면 돈을 버는 것이고 사용하지 않으면 돈을 잃는 것이다, 라는 이상한 계산기가 내 머릿속에 있나 보다. 돈을 쓰지만 돈을 번다고 착각한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송금되는 돈에 의존해서 살던 1997년, 당시 IMF 사태가 터져 환율에 유난히 민감한 시기였다. 네 살배기 아들이 당시 유행하는 장난감 ‘요요’를 사달라고 조르며 토이저러스 바닥에 굴러도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환율이 하늘을 찔러 곱하기 2000을 해야 했다. 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가성비를 따지는 DNA가 그때 생긴 듯싶다. 한국 음식에 꼭 필요한 파가 겨울이면 한 단에 99센트로 너무 비쌌다. 그래서 세일하기를 기다려 한꺼번에 사서 냉동시키기도 했다.   한인 일간지를 구독하면 일요일판 LA Times를 무료로 넣어주었는데 일요일판 신문에 각종 쿠폰이 끼어왔다. 영어로 쓰인 기사를 보기보다는 쿠폰이 주관심사였다. 50센트나 1달러를 절약하기 위해 당장 필요 없는 물품까지 쿠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서 쟁이기도 했다.     물건을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쿠폰을 사용하면 옥시토신 수치가 오르면서 짜릿한 감정, 즉 ‘쿠폰 쾌감(coupon high)’을 느낀다고 하니 내가 정상이었나.   사실 환갑을 지나니 새로 필요한 것도 거의 없다. 기껏해야 운동화를 쿠폰 나올 때 남편과 내 것을 사이좋게 살 뿐이다. 세일즈 택스와 팁이 올라 외식이 겁나는 요즘, 쇼핑이라면 식료품 사는 게 거의 전부다. 사회가 노령화되면 소비가 침체하게 마련인데 그것이 내 개인 생활에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물건을 사기보다는 여행하는 ‘경험’에 돈을 쓰고 싶다. 할인 쿠폰 챙기는 것이 알뜰 주부의 의무라 믿었는데 쿠폰을 챙기는 자잘하고 귀찮은 일을 감당하기에 나이도 먹었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사용으로 종이 쿠폰 대신 디지털 쿠폰이 대세이다. 어떤 물건을 검색하면 맞춤형으로 쿠폰이 떠서 소비를 유발하니 감시당하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3일간만 유효한 특별요금이라고 여행사의 광고가 컴퓨터를 켜기만 해도 뜬다. 너의 계좌에 다음달이면 소멸할 크레딧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지, 하고 이메일이 온다.     쓴 돈만 내 돈이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말고 가슴 떨릴 때 떠나야 한다, 는 여행사의 광고 문구에 흔들린다. 아직 못 가본 세계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너의 행복에 투자하라’는 광고 문구에 낚인다. 굳이 변명하자면 기업의 상술에 넘어간 것이 아니고 나의 행복을 위함이니 ‘득템’일까.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쿠폰 디지털 쿠폰 할인 쿠폰 쿠폰 쾌감

2025-04-10

[이아침에] 33년 중환자실에서 지켜본 죽음

지난 2월 한 달 동안 내가 맡은 환자가 4명이나 세상을 떠났다. 유난히도 추웠던 2월이었고 출근길은 날마다 전쟁이었다. 눈이 쌓였거나 얼음 빙판이었다. 시베리아 바람이 볼을 후벼대는 검푸른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전사 같았다. 언젠가 ‘2월은 회색이다’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2월은 회색의 기억이 있다.   중환자실에서만 33년째 근무를 해오고 있어 아마도 나만큼 죽어가는 환자를 많이 경험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장의사도 이미 죽어 경직된 시신을 다룰 뿐 나처럼 죽어가고 있는 환자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의 표정, 신체의 각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시시각각 살피며 지켜보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일단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면 진통제, 가래 줄이는 약과 진정제를 투여해서 환자를 편안한 상태로 유도한다. 환자가 편안해 보이면 지켜보는 가족도 편안해진다.     환자가 죽어갈 때 그들의 모습과 표정에도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이제 다 놓고 받아들이는 듯 잔잔한 미소를 띠고, 어떤 이는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억울한 듯 인상을 찌푸린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나면 그때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진다. 더 이상의 움직임이나 변화는 없다. 의사는 사망선고를 한다. 보통 2~3시간의 슬퍼할 시간(grieving time)을 준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장의사에게 연락하라고 알려주고 시신은 비닐백에 넣어 냉동 시체 보관실로 옮긴다.     이제 거주할 육신을 잃은 혼은 어디로 가나. 이때 개인의 종교나 믿음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기독교에서는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간다고 믿고, 불교에서는 업보에 따른 윤회설을 믿는다. 평소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 세계로 갈 것으로 추측한다.     이는 증명된 사실이 아니고 증명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믿음으로써 내 마음에 평화가 오기 때문이다. 조상숭배도 하나의 신앙으로 중국의 유교, 일본의 신도, 한국의 선교, 인도의 힌두교는 죽어서 영혼이 조상의 세계로 찾아간다고 믿는다.   장석주의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라는 책은 앞으로 읽고 싶은 책이다. 이 문장을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경험과 읽은 책이 나의 우주다’라고 수정하고 싶다. 살면서 우리 내면에 축적된 경험의 깊이, 그 밑에 흐르는 무의식의 거울이 우리 몸을 통해 빛을 낸다.     한때 사후세계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된 많은 서적을 구매해 읽었다. 그 결과 ‘잘 죽는 법’이라는 졸저를 출간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사람을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적으로 나눠 구별했다. 다시 말하면 몸을 쓰는 사람과 머리를 쓰는 사람으로 분류해서 대인관계를 맺고 지내왔었다. 이제 겨우 철이 들어가는 것일까. 살아갈 날이 살아온 시간보다 짧아질수록 삶 자체가 실존임을 실감한다. 삶을 체험하는 몸 자체가 실존이다. 탄생해서 죽을 때까지 육신을 입고 겪는 일만이 삶이고 실존이다.     니체는 ‘몸은 형태의 형태이자 영혼의 형태이다’라고 햇다. 이 묘사는 과연 혁명적인 선언이다. ‘영혼, 정신, 몸 중에서 몸이 가장 앞선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정신을 제 도구로 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반란인가. 평생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믿고 살아온 나에게 니체의 이 사상은 큰 충격이었다. 평생 수천 수만 명의 죽음을 목격해 온 나는 이제 몸, 몸만을 믿게 되었다.     사람은 평생의 경험이 몸을 통해 표출된다. 몸은 나의 존재를 표현하는 현상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총에 맞아 죽은 정대의 혼이 주위를 맴돌다가 화장 당한 후 소멸하였다고 묘사한다.     우리는 죽은 자의 혼이 어디로 가는지 증명할 수 없고 추측만 할 뿐이다. 기도와 장례식은 죽은 자에 대한 가족과 친구들의 마지막 예우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런 의식을 치름으로써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는 평안을 얻지만 죽은 자는 고요하다. 정명숙 / 시인이아침에 중환자실 죽음 영혼 정신 명의 죽음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적

2025-04-08

[이아침에] 데스칸소 정원에 만개한 봄

참으로 오랜만에 봄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월엔 남가주 여러 곳에 발생한 산불로 많은 이재민이 고통을 당했다. 최근에는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산사태가 일어나고 토네이도로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추위와 재난으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고 코로나까지 걸려 이중 삼중 고통을 당한 터라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거기다가 나이까지 더해가니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문학 동우리가 있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여서 시 공부하는 시간이야말로 사막에 오아시스처럼  우리를 젊게 만들고 생활에 활력을 불러준다. 거의 90세에 가까운 문우들이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열정을 가지고 시를 쓰며 시 공부를 한 지도 수년이 되었다. 나이가 우리보다 조금 젊은 문우도 있어서 그들과 어울려 더욱 젊어지는 기분이다.   오늘 라카냐다에 있는 데스칸소 정원(Descanso Garden)에 문우들과 소풍을 다녀왔다. 김밥과 음료수를 준비해서 맛있게 먹고 넓은 정원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벚꽃은 비가 와서 꽃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볼만했다. 제일 눈길을 끈 곳은 튤립 정원이었다. 갖가지 색깔로 곱게 핀 튤립이 얼마나 예쁜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문우들의 노안에 모처럼 환한 웃음꽃이 꽃들과 어울려 활짝 피었다. 모두가 남은 삶을 문학 공부하고 신앙 생활을 하는 동역자들이라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있다.   91세가 된 문우도 지팡이 없이 정원을 활보하고 88세 된 문우는 두 달 전에 무릎관절 수술을 받았는데도 지팡이 없이 걸어다니는 것 보고 나 자신이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들보다 나이가 아래인데도 나는 워커를 끌고 다니면서 정원 여기저기 구경하며 다녔기 때문이다.   장미꽃은 아직 피지 못하고 봉오리만 보였다. 튤립꽃이 대세를 이루면서 여기저기 만개하여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흰색, 진분홍색, 노란색, 흰색과 빨간색이 썩인 튤립 등 다양한 튤립에 정신을 잃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꽃잎 속을 들여다 보니 꽃 수술이 얼마나 예쁜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누가 저렇게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창조주께 감격하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위대한 예술가, 조각가, 가장 아름다운 멋쟁이 시인이시다.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 동우리들은 복 받은 자들이다.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낭만파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가 간절히 생각나는 하루였다. ‘내 가슴이 뛴다(My Heart Leaps Up)’이다. 무지개를 바라볼 때 가슴이 뛴다고 이 시는 시작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 어른이 된 다음에도 그러하고 늙은 다음에도 그럴 것이다라고.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라고 고백한다. 어린이는 세상에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면 감격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때 묻은 어른은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장님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자연을 바라볼 때 경건해 지기를 소망한다고 고백한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솜씨를 감상할 수 있는 육안과 심안과 영안을 주심에 무엇으로 감사하오리까. 부활절이 다가오매 더욱 만물이 부활하는 봄철에 감사가 넘칩니다.’ 김수영 / 수필가이아침에 데스칸소 정원 데스칸소 정원 정원 이곳저곳 정원 여기저기

2025-04-01

[이아침에] 늦은 나이에 찾은 노래의 날개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에, 나는 성가대에 입문했다. 단순히 합창단의 일원이 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음악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오랜 세월 기피하던 음악과의 정식 대면이 더는 두려움이 아닌 설렘이 되어 노래의 선율 위로 기쁨의 나래를 편다.   사실, 나는 음치였다. 음악 앞에 서면, 온몸에 돋는 긴장의 가시가 바짝 세워져 경계 태세가 되었다. 세상은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나는 그 아름다운 세계 안으로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했다. 이 심리적 외상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에서 비롯된다.   한국전쟁 시기에 이북에서 내려온 우리 가족은 부산 피난민 촌에 살았다. 그곳에서 어린 유년기를 보냈지만 내 기억은 서울로 이사 온 날로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 중심부의 학교로 전학을 갔다. 담임선생님은 전학서류의 내 성적을 보고 반 친구들에게 ‘우수한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선생님은 남달리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음악 수업이 있는 반을 따라 옮겨가는 풍금은 거의 매일 우리 반에 머물렀다.   그날도 풍금이 우리 반에 놓였다. 선생님은 나를 부르더니 음악책이 펼쳐진 풍금 곁에 세워두고 계명으로 노래를 부르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노래는커녕 계명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온몸이 얼어붙었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바래보이며 안개 속에 고립된 듯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심장만 요동칠 뿐 목소리는 납덩이처럼 굳은 몸과 함께 뭉뚱그려져 버렸다.     꼼짝없이 서 있는 나를 고의로 노래하지 않는다고 보았는지 선생님은 채근 끝에 회초리를 들었다. 내 손바닥 위로 열 번의 매가 내리쳐 졌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아픔이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 모멸감과 함께 참담한 상처를 남겼다.   그날, 내 안의 음악을 향한 문이 굳게 닫혔다. ‘나는 음악을 모른다’는 절망의 각인이 마음 판에 무겁게 내리 찍혔다. 그 후, 음악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의 것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전환점을 맞았다. 새로운 거처로 이사하면서 찾게 된 교회에서 성가대의 찬양이 가슴 깊이 울려왔다.   안내하던 분 앞에서 무심결에 ‘나도 성가대원이 되고 싶네요’ 라 말했다. 단순한 감탄의 표현이었지만, 성가대 연습에 참여해 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권유는 미지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같았다. ‘연습이라면 해 보리라’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나는 그 부름에 순응하고 있었다.   음치인 내가, 노래를 두려워하던 내가 과연 성가대원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모든 대원이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나는 지휘자의 손짓과 표정 하나하나에 열중하며 배워 나갔다. 연습을 거듭하며 두려움은 어느덧 사라지고, 노래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마침내 부활절 날, 나는 성가대의 일원으로서 첫 찬양을 올렸다.   ‘할렐루야’를 부르는 순간, 벅차오르는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음악은 이제 강박의 사슬이 아닌, 자유롭게 하는 날개가 되었다.   성가대원이 된 것은 내 노년의 삶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다. 찬양은 나를 치유하는 기도이고, 내 영혼을 두드리는 축복이다. 오늘도 나는 감사와 기쁨을 실어 찬양한다. ‘할렐루야!’ 이영신 / 수필가이아침에 나이 노래 성가대 연습 음악 수업 손바닥 위로

2025-03-30

[이아침에] 나그네에게 봄이 오는가

북클럽에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대해서 읽었다. 늘 회자하는 피카소처럼 슈베르트도 이름만 알고 있었다. 낭만주의 시인 뮐러의 시를 읽고 감동한 슈베르트가 곡을 붙였다고 한다. 겨울 나그네는 24개의 시로 이루어진 가곡이다. 책의 무게감을 느끼며 처음에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자꾸만 창가로 눈이 갔다. 회색 하늘 밑에 말라비틀어진 잔가지들이 보인다. 봄이 오기 전, 황량한 모습이다. 겨울 나그네 첫 번째 곡을 틀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곡의 제목이 밤 인사다. 왜 시작부터 밤 인사인가? 밤에 어디 떠나는가? 퉁퉁퉁퉁, 피아노 음이 저음으로 내려간다. 나그네의 발자국이 터벅터벅 꺼질 듯이 무겁다. 음악이 내 감성을 자극했는지, 나는 1820년대 추운 북유럽을 배회하는 나그네가 되어본다. 나는 밤 인사의 가사를 따라간다. 음악은 애잔하고 비통하다.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나네… 그대의 어머니는 결혼도 언급했지만…’   가사는 뮐러가 쓴 시다. 시가 그렇듯이 자세한 서사는 피하고 있다. 나는 숨은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다. 나폴레옹이 침략 전쟁을 시작할 무렵이다. 당시 독일은 통일 전이었기에 존재감이 없는 미미한 나라였다. 프랑스의 팽창을 보면서 독일인은 시대를 비관했다. 젊은 남자들이 봇짐 하나 지고 무작정 떠도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길 가다가 지치면, 연줄로 아는 귀족의 집에 들렀을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늙은 남편만 보던 귀족 부인들은 아름다운 청년이 식탁에서 괴테 운운하며, 세상 이야기를 해 주니 살맛이 났을 것이다. 머무는 동안 딸의 가정교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지체 높은 아가씨와의 로맨스가 시작되지만, 해피엔딩은 아닐 것 같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혼담을 약속한 이웃 마을 귀족 자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가문을 위해서 애틋한 이별을 한다. 가정교사는 아가씨가 깊이 잠든 밤에 문소리 내지 않고 떠난다. ‘안녕 내 사랑…’으로 노래가 끝난다. 당시에 정처없이 헤매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독일은 러시아를 치러 가는 나폴레옹에게 길을 내주어야만 했다. 전쟁에서 퇴각하면서, 군인들은 낙오자가 되었다. 군대를 버리고 도망치는 탈영병도 있었다. 말을 잃어버린 기병이 추운 겨울에 산속을 헤매고 있다. 바싹 마른 침엽수 사이를 찢어진 망토를 두르고 절뚝거리며 걷는다. 그루터기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을 맴돈다. 까마귀는 흉조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갈 곳이 없는 그에게는 자멸의 길만 남은 것 같다. 제15곡 까마귀라는 제목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니 연가곡에 얽힌 배경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유럽은 다시 왕정으로 복귀했고, 국민을 쥐잡듯하는 경찰국가가 등장했다. 왕으로 등극한 정치가가 사람의 숨통을 조여오니, 사람들은 시대에 순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를 비더마이어 시대라고 부른다. 비더마이어는 ‘멍청한 마이어 아저씨’라는 의미라고 한다. 사람들은 방으로 숨어들어서 피아노를 한 대 놓고 가수를 초청하여 이런 애절한 가곡을 들었다. 살롱 문화가 유행할 무렵이다. 힘없는 사람들이 나라를 대항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잘못하면 잡혀가는 세상인데. 애인을 그리워하는 노래 같지만 시대를 비관하는 현실 풍자가 숨어있다.   31세로 애잔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슈베르트는 혼신을 다하여 겨울 나그네를 작곡했다. 슈베르트라는 이름에 무덤덤했던 나는 책과 음악에 빠져들었다. 200년 전 천재 음악가와 만나서 대화라도 나눈 듯하다. 지금 동시대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프리드리히 데이비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가 그린 ‘숲속의 추격병’이란 그림이 있다. 황량한 산을 고독한 남자가 떠도는 그림이다. 겨울 나그네에게는 봄이 올 것 같지 않지만, 내친김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러 가야겠다.   김미연 / 수필가이아침에 나그네 겨울 나그네 천재 음악가 동시대 낭만주의

2025-03-27

[이아침에] 가자미식해와 낫토

“네가 이렇게 음식 솜씨가 없으니, 아비가 성인병이 없는 거야.”   나만큼이나 음식 솜씨 없는 시어머니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는 맛없다는 표현을 돌려서 말씀하셨다. 시어머니 말처럼 내가 만든 음식은 내 남편 이외는 아무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맛없다. 물론 설탕도 참기름도 조미료도 아예 집에 없다. 시어머니는 LA에서 오실 때마다 혼다시를 가지고 오셔서 “맛이 통 나지 않으니, 이거라도 음식에 조금씩 넣어라. 내가 뉴욕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만큼 괴로워한다. 남편은 아무리 음식 맛을 불평해도 내 실력이 나아지지 않자 포기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같은 소리를 한다.   “음식 솜씨 좋은 부인과 사는 남자들이 나이 들어서 성인병 때문에 약들을 한 움큼씩 먹는데, 나는 마누라의 희한한 요리 솜씨 덕에 건강을 유지하네. 복도 가지가지야.”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되잖아. 적게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산데요.”   음식도 못하는 주제에 나는 잘났다고 빼놓지 않고 토를 단다. 나도 잘하는 음식이 있다. 음식 솜씨 없는 함경도 시어머니가 그나마 잘하는 것이 가자미식해다. 좋아하는 음식이라 옆에서 따라 하다가 전수하였다. 나는 시어머니처럼 거창하게 식해를 만들지 않는다. 가자미를 사다가 지져 먹고 구워 먹다가 남은 가자미를 통째로 소금을 듬뿍 붓고 냉장고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살이 물러진 것 같으면 잘라서 소금 다시 붓고 또 냉장고 구석에 밀어 넣는다.     그러다 가자미 삭힌 것을 잊어버려 한 달이 지난 후 허겁지겁 메조 밥을 만들어 고춧가루와 다진 생강과 마늘을 넣어 가자미와 섞어 놓고 무채를 굵직하게 썰어 버무린다. 맛없는 음식만 먹던 남편과 나는 그나마 맛있다고 잘도 먹는다. 저희끼리 얽히고설켜 삭혀져 맛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나의 엉뚱한 아이디어다. 내가 만든 맛없는 김치 종류들은 냉장고 구석에서 세월아 네월아 신세가 된다.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면 김치찌개용으로 변신한다.   내가 또 잘하는 것이 낫토다. 겨울만 오면 만들어 냉동고에 넣어 놓고 된장국에 한 수저 듬뿍 넣어 끓인다. 남편은 콩 씹는 맛이 일품이라며 무척 좋아한다.     콩을 하루 동안 불린다. 불린 콩을 압력밥솥에 밥처럼 한다. 물기가 없는 상태의 뜨거운 콩에 볏짚 같은 재료가 없으니, 시중에서 판매하는 낫토 두 팩을 넣어 섞는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방 스팀 위에 낡은 담요 서너 장을 덮고 하루 이상 처박아 두면 진이 찐득찐득 올라온다. 남편은 가자미식해와 낫토를 잘하면 요리 솜씨가 대단한 거라며 나를 띄운다. 속셈은 낫토와 식해만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수시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제 낫토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식혜 만들 때가 지난 것 같은데?”   남편은 내 표정을 살피면서 은근히 만들라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야만 하는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김치 쪼가리처럼 찌그러져 없는 척한다. 이수임 / 화가이아침에 가자미식해 낫토 음식 솜씨 함경도 시어머니 냉장고 구석

2025-03-18

[이아침에] 신세를 졌어요

오래전 베를린 마라톤에 참가했던 친구들을 뉴욕 플러싱에서 만나기로 했다.     뉴저지에서 버스를 타고 한양 슈퍼마켓 앞에서 내리니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반가웠다. 암 투병으로 아팠던 친구는 건강해 보였고 멋쟁이 친구는 여전히 젊음이 넘쳐흘렀고 열심히 일하는 친구는 오늘따라 여유가 있어 보였다.     플러싱 먹자골목을 다니면서 구경도 했다. 음식점에 앉았는데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로봇이 왔다 갔다 하면서 운반해준다. 로봇이 직원들의 손을 대신했다. 음식도 맛있고 양도 많았다.     뉴저지 식당에서 느끼지 못했던 콩나물도 아삭아삭하고 양념도 느끼하지 않고 생선도 많이 들어있고 생선 자체 맛이 일품이었다. 4명이 먹고 많이 남았다. 내가 가지고 가기로 하고 식대를 계산하려고 하니 벌써 다른 친구가 냈다고 했다.     커피숍에 갔는데 한 친구가 계산대 앞에 서 있으면서 맛있는 빵을 골라오라고 손짓한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하다가 한 친구가 일터로 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머지 셋은 발 마사지하는 곳으로 향했다. 1시간 발 마사지를 해주는데 어머 좋은 것. 장딴지부터 발가락 하나하나 문지르는데 피로가 확 풀리고 발이 보드랍다. 꺼칠꺼칠했던 발바닥이 어린아이 살결처럼 부드러워졌다.     움츠리고 일어나 기분 좋게 계산대로 다가갔는데 다른 친구가 벌써 계산을 해버렸다. 온종일 즐기면서 한 푼도 내지 않아서 먹먹했다.   신세 지기 싫다. 빚지고 사는 일은 불편하다. 받았으면 돌려줘야 한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잘 받는 게 어려웠다. 겉으로 티 내지 않아도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다. 언제나 갚아야 할 일들이 남아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그래서 무엇이든 공짜로 받으면 불편했다. 공짜여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 같다고 할까. 갚아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작은 호의가 호의로 다가오지 않는다. 친구 눈에는 그 모습이 보였던 것 같다. 티가 났느냐고 물어봤더니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하루 이틀 볼 것도 아니고 이번에 못 내면 다음에 내면 되지 뭐.   지금의 세상은 호의 대신 편의를 요구한다. 의도나 숨겨진 목적 없는 호의 대신 목적이 선명한 편의를 제공하게끔 변해가고 있다.     세상살이가 각박할수록 더 그럴 것이다.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호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불분명한 목적은 마음을 의심하게 한다. 그렇지만 호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은 가당치 않다. 그게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여유를 가지기란 어렵지만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꿔볼 수 있다. 받았다는 사실보다 친절한 마음씨에서 시작되었다는 의도를 기억해 보는 건 가능하다. 중요한 건 친절에서 비롯한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의 출발지만 기억하기로 했다. 일생은 길고 유별나게 굴 필요는 없다. 딱 맞게 떨어지는 관계는 없다. 더 줄 때도 있고 덜 받을 때도 있는 법이다. 주고받는 과정에 익숙해지면 그냥 그 자체로 좋지 않을까.   돌려줄 마음이 빈한해 옹색한 모양새가 부끄러울지라도 가까이 받아들이기를 선택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는 갚는 일이 싫어서 받아들이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오고감에 익숙해져야 한다. 무뎌져 익숙할수록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시간은 관계에서 의미 있던 순간들도 희미하게 만드니까.     다음에 친구들을 만나면 꼭 밥을 사야겠다. 헤어지면서 작년에 아카시아 꽃을 넣어 만든 와인을 한 병씩 주면서 무슨 향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넌지시 숙제를 주었다. 양주희 / 수필가이아침에 신세 멋쟁이 친구 호의가 호의로 신세 지기

2025-03-16

[이아침에] 친구 S를 그리며

계절로 치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스무 살에서 몇 번의 봄이 지난 시절이었다. 고래 한 마리 정도는 너끈히 잡을 것 같던 그때, 만만해 보인 인생 위에 설계된 나의 완벽한 계획에는 실패란 없었다. 하지만, 고난이 계속되자, 앞으로 살아갈 새털처럼 많은 나날이 오히려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 시간을 같이 보낸 S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시리다. LA한인타운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같이 살았다.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은 하찮은 일에 상처받고 축 처져 있는 내게, “왜 그래”라고 묻기에 요즘 사는 것이 버겁다고 하자, 대뜸 자기는 가시나무로 이리저리 후리게 맞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 당당하게 맞서서 사는 그녀였다.   어느 날, 일도 가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눈을 떠보니 해는 저문 지 오래였고, 7시면 퇴근해 들어오는 S는 아직 안 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파트가 무섭고 배가 고팠지만,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한참 후, S가 조심히 방문을 열며 “아파?”라고 묻길래, 고개만 끄떡였다. 이까짓 몸살이 뭔 대수라고 되뇌며, 불 꺼진 방에서 혼자 훌쩍였다. 잠시 후, 그녀가 나지막하게 “나와서 밥 먹어”라고 했다.   느릿느릿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방금 지은 밥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일이 늦게 끝나서 지금 들어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왠지 모를 설움에 꾹꾹 눌렀는데도 굵은 눈물방울이 뜨거운 김칫국에 떨어졌다. 때로는 울음을 참는 것이 우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다. 온종일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위는 그제야 만족했는지 포만감이 몰려왔다.   궁둥이를 바닥에 제대로 붙이고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친구 대신 다 식은 S의 밥과 국만 보였다. 야근하고 와서 배가 고플 텐데. 미안한 마음에 S의 방문을 두드리고, 나와서 밥 먹으라고 했지만, 끝내 말을 다 잇지는 못했다.   다시 국 데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서 고맙다고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퉁퉁 부은 눈으로 대하기가 민망했다. 처량히 비가 오길 바랐지만, 창밖으로 네온사인만 빛났다.   순자의 성악설이 피부에 와닿는 날에 우린 공평하지 않은 삶을, 불완전한 세상을, 카르마가 어떻게 그들에게 임할까를 두 번째 커피가 식을 때까지 토론했다. 그렇게 이십 대가 흘러갔다.우린 살다가 풀썩 주저앉고 싶을 때 만났으니, 서로의 삶이 순탄해지면 다시 만날 것이다. 불현듯 S가 떠오르니, 아마 어딘가에서 나를 생각하나 보다. 평안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오늘 밤은 유난히 짧다. 이리나 / 수필가이아침에 친구 친구 대신 친구 s 마음 한편

2025-03-11

[이아침에] 온돌방과 된장국

“어쩜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산책해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도”     갑자기 눈이 쏟아져 쌓인 날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도어맨이 말했다.   “아침에 산책하지 않으면 종일 몸이 찌뿌둥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요.”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산책한다. 눈 오는 날은 세상 소음이 눈에 덮어 고요하다. 눈 위를 걷는 내 발자국 뽀드득 소리만 들린다. 비 오는 날은 비에 젖은 숲 냄새 맡으며 빗물에 씻겨 내려간 깨끗한 인적 없는 길을 걷는 맛이 상쾌하다. 흐린 날엔 사색에 잠긴 철학자라도 되는 양 걷는다. 화창한 날, 햇볕 받은 몸은 늘어져 바람에 실려 가듯 걷는다.   일 년 중 며칠 없는 눈 오는 날은 산책 후 야외 자쿠지 사우나 탕에 들어가 푹 잠기고 싶다. 마침, 친구가 눈이 꾸무럭거리며 오려고 발버둥치던 날, 찜질방에 가자고 했다. 40년 전 친구가 미국에 오려고 준비하던 중 이태원에 가서 쇼핑하다가 나의 친정아버지를 만났다. 내 아버지는 무척 상냥한 사람이다.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예쁜 여자에게는 더욱 친절하시다. 두 사람이 어떻게 죽이 맞았는지 미국에 가면 우리 딸에게 연락해 보라고 해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도 친정 아버지 닮아 상냥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싹싹하다. 한자리 떡 차지하고 앉아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 아버지가 소개해 준 친구는 어딜 가나 모두와 친해질 만큼 사교적이다.   “나 몸이 찌뿌둥해. 찜질방 가자.”   찜질방 갈 기회가 없는 나는 눈 오는 날의 사우나 탕을 상상하며 두말하지 않고 친구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찜질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차, 잘못 왔구나.’ 했다. 시설이 낙후되어 깨끗하고 산뜻한 맛이 없다. 뭔가 구질구질 하달까? 이왕 왔으니 어쩌겠는가. 지저분한 곳은 시선을 피하고 대충 샤워하고 온돌방에 들어가 누웠다. 등을 지졌다. 몸이 가뿐해졌다. 배를 채우고 다시 무슨 방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방들을 친구 따라 돌아다녔지만, 온돌방이 제일 좋았다.   오래전 한국 여행길에, 사찰에 머문 적이 있다. 뜨끈뜨끈 끓는 온돌에 누워 잠깐 눈을 붙였다. 오래 푹 자다 일어난 듯 겨울 여정의 피로가 다 풀려 몸이 홀가분했다. 매서운 산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눈길 위에 새겨진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된장국 냄새가 피어나는 사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심심한 간으로 고유한 맛을 그대로 살린 된장국에 감자 졸임과 고추나물의 간소한 상차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또 그곳으로 가고 싶다. 이수임 / 화가이아침에 온돌방 된장국 된장국 냄새 친정 아버지 사찰 식당

2025-03-06

[이아침에] 내가 사랑하는 라인댄스 팀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하는 라인댄스를 빠지지 않고 가는 중요한 이유는 수업 후 함께하는 점심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마음이 가니 춤이 안 외워진다. “숙희 씨, 정신 차려요”하고 한 소리 듣는 날이 많다.     토요일이면 여럿이 중국집으로 향하곤 한다. 두셋이 가면 중국 음식 주문하기가 애매하지만 여럿이 몰려가면 종류별로 시켜 나눠 먹을 수 있어 좋다. 오른편 팔에 깁스를 한 R이 갑자기 눈시울을 붉힌다. “짜장면은 항상 남편이 비벼줬다”고, 최근에 남편을 여읜 그녀가 얘기한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충고의 말도 덧붙인다. 나는 나이 들며 부부 사이에 측은지심 외에 다른 감정이 있을까, 하며 의아해 하기 일쑤이다.   댄스 단톡방에 갑자기 여러 개의 카톡이 올라왔다. 시작은 노인 양로병원에 근무하는 R이다. S에게 전화가 왔으나 말없이 거친 숨소리만 들리니 혹시나 응급상황이 아닐까, 걱정된단다. 집에 직접 가서 무슨 일이지 확인해 봐야겠으니, 주소가 필요하다는 요지이다. 항상 노인을 상대하는 그녀의 직업정신도 발동했다. 결론은 S의 피클 볼 강습 중에 전화가 잘못 걸린 거로 상황 종료. 무사하다는 소식에 모두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혼, 사별 등으로 독거노인이 많은 댄스팀이라 서로에게 각별하다. 시니어가 과반수라 질병으로 고생하는 남편 간병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하루 종일 거동이 힘든 환자와 함께하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을까.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좋고 햇볕을 쬐러 밖에 나올 기회를 준다. 혹시 누가 운전이 힘들면 한참을 돌아가더라도 같이 태워 온다. 자매의 정이 부럽지 않다.   한인 마켓에서 누가 내 등을 갑자기 껴안아 뒤돌아보니 샤론이다. 그녀는 모시고 사는 96세 친정어머니 점심을 챙겨드려야 해서 점심 모임에 자주 빠진다. 춤만 잘 추는 줄 알았더니 살림꾼이다. 싱싱한 오이가 할인하니 오이지를 만들라며 골라준다. 파도 굵은 것을 사야 파 향이 짙다면서 동생뻘인 내게 알려준다.   아파서 한동안 결석하다가 나오면 얼싸안고 박수로 환영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소중한 친구들이다.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서로의 사정을 아는 경우도 많다. 바쁘고 각박한 이민 생활 속에 보기 힘든 훈훈함이다.   라인 댄스팀을 보며 자연스레 나이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인생도 항상 청명할 수는 없고 때때로 비바람과 천둥이 친다.     그래서 혹자가 젊은 어느 한때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선뜻 언제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현재의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안간힘 쓰는 피곤한 상태의 젊은이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젊음의 무게를 버리고 젊어서는 깨닫지 못한 기쁨을 반추하고 음미할 시간이 생겼다. 젊은이들에게 삶의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댄스팀의 언니들과 현재에 충실한 삶을 이어가고 싶다. 영원히.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라인댄스 사랑 라인 댄스팀 친정어머니 점심 남편 간병

2025-03-04

[이아침에] 황태 미역국

큰아들이 전화했다. “미미가 감기가 심하게 걸리고 기침해서 못 갈 것 같아요”     큰며느리가 아파서 일요일 내 생일 축하 파티에 못 온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서운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내 생일이 평일이라서 두 아들 내외와 손주가 일요일 오후에 오기로 했었다. 이주 전부터 흑마늘을 만들어 주려고 보온 밥솥에 발효시키기 위해 넣어 두었다. 또 배추와 무를 사서 동치미를 담그고 김치도 만들었다. 맛있게 먹을 아들 식구들을 위해 꼬박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다듬고 절이고 무채 양념을 만들어 야들야들한 배춧속에 먹음직스럽게 집어넣어 김치통에 차곡차곡 돌돌 말아 넣고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샌디에이고와 토런스에서 이곳까지 오는 것이 고생이라고 하면서 안 와도 된다고 한 수 더 뜬다. 남편마저 내 편이 아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한 번도 잊지 않으시고 꼭 생일을 챙겨 주셨는데 남편과 아들 내외는 그저 그들 편한 대로 밀고 나간다. 마음 갈피에서 어른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꺼내어 나의 서러움을 달랬다.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나흘이 지나자, 내 생일날 아침 7시에 영상 전화가 울렸다. 아이패드 화면 속에서 여섯 살 손녀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생신 축하해요!”라고 말하며 생긋 웃는다. 나도 모르게 “고마워, 우리 공주!” 답하고 나니, 또 옆에서 “할머니 생신 축하해요.” 3학년 손자가 머쓱하게 웃고는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간다.     연이어 며느리와 작은아들이 축하한다고 인사한다. 선물은 현금을 송금앱으로 보낸다고 했다. 출근 전 영상통화라도 축하해 주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어서 준비하고 직장과 학교에 가라고 재촉하며 서둘러 끊었다.   아래층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살그머니 내려와 보니 남편이 황태로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생일 축하한다면서 새빨간 튤립 한 다발을 내게 안겼다.     엉겁결에 받고 식탁에 앉았는데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뽀얀 미역국 한 그릇을 퍼서 내 앞에 갖다 놓는다.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생일 축하 기도를 오랫동안 했다. 감기 걸려서 내 생일에 못 온다는 아들의 전화에 매우 섭섭했는데. 덕분에 최고의 생일상을 받은 셈이다. 유난히 깊은맛을 내는 황태 미역국에서 남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만약에 두 아들이 방문했다면 남편이 맛깔스러운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을 텐데.   점심은 일식집에서 연어 초밥을 사 와서 남편과 오붓하게 먹었다. 아들이 안 와서 섭섭했던 마음을 조금씩 떨쳐버렸다. 면역력이 없는 우리 부부를 위해 두 아들이 처음으로 함께 못 했는데.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영상 전화 벨이 울렸다. “어머니, 못 가봐서 죄송해요. 생신 축하해요.”     샌디에이고에 사는 큰며느리가 코맹맹이 소리지만 힘겹게 밝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감기가 심한가 보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 마음이 짠했다.   지금까지 나는 생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 북적거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일의 의미도 달라졌다. 꼭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멀리서나마 기억하고 축하해 주는 마음이 귀하게 다가온다.     사랑은 값비싼 선물이나 거창한 축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상통화 너머에서 전해지는 손주의 축하 웃음, 아픈 중에도 축하 인사를 건네는 진심 어린 아들과 며느리의 마음, 정성스레 끓여준 미역국 한 그릇, 이 모두가 내 생일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다. 생일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을 뛰어넘어,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는 날임을 깨닫는다.  이현인 / 시인·수필가이아침에 미역국 황태 황태로 미역국 황태 미역국 아들 내외

2025-02-25

[이아침에] 가까이 있는 작은 천국

어두움이 거리에 깔리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장애인 선교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낮 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의자에 드문드문 앉아 있었고 휠체어에 있는 사람도 있었다. 오랫동안 알아온 청각장애인 친구가 누구보다도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부엌에서는 자원 봉사자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따뜻한 밥 한끼를 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정성이 보인다. 아는 분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장애인들은 이곳에 와서 맛있는 밥을 먹고 작은 행복을 느낀다. 그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하면서 교제할 때 사랑을 느낀다.     나는 학창시절에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그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나의 짝은 소아마비였다. 그는 목발 두 개로 학교를 나왔다. 매일 경사진 교정을 두 목발로 의지해서 힘들게 올라와야 했다. 그의 얼굴은 가끔 고뇌에 찬 모습이었다. 수업시간에 그는 시를 자주 썼으며 쓴 다음에 구겨서 버리곤 했다. 아마도 시를 통해 그의 마음을 달래려고 했던 것 같다.   음식 준비가 다 되었다. 만든 음식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자원 봉사자들이 테이블 뒤로 서서 밥과 반찬을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에 퍼서 주었다. 그들의 손길은 정성이 가득 찼다. 마지막에 김치찌개가 있었다. 그 찌게 안에는 도미 맛이 나는 생선이 들어 있어 훌륭한 맛을 내었다. 그 생선은 누군가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내 옆에 청각장애인 친구가 앉았다. 그는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 아기였을 때 사고로 뒤로 넘어졌고 그 이후로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오랫동안 한인타운에 있는 시계보석상에서 일해 왔었다. 청각장애인들과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 수화를 배웠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많이 잊어버렸다.     주먹 진 두 손을 어깨 쪽으로 두 번 당기면 ‘건강’이라는 뜻이다. 그에게 건강하게 잘 지내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모르는 단어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그와 대화하려고 했다.   다른 테이블에는 뇌성마비에 걸린 사람과 지팡이를 짚고 불편하게 다니는 연로하신 분이 보였다. 예전에는 지팡이를 의지해서 다녔지만 상태가 더 안 좋아져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어렸을 때부터 당뇨와 다른 병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다.     정신 장애인도 보였다. 가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는 그가 말하는 것을 주의 기울여 듣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큰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놀랠 수 있지만 곧 그 분위기에 익숙해진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담아서 가져다 준다. 한국말을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영어로도 말하고 통역도 해주면서 어울린다.   그들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도 그들의 눈빛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알고 얼마나 우리를 반기는가를 안다. 그들의 웃음으로부터 그들이 행복하고 기뻐하는 것을 안다. 불편한 몸이라도 정신적인 장애가 있어도 서로 어울리고 식사를 같이하면서 교제한다.     그들은 직접적인 도움도 필요하지만 그들의 벗이 되어 주며 끈끈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을 더 원할 것이다. 이러한 작은 따뜻한 모임에서 나는 작은 천국을 느꼈다. 천국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정호 / 수필가이아침에 천국 청각장애인 친구 장애인 선교모임 정신 장애인

2025-02-20

[이아침에] ‘희랍어 시간’을 읽고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읽었다. 오래전에 사서 읽다가 중간에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고 꾸준히 책을 읽어온 덕택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강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과연 한강은 한국이 낳은 천재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지금까지 세계적 명작이면서 고전으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보아도 작품 대부분은 장편이다.  명작에서는 등장인물에 대한 심리묘사, 성격묘사, 그리고 주위 배경 묘사가 얼마나 섬세하고 구체적인지 마치 독자는 자신이 그 이야기 속의 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반면 다루는 사건의 기간은 놀랍게도 매우 짧다. 그만큼 문장을 늘려서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가의 문장력과 역량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한국 작품은 뼈대는 건장한데 영양 상태가 빈약한 경우가 종종있다. 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전후의 배경과 묘사와 표현 방식은 작가의 실력에 달려있다. 한강은 묘사를 시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함축하여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는다.     한강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 관심 그리고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우리처럼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모국어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네 살 때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고 한다. 아직 자음, 모음에 대한 인식 없이 모든 글자를 통 문자로 외웠다니 가히 놀랄만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고 후에 그 단어들은 스스로 꿈틀거리며 낯선 문장을 만들었다.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수시로 잠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명치를 눌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 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17살이 되던 겨울,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그녀를 에워싸고 그녀는 말을 잃게 된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눈이 멀어져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녀 모두 각자 깊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삶을 견뎌내던 중 희랍어 강사인 남자와 수강생으로 만나게 된다. 그 둘은 어느 날 희랍어 교실로 향하던 중에 빌딩 지하실에서 사고로 생명줄과도 같은 안경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를 그의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면서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만 했다. 그 둘은 남자의 작은 방에서 서로 소통하며 공감하며 치유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이토록 우아하게 묘사할 수 있는가 완전 감동이다. 언어에 그토록 예민한 작가는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자신의 혀가 두려워졌다.   하지만 말 외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상상 속에서 인간의 혼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보완해 가면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 아닌가. 세상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본다. 이제 그녀는 활짝 꽃피울 일만 남았다. 정명숙 / 시인이아침에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희랍어 교실 국어 시간

2025-02-18

[이아침에] 잔인했던 1월이 지나고

바람이 분다. 건넛집이 소나무를 잘랐다. 그 나무는 이층인 그의 집이 작아 보일 정도로 웅장했다. 봄이면 가지치기하는데, 이번에는 나무 밑동까지 베었다. 남가주에 산불이 난 후에 생긴 일이다. 일주일 사이에 벌써 세 집이 저렇게 큰 나무를 제거했다.   바람이 세게 분다. 올해 초에 독감에 걸려 무척 앓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TV를 보는 데, 수십 채의 주택에 불이 나는 것이 보였다. 보통 산불은 산과 산에 드문드문 있는 집들을 태우는데, 이처럼 주택가에 화재가 나는 것은 처음 봤다. 영화인가 싶어서 TV 채널을 돌렸더니, 모든 방송이 퍼시픽 팰리세이즈 산불과 이튼 산불을 중계했다.   ‘악마의 바람’이라 불리는 산타애나 강풍에 작은 불씨가 주민 밀집 지역으로 떨어졌다. 잡목과 팜 트리에 불이 붙자, 금세 집이 불길에 휩싸였다. 아무것도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불씨를 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난겨울부터 LA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돌풍과 건조한 날씨로 인해 불이 급속도로 확산하였다. 통제 불능 상태였다.   이번 LA 산불은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다. 수십만 명에게 강제 대피령이 내려졌고, 화마가 지나간 자리는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총소리만 들리지 않았지 흡사 폭탄이 터진 것처럼 보였다. 눈길이 닿는 곳은 다 타고 재만 남았다. 허탈했다. 마을 하나가 통째로 소실되었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동네를 보니, 한숨만 나오고 자연재해에 아무런 대책 없는 인간의 한계를 새삼 느꼈다.   바람이 또 분다.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서도 산불이 나서 두 번이나 대피 경보를 알리는 긴급 재난 문자가 울렸다. 혹시나 해서 비상 대비 박스를 마련했다.     그 와중에 매월 문학을 논하는 줌 미팅이 있었다. 옛말에 감선철악(減膳撤樂)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에 갑작스러운 재앙이나 사고가 있을 때는 임금도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노래와 춤을 가까이하지 아니했다. 그런데 산불을 피해 대피한 가족을 아는데도, 계획대로 행사를 주최하려 했다. 사람이 있고 문학이 있다. 경솔한 행동을, 지면을 빌어 사과한다.   마침내 바람이 그치자, 때를 따라 벚꽃이 한창이다. 드디어 잔인했던 1월이 갔지만, 꽃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집을 잃는 것은 단순히 소유물과 거주할 곳을 잃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일부분을 잃는 것이다. 짙은 연기와 소용돌이치는 불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소방대원들이 고맙다.   LA 산불 피해자를 위한 성금 모금 캠페인과 자선 모금 행사가 한창이다. 아름다운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재난 이재민이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 우리의 가야 할 길이 고단하고 험하지만, 함께 가면 쉽지 않을까. ‘SoCal Strong’ 이리나 / 수필가이아침에 잔인 이튼 산불 보통 산불 la 산불

2025-02-09

[이아침에]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몇 번의 퇴고를 거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표지까지 정하고 나니 비로소 책을 낸다는 실감이 났다.     첫 책이라 출판기념회를 조촐하게라도 하고 싶었다. 남편과 함께 추천받은 몇 곳을 직접 방문해서 밥을 먹어보고 분위기도 비교한 후 A 센터로 정했다. 높은 천장과 화사한 조명이 마음에 들었다. 은퇴 후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자주 티격태격하던 우리는 오랜만에 의견일치를 본 셈이다. 장소를 정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내가 속해 있는 ‘재미 수필협회’의 도움으로 초청장과 순서지를 만들었다. 수필가 선배들께 축사와 격려사를 부탁했다. 사진을 배운 친구들이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축하 연주를 부탁하니 흔쾌히 해준다는 분이 계셔서 분위기가 한층 빛나게 되었다. 반주자로 기타리스트분도 소개받았다. 내가 다니는 미술 교실 선생님은 식탁마다 예쁜 센터피스 꽃을 만들어 선물해 주었다. 화사한 분위기가 더해졌다.   행사장에 걸 배너를 찾아오니 내 이름 석 자가 반짝인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내 이름을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듯싶다.  감개무량했다. 내 책을 응원해 주는 지인들이 모인 즐거운 잔치였다.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방명록을 읽으며 분에 넘치는 축하와 격려에 취해도 보았다.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좋다. 그분들의 응원하는 마음을 내 마음속 깊이 간직하련다. 앞으로 글쓰기에 농땡이 부리지 않고 좋은 글로 보답하리라 다짐했다.   나 혼자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여러분의 도움으로 매끄럽고 아름다운 행사가 됐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처럼 때때로 외롭고 힘들지만 ‘모든 것이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를 가슴 깊이 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따뜻한 시간이었다. 감사하다. 역사상 최악이라는 LA 큰 산불로 어려운 중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훈훈한 분위기의 행사를 마치니 행복했다.   축하 연주해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하려고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기타 반주하신 분이 밑줄까지 쳐가며 읽었다고 책을 보여주셨다. 나는 내게도 드디어 열렬한 팬이 생긴 양 흥분했다. 내 책의 운명이 혹시라도 라면 냄비 받침이 되는 거 아냐 싶었는데, 큰 수확이다.   단 한 명이라도 공감을 해주는 독자가 있으면 글을 계속 쓰고 싶은 게 글 쓰는 이의 마음일 것이다. 새해 결심으로 한 달에 수필 한 꼭지를 꼭 써야지 마음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으나 학생 때 버릇 환갑이 지났어도 여전하다. 책상 정리만 하고 있다.  최숙희 / 수필가이아침에 출판기념회 재미 수필협회 수필가 선배들께 감사 인사

2025-02-06

[이아침에]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지말고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   이런 직설적인 덕담은 우리 어릴 땐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물질을 내놓고 말하면 품위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이러한 말을 이 삼십 년 전에 했더라면, 주변사람들로부터 받았을 경멸의 시선을 요즈음 젊은이들은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돈이 그때나 지금이나 삶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어도 보통은 그렇게 입에 올려가며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다.   돈이 인격이자 지위이자 그 사람을 나타내는 가장 큰 척도가 되는 요즈음, 그걸 보고 “천박해!” 하고 평가할 용기는 아마 없을 듯하다. 연말연시에 주고받은 인사대로 라면 새해에 돈은 엄청 벌게 되어있고 평생 한 번이나 날까 말까 한 대박도 여러 번 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올해의 돈이 덕담처럼 다 내게로 몰려올 것인가? 언감생심이다.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분모로 삼고 성취한 것을 분자로 삼으면 행복지수가 된다.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보통 성취한 것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하지만 ‘바라는 것’을 줄이는 것도 행복을 키우는 다른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2024년에 발표된 유엔의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143국 중 1위는 7년째 가장 행복한 나라에 선정된 핀란드, 부자나라인 미국의 행복지수는 23위, 대한민국은 52위였다. 결국 경제적으로 잘 산다고 꼭 행복하게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에 관심이 많이 간다. 결과나 수치를 볼 때도 미국과 한국이 동시에 마음이 쓰이곤 한다. 일가친척이 많이 살고 있는 내 조국이 아닌가. 한국이 안정되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월 한 달은 매우 복잡했다. 살고 있는 이곳은 하늘의 재난으로 지옥 같고 저곳은 사람이 만든 지옥 같아서 두 지옥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술을 마주하고 지은 시 ‘와각지쟁(蝸角之爭)’은 다음과 같다.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 차환락)/不開口笑是癡人(불개구소시치인)’   우리말로 옮기면 이런 뜻이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번쩍하는 찰나에 의탁한 이 몸/ 부유한 대로 가난한 대로 즐거움 있는 법/ 입을 벌려 웃지 않는 이 어리석은 자로다.’   우리 속담에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다. ‘웃는 집안에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는 기업이나 국가에도 해당한다.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이 자주 웃을 수 있어야 국운도 상승이 될 것이다.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에서 좌우가 갈려 싸우는 건 달팽이 두 뿔 위에서의 싸움과 무엇이 다를까.   ‘와각지쟁’을 멈추고, 얼굴마다 웃음 넘치는 날들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달팽이 나라 대한민국 지옥 사이 분모로 삼고

2025-02-04

[이아침에] 죽음은 다리 하나 건널 뿐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하늘은 빨갛게 타올랐다. 검게 물들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아직도 타는 듯한 냄새가 코에서 맴돌았고 잿가루가 차 지붕에 쌓였다. 을씨년스러운 산과 주위를 보며 프리웨이를 달렸다. 정체가 없어서 생각보다 일찍 할리우드 힐스 포리스트 론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무거웠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뭔가 겪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착잡한 마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하고 끝나 가기를 기다렸었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다.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별식으로 생각하게 됐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이 오지 않았다. 긴 의자는 등받이가 높았고 칸막이를 해 놓은 듯 보여 엄숙함을 더 하는 것 같았다. 조문객들은 조용히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앉아 있었다. 접수처에서 내 이름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밸리에 사는 문우였다. 오기로 한 문우들이 시작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장례식 순서지를 보니 시와 수필이 실려있었다. 시는 추모하는 글이었고 수필은 그녀가 죽기 전에 써놓은 글이었다. ‘영혼의 이별식’인데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와서 쓴 것이다.     그녀는 “평소 즐기던 음악을 내 장례식에 참석한 지인들과 감상하고 영혼의 이별식 하루 만이라도 숙명적으로 낙엽인 된 나와의 결별을 슬퍼해 줄 몇 명의 진실한 가슴만 있다면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을 것이리라”고 썼다.   이제 내가 여기에 와있다. 그녀가 써놓은 수필의 손님으로 앉아 있다. 그녀는 작년 8월 달 동네방 글공부 모임에 나왔었다. 내가 밥을 산다고 했다. 그때는 4명만 나왔다. 그녀는 “밥을 산다고 하니 나와야죠” 하고 말했다. 약간 수척한 듯 보였지만 아픈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글에 대해 진지하게 평하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모임과 한강 노벨상 문학 축하 자리에 나왔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11월 달 줌미팅에서였다. 그때 한 회원이 그녀에게 말했다. “선생님, 나오기를 기다렸었는데 저번 때 나오지 않으셨더라고요. 선생님이 저번 때 평한 것을 가지고 제 작품을 많이 고쳤어요.”     그때에도 그녀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달 6일 카톡으로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가 왔다. 어느 회원의 이메일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체 이메일로 그녀가 그 회원의 작품에 대해 평한 것이 들어왔다. 아마도 건강이 허락지 않아 대면 모임에 나오기 힘들어서 보낸 것 같았다. 나중에 그녀가 갑자기 찾아온 암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달 14일 동네방 글공부 대면 모임에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먼 거리에 사는 회원이 모처럼 나왔다. 그녀가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어제 전화통화를 했다고 했다. 오늘 나올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실감나지 않았다. 뜻밖이었다. 회원들은 놀랐다. 그녀가 그렇게 빨리 떠나갈 줄 몰랐다.     이제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그녀 앞에 와 있다.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제 아내는 아직도 아름다워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잘 보고 가세요.”     그녀 앞에 다가갔을 때 평소 말하는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와 줘서 고마워요. 제가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겠어요.”   그녀는 단지 신호등의 교차로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차로를 건너가면 다른 거리가 보이고 다른 세상이 보인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올지도 모르며 우리 곁에 있다. 그저 다리 하나 건너는 것뿐이다. 죽음이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게 다가왔다.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고 하나의 연결로 생각하려면 살아 있는 동안에 오늘 하루를 충실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될 것 같다. 그리고 가족, 친구, 지인을 포함해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아 있는 순간 순간 충실해야 할 것 같다. 이정호 / 수필가이아침에 죽음 다리 대면 모임 동네방 글공부 다리 하나

2025-01-26

[이 아침에] 속보를 알려드립니다

한 달 전쯤 한국에서 일어난 계엄 사태는 수많은 뉴스를 쏟아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심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마다 ‘속보(速報)’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것뿐인가 그 이후에도 여러 뉴스가 ‘속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속보’는 중대한 사건, 사고, 재해 등이 발생했을 때, 언론 매체에서 우선적으로 보도하는 뉴스를 의미한다.   언론에서는 ‘속보’라는 제목을 달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알았는지 기사마다 ‘속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저마다 급한 뉴스라고 내놓는다. ‘속보’라고 내놓는 기사가 대부분 별로 급할 필요가 없는 소식인 줄을 알면서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속보’라는 말의 ‘속’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것은 1970~80년대 ‘속보’를 다급히 외치던 시절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작은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방송에서 속보가 전해졌다. 뉴스 진행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보를 알려드립니다”라는 말로 뉴스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TV 앞에 모여 귀를 기울였다. 뉴스 진행자가 속보를 전했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 아침과 마찬가지로 동쪽에서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그 뉴스를 보던 사람마다 깜짝 놀라며 서로에게 말했다. “그게 사실이야! 아니, 세상에! 그렇게 큰 태양이 오늘 다시 떠오르다니 정말 놀랍고 신기하지 않아요!”     이 이야기는 성공학의 대부로 알려진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자신의 책 ‘Time Power(잠들어 있는 시간을 깨워라)’에서 전하는 우화다. 트레이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아침에도 해가 떠올랐다는 뉴스가 속보로 전해지고, 그 소식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는 어리석은 바보들의 나라가 아니라, 지혜로운 천재들의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천재들은 공통으로 모든 사물과 사건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도 범상치 않은 뉴스가 전해졌다.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될 속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라는 뉴스다.     지구가 비행기보다 100배나 빠른 시속 6만7000마일의 속도로 쉬지 않고 달려, 태양을 365일 만에 한 바퀴 돌아 우리에게 새해 첫 아침을 선사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이란 말인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낮과 밤이 수백 번 바뀌었고, 봄·여름·가을·겨울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런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곡식이 나고 자라 열매를 맺었고, 우리의 인생도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새해 첫 아침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경이로운 뉴스로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그만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새해 아침이 밝았다.’는 속보를 전하며, 새해 인사를 드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아침에 뉴스 진행자 새해 인사 새해 아침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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