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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결혼, 진짜 가족 이야기로 선입견 벽 넘어

웨딩 뱅큇
1993년 앙 리 감독 퀴어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
한인 2세 앤드류 안 감독의 메인스트림 데뷔작
동성 커플 결혼·사랑에 대한 갈등과 문제 제기

‘웨딩 뱅큇’은 타이완 출신의 거장 앙 리 감독의 1993년 원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각색, 오늘을 사는 두 LGBTQ 커플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Bleecker Street]

‘웨딩 뱅큇’은 타이완 출신의 거장 앙 리 감독의 1993년 원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각색, 오늘을 사는 두 LGBTQ 커플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Bleecker Street]

원작이 걸작인데 리메이크도 걸작이다. 아시안들의 성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그 중심에 한인들이 있고 영화를 만든 감독은 코리언 아메리칸이다.  
 
아이덴티티의 세대 간 갈등을 주로 이야기하던 이전 한인 2세 감독들의 영화들과 사뭇 다르다. ‘웨딩 뱅큇(The Wedding Banquet)’은 성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퀴어들의 이야기다. 이제 한인들의 가정에도 성 정체성의 문제가 도래한 걸까.  
 
2020년 ‘미나리’의 아이작 정 감독, 2023년 ‘패스트라이브즈’의 셀렌 송 감독에 이어 앤드류 안 감독이 메인스트림을 두드린다. [Bleecker Street]

2020년 ‘미나리’의 아이작 정 감독, 2023년 ‘패스트라이브즈’의 셀렌 송 감독에 이어 앤드류 안 감독이 메인스트림을 두드린다. [Bleecker Street]

2020년 ‘미나리’의 아이작 정 감독, 2023년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렌 송 감독에 이어 앤드류 안 감독이 메인스트림을 두드린다.  
 
타이완 출신의 거장 앙 리 감독의 1993년 원작을 바탕으로, 두 LGBTQ 커플의 관계를 그린 영화 ‘웨딩 뱅큇’은 철저하게 즐거운 드라마 코미디다.  
 
2005년 ‘브로우크백 마운틴’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던 앙 리 감독의 초기작 ‘웨딩 뱅큇’이 원작이다. 앙 리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최초의 아시안 감독으로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눈도장을 찍었고 이후 ‘와호장룡’(2000), ‘색, 계’(2007)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993년 앙 리의 원작 ‘웨딩 뱅큇’이 개봉되었을 때는 동성애자들 사이에 유행했던 에이즈(AIDS)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영화에서 퀴어에 관한 표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미국은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앤드류 안은 앙 리의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아시안의 이야기로 확장하고 장소도 뉴욕에서 시애틀로 옮겨온다. 그는 원작의 냉소주의를 즐겁고 유쾌한 코미디로 진화시켰다. 예측불허의 코미디, 그러나 진한 감동이 있다. 빠른 진행, 현란한 익살에도 가볍지 않다.
 
영화는 ‘동성결혼이 가능한 시대에 왜 주인공들은 가짜로 이성 결혼을 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유학생 민(한기찬)은 숨어 있는 게이다. 대기업을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다. 민은 동성애자 연인 크리스(보웬 양)와 동거하고 있다. 그들이 사는 집에는 또 다른 동성애 커플 안젤라(켈리 매리 트란)와 리(릴리 글래드스톤)가 룸메이트로 함께 살고 있다.  
 
민의 엄격한 할머니(윤여정)는 민과의 화상 통화를 통해 민이 이제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와 가업을 이어가라고 종용한다. 민의 학생 비자가 곧 만료된다. 크리스와 헤어지길 원치 않는 민은 고민에 차 있다.  
 
민은 5년 차 보이프렌드 크리스에게 청혼한다. 할아버지가 알게 되면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릴 게 뻔하지만, 체류 문제를 해결하고 할머니가 자신의 귀국을 포기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그러나 크리스는 민의 청혼을 거부한다. 예술가 크리스는 민을 사랑하지만, 결혼이란 ‘제도’를 본질에서 거부한다. 그는 관계에 얽매이기를 원치 않는다. 사랑에서도 자유를 지향하는 그에게 결혼은 공포다.  
 
레즈비언 커플 리와 안젤라는 아기를 원한다. 여러 번 인공 수정에 실패해 실의에 차 있는 이들은 체외수정을 시도하고 싶지만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크리스가 그의 청혼을 거부하자 민은 절박한 상황에서 두 커플, 네 사람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낸다. 민과 안젤라의 가짜 결혼! 민의 체류 문제를 해결하고 대신 민은 안젤라와 리의 체외수정 비용을 제공하기로 한다. 네 사람은 ‘거래’를 결정한다. 당장 미국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쁜 마음에 민은 할머니에게 애인이 생겼다며 약혼하겠다고 통보한다.
 
어느 날 갑자기 민의 여자친구를 보기 위해 시애틀에 도착한 할머니. 이에 당황한 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1시간. 그들은 부리나케 서로의 방을 바꾸고 집안 내 게이와 레즈비언의 흔적을 치워야 한다.  
 
할머니는 민의 ‘약혼녀’ 안젤라를 만나고 결혼식을 계획한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민의 계획을 알 리 없는 할머니는 성대한 결혼식, 그것도 한국 전통혼례식으로 치를 것을 고집한다. 민의 가짜 결혼 계획은 이제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안젤라와 크리스는 대학 시절부터 친구, 모든 걸 다 터놓는 사이다. 두 사람이 함께 마신 데킬라 만큼이나 우정이 두텁다. 서로에게 베스트 프렌드인 이 둘은 성 정체성의 반대 지점에 있다. 두 친구는 서로의 고민에 데킬라 샷을 마구 들이키고 만취 상태에서 그날 밤을 한 침대에서 보낸다.  아침에 눈을 뜨고 알몸으로 있는 서로의 모습에 놀란 두 사람이 황급히 옷을 주워 입는다. 코믹의 최고점, 폭소의 하이라이트인 장면이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최고 인기작 중 하나였던‘ 웨딩 뱅큇’은 4월 18일 전국 개봉에 들어간다. [Bleecker Street]

지난해 선댄스영화제 최고 인기작 중 하나였던‘ 웨딩 뱅큇’은 4월 18일 전국 개봉에 들어간다. [Bleecker Street]

영화를 끌고 나가는 주동력은 두 배우의 연기다. ‘위키드’의 스타 보웬 양이 전체를 이끌고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이는 트란이 깊이를 더한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으로 2023년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릴리 글래드스톤의 연기 역량이 십분발휘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베테랑 조앤 첸과 윤여정이 각기 안젤라의 어머니와 민의 할머니로 출연한다. 이들은 진보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듯 보이지만, 실은 고정 관념의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영화는 고정관념의 범위를 좀 더 넓혀 간다.  
 
4명의 동성애 주인공들 사이에도 고정관념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나와 다른 그 모든 이질적인 요소들,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배경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고정관념의 영역임을 감독은 성 정체성의 문제를 대입해 표현해간다.  
 
사회적 규범은 늘 강압적이다. 주변의 편견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가한다. 연인 간, 부모와 자식 간에 성 정체성의 문제가 들어서며 세대 간, 이성간, 동성 간의 갈등이 제각기 다르게 작동한다.  
 
스토리는 일단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거짓말로 얽힌 두 커플과 그들 가족 간의 복잡한 스토리가 어떻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을까.  
 
결혼은 어느 한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가족은 모든 것을 수용한다. 영화는 젊은 세대 동성애 문화의 한 단면을 통해 그들이 겪고 있는 갈등의 내면을 보게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가 동성 간의 결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성 정체성의 문제를 그들의 언어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웨딩 뱅큇’은 이 시대에 ‘퀴어란 누구인가’라는 이슈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서로의 숨기려는 부분을 숨겨주려는 따듯한 배려가 느껴지는 영화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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