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북한생활, 지옥이었다”
북송에서 사선 넘어 자유 찾기까지
재일동포 양창수 씨의 눈물겨운 이야기

양창수 일본관동탈북민통일연대 대표
일본 조총련에 속아 북송했다 60여 년에 만에 탈북해 자유를 찾은 일본관동탈북민통일연대 양창수(79) 대표를 지난 26일 워싱턴에서 열린 탈북민 체육대회에서 만나 인생역전에 대한 이야기를 문답식으로 나눠봤다.
=일본에서 북송을 하게 된 동기는?
“1960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부모님이 조총련 간부에게 속아 북송을 결정하고 북한땅을 밟았다. 부모님과 우리 형제 5명 등 총 7명이 도착한 곳은 청진이었다”
= 조총련이 어떻게 유혹을 했는지 기억 나는 점은?
“전 과정 공부를 무료로 시켜주는 동시에 해외 유학까지 책임진다는 말에 부모님과 저는 엄청난 꿈과 희망을 갖고 믿고 따랐다”
= 북한땅을 밟은 후 생활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우리 가족은 청진 해동지역에 삶의 터전을 배치받으면서 일은 탄광에서 석탄캐는 최악의 막노동을 해야 했다. 실망과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는데 이것이 공산 사회주의라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당시 16살이어던 나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역시 탄광에 배치받았다”
= 탄광 생활은 어떻는지?
“하루 800그램 식량을 배급받기 위해 1800미터 지하로 내려가 석탄 캐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며 ‘지옥’ 그 자체였다. 하루 하루 죽지못해 살았다고 봐야한다”
= 북송 동포라 결혼도 힘들었을텐데?
“27살 되던 해에 북한 여자와 결혼을 할려고 하니까 처갓집에서 반대가 너무 심해 고민도 많았다. 이유는 일본서 북송되어 온 동포라 ‘감시대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루고 아들 2 딸 1를 두고 힘들게 살았다”
= 탈북을 하게 된 동기는?
“북한은 도저히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는 생각이 날로 깊어져 결국 처와 자식들에게 말을 하고 혼자 사선을 넘었다”
= 탈북 경로와 일본 도착은?
“무조건 북한땅을 벗어나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두만강을 건너 중국 길림성 연길로 갔다. 이 때가 2006년 이었다. 불행하게도 이 곳에서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2달 간 구금 상태에 있다가 일본에 있는 형의 도움으로 30만엔을 내고 풀려났다. 이후 심양에 있는 일본 영사관에서 4개월을 있다가 결국 일본에 도착했다”
= 북한에 있는 가족은?
“기약이 없는 이별이다. 하루 빨리 남북한 평화통일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 북한이 지향하는 통일 정책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집단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통일 방법은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다. 평화통일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에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 앞으로 계획은?
“죽을 때까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북한 핵폐기와 정치범 수용소 해체를 위한 운동을 할 것이다”
김성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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