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의 향기
햇빛 쨍한 날에 비가 내려요잠시 생각이 지나쳤을 뿐인데
내 마음에 당신이 있네요
홀로 남아
지난 일 떠 올리면 무엇하겠어요
엎드리는 겨울 호수가 서글퍼요
물새가 낮게 물결 위를 날아가요
속삭이는 파도는 마음 빼앗는데
당신은 무엇 하나요 노을 지는데
석양이 내려앉은 붉은 보라 하늘
하나둘 부서지는 물살의 구애
며칠 밤낮으로 찬비로 내리고
호수는 맘껏 깊어만 가요
당신은 잘 지내죠 바람도 심한데
홀로 남아
지난날 떠올리면 무슨 소용 있나요
떨어지는 가을 낙엽이 애처로워요
뱃길 비추는 등대의 따뜻한 불빛
당신 머물렀던 시간이 꿈같아요
물결도 그리움마냥 출렁이는데
당신은 잠들었나요 별 뜨는데
![[신호철]](https://www.koreadaily.com/data/photo/202504/08/53d8796b-62e5-4378-94af-7fdfaf006148.jpg)
[신호철]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에 두 배를 이곳 시카고에서 살고 있다. 세 번의 이사를 갔고 그때마다 짐을 싸며, 내 마음에 깊숙한 곳에 담겨져 있던 기억을 사진첩을 정리하듯 정리하곤 했다. 매해 봄날이 다가올 때쯤에는 늘 지난 겨울의 혹독한 이야기들마저 언제 그랬었나 내 몸을 따뜻하게 녹이는 봄날이 다가오곤 했다. 홀로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두려움에서 언제부터인가 그리움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놀라고 있다. 어제는 종일 봄비가 내렸다. 틈새로 간간이 햇빛도 볼 수 있었다. 비가 내려도, 미시간 호수에 물새가 낮게 날아도, 서쪽 하늘에 붉은 보라 노을이 져도, 늘 마음 한구석을 자리 잡고 있는 그리움이라는 실체. 별이 뜨고, 달빛이 내려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볼 수 없기에 더더욱 궁금해지는 당신을 나는 이제 향기라 부르겠다. 계절마다 다른 향기를 품고 아침을 여는 당신을 기억한다. 사람은 주저하고 때로 망설이기도 하지만 계절은 망설이지 않는다. 매번 처음 다가오는 날들인 양 너의 향기는 여기까지 깊숙이 실려 왔다. 새싹을 내밀며, 새 가지를 키우며, 꽃을 피운다. 어떤 상황이 향기처럼 몽롱하다. 음악이 들려오듯, 바람에 온기를 담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 연두로, 초록으로 뒤란에 가득 향기를 쏟아 놓는다. 홀로 남은 것들에게 봄은 쓸쓸함이란 찻잔에 그리움의 차를 오래 끓여 만든 향기를 풍기며 어느새 내 안 가득히 피어나고 있다. 세상을 다 아우르는 봄의 향기로 오는 당신은.
봄의 향기
향기는 여기까지
실려 왔다
꽃이 피어나듯
강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어오듯
음악이 흐르듯
너는 그렇게 오고 있다
걸어 잠근 겨울 뒤로
혹독한 것의 속으로부터
닫힌 문지방 사이로
너는 그렇게 가까이 왔다
향기는 오래 머물렀고
까닭도 없이 바람이 춤추고
놀란 가슴 쓸어내듯
봄비가 내렸다
잔디가 살아나고
언덕이 푸르게 다가오고
살아나는 기억 속 향기
함께 걷는 행간을 좁히며
어느새 내 안에 가득한 너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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