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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의 향기

햇빛 쨍한 날에 비가 내려요
잠시 생각이 지나쳤을 뿐인데
내 마음에 당신이 있네요
 
홀로 남아
지난 일 떠 올리면 무엇하겠어요
엎드리는 겨울 호수가 서글퍼요
물새가 낮게 물결 위를 날아가요
속삭이는 파도는 마음 빼앗는데
당신은 무엇 하나요 노을 지는데
 
석양이 내려앉은 붉은 보라 하늘
하나둘 부서지는 물살의 구애
며칠 밤낮으로 찬비로 내리고
호수는 맘껏 깊어만 가요
당신은 잘 지내죠 바람도 심한데
 
홀로 남아
지난날 떠올리면 무슨 소용 있나요
떨어지는 가을 낙엽이 애처로워요
뱃길 비추는 등대의 따뜻한 불빛
당신 머물렀던 시간이 꿈같아요
물결도 그리움마냥 출렁이는데
당신은 잠들었나요 별 뜨는데
 
[신호철]

[신호철]

대학을 마치고 시카고로 떠나기 전에 아버지 묘지를 다녀왔다. 대전에서 온양을 지나 문이라는 작은 마을에 선산이 있었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이 되면 늘 찾아갔던 반가운 곳이다. 큰아버지 병원이 대전역 맞은편에 있었고 그곳에서 차로 이동하면 멀지 않은 곳에 할아버지 소유의 포도 과수원이 있었다. 사촌 형들이 여러 명 계셨고 사촌 누나들도 여럿 있어서 늘 대전은 내 마음의 고향 같기도 하였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억엔 3시간이 넘어 대전역에 도착했다. 대전역에서 문이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한적한 도로변에 버스는 나를 내려놓고 흙먼지를 날리며 멀어져 같다. 얕은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얼마만큼이나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드문 보이는 농가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밭일을 나가셨는지 사람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텅 빈 언덕길 위로 낮게 드리운 구름이 무겁게 느껴졌다. 한동안 걷고 있던 나를 휩싸였던 적막. 거대한 유리병 속에 갇힌 듯한 내 모습에 가던 발길을 멈추었던 기억이 난다. 홀로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조심스레 다시 발걸음을 띄었지만,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묘한 감흥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다.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에 두 배를 이곳 시카고에서 살고 있다. 세 번의 이사를 갔고 그때마다 짐을 싸며, 내 마음에 깊숙한 곳에 담겨져 있던 기억을 사진첩을 정리하듯 정리하곤 했다. 매해 봄날이 다가올 때쯤에는 늘 지난 겨울의 혹독한 이야기들마저 언제 그랬었나 내 몸을 따뜻하게 녹이는 봄날이 다가오곤 했다. 홀로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두려움에서 언제부터인가 그리움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놀라고 있다. 어제는 종일 봄비가 내렸다. 틈새로 간간이 햇빛도 볼 수 있었다. 비가 내려도, 미시간 호수에 물새가 낮게 날아도, 서쪽 하늘에 붉은 보라 노을이 져도, 늘 마음 한구석을 자리 잡고 있는 그리움이라는 실체. 별이 뜨고, 달빛이 내려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볼 수 없기에 더더욱 궁금해지는 당신을 나는 이제 향기라 부르겠다. 계절마다 다른 향기를 품고 아침을 여는 당신을 기억한다. 사람은 주저하고 때로 망설이기도 하지만 계절은 망설이지 않는다. 매번 처음 다가오는 날들인 양 너의 향기는 여기까지 깊숙이 실려 왔다. 새싹을 내밀며, 새 가지를 키우며, 꽃을 피운다. 어떤 상황이 향기처럼 몽롱하다. 음악이 들려오듯, 바람에 온기를 담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 연두로, 초록으로 뒤란에 가득 향기를 쏟아 놓는다. 홀로 남은 것들에게 봄은 쓸쓸함이란 찻잔에 그리움의 차를 오래 끓여 만든 향기를 풍기며 어느새 내 안 가득히 피어나고 있다. 세상을 다 아우르는 봄의 향기로 오는 당신은.
 
봄의 향기
향기는 여기까지
실려 왔다
 
꽃이 피어나듯
강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어오듯
음악이 흐르듯
너는 그렇게 오고 있다
 
걸어 잠근 겨울 뒤로
혹독한 것의 속으로부터
닫힌 문지방 사이로
너는 그렇게 가까이 왔다
 
향기는 오래 머물렀고
까닭도 없이 바람이 춤추고
놀란 가슴 쓸어내듯
봄비가 내렸다
 
잔디가 살아나고
언덕이 푸르게 다가오고
살아나는 기억 속 향기
함께 걷는 행간을 좁히며
어느새 내 안에 가득한 너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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