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안동과 샌프란시스코, 슬픈 데자뷔

피터 슈어만 /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 기자
친구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봄을 경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겨울이 여름으로 바뀐 것 같다”며 “이번 사태도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급격한 기온 변화, 맹렬한 강풍, 장기간 지속된 건조한 기후가 한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 참사를 촉발했다. 약 8만 9000에이커의 산림이 불에 타고 4만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대피했다. 사망자는 현재 31명으로 집계됐으며, 대부분 60~70대 노인들이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불교 사찰을 포함한 역사적 유적지들도 잿더미로 변했다.
한국 정부당국은 27일 오후 기준으로 의성 화재의 52%가 진화됐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에 비가 내릴 예정이어서 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에게 이러한 광경은 너무나 익숙하다. 지난 2020년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은 짙은 주황색으로 변했다. 당시는 팬데믹 초기였고, 세상은 이미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였다. 매캐한 재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지는 가운데, 북쪽에서 맹위를 떨치던 산불은 200만 에이커 이상을 태웠고, 짙은 연기는 샌프란시스코 전체를 덮어 태양빛마저 가렸다.
그날 밤, 한국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은 전화를 걸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우리 부부의 안부를 확인했다. 올해 초 LA 일부 지역을 황폐화시킨 화재가 전 세계 TV화면에 방송되었을 때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다.
한국의 친구들은 내게 “괜찮니, 안전하니?”라고 걱정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 볼 때, 샌프란시스코와 LA사이 480km 거리는 멀지 않은 거리였던 것 같다. 한국 친구들은 이제 ‘캘리포니아’ 하면 ‘산불’이 연상된 모양이다.
내 친구는 안동에서 나고 자랐고, 종종 이곳을 방문해 93세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친구는 “지난 이틀 동안 짐을 싸서 대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동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150마일 떨어진 역사의 도시다. 한때 유교 학문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던 이 도시는 ‘동쪽의 평화’라는 의미를 지니며, 한국전쟁 초기 남북한 군대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안동 지역 주민들, 15세기부터 존재한 하회마을을 포함한 주변 지역 주민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주민들이 잡초를 제거하거나 전기 울타리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든, 한국 정부 관계자가 말한 것처럼 ‘기후 위기’의 광범위한 영향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한국은 작년부터 장기간 가뭄에 시달려 왔으며, 현재 화재가 발생한 경상도는 적설량 부족으로 건조한 상황에 대한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한양대학교 기후역학과 예상욱 교수는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가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아직 ‘기후변화’가 정치적 문제로 관심 받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기후변화보다 경제, 물가, 이민 등의 문제를 우선시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환경보호청(EPA) 축소, 기후 관련 예산 삭감 등 미국 기후 정책을 해체하고 있으나, 미국사회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드릴 베이비 드릴(석유 시추 확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 일상생활에 비해 너무 거대하거나 멀게 느껴져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추상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물가 상승과 같은 문제가 우리 일상생활에 직접 체감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안동까지 5000마일 이상 떨어져 있지만, 내게 있어 안동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산을 태우고 주택을 위협하는 화염을 볼수록, 마치 오래전에 사라졌기를 바랐던 장면을 다시 경험하는 ‘데자뷔’를 느낀다.
기후변화의 영향 중 하나는 공통된 문제를 공유하며 서로 다른 지역과 사람들의 거리를 좁히고 연결한다는 것이다. 나는 안동의 친구에게 “부디 무사하기를 바란다”고 용기를 북돋았다. 그러면서 지구 반대편에 사는 그와 나 모두가 이제 캘리포니아인이 되었다는 서글픈 공감대를 느꼈다.
피터 슈어만 /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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