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을 기억해주신 은혜 용산고 후배들에게 보답”
4·19 이한수 열사 모교에 3억 기부한 이주백 대표

이 대표와 부인 서경애씨.

수유동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한수 열사. 그는 60년 4월 26일 시위에 나섰다 총격을 받았다.
콜로라도 덴버에서 호텔업계에 종사해온 이주백(74) 대표는 인터뷰 중간중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난 14일 한국 용산고등학교에 가족이 만든 ‘백애 재단’이름으로 ‘이한수 장학상’을 만드는데 3억원 기부를 약속했다. 본인 이름 끝자와 부인 서경애씨의 끝자를 붙인 재단이다.
용산고는 그가 졸업한 모교가 아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의 삼촌 이한수 열사의 모교 후배들에게 50년 이민 생활의 결실을 나누기로 하고 실행에 옮겼다.
인연은 65년 전에 시작됐다.
4.19 의거로 청년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60년 4월 26일. 당시 용산고 3학년이던 이한수 열사(19세)는 종로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다. 19살 어린나이에 모진 역사의 굴레에서 희생된 삼촌의 장례식을 지켜본 어린 조카 이주백(당시 9세). 그는 어른이 되고 그 아픈 기억을 가슴에 담은 채 77년 미국으로 가족 이민을 떠난다.
“어린 나이였지만 조부모님을 포함해 가족 모두가 애통해하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정작 삼촌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후에 알고 깜짝 놀랐어요.”
이한수 열사를 기억하는 용산고 동창들이 61년 학교에 추모비를 만들고 이후 매년 학교를 방문해 추모의 시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나중에 전해들은 이 대표는 삼촌의 후배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곧바로 미주에서 활동하는 용산고 동문을 찾아나섰다. 동문회가 매년 후배들을 미국에 초청하고 있다는 것을 신문 보도로 보면서 더 용기를 냈다고 그는 전했다.
지난해 12월 연락이 닿은 용산고 관계자와 이 대표 가족은 지난 14일 LA서 만나 훈훈하고 뜻깊은 전달식을 가졌다.
행사를 마친 이 대표는 “3억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도 재단에서 가진 기금을 잘 운영해 장학금 규모를 더욱 확대하고 싶다”고 전했다. 앞으로는 두 아들이 잘 이어가 줄 것이라는 기대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는 북한의 결핵 퇴치를 위한 활동을 주도해온 유진벨재단에도 지난 10년 동안 지원해왔다.
이 대표는 ‘백애 재단’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며 관련 행사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행에 나설 때 두 아들을 대동해 항상 수유동을 찾는다. 조국의 고마움과 삼촌의 존재를 대를 이어 오래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그는 65년 전 19살 삼촌을 기억하는 많은 친구분들에게도 곧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이한수 장학상’에 대해 그는 “성적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훌륭한 학생들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내놓았다.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삼촌 이한수 열사를 위해 그가 이민 생활 내내 간직한 소망은 이뤄졌지만, 이제 세대를 이은 또다른 기억이 시작된 셈이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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