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과 만나다] 잡초와 약초 사이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 소녀, 룰루 밀러는, 곱슬머리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잠시 행복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그를 잃고 또다시 절망에 빠진다. 그러다가, 어떤 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19세기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오래된 책에서 발견하고는, 그는 ‘왜 절망하지 않는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과학전문 기자인 룰루 밀러가 옛 과학자의 삶을 조망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넌픽션 에세이다.
저자,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의 업적도 업적이지만, 그의 초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궁금했다. 별들의 이름을 외우고, 꽃과 식물 수집, 지도 만드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던 평범한 데이비드가 강과 호수를 누비며, 세계 어류의 5분의 1을 당대 인류에게 알리는 혁혁한 공을 세운 점에서도 놀랬지만, 그가 스탠퍼드 대학 초대 학장으로 일하던 1906년, 30년 동안 모아왔던 유리병 속 물고기 표본들이 강도 7.9의 대지진으로 박살 났을 때, 망연자실,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진 물고기에 바늘로 이름표를 꿰매 붙이면서 다시 표본들을 하나하나 분류하던 그에게서 불굴의 기개, 아름다움마저 느꼈다.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지진이 전하는 명백한 메시지에 대차게 도전하는 그가 과연 나와 같은 ‘사람’인 것인가.
그러나, 그 불굴의 기개는 전혀 예기치 못한 폭력성으로 변질하여 나타난다. 그가 물고기들을 잡을 때 보여준 잔인성에서. 그리고, 당시 미국을 강타했던 우생학(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는 학문)을 맹종했던 점에서. 그리고, 자신을 해고하려던 스탠퍼드 대학 설립자의 부인인 제인의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드러난 점에서까지. 저자는, 데이비드의 초긍정적 삶의 태도가 강박적 자기기만에서 나온 ‘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데이비드가 오매불망 몸 받쳐 분류했던 ‘어류’는 사실상 우리 인류가 붙여놓은 이름일 뿐, 본래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여러 검증으로부터 확인하게 된다.
구원인 줄 알았는데 폐악으로 드러나는 일은 도처에 비일비재하겠다. 그러나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혹은 약이 되기도 할 것이다.
두껍지도 않은 분량인데, 전에 만나본 적 없는 글 구성으로 방대한 양의 생각 거리를 주는 점에 말할 수 없이 매료되었으나, 특별히 두 가지 점에서 40대의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첫째, 데이비드가 범했던 우생학적 처벌로,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으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느 두 사람을 저자가 찾아내면서, 그냥 잡초인 듯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약초가 될 수 있다는 민들레 법칙을 긍정하게 되는 점. 둘째는,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경계선도, 사다리도 없다는 다윈의 말을 인용하면서 결국,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아버지의 철학이 ‘누구든 각자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사실로 인생의 의미를 다시 세운다는 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는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저자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은 글이다.
박영숙 / 시인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