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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과 만나다] 잡초와 약초 사이

“인생의 의미가 뭐에요?” “의미는 없어.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져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다를 게 없다. 너를 지켜주는 어떤 존재도 없으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일곱살 소녀가 친아버지로부터 이 대답을 들은 지 20년 뒤, “우리는 다만,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라는 유명 천문학자 닐 타이슨의 말을 들었을 때, 폐부에서 회오리치던 차가운 충격을 옮길 단어는 그녀에게 없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 소녀, 룰루 밀러는, 곱슬머리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잠시 행복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그를 잃고 또다시 절망에 빠진다. 그러다가, 어떤 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19세기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오래된 책에서 발견하고는, 그는 ‘왜 절망하지 않는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과학전문 기자인 룰루 밀러가 옛 과학자의 삶을 조망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넌픽션 에세이다.       저자,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의 업적도 업적이지만, 그의 초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궁금했다. 별들의 이름을 외우고, 꽃과 식물 수집, 지도 만드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던 평범한 데이비드가 강과 호수를 누비며, 세계 어류의 5분의 1을 당대 인류에게 알리는 혁혁한 공을 세운 점에서도 놀랬지만, 그가 스탠퍼드 대학 초대 학장으로 일하던 1906년, 30년 동안 모아왔던 유리병 속 물고기 표본들이 강도 7.9의 대지진으로 박살 났을 때, 망연자실,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진 물고기에 바늘로 이름표를 꿰매 붙이면서 다시 표본들을 하나하나 분류하던 그에게서 불굴의 기개, 아름다움마저 느꼈다.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지진이 전하는 명백한 메시지에 대차게 도전하는 그가 과연 나와 같은 ‘사람’인 것인가.     그러나, 그 불굴의 기개는 전혀 예기치 못한 폭력성으로 변질하여 나타난다. 그가 물고기들을 잡을 때 보여준 잔인성에서. 그리고, 당시 미국을 강타했던 우생학(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는 학문)을 맹종했던 점에서. 그리고, 자신을 해고하려던 스탠퍼드 대학 설립자의 부인인 제인의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드러난 점에서까지. 저자는, 데이비드의 초긍정적 삶의 태도가 강박적 자기기만에서 나온 ‘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데이비드가 오매불망 몸 받쳐 분류했던 ‘어류’는 사실상 우리 인류가 붙여놓은 이름일 뿐, 본래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여러 검증으로부터 확인하게 된다.     구원인 줄 알았는데 폐악으로 드러나는 일은 도처에 비일비재하겠다. 그러나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혹은 약이 되기도 할 것이다.     두껍지도 않은 분량인데, 전에 만나본 적 없는 글 구성으로 방대한 양의 생각 거리를 주는 점에 말할 수 없이 매료되었으나, 특별히 두 가지 점에서 40대의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첫째, 데이비드가 범했던 우생학적 처벌로,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으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느 두 사람을 저자가 찾아내면서, 그냥 잡초인 듯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약초가 될 수 있다는 민들레 법칙을 긍정하게 되는 점. 둘째는,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경계선도, 사다리도 없다는 다윈의 말을 인용하면서 결국,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아버지의 철학이 ‘누구든 각자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사실로 인생의 의미를 다시 세운다는 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는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저자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은 글이다. 박영숙 / 시인이 작품과 만나다 잡초 약초 과학자 데이비드 물고기 표본들 약초 사이

2025-03-25

[이 아침에] 잡초

온 세상이 초록빛이다. 기다리던 봄비가 마음껏 와준 덕분이다. 우리 집 나무들이 싱그럽게 연한 잎을 뿜어내고 물기 머문 꽃들이 꽃망울을 품는다. 작년 겨울에 선물 받아 심은 개나리가 더욱 선명한 노란 빛을 드리운다. 추운 겨울을 견뎌 지나온 탓이리라.   은퇴 후 우리 집 한 모퉁이에 만들어진 텃밭은 우리 부부의 일터다. 텃밭을 돌보는 건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우리에게 수고 이상의 기쁨을 주는 곳이다. 생명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며 결실의 희열을 몸 전체로 맛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도 초록빛으로 자라 젊어지는 듯하다.   거름을 주어 옥토를 조성했다. 잎의 성장에 좋은 것, 꽃을 피우게 하는 것,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 등 용도에 맞는 여러 가지 거름을 뿌렸다. 누렇던 떡잎이 짙푸르게 자라는 모습에 흐뭇해진다. 오이와 호박은 넝쿨을 내밀어 뻗어나려 한다. 고추는 흰 꽃, 가지는 보랏빛, 토마토는 노란 꽃을 맺는다. 그런데 불청객이 힘을 얻어 왕성하게 곁에서 같이 자란다.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바로 잡초다.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니?   하는 수 없이 군데군데 모종을 심고 가까이에 있는 잡초만 뽑아 주었다. 잡초를 하루 뽑고 나면 사흘 동안 팔다리가 아파 절절매는 형편이다. 아∽ 며칠이 지나면 여전히 잡초로 뒤덮이고 만다. 미처 뽑지 못한 잡초가 때를 만난 듯 마구 자란다. 노란 꽃까지 피워내 야생화 동산으로 변하는 걸 막을 수 없다. 텃밭이 유난히 넓어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생존하려는 질긴 근성을 막을 수 없어, 그냥 너도 같이 자라라고 어쩔 수 없는 아량을 베풀어야 할까? 지인의 조언대로 필요하지 않은 풀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검정 비닐로 덮어야 하나? 아니면 제초제를 뿌려야 할지? 우후죽순 올라오는 잡초만큼이나 나의 머릿속도 헝클어진다. 어지러운 혼돈 속에서 호미는 해결사로 한몫한다. 잡초는 날카로운 호미 날에 뽑히고 말 처지다.   소중히 여겼던 노란 민들레가 지천으로 흔하다. 초록 잔디밭 가운데 노란 꽃들이 수를 놓는다. 영토를 넓혀갈수록 하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필요와 수요에 의해 가치가 정해지는 건가? 어떤 게 들꽃이고 잡초인가? 기준이 모호해진다.   잡초는 이름 없이 향기도 없이 사랑받지 못한다. 생존했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주지 못한다. 우리의 삶 역시 같은 비유가 되지 않을는지. 윤택하지 못한 환경에서 억세게 살아가는 사람이 뽑히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어려움을 극복해 사회의 일원으로 자기 몫을 다한다면 언젠가 꽃을 피울 것이다. 분명 소중한 가치를 지닐 테니까.     옥토가 아닌 곳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성실한 생명체가 있다. 심고 거두는 자에게 기쁨을 나누게 해 준다. 이것이 잡초와 구분되는 경계라 생각한다. 목적에 맞게 이루어 가는 삶이리라.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잡초 보랏빛 토마토 초록 잔디밭 야생화 동산

2024-06-04

[열린광장] 잡초같은 생각

손바닥만 한 우리 집 앞뒤 정원의 풀을 뽑고 비료를 뿌린 후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 가지, 호박, 파 등의 씨와 모종을 심었다. 심어 놓은 모종이 잘 자라 수확하면 우리가 먹기도 하고, 딸네,  교회 사람들과도 나누겠다는 생각에 혼자 흐뭇해하며 키우고 있다.  물을 주다 보니 아주 파랗고 작은 싹들이 여러 곳에서 땅을 헤집고 올라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땅에 떨어진 상추와 토마토 씨가 싹을 내며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갑다고 생각해 다른 채소와 같이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물을 주려고 살펴보는데, 엊그제 싹이 올라와 뾰족하게 잎을 키우던 파란 싹들이 벌써 다른 채소 모종들과 같은 크기로 너무 충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잎과 가지 모양이 채소와는 다른 것이 아닌가?     직감적으로 잡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세히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잡초들이 채소 옆에서 자라는 것이었다. 한 달 여 전에 두 시간 동안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고 비료를 함께 섞어가며 땅을 고르고 나서 채소 모종을 심었는데, 심지도 않은 잡초가 채소와 같이 자라는 것을 보니 좀 짜증이 났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는 내게 잡초와 채소, 그리고 유실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채소와 유실수 옆에 잡초가 자라는 것은 그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잡초 뿌리가 채소와 유실수 뿌리 근처의 땅을 헤집고 크면서 공기 공급이 원활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기까지는 잡초의 역활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 예수님의 씨 뿌림과 가라지와 추수 때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잡초 같은 생각이 이곳저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늘 잡초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이를 모른 채 일상을 지내는 것이 내 삶의 단면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각자가 마음에 갖고 있는 생각은 알기 어렵다. 다만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알곡처럼 되고 싶고, 잘 자라서 열매를 맺고 싶어 한다.     예수님은 ‘밭은 세상이요,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날이요, 추수 꾼은 천사요, 천사-추수 꾼은 가라지를 거두어 풀무 불에 던질 것이요, 그때 의인들은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요’라고 비유하셨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변성수 / 교도소사역 목사열린광장 생각 채소 모종들 잡초 뿌리 유실수 뿌리

2023-11-30

[수필] 잡초 예찬

고생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은 흔히들 자신은 “잡초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잡초가 얼마나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잡초는 인간이 재배하지도 않고 저절로 자라나는 잡다한 풀로 때와 장소에 적합하지 않은 식물로 취급되어 왔다.     한적한 시골 논밭을 걸어가노라면 초록 색으로  뒤덮인 풀 중에 잡초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지도 못하고 생활에 유용하지도 않은 풀로 천대를 받고 살아가고 있으니 잡초가 인간이라면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면치 못하며 살아가는 신세일 것 같다.     “건강은 제일의 재산이다”라고 말한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잡초는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이라고 말하였다   일주일 동안 무덥던 더위가 가셨는지 제법 초가을 기분이 든다. 하늘을 쳐다보니 우중충하고 한판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이곳 라스베이거스는 너무 가뭄이 심하다 보니 질서 정연하게 우뚝우뚝 서 있는 가로수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비가 오기만을 고대하며 기도하는 모습들이다.     한국에서는 엄청난 비가 내려 야단법석이고, 히남도 태풍까지 휩쓸고 지나가 남해 일대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곳은 빗방울이 떨어지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참으로 세상은 공평하지도 못하다. 수십년간 콘도에서 살다 보니 빗자루로 마당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늘은 모처럼 딸네 집을 방문해 뒷마당을 깨끗이 쓸었다. 내가 사는 콘도는 아침마다 청소 담당자는 공기 청소기로  먼지를 날려 보낸다. 빗자루는 쓰레기를 쓸어모아 버리니 참으로 겸손한 존재이다.   그 겸손한 빗자루로 싹싹 쓸어도 악착같이 붙어 있는 녀석이 있다. 바로 잡초다. 콘크리트 사이에서 안간힘을 쓰고 솟아난 잡초다. 잡초란 녀석은 쓸고 쓸어도 쓸리지 않고 넘어졌다 고개를 들고, 숙였다가 솟아나고 도저히 빗자루 가지고는 속수무책이다. 잡초의 정신은 칠전팔기의 끈질긴 속성을 가지고 있는 식물인 것 같다. 잡초의 끈기와 인내만큼은 대단하다.     아쉽게도 내가 건강하던 젊은 시절에는 잡초의 속성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를 누가 바라보겠는가,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 저것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잡초’를 누가  바라 보겠는가. 가수 나훈아는 잡초의 속성을 일찍이 깨달은 것 같다.     세월이 흘러흘러  내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만큼 살다 보니 잡초의 속성이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이란 노년이 되면 온몸의 기관이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필요 없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강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고 호소할 때 잡초의 특성인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끈질긴 위력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그때서야 잡초 같은 건강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참으로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다. 몸이 건강할 때 몸을 낮추고 잡초의 특성을 발견 못 한 아쉬움이 나를 에워싸고 괴롭히고 있다. 천한 것을 귀하게도 볼 줄 아는 아쉬움도 나를 깨워준다. 산과 들에 번식하는 쓸모없는 풀이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틀림없이 잡초는 창조주로  하여금 특별한 역할을 하도록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소·염소·산양 같은 동물을 키우는 중요한 역할이나, 그들의 배설물로 우리가 사는 토양이 더 기름진 땅으로 만들게 한다든가, 약재와 식용으로  사용되어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수치스럽다고 여겨지는 그 약점이 때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잡초, 너는 알고 있는가. 너의 약점이 기회가 되어 흔한 것이 귀하게 여겨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잡초 같은 인생이란 말이 사라질 것이다. 약점을 활용하면 성공의 촉매제가 된다는 것. 잡초 너도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다.   백인호 / 수필가수필 잡초 예찬 잡초 예찬 공기 청소기 천덕꾸러기 대접

2022-09-22

[수필] 내 어머니의 딸

맑은 아침 딸네의 뜰에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를 뽑았다. 앞뜰 한쪽에 옹기종기 모인 잡초들이 눈에 거슬렸는데 마침 전날 저녁에 비가 왔던터라 줄기를 잡고 살살 흔드니 뿌리가 쉽게 뽑혔다. 집안에서 난장판을 벌리는 손주들의 고함소리가 아닌 상큼한 새소리가 신선한 아침을 화사하게 했다. 조지아 한 주택가의 한적한 고요가 내 여유에 좋은 배경이 되었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잡초에 열중했다. 색다른 명상의 자세다.     오래전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우리집 뜰에 나가서 잡초를 뽑으시면 나는 한사코 말렸다. 손목이 약한데 다치신다고 제발 그런 일 하지 마시라고 말렸지만 내가 출근하고 없으면 어머니는 앞뒷뜰의 잡초들과 씨름을 하셨다. 저녁에 어머니가 손목을 주무르시면 그날은 밖에서 오랫동안 잡초를 뽑은 날이었다. 그때는 어머니가 고집스레 풀들과의 전쟁을 하신다고 여겼지 당신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명상을 하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잡초를 뽑으면 어머니의 고충을 헤아리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한다. 아들네가 아닌 딸네에 머무시며 불편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퉁명한 딸의 눈치를 보면서 손목이 시려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신 어머니는 당신과 다른 생활방식을 선호한 딸을 힘겨워 하셨다. 함께 사는 동안 우리 모녀는 세대와 문화차이에서 헤어나질 못했고 전적인 타협을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영원히 사시리라 믿었던 철없던 딸은 어머니를 잃고서야 철이 들었다. 이제 할머니가 되어서 딸네의 뜰에서 잡초를 뽑으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딸들이 밖으로 나왔다. 집안을 다 돌아봐도 나를 찾지못해서 당황했다는 그녀들은 내가 내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지금의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혼자서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어서 밖으로 나섰다는 것과 잡초를 뽑으면서 내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더운데 엉뚱한 일한다” 면서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계속 잡초를 뽑는 나를 주시하던 큰딸이 “예전에 할머니가 그렇게 하셨는데” 말끝을 흐렸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 내 어머니가 하신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당연한 것보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린시절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관념을 중시하신 할머니와 미국식 사고방식을 우선하는 어머니와의 가치관 충돌을 보면서 자란 딸이다. 영어권인 집안에서 남편은 나와 티격태격하면 꼭 내 어머니에게 일본어로 도움을 청했고 그러면 어머니는 나에게 한국어로 훈계를 하셨다.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구시대의 여성상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우리 모녀의 관점이 달랐으니 삶을 관조하는 생활 자세도 당연히 다르리라 생각했던 딸은 여러 면에서 “할머니가 생전에 하신 말씀과 행동을 똑같이 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신기하다” 했다.     나는 분명히 변했다. 성장하며 받았던 도덕교육에 미국 공군에서 철저하게 받은 정직과 성실을 가진 진실성이 내 의식의 기반이었다. 옳고 그름만 아니라 끊고 맺음을 분명하게 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도덕적 갈등을 많이 가졌다. 친정식구들도 피곤하다 했으니 남편과 딸들은 오죽했으랴. 나름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하늘을 보고 부끄럼이 없도록 살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은 큰 실책을 범했다. 매사에 내가 좀 더 지혜롭게 처신했더라면, 조금 더 따스한 배려로 대인관계를 유지했더라면, 융통성을 가지고 적절히 사태를 처리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요즘 나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자주 가진다. 더불어 그동안 살면서 내가 선택한 결정들로 인한 인과응보를 명확하게 살펴본다. 내 과거의 흔적이 마치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아쉽고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여기저기 뚫린 구멍들은 살면서 사귄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채워져서 어느정도 메꾸어져 있다. 서로 기대고 산다는 사람살이가 묘하고 재미있게 그때 그때마다 내 부족함을 메워준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어머니의 딸이다. 은연중에 어머니를 닮아가지만 딸들의 삶에 참견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는다. 큰딸과 손주는 내일 제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내 일상을 찾는다. 그리고 훗날 이민 2세인 내 딸들은 나처럼 자식의 집을 찾아가서 잡초 뽑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을 안다. 영 그레이 / 수필가수필 어머니 오랫동안 잡초 큰딸과 손주 아침 딸네

2022-08-25

[이 아침에]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우리 집 뒷마당은 잡초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푸르고 단정했던 잔디밭이 몇 해 사이 잡초 밭으로 변했다.   가뭄에도 잡초는 잘 자랐다. 며칠 물을 더디게 주면 잔디는 마르기 시작한다. 잡초는 아랑곳 않고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잔디가 사라진 자리에 잡초가 푸르다. 셋방으로 들어와 주인을 밀어 내는 격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았다. 한참을 잡초와 씨름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잡초가 더 이상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잔디 깎는 기계로 밀었다.     키 큰 잡초는 서서히 사라졌다. 얼핏 보면 잔디처럼 보이는 게발잔디가 게 옆걸음질 치듯 뻗어 나갔다.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 눈물겹다.   잡초도 꽃을 피웠다. 마당 한 켠을 차지한 괭이밥에 노란 꽃송이가 맺혔다. 토끼풀도 하얀 꽃을 총총 매달고 있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도 모르는 씨가 뿌리를 내리고 붉은 꽃을 피웠다.     잡초라고 모두 보기 흉한 것은 아니다. 노란 괭이밥 꽃은 배시시 웃는 아기 웃음을 닮았다. 흐드러지게 피는 겨자꽃은 바람이 불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출렁인다.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피어나는 꽃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녀석들을 더 이상 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르지 않고 두었더니 하늘하늘한 가지 끝에 연 보라색 꽃이 피었다.     노란 민들레도 지천으로 피었다. 약성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약초가 될 터인데 그 가치를 모르니 우리 집에서는 잡초 취급을 받는다.     방송에 나오는 어떤 이는 산에서 나는 온갖 풀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무뿌리를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잡초 사이에 숨어 있던 알뿌리 몇 개를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옮겨 놓았다. 잡초에서 화초로 신분이 바뀌었다. 잎이 나날이 푸르러지더니 튼실한 꽃대가 올라와 붉은 꽃을 피웠다. 어찌나 색이 요염한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유혹하는 여인 같다.     수 년 전 담장을 따라 조그만 꽃밭을 만들었다. 담장에는 하얀 덩굴장미를 올렸다. 향기 좋은 재스민도 심었다. 무궁화와 칸나는 계절을 달리하여 피어났다. 화단 앞쪽에 백장미와 붉은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당당한 자태로 꼿꼿이 대를 세우고 꽃을 피우는 장미 아래로 잡초가 무성하다. 장미가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꽃은 다 예쁘다. 가꾸어 피어나는 꽃은 수고와 기다림이 있어서인지 더없이 사랑스럽다. 잔디밭을 차지한 잡초도 화사한 노란 괭이밥 꽃을 보면 용서가 된다.     5월이다. 가지에는 이파리가 너울거리고 잡초도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뒤뜰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지금 우리 마당은 잡초와 화초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인종을 차별하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며 살아가는 인간을 비웃는 성싶다.     잡초는 꽃의 화려함을 질투하지 않는다. 꽃은 잡초의 강인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살고 싶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우아 잡초 잡초 취급 잡초 사이 사이 잡초

2022-05-11

[이 아침에]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우리 집 뒷마당은 잡초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푸르고 단정했던 잔디밭이 몇 해 사이 잡초 밭으로 변했다.   가뭄에도 잡초는 잘 자랐다. 며칠 물을 더디게 주면 잔디는 마르기 시작한다. 잡초는 아랑곳 않고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잔디가 사라진 자리에 잡초가 푸르다. 셋방으로 들어와 주인을 밀어 내는 격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았다. 한참을 잡초와 씨름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잡초가 더 이상 뽑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잔디 깎는 기계로 밀었다.     키 큰 잡초는 서서히 사라졌다. 얼핏 보면 잔디처럼 보이는 게발잔디가 게 옆걸음질 치듯 뻗어 나갔다.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 눈물겹다.   잡초도 꽃을 피웠다. 마당 한 켠을 차지한 괭이밥에 노란 꽃송이가 맺혔다. 토끼풀도 하얀 꽃을 총총 매달고 있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도 모르는 씨가 뿌리를 내리고 붉은 꽃을 피웠다.     잡초라고 모두 보기 흉한 것은 아니다. 노란 괭이밥 꽃은 배시시 웃는 아기 웃음을 닮았다. 흐드러지게 피는 겨자꽃은 바람이 불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출렁인다.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피어나는 꽃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녀석들을 더 이상 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르지 않고 두었더니 하늘하늘한 가지 끝에 연 보라색 꽃이 피었다.     노란 민들레도 지천으로 피었다. 약성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약초가 될 터인데 그 가치를 모르니 우리 집에서는 잡초 취급을 받는다.     방송에 나오는 어떤 이는 산에서 나는 온갖 풀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무뿌리를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잡초 사이에 숨어 있던 알뿌리 몇 개를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옮겨 놓았다. 잡초에서 화초로 신분이 바뀌었다. 잎이 나날이 푸르러지더니 튼실한 꽃대가 올라와 붉은 꽃을 피웠다. 어찌나 색이 요염한지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유혹하는 여인 같다.     수 년 전 담장을 따라 조그만 꽃밭을 만들었다. 담장에는 하얀 덩굴장미를 올렸다. 향기 좋은 재스민도 심었다. 무궁화와 칸나는 계절을 달리하여 피어났다. 화단 앞쪽에 백장미와 붉은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당당한 자태로 꼿꼿이 대를 세우고 꽃을 피우는 장미 아래로 잡초가 무성하다. 장미가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꽃은 다 예쁘다. 가꾸어 피어나는 꽃은 수고와 기다림이 있어서인지 더없이 사랑스럽다. 잔디밭을 차지한 잡초도 화사한 노란 괭이밥 꽃을 보면 용서가 된다.     5월이다. 가지에는 이파리가 너울거리고 잡초도 왕성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뒤뜰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지금 우리 마당은 잡초와 화초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인종을 차별하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며 살아가는 인간을 비웃는 성싶다.     잡초는 꽃의 화려함을 질투하지 않는다. 꽃은 잡초의 강인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꽃처럼 우아하게, 잡초처럼 씩씩하게 살고 싶다.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우아 잡초 잡초 취급 잡초 사이 사이 잡초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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