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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작은 것에 대한 예찬론

sooim lee, the faceless woman, 2025, digital painting.

sooim lee, the faceless woman, 2025, digital painting.

나는 키 크고 덩치 큰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작은 나를 싫어하겠지만, 키 작은 우리 친정아버지도 나와 같았다. 친정 언니가 결혼한다고 데려온 남자는 키도 컸지만 덩치가 너무 컸다. 그를 올려다보며 인상 쓰던 아버지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작은 키로 험난한 세상을 단단히 버티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키 큰 남자의 시선이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건 아닐까? 사람 됨됨이도 보지 않고 무조건 키 큰 사람이 싫어지는 심리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크면 내가 숨 쉴 공간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나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으로 자리를 뜨고 싶다.
 
나는 길가에 핀 크고 화려한 꽃보다는 앙증맞은 작고 소박한 꽃들을 좋아한다. 화려한 꽃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다. 있는 듯 없는 듯 핀 작은 꽃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애처롭다. 작은 것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애착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큰 것은 그냥 스쳐도 작은 것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서서 자세히 살피며 말을 걸고 싶은 심리는 아마 동병상련 때문일 것이다.  
 
난 굵은 선보다 가는 선을 좋아한다. 그래서였을까? 판화 중에서 가는 선을 기본 기법으로 화면을 만들어 가는 동판화를 전공했다. 나의 작은 손으로 가는 선이 그어질 때 희열을 느낀다. 작은 캔버스 위에 그릴 때 더 집중하고 파고들어 내 마음을 전달하면 애정 어린 작업이 나온다. 작고 가는 선으로 만들어진 내 작품은 거창한 장소에 걸리는 것보다는 화장실 가는 통로라던가 복도 끝 벽에 걸리면 작품은 제자리를 찾은 듯 차분해진다.  
 
볼일 보러 가면서 본 듯 만 듯 스치거나 긴 좁은 복도를 지날 때 누군가가 슬쩍 봐주면 제자리를 조용히 지키던 그림은 밝은 표정으로 반긴다.  
 
내 이름 영어는 전부 소문자 sooim lee다. 얼마 전 갤러리에서 만난 여자로부터 ‘이름을 왜 소문자로만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전에도 서너 번 내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도 받았다. 대문자보다는 소문자를 선호해서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 않는 작은 모습인 나에 대한 합리화인 것 같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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