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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일인칭 단수

“네. 저는 어디까지나 원숭이지만, 절대 천박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내 것으로 삼는다-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분명 성적 욕망이 깔린 악행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깨끗하고 플라토닉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저는 마음속에 있는 그 이름을 그저 남몰래 혼자 사랑할 뿐입니다. 마치 부드러운 바람이 초원을 가만히 훑고 지나가듯이.”
 
“흐음.” 나는 감탄해서 말했다. “하긴, 어찌 보면 궁극의 연애라고도 할 수 있겠어.” “네, 그것은 어찌 보면 궁극의 연애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궁극의 고독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동전의 양면인 셈이지요. 그 둘은 꼭 달라붙어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하루키가 지난 2020년 내놓은 책이다. ‘나’라는 일인칭 단수 시점으로 그린 8편의 사랑 얘기, 6년 만에 펴낸 단편집이다. 최근 들어 하루키 월드에 심드렁해 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천만에, 하루키는 하루키다.
 
인용문은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의 일부다. 온천 료칸의 종업원으로 일하는 ‘말하는 원숭이’와 만난 나는 염력을 사용해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의 사랑법을 듣는다. 사랑할수록 외로워지는 사랑의 모순을 그린 우화다.
 
‘돌베개에’의 주인공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정신질환이랑 비슷해”란 여자의 말을 떠올린다. 모든 건 먼지처럼 다 사라졌고, 여자가 지어 보낸 몇 편의 하이쿠만이 남았다. “벤다/베인다/돌베개/목덜미 갖다대니/보아라, 먼지가 되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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