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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관찰

가만히 너를 들여다보네 / 들여다보는 내 모습이 거기 보이네 / 그리움을 하나씩 숨기고 있네 // 그리움 속에는 / 흔들리는 들꽃의 반가움도 있고 / 나비의 날갯짓도 봄을 향해 펄럭이고 있네 // 들길을 걷는 너의 행복한 발걸음도 / 창가에 앉은 너의 심장 뛰는 소리도 / 내가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도 // 새벽공기를 가르며 그리움 앞에 서 있네  
 
[신호철]

[신호철]

그냥 살았던 세월이 있었네. 햇살에 눈이 부셔도, 달빛이 그윽하여도 내 눈엔 보이지 않았네. 땅만 보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네. 눈 덮인 벌판에 더운 입김을 뿜어내며 싹이 자라는 시간에도, 나뭇가지마다 움이 트고 꽃망울을 맺는 기가 찬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네. 그렇게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은 쪼그라들었네. 심장의 박동 소리는 아련해졌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네. 살았다고 사는 게 아니라네. 감사가 없었고 소중함이 사라졌었네. 고요한 시간은 낭비 같았고 무엇을 얻지 못하는 모든 시간은 공허했었네. 그러니 하늘로 향해 헛손질만 했었네.  
 
언제부터인가 내겐 이상한 습관 같은 것이 내 속에 자라고 있었네. 그것을 나는 관찰이라고 말하고 싶네. 세상을 향한 기척이라고 생각하네. 어느 한 지점을 두고 사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미세한 차이를 알게 되었네. 거리를 걷다가도, 차를 타고 어디를 가다 가도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 풍경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는 일이 잦아졌네. 차를 한길에 세우고 들꽃을 바라보며 길가에 앉아 있기도 하였네. 모르는 길을 찾아 생소한 걸음을 나서기도 하였네. 그 시간,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과, 색깔과, 밝기와 느낌에 마음을 빼앗겼었네.  
 
같은 장소를 수도 없이 찾았지만 그때마다 선물처럼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었네. 비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은 바람이 부는 대로, 눈발이 날리던 날은 눈이 오는 대로, 자세히 보면 색깔도 밝기도 느낌도 다 달라 보였네. 다가오는 풍경은 지금 지나치면 다시 만날 수 없는 단 하나의 풍경이기에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태웠네. 혹시라도 이 시간 가슴을 치는 단어 하나가 있다면 땅바닥에라도 적어 놓아야 했네. 한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졌네. 이 관찰의 습관은 나에게 소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네.  
 
움직이지 않는 나무도, 저 하늘에 떠 있는 해도,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도, 지그시 내려다보는 달빛도 모두가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이었네. 다가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지금 내가 들어야 할 말들을 하고 있었네. 간혹 들리기도 하였지만 아직 더 가까이 귀 기울여야 들리는 많은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네. 실패의 아픔도, 따뜻한 위로도, 넘치는 사랑도, 때론 헤어짐의 고통마저 그 모든 것은 감사이고, 소중함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었네. 세상을 바라보는 가슴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가 들풀처럼 자라나는 것이었네.  
 
푸른 문장에 손을 베었다 / 노을처럼 내 눈 속으로 붉게 물들어 왔다 / 눈을 비벼도 떼어지지 않는 하늘소리였다 / 살아있는 것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내내 / 아득한 밤하늘 너머 아직 빛이 있는 그곳에서 / 당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의 행간을 따라 나도 걷고 있다 // 죽지 않았기에 함께 볼 수 있다는 노을이 운다 / 그것은 내가 버릴 뻔했던 날 선 푸른 문장이었다 / 손을 베이고 찾았던 노을이었다 / 눈보라 쏟아지던 밤 / 집으로 가라며 보내온 푸른 문장 // 언덕 아래 세상은 빗장을 걸고 잠들었는데 / 베인 손에서 자맥질하는 핸들이 눈길에 미끄러진다 / 나이 들어 함께 기대 보자던 석양이 슬프다 // 단풍 같은 눈이 내린다 / 새들은 날아 오르고 즈믄 밤바람 소리 / 뒷모습의 이름과 물결 소리를 듣는다 나 지금(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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