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날갯짓으로 남을 희망에 대하여

이기희
어쩌면 태초에 우주에서 떨어져 나온 별인지 모른다. 1000억개가 넘는 은하계 중에서 작은 행성으로 떠돌다가 갈 곳 없어 먼지로 사라지는 이름 없는 별.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 그리워 살별처럼 긴 꼬리 달고 애처롭게 타원형의 포물선 그리며 지구로 떨어지는 별이였을지 모른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카뮈는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가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는다. 인간의 숙명에 직면한 죽음과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인간 존재 자체의 실존에서 드러나는 부조리와 죽음에 대한 성찰에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다.
뫼르쇠의 슬픔이 외부로 표출되든 그렇지 않든 어머니의 죽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동반한다. 다만 뫼르쇠는 슬픔을 눈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부와 타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이방인은 엄마의 죽음, 아랍인의 죽음, 뫼르소의 선고된 죽음을 통해서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뫼르쇠의 거짓 없는 자기 드러내기를 통해서 카뮈는 인간의 삶에서 ‘이방인’이었던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상의 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다시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시지포스의 바위덩어리처럼 인간은 밀어올리기를 죽기까지 계속한다.
타인을 위해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 마주하는 슬픔과 아픔에 징징대지 않기위해 행복을 소품처럼 선반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슬픔이 강물처럼 가슴 적시는 날에는 잘 채색된 명주 한필 뽑아 햇살에 말리며 그대 만날 날을 기다렸다. 그대가 돌아오지 않아도 기다림의 시간은 아름다웠다.
행복은 살아가면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마음이다. ‘행복’이란 단어를 가슴에 간직하고 살면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패랭이꽃처럼 작은 위로를 준다.
새들은 간혹 한치 앞을 못본다. 너무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새들은 유리창이 있는지 인지 하지 못해 머리를 박는다. 유리창에 반사된 풍경을 실제 풍경으로 착각해 목숨을 잃는다. 새들도 인간도 한치 앞을 못 보며 착각 속에 산다.
행복은 전염병이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희망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이다. 멈추지 않는 날갯짓으로 퍼득이며 버티고 살면 종국에는 행복이 선물로 찿아온다.
고통과 상처의 틈바구니 속에서 헤매일 때나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흐느낄때도 행복은 북두칠성 따라 길을 열어준다, 절망에서 희망을 품고 불행에서 행복을 꿈꾸며 사는 동안 끊임없이 날개를 퍼득인다.
지금까지 행복했던 것처럼 다시 행복하게 살기로 한다. (Q7editions대표)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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