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가자미식해와 낫또

Sooim Lee, 2025, Making Gajamisikhae, Digital Painting.
나만큼이나 음식 솜씨 없는 시어머니가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는 맛없다는 표현을 돌려서 말씀하셨다. 시어머니 말처럼 내가 만든 음식은 내 남편 이외는 아무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맛없다. 물론 설탕도 참기름도 조미료도 아예 집에 없다. 시어머니는 LA에서 오실 때마다 혼다시를 가지고 오셔서 “맛이 통 나지 않으니, 이거라도 음식에 조금씩 넣어라. 내가 뉴욕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만큼 괴로워한다. 남편은 아무리 음식 맛을 불평해도 내 실력이 나아지지 않자 포기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같은 소리를 한다.
“음식 솜씨 좋은 부인과 사는 남자들이 나이 들어서 성인병 때문에 약들을 한 움큼씩 먹는데, 나는 마누라의 희한한 요리 솜씨 덕에 건강을 유지하네. 복도 가지가지야.”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되잖아. 적게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산데요.”
음식도 못하는 주제에 나는 잘났다고 빼놓지 않고 토를 단다.
나도 잘하는 음식이 있다. 음식 솜씨 없는 함경도 시어머니가 그나마 잘하는 것이 가자미식해다. 좋아하는 음식이라 옆에서 따라 하다가 전수하였다. 나는 시어머니처럼 거창하게 식해를 만들지 않는다. 가자미를 사다가 지져 먹고 구워 먹다가 남은 가자미를 통째로 소금을 듬뿍 붓고 냉장고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 살이 물러진 것 같으면 잘라서 소금 다시 붓고 또 냉장고 구석에 밀어 넣는다. 그러다 가자미 삭힌 것을 잊어버려 한 달이 지난 후 허겁지겁 메조 밥을 만들어 고춧가루와 다진 생강과 마늘을 넣어 가자미와 섞어 놓고 무채를 굵직하게 썰어 버무린다. 맛없는 음식만 먹던 남편과 나는 그나마 맛있다고 잘도 먹는다. 저희끼리 얽히고설켜 삭혀져 맛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나의 엉뚱한 아이디어다. 내가 만든 맛없는 김치 종류들은 냉장고 구석에서 세월아 네월아 신세가 된다.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면 김치찌개용으로 변신한다.
내가 또 잘하는 것이 낫또다. 겨울만 오면 만들어 냉동고에 넣어 놓고 된장국에 한 수저 듬뿍 넣어 끓인다. 남편은 콩 씹는 맛이 일품이라며 무척 좋아한다. 콩을 하루 동안 불린다. 불린 콩을 압력밥솥에 밥처럼 한다. 물기가 없는 상태의 뜨거운 콩에 볏짚 같은 재료가 없으니, 시중에서 판매하는 낫또 두 팩을 넣어 섞는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방 스팀 위에 낡은 담요 서너장을 덮고 하루 이상 처박아 두면 진이 찐득찐득 올라온다. 남편은 가자미식해와 낫또를 잘하면 요리 솜씨가 대단한 거라며 나를 띄운다. 속셈은 낫또와 식해만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수시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제 낫또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식혜 만들 때가 지난 것 같은데?”
남편은 내 표정을 살피면서 은근히 만들라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야만 하는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김치 쪼가리처럼 찌그러져 없는척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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