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 방안에 코끼리가

서량 시인·정신과 의사
인터넷에 떠도는 한국식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①식품영양적 방법: 코끼리를 도축하여 통조림을 만든 후 냉장고에 넣는다. ②정치적 방법: 코끼리에게 냉장고에 들어가라는 판결을 내린 후 불복하면 구속영장을 때린다. ③의사들이 쓰는 방법: 수련의에게 일을 떠맡긴다. 이 심오한 명제에 대한 토론의 범람이 인터넷에서 당신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렇다. 방금 상상(想像)이라 했다. 생각 想. 모양 像.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 또는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일이 상상이다. 나무(木)를 바라보는(目) 마음(心)이 생각 想. 사람 人과 코끼리 象이 합쳐진 모양 像의 오른쪽 부분은 누가 봐도 코끼리를 그려 놓은 상형문자다.
고대 중국 은나라 시절의 기후는 지금과 달리 열대에 가까웠기 때문에 황하 유역에 코끼리가 많이 서식했다 한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인구증가와 기후변화로 인하여 코끼리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후대에 이르러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코끼리의 모습을 상상으로 그렸다 해서 ‘모양 像’자가 만들어졌다는 사연이다.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발췌)
철학적 뜻을 내포하는 현상(現象)에는 ‘코끼리 象’이 등장하는 반면에 사진현상(寫眞現像), 할 때는 ‘모양 像’이다. 철학은 사물의 심오한 의미를 추구하지만 달랑 사진 한장은 사진에 그칠 뿐.
감상(感想), 공상(空想), 몽상(夢想), 망상(妄想) 같은 글자에는 코끼리가 개입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런 단어들이 강한 중량감을 풍기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고통이다. 객담이지만, 코끼리가 동물계 패션쇼에 참가하면 예선에서 떨어질 것임이 분명해요.
‘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희한한 관용어를 생각한다. 어떤 확연한 화제, 질문사항을 모두가 뻔히 알면서 누구도 언급하기를 꺼리는 상황을 뜻한다. 상상해 보라. 쑥스럽거나 난처한 이슈를 앞에 놓고 누군가 용기 있는 사람이 결국은 말문을 트는 장면을. “There’s an elephant in the room that nobody wants to talk about…” 하며 닥쳐올 논란을 감수하면서.
이 관용어는 러시아의 우화작가 이반 크릴로프(Ivan Krylov: 1769~1844)가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는 우화에서 박물관을 구경하는 한 사람이 소소한 것들에만 신경을 쓰다가 코끼리를 전혀 보지 못하는 정황을 묘사한 데서 시작했다 한다. 그 후 당신이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내가 좋아하는 마크 트웨인이 그 표현을 부각했고그 후 1959년에 뉴욕타임스가 그 비유법을 미국에서 처음 썼다는 기록이다.
안데르센 동화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솔직한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런 옷을 걸친 왕을 가리키며 “왕이 벌거벗었다!” 하며 한 어린이가 소리친다. 부정직한 어른들은 부재하는 옷을 존재하는 옷으로 치부했다. 무(無)를 유(有)로 착각한 것이다.
방 안의 코끼리는 어떤가. 거대한 코끼리가 떠억 자리 잡고 있는데 사람들은 코끼리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코끼리를 냉장고 속에 은닉했기 때문일까. 하여간 현상계(現象界)는 코끼리 세상이다. 당신 눈에 방 안의 코끼리가 보이건 보이지 않든 간에.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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