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내가 사랑하는 라인댄스 팀

최숙희 수필가
토요일이면 여럿이 중국집으로 향하곤 한다. 두셋이 가면 중국 음식 주문하기가 애매하지만 여럿이 몰려가면 종류별로 시켜 나눠 먹을 수 있어 좋다. 오른편 팔에 깁스를 한 R이 갑자기 눈시울을 붉힌다. “짜장면은 항상 남편이 비벼줬다”고, 최근에 남편을 여읜 그녀가 얘기한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충고의 말도 덧붙인다. 나는 나이 들며 부부 사이에 측은지심 외에 다른 감정이 있을까, 하며 의아해 하기 일쑤이다.
댄스 단톡방에 갑자기 여러 개의 카톡이 올라왔다. 시작은 노인 양로병원에 근무하는 R이다. S에게 전화가 왔으나 말없이 거친 숨소리만 들리니 혹시나 응급상황이 아닐까, 걱정된단다. 집에 직접 가서 무슨 일이지 확인해 봐야겠으니, 주소가 필요하다는 요지이다. 항상 노인을 상대하는 그녀의 직업정신도 발동했다. 결론은 S의 피클 볼 강습 중에 전화가 잘못 걸린 거로 상황 종료. 무사하다는 소식에 모두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혼, 사별 등으로 독거노인이 많은 댄스팀이라 서로에게 각별하다. 시니어가 과반수라 질병으로 고생하는 남편 간병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하루 종일 거동이 힘든 환자와 함께하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을까.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좋고 햇볕을 쬐러 밖에 나올 기회를 준다. 혹시 누가 운전이 힘들면 한참을 돌아가더라도 같이 태워 온다. 자매의 정이 부럽지 않다.
한인 마켓에서 누가 내 등을 갑자기 껴안아 뒤돌아보니 샤론이다. 그녀는 모시고 사는 96세 친정어머니 점심을 챙겨드려야 해서 점심 모임에 자주 빠진다. 춤만 잘 추는 줄 알았더니 살림꾼이다. 싱싱한 오이가 할인하니 오이지를 만들라며 골라준다. 파도 굵은 것을 사야 파 향이 짙다면서 동생뻘인 내게 알려준다.
아파서 한동안 결석하다가 나오면 얼싸안고 박수로 환영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소중한 친구들이다.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서로의 사정을 아는 경우도 많다. 바쁘고 각박한 이민 생활 속에 보기 힘든 훈훈함이다.
라인 댄스팀을 보며 자연스레 나이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인생도 항상 청명할 수는 없고 때때로 비바람과 천둥이 친다.
그래서 혹자가 젊은 어느 한때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선뜻 언제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현재의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안간힘 쓰는 피곤한 상태의 젊은이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젊음의 무게를 버리고 젊어서는 깨닫지 못한 기쁨을 반추하고 음미할 시간이 생겼다. 젊은이들에게 삶의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댄스팀의 언니들과 현재에 충실한 삶을 이어가고 싶다. 영원히.
최숙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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