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종언

이무영 뉴미디어 국장
이에 그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3월 12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동맹이건 적국이건 예외를 두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친구와 적들로부터 두들겨 맞고 있었다. 외국 땅이 아닌 미국에서 철강과 알루미늄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며 모든 무역 파트너를 대상으로 한 ‘상호 관세’ 부과 방침도 발표했다. 4월 1일까지 미국의 무역상대국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 모두를 조사하여 미국 경제에 손해를 끼치는 국가에 정도에 따라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4월 2일부터는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를 예고하며 전방위적인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브라질, 인도, 유럽연합(EU), 캐나다, 프랑스 등 주요 교역국들이 불공정 무역 상대로 지목되었으며, 미국의 동맹국들마저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더 이상 이용당하게 두지 않겠다”며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미국 주도로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 철폐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트럼프의 일방적 관세 정책은 미국이 구축했던 자유무역 시스템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전쟁’ 배경에는 미국이 처한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2023년엔 사상 최대인 9184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그 해 재정적자는 GDP의 6.3%인 1조833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초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흔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우선주의’ 경제 질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2024년 11월 발표된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위원장 스티븐 미란의 보고서(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조화를 위한 가이드)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면서 강달러, 막대한 무역적자, 제조업 공동화를 초래했다”며 “관세와 환율 정책을 통해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국제 무역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때 세계 GDP의 50%를 차지했던 미국의 경제력은 현재 25% 수준으로 감소했다. 2024년에는 미국의 국채 이자 총액이 국방 예산을 넘어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미 의회예산처에 따르면 미국의 국채 이자는 8700억 달러에 달하며, 국방 예산(8500억 달러)을 초과했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과도한 군사 개입과 재정적자가 미국 패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금 미국이 처한 현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는 단순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초강대국 미국이 쇠퇴를 피하려 몸부림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우 전쟁 종전 협상에서 “유럽 안보는 유럽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하며 기존 동맹 관계의 변화를 시사했다. NATO 방위비 분담금을 GDP의 최소 5%까지 올릴 것을 요구하며, NATO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동맹국들이 안보 무임승차하며 미국에 손해를 끼치는 걸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 시대의 종언을 목도하고 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해상 무역로를 보호하며 자유무역 시스템을 정착시킨 미국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는 불확실성과 충돌 가능성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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