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힌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삶에 대하여
너무 촘촘히 그리지 말자
삶은 캔버스 위 붓질과 같은 것
말이 뭉뚱그려질 때
희미해져 읽을 수 없을 때
원초적 색깔을 사용해 보라
빛과 그림자가 분명해질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고단해지면
울음을 참고 다시 떠나보라
참아내는 사람이 나뿐이더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참고 살아가나니
두려움은 밤낮으로 찾아오겠지만
견디지 않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숲정이 처럼 함께 어우러지자
한 나무가 아니라 여러 나무가 모여
서로의 향기를 뿜어 사랑하듯이
삶의 시간은 숲의 시간처럼 한 색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날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고통과 평안, 평안과 기쁨은
스스로 찾아드는 선물 같은 것이다
견뎌내는 이가 나뿐이더냐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깊은 슬픔 속에 묻히다가도
어느새 밝은 햇살 앞에 앉아 있지 않터냐
너무 촘촘히 삶을 채우지 말자
해가 지면 별이 뜨고 별빛이 지면
먼동이 하늘에 가득할지니
밝은 대낮에도 이운 낮달처럼
내려다보고, 또 올려다보며
이우는 부분마저 그리워하자
![[신호철]](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3/04/b50fac33-e24e-49ec-ac9c-8640c1bb112e.jpg)
[신호철]
행여 슬픔으로 가득한 시간으로 하루를 보냈다면 밤하늘 별빛으로 그 마음을 지울 수는 없는가. 수천 광년의 빛으로 이제야 나의 눈에 비쳐오는 기적 같은 이 순간에도 괴로워하겠는가? 눈물마저 말라버린 한낮을 걷다가 빛을 잃어가는 낮달의 선물 같은 반가운 손짓을 외면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선물이 아니라면 바람에 눕는 갈대가 눈에 뜨일 리 없을 터이고, 미시간 호수의 밀려오는 파도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찌 내 귀에 들려오겠는가. 말라 부석이며 부서지는 들풀의 긴 대궁에 맺힌 검은 씨앗 속에 감춘 연둣빛 새싹이 어찌 보이겠는가.
우리가 추구하고 은근히 자랑했던 부와 권력 속에서는 시인은 태어나지 않는다. 세상의 눈으로 시인은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존재이지 않더냐.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사랑을 이야기하고, 슬픔으로 눈물짓기도 하는, 잃어버릴 수 있는 험한 길을 대책 없이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귀하고 사랑스럽다. 온밤을 지새워도 지치지 않는 연약하지만 내면으론 솔처럼 외롭고 높고 곧게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은 아름답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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