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웅전] 한민족 혈통 율 브리너의 권고
1840년대 스위스인 상공업자 브리너(Brynner)가 30대 무렵에 시베리아 이르쿠츠크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이름을 율리(July)로 바꾸고 한민족과 동족인 부랴트족 처녀 나탈리아 쿠쿠토바와 결혼했다. 아들 보리스를 낳았다. 1880년 보리스는 부모와 헤어져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거기에서 거간꾼 일로 떼돈을 벌어 뮤지컬 배우 마루시아와 결혼했다.그때는 ‘하이에나’들이 사방에서 조선에 몰려오던 때였다. 보리스는 조선 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매수해 조선에 접근했다. 보리스는 조선삼림회사를 설립해 외부대신 이완용의 도움으로 압록강 일대 벌목권을 따냈다. 세금 없이 이익금의 4분의 1을 조선 정부에 바치는 조건이었다. 아관파천 시절이니 계약은 수월했다.
나무를 베어 엮어서 강물에 띄우면 물결 따라 평안북도 용암포까지 떠내려가니 누워서 돈만 세면 될 정도로 쉬웠다. 그런데 사업이 번창하다 보니 용암포를 아예 조차하는 것이 유리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장원경 이용익을 매수해 1903년 용암포를 조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만한(滿韓) 침략을 노리던 일본이 용암포 조차 사건을 문제 삼자 없었던 일로 돌아갔다.
보리스가 떼돈을 벌자 러시아제국 황실 근위대가 벌채권을 가로챘다. 이때 보리스는 200만 루블을 받았다. 그 무렵 환율은 1달러가 1루블이었다. 1916년과 1920년에 딸 베라(Vera)와 아들 율리(Yuly)가 태어났다. 실직한 백만장자 보리스는 미모의 블라디보스토크 악극단 무용수와 바람이 났다.
오만 정이 떨어진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프랑스를 거쳐 뉴욕 브로드웨이에 정착했다. 그 뒤 아들은 이름을 율(Yul) 브리너(사진)로 바꾸고 1950년 영화 ‘왕과 나’에서 주역을 맡아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1985년에 숨지면서 그는 우리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담배 끊으시오(Quit smoking).”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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