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회상
세월이 참 빨리 흐릅니다 /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도 / 멈추게 할 수도 없습니다 / 흐르는 것은 흘러가게 두어야 하기에 / 바람도 담아두면 온몸을 흔들고 / 햇살도 담아두면 마음을 새카맣게 태울 때가 있기에 / 안부를 묻기가 참 버거운 날입니다 / 계신 그곳은 평안하신지요 //여든한 해의 겨울이 지나가고 / 여든두 해의 겨울이 한참일 때 / 아름다운 한 얼굴에 깊은 주름 하나 페입니다 /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화려함이 아니라 /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걸어온 소박한 길 위엔 / 바래지 않는 당신의 너털웃음 소리 /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 아름다움은 어디로 기울어지나요 / 슬픔과 고통은 어디로 잠겨오나요 / 여든두 번의 흰 눈이 하얘진 눈썹을 에워쌀 때 / 겨울 흰색 같은 한 영혼이 일어나 / 먼지뿐인 세상일 툭툭 털고 본향으로 돌아갑니다//여든두 해의 별이 뜨고 / 여든두 해의 강물이 흐르고 / 여든두 해의 꽃이 피고 / 여든두 해의 눈이 내립니다 /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지요 / 그토록 갈망하던 당신의 품에 안깁니다 / 여든두 해의 삶을 고스란히 남겨놓고 / 흰빛으로 날아갑니다![[신호철]](https://news.koreadaily.com/data/photo/202502/04/06442413-6508-4d37-95c8-2da48378fe5a.jpg)
[신호철]
대학 졸업 후 시카고에 정착하게 되면서 눈 뜨면 일과 학교를 병행하여야 하는 고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친구 김호관이가 시집을 낸다고 나를 찾아왔다. 나에게 표지 그림과 편집을 부탁했다. 오랜만에 우리는 마음이 뭉쳐 시카고 밤거리를누비며 다녔다. 83년 겨울 그의 첫 시집〈이어지기 사랑법〉이 출간되었다.
출판기념회 당일날 예상치 못한 많은 시카고 교포들이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명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글을 쓰냐고 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말씀드렸다. 그때만 하더라도 글을 쓰리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출판기념회가 열린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시카고문인회가 발족되었다. 그리고 간간히 신문 지상을 통해 명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 지면을 통해 〈문학 창작 교실〉기사를 봤는데 명 선생님이 강의를 하신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당장 등록을 하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매주 한 번씩 삼 개월을 지나는 동안 나는 문학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림과 글을 병행한다는 기쁨에 밤을 새워 글을 쓰기도 하고 운전하다가도 차를 세우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를 쓰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나의 글쓰기 배경에는 늘 명 선생님이 그곳에 계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 평안한 날이라더니 갑작스레 영 선생님의 부고가 전해졌다. 마지막 만남이 2주 전 문인협회 정규 모임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살아서 천당, 죽어서도 천당.“을 삶의 목표로 사셨던 명 선생님은 본인이 늘 말씀 하시던 그대로 살아서도 또 죽어서도 천국의 삶을 이루셨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가족들만 모여 이 땅에서 마지막을 원하셨지만,시카고 문인회는 그를 기억하며 선생님과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마련하였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너털웃음을 남기고 가셨다. 천국에서의 삶을 영원히 누리실 선생님 사랑합니다. 부디 본향으로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관초 고 명계웅 선생님께 드립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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