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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하소서

 공의와 정의가 강처럼 흐르게 하소서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데 ‘복수심’만큼 강한 동력도 없다. 마음속 사무치는 원한이 자신을 담금질하고 기나긴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게 해준다. 복수를 완수할 때까지 절치부심,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춘추시대 오나라의 전략가 오자서(伍子胥)처럼 말이다. 본래 초나라 사람이었던 오자서는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을 억울하게 잃었다. 간신의 꾐에 넘어간 초나라 임금 평왕은 태자의 정혼자를 가로챘는데, 그 과정에 태자를 폐위하고 태자의 후견인인 오사 일가도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평왕은 오사에게 말했다. “당장 네 두 아들을 데려오도록 하라. 그렇지 못하면 그대를 죽일 것이다.”이 말을 들은 오사가 말했다. “큰 아이 상은 사람됨이 어질어서 내가 부르면 반드시 올 것이나, 원(오자서의 자)은 모질고 패려하여 능히 큰일을 할 것입니다.” 평왕은 오사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그의 두 아들에게 말했다. “내 명령대로 너희가 오면 네 아비를 살려줄 것이로되 그렇지 않으면 이제 아비를 죽일 것이다.”자서의 형 오상이 가고자 하니 오자서가 만류했다. “초나라가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우리 아버지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뒷날의 근심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도착하면 부자가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원수를 갚지 못할 뿐입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나서 힘을 빌어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모두 함께 죽으면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상은 말했다. “만약 내가 가더라도 아버지의 목숨을 안전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를 불러서 살기를 구하는데 가지 않고 뒤에 아버지의 원수도 갚지 못한다면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그리고 오사에게 말했다. “나는 가는 것이 좋겠다. 너는 능히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돌아가 죽을 것이다.”오상이 나아가니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자들이 달려들어 오상을 붙들고 오자서 또한 체포하려 하였다. 오자서는 잽싸게 활시위에 오늬를 메워 사자를 겨누니 사자가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그 길로 오자서는 초나라로 도망쳤다. 오사는 자서가 도망했다는 말을 듣고 “장치 초나라의 임금과 신하들이 전쟁에 시달림을 받겠구나.”하고 한탄했다. 오상이 초나라에 오자 그들의 예언대로 그의 아버지 오서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뒤로하고 오자서는 홀로 초나라를 탈출했다. 심적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다 하얗게 세어버렸다고 한다. 그 후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도착한 곳이 오나라. 이곳에서 오자서는 보위를 노리고 있던 공자 광(光)을 만난다. 훗날 ‘오왕 합려’라고 불린 사람이다. 오자서와 공자 광은 서로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봤다. 광은 그의 복수를 도와주겠다며 대신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오자서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후 오자서는 갖은 책략을 동원해 광을 보위에 올렸고 불철주야 나랏일에 매진하며 오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무섭게 스스로 다그치며 앞으로 나아갔는데 아마도 초나라에 복수하겠다는 집념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오나라로 망명한 뒤 오왕 합려(闔廬)의 쿠데타에 가담해 실권을 장악했다. 오자서는 이제 초나라로 쳐들어가 복수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대단히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때마침 오왕 합려를 찾아온 제(齊)나라 나그네가, 하필이면 훗날 세계 역사상 최고의 전략가로 추앙받게 될 인물이었던 것이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孫武)였다. 기원전 506년, 마침내 복수의 기회가 찾아왔다. 오자서는 손무와 함께 오나라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 수도 영으로 쳐들어갔다. 오나라의 군대가 수도 영에 입성했을 때 이리저리 초나라의 소왕을 찾았으나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오자서는 잔혹했다. 초 평왕의 무덤을 파 그의 시체를 꺼내어 구리 채찍으로 3백번 채찍질을 했다. 그의 친구 신포서(申包胥)는 산중으로 도망가서 사람을 오자서에게 보내어 말했다.“그대의 원수 갚는 짓이  어찌 그다지도 가혹한가. 내 들으니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긴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늘이 정하면 또한 사람을 깨뜨릴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대는 옛날 평왕의 신하로서 그를 섬겼는데 지금 죽은 사람에게 치욕을 가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천도의 극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이 말을 전해들은 오자서는 “나를 위하여 신포서에게 사과의 말을 전해 달라. 내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日莫途遠 ) 그 때문에 천리에 따르지 않고 역으로 시행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내던 백강 이경여는 효종 8년(1657)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이완·송시열과 함께 청나라를 쳐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왕은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땅하지만 진실로 마음이 아프나 뜻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다”라는 답장을 내렸다. 청나라는 그를 벼슬에서 물러나도록 압력을 넣었고 이경여는 부여로 낙향했다. 송시열이 이런 사정과 내용을 여덟 자로 써서 아들에게 전했으니, 이후 손자에 의해 숙종 26년(1700) 부여 규암면 백마강 암벽에 이렇게 새겨졌다고 한다.‘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극심한 비통함과 치욕이 가슴에 서려 있으나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부정적으로 해석되고 사용될 수도 있는 일모도원을 ‘나중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탓하지 말고 절치부심하여 과업을 이루어내라’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명언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사욕과 탐욕으로 일그러지고 망가진 국가 정책들을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나라를 망가뜨린 정책들 뿐만이 아니라 그 주범, 공범, 부역자들이 모두 지통(至痛)이다.
김훈의 소설 『하얼빈』에서 안중근과 동료 우덕순의 대화는 건조하다. 블라디보스토크 술집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를 쏘는 대의명분 따윈 입에 올리지 않는다. 서로 뜻을 확인한 뒤 이틀 뒤 하얼빈행 열차를 탈 뿐이다. 하얼빈에서의 거사 준비도 일상적 업무처리마냥 담담하다. 동선과 역할을 점검하고, 새 옷을 사입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비장하지 않아 더 비장하다. 작가가 "가장 아름답다"고 자평한 대목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민주당의 반응이 사뭇 비장하다. 탄압 보복 전쟁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김대중 납치사건’ 비유까지 등장했다. 마음 같아선 독재 시절 야당의 고초에 빗대고 싶었을 터다. 그러나 요샛말로 ‘오버’다. ‘저들은 무엇이 그리도 두려울까. 이 대표 의혹은 새로운 게 아니다. 검경이 선거를 의식해 미뤄놨던 사건들이다. 담담해서 더 비장한 일이 있듯이, 비장해서 더 남루해지는 일도 있다. 이 대표가 결백하다면 법정에서 당당하게 소명하면 된다. 이런 때일수록 검찰과 경찰은 법 앞에선 그 누구도 특권을 누릴 수 없다는 원칙을 실행해야 한다. 법과 원칙대로 수사하고, 의견이 다르면 법정에서 다투면 된다. 한비자는 “법은 귀한 사람이라고 봐주지 않고(法不阿貴 ) 먹줄은 굽은 모양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다 (繩不撓曲)”라고 했다. 이원석 신임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이 말을 인용하며 ‘권력비리 수사에 성역 없음’을 강조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 아닌가. 지금 한국의 미래는 번영과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존망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다들 제 욕심에 눈이 멀어서 벽을 더듬고 있다. 부패는 망국의 뿌리다. ‘공의와 정의가 강같이 흐르게 하소서.’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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