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세대교체 주역, 유승민 신임 대한체육회장 [월간중앙]
무엇보다도 체육인들이 제 진정성을 잘 알아봐 주셨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체육인이 체육계 변화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셨다는 점 잊지 않고 앞으로도 정말 열심히 할 생각이다.” Q : 대한체육회는 오는 7월이면 창립 105주년을 맞는다. 역사가 꽤 깊은데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A : “대한체육회라는 명칭 그대로 체육을 통한 대한민국 국민 건강 증진 도모를 목표로 한다. 국가대표부터 유소년 선수까지 전부 지원하는 한편 국민 체육 활성화에도 힘쓰는 등 체육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하는 체육 기관이다. IOC 회원 단체인 만큼 KSOC(Korean Sport & Olympic Committee)라는 영문 명칭도 사용하고 있다.” Q : 한 해 예산은 어느 정도나 되나? A : “지난해 기준 4400억원 정도였는데, 올해 예산은 많이 줄어 약 2900억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 Q : 전임 회장 시절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대립각을 세웠던 게 예산 삭감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갈등 원인이 뭐였나? A : “일단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 자체가 달랐다고 본다. 잘잘못을 떠나 가치관이나 추구하는 비전 자체가 서로 맞지 않았던 게 원인이었다는 생각인데, 선거도 다 끝난 마당에 전임 회장 체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적절치 않은 처사다. 긴 말씀을 드리고 싶진 않다.” Q : 체육회장에 당선되자마자 관할 부처인 문체부부터 찾았다. 유인촌 장관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 A : “선거 과정에서부터 많은 분들이 문체부와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고 함께 잘 맞춰가야 한다고 주문하셨다. 그래서 찾아뵈었고 어젠다별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결론은 심플했다. 제가 추진하는 일에 대해서는 문체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제 공약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매우 많았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Q : 예산 복구 요청은 안 했나? A : “올해 예산은 이미 다 편성이 된 만큼 관련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 다만, 체육회가 지닌 비전과 그동안 쌓아온 행정력 등을 바탕으로 문체부와 관계를 잘 다져서 삭감된 예산을 차차 복구할 생각이다.” ━ “지방체육·학교체육 정상화부터 추진” Q : 장미란 문체부 제2차관도 만났던데. 같은 체육인 출신으로서 꽤 든든했을 것 같다. A : “장 차관과는 20년 넘게 선수촌 생활을 같이한 인연이 있다. 같은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선수촌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인 만큼 ‘이제는 우리가 더더욱 전면에 나서 체육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특히 체육계 분위기가 많이 다운돼 있는데 이를 되살려야 한다. 같이 호흡을 잘 맞춰 체육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의견을 나눴다.” Q : 최근 하형주 금메달리스트가 올림피언 출신 최초로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 국회에도 체육인 출신이 포진했다. 여기에 체육회장까지 전문가가 당선하면서 체육인들의 기대가 크다. A : “분명한 건 지금 체육계의 구조적 부분들에 대해 함께 힘을 모아 개선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특히 지도자들의 처우라든가 선수 보호 시스템이라든가 지방체육의 구조라든가 비인기 종목 지원 등에 대해 함께 개선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특히 하형주 이사장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장미란 차관,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이기 때문에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Q : 사안 중 우선 순위를 둔다면? A : “지방체육과 학교체육 정상화를 우선 해보고 싶다. 지방 체육회장의 경우 2019년부터 지자체장 겸직을 금지하는 대신 선거로 회장을 뽑는 체육인 직선제로 바뀌었다. 그런데 지방 체육회 예산을 지자체에서 지원하다 보니 회장들이 지자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 등을 독립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강구할 생각이다.” Q : 학교체육은 어떻게 정상화할 계획인가? A : “우선 일반 학생도 학교에서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특히 유소년 선수들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도 미국 방식을 따라야 한다거나, 일본 사례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등 말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은 관련 시스템이나 환경 자체가 한국과 엄연히 다르다. 운동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아이들에게 합숙소를 폐지하는 규제를 가하는 것도 모자라 어느 정도 성적이 안 되면 시합 자체를 나갈 수 없도록 하는 최저 학력제 등은 역차별이다.” Q : 일각에서는 선수들의 중도 포기나 은퇴 이후 사회적 안전망 확보 차원에서 최저 학력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A : “일반인들이 왜 체육을 업으로 삼은 사람을 걱정하나? 강하게 말하자면, ‘너희들은 은퇴하면 할 게 없잖아’라는 편견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운동하던 사람들도 사회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다만, 일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도 분명히 있다. 그런 부분은 관련 시스템 구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선수들은 운동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나 사회인으로서의 덕목을 몸으로 배우고 익힌다. 또 땀의 가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떤 분야에서든 충분히 적응할 수 있고 잘 자리 잡을 수 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운동하는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는 편견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특정 이슈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가 누구인가? 류현진, 박찬호, 김연아, 박세리 등 국민 사랑을 받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들이 항상 앞장서 기부하고 국민을 위로하지 않나. 그들을 못 배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부를 병행해야만 반드시 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Q : 인기 스포츠 쏠림 현상도 비인기 종목 선수와 학부모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A : “달리 보면 그래서 학교체육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인기 종목인 경우가 많다. 종목별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학교체육만큼 좋은 게 없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스타가 나와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관심을 갖는다. 아울러 야구·축구·농구·배구·골프 등 국내 5대 인기 스포츠 모두 프로 종목이다. 국민의 관심을 얻기 위한 차원에서 다양한 종목의 프로화가 필요하고 대회도 많이 개최해야 한다.” Q : 박근혜 정부 이후 기업이 스포츠 후원을 꺼리는 기류도 생겼다. A : “아쉬운 대목이다. 저도 현역 시절이 있었고 지도자 생활도 했지만 사실 기업 후원이 없으면 세계적 선수가 탄생하기 어렵다. 유소년 시절 지방 체육회와 교육청의 지원에 이어 국가대표가 되면 기업에서도 후원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게 막히면 큰 어려움에직면하게 된다. 국가 예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선진국일수록 선수들에 대한 기업 후원 비율이 정부 지원보다 훨씬 높다.” ━ “스포츠 저변 확대 차원 기업 후원 절실” Q : 후원 확대를 위해 직접 세일즈에 나설 의향도 있나? A : “필요하다면 직접 찾아다니면서 읍소할 생각이다. 기업은 스포츠를 활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하고 강화할 수 있다. 기업의 스포츠 후원은 사회공헌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Q : 4년 임기 동안 체육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계획인가? A : “대한체육회에는 270여 명의 뛰어난 직원들이 있다. 이들과 힘을 모으면 산적한 현안을 충분히 잘 풀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당장 어떤 완성된 그림을 내놓진 않겠다. 나무를 한 그루씩 세심히 살피는 자세로 임하다 보면 4년 뒤에는 반드시 풍성한 숲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Q : 선수 시절 얘기로 가보자.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뭐였나? A : “88 서울 올림픽 때 유남규 감독님이 남자 단식에서, 양영자·현정화 감독님이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국내에 탁구 열풍이 불었다. 이듬해인 여덟 살 때 라켓을 처음 잡았다. 부모님이 탁구 동호인이고 외삼촌도 탁구장을 운영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외아들인 저를 믿어주시고 전폭적으로 지원한 덕에 지금까지 오게 됐다.” Q : 중학생 때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A : “그러면서 붙은 별명이 탁구 신동이다. 사실 그 수식어가 늘 부담이었다. 제게 거는 기대들이 컸던 만큼 남몰래 연습하는 시간도 많았다.” Q :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로는 16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금메달 직후 세계 랭킹 2위에 올랐다. 아직까지 그 순위를 넘어선 한국 선수가 없다. A : “(웃음) 아무래도 제가 국민들께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였고, 탁구를 시작한 뒤 늘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이었던 만큼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Q : 2014년 은퇴해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A : “모든 생활을 제 위주로 하던 때와 달리 지도자가 되고 보니 제 일과를 선수 개개인의 루틴에 맞춰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게 된 부분이 많았다. 좋은 경험이었다.” Q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IOC 선수위원에 도전했다.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가? A : “전 세계 선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이다. 선수가 올림픽의 주인공인 만큼 선수위원회는 IOC분과위원회 중 가장 중요한 곳으로 꼽힌다. 하계·동계 올림픽 기간 출전 선수들의 직접 투표를 거쳐 당선되면 8년간 선수위원으로 일하게 된다.” ━ 게으름과 스스로 거리 두는 ‘일벌레’ Q : 스포츠 외교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A : “선수 시절에는 운동 생각뿐이었다. 이후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느낀 게 탁구 외적 부분에 대한 조언자 역할도 지도자로서 중요한 덕목인데, 다른 경험이 없다는 데서 한계를 느꼈다. IOC 선수위원에 도전한 이유다.” Q : 선수위원에 출마할 한국 대표 선출 과정에서 장미란 차관과 진종오 의원을 눌렀다. 영어 테스트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던데? A : “영어 실력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틈틈이 공부하고 선수 시절 국제대회에 다니면서 외국 선수들과 짧게라도 대화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Q : 결과적으로, 전체 2위 득표로 상위 4명이 뽑히는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A :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한 각국 선수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20여일간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선수촌 곳곳을 걸어 다니면서 셀프 홍보를 한 덕분이었다.” Q : 위원 활동을 지켜본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하드워커’라 칭할 정도였다고? A : “실제로 일을 많이 했다. 단 한 번도 게으름 피우지 않았다. 열심히 하다 보니 경험이 쌓이고 인사이트도 생겼다. 인정도 받게 됐다. IOC 본부가 스위스 로잔에 있어서 회의도 유럽에서 주로 열릴 수밖에 없다. 사실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거리가 상당히 멀지 않나. 그래도 되도록이면 회의에 참석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를 제외하고 6년간 비행기 마일리지만 100만 마일은 쌓였을 것이다.” Q : IOC 선수위원의 연봉은? A : “활동비만 지급된다. 대한체육회장 직처럼 IOC 선수위원도 무보수 명예직이다.” Q : 2024 파리 올림픽 때까지 선수위원으로 활동했다. 성과를 꼽는다면? A : “성과라고까지 할 건 딱히 없다. 위원회 활동이 저 혼자 하는 게 아닌 협업 식이기 때문이다. 굳이 꼽자면 파리 올림픽 때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엄마 선수를 위한 케어룸을 처음 도입했다. 엄마 선수들이 아이들을 올림픽 기간 중 같이 돌볼 수 있는 시설이다. 아울러 올림픽 때만큼은 참가 선수끼리 정치적 표현을 금하게 돼 있는데, 이를 일부 허용했다. 시대가 변했고 선수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판단에서 약간의 변화를 줬다.” Q : 역으로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하는 데 대한 견해는? A : “나쁜 영향을 미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와 스포츠가 분리돼야 하는 건 맞지만 때로는 협력해야 한다고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치르는데, 정치권의 지원이 없다면 대회를 제대로 치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수평적 관계로 서로 존중하면서 협력해야 하지만, 때로는 멀리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 같다.” ━ “4년 뒤 목표?…주어진 일에만 충실할 것” Q :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선수촌장을 맡기도 했다. 촌장의 역할은? A : “선수촌은 말 그대로 올림픽 기간 선수들의 집 역할을 한다. 촌장은 선수들이 선수촌을 집처럼 편안히 느끼며 지낼 수 있도록 체크하고 돕는 일을 한다. 선수 지도자들이 잘 머물 수 있도록 살피고 선수촌을 방문한 해외 귀빈을 안내하거나 수행하는 역할도한다. 대한민국에서 열린 첫 동계올림픽에서 선수촌장직을 맡게 돼 굉장한 영광이었다. 대회 당시 평창이 굉장히 추웠는데 매일 아침 7시 회의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뛰어다녔다. IOC 위원이었던 만큼 외교 활동도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Q :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한탁구협회장을 겸임하기도 했다. A : “탁구 선수 출신으로서, 최연소 탁구 단체장을 하면서 여러 변화를 줬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또 프로 리그나 세계 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한 건 저희 탁구인들이 봤을 때는 자긍심이 생길 만한 일들이었다. 2년간의 팬데믹 기간 동안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탁구인이 모두 하나가 돼 위기를 잘 이겨냈다는 생각이다.” Q : 굳이 왕성하게 활동하지 않고도 좀 편하게 살 수도 있지 않았나? A : “저조차 이유가 궁금하다. 많은 분들이 비슷한 질문을 하신다. 중요한 건 제가 30년 넘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앞으로는 받은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저도 어떻게 보면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만큼 풍요롭고 편하게 살 수도 있었겠지만, 제가 체육 현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IOC 위원이 됐고 탁구협회장도 됐고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떤 분에게는 제가 욕심 많은 인물로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 점을 늘 경계한다.” Q : 혹시 가족에게 미안하진 않나? A :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다. 결혼한 지 14년 됐는데 저희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사실 아내와 아이들의 배려가 큰 힘이 됐다. 선수 시절 막바지였던 2012 런던 올림픽 때 첫째가 태어났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아들만 둘 있는데 첫째 때도 산후조리원에 같이 못 있고 선수촌에 있었다. 해외 출장도 잦았던 터라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가족들이 오히려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덕분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Q : 자제들도 탁구에 소질이 있나? A : “축구를 한다. 둘 다 선수로 뛰고 있다. 저는 축구를 잘 모르지만 본인들이 좋아서 선택했고 열심히 한다.” Q : 체육회장 이후 목표는? A : “없다. 일단 체육회장에 충실해야 한다. 워낙 큰 조직이고 중책을 맡은 만큼 4년 뒤를 생각한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Q : 마지막으로 스포츠로 기뻐하고 희망을 찾는 국민들께 한마디 부탁한다. A :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스포츠는 늘 국민께 행복을 드리는 그런 분야였다. 최근 체육계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면서 체육인들의 자긍심이 무너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은 본질적으로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체육이 다시 국민 여러분께 희망을 드리고 행복을 드리고 설렘을 드린다면 그만큼 보람된 일도 없을 것 같다. 열심히 하겠다. 국민 여러분도 많이 힘드시겠지만 변화되는 체육계를 기대해 주시고 선수들을 아껴주시고 체육을 좀 더 즐기시면서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