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맨 체면 세워주고 실리는 물밑 협상서 챙겨야" [월간중앙]
뜻이다. 즉, 트럼프의 최초 제안은 결코 최종 제안이 아니다. 안보를 위해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미국이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방위비 분담금으로 한국이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 NATO 회원국들의 GDP 5% 국방비 지출 주장이 예이다. 이런 경우 조급하고 감정적인 대응은 금물이다. 상대방 제의에 신경 쓰지 말고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우리 제의를 마련해 제시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를 선과 악, 승자와 패자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갖고 있고 직관적·본능적 성격의 소유자다. 이를 고려해 메시지는 간결, 명확하게 하고 시청각 자료를 활용해 미국이 얻게 될 단기적·가시적 이익을 강조하는 것이 좋다. “대통령 공백기 한국, 트럼프 학습 기회”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대화와 공개 협상을 선호한다. 대립을 피하고 트럼프가 국내적으로 승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가시적 이익과 명분을 양보하되 실리를 챙기는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대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신임 멕시코 대통령의 대응은 주목할 만하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25% 관세 부과 위협에 공개적으로 맞대응하는 대신 신중하고 절제된 접근 방법을 택했다. 자국의 보복 조치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았고 국경 보안을 강화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성과로 내세우도록 교묘히 방치했다. 관세 부과는 한 달간 유예됐고 셰인바움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지도자를 신뢰한다. 그가 시진핑, 푸틴, 김정은 등 스트롱맨들과의 개인적 유대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 중에서는 약속을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 정치적 권위를 가진 사람을 존중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 부재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지속하고, 정상외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은 한국에 불리하다. 그러나 초조해하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최종 의사 결정권자의 부재를 이유로 주요 문제에 대해 시간을 벌고 결정을 늦출 수도 있다. 한국이 미국보다 국력은 열세이나, 협상력은 반드시 국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역사에는 협상력을 활용해 약소국이 강대국에 협상 우위를 차지한 사례가 많다. 협상력은 최상의 대안(BATNA), 자원에 대한 통제, 협상가의 지위, 전문 지식, 윤리성, 선례, 끈기, 설득력, 합법성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 시간과 정보도 협상 성패에 영향을 미친다. 약소국이 국력의 차이를 극복하고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이유는 협상력이 객관적 실체가 아닌 주관적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협상력은 상황과 관계 속에서 발전한다. 미국의 대외정책도 여론, 중간선거, 의회 등 여러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고 진화한다. 비전통적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의 우선순위와 협상 스타일을 고려한 맞춤형 전략을 마련하고냉철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가장 어려운 협상 상대는 자기 자신이다. 박희권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학사, 스페인 마드리드 자치대 법학박사(국제법), 영국 전략문제연구소(IISS) 연구원, 유엔 차석대사, 페루·스페인 대사를 역임했다. 세종 우수 교양도서 〈쉘 위 니고시에이트?〉 저자 박희권 한국외대 LD학부 석좌교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