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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시선] 그들 모두 우리 아이다

아버지는 공연차 방한했다가 자국에 내전이 터져 돌아가지 못했다. 사무엘은 2006년 서울시 용산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축구를 주름잡던 그는 오산중에 진학한 뒤 코치 눈에 띄어 축구부에 들었다. 1학년 때 연습경기에서 2학년 선배들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오산고 시절엔 전국대회 우승도 이끌었다. 좋아하는 선수를 물으면 손흥민과 코트디부아르 출신 디디에 드로그바 사이에서 고민한다. 한편 2005년 가나에서 태어난 오세이는 5살이던 2010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이주해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살았다.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배우던 친형을 따라 공을 차기 시작했다. 신흥중에 다니던 2019년 경기도 권역 주말 리그에서 18경기 32골로 큰 화제를 모았다. 수원 계명고에서 계속 축구를 한 그는 늘 “한국이 내 고향”이라고, “가슴에 당당하게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고 말한다. 사무엘은 불어보다 한국말이, 오세이도 영어보다 한국말이 편하다. 제 또래 한국 청년과 다를 게 없다. 같은 급식을 먹었고, 같은 선생님한테 같은 걸 배웠다. 같은 말을 하고 사고방식도 비슷하다. 그런데도 사무엘과 오세이는 국적법상 한국 국민이 아니다. 우리 국적법은 혈통주의를 따른다. 사무엘은 코트디부아르, 오세이는 가나 여권을 쓴다. 프로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선, 어제까지 같은 팀에서 함께 뛰고 뒹굴었던 친구들과는 달리 외국인 선수 제도에 따라야 했다. 적어도 지난해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다르다. 프로축구 K리그가 ‘홈그로운(home-grown) 제도’를 도입했다. 18살까지 국내 등록팀에서 5년 이상 또는 연속 3년 이상 뛴 외국 국적 선수를 국내 선수와 똑같이 대우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첫 수혜자가 사무엘과 오세이다. 사무엘은 FC서울과, 오세이는 대구FC와 각각 계약했다. 두 선수는 나란히 영플레이어상(옛 신인상) 수상을 꿈꾼다. 경력이 꽤 있어야 K리그에 올 수 있던 이른바 외국인 ‘용병’ 선수가 아니라, 이 땅에서 자라난 ‘홈그로운 선수’이기에 꿈꿀 수 있는 일이다. 지난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내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의 강제퇴거를 중단하고 체류 자격 심사제도를 마련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한국에서 살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 사실상 한국의 생활 환경과 방식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해 갈 곳도 막연하다. 그런 그들을 내치는 건 옳지 않다. 인권위 권고에 따라 2021년 법무부가 내놓았던 한시적 구제대책이 다음 달 말 끝난다. 지난 4년간 많은 아동이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아동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더 늦기 전에, 이왕이면 더 근본적인 구제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미등록 이주아동 누구나 사무엘과 오세이처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그들 모두 우리 아이다. 장혜수([email protected])

2025-02-11

주지훈♥정유미, 혐관에서 운명으로...텐션 폭발 케미 ('사외다')

한날한시 태어난 집안 대대로 철천지원수였지만 “언제부터 뭐 때문에 좋아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이게 사랑이 맞는지 나도 헷갈릴 만큼 오래된 감정이야”라는 18세 석지원(홍민기 분)의 고백처럼 너무 익숙해서 알아채지 못한 첫사랑 감정을 깨닫고 서로에게 직진했다. 이후 투지원은 가족도 친구도 모르게 뜨겁게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아슬아슬한 비밀 연애를 이어갔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사소한 이유로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은 석지원을 짝사랑하던 차지혜(김예원 분)의 질투심으로 벌어진 수신 차단으로 3개월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윤지원도 너 기억 못하더라”라는 친구의 말에 자극받은 석지원이 윤지원을 만나기 위해 독목고를 찾으며 18년 동안 끊긴 인연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특히 4화 방송 에필로그에서 공개된 석지원의 달달한 순애보가 깜짝 반전을 선사하며 투지원의 확장된 서사를 보여줬다. 이별 후 윤지원(오예주 분)은 동료의 배신, 부모의 죽음, 아버지의 횡령 등 믿을 수 없는 사건의 연속에 인생 최악의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윤지원이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그녀를 다시 살게 해준 은인이 석지원으로 밝혀지면서 서로에게 단 하나의 구원이 된 서사 맛집의 진가를 보여줬다. 특히 주지훈과 정유미는 서로에 대한 애증이 다시 애틋한 설렘으로 변하는 과정과 이에 달라지는 눈빛과 분위기로 투지원 서사의 재미를 한층 극대화하고 있다. 이에 시청자는 “석지원=원 앤 온리 윤지원”, “윤지원이 끝을 생각했을 때 그 뒤에 석지원이 있었다는 게 눈물 포인트”, “투지원 서로가 운명이고 순애”, “석지원 레전드 남주”, “석지원 인생은 오로지 윤지원으로 가득 차”, “에필로그 미쳤다. 여운이 너무 길다” 등의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다. 한편 오는 5화에서 석지원의 사택 입성과 함께 투지원의 본격적인 한집살이가 그려진다. 석지원의 복수심으로 포장된 로맨스 직진이 두 사람 사이의 설렘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한편 반전의 연속인 두 사람의 서사가 어떻게 그려질지 이들의 원수 로맨스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tvN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는 매주 토요일 일요일 오후 9시 20분에 방송한다. /[email protected] [사진] tvN 유수연([email protected])

2024-12-04

비상 계엄 속보 속 정상 방송 '모퉁이'…정건주♥최희진 새 사랑 시작

아버지 호길(박윤희)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은하의 모습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거래처 인근 로드뷰를 살피던 중 호길과 비슷한 한 남성을 발견했다. 모자이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체격부터 서 있는 자세까지 영락없는 아버지였다. 은하는 약국 단골이자 로드뷰 제작사에서 근무 중인 서후에게 로드뷰 속 모자이크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서후는 자신의 권한 밖이라며 딱 잘라 거절했다. 하지만 로드뷰 속 남자가 사라진 아빠라 굳게 믿던 은하는 포기하지 않고 서후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집념은 제작사 직원들과 서후의 마음을 움직였고, 모자이크를 제거한 로드뷰 화면을 확인하게 됐다. 은하의 확신대로 로드뷰 속 인물은 아버지였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화면 속 호길을 어루만져 눈물샘을 자극했다. 은하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처음 보는 장소를 찾아내기란 길치인 그녀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후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은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길눈이 밝은 서후는 단번에 호길이 서 있던 담장을 찾았다. 같은 시각,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던 은하는 서후의 전화에 반색하는가 하면 자신이 있는 곳에 한걸음에 와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서후는 은하에게 여섯 살 때 자신을 떠난 엄마와의 이별을 꺼내 놓았다. 은하는 아버지를 찾는 게 겁나지 않냐는 서후의 질문에 “저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그래야 내 뜻과는 상관없이 뭔가를 놔줘야 할 때 놓지 않으려고 애썼던 그 시간이 위로가 돼 주거든요. 애쓰는 제가 좋아요. 특히 좋아하는 사람한텐 더더욱 애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서후는 자신과 다르게 이별에 대처하는 은하의 진심에 조금씩 흔들렸다. 은하는 다음날, 아버지가 20년 전 자신을 위해 미용실 원장님에게 머리 묶는 법까지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달은 은하는 눈시울을 붉혔고, 서후는 아버지를 꼭 같이 찾자며 위로했다. 같은 길 위에서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두 사람의 모습은 설렘을 유발했다. 한편 서후는 몇 번이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떠났던 전 여자친구 세연과 완전한 이별을 맞았다. 긴 사랑의 마침표를 찍은 서후는 그간의 상처와 아픔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졌다. 이후 서로를 살뜰하게 챙기는 서후와 은하의 묘한 썸 기류는 보는 이들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런가 하면 은하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버지의 행방을 알게 됐다.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호길이 딸에게 짐이 되기 싫어 홀로 요양원에 입원했던 것. 딸을 그리워하는 호길을 본 간병인이 은하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며 부녀의 극적 만남이 성사됐다. 이 과정에서 은하의 가슴 아픈 사연도 밝혀졌다. 과거 사고로 부모님을 한날한시에 떠나보낸 은하를 큰아버지였던 호길이 품었던 것. 아버지의 품에 안겨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은하의 오열은 안방극장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방송 말미, 서후는 세그웨이를 타고 싶어 하는 은하를 위해 하트 모양의 경로를 만드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속도에 맞춰 사랑의 골목으로 진입하는 ‘동행 엔딩’은 안방극장을 따뜻한 온기로 물들였다. 한편 ‘KBS 드라마 스페셜 2024’의 대미를 장식할 다섯 번째 단막극 KBS2 ‘발바닥이 뜨거워서’는 오는 10일 화요일 밤 10시 50분 방송된다. /[email protected] 장우영([email protected])

2024-12-03

윰블리는 알겠는데 '귀요미' 주지훈?..'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 첫방 포인트

한날한시 같은 병원에서 태어나 이름마저 똑같은 두 사람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첫사랑 이후 가슴 아픈 이별을 겪고, 18년 만에 달갑지 않은 재회와 함께 관계성을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 보는 재미를 더할 것이다. 나아가 사랑에서 혐관이였다 다시 사랑하게 될 두 사람으로 인해 두 원수 집안의 갈등과 반목이 해소될 수 있을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박준화 감독표 단짠 힐링 로맨스 박준화 감독은 “대본을 보고 큰 힐링을 받았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싶었기에 조금 더 편안하게 힐링하면서, 노력하면서 찍었다"라며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환혼: 빛과 그림자’까지 박준화 감독은 시청자를 쥐락펴락하는 감각적인 로맨스 연출의 대가로 불린다. 심쿵 포인트를 카메라 구도와 음향을 활용해 연출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하고, 결정적인 순간 전략적으로 음악을 삽입해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게 하는 등 로맨스 코미디에 최적화된 연출력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박준화 감독이 “코미디와 로맨스가 어우러진 감정선을 통해 시청자에게 힐링을 선사할 것"이라고 전한 만큼 혐관으로 엮인 석지원과 윤지원이 달달할 때는 심장 터지게 달고, 짤 때는 오열을 부를 만큼 짜고, 쫄깃할 때는 심장을 쥐어짜듯 쫄깃한 연출력을 선보일 것을 예고한다. 또한 일상적이고 편안한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에게 웃음과 위로를 전할 것을 약속해 기대감을 절로 높인다. #전 연령 사로잡는 따뜻한 감성-유머 과거와 현재 잇는 연결고리 X 개성 넘치는 독목고 ‘풍성한 재미’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는 아련한 첫사랑과 3대를 잇는 가족 갈등, 원수 관계라는 복합적인 설정으로 전 연령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다. 석지원과 윤지원의 티격태격하는 혐관 케미에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을 예고한다. 여기에 석지원과 윤지원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의 복잡한 관계가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수학교사 차지혜(김예원 분)와 교생 공문수(이시우 분)는 각각 석지원과 윤지원을 향한 짝사랑으로 로맨틱한 갈등을 예고한다. 또한 석지원 아버지 석경태(이병준 분)와 윤지원 할아버지 윤재호(김갑수 분)의 질긴 악연도 드라마의 핵심 요소다. 독목고 교직원의 각기 다른 매력도 관전 포인트다. 교감 강영재(백현주 분), 수학교사 맹수아(전혜진 분), 보건교사 홍태오(김재철 분) 등 다양한 캐릭터가 석지원과 윤지원의 갈등 속에서 다채로운 색을 드러내며 극에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한편 tvN 새 토일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는 오늘(23일) 밤 9시 20분에 첫 방송한다. /[email protected] [사진]제공 박소영([email protected])

2024-11-22

모든 학생에 무료 급식 여부 주민투표

한시적으로 시행됐던 무료 급식 프로그램이 종료돼 올 가을학기부터는 학생들이 급식비를 내야하는 상황이 닥치자 마련된 것이다. 제퍼슨 카운티 학군의 경우, 코로나19 대유행전에는 하루에 약 2만끼의 식사가 학생들에게 제공됐으나 코로나19 대유행 기간동안에는 연방정부의 급식 예산 지원으로 하루 제공 식사가 약 4만끼로 급증했다. 윌랜드는 이 한시적인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무상 급식을 원하는 학생들이 예상보다도 훨씬 많다는 현실을 일깨워줬다고 전했다. 이번 주민투표 발의안은 모든 콜로라도 주내 모든 각급 학교 재학생들에게 필요와 상관없이 누구나 무료로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무상 급식 프로그램을 영구화하게 될 것이다. 윌랜드는 특히, 무상 또는 할인된 학교 급식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현재 자격이 안되는 가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덴버 대학에 다니는 대니엘 시에라진스키는 무료 급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가 중학생일 때 그의 아버지는 직장을 잃었고 그의 가족은 어머니의 월급만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시어신스키의 어머니는 당시 지역 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었으나 가족을 충분히 부양할 만큼의 수입은 안됐다. 시에라진스키는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소외되고 낙인찍혔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항상 무료이거나 할인받는 학교 급식의 혜택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 주방 직원이 무료 급식 대상 학생들을 큰소리로 부를 때마다 창피했다. 이 때문에 점심을 거르기도 했었다. 또한 무료 급식이 양도 적고 영양가도 충분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점심을 거른 날은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면서 “형편이 여의치 않은 가정의 학생들은 학교의 무료 급식이 필요하다. 또한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급식이 제공된다면 나같은 경험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전면 무료 급식 주민투표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전면 무료 급식 프로그램 시행에는 연간 약 1억 1천만 달러의 비용이 추가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추가 비용은 연소득이 30만 달러 이상인 주민들에 대한 세금 공제를 줄임으로써 확보할 예정이다. 세금공제는 개인 세금보고 신고자의 경우 1만2천 달러, 부부 공동 신고자의 경우 1만6천 달러로 제한된다. 이 주민투표 발의안은 무상 급식 제공과 아울러 지역 학교들이 지역 농부들로부터 신선한 식재료를 살 수 있도록 하는 그랜트 프로그램의 역할도 할 것이다. 또한 학교들이 음식을 제대로 조리할 수 있도록 주방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보조금도 제공할 것이다. 스완슨 초등학교의 주방 관리자인 잰더 카슈브는 “현재 저희 학교 급식의 메뉴에는 고도로 가공된 사전 조리된 음식, 통조림 야채나 과일들이 너무 많다. 학생들을 위해 더 질좋은 식사를 제공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완슨 초등학교는 무상 급식과 할인 급식에 의존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높다. 주민투표안이 통과되더라도 연방 프로그램이 만료되는 시점과 주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시점 사이에는 공백기간이 생길 것이다. 그때 학생들을 먹이지 못하고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이 몹시 걱정된다. 배고픔을 참고 집으로 가는 학생들을 보게 된다면 가슴이 찢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카슈브는 “주민투표안이 통과된다면 학생들을 위해 현지에서 생산된 신선한 식재료로 영양가 있는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며 새로운 요리법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연성도 더 갖게 해줄 것이다. 또한 전면 무상 급식이 시행되면 갈수록 감원되고 있는 주방 직원들의 충원과 대우 개선도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전면 무료 급식 비판론자들은 모든 학생들이 무료 급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 다른 주민들의 자녀를 위해 일부 주민들에게 금전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도 불공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전면 무상 급식 방안은 주민투표로 결정나게 됐다.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떻게 드러날지 주목되고 있다.   이은혜 기자주민투표 학생 무료 급식 주민투표 발의안 학교 재학생들

2022-08-22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한복 전도사 <김연자 한복>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한복에 매료되었다. 현재 이 포목점은 남동생이 가업을 이어 동대문 시장에서 60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부터 의류업에 종사해왔던 김 사장은 31년전 미국에 온 이후 봉제공장, 코인 런드리 등의 사업을 하면서도 한복점에 대한 갈망이 늘 있어왔다. 그러다 몇년전 사업을 정리하면서 한국의 남동생이 한복점을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면서 애써 묻어두었던 한복점 운영의 꿈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3년전인 2019년 3월 8일, 야심차게 한복점을 오픈했다. 그러나 오픈한지 8일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장기화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김연자 한복은 예약손님에 한해서만 한시적으로 문을 열고 주문을 받고 있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사장은 한복점 운영이 참 행복하다고 말한다.       일단 그녀의 한복점을 통해서는 한국의 뛰어난 한복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주문할 수 있다. 포목점 사업을 하면서 최고수준의 한복 디자이너들과 거래를 하는 남동생 덕분에 좋은 한복 제품들을 직접 공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LA나 뉴욕 같이 한인인구가 많은 대도시도 아닌 덴버 같은 소도시에서 한복이 예뻐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한복점을 찾은 손님들은 막상 한복 디자인들을 보면 깜짝 놀란다. 현대적인 디자인에 고급스러운 재질, 어디에 내놔도 세련되고 우아함이 넘치는 한복을 직접 입어보면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기 때문이다. 한복 주문은 카탈로그를 보고 원하는 디자인을 고를 수 있고, 대량주문이 아닌 일일이 수작업을 통한 제작이다 보니 제작에서 배달까지 보통 한달 정도는 잡아야 한다. 한복 가격은 보통 1,000달러에서 1,500달러 정도인데, 강남 쪽에서 1천만원이 넘는 한복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저렴하게 최고 수준의 한복을 살 수 있는 셈이다. 한복은 대여도 할 수 있으며, 대여 비용은 300달러 선이라고 한다. 한국 결혼 문화의 하일라이트인 폐백 역시 적은 한인 인구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수요가 있다. 특히 미국인과 결혼하는 한인들은 반드시 결혼식 행사에 폐백을 넣는 경향이 많은데, 미국인들은 연신 한복의 화려한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표하며 좋아한다고 한다. 김연자 한복을 통해 폐백을 진행하게 되면 한복에서부터 음식에 이르기까지 의뢰인들이 따로 손을 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폐백을 준비해준다. 김 사장은 “결혼식을 끝내고 리셉션 할 때 폐백으로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다. 재미있고 멋있어서 하일라이트처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딸의 결혼식을 위해 딸에게 한복을 입히면서 너무 이쁘다며 감탄하시는 어머니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폐백을 하면서 이국만리에서 한국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미국인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이 일을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낀다. 이렇게 좋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을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콜로라도에서 한복의 전도사이자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해주는 가교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연자 한복은 개량 한복, 결혼식, 폐백, 돌잔치, 아동한복 등을 모두 취급하며, 문의 및 전화예약은 720-939-7711로 하면 된다.   이하린 기자한복 아름다움 김연자 한복 한복 전도사 한복점 운영

2022-04-15

[김종환 교수 이민자의 자녀양육 61] 이민자들의, 이민자들에 의한, 이민자들을 위한 책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위해 기도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성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닥칠 때 과감하게 맞서기보다는 뒤로 한발씩 물러섰다. 어쩌면 오늘날 이민자의 자녀들처럼 부모와 주류사회 사이에서 정체성이 불분명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삭의 아들로서 이민3세인 야곱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비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비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비전을 일구어내는 삶을 살았다. 결국 이민1세와 2세가 닦아놓은 터 위에 집안을 일으키고 타민족의 땅에 자신의 뿌리를 확고하게 심는 이민3세의 삶을 살았다. 성경에는 그 외에도 형들에게 팔려 이민길로 내몰렸던 요셉, 입양아로 성장하여 자기 민족을 노예생활로부터 구원한 모세, 경제적인 이유로 이민을 갔다가 역이민을 통해 자신의 땅으로 돌아온 나오미, 국제결혼을 통해 이민한 룻, 이민사회에 어울려 살며 동족의 양심 역할을 했던 에스겔, 이민자로서 외국 학문을 닦은 후 그 나라 정부의 관직에 머물며 동족을 도왔던 다니엘과 세 친구, 이민2세였음에도 민족의 정체성회복을 위해 헌신한 에스라, 조국을 재건하기 위해 일신의 영달을 포기한 느헤미야 등 많은 이민자들이 성경에 등장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민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모두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덴에서 살도록 창조되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댓가로 에덴에서 쫓겨나 강 건너 낯선 땅에서 땀흘리며 고생하는 이민자의 삶을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민자들 중의 이민자는 예수이시다. 그는 하늘나라를 떠나 이 세상으로 오셨다. 이민자들 중에서도 가장 미천한 이민자로 오신 예수는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의 편에서 살다가 그들을 위해 돌아가셨다. 한시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며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꿈을 이루어주시기 위해 승천하셨다. 창조주 하나님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이민자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이민자들을 사랑하신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이렇듯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성경은 이민자들의 책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이민자들에 의한 책이다. 로마 정부의 핍박으로 인해 베드로, 요한, 스데반, 바울, 바나바, 실라, 야고보 등 많은 사람들이 예수만이 주님이라고 가르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핍박을 피해 소아시아와 유럽 여러 곳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들을 통해 성경이 땅끝을 향해 퍼졌다. 그래서 성경은 이민자들에 의한 책인 것이다. 오늘날의 이민자들은 성경 속의 이민자들로부터 바톤을 물려받아 복음을 땅끝까지 전할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또한 성경은 천국시민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을 위한 책이다. 성경은 세상에 사는 이민자들에게 여권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민자들은 성경을 보면서 자신들의 시민권이 천국에 있음을 기억한다. 성경을 공부를 통해 천국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배운다. 이민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전해야 할 이유와 이민자의 삶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이렇듯 성경은 이민자들을 위한 책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이민자들은 모두 오늘날의 이민자들과 같은 본성과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이민자들이 경험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모두 경험했다. 그들은 때로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사용되는 삶을 살았다. 성경의 이민자들의 경험을 교사와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오늘날의 모든 이민자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 수 있다. 성공적인 이민자의 삶을 살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경은 이민자들의 책이고, 이민자들에 의한 책이고, 이민자들을 위한 책이다. 오늘날의 이민자와 그 자녀들에게 상관 없는 책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오늘 신문보다 더 밀접한 관계가 있는 책이다. 참고로, 성경 안에는 하늘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자, 즉 구원의 유일한 길이 들어있다. 아직 천국행 비자를 받지 못한 분들은 가까운 교회의 사역자를 찾아가 상담 받으시길 바란다.

2021-03-19

[김령의 퓨전에세이]내 인생에 박수

아버지가 주례하시는 결혼식에 몇 번 갔었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다른 분의 주례사에도 이 말은 빠지지 않길래 그러는 건가 보다 했다. 백년해로라는 말 이제는 알겠다. 그러나 둘이 한날한시에 같이 가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여자의 나이가 남편보다 몇 살 아래인 데다 여자가 4~5년 더 산다니 거의 10년을 혼자 더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전적인 준비도 되어있어야겠지만 혼자 살아가는 힘, 즉 고독력(孤獨力)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남자들은 여자 없이 사는 것에 두려움이 많다고 한다. 평생직장에 다니며 돈 벌어다 주면 아내가 알아서 아이들 기르고 살림해주었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얼마나 두려울까. 그래서 혼자 사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미국 남자들은 한국남자들보다 혼자 살 수 있는 준비들이 되어있는 것 같다. 아침 식사도 자기가 만들어 먹든 출근길에 사 먹든 알아서 하고, 정원 가꾸기도 잘하고, 아내가 쥐여준 ‘허니 두 리스트(Honey do list)’를 들고 다니며 장도 잘 본다. 일본인 시모다 가게키는 『남성독신보감』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배우자가 있더라도 독신인 양 미리 연습하라고 한다. 요리하는 즐거움도 배우고,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운동해서 노화를 늦추고, 혼자 여행을 하고, 자신에게 몰두하라 쓰고 있다.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의 조건』이란 책 속에 행복조건 7가지를 언급하면서 적당한 음주도 권하고 있다. 가끔은 그것도 좋을 것 같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의식 무의식 속에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게 타인의 시선이다. 이만큼 살았으면 이제 조금은 흐트러져도 좋고, 적당히 망가지는 것도 좋다고 했다. 고독력을 기르려면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고 자신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소일거리를 만들라 권한다. 특히 한국남자들은 소소한 얘기를 갖고 소통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거대담론이 아닌 소소한 대화에도 함께 할 줄 아는 게 좋겠다. 세상 만물은 끝날 때가 아름답다. 낙조가 일출보다 아름답고, 가을 단풍이 봄날의 신록보다 아름답다. 나는 한국 가수 현숙의 ‘내 인생에 박수’라는 노래를 그래서 가끔 불러본다. 김령 / 시인·화가

2017-07-21

'아메리카 퍼스트'보다 '아메리칸 드림'

한시적이지만 사실상 이민자 배척 조치다. 재계는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직원 중에 이민자 출신이 많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기회의 문은 열려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인덱스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실리콘밸리의 이민자 비중은 무려 37.4%에 달한다. 실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독일.오스트리아.폴란드 이민자의 후손이고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인도 출신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인종 구성을 봐도 아시아(32%), 히스패닉(26%), 아프리카(2%), 기타(4%) 비중이 백인(35%)보다 월등히 높다. 팀 쿡 애플 CEO는 28일 사내 이메일을 통해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피해를 받게 된 직원들을 본사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구글은 이번 조치로 최소 187명의 직원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해외에 있는 직원들에게 즉각 귀국 지시를 내렸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난민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두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IT 기업의 반발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75개국에 매장이 있는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CEO는 29일 홈페이지에 "우리는 미국의 양심과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약속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미증유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향후 5년간 전 세계 난민 1만 명을 채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량 공유기업인 우버는 이민 문제가 있는 운전기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300만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고,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엔비는 페이스북에 "(이번 조치로) 비행편을 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머물 곳을 제공하겠다"며 이메일 연락처를 공개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페이스북에 "지금이야말로 '자유와 기회'라는 미국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모두 손을 맞잡을 때"라고 업계의 동참을 촉구했다.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도 30일 "스스로를 사업의 귀재라고 부르는 사람(트럼프)이 미국 행정부의 중심에서 카오스(대혼란)를 일으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미디아의 아버지 역시 1970년대에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란인이다. 자동차 제조사인 포드의 빌 포드 회장은 "모든 사람에 대한 존경은 포드사의 핵심 가치"라며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있는 공장과 사무실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IT 기업들과 몇 주간 간신히 쌓은 협력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평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반이민 행정명령이 합법적인 이민자까지 제한할 가능성이 있고 이중 국적자에 대해 모순되는 규정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는 "많은 기업인이 대선 이후 사업에 전념하길 원했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며 "(정부와 재계 간) 전투(fight)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병일.이소아 기자

2017-01-30

실리콘밸리, 이민자가 37%…'이민 장벽'에 발끈

한시적이지만 사실상 이민자 배척 조치다. 재계는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직원 중에 이민자 출신이 많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기회의 문은 열려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인덱스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실리콘밸리의 이민자 비중은 무려 37.4%에 달한다. 실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독일.오스트리아.폴란드 이민자의 후손이고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인도 출신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인종 구성을 봐도 아시아(32%), 히스패닉(26%), 아프리카(2%), 기타(4%) 비중이 백인(35%)보다 월등히 높다. 팀 쿡 애플 CEO는 28일 사내 e메일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입국 규제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피해를 받게 된 직원들을 본사 차원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구글은 이번 조치로 최소 187명의 직원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해외에 있는 직원들에게 즉각 귀국 지시를 내렸다. 트럼프의 '가짜뉴스' 공격에 대안을 만들겠다며 한발 물러선 저커버그 역시 이번에는 "난민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두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마르도 30일 트위터에서 "스스로를 사업의 귀재(business genius)라고 부르는 사람(트럼프)이 미국 행정부 중심에서 카오스(대혼란)를 일으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미디야르의 아버지 역시 1970년대에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란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IT 기업들과 몇 주간 간신히 쌓은 협력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평했다. CNBC뉴스는 30일 구글이 400만 달러 규모의 난민 긴급 구호기금(crisis fund)을 조성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슐츠 스타벅스 CEO "난민 1만 명 채용"=IT 기업의 반발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75개국에 매장이 있는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CEO는 29일 홈페이지에 "우리는 미국의 양심과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약속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미증유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향후 5년간 전 세계 난민 1만 명을 채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량공유기업인 우버는 이민 문제가 있는 운전기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300만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고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앤비는 페이스북에 "(이번 조치로) 비행편을 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머물 곳을 제공하겠다"며 e메일 연락처를 공개했다. 제프리 이멀트 GE CEO는 "이민자 출신 직원들은 기업 성공에 핵심적"이라며 정부와 의회에 반대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페이스북에 "지금이야말로 '자유와 기회'라는 미국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모두 손을 맞잡을 때"라고 업계의 동참을 촉구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반이민 행정명령이 합법적인 이민자까지 제한할 가능성이 있고 이중 국적자에 대해 모순되는 규정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는 "많은 기업인이 대선 이후 사업에 전념하길 원했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며 "(정부와 재계 간) 전투(fight)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소아 기자

2017-01-30

[이혜진 칼럼] 제5 계명

한시적으로 정해져 있는 ‘Time-Sensitive’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잘 아시다시피 부모 공경은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계명은 아닙니다. 부모님은 날마다 더 늙어 가시고 노쇠해 가시기에 나중에는 더 하고 싶어도 때를 놓치면 지킬 수도 없는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계명은 다른 계명들, 즉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그리고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과 완전히 구별됩니다. 다른 계명은 죽을 때까지 지킬 수 있고 (또 지켜야 하는) 계명이지만 부모 공경 계명은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성경은 육신의 부모를 공경함으로 하나님 공경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12장 9절 말씀이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육신의 아버지를 공경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명은 축복의 약속이 결부된 유일한 계명이기도 합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 2절도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공경하는 것입니까? ‘공경하라’는 히브리어로 카바드인데,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무겁게 대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의 말을 그리고 부모의 삶을 무겁게 여기고 존중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공경’과 ‘순종’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목소리는 분명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그리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1-2)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부모님이 어떤 분이든 상관없이 그 삶의 무게를 존중하고 공경해야 하지만 ‘순종’의 영역은 분명한 기준과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 안에서’ 입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님의 말씀과 명령보다 우리 영혼의 창조주이시고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우선임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주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고, 그 분들의 삶의 무게를 존중하시기를, 그래서 약속된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07-19

[중앙신인문학상/ 수필 부문-가작] 잘매

아버지 바로 위의 형님이었는데 일본으로 징용 가서 돌아갔다고 했다. 그때는 잘매 나이 스무 살이었고 잘매의 무남독녀 순자 언니는 채 돌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고 했다. 아흔셋이 된 잘매는 평생을 수절하며 살아온 것이다. 양반집안 딸이라 다른 선택은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우리 잘매의 아프고 외로웠던 삶은 시대와 관습이 만든 잔인한 희생의 시간이다. 잘매는 삯바느질을 해서 순자 언니를 중학교까지 보냈다. 그 당시에 시골에서 딸아이를 중학교까지 보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마을 아낙들에게 둘러싸여 재봉틀을 돌리던 우리 잘매를 생각만 해도 내 눈엔 눈물이 고인다. 잘매 집 안팎은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화단에는 항상 고운 꽃이 가득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빛깔 고운 단풍잎을 한지 사이에 넣어 창호지 문을 은근하고 멋스럽게 장식하던 분이다. 성품이 온화해서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따랐다. 겸손하고 항상 양보의 미덕을 보이는 분이다. 한문과 한시를 놀라울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 예의범절이 몸에 배어있는 분이다. 집안에 사위를 맞이하면 가문에 빠질 수 없는 엄격한 음주문화를 가르치며 품위 있게 권주가를 부르는 멋쟁이였다. 내가 시집갈 때 “시어른 잘 모시고 시댁일 친정에서 얘기하지 말고 친정일 시댁에서 말하지 말고 말을 아껴라”라고 했다. 잘매의 말로는 나는 언제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항상 그 말씀을 명심하고 지켜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이려고 노력했다. 잘매는 나에게는 엄마와 다름없는 존재다. 엄마는 나에게 야단도 치고 꾸지람도 했지만 잘매는 무조건 내 편이고 나의 온갖 응석과 억지를 다 받아 주었다. 나는 잘매 앞에서는 공주보다 더 귀하고 대통령보다 대단하고 천재보다 똑똑하고 미스코리아보다 잘 생겼고 천사보다 착했다. 잘매는 이 세상에 있는 좋은 말들과 칭찬들이 나를 위해 있는 것처럼 언제나 입이 마르도록 나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러니 엄마보다 잘매를 찾았을 때가 더 많았다. 늘 잘매한테 업혀 다니다가 큰아버지께로부터 걱정을 듣기도 다반사였다. 잘매의 집앞에는 나지막한 토담이 있었는데 내가 그 토담에 이르러면 잘매가 와서 나를 업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마당을 걸어 들어간 적이 별로 없었다. 어쩌다가 바느질 일로 바빠서 잘매가 나를 업으러 오지 않으면 나는 심술이 나서 토담의 흙을 떼어먹으면서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면 아무리 바빠도 버선발로 뛰어와서 나를 안고 가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여섯 살이 되어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잘매도 같이 가자고 울며 매달렸다. 잘매도 곧 따라갈 것이라는 말에 속아서 이사를 하였는데 끝내 잘매는 오지 않았다. 그 후로는 일 년에 두 번 씩 방학이면 어김없이 잘매 집에 가서 대부분의 방학을 보냈다. 잘매집 근처에 오면 큰소리로 ‘자-알-매-애’ 하고 뛰어오면 잘매는 ‘아이고 내 새끼 왔네!’ 하면서 뛰어와서 나를 꼭 안아주었다. 영화 속의 연인들이 상봉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잘매와 나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잘매집에는 내 이불, 요, 밥그릇, 숟가락, 요강 등이 다 갖추어 져 있었다. 잘매가 내 운동화를 빨아 널었을 때는 잘매의 새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다녔다. 감을 유난히도 좋아하던 내가 단감이 익기 전에 방학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자 잘매는 떫은 감을 소금물에 담가 주었다. 그러면 며칠이 지나면 떫은맛은 가시고 아삭아삭 맛있는 ‘담은 감’이 되어 있다. 겨울이면 빈 장독 안에다 감홍시를 저장했다가 내가 가면 시루떡을 쪄서 따끈할 때 그 당시에는 귀했던 설탕 가루와 홍시에 찍어서 내 입에다 넣어주곤 했다. 내가 제법 컸을 때도 내 입에 떠먹여 주고 먹는 모양도 예쁘다며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덕분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학교에 도시락을 싸갔을 때, 나는 그때까지도 젓가락질을 할 줄 몰라서 포크를 젓가락 대신에 갖고 갔다. 어릴 때부터 덩치가 컸던 나를 언제나 팔베개를 해서 재웠다. 내가 성인이 됐을 때까지도 팔베개해 줬던 분이다. 잘매는 언제나 깔끔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분이었다. 쪽진 머리에 쇠 비녀를 단정하게 꽂고 다니시던 잘매. 가녀린 몸매에 다소곳하던 모습. 신문화가 들어와 마을 대부분 여자가 짧은 파마머리를 해서 시원하고 편해했지만 홀로된 과부가 그럴 수는 없다고 쪽진 머리를 고수했다. 색깔이 선명한 옷 또한 멀리했다. 세상살이에서 언제나 지는 편을 택했고 조용하게 속으로 삭이면서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 같았다. 동네아주머니들의 의상을 좌지우지했듯이 미적 감각과 정서가 풍부한 분인데 고운 색깔과 멋을 몰랐을 리 없다. 스스로 평생 죄인으로 산 것이다. 잘매의 단 하나 분신인 순자 언니가 시집가서 딸 셋을 낳고 막내가 돌이 되기 전에 남편을 잃었다. 이제 언니도 고희의 나이지만 삭풍이 불어 재끼던 인생길에서 심하게 시달리더니 깊은 우울증의 늪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잘매의 무너지는 가슴, 끝나지 않는 죄 없는 죄인의 세월 속에 얼마나 숨죽이며 몸부림쳤을까. 속으로만 속으로만 파고들던 피눈물에 멍든 가슴을 부여안고 아파하더니 말년에는 담배와 커피를 시작했다. 하루에도 담배 한 갑 이상은 피고 커피도 여러 잔 드는 듯했다. “이것들이 몸에 해롭다 카더마는 우째 이리 아직도 안 죽는지 모르겄다” 커피와 담배를 기호품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얌전한 우리 잘매는 빨리 죽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것이다. 몇 년 전 순자 언니를 겨우 설득해서 우울증 치료차 산속의 뉴스타트 프로그램에 데리고 가기 전 날, 나는 잘매와 하룻밤을 같이 잤다. “내 뼈를 깎아서 네게 먹여도 아깝지 않다.” 라고 내게 말하는 잘매 앞에서 나는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무너지고 있었다. 잘매는 주는 것에만 익숙했고 나는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지난날들. 역할이 바뀌면 서로가 서글퍼지고 어색해지는가보다. 나야말로 내 뼈를 깎아서라도 잘매에게 줘도 아까울 것이 없을 텐데 말이다. 잘매께 전화를 종종 했는데 이제는 그것조차도 어려워졌다. 청력이 나빠져서 전화선 양쪽 끝에서 고함을 치다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할 말을 다 못하고 끝나고 만다. 잘매는 이제 쪽지던 머리는 짧게 자르고 등도 많이 굽었다. 몰라보게 왜소해진 모습으로 양발 도르래가 달린 워커에 의지해서 걷는다. 옛날의 단아했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하지만, 눈빛은 그 옛날 총명을 잃지 않았다. 정신이 맑아서 옛일들을 그림처럼 기억해 낸다. 이제는 물기를 잃어가는 낙엽 같은 입술로 옛날처럼 내 어린 날의 칭찬을 흥분한 목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한국방문 때마다 잘매를 찾아가면 “이것이 널 마지막으로 보는 것인 갑다” 하며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언제나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잘매는 삶의 막바지 길을 내리 걷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 대책이 없다. 내가 잘매한테 해 줄 수 있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만큼도 되지 않는다. 나와는 달리 우리 잘매는 혼신을 다해 주기만 했던 분이다. 흥분과 기쁨으로 주었던 분.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어서 맘졸이고 안타까워했던 분. 줄 수 있어서 고마워 했던 분. 주는 대상에게 더 감사하는 분이다. 어릴 때 읽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주인공 노라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누구나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녀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삶이 그렇게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었다고, 살아볼 만한 일생이었다고 말하고 삶을 마감했다. 모든 사람이 우리 잘매의 인생이 몹시도 불행했다고 혀들을 찬다. 하지만, 불행했던 우리 잘매의 베풀기만 했던 인생에서도 주면서 만끽했을 희열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언제나 소나기처럼 사랑을 퍼부으시던 잘매의 표정과 몸짓에서 나는 확실하게 보았다. 턱없이 기울기만 했던 잘매와 나의 사랑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랑으로 인해 잘매도 행복한 순간은 있었을 것이다. 잘매에게 받은 사랑을 잘매께 갚을 길을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잘매는 나의 존재를 더 고마워한다. 그리고 내가 행복하게 잘 살아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잘매는 말한다. 끝까지 뒤에서 내 행복을 바라보기 원하는 분이다. 나는 거칠고 황량한 인생길 모퉁이에서 넘어져 일어나기 힘들 때 어디선가 사랑의 눈으로 날 지켜보고 있을 잘매를 생각하며 웃으며 일어설 수 있다. 그것은 잘매에 대한 참으로 이기적인 내 사랑의 숙제이기도 하지만 잘매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나의 삶의 힘이기에 그렇다. 소박하게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던 우리 잘매의 삶은 누구에게나 모뎀이 될 것이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잘매가 내게 퍼부었던 사랑을 되돌려 줘야 할 것이다. 잘매를 따라 나도 조용히 혼신을 다해 베푸는 사랑의 절정에 도달하여 그 희열을 맛보고 싶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그것이 엄숙한 우주의 이치인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시시때때로 그 귀한 사랑과 추억이 내 속의 깊은 곳을 훑어 내리며 불을 지필 때마다 나는 철을 뒤늦게 알아가는 늦둥이처럼 속울음을 삼킨다. ▶수상소감 오래도 머물렀던 겨울이 아직도 모퉁이를 돌아서지 않으려 버팅기고 있을 때, 당선소식은 향긋한 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의 늪 속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던 나에게 희망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 앞뜰의 적 목련도 살포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수선화와 튤립을 선두로 하여 줄줄이 해동된 땅을 뚫고 강한 힘으로 올라오는 꽃들은 지난봄의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다. 죽음과도 같이 세상이 미동도 않고 꽁꽁 얼어붙어 있던 겨울에서 소생의 봄을 주신 창조주께 감사합니다. 글을 다시 쓰고 싶은 용기를 주신 중앙일보에 감사 드립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권고를 아끼지 않는 스승님과 사랑하는 가족들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소생의 희망을 주고 세포 하나하나가 기쁨으로 전율할 수 있는 글을 쓰기를 원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2014-05-20

성은이 기리는 사랑 실천

아버지 이만호 목사가 시무 중인 플러싱 뉴욕순복음안디옥교회는 지난 5월 교회 부설 엘림경로센터를 만들어 3개월째 100여 명의 노인들에게 무료로 아침과 점심 식사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아침식사에 이어 성은씨의 오빠인 효진씨가 건강체조를, 어머니인 이진아 사모가 웃음치료를 가르친다. 점심식사는 자원봉사에 나선 교인들이 직접 만들어 대접한다. 이 같은 봉사는 지난해 11월 교회 옆에 있던 뉴욕노인복지센터 회원들이 재정난으로 교회 측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한시적으로 장소와 식사를 제공했지만 복지센터의 사정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예 직접 경로센터를 개설, 운영키로 한 것이다. 이 목사는 "생전에 부모뿐만 아니라 주위 어른들을 공경하고 따랐던 성은이를 기리는 뜻에서 경로센터를 마련했다며 "오아시스를 뜻하는 '엘림(Elim)'이라는 말처럼 '사랑과 행복이 샘솟는 경로센터'라는 의미에서 '엘림경로센터'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뜻을 함께해 준 교인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목사에 따르면 현재 경로센터는 성은선교장학재단 지원금과 이 목사의 사비로 운영되고 있는데, 식비와 유틸리티 비용 등으로 한 달에 1만 달러가량이 지출되고 있다. 이 목사는 "경로센터를 찾은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1달러씩 식비를 걷어 교회 측에 전달하고 있다"며 "하지만 정부기관의 보조와 다른 후원이 없는 만큼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뜻있는 한인 독지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는 718-938-1777. 한편 성은씨의 유산과 조의금 등으로 설립된 성은선교장학재단은 지난 5월 1차로 10명에게 총 1만 달러의 장학금을 지급한 바 있다. 서승재 기자 [email protected]

2013-08-14

[열린광장] 여행을 권면하고 싶다

한시적 감세안 연장 시효가 12월 31일 0시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회 양보를 얻어야 하는 불사전의 일투가 예고돼 정국은 한치 앞도 분간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예상과는 달리 하와이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어머니의 고향이자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한국의 정치가들이 자주 쓰는 정국구상 대신 고등학교 친구 셋과 어울려 일주일 내내 골프만 쳤다고 한다. 정치를 잊어버린 양 휴가를 즐기는 여유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진정으로 정치와 절연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유가 필요해서 여유를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앞뒤 없이 꽉 막힌 자신의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필요하다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정국을 다시 들여다 보고 틀어진 부분을 복기하기 위해서 날아간 곳이 고향이 아닐까? 악보 없이 피아노를 치다 중간에 음을 잊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듯이 말이다. 사람 속에서 자신도 스스로 사람임을 깨닫고 사람의 방법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18대 박근혜 대통령이 우렁찬 팡파르를 울리며 취임을 하였으나 정부조직법 개정에 발목이 잡혀 서성대고 있다. 며칠 지나면 한쪽이 양보하고 웃으며 손을 잡겠지 하고 기다리던 국민은 출구 없는 정치적 충돌에 점점 불안해하고 있다. 야당의 반대를 넘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북한의 위협 속에 국가를 호위하는 것이 대통령의 정치력이고 직무 중 하나다. 야당을 힐난하고 책임을 떠넘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 다른 불신과 상처ㆍ갈등만 남는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할 때 박 대통령이 찾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이 어디일까 생각해본다. 청와대 입성 전까지 살았던 삼성동 아니면 정치적 고향 경북 달성, 아버지의 생가가 있는 구미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삼성동은 아닌 것 같다. 삼성동 누구와도 이웃으로 소통하며 주민으로 역할을 감당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그외 유별나게 친하게 만나는 동창이나 친구가 있다면 다행이다. 밤낮 일만 한다고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친인척이 없어 부정의 원천이 없다고 좋아할 일도, 믿고 맡길 2인자를 절대용납 하지 않는다고 칭찬 받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에게 여행을 권면하고 싶다. 마음이 닿는 곳으로 말이다. 밤낮 문제에 파묻혀 스스로를 문제 속에 침몰시키는 대신 문제 밖에서 차분히 어디서 초심이 흩어졌는지 복기해 보기를 주문한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반대편에서 그들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는 어떨까 싶다. 정부조직법의 원안통과만이 5년 통치의 잘 채울 첫 단추라는 고정관념부터 깼으면 한다. 이 참에 야당과 비박세력을 정치적 동반자로 끌어들여 책임을 공유하는 광폭정치를 선보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김도수 자유기고가ㆍ뉴저지

2013-03-15

[서울통신] '뻐꾸기 아이들'

아버지날인데 여기는 부모를 하나로 합쳤다. 그나마 예전에는 아버지 날은 없이 어머니 날만 있다가 슬그머니 아버지를 어머니날에 끼워 넣은 셈이다. 수도권에 사는 어린이들은 어린이 날이 정말 '우리들 세상'인 것 같다. 좋은 옷을 입고 부모와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함께 나들이를 다니고 또 선물에 맛있는 음식도 즐기는 날이기 때문이다. 세계 11개국에서 41개 단체가 참가하는 서울의 대표 축제인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 어린이날에 열렸다. 정오에는 서울 광장에서 '서울 난장 & 세계 거리극 퍼레이드'로 개막을 알렸다. 그리고 서울 곳곳에서는 이날 거의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 하루 종일 펼쳐졌다. 한 가정에 자녀가 하나 혹은 두 명이 일반적이고 심지어는 무자식인 가정이 늘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과보호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반면 결손가정이나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이 상대적으로 받는 소외감도 큰 문제이다. 어린이 날이 지난 후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받은 선물이 무엇이고 어느 놀이터에 갔으며 무슨 공연을 보았고 또 어떤 음식을 먹었느냐가 화제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혼하는 가정이 많아지고 또 미혼모 출산이 늘어나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녀들을 키울 능력이 안돼 위탁 가정에 맡기는 숫자도 늘어났다. 그런 어린이가 10만명을 넘어섰다. 그런 어린이들을 뻐꾸기 아이라고 부른다. 여러 사정으로 한 가정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이 아이들은 부모가 한시적으로 맡긴 아이들이다. 방 한 칸만이라도 마련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이 잡히면 언젠가는 다시 데려오겠다고 다짐했던 아이들이다. 따라서 법적으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자녀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가족이 다시 합치는 비율은 10%를 겨우 넘을 정도다. 또한 아직도 한 해에 1000여명의 아이가 해외로 입양되어 나간다. 가정에 대한 소중함이 갈수록 파손되고 있음은 누구의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기에 이런 결손 가정이 잘 버티어 나갈 수 있는 조치를 취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더 있어야 한다. 또한 자립 기반이나 탁아 지원을 위한 대책 마련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가정의 달은 부유하고 행복한 가정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2011-05-06

[이 아침에] 이승만, 그의 어린 시절 -건국대통령 이승만 탄생 136주년에 부쳐

아버지 때에 가세가 더 어려워지자 시골에서는 더 이상 먹고 살기 힘들었다. 시골 서당훈장의 따님이었던 어머니 김씨는 외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남편을 설득하여 승룡이 만 두 살 때(1877) 서울 남문 밖 염동으로 이사 갔다. 어머니 김씨는 삯바느질로 집안 살림을 하면서 아들의 교육에 전력을 다하였다. 손수 아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며 시작을 훈도했다. 아버지는 보학(譜學, 족보)과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은 선비로 전국을 유랑하며 한 해의 절반 이상은 돈벌이 없이 집 밖으로 떠돌아 다녔다. 승룡은 서울이 시골보다 좋았다. 친구도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연날리기를 좋아했고 노년까지 이어졌다.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은 승룡이 하루빨리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었다. 가난했던 승룡의 집 형편으로는 훈장을 초빙해 아들을 가르칠 능력이 없었다. 이조판서를 역임한 친척이 되는 이근수옹이 세운 도동서당에서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낙동으로 이사를 했다. 승룡은 열심히 학업에 정진했다. 승룡이 5살 때 실명 직전에 서양의사가 준 안약으로 사흘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서양문명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승룡은 6살 때 천자문을 통째로 암기했고 동몽선습(童夢先習)을 배웠다. 1882년 8살 때 승룡은 서당에서 치르는 도강(都講, 종합경시)에서 언제나 장원을 했다. 부모의 유일한 희망은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었다. 15살 때부터 한시를 지었고 16살에 사서삼경을 모두 익혔다. 그는 13살 때부터 나이를 속여 해마다 과거에 응시했지만 11차례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썩을 대로 썩은 과거제도로 당시 권문세가의 자제들 외에는 급제하기가 어려웠다.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청일전쟁(1894∼95) 등으로 인한 나라의 불안정은 어린 승룡에게 정치적 관심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청일전쟁 때는 나이 19살 청년이었다. 1894년 과거제도가 폐지되었다. 젊은이들은 등용의 길이 막히자 실의에 빠졌다. 이승만은 20살에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당시 학생 2명으로 시작한 배재학당이 창립된 지 10년이 되었는데 10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큰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라는 속담은 어렸을 때부터 영민하고 재능이 탁월한 이승만을 두고 한 말이다. 어머니의 교육열은 이승만을 세계적 정치의 거인으로 만들었다. 이승만은 청빈겸허 하였다. 청빈한 삶은 기독교적 신앙에서 비롯했다. 평생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일했다. 2차 대전 후 세계 약소국가들이 모조리 공산화되었으나 대한민국만이 민주주의 국가로 존재하는 것은 그의 탁월한 자유와 민권의식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남침 전쟁에서 나라를 구해냈으며, 한미방위조약을 이끌어내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강화했고 세계 경제대국의 초석을 놓은 분이 이승만 대통령이다. 우리에겐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과 버금가는 세계적인 애국자요 정치가이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다. 반공포로 석방으로 마오쩌둥, 처칠과 아이젠하워를 경악케 한 이승만, 그의 탄생 136주년을 축하한다.

2011-03-25

[사목의 향기] 인내심 있게 제 몫 해나가야

한시적인 것은 전혀 필연적이지 않거나 상대적일 뿐이다. 한마디로 하느님께서 절대적 자유로 머무시는 한 하느님 이외의 그 어떤 것도 필연적이라 불릴 수 없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가족도 내 목숨은 물론이거니와 삼라만상 모든 것을 다 합친다고 해도 필연적일 수 없다. 민족도 국가도 종교도 마찬가지다. 소중하다 하겠지만 필연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 오직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유와 사랑만이 절대적으로 무한하다. 참된 기도는 바로 이 사랑을 향해 나아 간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이끌리고 열망하고 의존하고 감사하고 그러면서 차츰 더 사랑하게 되고 더 원하게 되는 것이기도 이다. 기적같은 기도의 응답 감동적이고 힘찬 성령의 체험을 주위로 부터 듣곤하지만 꼭 그런 체험이 없다 한들 또 어떤가! 우리의 기도는 이미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 속에 남겨졌고 하느님다운 방식으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다. 다만 우리는 조급하지 않게 겸허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몫을 해나가자. 크고 작은 우리 일상의 청원을 뛰어 너머 거듭 하느님의 자유와 사랑만이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탕자의 형에게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기도를 생각하는 내내 벌써 반나절이 다 가도록 저 햇살과 함께 빛 부시게 맴돌고 있다.

201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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