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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남 인생 도둑질, 69년간 배웠지”

나라인데, 지금 왜들 이러나. 참 슬픕니다.” 혼란한 시절마다 돌파구를 찾아내온 그의 삶이다. 연기 대본이 그에겐 ‘학습지’였다. “연기하며 남의 인생을 도둑질해보면 어떻게 살아야겠다 대처법을 배우죠.” 고교 시절 연극반을 하다가 1957년 연극 ‘원숭이손’ 무대로 데뷔했다. 대학을 다니며 한국 최초 TV 방송국 HLZK-TV 탤런트, 춘천방송국 아나운서를 거쳤지만, 기어코 연극판에 돌아갔다. 당대 최고 극작가 차범석의 극단 ‘산하’에 28년간 몸담았다. 그 때 배운 연기의 기본기로 성우(CBS 5기, MBC 1기)를 거쳐 다시 배우가 됐다. “돈 한 푼 안 받고 1년에 한두 편 훈련과정으로 연극을 했어요. 연극 하느라 오밤중에 들어가고, 아이들 홍역을 앓을 때도 못 들여다보고. 근데 일이 들어오면 욕심이 나. 지금도 설레요.” 그는 30대 때 일찍부터 노역을 시작해, KBS ‘옛날의 금잔디’(1991)에선 한국 드라마 최초로 치매 연기를 했다. 할머니 전문 배우의 영역을 확장한 게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2005, KBS2)부터다. 무례한 식당 주인에게 속사포 응징을 퍼붓는 장면에 ‘할미넴’(할머니+미국 래퍼 에미넴)이란 별명이 생겼다. 젊은 팬과 소통하는 재미도 맛봤다. 음악예능 ‘뜨거운 씽어즈’에서 그가 부른 커버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는 유튜브 조회수가 300만을 넘었다. 2년 전 그는 샤워 중 미끄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뼈에 금이 가 한 살 많은 남편이 소변까지 받아냈다. “이대로 못 일어나는 거 아닌가” 두렵기도 했지만, “그게 고쳐지고, 회생할 때 희열이 남달랐다”고 했다. “삶이 다 좋기만 한 사람은 하나도 없더군요. 사람이니까 이런 일도 겪는 거고. 그냥 훌훌 털어버리는 걸 내가 잘해요.” 그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 ‘현역 가왕 2’(MBN)에서 얼마 전 작곡가 윤명선이 한 참가자에 했던 칭찬을 언급했다. “삶의 경험이 (가창력에) 영양제가 됐다고, 하늘에 감사하라 그랬는데 꼭 나한테 하는 얘기 같기도 했어요. 타고난 재능도 중하지만, 경험이 밑바탕이 되면 가슴을 울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장수 명배우의 진짜 비법이었다. 나원정([email protected])

2025-01-26

87세 현역 배우 김영옥 비결 "대본이 학습지, 경험이 영양제"

나라인데, 지금 왜들 이러나. 참 슬픕니다.” ━ "연기 대본이 학습지, 아픈 경험이 영양제였죠" 혼란한 시절마다 돌파구를 찾아내온 그의 삶이다. 연기 대본이 그에겐 ‘학습지’였다. “어떤 역할이건 나를 숨기려 해도 전혀 배제할 순 없어요. 연기하며 남의 인생을 도둑질해보면 얼마나 바르게 살아야 되겠다는 것, 어떻게 살아야겠다 대처법을 배우죠.” 고교 시절 연극반을 하다가 1957년 연극 ‘원숭이손’ 무대로 데뷔했다. 대학을 다니며 한국 최초 TV 방송국 HLZK-TV 탤런트, 춘천방송국 아나운서를 거쳤지만, 기어코 연극판에 돌아갔다. 당대 최고 극작가 차범석의 극단 ‘산하’에 28년간 몸담았다. 그 때 배운 연기의 기본기로 성우(CBS 5기, MBC 1기)를 거쳐 다시 배우가 됐다. “돈 한 푼 안 받고 1년에 한두 편 훈련과정으로 연극을 했죠. 연극 하느라 오밤중에 들어오고, 아이들 홍역을 앓을 때도 못 들여다보고. 우리 어머니, 남편도 고생했죠. 어쩌면 그렇게 철없이 했나, 그땐 그것도 모르고 지나왔죠. 근데 일이 들어오면 욕심이 나. 지금도 설레요.” ━ K드라마 치매 연기 1호…'올미다' 할미넴이 전환점 30대 때 일찍부터 노역을 시작해, KBS ‘옛날의 금잔디’(1991)에선 한국 드라마 최초로 치매 연기를 했다.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1996년 KBS 원작, 21년 만의 tvN 리메이크판에 모두 치매 노모 역할로 출연했다. 이를 비롯해 ‘내가 사는 이유’(1997, MBC), ‘화려한 시절’(SBS, 2001~2002), ‘고독’(2002, KBS2), ‘디어 마이 프렌즈’(2016, tvN) 등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선 역할의 크기와 관계없이 좋은 삶을 켜켜이 쌓아왔다. 할머니 전문 배우의 영역을 확장한 게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2005, KBS2)부터다. 본명을 딴 캐릭터를 만나, 호탕한 본모습이 튀어나왔다. 무례한 식당 주인에게 속사포 응징을 퍼붓는 장면에 ‘할미넴’(할머니+미국 래퍼 에미넴)이란 별명이 생겼다. 젊은 팬과 소통하는 재미도 맛봤다. “배우로서 터닝포인트였습니다. 그때 팬들이 여태까지 15주년, 20주년이라고 파티를 열어주는 게 늘 감사하죠.” ━ "내 일기장이 너희 역사책" 할미판 자작 랩 화제 이어 음악 예능 ‘힙합의 민족’에선 진짜 할머니 래퍼에 도전했다. 이런 자작 랩도 화제에 올랐다. “내 어릴 적 썼던 일기장이 너희들에겐 역사책이다/누가 봐도 나는 할미다/그래도 내가 할 말은 합니다/얘들아 이게 진짜 힙합이다….” 중장년 배우 합창 예능 ‘뜨거운 씽어즈’에서 그가 부른 커버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는 유튜브 조회수가 도합 400만을 넘었다. 먼저 떠난 이가 남은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는 노랫말이 백발 노배우의 지극한 음성과 만나 “먼저 간 아이가 불러준 노래 같다”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등 공감 댓글이 잇따르면서다. ━ 김용림‧정혜선 “언니 노래는 후벼 파는 게 있다” 어느 날 그가 부른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들은 배우 김용림‧정혜선이 “언니 노래는 후벼 파는 게 있다”고 했단다. “내가 박치에요. 음정‧실력을 떠나서 대중도 어떤 할머니가 그냥 앞날을 환상적으로 얘기해준 것 같지 않았을까. 나는 또 그러면 된다고 생각해요.” ‘뜨거운 씽어즈’도 “배우들이라 그런지 전해오는 감정이 다르다”는 반응이 흐뭇했다고 한다. “연기도 똑같아요. 대사 안 틀리고 해내는 게 사명이 아니거든. 얼마만큼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하나. 배우는 평생 그 욕심을 내고 살아야죠.” ━ 반신불수 손자 10년째 돌봐…"매사 긍정적, 잘 늙으려 노력" 지난해 그는 2015년 무면허 음주 차량에 치여 반신불수가 된 손자를 10년째 돌봐왔다고 고백했다. 2년 전엔 그가 샤워 중 미끄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뼈에 금이 가 한 살 많은 남편이 소변까지 받아냈다. “이대로 못 일어나는 거 아닌가” 두렵기도 했다. “두 달 빡세게 고생했죠. 근데 그게 고쳐지고, 회생할 때 희열이 남달라요. 노인이든, 청년이든 그런 얘긴 해주고 싶죠. 뭐든 아픈데 참지 말고 열심히 치료받아라.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사느냐가 중요하잖아요.” 그러고 보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지는 게 이상하다” 할 만큼 깊은 슬픔을 겪어도, 곰삭힌 후의 깨달음까지 보태어 고백해온 그다. “삶이 다 좋기만 한 사람은 하나도 없더군요. 잘 살고 못 살고는 차이가 없고 불만은 어디에나 있어요. 사람이니까, 이런 일도 겪는 거고, 그냥 훌훌 털어버리는 걸 내가 잘해요. 잘 늙으려고 노력하는 건 있죠.” 요즘은 곧 출연할 음악방송을 위해 새로운 곡을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다. 배우 박인환과 연상연하 부부로 코믹 호흡을 발휘한 드라마 ‘다리미 패밀리’(KBS2)도 26일 밤 종영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 ‘현역 가왕 2’(MBN)에서 얼마 전 작곡가 윤명선이 한 참가자에 했던 칭찬을 언급했다. “삶의 경험이 (가창력에) 영양제가 됐다고, 하늘에 감사하라 그랬는데 꼭 나한테 하는 얘기 같기도 했죠. 타고난 재능도 중하지만, 경험이 밑바탕이 되면 가슴을 울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장수 명배우의 진짜 비법이었다. 나원정([email protected])

2025-01-26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온도 단위

바람에 처음에는 일일이 바꿔야 이해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달러-원 계산에 머리가 아픈데 거기다 도량형 단위까지 애를 먹였다.   세계 모든 나라가 십진법을 기본으로 한 미터법을 쓰는데 미국만 자기 맘대로 파운드, 인치, 그리고 온도는 화씨를 사용한다. 달걀도 다른 나라에서는 열 개씩 포장해서 파는데 미국에서는 12개씩 담아 더즌으로 판매한다. 휘발유는 갤런을 사용하고, 무게는 파운드로 나와 있으며, 신발 크기도 유럽이나 우리와 달랐다. 이미 영어는 세계 공용어가 된 지 오래되었고 국제 결제 수단도 미국 돈 달러이니 아쉬우면 초강대국인 미국이 사용하는 도량형 단위를 쓰라는 것이다.     온도계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덴마크의 올레 뢰머다. 그는 인류 최초로 빛의 속도를 목성과 그의 위성 이오의 움직임을 통해 비슷하게라도 구한 사람이다. 갈릴레이 시절에도 온도는 물질의 부피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온도계가 있긴 했지만 단지 온도의 오름이나 내림 정도를 알려주는 수준이었다. 18세기가 밝을 무렵 뢰머는 알코올을 넣은 유리관 양쪽을 막고 가운데에 작은 금을 그어서 마치 현대 온도계처럼 만들어 사용했다. 그는 물이 얼 때를 7.5도가 되게 하고 사람의 체온을 22.5도가 되게 표시한 온도계를 고안했다.     1720년 온도계에 관심이 많은 독일이 물리학자 다니엘 파렌하이트가 뢰머의 온도계를 보고 온도에 소수점 아래 숫자를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숫자로 이것저것 해 보다가 뢰머의 온도 시스템에 어떤 수를 곱하여 사람의 체온을 98도가 되게 했더니 물이 얼 때는 32도, 그리고 물의 비등점이 212도가 되고 그 사이는 180등분 되었다. 서구권 사람들은 더욱 편리하고 수월한 파렌하이트의 온도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중국에서 음차한 그의 이름 Fahrenheit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으면 '화륜해특'이어서 화氏(화씨)라고 칭했다.     1742년 스웨덴의 천문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는 물이 끓을 때를 0도로 정하고 얼 때를 100도로 하여 그 사이를 100등분 한 온도 체계를 소개했는데 나중에 물은 0도에서 얼고 100도에서 끓는 것으로 뒤집어서 사용했다. Celsius도 중국 음차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섭이수사'이어서 섭氏(섭씨)라고 했다.   그런데 온도의 단위에는 절대온도라는 것도 있다. 섭씨를 C로, 화씨를 F로 표현하듯 절대온도는 K로 표시하는데 만든 사람의 이름인 Kelvin의 첫 글자로 국제단위계(SI)에서 사용하는 온도의 열역학적 단위다. 절대온도를 만든 영국의 수리물리학자 윌리엄 톰슨은 켈빈이란 이름으로 기사 작위를 받았는데 나중에 그는 영국 왕립학회 회장을 역임한 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이 우주에서 절대온도보다 낮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은 0°K 이상인데 0°K는 -273.15°C와 같다. 섭씨 0도는 절대온도로 273.15°K가 되는데 섭씨온도가 올라가는 만큼 똑같이 켈빈 온도도 올라가게 만들어져서 섭씨 100도는 373.15°K다. (작가)     박종진박종진 이야기 현대 온도계 켈빈 온도 온도 체계

2025-01-24

노무현 경제관, 이재명과 상극…‘쿠폰경제’만 꺼내면 질색했다

돈 나눠주기는 고사하고 경기 살리자고 정부 재정 사업을 확대하자거나 은행 돈을 더 풀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질색했다. 주가를 끌어올린다든지,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는 방안 등은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했다. 노무현의 머릿속에는 지나치리만큼 부양책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과거 정부들은 걸핏하면 주가 부양책을 폈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컸다. 따라서 자신은 결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거의 신앙 수준이었다(『노무현과 참여정부 경제 5년』, 101쪽). 그럴 만도 했다. 특히 전임 김대중 정권이 외환위기 탈출에 급한 나머지 경기 부양 정책을 남발했었고, 그 결과로 부동산 급등과 카드대란이라는 골칫거리를 참여정부에 떠넘겼으니 말이다. 단기 부양책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생각이 노무현 경제의 고집스러운 노선이었다. 더 뿌리 깊은 이유도 있다. 노무현의 머릿속에는 ‘박정희 경제 체제’에 대한 반감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박정희 경제=성장 우선주의’가 부익부 빈익빈, 재벌 특혜, 분배 구조 악화 등을 초래했다고 생각해 온 그였다.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를 구성할 때도 경제 분과 핵심 멤버 대부분이 이정우(경북대) 교수 등 ‘반(反)박정희주의자’들이었다. 박정희가 경제 성장 우선주의를 내세워 장기 독재를 해왔다고 믿어 온 사람들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경제성장’ 담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그가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불쑥 “연평균 7% 성장”을 공약했다. 대체 무얼 근거로 7% 성장을 장담했던 것일까. 대통령이 되고 나서 어느 기회에 노무현은 “이회창 후보가 6%를 공약하기에 즉석에서 1%를 더 얹었던 것”이라고 했다. 어이없이 솔직한 고백이었으나 그만큼 ‘경제 성장’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참여정부의 첫 경제부총리로 내정한 김진표와의 저녁 자리 대화의 한 대목도 경제에 관한 그의 기본 인식을 말해 준다. “다른 것을 다 성공해도 경제에 실패하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기 어렵습니다.”(김진표) “만날 경제, 경제 이야기냐. 나라가 이만큼 먹고살면 됐지, 자주성이나 국가의 품격, 사회보장, 복지, 이런 것도 중요한 것 아니냐….”(노무현 당선자) 일자리 감소가 대통령 변화시켜 취임 첫해, 노무현은 성장 정책에 거리를 두는 경제의 기본 틀을 고수해 나갔다. 설비투자 부진에 대응하기보다는 기업들의 투명 경영 촉구가 먼저였다. 노조의 불법 시위에 참다못해 공권력을 발동했다지만, 참여정부의 기본 노선은 어디까지나 친노조였다. 기업들은 잔뜩 움츠렸다. 정권 초기에 이처럼 재계가 겁먹고 위축된 것은 군사 정권 때 말고는 처음이었다. 반면에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대통령이 든든한 빽이 됐으니 제 세상을 만난 것이다. 이때부터 일기 시작한 반(反)기업 정서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영향을 미친다. 기업 입장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의 찬바람이 여전한데, 새 정권이 “똑바로 하라”며 으름장을 놓으니 겁을 먹을 수밖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기업하기 나쁜 나라’라며 한국을 떠나는 외국 기업도 나왔다. 친노조 정책이 이렇게 강력한 나라에서는 투자할 생각이 없다는 인식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랬던 참여정부가 집권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 일자리야말로 최고의 복지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소득분배 방안입니다. 올해에는 일자리 만들기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습니다. " 2004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노무현의 말이다. 성장을 도외시했던 참여정부로서는 뜻밖의 방향전환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생산성을 뛰어넘는 임금 인상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든지, 재계 총수들을 오찬에 초대해 “(나를) 믿고 용기를 내서 투자해 달라. 최선의 서비스를 하겠다. 노사 문제와 규제 문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말한 것 등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노무현 경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단어들이었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사실 집권 첫해는 정신차릴 겨를이 없었다. 개혁을 외치고 각종 로드맵을 쏟아냈지만 SK 사태에 이어 화물연대, 공기업 파업, 전교조 문제 등으로 허둥댈 수밖에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 첫해를 경험한 참여정부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상식이 허물어졌다”고 스스로 기록하고 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 경제 5년』,134쪽). 2003년의 경제 성적표를 받아든 노무현은 충격이 컸다. 경제가 3.1% 성장했는데 고용이 늘기는커녕 3만 명이 줄었다는 통계가 믿기지 않았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니…. 그러나 참여정부가 몰랐거나 외면했을 뿐, ‘기이한 일’이 아니었다. 산업구조 변화가 몰고 온 회오리였다. 큰 흐름 속에서 보면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의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고용 효과가 큰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물러가고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집약적,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바뀌었으니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다만 고용 감소라는 부작용이 이처럼 심각할지 몰랐던 게 문제였다. 결국 경제 지휘권을 이헌재에게 맡겨서 궤도 수정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구원투수’ 이헌재 기용했으나… 참여정부 경제 정책을 정리함에 있어 노무현과 이헌재의 관계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헌재야말로 참여정부의 모든 장관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었고, 길지 않은 재직 기간 동안 노무현 경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헌재는 알려진 대로 김대중 정권에서 IMF 위기 극복을 주도했던 능숙한 해결사. 실제로 부총리 취임 이후 참여정부 초반의 난제였던 카드대란과 신용불량자 사태 수습, 일자리 대책 등에 솜씨를 발휘했다. 하지만 그의 정책이나 행보는 ‘노무현 경제’를 거스르는 점이 적지 않았다. 명백히 보수 쪽 사람이고 시장주의자다. 노무현도 그 점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2004년 초 정찬용 인사보좌관을 앞세워서 “싫다”는 이헌재를 삼고초려 끝에 경제부총리로 데려왔다. 취임 후 이헌재의 발언이 거침없었던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었다. 그는 취임사에서부터 노무현이 경계해 온 ‘단기 부양책’을 언급했다. " 비록 일시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못 되더라도 당장에 일자리를 늘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과도기적인 연계 정책이 시급합니다. " 청와대의 개혁 세력들로서는 여간 못마땅한 일이 아니었다. 참여정부의 경제 철학 선생 격인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인 이정우는 노골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 성장에 연연해서 개혁의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개혁을 통해 성장을 이뤄야 한다. 성장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개혁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일시적 부양책이나 몇 발짝 못 가서 발병하는 성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2004년 5월 12일). " 이헌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청와대와 여의도에 포진한 386그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 경제발전의 주역을 맡아야 할 386세대가 1980년대 초 대학 시절 정치적 암흑기를 거치면서 경제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2004년 7월, 여성경영자 모임) " 는 말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는가 하면, “한국 경제는 우울증과 무기력에 빠진 환자 같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참여정부의 주역들에게는 죄다 귀에 거슬리는 말이었다. 시장은 헷갈렸다.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참모의 말이 다르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참모들만 다른 게 아니었다. 대통령도 그랬다. 때로는 이헌재의 손을, 때로는 개혁파의 손을 들어줬다. 노무현 경제가 극복하지 못한 이중구조라고 할까.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기용된 이헌재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구체적 내용은 차치하고 정책을 세워도 일사불란하게 펼쳐나갈 수가 없었다. 걸핏하면 청와대나 여당에서 발목을 잡았다. 양도소득세 인하를 비롯해 종합부동산세 입법, 연금을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소위 ‘한국판 뉴딜 정책’ 등 여러 정책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결국 이헌재는 13개월 만에 물러난다. 막판엔 출처 불명의 ‘부동산 투기’ 스캔들로 좌파 언론의 집중 공격까지 받았다. 노무현은 이 부총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해일에 휩쓸려가는 장수를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리다가 놓쳐버린 심정”이라고 했다. 미안했던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참여정부 국정운영 백서』에는 어디서도 노무현 경제의 고민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집권 기간에 대한 자화자찬 일색이다. 부동산 정책마저도. (부동산 정책은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노무현과 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Q : 노무현과의 인연은. A : IMF 외환위기 이후 내가 DJ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할 때 부산에서 대우조선 사태와 삼성자동차 부산대책위원회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노무현을 접촉하면서 호감을 가졌다.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 언론계 출신의 지인과 함께 여러 조언을 했다. Q : 왜 참여정부 두 번째 부총리로 들어갔나. A : 첫해 조각 과정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있었지만 고사했다.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많기도 했고. 이듬해 초에 정찬용 인사비서관 등 여러 사람의 권유로 입각하면서 연말까지만 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Q : 취임사에서 노무현이 금기시하던 단기부양책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A : 나는 경제부총리의 사명이 단기적으로는 시장관리, 중기적으로는 성장과 고용이며, 그다음에 구조개혁의 틀을 만드는 데 있다고 믿었다. 대통령께도 얘기했다. 나는 당시 한국은행이 추정한 잠재성장률 5% 수준을 유지하려면 연간 50만 명 정도 고용이 늘어나야 한다고 봤다. Q : 노 대통령 주변의 개혁파, 386그룹들과 잦은 충돌이 있었는데. A :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오버 액션이 있었다. 386이 경제 공부가 부족하다는 얘기처럼 자극적인 말을 굳이 해야 했나, 생각이 든다. 내가 좀 더 성숙하게 행동했더라면 노 대통령의 경제 성과도 좀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Q : 노무현과 김대중 정부에서 일했다. 두 대통령의 차이점은. A : DJ가 노무현보다는 훨씬 준비도 많았고 생각도 깊었다. 숙성 기간의 차이라고 할까. 노무현은 갑자기 큰 인물 아닌가. 너무 잘하려고 하는데 매몰돼 있었다. 탄핵에서 복귀한 후로는 그런 강박이 더 심해졌다.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그때가 참 좋은 기회였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도 늘려갈 수 있었는데, 개혁 과제에만 집착했던 것이 안타깝다.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20년 전 노무현 탄핵 사유, ‘윤석열 탄핵’ 비하면 경범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8813 고건 대행, 11일 만에 거부권…盧 눈치 봐도 호락호락 안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2154 대통령 호출 거절한 檢총장…3초 정적 후 노무현 한마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7954 “참 나쁜 대통령” 개헌론 역풍…여당조차 반대 “난 정치실패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5780 강금실 “난 ‘죽었구나’ 싶었다”…노무현-평검사 115분 맞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6129 이장규.손병수.고성표.박유미([email protected])

2025-01-21

비누칠도 몰래 했는데 욕먹었다, 튀르키예 목욕탕 '민망 사건'

돈으로 1인분에 2만원꼴이다. 유서 깊은 비단 시장도 있다. 부르사는 오스만 제국 시절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해서 예부터 비단 산업이 발달했다. 코자 한(Koza Han)이란 이름의 비단 시장은 15세기부터 장사를 이어온다. 아내 은덕의 실크 사랑은 이곳에서도 여전했다. 은덕은 신혼여행으로 이스탄불에 갔을 때 보따리장수처럼 스카프를 70장이나 샀던 전력이 있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에게 답례품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보물찾기하듯 예쁜 스카프를 고르던 그 반짝이면서 탐욕 가득한 눈빛을 나는 여태 잊지 못한다. 이번에는 달랐다. 은덕은 코자 한을 두 시간이나 뒤진 끝에 달랑 두 장(1장 약 5만원)의 스카프만 건지고 쇼핑을 마쳤다. 은덕이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후 그날처럼 우울한 표정을 한 적이 없었다. 백종민 [email protected] 아내의 여행 온천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며 더 좋아하게 됐는데, 이 사랑이 앞으로도 꺾이지 않을 거 같다. 온천은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드는 한겨울에 더 만족도가 높다. 부르사의 3월은 최저 기온이 5도를 밑돌 만큼 쌀쌀했는데, 마침 울루다으 동쪽 체키르게(Çekirge)에 튀르키예식 공중목욕탕 ‘하맘(Hamam)’이 있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돔 건물이 하맘의 상징인데,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거품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목욕탕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몸을 씻는 기분이었다. 우윳빛 대리석이 사방에 깔렸고, 거대한 사자상의 입에서 온천수가 쏟아져 나왔다. 수도꼭지는 물론 물을 담는 바가지조차 구릿빛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나 어울릴 법한 대리석 의자에 살포시 앉아 목욕을 시작했다. 한데 어딘가 불편했다. 안타깝게도 하맘에는 내 한 몸 뉠만한 탕이 없었다. 고여 있는 물을 부정하게 여기는 이슬람의 문화 때문이다. 로마 시대의 유산인 남탕에는 거대한 욕탕이 있다는데, 후대에 만든 여탕 하맘에는 물을 담아 놓는 탕이 따로 없었다. 비누칠도 맘대로 하지 못했다. 성기를 타인 앞에서 노출하는 걸 죄악시하는 이슬람 율법 때문이다. 나는 신체의 중요 부위를 수건으로 가린 채 손만 꼼지락 거리며 목욕을 했다. 애석했다. 몸도 못 담그고, 때도 맘대로 못 밀면 대체 어디서 목욕의 쾌감을 얻으라는 말인가. 민망한 사건도 발생했다. 바가지로 물을 끼얹으며 몸 깊숙한 곳을 닦고 있는데, 어느 순간 매서운 눈빛이 느껴졌다. 현지 아주머니가 물을 튀기지 말라며 성을 냈다. 형제의 나라에서 싫은 소리를 들으니 서운함이 배가 됐다. 나는 잔뜩 주눅이 든 상태로 씻는 듯 마는 둥 목욕탕을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했다. 부르사 물은 정말 최고였다. 최고급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바른 듯한 온몸이 매끈했다. 울루다으는 11월 초부터 3월 말까지 눈이 쏟아진다. 해서 천연 설질을 즐기려는 스키어들로 겨우내 산이 붐빈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길다는 울루다으 국립공원 케이블카(9㎞)를 타고 설원의 장관을 누렸다. 발아래로 펼쳐진 침엽수림의 눈꽃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한데 외국인은 3배 가까운 케이블카 이용료를 치러야 했다(튀르키예인 약 1만원, 외국인 약 3만원). 설원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체온이 뚝 떨어지며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하맘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온몸이 노곤해질 때까지 온천을 즐겼다. 김은덕 [email protected] 튀르키예 부르사 한 달 살기 비행시간 : 12시간(이스탄불 공항에서 버스로 2시간 30분 이동) 날씨 : 스키와 온천을 즐기려면 겨울 추천 언어 : 튀르키예어 물가 : 서울의 3분의 2 수준 숙소 : 400달러(약 58만원) 이상(시내 중심, 집 전체)

2025-01-21

굶어 죽을지언정…김홍도가 매달렸던 그 매화

돈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매화 술자리를 열었다는 단원이다. 내일 굶어 죽을지언정 오늘 아름답고 시적으로 놀겠다는, 천상 예인의 면모다. 그가 그때 그 매화를 그렸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단원의 ‘백매’ 한 점이 대구 간송미술관 2전시실 하나를 꽉 채웠다. 지난해 개관전 때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단독 전시돼 인산인해를 이뤘던 그 방이다. 간송미술관이 개관 이래 첫 상설전을 개막했다.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葆華閣)’을 짓고 수집과 연구 기관으로 출발한 이 사립미술관은 1971년 첫 전시 ‘겸재전’으로 세상에 문을 열었다. 이후 1년에 2번 딱 2주씩 전시를 열며 고미술 애호가들을 애태웠는데, 이제 언제든 가서 볼 수 있게 됐다. 대구 간송미술관 전시장 중앙에 자리 잡은 것은 국보 도자기 두 점이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1935년 간송 전형필(1906~62)이 일본인 골동상에게서 2만원을 주고 사들인 고려청자의 대표 걸작이다. 기와집 1채가 1000원일 때였다. 조선 후기 백자의 절제된 화려함을 보여주는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은 파란 청화, 갈색의 철사, 붉은 동화 안료를 한데 사용한 매우 드문 작품이다. 이 두 대표 도자기가 간송이 1938년 주문해 짠 자단목(로즈우드) 진열장에서 자태를 뽐낸다. 일제강점기 간송은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며 가산을 털어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우리 문화재를 사들였다. 두 국보 도자 앞에 청자와 백자 18점이 도열했다. 벽에는 조선 회화를 대표하는 삼원(三園,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삼재(三齋,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의 작품과 선조, 정조, 혜경궁 홍씨 등 왕가의 글씨가 걸렸다. 한글 창제 원리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낭독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 은 개관전 때 그대로다. 다만 종이 유물 보존을 위해 이번에는 정교하게 만든 훈민정음 복제본을 내놓았다. 백인산 부관장은 “서화 유물의 보존을 위해 전시는 (휴일 제외) 3개월 간격으로 교체하게 된다. 이렇게 이어지는 상설전을 통해 한국 미술사의 대강(大綱)을 훑어볼 수 있도록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개관전이 올림픽으로 치면 대표 선수단 입장이었다면, 올해부터는 ‘종목별 경기’에 들어간다. 4월 기획전이 그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초 문 연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전 ‘여세동보-세상 함께 보배 삼아’에는 22만 4000명이 몰렸다. 간송의 장손인 전인건 관장은 “유물의 보호와 쾌적한 관람에 적정하다고 예상했던 17만명을 훌쩍 넘어 긴 줄을 서신 분들께 죄송했다”고 말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국보·보물 가운데 옮겨올 수 없는 석조물 2건을 제외한 40건 97점이 모두 나온 진귀한 전시였다. 봄에는 오랜 보수 끝에 성북동 보화각이 재개관했고, 가을부터 유료 전시로 전환했다. 광복절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미디어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를 시작, 지금도 관객을 모으고 있다. 이 전시는 4월 30일까지 열린다. 전 관장은 “더 다양하고 더 가깝게 더 많은 분께 우리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게 해드리자는 간송미술관의 새로운 방향이 올해부터 본격화된다”고 말했다. 4월에는 용인 호암미술관과 함께 겸재 정선전을 연다. 겸재 탄신 350년이 되는 내년 하반기에는 대구 간송미술관으로 전시를 이어간다. 대구 간송미술관은 대구시가 부지와 사업비 446억원을 국비와 시비로 조달했고,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한다. 3년 단위 계약이며, 입장료 수익은 모두 대구시에 귀속된다. 권근영([email protected])

2025-01-21

혜원 '미인' 떠난 자리에 단원 '흰 매화' 꽃망울…대구 간송미술관 첫 상설전

돈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매화 술자리를 열었다는 단원이다. 내일 굶어 죽을지언정 오늘 아름답고 시적으로 놀겠다는, 천상 예인의 면모다. 그가 그때 그 매화를 그렸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단원의 ‘백매’ 한 점이 대구 간송미술관 2전시실 하나를 꽉 채웠다. 지난해 개관전 때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단독 전시돼 인산인해를 이뤘던 그 방이다. 간송미술관이 개관 이래 첫 상설전을 개막했다.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葆華閣)’을 짓고 수집과 연구 기관으로 출발한 이 사립미술관은 1971년 첫 전시 ‘겸재전’으로 세상에 문을 열었다. 이후 1년에 2번 딱 2주씩 전시를 열며 고미술 애호가들을 애태웠는데, 이제 언제든 가서 볼 수 있게 됐다. 대구 간송미술관 전시장 중앙에 자리 잡은 것은 국보 도자기 두 점이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1935년 간송 전형필(1906~62)이 일본인 골동상에게서 2만원을 주고 사들인 고려청자의 대표 걸작이다. 기와집 1채가 1000원일 때였다. 조선 후기 백자의 절제된 화려함을 보여주는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은 파란 청화, 갈색의 철사, 붉은 동화 안료를 한데 사용한 매우 드문 작품이다. 이 두 대표 도자기가 간송이 1938년 주문해 짠 자단목(로즈우드) 진열장에서 자태를 뽐낸다. 일제강점기 간송은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며 가산을 털어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우리 문화재를 사들였다. 두 국보 도자 앞에 청자와 백자 18점이 도열했다. 벽에는 조선 회화를 대표하는 삼원(三園,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삼재(三齋,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의 작품과 선조, 정조, 혜경궁 홍씨 등 왕가의 글씨가 걸렸다. 한글 창제 원리를 담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낭독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 은 개관전 때 그대로다. 다만 종이 유물 보존을 위해 이번에는 정교하게 만든 훈민정음 복제본을 내놓았다. 백인산 부관장은 "서화 유물의 보존을 위해 전시는 (휴일 제외) 3개월 간격으로 교체하게 된다. 이렇게 이어지는 상설전을 통해 한국 미술사의 대강(大綱)을 훑어볼 수 있도록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개관전이 올림픽으로 치면 대표 선수단 입장이었다면, 올해부터는 ‘종목별 경기’에 들어간다. 4월 기획전이 그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9월 초 문 연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전 ‘여세동보-세상 함께 보배 삼아’에는 22만 4000명이 몰렸다. 간송의 장손인 전인건 관장은 “유물의 보호와 쾌적한 관람에 적정하다고 예상했던 17만명을 훌쩍 넘어 긴 줄을 서신 분들께 죄송했다”고 말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국보ㆍ보물 가운데 옮겨올 수 없는 석조물 2건을 제외한 40건 97점이 모두 나온 진귀한 전시였다. 봄에는 오랜 보수 끝에 성북동 보화각이 재개관했고, 가을부터 유료 전시로 전환했다. 광복절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미디어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를 시작, 지금도 관객을 모으고 있다. 이 전시는 4월 30일까지 열린다. 전 관장은 “더 다양하고 더 가깝게 더 많은 분께 우리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게 해드리자는 간송미술관의 새로운 방향이 올해부터 본격화된다”고 말했다. 4월에는 용인 호암미술관과 함께 겸재 정선전을 연다. 겸재 탄신 350년이 되는 내년 하반기에는 대구 간송미술관으로 전시를 이어간다. 대구 간송미술관은 대구시가 부지와 사업비 446억원을 국비와 시비로 조달했고,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한다. 3년 단위 계약이며, 입장료 수익은 모두 대구시에 귀속된다. 권근영([email protected])

2025-01-20

트럼프 47대 대통령 취임 “미국 황금시대 지금부터 시작”

나라는 다시 번영하고 전 세계에서 존경을 받을 것”이란 말로 운을 뗐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언제나 미국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며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자랑스럽고, 번영하며 자유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는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하고 강하고 훨씬 더 특별해질 것”이라며 “미국의 황금시대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된다”고 단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신뢰의 위기 ▶급진적이고 부패한 기득권층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 ▶불법 이민자 범죄 ▶부실한 재난 대처 시스템 등 미국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열거한 뒤 “지금부터 미국의 쇠퇴는 끝날 것”이라며 “미국 시민들에게 2025년 1월 20일은 해방의 날”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역사적인 행정명령을 연이어 발표할 것이고, 이를 통해 미국의 완전한 회복과 상식 혁명을 시작할 것”이라며 ‘아메리카 퍼스트’를 근간으로 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남부 국경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며 “모든 불법 입국은 즉시 중단될 것이고 수백만 명의 외국인 범죄자들을 돌려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으로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을 물리치고 생활비와 물가를 빠른 속도로 낮추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위기는 막대한 지출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진단한 뒤 “그래서 저는 오늘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 부유한 국가가 될 것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우리 발밑에 있는 액체 황금(석유)”이라며 석유 시추 확대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시스템 개편’ 계획을 공개하며 “우리 국민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외국에 관세와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모든 관세와 세금, 수입을 징수하는 ‘대외세입청(External Revenue Service)'을 설립 중”이라며 “외국에서 엄청난 액수의 돈이 우리 재무부로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치의 회복’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법치주의에 따라 공정하고 평등한 정의를 회복할 것이며 법과 질서를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했다. “오늘부로 미국의 공식 정책상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별만 존재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해서는 ‘힘을 통한 평화’ 기조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 한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군인들이 근무 중 급진적 정치 이론과 사회 실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명령에 서명할 것”이라며 군내 이른바 ‘워크(Woke, 깨어 있다는 뜻) 문화’ 등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는 분위기를 타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함께 “조만간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으로 바꾸겠다”고 했고, 최근 보유권 반환을 압박해 온 파나마 운하와 관련해서는 “미 해군 등 선박은 과도한 요금을 부과받고 있고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이 아니라 파나마에 넘겨준 것(운하 운영권)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다시 한번 부를 늘리고, 영토를 확장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지평을 향해 나아가고 성장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며 “미국인 우주비행사들을 화성에 보내 성조기를 꽂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로툰다에서 취임 연설을 듣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환한 얼굴로 ‘엄지 척’을 했다.   이날 취임식은 추운 날씨 때문에 1985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 이후 40년 만에 실내에서 진행됐다. 취임식장에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트럼프 2기 행정부 내각 주요 인사,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전직 정·부통령 부부, 그리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메타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포함한 빅테크 CEO 등 내외빈 600여 명이 초대됐다.     이날 취임식을 찾은 인파는 크게 두 곳으로 모여들었다. 취임식을 실내에서 생중계로 지켜보기 위한 인파들은 경기장 캐피털 원 아레나로 향했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는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줄이 길게 이어졌다.     또 다른 인파는 원래 행사가 열릴 계획이었던 의사당 쪽으로 향했다. 워싱턴 D.C.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서 남쪽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공항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은 계속 ‘USA’를 외쳤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는 등 평화로운 축제 분위기였다. 취임을 축하하는 대포가 발사될 때 의사당 앞 시민들의 분위기는 최고조로 올랐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시민들은 털모자와 부츠 등을 착용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행사장에 나왔다.     어린 아들과 함께 의사당 앞을 찾은 제이슨은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상식적인 사회로 바꿔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국경을 걸어 잠그고 물가를 안정시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성전환자가 여성 스포츠에서 활동하는 것은 꼭 바로잡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취임식 현장에는 한인들도 여럿 참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인 연방공무원은 “트럼프가 렌트값과 물가를 안정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수장이 공무원 감축을 발표한 것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며 “효율을 늘리라는 경고성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국방부에서 일한다는 또 다른 한인은 “경제가 회복돼 연봉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바람을 털어놨다. 그는 “같은 일을 하는 정부 계약 회사 직원들과 비교했을 때 일반 공무원들이 버는 돈은 차이가 너무 크게 난다”고 설명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산하 선박무역회사 부대표를 지내다 탈북한 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연구원은 취임식을 볼 때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는 “4년에 한 번씩 정권을 이양하고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며 새로운 정책을 펴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모습이 신기하고 새롭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에서는 매번 똑같은 지도자의 신년사,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업적을 선전하는 이야기만 듣는다”고 했다. 아울러 “정파적 갈등이 있지만 대통령 취임식 당일 만큼은 여야가 모두 축하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취임식을 지켜본 한 한인은 “미국이 다시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의회와 캐피털 원 아레나 인근의 식당과 커피숍 등은 모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차량이 통제돼 우버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타지인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도보로 30분 정도를 벗어난 곳의 식당도 만석이었다. 대부분은 ‘미국을 더 위대하게(MAGA)’, ‘트럼프’, 성조기 등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었다. 워싱턴 북서쪽에 위치한 한 식당의 손님들은 TV로 트럼프의 취임식 이후 이어진 행사들을 지켜보며 트럼프가 발언을 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TV 스크린에 트럼프 대통령이 나타날 때를 맞춰 이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영남 기자미국 황금시대 트럼프 대통령 대통령 취임식 트럼프 행정부

2025-01-20

"엄마 사랑해"..신현준, 생전 故김수미 떠올리며 또 '울컥+먹먹' ('짠한형') [핫피플]

바람처럼 많은 분들이 편히 웃으시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재밌고 따뜻한 영화가 되길 소망합니다”라고 남기기도 했다. 여전히 고 김수미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신현준은 “수미엄마가 리시안셔스 꽃을 좋아해항상 생신 때 여러지 컬러로 드렸는데이상하게 이번 생신엔 하얗게 해서 드렸다”고 떠올렸다. 신현준은 “너무 감사하게도 일본에서 25년째 팬미팅 중공항에서 가고있는데 아내한테 전화왔다, ‘오빠 놀라지 말라고 해서 가족일이라 느꼈다”고 운을 뗐다 알고보니 김수미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었던 것. 신현준은 “며칠 전, 꽃이 너무 예쁘다고 고맙단 엄마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 힘이 없어서 괜찮냐니까 괜찮다고 곧 보자고 했는데,돌아가셨다고 해 못 믿었다”며 “검색하니 진짜더라, 차를 돌렸는데 장례식장이 안 정해졌던 때, 나중에 시작도 안 됐는데 엄마 영정사진이 있어서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고인과 ‘맨방의 기봉’이와,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함께 했던 때를 언급한 신현준은 “연기로 엄마라고 하면 진짜 어머니로 느껴졌다, 내 아들 민준이도 여러 이름 중 제일 좋다고 지어주셨던 분”이라 각별함을 전하며 “너무 갑작스럽게 하늘나라 가시니 너무 허전해 드라마 작품하면 잘 봤다고 모니터해준 분인데, 지금 드라마 찍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신현준은 “내 엄마가 돌아가신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날 위로해줬다”며 “특히 최불암 선생님이, 최근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해,수미 엄머랑 똑같이 말씀해주셨다 선생님만 바뀌었지 그 빈 공간을 채워주신 것 감사한 일이다”고 말하기도 했다.특히 신현준은 “선생님과 영화 후반 작업도 많이 해, 가족애 많이 들어갔으면 하셨다”며 “웃기더라도 욕은 빼자고 하셨다시즌2도 꼭 가자고 아이디어 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귀신경찰’이 끝나면 시즌2 예고를 김수미가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현준은 “시즌2 소개하는 느낌 빼야되나 싶었는데 그냥 놔두자고 했다, 엄마 손때묻은거 그냥 다 놔두자고 했다”며 “오랜만에 함께 모자역할 한 역할 ,  많은 분들이 엄마의 마지막 유작, 웃음 선물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며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를 듣던 정준호는 “김수미 선생님 인생이 겉으로 강하고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 같아 , 억척같이 다 해결할 것 같았는데 강한 엄마 속 말 못할 사연 많았구나 싶었다”며 “자식같은 우리가 술이라도 한잔 사드리며 연약함, 고민 들어줘야했는데 그런거 못한 미안함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준호는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웃으면서 ‘나 빼고 술먹네’ 농담하실 것,하늘에서 고민없이, 최고의 배우로 행복하게 잘 사시길 바란다, 이 잔을 김수미 선생님께 바칩니다”고 했고 신현준도 “수미엄마 사랑해”라며 마음을 전하며 또 한번 추모의 뜻을 전했다. 한편, 고  김수미의 마지막 웃음 선물을 예고하고 있는 은 돈 벼락 한 번 못 맞고 때아닌 날벼락 맞은 이후 하찮은 능력을 갖게 된 경찰이 그의 가족과 예기치 못한 사건에 얽히며 벌어지는 패밀리 코미디이다. 고인의 유작으로 , 시리즈를 함께 하며 실제 모자 관계 이상으로 끈끈했던 신현준과 함께 한 패밀리 코미디 이 됐다.  1월 24일 관객들과 만나게 될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김수형([email protected])

2025-01-13

"대국민의 금도로 패전 일본국민 대하자" 바깥뜰서 1시간 강연 [김성칠의 해방일기(2)]

나라들이 서로 바라보며 개와 닭의 소리가 서로 들리는데 사람들은 늙어 죽기에 이르기까지 서로 오가는 일이 없다)”의 구절을 찾으려고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을 들추다가 내가 학병 문제 때 마음의 한쪽 기둥이 되었던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爲此者? 天地也. 天地尙不能久 而况於人乎.(거센 바람이 아침내 가지 않고 쏟아지는 비가 하루를 다하지 않는다. 누가 이러한가? 천지다. 천지의 일도 오래가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랴?)”의 구절을 보고 감개무량하였다. 치안유지회엔 아침에 잠시 나갔다. 부락 강연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있었으나 무좀으로 보행이 곤란하다고 사절하였다. 낮에는 하야사카 씨가 찾아와서 그네들의 답답한 심지(心志)의 일단을 토로하고 자꾸 눈물이 쏟아질 듯 울먹울먹하므로 응대에 난처하였다. 오후의 신문에는 미국군(米國軍) 동경만 진주(進駐)의 보(報). ━ 8월 25일 개고 덥다. [오늘부터 바람이 선선하고 완연히 생량(生涼)한 듯] 이중연(李重淵) 씨가 매일신보를 가져와서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의 내용을 처음으로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밤에는 열여드레 달 밝기를 기다려서 윤태원(尹泰遠) 씨의 바깥뜰에 장평리 1-2구 사람들을 모아놓고 치안유지회의 일원으로써 한 시간 동안 강연하였다. 요지는 1. 너무 기뻐서 흥분하지 말고 오늘서부터 곧 실력을 길러서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라를 만들 일 2. 사사로운 감정을 격발시켜서 동포들끼리 서로 티각태각하는 일 없이 삼천만의 최후의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낙오자가 없도록 할 일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 생각해 보라. 우리들 모두 얼굴이 뜨뜻할 과거를 지니지 않았는가. 오십보이소백보(五十步而笑百步)로 대일(對日) 협력자를 탄하지 말고 잘 타이르고 북돋워서 최후의 한 사람까지 모두 훌륭한 국민이 되도록 하자.] 3. 대국민의 금도로 일본국민에 대할 것 [일본이 여기서 집권(執權)했을 때는 모두 그 앞에 가서 허리를 굽신거리다가 이제 패전국민이 되어서 퇴각하는 그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일이다. 모든 과거의 잘못은 물에 흘려버리고 따뜻한 마음씨로 그네를 보내자. 보따리 둘러메고 물러가는 그들이 아니냐.] 4. 유언비어에 귀를 기울이지 말 일 5. 식량 사정을 잘 살펴서 이 어려운 단경기(端境期)를 웃으며 지날 일 6. 부락치안대를 조직해서 우리들의 마을은 우리들의 손으로 고이 지켜 신정부에 넘길 일 7. 내일부터라도 곧 야학을 열어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 딸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가갸거겨를 익혀서 세계의 문명국민이 되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할 일 8. 일본에 가 있는 조선사람은 5백만이나 되어서 수송관계상 모두 한꺼번에 속히 올 수는 없는 일이니 아들, 조카를 일본에 병정으로 혹은 징용으로 보낸 이들은 너무 조급하게 기다리지 말고 더욱이 날마다 정거장에 나가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애태우지 말 일 9. 40년의 근심걱정을 다 털어버리고 가슴에 벅찬 희망을 안고 살아나가자. 앞으로는 삼천만 동포가 600만 석의 쌀을 먹게 되니 떡을 해먹어도 좋고 술을 빚어먹어도 좋을 것이다. [해설: 필자는 일기 작성을 일단 마친 후 추가로 떠오르는 생각을 상단의 메모칸에 적은 것 같다. 나중의 수정-보완 가능성을 생각한 듯. 이 발표에서는 적당한 위치에 이탤릭체(기울여 쓰기)로 옮겨 놓는다.] ━ 8월 26일 개고 덥다. 연박(硯朴) 가서 신(辛) 씨의 과수원 구경하고 아이들 데리고 비루박달로 고기 잡으러 갔더니 고기는 어제 제천 사람들이 약을 풀어서 다 잡아버렸으므로 없다기에 김한구(金漢九) 씨 댁과 박둔서(朴遯緖) 씨 댁에 놀다 왔다. 이중연 씨 오후 6시 차로 출발. 조선은 미-소(米-蘇) 양군이 점령한다는 경일(京日, 경성일보)의 뉴스. 분할하는 일이나 없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마음속에 빌건만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해설 : 해방 당시 발행되고 있던 신문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는 모두 총독부 발행이었으나 일본어로 나온 경성일보에 비해 조선어로 나온 매일신보는 조선의 관점을 많이 비쳐보였다.] 조필환(曺必煥) 씨 방에서 레코드를 듣노라니 하야사카 씨의 어린 딸들이 와서 듣는 양이, 그리 보아서 그런지 맥이 없어 보이고 한동안 푸르던 서슬에 비기어 어쩐지 눈물겨워 보여, 이도 한 감상(感傷)일까. 정리 김기협 역사학자 김성칠([email protected])

2025-01-09

"소문난 바람둥이" 장률, 고아라의 남자 자처했다 ('춘화연애담')

바람둥이 환(장률 분)과 1등 신랑감 장원(찬희 분)이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청춘사극이다. 극 중 장률은 가상 국가인 동방국 최대 거상의 외동아들 최환 캐릭터를 연기한다. 최환은 출중한 외모와 특유의 능글맞은 성격까지 갖춰 여인이 끊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도성의 유명 상권을 장악하고 있어 돈으로 나라도 살 수 있을 정도라는 어마무시한 재력을 자랑하고 있다. 숱한 소문에 둘러싸인만큼 남다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최환은 자유연애 후 부마 직간택을 선언한 공주 화리에게 가장 먼저 혼담을 청해 또 한 번 장안의 화제를 모을 예정이다. 과연 남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최환이 왜 왕실 직통 공주의 부마 자리에 도전하게 된 것인지, 행보마다 악마의 스타성(?)을 자랑하는 그의 사연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런 가운데 공개된 사진 속에는 이름난 바람둥이답게 심상치 않은 마력을 발산하는 최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귀하디 귀한 재벌의 외아들답게 다채로운 색감의 비단옷과 화려한 장식의 갓끈이 돋보이는 것은 물론 다정한 듯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눈빛은 볼수록 빠져들게 만들고 있는 것. 벌써부터 지독하게 엮이고 싶은 남자, 최환은 과연 공주 화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의 소유자 최환 역으로 활약할 장률의 연기 변신 또한 기대된다. 장률은 그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부터 이중적 면모를 가진 금수저, 날카로운 킬러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제 옷처럼 소화해 냈고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으로 프랑스 칸 핑크카펫을 밟으며 티빙과 의미 있는 인연까지 맺었던 바. 한계 없는 스펙트럼을 보여줬던 장률이 '춘화연애담'에서는 또 어떤 변화무쌍한 얼굴을 드러낼지 기대감이 더해진다. 도성의 인기를 한 몸에 독차지할 마성의 사내 장률의 파란만장한 부마 도전기는 오는 2월 6일(목) 티빙에서 첫 공개되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춘화연애담'에서 공개된다. /[email protected] 유수연([email protected])

2025-01-09

고아라♥장률, 초밀착 스킨십 현장 포착..고자극 로맨스 온다 (춘화연애담)

바람둥이 환(장률 분)과 1등 신랑감 장원(찬희 분)이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청춘사극. 극 중 고아라가 맡은 화리 공주는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아온 덕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왜 안되는데?'를 입에 달고 사는 인물. 첫사랑의 아픔을 딛고 돌연 자유연애와 부마 직간택을 하겠다고 선언, 왕실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과연 화리는 제 손으로 운명의 짝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고 있다. 그런 화리의 부마 후보에 지원한 최환 역은 배우 장률이 연기한다. 최환은 최고 거상의 귀한 외동아들이자 도성 최고의 바람둥이. 돈으로 나라도 살 정도로 부유한 데다가 능글맞고 번드르르한 말솜씨는 저자의 여성들을 홀린다. 이에 최환은 만인의 연인다운 유혹 기술로 화리공주는 물론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홀릴 예정이다. 이처럼 남편을 찾는 화리와 '공주의 남자'를 꿈꾸는 최환의 유쾌한 로맨스가 기대되는 가운데 공개된 티저 포스터 속에는 두 사람의 초밀착 접촉 현장이 담겨 심장박동을 급상승시킨다. 남녀가 유별한 시대, 만개한 꽃 사이로 바짝 붙어 앉은 청춘남녀의 모습이 묘한 설렘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부마 지원자 최환의 갓끈을 당기는 화리의 당돌한 표정과 포스터 속 ‘내 남편은 내가 찾겠습니다’라는 문구가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를 더욱 기대케 한다. 도성의 아이돌 최환이 화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것일지 간택의 결과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처럼 '춘화연애담'은 남녀 유별 시대에 자.만.추(자유로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를 원하는 발칙한 청춘들의 이야기로 아찔한 고자극 로맨스를 예고하고 있다. 과연 평생의 인연을 만나기 위해 온 마음과 몸을 바치는 당찬 청춘들의 종착지는 어디일지 이목이 쏠린다. 왕실의 천방지축 공주 고아라와 도성 최고의 바람둥이 장률이 그려낼 아찔한 청춘 로맨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춘화연애담'은 오는 2월 6일(목) 첫 공개된다. /[email protected] 유수연([email protected])

2025-01-06

[소년중앙] 대한제국 외교의 장 밝혔던 샹들리에가 지닌 특별한 빛은

나라와 동등하게 소통하고자 했던 고종의 의지가 담긴 거죠. 다만 국내외 사정으로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식 연회장으로는 쓰이지 못했고, 각국 외교사절의 폐현(황제나 황후를 만나는 일) 및 만찬 연회장, 국빈급 외국인을 접대하는 영빈관 등으로 사용됐죠. 또 대한제국 2대 황제인 순종이 1907년 7월 이곳에서 즉위식을 올렸는데요. 순종이 그해 11월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후에는 고종이 외부 사람을 만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외교의 장'이었던 돈덕전은 내부 역시 황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화려했다고 전해져요. 한국과 일본의 병합 과정과 전후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책 『조선병합사』에는 돈덕전 내부에 대해 '100평 넓이의 홀에 큰 원기둥 6개가 서 있으며, 대원주마다 금색 용 조각이 새겨졌다'고 나오며, '서벽과 창은 홍색 및 황색금수로 치장해두었으며 옥좌·탁자·교자 등은 금색 찬란했다'고도 적혔죠. 외국인 기록을 살펴봐도 황제의 거처이자 접견실이기도 한 이 궁의 실내 장식은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고 해요. 근대국가로 거듭나고 여러 국가와 동등하게 소통하고자 했던 고종의 바람이 담긴 돈덕전은 1919년 고종이 승하한 뒤 덕수궁과 함께 방치되다가 없어졌는데요. 언제 어떻게 철거됐는지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1920년대 일제에 의해 헐린 것으로 추정하죠. 1933년엔 그 자리에 어린이 유원지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기억 저 너머로 잊히는 듯했던 돈덕전은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이 2015년부터 덕수궁 복원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2017년 돈덕전 권역 발굴조사, 2018년 재건 설계를 거쳐 2019년부터 공사에 돌입, 2023년 9월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죠. 발굴·사진자료를 토대로 벽돌과 타일을 복원하고, 자료가 부족한 내부는 20세기 초 서양 살롱을 모티브로 대한제국 당시 분위기와 비슷한 가구와 조명까지 설치해 100여 년 전 돈덕전을 구현했어요. 특히 100여 년 전 돈덕전 안을 밝히기 위해 특별 주문 제작했을 것이라 추정하는 장식등(샹들리에) 또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여전히 빛을 내는 이 장식등은 단순히 궁궐 안을 밝히는 것을 넘어 당대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을 비춘 특별한 조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고종은 국가와 황실의 상징 문양인 이화문을 넣어 제작한 이 장식등을 통해 대한제국에도 근대의 빛이 피어나기를 염원했을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전기가 일반 시민들이 사는 집까지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어요. 전등 시등회를 보고 놀란 사람들의 모습을 서술한 역사적 사료도 남아있죠. 곽희원 학예사는 "1887년 국내 최초로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전등불을 밝히는 시등회가 열렸는데 참석자들은 깜깜한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진귀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해요. 그 후 가로등이 설치되자 ‘귀신불’이라고 부르며 그 앞을 지나칠 때는 부정(不淨) 타는 것을 막는다고 부채나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렸다고 전해졌죠. 전차가 장안의 명물이었지만 고종황제는 전차의 모양이 상여를 닮았다며 안 탔다고 하니 전기라는 새로운 문물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죠"라고 설명했습니다. 덕수궁에는 1901년부터 전기가 들어왔고 2년 후 궁 안에 독립된 발전설비가 마련됐죠. 초기 여섯 개의 전등을 시작으로 이후 500개 이상이 사용될 만큼 다채로운 전등이 유입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사료를 통해 대한제국이 근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덕수궁 각 건물의 규모부터 바닥재료 등의 정보가 상세히 기록된 책 『덕수궁원안』에도 다양한 조명기구에 관한 내용이 있어요. 특히 전통 건축인 함녕전·덕홍전에 1915년 설치된 조명기구 및 부속품의 종류와 수량 등도 자세히 기록돼 덕수궁 공간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었죠. 이렇듯 전기 도입을 통해 빛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거죠.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며 덕수궁 곳곳에서 시대를 밝힌 조명기구의 양식 변화와 당대 건축 이력 등을 살펴보면 대한제국을 둘러싼 대내외 정세 변화 과정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조명한 전시 '모던라이트(Modern lights), 대한제국 황실 조명' 특별전이 오는 3월 3일까지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려 당시 실제 사용했던 장식등(샹들리에), 서양식 촛대, 석유등, 유리등갓, 부속품 등 근대 조명기구 100여 점을 선보여요. 곽 학예사는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덕수궁의 근대 조명기구에 담긴 역사적 가치와 주권 국가를 지향했던 대한제국의 의지를 되새겨보고 우리 근현대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소개했죠. 1부 ‘대한제국, 빛의 세계로 들어서다’에서는 대한제국의 황궁인 덕수궁에 전등 설비가 마련되기까지의 과정을 전시해 당시 사람들의 전기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어요. 1부에서 주목할 만한 유물은 ‘에디슨 전구’와 ‘덕수궁평면도(德壽宮平面圖)’로 이를 통해 전기가 어떻게 도입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개항 이후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미국에 우호·친선 및 교섭을 명목으로 파견된 사절단)의 건의로 ‘에디슨 전기회사(Edison Electric Light)’가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첫 전등을 밝혔죠. 이어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를 설립해 덕수궁에 첫 전등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연대기적으로 구성해놨습니다. ‘근대의 빛이 피어나다’라는 콘셉트로 마련된 2부 전시는 왕의 어진을 봉안하거나 그리는 장소였던 정관헌, 황실의 도서관이었던 중명전, 그리고 돈덕전까지 대한제국 선포 이후 덕수궁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에 설치된 조명기구를 다뤄요. 곽 학예사는 관람객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유물로 ‘이화문장식등(샹들리에)’을 꼽으며 "1900~1910년경 덕수궁 돈덕전을 장식하기 위해 특별히 미국 에디슨 전등회사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주문 제작한 것으로, 이 샹들리에를 통해 근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의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어요. 이화문 샹들리에는 당대에 발행된 신문 자료 등을 토대로 1904년경 돈덕전 접견실 회랑을 꾸미기 위해 주문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전시실에선 양방향(인터랙티브) 영상을 통해 전등 가지마다 장식된 이화문이 만개해 빛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형상을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죠. 3부 ‘황실을 밝히다’에서는 석조전의 실내 장식과 공간별 특성에 맞춰 다채롭게 사용된 수입 조명기구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오니아식 장식 기둥과 고전적 문양으로 꾸며진 접견 공간에는 ‘화로형 스탠드’ 한 쌍, 탁자나 침대 옆 협탁에 두었던 ‘석유등’이 당시 석조전 내부 장식을 조달했던 영국 메이플 회사(Maple & Co.)의 가구와 함께 배치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대한제국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죠. 근대적 외교 관례를 갖춘 접견이나 서양식 궁정 연회 시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영국산 ‘화형 초받침’도 전시됐는데요. 이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아꼈다고 전해지며, 요정의 불빛처럼 빛난다는 의미로 ‘페어리 램프’로 불렸다고 해요. 이에 착안해 관람객이 요정을 불러내듯 바람을 불면 만찬이 시작되는 체험형 영상이 마련돼 보는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이화문, 궁궐에서 빛나다’라는 콘셉트로 꾸며진 마지막 4부 전시는 덕수궁에서 시작돼 황실이 창덕궁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궁궐 곳곳을 밝힌 이화문 장식 조명기구를 선보여요. 1907년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후, 발전 시설이 갖춰지며 많은 전등이 필요해지자 덕수궁의 조명기구 중 일부가 창덕궁으로 옮겨져 활용됐다고 해요. 당시 창덕궁 전각에는 일본산 조명기구가 다수 유입됐는데요. 구형 유리등갓 같은 비교적 단순한 형태부터 원통형·물방울형·종형·화형(꽃모양) 유리등갓, 금속 장식구와 등갓 모두에 장식을 더해 화려한 트로자리에까지 근대에 유행했던 다양한 조명이 이화문을 달고 궁궐 안팎에 설치됐죠. 창덕궁 대조전 욕실에 달렸던 ‘트로자리에 등갓’과 대청의 대형 장식등(샹들리에) 중앙등에 걸렸던 ‘마쓰다램프’는 각 1점씩 현존한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선포 후 확장·정비 사업을 통해 황제국의 위상에 걸맞은 황궁의 모습을 갖추어 가던 덕수궁은 1904년 4월 14일 밤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에서 시작된 큰 화재로 중심부에 있던 전각 대부분이 불타버렸죠. 덕수궁 대화재 이후 재건되어 새롭게 설치된 함녕전과 덕홍전의 장식등(샹들리에)과 유리등갓, 대한문과 덕홍전의 구형 유리등갓 등도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일본에 의해 강제 합병된 후 일본식으로 재편된 궁궐 전각에는 일본식 벚꽃 문양을 달거나 일제 황실에서 쓰던 것과 비슷한 조명기구들이 들어왔습니다. 다만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조명기구마다 황제의 상징을 장식해 근대국가로서 위상을 드높이고자 했던 노력은 덕수궁의 근대 조명기구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이를 되새기며 돈덕전 로비로 나오면 체험공간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다양한 조명기구를 위치와 용도별로 조합해 덕수궁 내부 공간을 직접 꾸밀 수 있는 체험으로 곽 학예사는 "직접 꾸민 내부 공간 이미지를 본인 휴대전화로 전송할 수 있으니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라며 전시 관람 후 경험해볼 것을 권했죠. '모던라이트(Modern lights), 대한제국 황실 조명' 기간: 3월 3일까지 장소: 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내 돈덕전 관람시간: 오전 9:00~오후 5시 30분(입장 마감 오후 5시,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입장료: 무료(어른 만 25~64세 궁궐 입장료 1000원) 이보라([email protected])

2025-01-05

이준석 "尹, 아직도 유튜브라니…내가 대선 못나가도 되니 하야하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자 “조기 대선에 못 나가도 되니, 즉각 하야하라”고 촉구했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이 유튜브로 아직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윤 대통령의 메시지를 언급했다. 이어 “돈벌이 하려고 아직도 계엄을 옹호하는 행위, 돈만 생기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 것 같은 그들에게 의존하는 정치적 금치산자를 보면서, 비통함을 금치 못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은, 즉각적인 하야”라고 했다. 이 의원은 “3월 31일 전에 조기 대선이 치러져서 이준석이 선거 못 나가도 된다”며 “나라가 무너지는데 그게 무슨 대수인가, 하루라도 빨리 대한민국이 정상화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조국혁신당 윤재관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새해 첫날부터 반성 대신 분열과 선동을 자행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막장이 참으로 경악스럽다”며 “내란도 모자라 내전을 획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변인은 “내란수괴의 체포 영장 집행을 머뭇거리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라며 “국민의 새해 첫날의 바람은 내란수괴 윤석열의 체포와 구속이다. 내란수괴의 막장 드라마를 일분일초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 30분께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24시간 철야 집회를 이어가는 지지자들에게 A4용지 한장 분량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윤 대통령은 메시지를 통해 “저는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며 “새해 첫날부터 추운 날씨에도 이 나리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이 나와 수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나라 안팎의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배재성([email protected])

2025-01-01

‘연봉 2억 수의사’ 영수→‘행시 수석 출신’ 광수, 너드남들 입성 완료(‘나는솔로’)

나라 24번지’에 입성한 솔로남녀의 정체와 첫인상 선택 현장이 공개됐다. 이번 ‘솔로나라 24번지’는 ‘너드남 특집’으로 영험한 사랑의 기운을 품은 듯한 마이산이 위치한 전북 진안에서 펼쳐졌다. 가장 먼저 입성한 영수는 ‘흰 곰돌이상’에 연봉이 2억 원인 수의사였다. 영수는 “아직 낭만을 찾는 걸 수도 있는데 설레는 연애를 하고 싶다”면서 “고양이상을 좋아한다”고 이상형을 밝혔다. 귀여운 이미지에 변색 안경을 끼고 나타난 영호는 “제가 외적으로 좋은 조건이 아닌 걸 알지만, 누가 봐도 예쁜 사람이 좋아서 쫓아다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사랑 앞에선 호구다. 꽃부터 명품백까지 여친을 위해 온갖 선물을 해줬다”며 ‘호뚜라미’ 면모를 과시했다. 다음으로 등장한 영식은 “연애 횟수는 3번”이라며 “연애를 안 한 지 2년이라 연애 감정이 메말라 있는 상태”라고 고백했다. 직후 영식이 ‘솔로나라 24번지’ 입소 중, ‘찐 사랑’을 만나 오열하는 모습이 공개돼 향후 그가 보여줄 불타는 로맨스에 대한 궁금증을 치솟게 했다. 하얀 미니 승합차에서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며 내린 ‘반전남’ 영철은 지난 4월까지 7년간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한 유도 선수였다. 그는 도쿄올림픽, 아시안 게임 등 굵직한 세계 대회를 섭렵했다는 사실을 언급한 뒤, “너무 (운동에) 매몰돼 있다 보니까, 이제는 좀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광수는 ‘나는 SOLO’ 신청 1년 만에 ‘솔로나라 24번지’를 찾았으며,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뒤 5급 사무관에서 새로운 직업으로 변신했다”고 달라진 근황을 전했다. 특히 광수는 과학고-Y대-행시 수석까지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지만, “이직하면서 갈등이 깊어져서 파혼을 했다”며 “당시 마음이 아팠지만, 지나고 보니 제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마지막으로 상철은 “‘극한직업’ 보면 제가 하는 일이 나온다”면서 전국을 돌며 일을 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 그는 “부산에서 대학교를 다니다 여자친구가 수능을 다시 본다고 해서 같이 준비했다. 여자친구의 집 근처 고시원까지 구해서 독서실에서 같이 공부했는데 저만 시험을 잘 봤다”고 ‘전여친’ 따라 재수까지 한 사연까지 털어놨다. 그런 뒤 상철은 “허영심이나 물욕 많은 사람 말고, 말 잘 통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덧붙였다. ‘너드남 6인방’에 이어 솔로녀들도 다채로운 매력과 함께 등장했다. 우선 단아한 매력의 영숙은 “전 머리도, 성격도 무난하다. 그간 자유로울 만큼 자유롭게 살았다. 이제는 사랑에 ‘속박’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밝은 에너지를 풍기며 나타난 정숙은 “솔직한 편이고 재고 따지는 건 성격상 안 맞다. 서로 열정적인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면서, “(월급의) 70% 정도 저축한다. 제일 큰돈 쓴 건 아빠 시계를 하나 사드렸다”고 똑순이 면모를 과시했다. 순자는 작고 귀여운 체구에 ‘초승달 눈웃음’으로 시선을 강탈했다. 순자는 “작년 겨울 21기 광수와 미팅을 한 적이 있다”고 특별한 인연을 소환했고, 직후 21기 광수의 응원 영상이 공개돼 웃음을 안겼다. 하지만 순자는 “연애에 늘 실패한 이유가 ‘채식주의자’여서 그런 것 같다”며 “상대방들이 잘 맞춰주니까 그걸 배려라고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런 뒤, “일과 사랑에 성실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쾌활한 성격의 영자는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라며 “반듯하게 생긴, 착한 훈남 스타일을 좋아한다”며 웃었다. 옥순은 모델 같은 피지컬에 넘치는 자신감으로 ‘퀸’의 강림을 알렸다. 1988년생으로, 특급 동안 비주얼을 과시한 옥순은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이 더 예쁘다. 남자면 네가 날 무조건 좋아하겠지~”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이어 “마음에 드는 남자들을 저한테 대시하게끔 만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현숙은 전남 장성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다는 스펙을 공개한 뒤,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이 꽤 크다. 최소 2명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함께 응원해줄 자상한 남자를 찾고 있음을 알렸다. 이렇게 12명의 솔로남녀가 모인 가운데, ‘첫인상 선택’이 진행됐다. 솔로남들은 마이산을 배경으로 ‘투샷’을 찍어야 했는데, 자신의 1순위와는 다정히 투샷 포즈를 취하는 한편, 2순위에게는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반전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영수는 1순위로 옥순을, 2순위는 정숙을 선택했다. 뒤이어 영호는 정숙을 1순위, 순자를 2순위로, 영식은 순자를 1순위, 현숙을 2순위로 택했다. 영철은 정숙을 1순위, 옥순을 2순위로, 광수는 순자를 1순위, 옥순을 2순위로 꼽았다. 상철은 순자를 1순위, 정숙을 2순위로 지목했다. 그 결과, 솔로남들의 첫인상 선택에서는 순자가 3표, 정숙이 2표, 옥순이 1표를 얻었고, 영숙-영자-현숙은 모두 ‘0표’에 머물렀다. 솔로녀들의 첫인상 선택도 곧장 이어졌다. 솔로녀들은 미리 사진을 찍어 휴대폰에 보관해둔 솔로남의 차에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첫인상 1순위를 공개했다. 여기서 영수-영호-영식은 3연속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해 쓸쓸히 혼자 차에 올랐다. 반면 영철은 순자-영숙의 선택을 받아 감개무량 미소를 지었고, 광수는 옥순-정숙의 선택을 받았다. 직후, 옥순은 코트를 입은 광수의 팔을 슬쩍 터치하는가 하면, “더위 많이 탄다”는 광수에게 “나는 좀 차가워서 뜨거운 사람이 필요한데~”라고 불꽃 플러팅을 날렸다. 또한 옥순은 정숙에게 말도 없이 곧장 조수석에 탑승해 광수에게 “같이 있으니까 더 긴장된다”며 어필했다. 이에 질세라 정숙도 “광수님, 완전 내 스타일”이라고 받아쳐 묘한 긴장감을 형성했다. 마지막으로 상철은 현숙-영자의 선택을 받아 행복한 미소를 터뜨리면서도 묘한 신경전을 펼쳤다. 아울러, 방송 말미에는 첫날밤부터 ‘대세’의 기운을 몰고 다니는 옥순의 특급 플러팅 현장과 함께, 24기의 자기소개가 예고돼 앞으로 흥미진진해질 24기의 로맨스에 대한 기대감을 수직 상승시켰다. /[email protected] [사진] ENA, SBS Plus ‘나는 솔로’ 방송 캡처 강서정([email protected])

2024-12-25

김성은 "'미달이'로 번 , 父 몽땅 날려...중학생 때 가사도우미 일도" ('동치미')[순간포착]

돈을 아버지가 몽땅 날렸다"라고 폭로했다. 1998년도에 아역배우로 데뷔를 정식으로 하면서 '순풍산부인과'로 큰 사랑을 받은 김성은. 그는 "저는 짧고 굵게 활동했다. 3~4년을 광고도 많이 찍고 집에 여유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순풍산부인과' 방송 종료하고 너무 지쳐있고 스트레스도 많이 쌓여서 하고 싶은 것도 하라고 뉴질랜드 유학을 보내주셨다. 잠도 푹 자고 배우고 싶은 거 많이 배우면서 지원을 받았다"라고 풍족했던 과거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김성은은 "3년 만에 급하게 돌아왔다. 아마 아빠가 끝까지 견디셨던 것 같다. 하루도 더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집안 상황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사업이 잘 됐는데 아버지가 사기로 피해를 많이 당하셨다. 새벽 비행기로 급히 인천에 왔는데 저를 데리러 오신 부모님이 좋았던 집에서 반지하로 옮기셨더라"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는 "두 분 상실감과 우울함이 크셨던 것 같다. 저를 내려주고 주무시더라. 중학생 시절이었다. 그게 현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청소부터 시작했다. 필요없는 거 다 버리면서 다 정리를 해서 깨끗하게 만들었다. 주무시는 동안. 그러면서 열심히 살려는 마음으로 살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고등학교 가서는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중학생 때는 엄마가 가사도우미 일을 하실 때 엄마 대신 하기도 했다. 생활력이 저는 강한 것 같다. 기질적으로 강한지 집이 망한 걸 봐서 강해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쭉 살다가 대학 진학을 했다. 대학에 간 해에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다"라고 털어놨다.  김성은은 더불어 "어렵게만 사시다가 그렇게 되시는 바람에 학비가 감당하기 어렵더라. 그래서 휴학을 하고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도 하고 이력서를 써서 여러 직장에서 20대를 보냈다"라며 "열심히 살다가 2018년도에 다시 연기를 할 수 있게 돼서 대학로에서 연극도 하고 지방 공연도 다니게 됐다. 이 때 사석 모임에서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됐다"라고 말해 응원을 받았다. / [email protected] [사진] MBN 제공. 연휘선([email protected])

2024-12-14

“이 시국 공개, 운명” ‘오겜2’ 이정재+新 캐릭터들과 귀환..전세계 히트 예약 (종합)[Oh!쎈 현장]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시즌1의 이정재, 이병헌, 위하준, 공유를 비롯해 임시완, 강하늘, 박규영, 이진욱, 박성훈, 양동근, 강애심, 이다윗, 최승현(탑), 노재원, 조유리, 원지안 등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합류했다.  이정재는 “시즌2에서 기훈의 감정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기훈의 모습이 다른 사람일 정도로 목표가 뚜렷해진 인물로 변화가 된다. 반드시 게임을 멈춰야겠다는 일념 하에 딱지맨을 찾으러 다녔고 다시 게임장에 들어가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연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프론트맨 이병헌은 “시즌1에서 프론트맨은 게임을 총괄하고 진행하는 기능적인 역할로서 존재했다면 시즌2에서는 프론트맨의 전사가 어느 정도 설명이 되고 왜 이렇게 게임에 참여하게 됐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기훈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행동들을 하게 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시즌1 말미에 위기를 맞았다가 가까스로 살아나 돌아온 위하준은 “준호가 살아나서 시즌2에 함께 할 수 있게 돼서 영광이다. 시즌2에서 준호는 처참한 상황을 목격했고 형이 프론트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상황에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서 형사로서 가족으로서, 형을 찾고 진실을 찾고 게임을 멈추기 위해 어떻게 간절하게 달려나가는지를 기대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임시완은 코인(암호화폐) 투자 방송을 하다 잘못된 투자로 자신은 물론 구독자들까지 거액의 손해를 보게 만든 유튜버 ‘명기’로 분했고, 강하늘은 붙임성 좋고 넉살 좋은 성격의 388번 ‘대호’ 역을 연기했다. 아픈 딸을 위해 절실하게 치료비가 필요한 246번 ‘경석’ 역의 이진욱과 성확정 수술을 마치기 위해 돈이 필요한 트랜스젠더 120번 ‘현주’ 역으로 분한 박성훈, 명기의 전 연인이자 잘못된 투자 정보를 믿었다가 거액을 잃은 준희를 연기한 조유리,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게임에 참여한 ‘용식’과 가족을 지키고자 게임에 합류한 ‘용식’의 엄마 ‘금자’로 분한 양동근과 강애심도 눈길을 끈다. 황동혁 감독은 캐스팅과 관련해 “시즌1을 쓸 때만 해도 이 정도의 빚을 지고 이정도의 게임을 참여하려면 현실적으로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그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코로나가 생기고 코인 투자 열풍이 불면서 젊은 세대들이 투자에 인생을 거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경향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시즌2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담아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대거 젊은 참가자들을 많이 기용했다”고 전했다. 시즌2에서는 시즌1과 비슷하면서도 한층 업그레이드 된 세트와 음악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예정. 이정재는 “시즌1 때도 매 게임 세트장이 항상 궁금했다. 처음 세트장을 봤을 때 많이 놀랐다. 다음 게임장은 어떨까 하는 기대가 항상 커졌는데 시즌2도 마찬가지더라. 대본에서 나온 세트장이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증이 많이 있었는데 항상 느낀 거지만 제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 구현되어서 많은 분들이 노력하셨구나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시즌1의 팬이었다는 임시완은 “시즌1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던 시청자의 입장에서 ‘오징어게임’에 참여하게 된 것과 동시에 실제로 이 게임을 하게 된 거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세트장을 접하게 됐을 때, 영희 인형을 실제로 접했을 때의 감격스럽고 벅차오르는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 여러모로 감회가 컸던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게임’의 인기 비결을 묻자 “미스테리한 것 같다. 이게 왜 이랬지 가끔 되묻고는 한다. 다른 것을 제쳐놓고 일단 이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것 같다. 단지 재미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접점이 있었기 때문에 할 얘기를 남겨줘서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싶다”며 “시즌2에서도 다른 전략을 세우지는 않고 최고로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겠다 했다. 이게 재미없으면 뭐가 재미있겠냐는 생각으로 쓰려고 했다. 재미있게 보고 생각해볼거리가 남는 그런 작품을 남기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라고 생각한다 세대와 국가와 인종을 넘어 콘텐츠가 사랑 받는 것은 그만큼 재미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엔터테이닝한 요소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고 답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전국민이 분노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정치적 격변기에 ‘오징어게임’ 시즌2가 공개를 앞두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황동혁 감독은 “이런 시국에 ‘오징어게임’이 공개를 하게 됐는데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모든 분들이 그러셨겠지만 계엄 발표를 믿을 수 없었고 저도 새벽까지 잠을 안자고 티비를 지켜봤다. 엊그저께 탄핵 투표도 생중계를 계속 지켜봤는데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로 온 국민이 거리로 나가야 하고 국민들이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연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한 개인으로도 분노가 일었다”고 밝혔다. 이어 “탄핵이 됐든 자진 하야가 됐든 책임이 질 분이 책임을 지셔서 행복하고 서로에게 도움이되고 축복이 되는 연말을 국민에게 돌려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시국에 공개되는 것은 이것도 ‘오징어게임’의 운명일 거다. 보시고 나면 우리나라와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열과 격변들을 다시 한 번 연결시켜서 보실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다”라고 전했다. ‘오징어게임’이 전세계적으로 메가 히트를 한 만큼 흥행 부담이 없을 수 없을 터. 이정재는 “그런 부담은 항상 있는데 특히 이 ‘오징어게임’은 부담이 상당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저보다도 감독님이 워낙 시나리오 작업을 하셔야 하고 많은 배우분들과 대화를 하셔야 하고 여러가지 일들을 하셔야 하니까 훨씬 부담이 크셨을 것 같다”며 “현장에서도 시즌3까지 동시에 촬영하다 보니까 굉장히 많은 분량을 많이 찍었어야 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듦이 부담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최대한 감독님이 하고자 하는 방향을 따라가려고 연기하려고 했다. 촬영을 그렇게 하다보니까 촬영할 때는 부담감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부담이 다시 확 왔다”고 밝혔다. 황동혁 감독 역시 “부담 많이 된다. 쓸 때부터 부담은 가져왔던 거라. 고민을 많이 한 지점은 시즌1도 캐릭터들이 많이 사랑받았던 것이 흥행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캐릭터 한 명 한 명을 어떻게 잘 살려내느냐 어떻게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드느냐를 제일 많이 고민하고 신경 썼다. 한 명의 캐릭터가 잘 보인다면 시즌2도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즌2를 보시면 시즌3가 빨리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황 감독은 “마음이 여러가지로 복잡한데 어쨌든 저희 작품이 국민 여러분, 전세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오징어게임’ 시즌2는 오는 12월 2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된다. /[email protected] [사진] 박준형 기자 [email protected]   지민경([email protected])

2024-12-08

[아르헨 밀레이 1년][르포] "물가안정돼 희망 보여" vs "돈없으면 죽으란 말이냐"

돈없으면 죽으란 말이냐" 시민들 정부평가 '극과 극'…물가·환율안정은 합격점, 소비 회복은 과제 건설·상업 교민들 '고전'…"이 나라 와서 40년간 이런 어려움은 없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밀레이 대통령은 1년 만에 급등하는 물가를 안정시켰고, 달러 환율도 유지하고 있다. 내년엔 경제가 훨씬 나아질 것 같다" (빅토르·55)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성공적으로 물가를 안정시켰다. 내년에 경기가 회복되면 세금 인하 공약도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 (레안드로·33) "지난 1년은 끔찍했다. 은퇴 후 계획은 틀어졌고, 이 나이에 이렇게 살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미르타·68) "밀레이에게 투표했는데, 실망이 크다. 개혁의 고통은 노동자와 연금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마르틴·35)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취임 1년(12월 10일)을 앞둔 8일(현지시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정부 평가'를 묻는 말에 극과 극의 반응을 보였다. 중·상류층 거주지역인 레콜레타와 카바지토, 한인 도매상 밀집 지역인 플로레스, 온세 지하철역 근처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체로 입을 떼기 전 표정에서부터 밀레이 대통령에 대한 제 생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부 세실리아(60) 씨는 웃음과 함께 "지난 1년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나았다"며 "대담하게 정부 예산을 긴축했고, 고물가와 불경기가 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예고해 어느 정도 대비하도록 한 점도 높이 산다"고 칭찬했다. 베네수엘라에서 회계사를 하다 현재 운전사로 근무하는 빅토르 씨는 "밀레이가 아니었으면, 아르헨티나는 고국(베네수엘라) 꼴이 났을 것"이라며 "현재 베네수엘라에선 월급이 10달러"라고 부연했다. 반면 닐다(70) 씨는 잔뜩 상기된 모습으로 "최악의 정부다. 늙고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느냐"라며 "최저 연금을 받고 있는데 약을 사면 밥을 못 먹고, 밥을 먹으려면 약을 포기해야 한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아르헨티나에서 약을 사려면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해 12배 이상 비싸다는 게 현지 매체들의 분석이다. 아울러, 최근 밀레이 정부는 은퇴자들에게 무료로 지급하던 일부 약 종류를 제한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미르타 씨는 "은퇴 후 다시 구직 활동을 해 일을 하고 있다"며 "(보조금이 줄면서) 연금과 월급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 나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금보다 나빠지면 나빠졌지, 내년에도 좋아질 기미는 하나도 안 보인다"는 배관공의 푸념도 있었다. 교민 반응도 크게 갈렸다. 공공 건설사업 중단과 소비심리 실종 등 여파로 현지에서는 건설업과 상업 종사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의류 판매에 주로 종사하는 교민들은 남반구 한여름인 12월에 '불경기 찬바람'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40대 한인 도매상은 "소비 하락으로 판매는 없고, 천정부지로 오른 공과금과 월세를 버티지 못해 결국 가게를 접는다"며 "이 나라에 온 지 40년이 넘었는데, 이런 어려움은 겪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반면, 정책의 선명성에 기대감을 표하는 여론도 있었다. 한 청바지 도매상은 "짧은 기간 내에 아르헨티나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플레이션을 잡아가는 것 같다"며 "세금 인하 등 사업체 운영에 도움일 될 만한 정책도 조만간 시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email protected] (끝) 김선정

2024-12-07

'유방암 투병' 이경진, 촬영중 청력 이상+호흡 곤란.."숨 안쉬어져" 고백('같이 삽시다')[종합]

돈으로 고생하는게 제일 쉬워요' 이러는데 그소리가 너무 서운했다. 근데 더 큰일을 겪고 나니까 돈으로 겪는 어려운이 제일 쉽긴 쉽구나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10년만 견디면 돼요' 했는데 '나 죽으라고?' 싶었다. 근데 10년이 뭐냐. 몇십년 지나고 나니까 어떻게 견뎠는지. 하나의 밧줄을 붙잡고 대롱대롱 비바람이 불든 태풍 불든 왔다갔다하면서 붙잡고 있었던 그 밧줄만이 나를 구원했던것 같다"고 돌이켜 봤다. 지난 2012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던 이경진은 "인생살이도 그런데 아팠던 사람은 아픈 10년을 뭐에 매달린듯 살았다"며 "사람들이 '건강해졌어요' 하는데 저번에 드라마하면서 갑자기 멀쩡한 귀가 밸런스가 안맞았다. 차에 탔는데 음악소리가 조금 크니까 갑자기 숨이 안쉬어지더라. 무서워지더라. 심장이 이상하고 숨이 안쉬어졌다. 그래서 한 6개월 넘게 병원다녔다. 귀에 밸런스가 안맞는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박원숙은 "스트레스 심해서 그렇다. 그게 메니에르 병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고, 이경진은 "이게 정신적인거라고 하더라. 어지럽다. 못일어난다. 저번에 녹화하면서 그랬다"고 아찔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어 박원숙은 "살다가 보니까 그 상황에서 그걸 피하느라 어디 갔어. 막연하게 얘기하면. 그 상황을 피한다고 갔고, 그 상황을 피하니까 너무 좋았어. 근데 10여년이 지나고 보니 그냥 있었으면 지금이 더 좋았을 일이 있더라"라고 말했고, 이경진은 "나도 그런적 있다. 자기가 쭉 하던걸 사랑하는게 현명한데 우리는 전성기 달리다보면 안좋은 것만 기억해서 여기를 피해서 갔는데 더 나쁜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공감했다. 이후 박원숙은 동생들을 데리고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어린 팬들이 모여 있었고, 열광적인 환호를 쏟아냈다. "'파란나라' 좋아해요", "방송 봤어요"라는 목소리에 기쁨을 드러낸 사선녀는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문희경은 "BTS가 부럽지 않다. 완전 스타다"라고 말했고, 박원숙은 "몸보신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야한다. 건강해야지 이런 대접도 받네"라고 기뻐했다. 이경진은 "세대가 몇 세대가 지나간거냐"고 물었고, 헤은이는 "60년 넘었지. 지금 10살이니까. 손주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이경진은 "걔네들 보니까 우리 둘중 한사람은 인간이 아닌것 같다. 저 아기들 보니까 너무 희한하다 느낌이"라고 신기해 했고, 문희경도 "알아보는게 신기하다"고 놀랐다. 박원숙은 "감사하다. 뒷방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좋은 곳을 걷고"라고 감동했다. 곧이어 사선녀는 근처 벤치에 앉아 함꼐 피크닉을 즐겼다. 혜은이는 "희경이는 연기 할때 악역과 선역중에 어떤걸 주로 많이 했냐"고 물었고, 문희경은 "비슷하게 했는데 사람들은 악한역만 임팩트가 강하니 악역만 기억한다. 착한거 많이 했다"며 "악역할때 뭐가좋냐면 내가 갖고있지 않는걸 연기하니까 스트레스 해소가 되더라. 물도 뿌리고 따귀도 때리고 머리끄덩이 잡고 안해본거잖아. 재밌더라. 사람들이 저보고 평소 성격이 그러냐더라. 평소 성격대로 한것 같다고 했다"고 한껏 몰입한 상황을 전했다. 혜은이는 "경진이는 그런역할 안해봤을것같다. 졸부같은거"라고 물었고, 박원숙은 "얘는 원래 가난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문희경은 "드라마 '세자매' 할 때 누구랑 연기했냐"고 물었고, 이경진은 "'세자매' 통합된건 정윤희, 김영애하고 했다. 내가 막내였다. 그때 내가 인기를 얻았다. TBC감독과 처음해보지 않냐. 정윤희가 식구였다. 너무 차별대우 받았다고 생각했다. 핍박 너무 많이 받았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그러자 문희경은 "저는 드라마 촬영하면서 안될뻔한 일인데 된적 있다. 제가 송윤아 엄마 역할을 했다. 사실 송윤아하고 차이 얼마 안난다. 그 드라마 시놉시스를 봤는데 너무 괜찮더라. 역할이 60대 회장 엄마 역인데 캐릭터 너무 괜찮은데 여자주인공이 송윤아더라. 제가 탐나서 전화했다. '제가 이 역할 할게요 자신있어요. 배우는 나이는 10년 20년 왔다갔다 할수있다. 저를 믿고 캐스팅해라 후회하지 않을거다' 해서 결국 제가 그 역을 따서 했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이를 극복할수있는 계기가 됐다"고 밝혀 감탄을 자아냈다. 박원숙은 "그 일이 하고싶다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이라며 "역할이 이리로갔다 저리로갔다 그러기도 한다. 누가 맡아서 어떻게 해내느냐가 문제다. 가수들도 그렇겠다. 곡이 이리로갔다 저리로갔다. 그런적 없냐"고 질문했다. 이에 혜은이는 "저는 작곡가가 정해져있었다. 다른사람건 못불렀다. 길옥연 선생님이 옛날에는 누구 사단이 있지 않나. 그기에 세샘트리오, 저하고 이예나 있었다. '울지않아요'라는 곡 있다. 그 곡을 세샘트리오가 불렀는데 히트가 안됐다. 선생님이 노래가 아까우니까 너 한번 불러보자 해서 불렀는데 그것도 1위 했다"고 자랑했다. 그런가 하면 네 사람은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손수 만든 잡채를 대접하기로 했다. 이들은 1인 1잡채를 만들어서 평가를 받는 잡채 대첩을 벌였다. 박원숙은 유튜브를 컨닝하다 걸렸고, 이경진은 레시피 컨닝페이퍼를 사용했지만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물이 흥건해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우여곡절끝에 네 잡채가 완성됐고, 마을 어르신들의 투표 결과 문희경이 몰표를 받았다. 문희경은 "혜은이 언니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언니였는데 사실 제 상대라고 생각 안했다"며 "언니들 내가 이런 사람이야!"라고 기뻐했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게 최고란 걸 느꼈다.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잡채에 가장 기본적인 제 손맛으로 했는데 감사하다. 앞으로 기본에 더 충실하겠다"고 시상식급 소감을 전했고,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1등 상품 영덕 홍게를 전달받았다. 같이살이 마지막밤, 박원숙은 "나는 새로운 식구 와서 너무 깜짝 놀랄정도로 감동의 순간이었고 너무 고마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경진은 "나는 2년전에 왔을때는 사람들하고 적응하는게 되게 낯설기도 하고 문득 방송도 보고 그러면서 나 자신도 많이 달라져야겠다는 걸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그런 시간이 됐다. 그래서 언니랑 다시 만나니까 되게 혜은언니도 그렇고 참 따뜻했다. 예전에 감정이 다른 감정으로 많이 바뀌어서 너무 좋았다. 그런 좋은 시간이 돼서 여러가지 즐거웠다"고 뭉클함을 전했다. 문희경 역시 "저는 잘 적응할수 있을까, 워낙 대선배님들이라 걱정했는데 따뜻하고 반겨주시고 대해주셔서 하루가 다르게 정들고. 마지막쯤 되니 울컥하더라. 사람이라는게 이렇게 부대끼면서 살아가면서 새롭게 인연을 맺어가는구나 생각하고 좋은 시간 행복하게 해주셔서 사랑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email protected] [사진] KBS2  김나연([email protected])

2024-11-21

트럼프의 상무장관 지명자, 9·11 테러서 기사회생한 억만장자

바람에 당시 사무실에 있던 직원 중 한 명도 탈출하지 못했다. 뉴욕 사무소 전체 직원의 70%에 해당하는 658명이 사망했고, 희생자에는 러트닉의 동생도 포함됐다. 당시 테러로 뉴욕에서 2천753명이 숨졌는데 거의 4분의 1이 이 회사 직원이었다. 러트닉은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느라 밖에 있었던 덕분에 참사를 피했다. 그가 직원을 잃은 슬픔에 흐느끼는 모습이 전국에 방영되면서 주목받았지만, 테러 4일 만에 아직 사망자를 정확히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종 직원에 대한 급여 지급을 중단해 매정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신 그는 구호재단을 설립해 모은 돈과 자기 재산으로 9·11 희생자 유족에 1억8천만달러를 지원했다. 캔터 피츠제럴드는 전자거래 시스템을 구축한 덕분에 직원을 많이 잃었는데도 업무를 금방 재개할 수 있었다. 이후 러트닉은 회사 재건에 집중했고, 9·11 당시 2천명 수준이었던 직원은 1만3천명으로 늘었다. 러트닉은 금융 중개·기술 기업인 BGC그룹과 부동산 중개업체 뉴마크그룹의 회장도 맡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트닉은 트럼프 당선인과 수십 년간 알고 지냈으며, 뉴욕에서 열린 각종 행사에서 마주치면서 친해졌다. 공화당원으로 등록한 러트닉은 공화, 민주 양쪽을 후원해왔지만, 최근 몇 년 트럼프 당선인과 가까워졌고, 가끔 골프도 같이 쳤다. 그는 2020년 대선 때 트럼프를 위해 모금했으며, 트럼프 당선인이 약 1년 전 러트닉에 전화해 재선을 도와달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트닉은 지난 2년간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자금 모금 단체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또 뉴욕주 자택에서 모금행사를 주최해 1천500만달러를 거둬들이는 등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위해 기부하거나 모금한 금액이 7천500만달러를 넘는다. 트럼프의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 출연한 적도 있다. 러트닉은 관세에 부정적인 월가 금융 재벌들을 상대로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공약을 열렬히 옹호해왔다. 다만 관세는 다른 나라와 무역 협상을 하기 위한 협상수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9월 16일 CNBC 인터뷰에서 관세는 미국 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협상카드"라면서 미국에서 만들지 않는 제품에는 관세를 부과해 가격을 올리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러트닉은 1961년 뉴욕주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일 때 어머니를,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를 잃어 일찍이 자립해야 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1983년 캔터 피츠제럴드에 입사했고 고속 승진해 1991년 최고경영자가 됐다. 자신의 멘토였던 캔터 피츠제럴드 창립자가 임종을 앞둔 상태에서 회사 지배력을 두고 창립자 가족과 권력 다툼을 하는 등 인정사정없는 경쟁자라는 평판도 있다. [email protected] (끝) 김동현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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