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정치인 개인의 정의감이 아니라 국민 이익에 충실해야" [월간중앙]
주식 투자자의 숙원이었다. 이 의원이 민주당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A : “(국회의원이 되기 전) 기후·에너지·환경 분야에서 활동하며 신산업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관련 주식을 매월 적립식으로 샀었다. 그래서 주식 투자에 기본적 이해와 관심은 있었지만, 의원 생활을 정무위에서 하지 않았기에 이후 현황을 잘 모르고 살았다. 이러던 중 금투세 국면에서 고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번 빠듯한 월급을 아껴서 작은 규모로 국장에 투자해왔다는 친구는 ‘한국 주식시장은 너무 돈 벌기 어렵고 취약해 다 탈출하는 상황인데 여기에 없었던 세금까지 도입하면 모르는 내가 봐도 시장이 더 악화될 것 같다. 주식시장을 건강하게 성장시킨 후에 금투세를 시행하면 괜찮은데 왜 민주당은 옳고 그름만을 논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대다수 평범한 국민의 상식적 관점을 이탈해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 “평범한 국민의 상식적 관점을 민주당에 전파하는 역할” Q : 이 의원이 소수의견을 낼 시점만 해도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해야 한다’는 민주당 내 입장이 득세했다. 부담은 안 느꼈나? A : “건강한 정책 토론으로 강하게 부딪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선배 의원들과 얼굴을 붉힐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당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다. 지난 2022년 대선 국면에서도 종부세 완화를 놓고, 급격한 집값 상승과 공시지가 로드맵, 이 두 가지가 겹쳐 1가구 1주택자조차도 대출을 받아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종류의 이슈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 다른 관점의 견해를 내고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나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Q : 금투세가 폐지됐지만 ‘한국 주식시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냉소는 여전하다. 미국 주식이나 코인에 비해 수익률이 처참하다. 이 의원은 최근 유튜브에 출연해 “희망을 못 만들면서 희망을 가지라 하면 안 된다”는 지적과 함께 “국장은 지금 바닥”이라고 진단했다. 두 발언은 언뜻 배치돼 보인다. A : “그냥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만 드리면 허언에 불과하니, 내가 그 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에서 꺼낸 말이었다. 금투세 논쟁에 4개월간 치열하게 뛰어들었지만, 금투세가 유예 혹은 철폐된다고 코스피가 (즉각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Q : 그렇다면 향후 정책 측면에서 어떤 조건이 더 충족돼야 코스피, 코스닥이 적어도 다른 나라 수준만큼은 상승할 수 있을까? A : “금투세 폐지는 주식시장에 ‘폭탄’을 던지지 않는 0단계에 해당하는 노력이다. 그다음 1단계가 상법 개정이다. 상법 개정만 한다고 코스피가 2~3배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소는 다 도망쳤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치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 그 이후에도 합병과 분할의 불공정한 룰을 자본시장법에서 바로잡는 것, 주주를 동업자로 존중해주는 주주환원을 늘리는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한국 주식시장이 이제야 바뀐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그 인식이 시장을 나아지게 할 것이다.” ━ “최상목 대행이 거부권 행사해도 상법 개정할 것” Q : 당초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상법 개정을 2024년 12월까지 처리할 방침이었지만 계엄과 탄핵 정국 탓에 뒤로 밀렸다. 일각에선 상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회의론도 만만찮다. A : “우리가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것처럼, 이제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과정이다. 이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도 내부 논의를 통해 단단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우리는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아주 특수한 계엄 상황을 겪고 있다.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면,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내가 참여한 대정부질문에서 상법 개정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적이 있다. 결국 여당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과 경제계의 우려, 이 두 가지를 이유로 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Q : 그렇다면 민주당의 로드맵은 무엇인가? A : “꼭 필요한 법이면 국회 다수당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는 있다고 본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 한덕수 총리 탄핵 이후 세 번째 사령탑인 최 대행과도 계속해서 갈등의 요소를 쌓아갈 것이냐는 질문에는 고민이 있다. 일단 법사위에서 예정된 프로그램으로 가고 있고, 청문회를 개최할 것이며, 법안 소위 심의도 진행할 것으로 알고 있다. 민주당의 의지는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Q : 윤 정부 역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상법 개정에 긍정적이었다. 왜 선회했을까? A : “지난해 주식시장 개장식에서 윤 대통령은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상법 개정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주주 충실 의무를 넓히는 상법 개정을 자신의 소신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말부터 한경협을 비롯한 재계에서 적극적 목소리를 내자 윤 정부는 합리적 이유 없이 뒤집었다. 우리나라 경제는 아직 재벌의존적 구조다. 이슈가 생겼을 때 시장에 풀어놓고 해결하기보다 정책적 수단마저 대기업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어느 선진국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생겼다.” Q : 일각에서는 재계의 거부감을 희석시켜서 상법 개정을 추동하려면 상속세 개정이 동반돼야 한다는 시각이 비등하다. A : “(상법 개정에 따른 재계의 반발을) 상속세 완화로 대처하는 것은 원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우리나라 상속세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높다. 이에 대해 고민할 시점은 맞지만, 주식시장의 불공정·불건전을 해소해 건강한 시장을 만드는 것과는 별개다.” Q : 상법 개정이 현실화되면 재계는 경영권 위협, 소송 남발에 노출될까 노심초사하는 듯하다. A : “과도한 공포감 조성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주주가 손해 보는지 여부를 신경 쓰지 않고 경영 활동을 해왔는데, 이 자체가 문제였다. ‘이를 리뷰하면 경영 의사 결정이 복잡해지고, 주주가 피해를 보면 소송당하게 된다’고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지금도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우리나라 경영인에게 책무를 부과하는 내용은 많다. 하지만 갑자기 소송이나 기소, 처벌을 당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사법부가 대법원에 의해 확립된 판례인 ‘경영 판단의 원칙’에 근거해 규제와 책무를 경영자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기 때문이다. 상법이 개정된다고 갑자기 엄청난 소송 리스크가 생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Q : 이재명 대표가 상법 개정 토론회에서 “PBR(주가순자산비율) 저평가 기업이면 적대적 M&A가 당연하다”고 말한 것은 오히려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A : “나 같은 정치인도 못하면 다음에 떨어진다. 대통령도 국정운영을 못 하면 탄핵당한다. 경제계는 어때야 할까? 1인 혹은 가족기업이라면 문제없다. 그러나 (주식회사에서)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받아놓고 내 이해관계나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회사 주가를 떨어뜨려 주주에게 피해를 입하고, 성장을 방해한다면 경영권을 뺏겨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한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력이나 시장 점유율이 미국 마이크론보다 높은데 왜 주가는 훨씬 못 가나? 기업 거버넌스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법의 빈틈을 노려 자신의 지분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늘려나가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 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호응 못 얻는 이유 Q : 윤 정부의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고 평가한 맥락은 무엇인가? A : “디테일하게 보면 좋은 내용이 많다. 하지만 시장의 호응이 별로인 것은 근본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장에 투자하는 우리나라 국민이 당하는 ‘약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밸류업만 외치니 앙꼬 빠진 찐빵이다.” Q : 코스피 지수가 2500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하고, 이 의원 등이 구상하는 프로그램들이 잘 진행되면 어느 정도까지 상승을 기대해도 좋을까? A : “(웃으며) 기업 거버넌스만 좋다고 해서 자본시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의 산업구조나 주력산업의 전망, 예를 들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기술을 견인하는 기업들이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경쟁에서 얼마나 빨리 혁신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AI나 해상풍력 같은 분야에서 더 뒤처지면 거버넌스가 아무리 깨끗해져도 주가가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조건들이 충족된다는 전제라면 우리 기업의 잠재력을 고려할 때, 연 10% 상승은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내 의원 임기가 끝나는 2028년 5월까지 코스피지수 4000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 ‘다름이 무심하게 존중되는 사회’ 최근 이 의원은 SNS에 ‘다름이 무심하게 존중되는 사회’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 이슈가 터졌을 때, 이 의원은 “‘결혼과 연애, 출산 같은 고도의 사적 영역에서 개인의 선택에 대해 우리 사회가 윤리적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면 너무 숨 막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목소리를 냈다”고 밝혔다. 결은 다소 다르지만,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표결에서도 이 의원은 당내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제대로 토론하지 못했는데 그냥 당론으로 정해졌다고 맹종하는 것은 저를 뽑아주신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일인 것 같았다”고 이유를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이 스스로 규정한 정체성은 “정당에 소속돼 정치하는 사람”이다. “정당에 소속돼 정치한다는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노력을 하겠다는 의미다. 때로는 나도 다른 사람한테 설득되겠다는 다짐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의원의 활동 반경이 어디까지인지는 민주당의 ‘민주 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볼 수도 있다. 인터뷰 말미에 이 의원은 “부를 창출하고자 하는 국민의 욕망을 죄악시하면 안 된다”며 “부에 대한 욕구가 공동체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물길을 잘 설계하는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좋은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그렇기에 정치인의 판단 기준은 “나의 정의감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로펌 변호사가 환경운동가를 거쳐 정치에 투신한 이유에 대해 이 의원은 “정치는 비효율적이지만, 그 외 다른 도구가 없으니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쨌든 필요한 도구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꼭 나여야만 한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하지만, 누군가가 충실과 열심을 다해서 그 도구를 사용하면 효과와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이 의원은 나직하지만 또렷하고, 담담하게 덧붙였다. 녹취 정리 우준성 월간중앙 인턴기자 김영준 월간중앙 취재팀장 [email protected] / 사진 최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