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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 아닌 계획살인 가능성" 하늘이 아빠 부검 동의한 이유

뭍은 하늘이 물통은 트라우마" 김씨는 하늘이 발견 당시 상황도 거론했다. 그는 "일찍 발견했더라도 하늘이가 (흉기에 찔려) 이미 별이 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조금만 일찍 찾아줬으면 어땠나 하는 생각도 든다"라며 "하늘이가 쓰러져 있던 당시 생생한 장면을 본 할머니는 앞으로 어떻게 사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피에 묻은 하늘이 물통과 가방 등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트라우마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김씨는 "시청각교실 물품보관소에서 가해 교사가 하늘이 할머니와 마주쳤을 때 살아있던 것으로 봐서 범행이 발각되자 자해를 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라고도 했다. 하늘양 축구와 장원영 좋아해 김씨는 또 "하늘이는 평소 축구와 아이돌 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과 축구를 좋아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하늘이가 대전에서 아이돌 그룹 아이브 콘서트 하면 보자고 해서 약속했는데, 그 꿈은 이룰 수 없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이어 "이달말께 프로축구 대전시티즌 홈 개막전을 하늘이와 같이 관전하러 가기로 하고, 하늘이 이니셜이 있는 유니폼을 장만했는데 이제 입지 못하게 됐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씨는 빈소에서 하늘이가 입을 유니폼도 보여줬다. 김씨에 따르면 하늘이 동생은 하늘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생이라고 했다. 김씨는 "집안 여건이 안돼 이사하기도 어렵다"라며 "하늘이 동생이 언니가 다니던 학교에 입학할 텐데 정부에서 언니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하늘이 동생은 언니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고 "앞으로 화장놀이는 누구랑 하냐"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김씨는 "하늘이 동생 생일은 2월 9일이고 하늘이는 2월 10일 세상을 떠났다"며 "앞으로 하늘이 동생 생일 파티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씨는 이어 "하늘이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다"라며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은 반드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김씨는 "다시는 또 다른 하늘이가 나와서는 안 된다"라며 "하늘이를 위해 10초만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마치며 "하늘아 사랑해, 하늘아 미안해"라고 했다. 김방현.오욱진([email protected])

2025-02-11

[중앙 시조 백일장 - 1월 수상작] 낱말 순장殉葬

뭍으로 올라간다 차하 서쪽을 볶다 이연순 굽은 등의 노모차를 들판이 끌어당겨 참깨 몇 단 옆에 두고 한숨을 터는 동안 금 새 온 저녁노을이 낱알을 걸러준다 가벼운 바람 앞에 쭉정이로 쌓인 오늘 백발이 된 시간이 힘없이 날아갈 때 서쪽은 빈 몸인 채로 젖은 몸을 볶아낸다 이달의 심사평 사람마다 가슴 한 켠에 크고 작은 소망 하나쯤 품어보는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 첫 달의 중앙시조백일장 응모 현장은 뜨겁다. 소중하게 키워온 타자의 시심과 마주하는 것은 기대와 설렘을 동시에 맛보지만,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에 따른 무거움이 크다. 새해라서 그런가, 이달에는 만고불변의 시적 명제인 어머니에 대한 글이 유난히 많았다. 이달의 장원 작품으로 최광복씨의 ‘낱말 순장殉葬’을 올린다. 언어 예술이 우리의 이성에 호소하는 양식이 아닌 우리의 감정에 가 닿아야 하는 것이라면, 어머니의 한 생이 담긴 일기장만큼 좋은 소재도 드물 것이다. 자칫 단순한 정서 토론에 그칠 수 있는 주제를 중층적인 의미가 배어나도록 유기적으로 직조한 시적 구성이 돋보였다. 군더더기 없고 완성도 높은 글이라서 쉽게 합의에 도달했다. 차상으로는 최애경씨의 ‘그녀의 바다’를 선했다. 자맥질 뒤에 내뿜는 길고 가느다란 숨비소리가 피리 소리와 같아 “참아온 숨으로 짚어야 음 하나씩이 풀린다”라는 표현미가 인상적이다. 곡진한 생의 기미를 읽어낼 줄 아는 것은 언어를 부릴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라 하겠다. 특히 바다에 청춘을 바친 사람의 삶이 잘 드러난 둘째 수는 사려 깊은 성찰에서 오는 사유를 리듬에 실어 잘 전달하고 있다. 차하로는 이연순씨의 ‘서쪽을 볶다’를 선했다. 계절이 가면 낱곡도 영글어 수확의 노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푸른 시절을 지나면 허리가 굽는 시절에 닿는다. 노년의 노동을 자연물에 버무려 포착할 줄 아는 시선과 무리 없는 소통을 통해 삶의 비의를 무겁지 않게 담아내고 있는 점을 높이 샀다. 심사위원 정혜숙·강정숙(대표 집필) 초대시조 박달나무 꽃피다 문순자 박달나무 박달나무 긴 주걱 따라가면 밥 달라 밥 달라는 예닐곱 살 구엄바다 무쇠솥 처얼썩 철썩 휘젓는 어머니의 노 제천장 좌판에서 그 주걱 또 만났네 한세월 거슬러온 박달재 고갯마루 아버지 낮술에 묻어 ‘희망가’도 따라왔네 오늘은 김장하는 날, 친정집은 잔치마당 젓갈이며 고춧가루 세상사 휘젓고 나면 한겨울 긴 주걱 끝에 덕지덕지 피는 꽃 ◆문순자 199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시학젊은시인상, 한국시조작품상, 노산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파랑주의보』 『아슬아슬』 『어쩌다 맑음』 100인 선집 『왼손도 손이다』 제주 애월 “구엄바다”는 시인의 고향인가 보다. “밥 달라는 예닐곱 살” 칭얼거림에 박달나무 주걱은 “어머니의 노”가 된다. 파도를 끌고 와 “무쇠솥”에 쏟아 붓고 “처얼썩 철썩” 노 젓기는 밥이 끓어 넘치도록 부르는 어머니의 땀 젖은 노래로 상상해본다. 박달나무 주걱을 제천장날 또 만나게 된다. 목청을 뽑아가며 “박달재”를 넘는 “아버지” 손엔 고등어 한 손, 줄줄이 사탕이 들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시대는 아득히 멀어졌지만 낮술 묻은 “희망가” 한 소절은 엄동설한(嚴冬雪寒) 우리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박달나무 주걱은 “김장하는 날” 또다시 등장한다. 낮게 앉아 짜고도 매운 세상 버무려가며 한평생 보통으로 사는 일도 시인의 시 한 편처럼 아름다운 일 아닐까. 시조시인 이태순 ◆응모안내 다음달 응모작은 2월 18일까지 중앙 시조 e메일([email protected])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등단하지 않은 분이어야 하며 3편 이상, 5편 이하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02-751-5311

2025-01-22

[멕시코이민 120주년] '눈물의 애니깽'에서 이젠 '비바 꼬레아'

뭍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들은 곧바로 기차와 배로 이동해 유카탄 프로그레소항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10∼25명씩 무리로 나뉘어 메리다의 에네켄 농장에 배치됐다. 에네켄은 날카로운 잎을 가진 선인장의 일종이다. 에네켄은 당시 수요가 많았던 선박용 로프의 재료였다. 한인들은 이르면 오전 4시부터 일몰 때까지, 여름 한낮 기온 4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 속에서 에네켄 잎을 자르고 섬유질을 벗겨냈다. 얼굴이 검게 타고, 가시에 찔려 손에서 피가 나기 일쑤였다. 임금 체불에 임대주택과 식량도 직접 구입해야 했다는 게 당시 상황을 연구한 역사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황성신문은 1905년 7월 29일자 사설에서 "조각난 떨어진 옷을 걸치고 다 떨어진 짚신을 신는다", "한국 여인들의 처량한 모습은 가축같이 보이는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실정", "농노들의 그 비참한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도다" 등과 같은 비탄 섞인 글로 당시 한인들의 처참한 일상을 폭로하기도 했다. 계약 기간 종료 뒤에도 이주민들은 일제 치하에 놓인 고국에 돌아가기 어려웠고, 대부분 멕시코 전역으로 흩어져 정착하는 삶을 택했다. 일부는 멕시코 주민과 결혼하며 현지화했다. 1세대 이주 한인 중 270여명은 1921년 쿠바 사탕수수 농장으로도 넘어갔다. 이들은 현재 아바나와 마탄사스 등지에 사는 한국계 1천100여명의 선조다. 멕시코 이주 한인들은 '고생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실현하고 정체성 수호를 위해 한글학교를 설립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친 한편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해 모국에 보내기도 했다. 옛 국가보훈처(국가보훈부)에서 발행한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조사 보고서: 멕시코, 쿠바'를 보면 유카탄반도 한인들은 농장 계약 만료를 앞두고 대한인국민회의 메리다 지방회를 설립해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했다. 무관 양성기관인 숭무학교(崇武學校)를 세워 군인을 양성하기도 했다. 현재 멕시코에는 이들의 후손 3만여명이 살고 있다. 세대를 거듭하며 외모나 언어는 현지화했으나, 한인후손회를 조직해 활동하거나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즐기며 뿌리를 기억하고 있다. 2022년 '데센디엔테스(Descendientes. 후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후손'이라는 제목의 23분 분량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멜리사 몬드라곤 감독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후손들은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진 매우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성장했다고 봐야 한다"며 "한인 후손들이 선조의 슬픔을 공유하며 멕시코 내 공동체로 자리 잡은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현재 후손들은 5세대까지 이어졌다고 한인후손회는 전했다. 3·4세 후손 중에는 상원 의원(노라 유)과 주 대법원장(리스베스 로이 송)을 지낸 사례도 있다. 후손들은 한국 사회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며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각종 동포 간담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며 후손들의 바람을 전달하는 마르타 김 멕시코시티 한인후손회장(전문의)은 "선조들의 희생을 기리고 후손들이 더 단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후손들은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현지인의 높은 관심을 기반으로 양국 간 교류가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분석 자료를 보면 중남미 지역 콘텐츠 시장은 2021년 이후 6년간 연평균 예상 성장률(6.63%)이 전 세계 평균 예상 성장률(5.19%)을 웃돌 것으로 관측됐는데, 특히 멕시코 내 한국 문화 소비 의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은 올해 한인 이주 120주년 기념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재외동포청과 국가보훈부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요청했다. 또 한편으로는 한인 후손에 대한 전수 현황 조사를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현지에서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있는 유카탄주 메리다를 비롯해 캄페체주 캄페체가 5월 4일을 '한국의 날'로 지정해 기리고 있다. 유카탄주 정부 차원에서도 같은 날을 '한국의 날'로 기념한다. 2021년에는 멕시코 연방의회가 특정 국가 기념일로는 최초로 '한인 이민자의 날'을 지정했다. 이처럼 멕시코에선 이주 120주년을 맞이한 한국인들의 족적을 기리고, 한국과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려는 노력이 한 해 동안 이어질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끝) 이재림

2025-01-04

[발언대] 어머니의 한(恨)과 북한군 파병

뭍은 형을 생각하며 “얼마나 옷이 젖을까?” 괴로워하셨고, 눈 오는 겨울날이면  “나는 방에서 편안히 지내는데 너의 형은 뒷산에서 얼마나 추운 눈보라를 맞으며 누워있을까?”하며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는 것이 어머니의 일과였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고 일생을 지낸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북한군 1만여 명이 우크라이나 쿠르스크 지역에 러시아군의 총알받이로 파병됐다는 소식이다. 너무나 한심스럽고 참담한 심정이다. 6·25 전쟁 당시 김일성의 남침으로 국군 사상자가 50만 명이 넘었고, 북한 인민군도 6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렇게 많은 젊은이가 제대로 인생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희생되었다는 것은 잊지 못할 역사의 참극이다.      지난 1989년 3월 평양을 방문해 북한이 자랑하는 ‘능라도 체육관’ 건설 현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앳돼 보이는 인민군 병사들이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본 인민군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허름한 군복에 체격은 왜소했다. 그들의 나이가 18~21세 정도인데 남한의 또래 젊은이보다 체격이 훨씬 작았다. 체격이나 얼굴 모습은 한국의 중학교 3학년에서 고 1학년 정도의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한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수줍고 약간은 두려워하는 듯한 순진하고 어린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북한 방문 당시 가까이서 보았던 순진하고 앳된 인민군 병사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동족이라는 연민 때문일까?  그들도 사랑하는 형제자매가 있을 것이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부모가 있을 것 아닌가.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대신해 아직 피어나지 못한 우리 동족 젊은이들이, 김정은 체제 유지를 위해 희생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지방으로 끌려간 북한의 어린 병사들의 어머니들도, 나의 어머니처럼 가슴에 피멍이 드는 한(恨)을 품고 사는 삶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영송 / 한미문화교류재단 회장발언대 북한 어머니 한동안 어머니 인민군 병사들 우크라이나 쿠르스크

2024-11-05

외래종 동식물 급증…조지아 생태계 위협

뭍게(블루크랩), 등검은말벌, 칡덩굴 등 외래종 동식물이 급격히 늘면서 조지아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   주 천연자원부(DNR)는 최근 플로리다 등 따뜻한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블루크랩이 처음 조지아 해안가에서도 발견됐다고 밝혔다.   애틀랜타저널(AJC)에 따르면, 이 블루크랩은 해안선과 접한 주택가에서도 수차례 목격되고 있지만, 유입 경로와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국은 이 게가 해안 곳곳에 땅 구멍을 파고 있다며 이로 인한 생태계 위해성을 지속적으로 살필 방침이다.   기후 위기가 심화되고 타 지역과의 인적·물적 왕래가 잦아지며, 외래종에게 토종 생태계가 위협받는 일은 조지아에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가을 사바나 인근 12개 지역에서는 미 전역에서 처음으로 꿀벌을 잡아먹는 등검은말벌이 출몰해 조지아 농무부가 긴급 박멸 작업에 나선 바 있다. 또 조지아 159개 카운티 전체로 퍼져나간 아르마딜로도 질병 전염 등의 위험으로 인해 최근 유해 동물로 지정됐다.   동물뿐 아니라 외래 식물도 골칫덩이다. 대표적인 작물은 '남부를 집어삼키는 덩굴'로 알려진 칡이다. 칡은 19세기 말 관상용으로 일본에서 수입돼, 토양 유실을 막거나 소 먹이풀로 쓰이며 분포가 확대됐다. 그러나 강한 생명력으로 동남부 지역을 뒤덮으며 2000년대 들어 연방 유해 수종으로 지정됐다.   AJC는 "오늘날 칡은 조지아, 앨라배마, 테네시를 비롯해 740만 에이커의 동남부 지역을 뒤덮고 있다"고 그 심각성을 밝혔다.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조지아 외래종 조지아주 천연자원부 신규 외래종 조지아 앨라배마

2023-12-26

[이 아침에] 바다의 빛, 바다의 울음

뭍 쪽으로는 해송(海松)과 삼나무들이 촘촘히 도열해 있고, 아래로는 모래밭이 곡선으로 휘어지며 끝없이 달리고 있었으며, 육지의 가장자리는 바다의 혀가 부단히 핥아서 보얗게 씻어주었다. 그 위의 광활한 창공을 사다새와 가마우지, 갈매기, 비둘기, 제비들이 무정형으로 이리저리 바쁘게 날아다녔다. 큰 떼를 지어 군무를 춰도 서로 부딪지 않으니 자유와 질서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관이었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파도 부딪는 소리와 물결 이는 소리,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정교한 교향곡이거나, 불협화음이 뒤섞여 이루는 웅장한 화음처럼 들렸다. “신의 작품이다” 라는 탄성이 입안에서 우물거렸다.       샌디에이고 쪽에서 샌프란시스코 방향으로 순양함급의 군함 한 척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검고 큰 선체에 여러 개의 포신을 사방으로 겨누고 있어서 괴물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망막에 닿자 시야는 급변해 군함색으로 물들고, 푸르던 바다의 색깔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하늘에서는 빛의 향연이, 바다에서는 검은 해신의 유령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거실로 돌아와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흉측한 어둠 속에서 띄엄띄엄 작은 불빛들이 가물거렸다. 밤바다의 풍랑과 무서움을 이겨내는 인간들의 의지가 아닌가. 그 형상 위에 동방에서 바다를 건너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존재, 그 삶의 궤적이 겹쳐졌다. 내면에 잠재해 있는 나의 작은 세상은 바다의 빛깔과 바닷소리의 변주 속에서 흔들리는 작은 조각배였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이 아침에 바다 울음 뉴포트코스트 배산임수 바닷가 경관 방송사 특파원

2023-07-11

[삶의 뜨락에서] 나에게 문학은

뭍으로 나온 물고기가 물을 만나 신나게 바다로 헤엄쳐나가는 과정이었고 이 과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 당시 나의 우울증은 빈둥지 증후군에서 시작되었다. 아들딸이 대학으로 떠나고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계속 구겨지고 있었다. 좋은 차, 좋은 집 그리고 내가 그토록 선망했던 유럽 여행, 파리·런던을 혼자 누비고 다녀도 가슴 속은 더욱 비워져만 갔다.     그러던 중에 한 사건이 터졌다. 2004년 10월 21일 연중행사인 베어마운틴에 단풍 구경을 갔다. 유난히도 찬란했던 가을 햇살, 적당히 기분 좋게 간질이는 소슬바람, 그리고 오색영롱한 단풍잎들이 절대자의 지휘봉 아래 축제의 향연을 열고 있었다. 그 눈부신 광경에 나는 숨이 막혔고 말문조차 막혔다. 그 감동과 감흥을 표현할 말을 잊었다. 아니 난 아예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난 집에 와서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가슴 속은 터질 듯이 무언가 꽉 차 있었는데 말로도, 글로도, 그림으로도 표현할 방법을 몰라 넋 놓고 울었다. 밤늦게 난 동양화 물감을 풀어 그 마법의 색채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붓을 놀렸다.     그 해 그렇게 힘든 겨울을 맞고 2005년 2월 남편 생일날 학연으로 알게 된 최복림 시인이 우리 집에 오셨다. 그때 최 시인이 나를 문학 교실로 유인(?)하셨다. 그렇게 나와 김정기 선생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미국 생환 28년, 한국말도 글도 어눌했던, 그렇다고 영어에 능수능란했던 것도 아닌 디아스포라의 고통과 아픔을 다시 한번 겪어야만 했다. 나의 한글 실력은 1977년에 멈췄고 오히려 퇴화한 상태였다. 말도 글도 쓰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김정기 선생님의 가르침은 그 당시 나에게 생명수였다. 미국 직장과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한국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선생님의 강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큰 노력과 준비과정이 필요했다. 우선 잃어버린 내 한글 실력을 1977년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또 1977년부터 2004년까지의 공백 기간도 메꾸어야만 시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현대 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김정기 선생님의 전공이 현대 시임을 나는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다. 김영랑, 서정주 시인들은 한국 문학의 역사이자 고전이다.     세상은 계속 진화한다. 역사를 공부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노력이 현대인의 몫이다. 선생님은 항상 트렌드를 읽으신다. 예리하신 촉으로 우리를 채찍질하시고 사랑의 매도 서슴지 않으신다. 비록 늦게 시작한 문학 공부이지만 나에게 생의 활력과 기쁨을 불어넣어 주신 김정기 선생님께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람은 꿈을 갖고 산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있다. 해야 하는 일로 난 간호사를 택했고 만족한다. 생의 중반을 넘어서 진정 내가 하고 싶고 행복할 수 있는 일로 난 문학을 택했다. 내 몸 안에는 항상 문학에 대한 갈증과 열정이 있었다. 줄탁동시! 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안팎에서 새끼와 어미 닭이 동시에 서로 쪼아야 병아리가 부화한다는 뜻이다. 김정기 선생님은 나에게 어미 닭이시다. 나에게 문학의 매력은 공부하면 할수록 더 어렵고 닿을 듯 닿을 듯하면서도 다시 달아나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이다. 아니 어쩌면 오아시스와 같아서 계속 찾아가야만 하는 여정이 아닐까.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문학 문학 교실 중앙일보 문학 한국 문학

2023-01-27

[삶의 뜨락에서] Lighthouse

뭍은 속옷을 가지고 왔습니다. 유방조직검사 결과는 초기 유방암으로, 유방암이 유관 내에 국한되어 이론상으로는 유방암이 겨드랑이의 임파선이나(국소전이) 뼈 같은 곳으로(원격 전이) 퍼질 수 없는 초기 유방암으로(DCIS: Ductal Carcinoma In Situ) 우리가 유방암 0기라고 칭하며 거의 100% 완치가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유방 X-ray(mammogram) 결과는 왼쪽 유방 거의 전체 여러 군데에 0기 암이 의심되는 석회질(cluster of calcifications)이 보여 왼쪽 유방 전 절세술이 필요했습니다. 뜻밖에도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저는 수술 받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표정에서 암에 대한 공포나 치료하는 의사에 대한 반대감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약 2개월이 지난 후 누나의 소식을 들은 그녀의 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되시는 분께서 뇌종양으로 여러 번의 뇌 수술 후 1년 전 돌아가셨다는 것과 현재 Lighthouse에서 일하고 있으며, 자녀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개월 후 그녀는 수술을 결심하여 왼쪽 유방절제술과 감시 림프절 검사를 하게 되었으며, 유방 재건술은 환자가 원치 않았습니다. 수술 후 결과는 유방암 0기로 방사선 치료나 항암 화학 약물 치료는 필요하지 않았으며 항호르몬 요법만이 적용되었습니다. 수술 후 방문에서 그녀가 일하는 Lighthouse가 바닷가의 등대가 아니고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기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 그녀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은퇴하여 Lighthouse 관련된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었으며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또한 맹인 환자의 가정방문과 수술 상처 치료에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고는 했습니다. 그녀는 비디오로 촬영한 조카 손자와 노는 모습을 셀폰에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따뜻한 햇볕이 묻어나는 아침 막 하루를 시작하는 젊고 장난기 있는 한 젊은 할머니를 보는 듯했습니다. 사랑하던 반려자를 잃거나 신체의 일부분을 잃거나 혹은 평생 하던 일에서 은퇴한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 밖에도 우리가 살아야 할 많은 의미와 또한 행복할 수 있음을 종교의 믿음 또는 성실한 생활을 통하여 찾고 보람된 여생을 보낼 수 있음을 봅니다.   40년간 아침 4시 반에 기상하여 오후 6시까지 하던 외과 의사의 일에서 나는 지난 6월 말 은퇴하였습니다. 수많은 엽서와 “Welcome to the New Chapter of the Life”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으로부터 제외되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지만 남은 인생을 위해 보람된 일을 찾는다면 더욱 아름다운 일입니다. 수줍고 샛노란 빛깔로 봄을 깨우고 언제 지는지 눈치채기 어렵게 푸른 잎으로 늦봄을 맞이하는 개나리 같은 씩씩함으로 은퇴를 맞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갑제 / 외과 의사삶의 뜨락에서 lighthouse 초기 유방암 현재 lighthouse 유방암 0기

2022-09-29

[이 아침에] 똥 밟는 이야기

뭍으면 처치 곤란이다. 요즘은 똥 밟는 일이 잘 안 일어나지만 시골에 살 때는 자주 밟았다. 땅 내려다 보지 않고 천방지축 촐랑대며 나비나 코스모스, 샛노랗게 익은 탱자나무 쳐다보고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흉내내다 말똥 소똥 개똥 새똥 닭똥 애들 똥을 자주 밟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도랑가로 끌고 나가 삼만이 아재가 짚으로 묶은 다발로 신발에 뭍은 똥을 긁어냈다.     살면서 똥 밟는 일이 일어난다. 생각지도 않는 일이 터져 난감해진다. 내 잘못 아닌데 곤혹을 당하고 몇 사람이 작당해 뒤집어 씌우면 오해를 받는 일이 발생한다. 억울해서 반격을 가하려니 체통이 말이 아니고 그냥 참자니 울화통이 터진다. 결백을 주장하려면 상대에 관한 잘못이나 부정적인 견해, 공격과 말싸움은 필수라서 꼴이 말이 아니다. 차라리 똥 밟은 신발 버리고 신발끈 다시 졸라매고 고쳐 신는 게 온 몸에 똥칠하는 것보다 낫다.     요즘 한국에서는 ‘참을 인(忍)’자 쓴다는 말이 유행이다. 너도 쓰고 나도 쓰고 개도 양도 쓴다. ‘양머리 매달아 놓고 개고기 판다’가 유행인데 개고기 양고기 안 먹는 국민들은 무얼 먹고 사나. 가뜩이나 세계적인 물가상승으로 서민들은 장보기가 심란한데 고기타령하는 사람들은 배부른 족속들이다. 진짜 ‘참을 인(忍)’쓰고 참고 견디는 사람들은 국민이다.     똥 밟는 것보다 더 최악인 것은 똥씹는 일이다. 요즘 한국 소식 들으면 똥씹는 기분이다. 귀 막으려니 걱정 되고 들으면 속 터진다. 해결의 실마리가 안 보인다.   진(秦)나라가 조(趙)나라 왕을 연회에 초대한다. 진나라 위세에 눌린 혜문왕은 참석을 꺼려하는데 명장군 염파가 불참하면 조나라의 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인상여를 수행하게 한다. 조왕은 진왕에게 수모를 당하지만 인상여가 용맹과 기지를 발휘하여 무사히 회담을 마치고 그 일로 인상여는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 염파는 자신은 장수로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인상여는 말재주로 자신보다 높아졌다고 불평하며 인상여가 자기를 만나는 것을 피한다고 생각해 화를 낸다. 이에 인상여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두 호랑이가 싸우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내가 그를 피한 것은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그 말을 듣고 염파는 인상여의 대문 앞에 찾아가 사죄하고 둘은 서로 목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우정을 나누게 된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더라도 속한 단체나 공익에 해를 끼치지 않는 길을 택한다’는 ‘선공후사(先公後私)’는 사기에 기록돼 있다. 지혜롭고 판단이 옳은 사람들은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안다.   언뜻 보면 똥과 된장은 구별하기 힘들다.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별 하려면 냄새를 맡아보면 된다. 구린자가 더 떠드는 편이다.     옳고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은 목소리 높일 일도 없고 변명도 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선공후사 보다 ‘공적인 일을 빙자해 개인의 이익’을 꾀하는 ‘빙공영사(憑公營私)’가 활개 치는 비참한 현실을 본다.   똥바가지를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면 자기 옷에도 똥물이 튄다. 학창시절 우스개로 부르던 노래 ‘에이라, 똥물에 튀겨 죽일놈!’이 문득 생각난다.  이기희 / Q7 Fine Art 대표·작가이 아침에 이야기 인상여가 용맹과 인상여가 자기 진나라 위세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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