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광기 현장이 인기 관광지로
로마가 위기에 처했을 때의 타개책으로 한 개인에게 통치권 전부를 위임하는 식으로 설치된 6개월 짜리의 임시관직이었던 '독재관'이 독재자의 기원이자 어원이다. 이후 종신 독재관으로 바뀌게 된 것인데, 예쁜 옷감을 자기 마음대로 가위질하듯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의 집권자다.
그러다 보니, 독재자들은 언제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쿠데타와 암살에 대한 불안감에 사람에 대한 불심감이 증폭되고, 그래서 누구나 안전한 은신처를 마련하려 애썼다. 한때 증오와 공격의 대상이었던 그 은신처들이 지금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국민의 세금과 피땀으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그 지역 주민을 먹여 살리는 아이러니한 역사의 현장으로 가본다.
히틀러:독수리 요새, 바이에른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바바리안 알프스에 위치한 이곳은 히틀러가 전쟁을 계획하고 대량 학살을 시행한 광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주위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베르히테스가덴의 해발 1834m의 오버짤츠베르크 정상에 자리한 히틀러의 은신처인 독수리 요새(Eagle's Nest)다. 1938년 히틀러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선물로 지어진 별장으로 버스를 타거나 산 중심부 124m를 수직으로 뚫어 황동으로 제작된 엘리베이터로 이곳에 이르게 된다.
1939년 그이 비서이자 나치의 장관이었던 마르틴 보어만이 50세를 맞은 히틀러에게 선물로 만든 별장으로 이 별장이 들어선 이후 오래전부터 귀족들과 왕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했던 베르히테스가덴은 '히틀러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알려지게 됐다. 나치의 많은 흔적들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라졌지만 이곳은 폭격을 피했고, 지금은 켈스타인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레스토랑이 운영되고 있다. 히틀러의 별장이란 의미 이외에도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바바리안 알프스의 경치가 압권이다. 개장은 매년 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프랑코:파르도 왕궁, 마드리드
수도 마드리드의 북쪽에 자리한 이 왕궁은 1939년 수만 명이 사망한 내전 승리 후부터 1975년 왕실 복원 및 공화민주정 출범 때까지 36년 동안 스페인을 다스렸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15세기 초 카스티야의 엔리케 3세 왕이 지은 이 왕궁은 역대 스페인 왕들의 별궁이자 사냥용 별장으로 쓰였다. 프랑코 사후 이곳은 외국 국가 수반의 영빈관 겸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국가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궁전들 중의 하나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 4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키프로스, 몰타 등 유럽연합(EU) 소속 남유럽 7개국 정상들이 이 왕궁에서 정상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무솔리니:빌라 토르로니아, 로마
1883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63년간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주도한 베니토 무솔리니가 2차 세계대전 중 사용했던 가족의 거처 겸 방공호였던 곳이다.
로마 시내의 빌라 파가니니 앞 노멘타나 거리를 따라 넓은 공원에 자리한 빌라 토로로니아는 18세기 말 은행가인 조반니 토르로니아가 건축가 주세페 발라디에르에게 짓도록 한 것이다. 19세기 중반 아들 알레산드로 트로로니아는 이곳에다 스위스식 오두막, 온실, 탑 등을 지어 정원을 조성했다. 이후 오랜기간 방치됐다가 1920년대 무솔리니와 가족이 거주했고, 1987년에는 로마시가 이곳을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했다. 2014년 무솔리니와 그의 가족을 위해 방공호로 개조했던 포도주 저장고를 로마시가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다.
스탈린:다차, 소치
러시아 흑해 연안의 소치는 2014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곳은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권력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별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78년부터 1953년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과 총리, 국방상, 소련군 대원수를 지내며 철저한 정적 숙청과 동지들마저 반혁명 혐의로 숙청하는 등 악명 높은 독재자였다. 1920년 이곳에서 온천욕을 처음 해본 뒤 그의 류머티즘이 호전되는 것을 느끼고, 이곳을 자신의 요양지로 삼았다. 1934년 그의 지시에 따라 도로와 상수도, 공원 등이 조성되고 수많은 요양소도 지어졌다. 마체스타 협곡과 폭포등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지어진 그의 별장 다차(Dacha)는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박물관과 미니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그는 이 별장에서 수백만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퐁텐블로성, 프랑스
198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파리 남동쪽 65km 지점에 자리한 '퐁텐블로의 숲' 한가운데 위치한 휴양지이자 1814년 프랑스 제국과 제6차 대프랑스 동맹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 나폴레옹 1세가 퇴위됐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나폴레옹은 황제의 지위를 유지한 채 엘바섬에 유배됐다가 9개월만에 엘바섬을 벗어나 파리에 입성했으나, 다시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돼 최후를 맞는다.
퐁텐블로성은 1137년 루이 7세부터 1870년 나폴레옹 3세까지 약 700년에 걸쳐 왕들의 거처이자 사낭용 별궁으로 이용돼 왔다. 그 긴 세월 동안 당대의 유행과 왕의 선호에 따라 증,개축이 이뤄지면서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도 유명하다. 이 성이 보유한 유물과 그곳이 자리한 주변의 아름다운 숲과 경관으로 인해 '작은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진=해당 웹사이트, 위키피디아 백종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