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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 한인 여성 증가

내당자의 98%가 한인이었고, 그중 88%가 이민 1세 여성이며 71%는 영어 구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인가정상담소 이미리 매니저는 “24시간 운영되는 핫라인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거나 극단적 상황일 경우 신고하는 곳인데, 그만큼 가정폭력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였던 한인 가정이 많았다고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팬데믹이었던 2020년에도 한인 사회 내 가정폭력은 심각한 문제였다.     자택대피령으로 가족·동거인과의 갈등이 잦아졌고, 특히 타격을 입은 재정문제가 가정불화를 부추기기도 했다. 팬데믹 전인 2019년 가정폭력 관련 내당자는 170건이었지만 이듬해인 2020년 153건으로 떨어졌고 지난해 193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이 매니저는 “경제적 타격으로 의존할 곳이 필요했던 피해 여성들이 팬데믹이 완화되면서 외부에 도움을 구하는 시도가 늘어난 거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팬데믹을 지나면서 가정폭력이 아동학대로까지 이어진 경우가 두드러졌다고 한인가정상담소는 전했다.     이 매니저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연관은 있지만, 꼭함께 가는 사건은 아닌데 팬데믹 시기부터 유달리 두 사건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가정폭력 관련 상담에 위탁가정 프로그램이 뒤따라가는 경우가 잦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인가정상담소는 위탁가정 둥지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36명의 아동을 위탁가정에 배정했는데, 2019년(23명) 대비 약 50% 증가한 수치다.     한편, 지난해 한인가정상담소는 362명의 심리상담을 맡았고, 전년도인 2020년(314명) 대비 약 15% 증가한 수치다.     피상담자의 92%는 한인이며 78%가 저소득층 혹은 수입이 없는 경우였다. 아동 및 청소년도 10%를 차지했다.   지난해 피상담자 수는 2017년(275명), 2018년(298명), 2019년(309명)에 이어 5년 이래 최고치였다.     한인가정상담소는 상담 직원이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팬데믹 이후 경제적인 부분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한인들이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 매니저는 “주목할만한 부분은 보통 상담건의 30%가 ‘우울증’, 20%가 ‘불안증’으로 가장 많았는데, 팬데믹을 기점으로 ‘관계에 대한 갈등’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한인가정상담소 캐서린 염 소장은 “작년 한 해에도 코로나로 인해 힘든 시간을겪고 계신많은 한인분의 도움 요청이 있었다”며 “올 한해 역시 가장 소외된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장수아 기자가정폭력 증가 지난해 한인가정상담소 한인가정상담소 캐서린 관련 한인가정상담소

2022-02-07

[살며 생각하며] 90대10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니 외우라고 유혹하며 엑스트라 점수를 주곤 했다. 태도(Attitude)에 관한 찰스 스윈돌 목사의 이 구절은 좀 길어서 엄청난 점수로 유혹을 해야 했다. 지금 내가 인도하는 북클럽 멤버들에게도 이 구절을 강추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은 겨우 10%, 나머지 90%는 내가 어떤 태도로 반응하느냐에 달렸다는 사실은, 살다가 힘들면 자동으로 삐딱해지고 삐지는 내 마음을 확 바로잡아 주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정확히 20년 전 뉴욕에서 9.11 사태로 희생된 2977명의 이름이 몇 시간 째 낭독되고 있는 토요일 아침이다. 바이올린 선율을 배경으로 불리는 이름들이 너무 가슴 아파 차라리 화면을 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살면서 여러 가지 테러를 만난다. 어린아이들이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어 가슴에 구멍이 난 채 어른이 되고, 끝까지 함께 할 줄 알았던 가족이 마치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듯 휘이 떠나고 나면, 남은 이들은 트럭에 치인 듯 테러를 당한 듯 상실을 앓는다. 살다가 힘든 일을 만나지만, 이것이 삶의 10%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 말은 그래서 참 위로가 된다. 힘든 중에 최선의 삶을 살아온 결과가 나머지 90%를 결정지어 준다는 것이 그래서 참 감사하다. 불행을 10%로 여기고, 희망과 긍정의 태도로 90%를 채우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어서, 그래도 인생은 참 살만하지 않은가. 지난주 아들 가족과 캘리포니아에 휴가를 간 김에, 이전 내담자와 점심을 했다. 그곳 직장과 인간관계 때문에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어지기 전, 감사한 일 100가지를 찾아 써보자고 했다. 열 가지도 아니고 100가지? 젊은 그가 놀란다. 갑자기 눈이 반짝인다. 한번 해보겠다고. 누가 먼저 하든 100가지가 채워지면 연락하자고 했다. 최고의 태도는 감사이기에, 감사 리스트를 만들며 그의 힘든 일이 10%로 줄어들기를 바랐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2021-09-15

[교육 현장에서] 책과 함께 새해를

영어로 읽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 작년 12월 시작한 나의 영독 북클럽이다. 영어로 쓴 책이니 영어로 읽어야 의미가 더 분명할 것 같았다. 포트리 하이스쿨에서 삼십여 년 가르친 영어를 조금이나마 다시 가르치고 싶은 마음도 슬슬 작용했다. 지원한 분들 모두가 영어 걱정을 많이 했다. 영어를 전공한 분들도 아니고, 학교 졸업한 지 오래되신 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긴 문장도 끊어서 해석하고, 어려운 단어들은 어원으로 풀어 설명하며 함께 읽으니, 영어 실력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대부분 한국어로 이 책을 한 번 이상 이미 읽은 분들이었는데, 영어로 읽으니 오히려 뜻이 더 이해가 잘 된다고들 하셨다. 내 북클럽의 하이라이트는 그 날 읽은 내용을 자신의 삶과 상황에 비추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헉, 영어로 토론을? 노노, 나눔은 완전 한국어로 한다. 책을 읽고 나면 이야기 나눌 시간이 길진 않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나눔의 힘은 대단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이런 안도감, 서로의 힘듦에 대한 위로, 그러면서 좀 더 성숙한 인간관계를 지향하고픈 격려와 적용이 일어난다. 요즘은 한 시간 반 줌 모임이 끝나도 헤어지기가 아쉬워 줌에서 더 이야기들을 나누신다. 지난 여름 그중 한 분의 아름다운 뒷마당에 초대를 받았다. 또 하나의 커뮤니티가 생겼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던 오후였다. 이 책은 1부 자기 훈련(Discipline), 2부 사랑, 3부 성장과 종교, 4부 은총으로 되어있다. 특히 1부와 2부를 읽으며 깨닫게 된 자녀 양육과 부부 관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우리를 많이 생각하게 했고 성숙하게 해주었다. 책 속에서 만난, 스캇 펙 박사 내담자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으니까. 인식 못 한 채 살아왔던 내면세계의 갈등을 깨달으면서,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우리 삶의 지도는 조금씩 변화되어 갔다. 제1기 영독 북클럽은 이제 2021부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책, ‘연금술사(The Alchemist)’를 함께 읽게 된다. 세계가 함께 신음했던 2020년이 저물어간다. 2021년, 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영어로 함께 읽는 두 번째 그룹을 새롭게 시작한다. ‘연금술사’로 시작하고 싶은 분들도 환영한다. 좋은 책을 영어로 읽으며, 영어도 공부하고 삶을 나누기 원하시는 분들은 [email protected] 으로 이메일 하시면 된다. 요즘은 줌으로 하기 때문에 미국 어디서나, 심지어 한국에서도 시간만 맞추면 조인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도 어려웠던 삶이 조금 더 어려워지고 혼란스러워진 요즘, 영어로 좋은 책들을 읽으며 함께 성숙을 향해 걸어가는 2021년을 기대해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2020-12-23

[커뮤니티 포럼]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인턴십 프로그램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매우 특출한 인재로 뉴욕차일드센터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3만5000 여 명의 아이들과 그 가족의 삶에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는 사회복지사가 될 것입니다. 샤논 도스 (Shannon Dorce)는 맨해튼에 위치한 포담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임상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발렌티노와 마찬가지로 지난 일년간 뉴욕차일드센터 자메이카 정신건강 클리닉에서 인턴십을 했습니다. 그동안 필자의 수퍼비전을 받으면서 정신건강 및 약물 문제를 가진 내담자와 그 가족들에게 개인, 가족, 집단 심리치료를 제공했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업인으로, 또 사회복지대학원생으로 숨 가쁘게 바쁜 2년을 보냈습니다. 샤논도 5월에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하고 자메이카 정신건강 클리닉에 정식 직원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지난 일 년간 뉴욕차일드센터에서는 발렌티노와 샤논을 포함한 54명의 인턴이 현장 각지에서 인턴십을 끝마쳤습니다. 뉴욕 차일드센터는 1953년 설립된 이래 줄곧 사회복지대학원생들에게 현장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뉴욕주 정신건강 상담사 자격증 (Licensed Mental Health Counselor) 법안의 통과와 함께 많이 설립되고 있는 정신건강 상담 대학원 프로그램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도 임상 실습을 할 수 있는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실무 경험 있어야 면허 발급 사회복지대학원과 정신건강 상담 대학원 과정은 학생들이 학업을 이수하는 동안 필수적으로 학점과 연계되는 인턴십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장 경험이 필요한 학문의 특성에 맞게 매 학기 사회복지 및 정신건강 서비스 기관에서 라이선스를 소지한 사회복지사나 정신건강 상담사의 수퍼비전을 받으면서 현장 업무를 익히도록 하지요. 대학원생들의 수퍼바이저 자격도 상당히 엄격한 편입니다. 수퍼바이저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사회복지사(Licensed Master Social Worker)나 전문 임상사회복지사(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같은 전문 라이선스 소지자여야 하고, 라이선스 소지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뉴욕 일원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제공하는 실습전문가 훈련과정을 일 년 동안 이수해야만 합니다. 정신건강 분야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와 정신건강 상담사들은 전문적인 학사관리와 엄격한 실무 실습을 통해서 미래의 심리치료 전문가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습니다. 특히, 정신건강 전문가 국가 면허제도가 없는 한국과는 달리, 뉴욕에서는 전문가가 되려면 주정부로부터 학위 인증을 받은 대학원 관련 교육과정에 재학하는 동안 2년간의 인턴십 과정을 마쳐야 하고, 졸업 후 수천 시간의 실무경험과 전문 면허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전문 임상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 사회복지사 자격을 수료한 후에도 3년간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전문 수퍼비전을 받은 후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하지요. 또한 심리치료 전문면허(Psychotherapy Privilege)를 받기 위해서는 추가로 3년간 수퍼비전을 받으면서 수천 시간의 임상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뉴욕주에서는 임상 정신건강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고 심리치료를 제공하는 것을 철저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정신건강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까다로운 훈련과 자격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정신적인 어려움과 약물 남용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 보다 양질의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민자 언어 구사 능력 필수 뉴욕차일드센터는 잘 훈련 받은 사회복지와 정신건강 분야 인재들을 채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84개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있는데, 인력 규모가 크다 보니 공석이 생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퀸즈 지역에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는 특성상 클라이언트들의 약 60%는 이민자 가정 출신입니다. 따라서 스페인어, 중국어, 한국어, 힌디, 우루드 등 이민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회복지사들과 정신건강 상담사들이 꼭 필요한 실정입니다.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서 사회복지대학원이나 정신건강 대학원 직업 박람회에 가면 이중 언어를 구사하고 잘 훈련 받은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서 기관마다 치열한 영입 전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클라이언트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불편함이 없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인턴십 과정을 통해서 미래의 인재들을 영입해서 양질의 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뉴욕차일드센터는 매년 50여 명의 전문 인턴들을 뽑고 있습니다. 주로, 헌터 칼리지, 콜롬비아 대학원, 콜롬비아 교육 대학원, 뉴욕대, 요크 칼리지, 나약 칼리지, 포담대 등 뉴욕 인근에 있는 사회복지대학원과 정신건강 상담대학원생들이 뉴욕차일드센터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서류 심사와 면접 과정을 거쳐 인턴으로 임명이 되면 실습 오리엔테이션과 전문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체계적인 훈련 기회를 얻게 됩니다. 매년 가을 학기 초에 실시되는 오리엔테이션에서는 각 부문의 부회장들을 초대해서 뉴욕차일드센터가 제공하는 각종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배우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기관의 인사 규정과 문화에 대한 강의가 이어진 후 기관 담당자들과 어우러져 친교의 시간을 갖습니다. 뉴욕차일드센터의 인턴이 되면 지속적으로 전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인지치료과정, 변증법적 행동 치료 과정, 동기부여 상담 과정 등 증거기반 심리 치료 기법들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하기도 하지요. 또한 매년 두 차례 친교 행사 자리를 마련해서 인턴십 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서로 나누며 격려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졸업이 다가오면 모든 인턴을 초대해서 인사담당자들과 면접 자리를 주선해서 뉴욕차일드센터 각 프로그램에 채용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소수계 정신건강 전문가 양성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과 타 이민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정신건강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훈련을 이수하고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이민자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뉴욕차일드센터는 매 년 많은 예산과 전문 인력을 투입해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인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나 정신건강 상담사 중 많은 수가 과거 뉴욕차일드센터에서 수련을 받았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민자들이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이중언어를 구사하며 이민자가 속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소수계 정신건강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뉴욕차일드센터는 양질의 전문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양질의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윤성민 / 뉴욕차일드센터 부회장

2019-05-28

[마음 산책] 필연 같은 우연을 만났을 때

내게도 이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영어로 번역된 신간을 홍보하기 위해 영국 출판사는 인터뷰와 강연 일정을 여럿 준비해놓았다. 그중 하나가 뉴캐슬이라는 도시에서 강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내가 영국에 가기 직전에 봤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배경이 바로 뉴캐슬이었다. 그 많은 영국 도시 중에 뉴캐슬에서 강연을 하게 된 인연이 신기했다. 이틀 후, 아침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런던 방송국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인공 배우 데이브 존스가 대기실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와 함께 대기실에서 영화 이야기,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필연 같은 우연을 심리학자 칼 융은 '동시성(synchronicity)'이라고 이름 붙였다. 서로 연관된 일들이 동시에 발생할 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불가사의하게 느끼게 된다. 즉, 물리학 법칙으로 설명되는 객관적인 세상과 한 개인의 정신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세상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연결 다리가 놓여 서로 소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칼 융은 본인 저서에 재미있는 동시성 예를 들었는데, 그의 내담자 가운데 과학을 신봉하면서 논리적인 설명만을 믿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융이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도 그 내담자는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한 영역만을 믿어 어떻게 해야 그 믿음 너머의 세상을 보여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담자가 전날 밤 꿈에 황금색 풍뎅이 모양의 장신구 선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융에게 할 때 마침 그 순간 밖에서 어떤 벌레가 창문을 톡톡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을 열자 놀랍게도 연푸른 황금색 풍뎅이가 방 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 같은 동시성의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신기함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궁금해하게 마련이다. 나도 그 궁금함에 찾아보니,먼저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경험을 어떤 신성한 존재가 자신에게 보내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해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이에겐 하나님이나 부처님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자신의 수호 천사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고 이 우주와 연결된 소중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이다. 또 어떤 이들은 동시성의 경험을 우리가 아는 4차원의 세상 말고도 더 높은 차원의 존재를 알려주는 일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는 높은 차원의 문이 가끔씩 열리는데 그때 동시성의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양자 물리학의 '관찰자 효과'와 연관지어 관찰자의 시선이 물리적 현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기에 이런 동시성의 경험도 일어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무의식에 관심 있는 이들은 사람의 의식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아래에 있는 무의식은 온 우주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리적 세상과 심리적 세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동시성의 경험은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면서 '제가 동시성을 한 번 더 경험하게 해주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요청했다. 그러니 정말 신기하게도 라디오에서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노래 'Song for the Asking'이 나왔다. "내게 요청하면 아름답게 연주해서 너를 미소 짓게 하겠다"라는 가사와 함께 말이다. 혜민 스님 / 마음치유학교 교장

2019-04-04

[커뮤니티 포럼]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복지교회

나는 어릴 적부터 사회복지의 혜택을 받았다. 소년시절을 고아원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복지시설에 반감도 만만치 않았다. 고아원은 늘 보급품을 중간에서 가로채기 일쑤였고 고아원 원생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에 시달렸으며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복지의 위력 대신에 복지의 폐해에 먼저 눈을 떴던 소년시절 경험이 있다. 복지(welfare)는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데, 과연 복지가 가능할 수 있을까? 내 안의 물음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는 나를 양육한 고마운 사회적 보모이다. 영국 유학 시절에 자녀들을 출산할 때도 영국 사회복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유학을 하며 청소부로 일하던 가난한 시절, 나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아이도 열심히 만들어 4명의 아들을 두었다. 뒤돌아보면, 사회복지는 나를 지켜준 고마운 울타리였고, 난 다국적 사회복지의 수혜자인 셈이다. 이렇게 복지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치고 나는 복지에 대한 공부가 일천한 편이다. 사회복지는 고마운 울타리 보편적·선별적 제도의 차이 다만 나의 다국적 복지 경험 덕택에 주관적인 비교가 가능할 듯 하다. 2차대전 직후부터 복지담론의 가장 세계적인 논쟁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차이에 있을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국민을 국가가 책임을 진다. 베버리지 보고서 채택을 한 영국이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국가이다. 영국 병원은 노숙자도 정기검진을 받을 정도로 문턱이 낮지만,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죽는다는 웃지 못할 말이 상식이 될 정도이다. 반면에 미국은 선별적 복지의 대표적인 국가이다. 쉽게 말하면,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층의 사람에게만 복지의 혜택이 가도록 하는 것이다. 징수된 세금의 효과적인 활용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 이를 실행하기 위한 고도의 행정력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미국 병원은 저소득층에게는 천사이지만, 애매한 중산층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선별적 복지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현대사회에서 복지는 언제나 내 손 곁에 와 있다. 이민자보호교회(이보교)가 닻을 올렸던 2017년 3월 무렵이었다. 안 걸어본 길을 걷는 통에 제법 분주한 티를 내며 매주 이보교 TF 모임을 하던 시기였다. 그때 처음 만난 분이 시민참여센터 김동찬 대표였다.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교회 목회를 하던 사람인지라 시민활동가와 친근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김동찬 대표는 이보교 TF 모임을 마칠 때마다 몇 달 동안 같은 말을 내게 반복했다. "교회가 동포사회의 복지를 책임져야 합니다." 소수계 이민자 사각지대에 동포들 '비빌 언덕' 부족해 교회가 서류미비자들과 함께 하며 DACA(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 드리머 곁에 서 주는 것도 난해한데 교회가 복지를 어떻게 책임지나 생각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시절이다. 이렇게 한 사람이 끈질기게 이야기했던 것이 시초가 되어 이름도 생소한 복지교회가 시작되었다. 복지국가, 복지사회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복지교회라는 말은 생경하다. 성경에는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꿈에 그리던 약속의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였다. 가나안 복지의 새 사회기틀을 확립하기 위한 하나님께서 주신 헌법(출 20~24장)은 보편적 복지의 성격이면서 동시에 고아, 과부, 나그네라는 특별한 복지대상을 강조한 선별적 복지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인사회에서 안타까운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소수인종의 이민자는 복지시혜의 사각지대에 놓일 때가 매우 빈번하다는 것이다. 둘째, 유대교 회당처럼 한인사회에서는 동포들의 비빌 언덕이 되는 구심점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회당(synagogue)은 바벨론 포로기간(BC606-536)에 생겨났다. 고국에서 쫓겨나 흩어진 이스라엘 이민자들에게 회당은 사랑방이었다. 회당은 예배장소, 학교, 복지를 비롯해 동포사회의 복합적인 피난처였다. 2500년이 지난 뉴욕에서도 회당은 동일한 의미를 유지하는 것이 신비로울 따름이다. 여전히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자국 동포의 복지를 책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회당의 공적 재산에 대한 합의가 이런 힘의 밑바탕이 되기도 했겠지만, 그들은 주인을 못 찾은 법적인 눈먼 돈을 회당을 통해서 유대인 동포사회에 유통시키는 탁월한 정치력을 보인다. 한인사회 안에서 교회도 결코 회당에 뒤지지 않은 봉사열정과 풍부한 인프라를 갖췄다. 복음 전파·사랑 실천이 목표 교회들 선한 연대 필요 절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회당의 가치를 한인교회가 비등하게 갖췄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교회는 복음 전파와 사랑 실천이라는 합의된 공동목표도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교회가 한인 지역사회를 책임지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나름 최선을 다해 하고 있음에도 이런 박한 평가를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중요한 원인은 '개교회주의'였다. 내 교회만 아름다운 일을 하면 된다는 의식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도 더욱 떳떳하고, 어쩔 수 없이 앞 자리에 설지라도 질투심을 유발시키지 않을 수 있는 선한 연대가 교회에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다. 교회는 이 일을 가장 잘해 낼 수 있는 곳이다. 예수의 확실한 모델이 세월이 가도 퇴색되지 않은 채 유산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당하는 서류미비자들뿐 아니라 모든 한인 이민자들을 교회가 책임지려는 유별난 발상 자체가 사실은 교회의 본질이라고 확신한다. 노인아파트 한인 입주 돕는 등 복지교회는 동포사회의 큰 귀 복지교회는 이보교 산하에 있는 조직이다. 실험적으로 5개 교회(어린양교회, 친구교회, 한울림교회, 후러싱제일교회, 뉴욕우리교회)가 한 팀을 이루어 시작했다. 2017년 12월부터 약 10개월에 걸쳐 각 교회에서 파견한 3명의 대표들이 모여 복지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해밀턴 하우스의 복지전문가들께서 섬겨 주셨다. 각 교회에서 교육받은 평신도 지도자들을 복지 디렉터라 부르면서 매주 교회 안팎으로 상담을 해 준다. 가족 없이 홀로 사는 김묘순 할머니가 복지교회의 혜택으로 18년 기다려온 노인아파트를 입주했다. 복지 디렉터는 복지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의 사랑으로 교회만이 할 수 있는 복지교회의 진수를 보여줬다. 분주한 자기 스케줄을 밀쳐두고 할머니 손을 잡고 이곳 저곳 관련 기관들을 방문해서 기적처럼 일궈낸 쾌거였다. 9년 동안이나 추운 겨울에도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방에서 보냈다는 할머니가 노인아파트에 입주한 날 함께 했었다. 아파트 관리인에게 열쇠를 넘겨 받는 순간 보금자리가 없는 설움을 경험한 나는 울컥했다. 앞으로도 복지교회는 동포들의 닫힌 문을 열어주는 길에 앞장서려고 한다. 복지교회가 상담하고 있는 것들은 영어서류 읽어주기부터 SSI(생활보조금), SSA(은퇴연금), 푸드스탬프, 은퇴연금, 메디케어.메디케이드, 노인아파트 등이다. 복지교회는 이민자들에게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든 만나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내담자의 어려움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신분·재정.환경의 제한이나 자격 없이 어려움을 말하면 하나님의 긍휼의 귀로 들어주는 곳이기를 희망하는 곳이 복지교회이다. 복지교회는 동포사회에 세워진 큰 귀가 되면 좋겠다. 마을 어귀의 평상에서 동네 어려움들을 들어줬던 어른들의 귀처럼 복지교회가 동포들의 사정을 들어주고, 기도하는 세밀한 탄식을 들어주는 귀로 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안타까운 탄식에 귀를 여는 교회가 되길 기대한다. 길이 끝난 사람에게 길이 되어주는 복지교회, 떨리는 손을 잡고 함께 사랑의 기도를 해 주는 복지교회가 동포사회의 길을 찾는 내비게이션이 될 것이다. 동포사회의 대안과 희망이 되는 이 일에 교회들이 함께 참여하기를 부탁한다. 현재 5개의 복지교회가 한 팀을 이루고 있는데, 이런 팀이 6개만 있다면, 즉 복지교회 30개 교회가 뉴욕에 있다면 교회가 동포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을 책임지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삼일절 백 주년의 해 신채호 분필·윤봉길 도시락 올해는 삼일절 백 주년의 해이다.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윤봉길의 도시락 폭탄도 있었고, 신채호의 애국계몽을 깨우는 분필도 모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은 반이민 행정명령이 시행된 이후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범죄가 공공연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류미비자들의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으며, 동포사회의 미래도 점점 암울한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때 이보교는 때론 신채호의 분필이 되고, 필요에 따라 윤봉길의 도시락이 되려고 한다. 삼일절 백 주년이 되는 해에 동포사회 속에서 소금이 되려고 한다. 조선시대의 환곡, 혜민서, 활인서 같은 구휼제도는 모두 나라가 어려운 위기에 직면할 때 생겨난 복지제도였다. 사회는 점점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지만 그만큼 우리는 좋은 이웃을 만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희망을 잃지 말자. 탈무드에 이런 글귀가 있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뿌리는 자에게도 그 향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보교의 복지교회가 동포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향수가 되려고 기도할 것이다. 뉴욕우리교회 담임목사 조원태 / 이민자보호교회 대책위원장

2019-01-03

[사람속으로] 롱아일랜드 몰로이칼리지 음악치료학과 정승아 부교수

영어가 한 마디도 안들리더라구요. 눈 앞이 깜깜했어요. 향수병도 심했고 이민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God Bless America' 같은 노래를 들으며 미국의 역사를 공부했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 시공간을 초월해 18세기 유럽으로 여행하곤 했다. 몰로이칼리지에서 두번째 학부를 시작한 뒤 뉴욕대로 편입해 공부하던 중 음악 치료라는 분야에 대해 알게 됐다는 그는 "이왕 늦은 나이에 하는 공부인 만큼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교회 반주 등을 통해 음악의 치유적인 힘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었는데 이게 제가 가진 달란트를 나눌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거죠." 음악 치료가 정부교수의 삶이 된 이유다. 음악의 힘 연상 작용=음악 치료에서는 소수계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차이를 잘 인지하면 다양한 임상경험과 인생경험이 내담자를 더욱 가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내담자들에게 효과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 음악치료계의 대가들을 만나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서 참관하고 배우고 했던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아요." 10년 이상 몰로이칼리지에서 음악 치료를 가르치고 클리닉에서 일해온 그는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보람'때문이라고 말했다. "음악의 힘 중의 하나가 연상 작용이에요. 한 번은 한 양로원에서 진행되던 음악 치료에서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가 조용히 앉아서 연주를 듣고 있다가 세션이 끝난 후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이 노래가 내 웨딩에 나왔던 노래인데 남편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지만 그 순간이 떠올라 다시 한 번 행복했다'고요. 파킨슨병이나 마비 증상이 있는 내담자에게는 음악이 몸을 움직이는 큐싸인이 되기도 해요. 치매로 기억을 잃어 아내와 딸의 이름을 기억못하지만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이라는 노래의 가사와 감정을 모두 기억하는 왕년의 프로야구선수도 있었다. 음악치료사의 의무는 예를 들면 3개월 안에 완전히 잃을 수 있는 기억을 늦춰 주는 것 병세의 악화를 완화시켜주는 역할 등이죠." 열린 교육자로=정 부교수는 "한인 이민사회에 음악 치료를 알리고 부족한 임상에 관한 연구 증진에 노력하고 싶다"고 했다. "세대.문화간의 차이에서 오는 부적응으로 우울증을 겪는 우리 2세 가족들의 어려움이나 장기적인 스트레스에 관한 분석적 음악 치료에 접근하고 싶어요." 한인 학생들이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분야에 대해 정보가 없어 도전하지 못하는 한인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교육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음악 치료의 분야는 굉장히 광범위 해요. 자폐나 지적장애.학습장애.감정 문제.트라우마.정신분열증.조울증.스트레스.포비아를 앓고있는 내담자에서부터 아기 낳을 때 산모 또는 조숙아로 태어난 아기가 치료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음악치료사는 치료사와 뮤지션이 되는 두 가지 스킬을 공부할 때 배우죠." 음악치료를 통해 보람을 느끼고 이 분야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한인 후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그가 "교육자로서 또 멘토로서 항상 열린 사람으로 살고싶다"며 활짝 웃었다. 황주영 기자 [email protected] 누나가 말하는 정승진은(뉴욕주상원 16선거구 민주당 예비후보)… 오는 9월 9일 뉴욕주상원 16선거구 민주당 예비선거에 도전하는 정승진 후보의 친누나이기도 한 정 부교수는 "한 살 차이밖에 안나는 누나지만 어릴 때부터 동생에게 늘 존경심이 간다"고 말했다. 삼남매(정승아 .정승진.정승원)는 28년 전 미국에 도착했다. 정 부교수는 "세상으로 잘 나갈 수 있는 길도 있었지만 승진이는 굳이 힘든 일을 선택했다"며 "자신의 젊은 날을 이름도 빛도 없이 이민자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일해오며 더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줄곧 한 길만을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승진이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는데 노래에도 은사가 있어 지금까지 교회 찬양 인도자로도 봉사하고 있다"며 "바이올린.기타 등 서양 악기뿐 아니라 사물놀이.꽹과리 등 전통 음악까지 두루 재능을 보였고 어릴 때 키운 음악성이 리더십에도 큰 작용을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양함 음악 활동이 승진이의 문제 대처 능력면에서 정해진 틀을 벗어나 생각하는 창의적인 해결법을 제시하는 바탕이 된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2014-08-21

[단편소설 부문 가작] 혼인 시각차

내려다 보이기도 한다. 병석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 중에서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곳이 주거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은 초식을 위주로 하고 의복은 간소하게 하되 기거하는 곳은 아늑하고 고즈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집은 그런 그의 의지가 담긴 곳이다. 주변에는 나무들이 많아 공기가 맑고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건 새들의 노래 소리다. 이 집이 병석에게는 애환이 서린 곳이다. 원래는 건물이 낡고 거실은 협소했다. 오래된 건물이라 누추해 보였으나 자리가 좋고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사서 개조하리라 마음먹고 산 것이다. 집을 전체 개조하면서 거실을 크게 늘렸다. 재건축하면서 건축업자와 건축비 지불로 인해 분쟁이 발생했고 법정으로까지 비화됐었다. 거실은 복슬의 어미개가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지내며 온갖 재롱을 부리면서 가족을 따르던 곳이기도 하다. 온식구의 귀여움을 받던 복슬의 어미가 복슬을 낳아주고 죽었을 땐 가족이 슬퍼했다. 세라가 울고, 세영이도, 애들 어머니 숙희도 눈을 붉혔다. 그런 반면 아들 결혼 땐 고국의 친천들과 병석의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술마시고 춤추며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다. 이 거실에 딸의 혼사문제로 딸과 부모가 의견이 맞서있는 거다. "왜 싫다는 게야?" "···" "말해봐." 병석은 가슴이 답답하다. 남의 집 자식들은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한다던가 누가 소개를 해서 중매 결혼을 한다던가 결혼을 잘도 하는데 자기 딸은 그도 저도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울적하고 산란한 건 아내 숙희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연줄을 통해 중매를 부탁하고 해서, 사람을 만나게 해주면 만나보고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돌아서버리니 말이다. "세라야, 너 마음에 둔 사람이라도 있나?" 말이 없는 딸에게 어머니 숙희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짚이는 데가 있어서다. 말이 없던 세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병석과 숙희의 시선이 세라 얼굴로 박힌다. "누구야? 뭐하는 사람이고 나이는 몇살이야?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어?" 숙희는 세라가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람의 신상에 대해서 물었고 병석은 귀를 기울인다. "변호사야. 나이는 서른 세 살이고 혼혈 흑인이야." 세라가 부모에게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은 혼혈 흑인이어서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낮은 목소리지만 결기가 스며있다. 혼혈 흑인! 병석은 '이럴 수가 있나'하는 암담한 심정이다. 아들 딸에게 평소 결혼은 한국 사람과 해야 한다고 했고 자녀들도 그렇게 하려니 믿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한국 여성과 결혼시켜 며누리로 삼았고 딸도 한국 사람과 결혼해 한국 사람을 사위로 볼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그 믿음이 산산조각이 난 거다. 어머니 숙희도 딸이 마음 속에 혼혈 흑인을 두고, 그렇게 여러 곳 좋은 혼처에 선을 보였건만 그 좋은 데를 물리쳐 버린 것이 야속한 것이다. "엄마, 내가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건 결심이 서지 않았었기 때문이었어. 아빠 엄마의 당부였고 바람이었기에 한국 사람을 결혼 대상으로 생각하고 학교 다닐 때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을 사귀었어. 야외에 함께 다니기도 하고 식사도 같이 했지. 많은 시간을 대화하면서 그 사람에게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 세라는 지난 일들을 더듬어 보는 듯 시선을 복슬이에게 던진다. "회의가들기 시작한 건 무었 때문이었나?" 숙희는 딸 세라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는데 저는 저대로 부모의 바람을 이뤄보려고 애 쓴 흔적을 보는 것 같았다. "말과 행동에 진실성이 보이지 않아서야. 말을 가볍게 함부로 하고··· 한 번은 자원 봉사하는 자리에 나오기로 해놓고서 나오지도 않고, 다음에 만날 때는 엉뚱한 말로 둘러대고 그러더라고. 어느 날 저녁 그와 같이 식사하면서 이제는 그만 만나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낌새라도 알아 차린 듯 술을 시키더니 나보고 술을 권하는 거야. 사양했더니 그는 연거푸 자신이 자작하고서는 식당을 나설 때 술냄새를 풍기며 '세라, 저기 호텔에 가서 술 좀 깨었다 가.'라며 같이 가자는 거였어." 세라는 말을 끊고 숨을 고른다. "그 자식 이름은 뭐야? 뭐하는 놈이야? 나쁜 자식!" 병석은 자신도 모르게 나쁜 자식이라고 말을 내 뱉었다. "최 철호야. 컴퓨터 회사에 나간다고 했어." "그러고는?" 병석이 귀추가 궁금한 듯 던진 말이다. "집으로 가겠다며 돌아설 때 그의 억센 손이 내 손목을 꽉 잡고 끌었어.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지. 그의 힘센 완력에 나는 힘이 빠지며 한 발자욱씩 한 발자욱씩 끌려갔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럽??? 나는 '이 손놔, 이 더러운 놈, 이 손놔.'라며 악을 바락바락 썼어. 그때 한 사람이 철호의 손을 잡고 비틀며 '이 손 놓으시오. 왜 약한 여자를 괴롭히는 거요?'라고 했어. 그의 손은 검은 손이었지. 다음 순간 '당신 누구야? 왜 남의 일에 참견이야?'라며 철호의 주먹이 검은 사람의 얼굴에 일격을 가한 거야. 검은 사람은 얼굴을 살짝 피하며 뒷 팔꿈치로 철호의 등어리를 후려친거지. 철호는 '윽!'하며 앞으로 꼬꾸라져 쓰러지더니 일어나 슬금슬금 어디론가 사라졌어. 나는 그때서야 검은 사람을 보고 놀랐다구. 교회 청년회 모임에서 봤던 김진만이란 사람이었으니까. 김진만, 그의 어머니는 김혜숙이다. 그녀는 S대 영문학과를 나와 주한 미군 부대에 군속으로 근무했다. 그녀의 타이핑 실력은 수준급이어서 영내에서 사무적인 일을 보좌했다. 인사부관 캡틴 짐은 상부의 보고 서류를 혜숙에게 맡기면 깔끔하게 정리해서 올리는 것을 마음에 들어했고 그녀도 그의 인격에 마음이 끌렸다. 그는 말수가 적고 점잖았다. 혜숙은 그가 흑인이지만 인품으로 보아 고등교육을 받았으리라 믿었다. 그는 미남이었다. 캡틴 짐과 혜숙은 주말이면 고궁을 산책하기도 했고 북한산을 오르기도 했다. 캡틴 짐은 혜숙에게 청혼을 했고 그녀는 그 청혼을 수용했다. 둘은 서울 근교 한적한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혜숙이 캡틴 짐의 cjd혼을 수용한 것은 그의 인품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그녀가 평소에 미국을 동경한 나머지 장차 미국생활을 할 것이라는 소망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는 중학과정을 거치고 고등학교 에서 이어지는 영어를 배우면서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에서 듣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듣기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외국영화 보기를 택했다. 숙녀 옷으로 바꿔입고 머리에는 스카프를 둘러쓰고 영화관을 들락거렸다. 혜숙은 아들을 낳았고 아들 이름을 김진만이라고 지었다. 한국식 이름으로 성도 자신의 성을 따고 이름도 자기가 지어 붙였다. 혜숙이 그런 이름을 지은 것은 남편의 도량이 넓고 혜숙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다. 그녀가 아들 이름을 지어 부르기 전에 남편에게 의향을 물었을 때 그는 오케이였다. 세라의 기억에 새로운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흑인인데 말은 한국 사람처럼 잘한다는 거였다. 그날 모임에서 자기 소개 차례였을 때, 로 스쿨에 다닌다고 했고 나이는 세라 자신보다 두 살 위라고 기억했다. 그후 세라는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고 잊고 지냈다. 까맣게 잊었던 그가 그녀의 위급한 때에 나타나 위기를 모면케 해준거다. 그날 진만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세라는 철호에게 끌려가 겁탈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세라와 진만은 자주 만난다. 그러다 세라가 물었다. "진만씨는 한국 말을 한국 사람처럼 잘해요?" 처음 그를 봤을 때 그가 한국 말을 유창하게 할 때가 생각나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니까요. 집에서도 한국 말만 사용했지요. 아버지도 간단한 한국 말은 어머니에게 배우셨으니까요." "한글을 읽고 쓰시기에도 불편함이 없으시겠어요." "지금도 한국 신문을 읽고 한글로 글도 쓰고 한국 드라마도 보지요. 그럼에도 한글을 익히고 한국어를 배웠던 내 어린 시절은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요. 학교에 가면 주위 또래 아이들은 나를 보고 '검둥이, 검둥이'하고 놀려대며 수군대고 따돌렸어요. 그것이 싫어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했지요. 그럴 때면 어머니는 '사람은 배워야 해'라며 학교에는 꼭 가야 한다고 달랬어요. 그때는 정말 학교 가기 싫었어요. 안 가려는 내게 어머니는 '안중근 의사는 백번 참으라는 백인을 말씀하셨다'며 참고 참아야 한다고 타일렀어요. 어쩌면 어머니는 앞날을 예견이라도 한 듯 수 없이 참고 진정하라고 제 이름을 진만이라고 지었는 지도 모르겠어요." 세라는 진만이 그의 어린 시절을 얘기할 때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고 그가 멸시와 편견의 굴레에서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까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세라는 자신이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상담자로서 진만의 경우처럼 혼혈아의 열등의식의 환경에서 어머니가 자식에게 역경을 극복케하는 가정교육에 관심을 갖는다. 그것은 혼혈아의 열등의식과 헬렌 켈러의 삼중고의 열등의식을 비교하게 된다. 진만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참고 참아 극복하게 한 것은 헬렌 켈러가 그의 스승 설리반의 끈기와 열성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된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세라는 자신의 직업의식으로 가정 교육이 열등의식에 미칠 수 있는 관계를 심리 상담에 적용해 보려는 마음이 들기도 한 거다. "아버님은 집에서 진만씨 이름을 뭐라고 불러요?" "아버지는 한국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이고 무력으로 대치하고 있으니까 웨스트 포인트를 나와 오래지 않아 한국 근무를 자원했나 봅니다. 한국에 근무하시면서 어머니와 결혼하신 것도 한국에 대한 관심의 소산이었는지도 모르죠. 아버지는 늘 어머니를 '숙'하고 부르셨고 저를 '진'이라고 부르셨죠. 어머니는 이름의 끝자를, 저는 이름의 첫자를 부르셨답니다. 펜타곤으로 돌아오셨어도 한반도와 미일중러의 역학구도에 대한 정세분석을 해 의회에 올리느라 잠을 설치기도 하셨지요. 제가 한국 학교에 다니게 된 것도 아버지의 이해심 때문이었지요. 세라씨는 가족이 몇 식구신가요?" "부모님과 오빠 저 네 식구여요. 아, 복슬이도 우리 식구에 속할까. 오빠는 결혼해 따로 살고 있구요." 세라와 진만은 서로의 가족에 대해서 서슴없이 물어볼 정도로 가까워졌고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화창한 날 둘은 교외로 나갔다. 서로 들뜬 마음이었다. 한적한 길을 거닐며 세라의 하얀 손을 진만의 검은 손이 잡는다. "세라씨, 우리 결혼합시다." 진만이 작정한 듯 꺼낸 말이다. 세라는 선뜻 대답이 없다. 뜸들이 듯 한동안 말이 없다가 "진만씨, 내가 순결을 잃은 여자라면??? 그래도 결혼하겠습니까?" 세라는 철호에게 겪었던 때를 생각하고 진만의 속마음을 떠보려는 듯 물었다. "세라씨가 피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순결을 잃었다면 결혼을 할 것입니다." 진만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세라는 진만의 사랑을 알게 됐고 이러한 사고의 소유자라면 평생의 반려자로 삼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좋아요.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로 해요. 진만씨 부모님을 어떨지 모르지만, 저희 부모님은 반대하실 거예요. 그전부터 세라는 한국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부모님의 승낙을 받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해요. 호소하면서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진만씨 부모님은 동의하실까요?" "아버지는 펜타곤으로 돌아오셔서 몇 년을 더 근무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시다 병을 얻어 입원하셨지요. 병원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는 아들을 잘 돌봐 다라고 말씀하셨고 제게는 어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어머니에게는 서울에서 살 때가 행복했다고 말씀하셨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외로워 하셨어요. 그러다 대학 동문들이 더러 사는 로스 앤젤레스로 왔지요. 어머니는 제게 한국 여성과 결혼하라고 하신답니다. 세라씨와 결혼한다면 좋아하실 거예요. 세라씨 부모님이 반대만 하신다면 어떡하나요?" "결혼 승낙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세요. 전 아버지 어머니가 아집을 내려 놓을 때까지 아집과 투쟁할 거예요." 거실 한쪽에서 까만 눈을 반짜이던 복슬은 잠이 들었나 보다. 병석은 딸 세라가 철호라는 괴한같은 놈의 횡포에서 구해준 혼혈 흑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세라야, 네가 나와 네 어머니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한국 사람과 결혼하려고 노력한 결과가 엉뚱한 위기에 몰렸었구나. 그럴 때 한 혼혈 흑인의 도움으로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을 결혼 대상으로 연계해 결정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마음을 바꿔 한국 사람과 결혼하도록 해." 병석이 아들 딸의 결혼 대상을 동족인 한국 사람과 해야 한다는 인식은 오래 전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었다. 병석의 아버지는 경주에서 많은 농토를 소유해서 머슴을 둘이나 데리고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는 자식이 성인이 되어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을 때 여러 지인들에게 아들의 혼처를 수소문해 선을 보이고 결혼을 시켰던 것이다. 그 혼처가 병석의 아내 숙희의 가문이었다. 숙희네 가정은 유교 가정이었고 병석의 아버지가 한학자였듯 숙희의 아버지도 한학자였다. 병석과 숙희의 첫 만남에서 둘은 눈이 맞고 마음이 통했다. 병석과 숙희 사이에 아들 세영과 딸 세라가 태어나고 자랄 무렵 삶의 터전을 옮길 때가 왔다. 병석 내외가 그의 아버지께 떠날 인살 드릴 때 아버지는 아들 며느리에게 아이들이 커서 결혼할 때는 한국 가정의 자녀와 결혼시킬 것을 당부했다. 아버지가 아들, 자부에게 손자 손녀의 동족 혼인을 당부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병석은 그것을 혈통이나 전통이라고 믿었다. 생전의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육성을 되새기며 딸 세라의 마음을 바꾸라고 한 병석의 말에 옆의 숙희도 거듣는다. "그래, 아빠가 네 마음을 바꾸라고 한 건 네 앞날을 위해서야. 사람이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는 주위의 권고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해. 아빠의 의견을 따르도록 해라. 네가 마음에 둔 사람과 결혼한다면 둘만 뚝 떨어져 살 수도 없잖아. 인척과 친지들의 시선도 곱지 않을 텐데 그런 점도 고려해야지." 숙희는 딸이 검은 피부의 남자와 결혼해, 혼혈 흑인이 사위가 된다면 지인들의 눈총을 받을 것만 같았다. "엄마 아빠는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고 나보고만 그래. 그날 철호 놈에게 끌려 갔던 때의 수치와 굴욕감은 결혼을 앞둔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지. 그 이후 엄마 아빠가 한국 사람을 결혼 상대로 다리를 놔준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내가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순결을 잃었다 해도 결혼하겠느냐'고 물었어. 내가 만난 그들 중 한 사람도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없었어. 내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그들은 나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했을지도 몰라. 나의 돌출 질문을 그들은 외면했지만, 김진만은 대답을 주었지. 결혼하겠다고??? 나쁜 사람의 행동에 따른 내 아픈 기억에서 우러난 것이지만 일생을 같이 할 배우자의 인품을 보는데는 적절한 질문이라 생각했거든. 김진만의 말을 듣기 전에는 최종 결심이 서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라." 골똘히 생각해 딸의 마음을 바꿔보라고 말했던 병석과 숙희는 딸의 마음을 돌려놓기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하겠다면 나나 엄마는 반대다. 네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이해한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관이야." 병석은 딸의 결혼 때문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어떤 거리감을 느끼곤 한다. 딸이 이십대 초반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잘도 조잘거렸다. 언젠가는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여자는 나이가 끝에 발음이 시옷, 비읍으로 들릴 때 결혼해야 한대." "그게 무슨 뜻이야." 병석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들어봐. 스물 셋에서 스물 여섯까지가 시옷이 붙는 나이고 스물 일곱에서 스물 아홉까지가 비읍이 붙는 나이 잖아. 그 나이 안에 결혼하기는 쉽고 그 나이를 넘기면 결혼하기가 쉽지 않대." "너도 그 나이를 넘기기 전에 결혼하도록 해." 그런 대화를 나눴는 데 이제는 딸이 그 연령대를 넘기고 니은이 붙는 서른을 넘기고 있으니 아버지의 마음도 불편하고 딸의 기분도 뒤틀린 것이다. 병석은 딸이 서른을 넘기면서 변했다고 생각한다. 이십대 같았으면 부모가 마음을 바꾸라면 바꿨을 것으로 믿는 거다. 딸이 변했다고 여기는 것은 그전과 다른 이상한 행동이다. 타고 다니던 승용차가 교통사고로 대파하자 SUV에 승용차 높이의 타이어를 부착하고 다니질 않나 들고 다니던 핸드 백을 날치기 당했다고 커다란 가죽가방을 어깨에 걸치질 않나 자신의 몸을 자신이 방어한다며 태권도장을 들락거리지 않나 코까지 내려오는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걸 보고는 제동을 걸어도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제돈 벌어 제가 쓰는 걸 어쩌지 못한 거다. 병석은 그런 딸의 변화가 결혼 적령기를 넘겨 정신적으로 받는 불안감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김진만과 결혼하는 거 반대한다면 나도 한국 사람 선 보라는 거 안 볼거야. 아빠, 엄마. 김진만을 왜 그렇게 이상하게 봐. 김진만은 피부만 검지 사고관은 한국 사람과 같아. 건전한 사고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 공부 더 해서 법학박사 학위 받아 법학교수가 되겠대. 김진만과의 결혼을 허락해줘. 아빠 엄마 걱정하지 않게 잘 살게." 세라도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건전한 사고관을 갖고 한국 말을 잘하고 한국 사람과 같다고 해도 한국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 외모를 보고 피부가 검으면 누가 그 사람을 한국 사람이라고 보겠나. 혈통이 다르지 않아.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지. 가문과도 관계있는 말이란다. 유대인의 민족성이 우수하다는 것은 그들의 대대로 내려오는 혈통이기도 하단다. 좀 더 생각해봐." 병석도 세라만큼이나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벨이 울린다. 복슬이가 자지러게 짖으며 현관으로 달려간다. 복슬이만 뛰어 나갔지 아무도 나가는 사람은 없다. 들어 온 사람은 병석의 여동생 명자다. 병석이 힐끗 쳐다 볼뿐 말이 없다. 명자 그녀는 성격이 활달하고 개방적이다. 잘 웃고 잘 어울리는 친화력이 있어 친구가 많다. 세라가 선을 본 남자들도 그녀가 소개했다. 오빠 내외와 조카가 말없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음인지 "무슨 일이 있어요? 오빠," "???" 병석은 언짢은 얼굴에 함구무언이다. "언니, 다퉜어요?" "글쎄, 세라가 혼혈 흑인하고 결혼하겠다는 거지 뭐예요!" 숙희는 못 마땅한 볼멘 소리다. "야, 우리 집안에 이변이 일어나겠네. 지금까지 선을 보고나면 파투가 난 것도 이유가 있었구나. 그것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예요?" 명자는 그것이 뭐 그렇게 심각하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오빠와 내가 반대한다니까 그러면 한국 사람 선을 보지 않겠다고 하잖아요. 부모와 한 번 해보자는 심사가 아니고 뭐겠어요." 숙희는 병석의 불편한 심기에 자기의 토라진 기분을 더해 말한다. "세라가 결혼하겠다는데 찬성해줘요." 병석의 얼굴은 미간이 뒤집어진 팔자가 되고 세라의 입술은 초승달이된다. "고모, 고모가 어쩌면 그런 말을 해요? 오빠나 내 성격을 몰라서 그래요?" 숙희의 목소리에는 고모에 대한 야속함이 짙게 배어있다. "명자, 네 성격대로 말하는 거야. 말을 해도 전후 사정을 살펴보고 난 다음, 해야 할 말인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인가 가려해야지." 병석도 좋지 않은 기분이 노출된 거다. "오빠, 결혼은 세라가 하는 거잖아요. 저들이 서로 좋아하고 결혼하겠다는데 뭐땜에 반대해요. 잘 살든 못 살든 그들에게 맡기고 보내줘요. 전후 사정을 살펴봐도 그러잖아요. 결혼 전에는 부모가 반대냐 찬성 둘 중에 하나고 결혼 후에는 잘 사냐 못 사냐 그 차이 아니겠어요?" 명자도 거리낌이 없는 논리를 편다. "그만 두자. 명자는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내 입장이 되었다면 그런 말 못한다." 벨이 두 번째 울린다. 복슬이가 짖으며 뛰쳐 나간다. "아버지 저희 왔어요. 고모님 오셨군요." 병석의 아들 세영이 내외다. 아들은 병석의 지인의 딸과 혼담이 있었고 혼담이 있은 지 얼마되지 않아 혼인이 성사됐다. 분가해서 살고 있고 한 주일에 한 번씩은 아버지 집에 들른다. 병석은 요즘 딸의 혼사로 마음이 편치 않으면서도 아들을 결혼시킬 때 한국 며느리를 본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위안으로 여기고 있다. 며느리도 숙희와 자기에게 잘 해 기쁜 마음이다. 세영 내외도 세라가 김진만과 혼인문제에 부모가 반대하는 것을 알고 있고 부모의 의견을 따르라고 세라에게 몇 번 권고한 적이 있지만 세라가 요지부동인 것을 알고 있다. 세영은 아버지 어머니가 입을 다물고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알아 차린 듯 "아버지 저희들도 세라 결혼 문제를 갖고 의견을 여러 차례 나눴는 데요. 승낙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뭐! 너희 마저도 아버지 어머니 맘을 몰라?" 숙희는 차마 아들 내외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실망스런 표정이다. "저희도 아버지 어머니 뜻을 존중하지요. 세라가 저렇게 버티기만 하니 하는 말입니다." 벨이 세 번째 울린다. "예, 아. 김형, 알겠어요." "누구예요?" 숙희가 병석에게 물었다. "김 사장, 묵향에서 저녁을 같이 하자는데…. 명자 더 있다 가고 세영 너희도 놀다 가. 세라는 집에 있을 거지." 병석 내외는 차를 드라이브해 묵향으로 간다. 김 사장. 그는 병석의 동문 선배다. 한 달에 한두 번 만나 친목을 도모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숙희는 김사장 부인과 언니 동생처럼 지내는 사이고 병석이 비즈니스로 어려움이 있을 때는 도움을 받기도 하고 김 사장이 어려울 때가 있으면 병석이 기꺼이 돕기도 한다. 둘의 사이는 형제같은 끈끈한 친분 관계다. 병석 내외가 묵향에 다다르니 김 사장 내외는 막 도착해 있었다. 김 사장이 미리 예약해 두었던 듯 별실로 안내됐고 곧 저녁이 시작되었다. 저녁 상은 술도 같이 나왔다. 병석이 술 좋아하는 것을 김 사장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유병석을 부를 때 유아우라고 부른 다. 우애감을 나타내기 위해거일 게다. "유아우, 지난 번 따님 혼사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더니 잘 풀렸나?" 김 사장이 병석에게 술을 권하며 건네는 말이다. 병석이 먼저 털어놓아야 할 말을 그가 먼저 물어 온 것이다. "풀렸으면 좋겠소만 꼬이기만 한다오. 김 형이 전화 줄 때에도 그 얘기였지만 딸년은 끄떡도 하지 않소. 되레 동생과 아들, 며느리는 딸년 결혼을 허락해주라니 불난 데 부채질이지 뭐유." 병석은 계속 잔을 비우며 김 사장에게 권한다. 숙희와 김 사장 부인은 술 그만하라고 만류하고 김 사장과 병석은 괜찮다며 주거니 받거니 한다. 김 사장 부인과 숙희는 그들대로 소근댄다. "유아우, 따님 결혼 허락해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거여. 오늘 내가 전화한 건 이 얘기할려고 나오라 한 거라구." 김 사장은 말이 술술 나오는 걸로 봐 술기가 오른 거 같고 병석도 술기운이 도는지 눈 주위가 붉어온다. "아니 김형도 그런 말을! 우리 후배 박 사장 아들 결혼식 때 같이 가지 않았수? 그 박사장 딸이 결혼 일 년만에 파경을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 않았소? 난 그런 꼴 당하고 싶지 않단 말이요." 병석은 작고 하신 아버지의 당부가 간헐적으로 뇌리에 박히기도 하지만 후배 박 사장의 경우가 뜬금없이 마음 속으로 찾아들기도 하는 것이다. "이 사람, 유아우. 그 한 사람 그렇다고 다 그러려니 하면 어쩌누. 따님 믿고 청을 들어줘. 그 나이면 보는 눈이 있을 거라구." 김 사장은 진심어린 어조였다. 자기가 처한 것처럼 걱정해주는 게 고맙지만 병석은 마음의 갈피가 잡히지 않는 거다 "모르겠시다. 어찌해야 할지???." "지난 번 아우님 넋두리 듣고 생각한 거여. 글로벌 시대에 살면서 이조 시대 관념에 잡혀있으면 쓰나. 따님보고 포기하라고 하지 말고 아우님이 발상전환을 하라구." "알겠시다. 생각해 봐야겠수다." "아우님은 사위 될 사람 한 번 만나 봤나?" "아니, 김형도 딸년 결혼을 반대하면서 만나 보는 사람이 어디있소?" "반대해도 만나 볼 수는 있지. 사람을 보고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병석 내외와 김 사장 내외는 각자 부인이 드라이브하며 귀가 길에 올랐다. 병석은 술 기운이 오르며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흉금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건 정신 건강에도 좋을 거라는 믿음에서다. 숙희가 운전을 하며 병석에게 묻는다. "숙희 결혼 문제는 가부를 결정해야죠?" "당신은 어쩔 작정이오? 스탑! 왜 이러는 거요? 멈춰야지 막가. 이러다 사고나는 거요." 적색 신호등인 데 멈추질 않기에 병석이 소리지른 것이다. 숙희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운전을 했던 거다. "휴!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네. 세라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려. 난 당신 결정에 따를 게요." "가요. 신호 바뀌었어. 돌아 가신 아버지가 당부하신 걸 생각하면 반대해야 하는데. 명자도, 애들도 찬성쪽으로 의견을 내 놓는데다 김 사장까지 허용해 주라니 김 사장 의견을 따라야 할까봐. 아버지가 생전에 이런 현실을 보셨으면 세라 결혼에 동의하실거라 믿어." 병석의 마음의 변화는 김 사장의 권고가 결정적인 거였다. 병석의 지나온 삶의 고비마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그의 권고와 위로가 도움을 주었던 거다. "나도 당신따라 마음을 정하고 나니 편해요. 잘 생각했어요. 아까 김 사장이 사위될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어떡할 건가요?" "세라 결혼을 승낙한다면 마나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떡하믄 좋아? 당신 생각은?" 병석은 집에 가면 세라에게 승낙을 해주면서 만나보겠다는 의향을 비치려는 것이다. "만나보죠. 어차피 만나게 될 거면 바로 만나죠." 숙희도 동의하고 나서는 거다. 병석과 숙희가 집에 돌아오니 세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다녀 오셨어요." 세라가 책을 덮으며 일어선다. "고모하고 오빠, 언니는 언제 갔냐?" "엄마, 아빠 나가시고 바로 갔어." 세라는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에게 친구한테 말하는 것처럼 말해왔다. 그 습관이 결혼을 앞둔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아빠와 엄마가 딸을 친구처럼 대해왔기 때문일 게다. 병석도 그런 딸을 좋아하는 것이다. 병석은 딸의 결혼문제로 해서 의견이 엇갈리고 대립은 됐지만 아버지와 딸 사이에 나누는 대화에는 변함이 없는 딸의 그런 말을 탓하지 않는다. 병석은 소파에 앉으며 부드럽고 정감깃든 목소리로 "세라야, 나와 엄마는 네 결혼을 승낙하기로 했다." "뭐! 정말? 엄마, 아빠 고마워. 고마워!" 세라는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 "세라야, 그 사람 김진만이라고 했나. 한 번 만나 볼까?" "아빠, 술마셨지? 기분 무지 좋은 가봐. 아빠가 술마시고 기분 억수로 좋을 땐 내게 언제나 선물 사주셨는 데 오늘은 기분이 무지무지 좋은 가봐. 내게 최고의 선물주셨어. 결혼 허락이라는 선물을! 엄마, 미안해. 엄마 아빠가 바라는 한국 사람하고 결혼 못하고 한국 사람이 꺼리는 흑인하고 결혼하게 되는 거. 용서해줘. 그래. 지금 내 가서 김진만하고 올게." "괜찮아. 너나, 나나, 아빠나 보는 '혼인 시각차'였어. 그 동안 마음 고생이 있었겠구나. 털어버려. 어서 갔다 와." 세라가 나가니 구석에 앉아 있던 복슬이가 소파에 앉아있는 병석의 무릎 위에 얼른 뛰어오른다. 여느 때와 같은 주인의 안색이 밝아진, 기분을 알아 차린 것이다. 수상소감 "한발 한발 내딛으며 걷겠습니다" 제 사촌형 한 분은 입담 좋은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유년기에 저의 또래들이 겨울밤 그분의 온돌 방에 모여 들려주는 그 형의 이야기에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청소년기에 이르러서는 소설 읽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듣는 이야기에서 보는 이야기로 바뀐 겁니다. 소설 읽기에는 단편 소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단편 소설은 장편 소설에 비해 플롯이 압축돼 재미가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른 팍팍한 생활 여정에서도 소설 읽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년기의 이야기 듣기와 청소년기의 소설 읽기가 문학에 관심을 갖게했고 단편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한 지인에게서 자녀 혼사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녀의 결혼 적령기를 넘긴 부모에게는 남다른 걱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혼인 대상에 대한 부모와 자녀가 보는 눈은 다르고 다르게 보는 차이에서 소통은 어려워지고 갈등이 초래되는것 같습니다. 그런 혼인의 과정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작중 인물에 진만의 가정을 설정한 것은 국내에서 반미 시각을 갖는 분들에게 한국을 사랑하는 미국 군인도 있다는 한 면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습니다. 해마다 모국의 아름다운 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 문학을 향상 발전시키고자 '중앙 신인문학상'을 주최해주시는 중앙일보와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숙여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저는 이제 어미소에서 세상에 막 태어난 송아지와 같습니다.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발을 내 딛는 마음으로 문학의 길을 걷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8-22

'당신도 혹시 우울증?' 한인봉사센터 정신건강 워크샵

영어 실력이 떨어져 항상 가슴에 안고 있던 열등감이 점점 커지면서 자신감은 갈수록 떨어진다. 자신에 대한 무가치함과 죄책감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꺼려진다. 김씨는 한달 가까이 이와 같은 증상을 겪으면서도 ‘세상 사는게 다 그렇지. 남들도 어려운데 뭐’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김 씨는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다. 보통 우울증이라고 하면 증세가 뚜렷하고 심각한 것만을 떠올리는데, 의외로 우울증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앓고 있을 수도 있다. 9일 애난데일서 열린 워싱턴한인봉사센터 정신건강 워크샵의 주제는 ‘우울증과 조울증’. 정신건강 임상전문 상담가 배기정씨가 강사로 나와 우울증의 원인과 증상, 예방 및 치료법 등에 대해 소개했다. 배기정(사진)씨는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을 느끼긴 하지만 이는 우울증과는 구별된다”면서 “만약 우울한 느낌이 거의 매일 들면서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우울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배 씨에 따르면 우울증의 종류에는 주요우울장애와 기분부전장애, 계절성 기분장애, 조울증 등이 있다. 특히 기분부전장애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울증보다 증상이 가볍고 거의 매일 2년 이상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식욕 및 수면 장애, 피로감, 낮은 자존감, 집중력 부족 등의 증상이 있지만 일상생활을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민 생활을 하고 있는 한인들은 더 많은 외적 스트레스와 주변 환경으로 인해 위험성이 더 커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문제는 우울증 환자의 3분의 2가 자살을 생각하고, 그 중 10~15%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음에도 자신의 성격이 원래 소극적이거나 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자책하거나 부끄러워하기도 한다”면서 “심한 경우 일평생을 ‘나는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며 우울하게 사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고혈압은 병이라 생각하고 치료하면서 마음의 병인 우울증은 무시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치료를 통해 완쾌가 가능하기 때문에 절대로 간과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우울증은 약물치료와 정신요법 등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약물치료에 쓰이는 항우울제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처음 복용시 대개 6~12개월 정도를 꾸준히 복용해야 하며, 중독되거나 금단 증상이 없는 안전한 약물이다. 약물치료와 정신요법을 병행하면 더욱 더 치료 효과가 크다. 정신 요법에는 내담자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지지적 정신요법, 무의식적 갈등을 찾아내 심층적 변화를 시도하는 분석적 정신치료, 또 대인관계 개선을 위해 대화 기술을 강조하고 현 시점의 습관을 다루는 대인관계 치료, 잘못된 사고나 생각을 재조정하는 인지행동 치료 등이 있다. 배기정씨는 “우울증이 의심되면 의사나 상담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선 생각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인봉사센터 정신건강 워크샵은 2월 16일(월)과 23일(월) 두 차례 더 열린다. 다음은 일정 △2월 16일(월): 약물 남용 및 중독에 대한 대처법(손젬마 전문 심리치료 상담가) △2월 23일(월): 자살과 예방(크라이시스 링크) ▷문의: 703-354-6345(교환번호 110번) ▷주소: 4022 Hummer Rd., Annandale, VA. 유승림 기자 [email protected]

2009-02-09

[법과 생활] 종교이민 안하는 이유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후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런데 이민법을 다루는 필자는 종교이민은 취급하지 않는다. 타종교에 대한 특별한 지지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교회를 섬기고자하는 분들의 케이스도 취급하지 안하게 된 사건이 있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취급한 케이스는 다음과 같다. 종교비자와 영주권을 내주기로 한 A목사님과 영주권을 받기로 한 B목사님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 화가 난 A목사님은 이민국에 영주권 안내주겠다고 철수 신고를 했다. 영주권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B목사는 영주권 거부통지서를 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우기 이후 날라 온 추방재판통지서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제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A목사의 사기성을 이민국에 투서를 통해 신고했다. 필자는 A목사와 B목사간의 사건을 수습하면서 변호사로 그다지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이후 종교이민상담자들 대부분은 성직에 있다는 이유로 많은 특혜를 바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교회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상담을 통해 들으면서 필자는 마음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이후로 차라리 미국에 스폰서를 구해 취직을 하거나 투자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하고자 하는 분들을 돕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종교 이민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필자는 이번 추수감사절 연휴동안 라스베가스를 다녀왔다. 우리가족은 준비해간 1000장의 전도지를 Paris라는 큰호텔앞에서 지나가는 방문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Chick Track으로 잘 알려진 이 만화전도지는 영어 스패니쉬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왜 예수님을 영접해야하는지를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필자가 이Track을 나누어 주며 느낀 것은 미국은 이젠 선교의 대상으로 그렇게 효과적인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도지 받기를 거부하는 이들의 오만을 통해서 말이다. 한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마켓앞에서 특정 교회선전이 아닌 예수의 복음만을 전하는 이 전도지를 뿌릴 때 많은 한인들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이름과 직책을 말하며 이미 자신은 교인이기 때문에 받을 필요없다고 거부한다. 반면에 우리가 무시하는 멕시칸들은 달랐다. 이들은 전도지를 하나 받고는 자기가족들을 위해 하나더 달라로 손을 뻗는다. 미국내에서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이들에게 구원자 예수는 유일한 희망이다. 어떤 목사님은 이후 멕시코까지 진출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증거하고 가는 족족 예수님을 영접하니 이 마지막때에 추수할 곡식은 많으나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 한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 세위진 기독교국가 미국이 더이상 종교이민에 대한 시선이 곱지않다. 모든 종교이민 케이스를 색안경을 끼고 볼 뿐만아니라 급행수속도 중단하겠다고 한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를 증거하라고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명령하신다. 선교의 사명을 갖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들은 이번 사태에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멕시코를 포함한 많은 나라와 민족이 그대를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2006-12-04

[전문가칼럼] 삶에 멘토가 있으십니까

내게 아무런 보답없이 도움을 주셨던 분이 있습니까 ” “많은 갈등과 혼란을 겪을 때, 고민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있었습니까 ” “청소년기에 친구나 부모님께 털어놓기 힘든 고민들은 누구에게 얘기 했습니까 ” 이 질문들은 자원봉사자들 훈련시에 내담자의 입장을 이해시키고자 던지는 질문이다. 필자도 눈을 감고 누군가를 떠올렸을 때 청소년기에 도움을 주셨던 몇몇 분이 떠오른다. 영어선생님, 전도사님, 그리고 언니… 그분들은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아끼지 않았고 힘이 되어주었으며 지금의 나를 이끌어준 멘토(mentor)였다. 멘토의 어원은 수 천년전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Odysseus) 트로이 원정을 떠나면서 그의 친구이자 조언자인 멘토(Mentor)에게 그의 아들을 맡겼다고 한다. 멘토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에게 보호자이자, 스승, 상담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멘토는 ‘현명하고 믿을 수 있는 의논상대, 스승, 조언자’의 뜻을 갖게 되었다. 멘티(Mentee)란 멘토로부터 조언을 받는 상대로 일컬어지고, 멘토링(Mentoring)은 멘토와 멘티가 대화와 여러활동을 통해 맺는 인간관계의 형성을 의미한다. 즉, 멘토링에는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인간관계 기술을 증진시키고, 정체성 확립을 도우면서 건강한 인간관계를 도모하는 기본적 개념이 깔려있다. A는 이민온지 2년된 9학년생이다. 한국에서와는 달리 부모님이 주말에도 일하시느라 센트럴 파크에도 한번 가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우등생이었던 A는 학교에서는 아직 영어가 서툴러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해있는데, 부모님께서는 왜 더 잘하지 못하는냐고 다그치시거나 영어책만 읽으라고 강요하신다. A는 한국친구와 한국학교가 너무 그립고 현재의 학교에서는 잘 되지않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화만 난다. 누군가 센트럴 파크를 함께 걸으며 이 답답한 마음을 들어줄 수 있다면…. B는 미국에서 태어나 16년동안 미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안고 자라왔다. 그러나 가끔씩 동양인이라고, 또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짜증이 난다. 또 동양인인데도 수학을 왜 잘 못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들을 때면 화가난다. 곧 대학도 가야하는데 누구하나 어떤 식의 준비가 필요한지, 어떤 전공이 어떤일을 하게되며 대학생활은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1세대인 부모가 학원에서 얻은 정보와 친구들에거서 얻어들은 것이 전부이다. 언니나 오빠가 있어서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이해해주고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는지 알려줄수 있었더라면…. 학교나 진로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누군가 알려줄 수 있었더라면… . C는 이제 7학년에 올라가는 외아들이다. 어릴 적에 부모가 이혼 해서 엄마와 함께 살지만 무척 행복하게 자랐다. 하지만 아빠의 기억이라곤 하나도 없다. C와 함께 농구경기를 할, 또 신체변화에 대한 궁금증에 대답해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한다. 함께 뛰어놀고, 신체에 갑자기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알려줄 형이 있었으면…. 이 청소년들에게 멘토란 삶에서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또 부모와의 관계를 잇는 매체일 수 있다. 청소년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주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식과 비슷한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역할모델이 되어준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멘토가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 마약과 음주, 폭력사용의 확률이 적다고 한다. 또한 학교 출석률과 성적이 나아지고 친구와 부모관계 또한 더욱 원활해진다는 결과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멘토와 멘티의 연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지는 멘토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인터뷰와 범죄기록여부의 철저한 조사를 마쳐야하며, 멘토가 되기위한 특별한 교육 또한 필요하다. 무엇보다 한아이를 위해, 또한 지역사회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열정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놀랍게도 많은 1.5세와 2세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점점 더 친언니나 형이 줄어들고, 확대적인 의미의 가족을 이루어가는 사회에서, 멘토링은 멘토와 멘티를 통해 부모와 자녀를, 가정과 지역사회를 잇는, 결국은 건강한 사회를 이루어나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다시한번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혹시 삶에 멘토가 있었거나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주신 적은 있으십니까 ” “혹시 자녀를 멘토에게 맡겨 보시겠습니까 혹은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주시겠습니까 ”

200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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