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우리가 기다리는 기적
열흘 뒤면 부활절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고난 끝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말씀하신 대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예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이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죽은 이를 살리는 일도, 바다를 가르는 일도 기적이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창조주이신 그분은 언제나 모든 만물의 근원이고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작가 박완서 선생은 ‘일상의 기적’이라는 수필에서 한 중국 속담을 인용한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다.” 그녀는 어느 날 허리를 다쳐 하룻밤 사이에 세수하거나 양말을 신는 일조차 어려워진 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를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지난여름, 살렘고아원의쟌 목사는 말했다. “우리에겐 기적이 필요해요.” 기적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기적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끼니를 거르지 않아도 되는 하루,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흙먼지 나는 길을 따라 학교에 가고, 어른들은 일터로 향하는 그런 날들. 아픈 아이들이 치료받고, 미래를 꿈꾸며 공부하고,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쟌 목사가 말한 기적은, 총성이 멎고, 갱들의 폭력이 사라지고, 아이들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삶이다. 사람들은 종종 기적을 초자연적인 사건으로만 생각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며, 삶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갈망한다. 죽은 사람이 일어나고, 앉은뱅이가 걷고,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는 사건을 생각한다. 우리의 기적은 다르다. 아이티에서 바라는 기적은 공포의 땅이 한순간에 평온해지고, 모든 사람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맑은 물을 마시며, 아플 때 치료받고, 꿈을 위해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바다 위를 걷고 싶다고 바란 적이 없다.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사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일 뿐이다. 총성과 폭력이 일상화된 땅에서 끼니를 가장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일상의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 끼니때 밥 먹고, 수업하는 날 학교 가고, 돈 벌러 직장 가는 일은 세수하거나 양말 신는 것 같은 소소한 일상일 텐데, 지금 우리는 그 소소한 일상을, 기적을 기다리듯이 기다린다. 죽은 아이가 살아나는 기적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이 잘 치료받아 죽지 않고 살아가는 날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고아원 건물에서 쫓겨나 거리를 떠돌아야 하는 부모도 없는 고아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지붕 있는 잠자리를 갖는 날을 기다린다. 마음 놓고 가서 오래 묵은 안부를 물을 수 있기를 우리는 지금 기적을 구하는 심정으로 기도한다. 우리는 기도한다. 부활하신 주님처럼 우리의 일상이 다시 살아나기를, 잃어버렸던 평범한 삶이 회복되기를, 도와주는 이 없는 땅에서, 서로가 손을 내밀며 평안히 살아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두려움이 환희로 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마음에 품고, 오늘도 우리는 아이티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꽃 피듯이 자연스러운 일상의 회복을, 잔잔한 평화를, 그리고 편안한 숨 쉼을. 너무도 평범하고 소소한, 그러나 너무도 소중한 그 일상을 말이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기적 예수 부활 총성과 폭력 고아원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