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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스페셜올림픽 선언문의 교훈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지난 8일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지적 발달장애인 스포츠 축제인 ‘2025 토리노 스페셜올림픽 세계동계대회’가 열린 것이다. 100개국에서 1500여명의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 참가해 15일까지 축제의 장을 만든다.   스페셜올림픽은 지난 1968년 시카고에서 첫 대회를 시작으로 동계 대회는 이번이 12회째라고 한다. 2017년 오스트리아 대회 이후 8년 만에 열리는 대회인 만큼, 개막식 분위기는 과거의 그 어느 대회보다 뜨거웠다고 한다.   스페셜올림픽은 발달 장애인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사회 진출을 유도하자는 취지로 열리는 대회다. 경쟁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참가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동등한 실력의 선수나 팀을 한 조에 묶어 조별로 순위를 가린다. 또한 경기에 참가한 선수 전원이 시상대에 오르고, 국가별 등수는 가리지 않는다.   스페셜올림픽을 페럴림픽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페럴림픽은 뇌성마비, 절단장애, 시각장애 등 신체 및 감각장애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인 반면, 스페셜올림픽은 지적 발달장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올림픽이다.   분위기상, 두 대회는 많은 차이가 있다.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선수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경쟁하는 대회다.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출전 선수들에게는 순위에 따라 메달이 수여된다.   반면 스페셜올림픽은 순위보다는 스포츠를 통해 선수들이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가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참가 선수들 전원이 순위에 관계없이 모두 시상대에 오른다.     페럴림픽과 스페셜올림픽이 서로 분위기는 다르지만, 장애인 선수들이 대회를 통해 당당히 세상 앞에 나서는 축제라는 점에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토리노에서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8일, 댈러스에서도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재미대한 장애인 체육회(회장 남정길) 선수권 대회 및 재미대한 장애인 볼링협회(회장 정성일) 선수권 대회가 개최됐다. 스페셜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회에 지적 발달장애를 가진 한인 선수들이 참가했다. 이번 대회는 내년 6월5일부터 7일까지 댈러스에서 열리는 제3회 전미주 장애인 체육대회를 앞두고 일종의 ‘예행연습’ 형식으로 치러졌다.   댈러스를 비롯해 애틀랜타, 캔자스, 네브래스카, 시카고, 그리고 멀리 경기도에서도 선수들이 참가했다. 선수들은 볼링, 한궁, 콘홀, 탁구, 보치아 등의 종목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폐막식에서는 축제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종목별 메달 수여식도 열렸다. 순위에 들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기념품이 수여됐다. 지난해 메릴랜드에서 열린 제2회 대회에서 안면을 텄던 탓일까. 선수들은 타지역 선수들과 허물없이 웃고 즐기며,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를 즐겼다. 선수들과 함께 나온 보호자들도 흐뭇해 했다.   메달 수여식에 앞서 사회자가 ‘스페셜올림픽 선수 선언문’을 낭독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나는 승리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길 수 없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하겠습니다.” 그날 현장을 취재하면서 스페셜올림픽 선수 선언문을 처음 들었다. 뭔가 강력한 것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런 각오로 매사에 임하지 않았을까”하는 뉘우침이랄까.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하는 자체만으로 이들은 이미 도전에 성공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비장애인들은 자신이 장애인들을 ‘배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용기로 삶에 도전하는 이들에게서 비장애인들이 오히려 배워야 할 게 더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년 6월 댈러스에서 열리는 제3회 전미주 장애인 체육대회 역시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의 자리가 아닌, 지역사회가 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삶의 교훈을 얻는 자리다.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하는 그대들의 모습을 그리며, 내년 댈러스에서 그대들과의 재회를 기다려 본다. 토니 채 / 댈러스중앙일보 편집국장중앙칼럼 스페셜올림픽 선언문 토리노 스페셜올림픽 스페셜올림픽 개막식 선수권 대회

2025-03-13

[문화산책] 철학적 예술영화 ‘토리노의 말’

영화 ‘토리노의 말’은 매우 철학적이고 무거운 예술영화다. 헝가리의 감독 벨라 타르가 2011년에 발표한 146분짜리 흑백 작품이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에 실린 글을 읽고 바로 유튜브를 찾아서 보았다.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보았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아쉽다.   이어령 선생의 표현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루한 영화”다. 하지만 볼수록 묘한 매력과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다. 영화가 전하는 철학적 메시지도 씹을수록 깊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작가주의 감독답게 화면을 밀고 나가는 영상 미학도 압도적이다.   영화는 철학자 니체의 일화를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면서 시작된다. “1889년 1월3일, 토리노 광장. 프리드리히 니체는 카를로 알베르토 거리 6번지의 집에서 외출을 한다.” 그 토리노 광장에서 늙은 말이 마부에게 채찍질을 당한다. 보다 못한 니체가 달려가서 늙은 말의 목을 끌어안고 운다. 말 대신 채찍을 맞으면서 “때리지 마, 때리지 마”라며 울다가, 미쳐버린다. 이웃에 의해 집으로 옮겨진 니체는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고 웅얼거린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는 식물인간에 가까운 삶을 10년간 살다가 56세에 세상을 떠난다.   이후 영화는 한쪽 팔이 불편한 마부와 딸, 그리고 늙은 말이 황량한 벌판 외딴 오두막에서 사는 모습을 지루한 흑백화면으로 2시간도 넘게 그려나간다. 중간에 잠깐 이웃 사람과 집시 무리가 등장하지만, 화면을 채우는 것은 두 사람과 늙은 말이다. 이렇다 할 사건도 없고, 대사도 거의 없다. 단조롭지만 장엄하게 반복되는 음악과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흙, 바람, 물, 불…. 그렇게 아름답고 장엄한 한 편의 영상시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첫 대사가 “식사하세요”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22분 만에 나온다. 마지막 대사는 “먹어! 먹어야 해”다. 식사는 달랑 삶은 감자 한 알이 전부다. 그렇게 반복되는 엿새 동안의 단조로운 생활을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와 느림의 미학으로 묘사한다. 인간의 존재와 세상의 종말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다. 그동안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이 일어난다. 말이 죽고, 바람이 그치고, 하나밖에 없는 우물이 마르고, 불이 꺼지고, 빛이 사라진다. 아버지와 딸은 오두막을 떠나기로 하고 마지막 식사를 한다. 성경 창세기를 거꾸로 돌리는 묵시록이다.   이 작품은 벨라 타르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로 큰 화제를 모으며 201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국제비평가상 등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전주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특별 상영되었다. 벨라 타르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감독 은퇴를 선언했다. 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 이제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뜻일까?   세계 예술영화의 맥을 잇는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영화감독의 한 사람인 그는 유명 감독들과 동시대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는 동유럽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뉴욕타임스는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1994)는 상영시간이 7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사탄탱고’를 보는 일곱 시간은 매 순간 압도적이었고, 매혹적이었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매년 이 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수잔 손탁의 말이다.   혹시 시간이 나시면 영화 ‘토리노의 말’을 보시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가도, 머뭇거리게 된다. 할리우드의 상업적 오락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영화일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다.   오늘날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산업이다. 엔터테인먼트가 예술을 대신하고 디지털이 필름을 대신하고 있다. 그럴수록 더욱 진지한 예술영화가 그리워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예술영화 토리노 세계 예술영화 베를린 국제영화제 전주 국제영화제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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