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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눈먼 사랑을 구경한 죄

간신히 얻어가진 밸런타인 장미꽃은 일주일이 넘어가자 시들었다. 거꾸로 매달아 말려볼까 하다가 말린 꽃으로 사랑을 증명하는 듯한 궁색한 짓은, 내 나이엔 하는 게 아니다 싶어 초록색 쓰레기 통에 과감히 던졌다. 안개꽃과 유칼립투스는 아직 쓸만하건만.   신혼부부도 아니고 45년 동안이나 살면서 무슨 사랑 운운할 게 남아있을까? ‘동지애’ 정도겠지.   50대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이를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중계했다. 사랑과 연기와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지 않은가?     본인 말로는 사랑이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부적절한 관계였다. 눈먼 사랑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 같았다. 이목이나 평판이 두렵지 않은지, 오히려 그 사랑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가십거리의 가장 좋은 소재인 남녀상열지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특히 우물가의 중년여인들에겐 더 할 수 없는 수다의 소재였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감춰진 욕망을 자극하기도 하며, 구경꾼인 나는 적어도 도덕적 평가에서 자유롭다는 안도감에 대리만족의 스릴을 즐기는 것이다. 우린 불륜드라마의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열심히 구경을 한 비극의 관람자들이었다.   그녀는 때때로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들러 그녀의 남편에게 우리 회사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며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보다 못한 내 남편이 “만약 그녀가 우리 사무실의 문턱을 다시 넘으면 당신과 이혼할 것!”이라며 내게 경고했다. 가정에 불성실한 그녀와 내가 친구인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즈음 그녀의 사랑도 오래가지 못하고 깨졌다. 그녀의 행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많이 알고 있던 나는 그녀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내 험담을 하기 시작했고 옆에서 열심히 들어주던 나는 나쁜 여자가 되었다. 그야말로 사고는 자기가 치고 욕은 구경꾼이 먹는 상황이 되었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간혹 글 쓰는 이들 중에 사랑을 경험해 봐야 실감나게 쓸 수 있다며 부도덕을 합리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살인에 대해 쓰려면 살인을 직접 해 봐야 하는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글 소재가 없기로서니 부정과 불륜을 실천해 가면서 까지 글을 써야만 하는지. 그건 문학에 대한 모독이며 독자를 배반하는 일이기도 하다.   케케묵은 불륜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옳지 않은 이야기는 듣지도 말 것이며 악한 행실과는 멀리 떠나 있어야 안전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현대인의 문제는 더 이상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죄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할 바에는, 옆에서 열심히 듣기만 해도 악행에 동조하는 것임을 늘 명심하며 살아야겠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사랑 구경 밸런타인 장미꽃 초록색 쓰레기 우리 사무실

2025-03-10

색채감 가득한 뮤지컬 영화로 재해석…‘위키드’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은근한 조롱에 시달려야 한다.     엘파바는 초록색의 피부를 가졌다. 태어날 때부터.     그녀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배운다. 인간사의 그 많은 판단의 기준들, 주어진 불리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압박과 편견을 견디어 내며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찾아가는 엘파바. 그녀가 주인공인 뮤지컬,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1995년 소설, 1900년 발표된 ‘오즈의 마법사’의 한 갈래, 존 M. 추 감독의 새로운 영화.     인간과 동물들이 행복하게 어울려 지내는 평화로운 마을 오즈. 초록색 피부를 갖고 태어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는 어릴 적부터 주변의 조롱에 시달리며 성장했다. 그러던 중, 대학 입학 시기가 다가오고 교장이며 마녀인 마담 모리블(미셸 여)의 눈에 들어 동생 네사로사와 함께 쉬즈 대학에 입학한다. 자신과는 완벽하게 다른 공주병 환자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와 룸메이트가 된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엘파바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글린다. 달라도 너무 다른, 그래서 사사건건 부딪치던 두 사람은 점차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둔 외로움과 열망을 보게 된다. 우정이 싹트고 마법 같은 두 사람의 운명은 예상치 못한 모험과 위기로 이끌려 간다.       정의롭고 의협심이 강한 ‘나쁜 마녀’ 엘파바, 주어진 환경의 특권을 누리며 자라온 ‘착한 마녀’ 글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법의 힘이 강해지는 엘파바. 이를 지켜보던 마담 모리블은 오즈의 마법사에게 알린다.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엘파가는 나쁜 마녀로 낙인찍히게 되었을까.     불륜남이 엄마에게 초록색 약을 먹여 초록 아기로 태어난 엘파바. 초록색 피부색 때문에 어렸을 놀림을 당했고 특히 아빠로부터 구박을 받았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주변 사람들의 은근한 경멸과 조롱을 받았다.     한편 쉬즈 대학이 동물의 강의를 금지하면서 유일한 동물 교수 딜라몬드 박사(피터 딩크리지)가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외모로 인해 핍박받아온 엘파바만이 그의 딱한 처지를 이해한다. 안온한 삶을 보장받은 대부분의 오즈 사람들과 달리, 다수의 인간에 밀려 핍박받는 동물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엘파바, 이를 마법사에게 알려 도움을 받고자 결심한다.     마침내 마법사의 초대장이 도착하고, 부푼 마음으로 글린다와 함께 마법사의 성, 모두가 초록색인 에메랄드 시티로 찾아간다. 이제 마법사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지만 엘파바는 그곳에서 그동안 감추어졌던 거대한 음모와 마주하게 된다. 이제 오즈의 마법사에 저항하여 중력을 날아가야 하는 엘파자.       ‘위키드’에는 ‘오즈의 마법사’에서의 선과 악으로 구별되는 세계관, 엘페바와 글린다 사이의 복잡한 사연, 그로 인한 미묘한 감정선이 깔렸다. 다수에 속하지 못한 소수들이 감내해야 하는 차별과 편견은,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성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점이다.     타고난 카리스마의 마법사 아스테로이디 역의 제프 골드블럼, 신비스러운 마녀 마담 모리블 역의 미셜 여, 매력적인 피에로 역의 조나단 베일리, 엄숙한 딜라몬드 박사 역의 피터 딩클리지 등 출연진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역량을 고르게 발휘한다.   글린다를 연기한 아리아나 그란데와 에리보의 케미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위키드’는 신시아 에리보의 영화다. 영국왕립학교 출신으로 뮤지컬 무대에서 주목받아온 배우였던 그녀의 연기는 그간 영화들에서는 과소 평가되어왔다. 억제된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엘파바의 캐릭터에 고뇌의 깊이를 더한 에리보의 존재감 넘치는 연기는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로 선정 되기에 충분하다.     평단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성숙한 팝스타의 이미지를 구축한 그란데를 셀레나 고메즈(에밀리아 페레즈)와 함께 2024년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인 팝가수 출신의 배우로 평가했다. 두 배우 모두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놓고 경합을 벌일 전망이다.     그란데와 에리보 케미의 최고의 순간은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접하게 된다. 두 배우 모두 숨 막힐 정도의 감동적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간다. 에리보는 깊이를, 그란데는 즐거움으로 관객들을 몰입의 경지로 몰아간다.       존 M. 추 감독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오랜 팬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엔터테인먼트의 끝판왕’이라는 명성을 실감케 한다. 감독 특유의 이국적이고 다색적인 색채감, 황홀한 영상미로 가득 차 있다. 배우들의 고른 연기, 장면마다 감동을 불러오는 음악적 시퀀스, 야심 찬 각색과 촬영, 리드미컬한 편집, 세세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뛰어난 촬영으로 작품상을 비롯한 오스카상 다수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 영화평론가위키드 재해석 초록색 피부색 브로드웨이 뮤지컬 뮤지컬 그레고리

2024-12-11

[삶의 뜨락에서] 부서지는 경험

지난 두 달 동안은 류시화에게 푹 빠져 살았다. 자아를 찾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여행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영적 지도자, 수행자, 명상가를 직접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온 이 시인은 몸 자체가 글이다. 그의 생애는 그가 말했듯이 한 편의 영화이고 그는 그 영화의 주인공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환자를 좋아한다. 환자 한 사람을 대할 때마다 나는 그의 온 생애와 가족관계, 대인관계를 배운다. 특히 중환자실에서는 생과 사의 교차로에 처한 환자나 가족들의 반응과 결정 과정을 보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토록 많은 생을 간접경험으로 보고 듣고 배운 나 또한 이야기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시인과 많은 공감대를 갖는다.     우리는 죽음에 패배하기 위해 태어났다. 하지만 아름답게 패배하는 일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심장이 침묵하고 있으면 스스로 심장을 깨워 그 고동 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가슴 한복판에 멍이 들도록 온갖 감정에 세게 두들겨 맞지만 그런데도 빛나려고 애쓰는 존재들이다. 누구에게나 초록색 무화과나무가 있다. 미래라는 열매의 나무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단절되지만 가장 큰 단절은 지난날 자신이 꿈꾸었던 꿈과의 단절이다. 세상의 기준이 자신의 갈망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그때가 바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야 할 때다.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되어 미움받는 것이 덜 위험하다. 다른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편함과 갑갑함을 느끼는 시간은 당신이 성장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이 역경을 제대로 활용하면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진실을 경험하는 순간 정신에 빛이 들어 말의 유희를 벗어나 깊어지고 겸허해진다. 진실이 우리 안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침묵만이 거주하는 공간이 생겨난다. 자신에게 돌아오라는 의미가 이것이다. 더 이상 덜어낼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가 완벽함에 이르는 순간이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한 피스의 큰 돌기둥에서 다비드상만 남기고 다 쳐냈듯이 말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다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보다 문제를 발견하는 눈을 더 크게 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한가지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무한히 어떤 것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자다. 하나의 모습으로만 굳어져서 다른 모습들을 자신으로부터 제외하는 것은 고집이고 집착이다. 물기를 완전히 쥐어짠 돌에는 존재의 다양한 기쁨이 스밀 수 없다. ‘단단한 바위에 봄이 어떻게/ 정원을 만드는가/ 흙이 되라 부서져라/ 그러면 그대의 부서진 가슴에서/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날 것이니/ 너무 오랜 세월 그대는 돌투성이었다/ 다르게 해보라/ 항복하라’ 시인 잘랄루딘 루머의 시다.     때로는 온 존재가 부서지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라는 굳센 생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고 전체와 하나가 될 수 있다.     나는 불행한 인간이 아니다. 단지 불행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는 울고 웃는 순간이 교차할 뿐이다. ‘나’라는 고정된 생각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이 나 자신이 된다. 존재는 거대하고 불가해한 수수께끼이다. 우리는 그렇게 매 순간 대상에서 대상으로, 하나의 신비에서 또 다른 신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며 새로 태어나는 영혼을 만난다면 “이 세상은 당신이 상상하는 지구가 아니고 인생이 아닐 수도 있어. 하루하루가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어. 하지만 자신의 관념과 기준 속에 갇혀있지만 않는다면 세상은 설레고 감동할 일들로 가득 차 있어. 그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눈을 크게 떠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멘트인가. 정명숙 시인삶의 뜨락에서 경험 가족관계 대인관계 초록색 무화과나무 사의 교차로

2024-06-14

[이 아침에] 나 하나쯤이야

자주 다니는 프리웨이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큰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야 한다. 평소에는 주변을 살피다가 차가 오지 않으면 우회전하는데, 아침 출근 시간에는 초록색 신호등이 켜져야만 우회전할 수 있는 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는 그런대로 신호등을 지키며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차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뭐가 그리 급해졌는지 차들 대부분이 신호를 무시하고 우회전한다.     신호를 무시하고 줄지어 우회전하는 차들을 따르다 보면 내가 신호등 앞에 설 때가 있다. 눈치 보다 슬쩍 우회전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그래도 목사인데 나부터라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린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마음으로 약간의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 법을 어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 하나라도’ 교통법규를 준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티기도 쉽지 않다. 성미 마른 사람들이 누르는 경적에 놀라 등골이 오싹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살맛 나는 세상과 살기 힘든 세상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마음으로 법을 어기고, 쓰레기를 버리고, 새치기하고,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다면 살기 힘든 각박한 세상이 될 것이고, ‘나 하나라도’라는 마음으로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법을 지키고, 자연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사람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면 세상은 분명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옛날 어느 왕이 신하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열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가장 좋은 포도주 한 병씩을 가져오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각자 가지고 온 포도주를 이 항아리에 쏟아 함께 나눠 마시면서 우리가 모두 하나임을 보여줍시다!” 잔치가 열리는 날 진수성찬이 차려진 잔칫상에 신하들이 둘러앉았다. 왕은 큰 항아리에 담긴 포도주를 내오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신하들이 가져온 최고급 포도주를 모은 항아리에서 퍼온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맹물이었다. 신하들 모두 ‘나 하나쯤이야’하는 마음으로 포도주 대신에 물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었다.   이 아침에도 신호등 앞에서 ‘나 하나쯤이야 어떻겠어’라며 슬쩍 우회전하라고 꼬드기는 속삭임과 ‘나 하나라도 법을 지켜야지’라는 의연한 결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 마음을 위로하는 시를 만났다.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제목의 시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고 보니 세상은 온통 ‘나 하나라도’라는 마음이 모인 곳이다. 나 하나쯤 꽃 피어 무슨 변화가 있겠느냐는 비관을 딛고, 나 하나라도 꽃 피우겠다는 희망이 모여 꽃밭을 이루었다. 나 하나쯤 떨어져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절망을 딛고, 나 하나라도 세상을 적시겠다는 용기를 낸 작은 빗방울이 떨어져 강이 되고 호수를 이루었다. 나 하나쯤 소리 낸다고 누가 알아주겠느냐는 좌절을 딛고, 나 하나라도 소리높여 노래하겠다는 기백으로 부르는 새들의 지저귐이 모여 새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마음을 ‘나 하나라도’라는 다짐으로 바꾸자. 그 다짐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은 더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초록색 신호등 최고급 포도주 포도주 대신

2024-05-22

[디지털 세상 읽기] 아이폰 vs 안드로이드폰

아이폰 사용자와 안드로이드폰 사용자 사이에서도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문자 보내기 외의 기능에는 제약이 많다.     비디오와 사진, 그리고 다양한 효과를 공유하기 힘든데, 이는 애플이 RCS라는 메시지 전송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한 기자가 애플 CEO인 팀 쿡에게 이 문제를 꺼냈다. 기자는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어머니가 내 아이폰으로 사진, 동영상을 보내기 힘들어하신다”며 왜 애플은 메신저에서 업계 표준을 따르지 않느냐고 물은 거다. 이 질문에 팀 쿡은 짧게 답했다. “어머니께 아이폰을 사드리세요.”   팀 쿡의 대답 뒤에는 구글과 애플 사이의 오랜 실랑이가 존재한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사용자가 아이폰 사용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애플 기기와는 다른 색(초록)으로 뜨고 기능이 제한되는 걸 두고 “이제는 애플이 메시징을 고칠 때가 됐다”는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아이폰을 쓰는 아이들 사이에서 “초록색 메시지를 보내는 애랑은 사귀지 말라”는 따돌림까지 벌어진다는 보도도 애플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애플의 생각은 다르다. 그런 압력은 안드로이드폰 사용자가 아이폰으로 넘어오게 하는 좋은 유인책인데, 텍스트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런 유인책을 포기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애플의 고집은 시장점유율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아이폰은 미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안드로이드폰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는 안드로이드 운영체계가 압도하고 있지만 프리미엄 이미지 전략이 미국 시장에서 적중한 셈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아이폰 안드로이드 시장점유율 증가 초록색 메시지 사용자 사이

2022-09-16

[디지털 세상 읽기] 아이폰 vs 안드로이드폰

아이폰 사용자와 안드로이드폰 사용자 사이에서 문자 보내기 외의 기능에는 제약이 많다. 비디오와 사진 등을 공유하기 힘든데, 이는 애플이 RCS라는 메시지 전송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 기자가 애플 CEO인 팀 쿡에게 이 문제를 꺼냈다. 기자는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어머니가 내 아이폰으로 사진, 동영상을 보내기 힘들어하신다”며 왜 애플은 메신저에서 업계 표준을 따르지 않느냐고 물은 거다. 이 질문에 팀 쿡은 짧게 답했다. “어머니께 아이폰을 사드리세요.”   팀 쿡의 대답 뒤에는 구글과 애플 사이의 오랜 실랑이가 존재한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사용자가 아이폰 사용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애플 기기와는 다른 색(초록)으로 뜨고 기능이 제한되는 걸 두고 “이제는 애플이 메시징을 고칠 때가 됐다”는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아이폰을 쓰는 아이들 사이에서 “초록색 메시지를 보내는 애랑은 사귀지 말라”는 따돌림까지 벌어진다는 보도도 애플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애플의 생각은 다르다. 그런 압력은 안드로이드폰 사용자가 아이폰으로 넘어오게 하는 좋은 유인책인데, 텍스트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런 유인책을 포기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애플의 고집으로 지난주 아이폰은 미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안드로이드폰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프리미엄 이미지 전략이 미국 시장에서 적중한 셈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아이폰 안드로이드 사용자 사이 초록색 메시지 프리미엄 이미지

2022-09-14

[열린 광장] 파란 말풍선

 어느 업종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빠르게 변하는 테크 업계에서 특정 기업, 서비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젊은 고객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페이스북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젊은 사용자들의 감소다.     그런데 애플의 아이폰의 경우 미국에서는 구매자들의 평균 연령이 오히려 내려가고 있다. 미국 소비자의 40%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는데, 18~24세 연령대에서는 그 비율이 70%가 넘는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월스트리트저널의 최근 기사에 따르면 애플의 메신저인 아이메시지(iMessage)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이메시지는 안드로이드폰과도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할 경우 안드로이드폰 사용자의 메시지는 초록색 말풍선 안에 등장한다고 한다.     파란색 말풍선으로 뜨는 아이폰 유저와 금방 차이가 난다는 것.     게다가 이모지 사용을 비롯한 자잘한 기능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친구들이 모인 톡방에 초록색 말풍선이 보이면 귀찮게 생각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안드로이드폰의 평균 가격이 아이폰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초록색 말풍선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아이를 의미하는 잠재적인 시그널이 되었고, 심지어 “초록색으로 메시지 보내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는 말까지 한다고.     처음에는 순전히 기술적인 필요로 색을 다르게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사회적 낙인이 아이폰 사용자가 안드로이드폰으로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두는 록인(lock-in)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된 애플의 경영진은 변경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메시징 앱 내에서 시각적으로 두 운영체계에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 수적으로 많은 안드로이드가 메시징 시장을 장악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열린 광장 말풍선 초록색 말풍선 파란색 말풍선 메시징 시장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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