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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총격 희생자 애도와 회복 과정 표현" 허견 파슨스스쿨 교수 4주기 전시회

지역 곳곳에서 시냇물을 받아 눈물 모양 유리에 담았다. 100여개의 크고 작은 눈물이 공중에 매달려 흐른다. 빛에 비친 노란 유리 조형물은 황인종(아시안)을 표현한 동시에 영원한 평안을 알리는 황금종을 나타냈다. 차차 물이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속도만큼 슬픔이 줄어들고 평화가 마음에 찾아든다.   한인 1.5세 허견 파슨스 디자인스쿨 교수는 지난 15일 애틀랜타 고트팜 미술관에서 '아워 마더, 아워 워터, 아워 피스'라는 특별기획전시를 열었다. 2021년 애틀랜타 스파 총격 참사 4주기를 맞아 지난 2년간의 작품 활동을 모은 전시회다. 공공예술단체인 플럭스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반아시안 증오범죄 희생자를 기리고 공동체 치유를 도모하기 위해 기획됐다.   허 작가는 "총기폭력은 학교, 교회, 직장 등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다"며 "공공안전에 대한 신뢰가 깨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피해자로만 남지 않고 힘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전했다. 그가 생명을 낳고 돌보는 '강'에 집중한 이유다. 지역 곳곳의 하천에서 길어온 물에 반짝이는 노란 색깔을 입혀 물방울 형태 유리 조형물로 구현했다.   허 작가는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강물의 침전물은 서서히 가라앉고 물은 증발한다"며 "보이지 않지만 꾸준히 진행되는 애도와 회복의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직접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강 같은 평화', '저 건너편 강 언덕에' 등의 찬송가 모티브도 작품 속에 녹였다. 개척교회 목사였던 삼촌을 위해 예배에서 피아노 반주를 선보였던 어릴적 기억을 되살렸다.   이달말까지 진행되는 전시회는 지역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현대무용, 토론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같이 열린다. 이날 전시회 개막식 공연을 진행한 캐칭 망고 댄스(CMD)의 한인 댄서 매디슨 리는 "참사 이후 슬픔을 소화하는 긴 여정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채 함께 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취재, 사진 /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 특별기획전시 애틀랜타 애틀랜타 스파 참사 4주기 허견 파슨스디자인스쿨

2025-03-17

애틀랜타 스파 참사 4주기 맞아 이민단체들, 정책 토론회 개최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부르는 아시안 노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전히 이민자의 기본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시민단체 활동가, 고등학생, 대학원생, 주 하원의원 등의 참석자들이 5~7명으로 나뉘어 둥근 테이블 8개에 앉았다.   한인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의 목숨을 앗아간 2021년 애틀랜타 스파 총격 참사 4주기를 맞아 지난 16일 노크로스 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원탁토론회 모습이다. 아시안정의운동(AJM)과 귀넷아시안학생연합(GASA), 아시안증오범죄방지위원회 관계자 등이 모여 이민자 권리보호를 위한 정책 제안에 나섰다.   올해 추모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두 달째에 진행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소수인종에 대한 증오와 차별, 배제로 이어지는 반이민정책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그만큼 공론화돼야 할 의제가 많다는 것이 AJM가 올해 처음 공공 토론회를 개최하게 된 배경이다. 참석자들은 각자 관심사에 따라 아시안 청소년, 교육 및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노인 보호, 이민자 기본권, 불법체류자 대량추방, 젠더폭력, 총기안전 등 8개 주제 중 하나를 골라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모듬토의를 펼쳤다.   AJM의 빅토리아 허 활동가는 "지역사회 주민들이 걱정하는 최근의 문제들에 대해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전했다. 조지아 의회 아시아·태평양계(AAPI) 코커스 의장인 롱 트랜 하원의원(민주·던우디)은 "매년 참사 기일을 맞아 증오범죄 예방과 이민사회 결속을 위한 긍정적 변화를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되풀이 토론회 공공 토론회 아시안증오범죄방지위원회 관계자 참사 기일

2025-03-17

[우리말 바루기] '제주항공 참사'가 맞다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여객기가 불에 타고 산산조각이 났다.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졌다. 언론은 처음 ‘무안공항 참사’라고도, ‘제주항공 참사’라고도 했다. 지금은 주로 ‘제주항공 참사’라고 부른다. 모두 ‘참사’라고는 했지만 지역명과 기업명을 두고는 정리가 덜 됐었다.   언론이 ‘사고’라고 하지 않은 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에는 ‘우연’이란 의미가 깔려 있다. ‘참사’라고 불러야 사건의 책임 주체도 드러낼 수 있는 일이 된다. ‘참사’는 말 그대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어서 사실을 더 적극 반영한 말이기도 했다.   ‘무안공항 참사’라는 표현에는 지역명이 들어간다. 그 지역에 부정적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지역 혐오를 부추기게 된다. 대신 참사를 일으킨 기업의 책임은 감춰진다. 2007년 12월 7일 일어난 삼성중공업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불렸다. 기업의 책임은 희석됐고, 지역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졌다. 그래서 언론은 대부분 ‘제주항공 참사’라고 한다.   ‘제주항공 참사’로 숨진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사망자’가 아니라 ‘희생자’라고 한다. 사망자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이다. 희생자는 ‘어떤 일이나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거나 다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이다. 그들에게 희생자라고 하는 건 사전적 의미를 떠나 그들의 죽음이 개인적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죽음은 사회적이고 구조적이다.   어떤 일에 대해 명칭을 붙이는 건 중요하다. 정확한 표현이어야 사실이 뒤틀리지 않는다. 올바른 명칭은 진실로 가는 길이 되기도 한다.우리말 바루기 제주항공 참사 제주항공 참사 무안공항 참사 대신 참사

2025-01-07

[이 아침에] 안타까운 무안국제공항 참사

올해도 다 저물어 가는 연말 12월29일 오전 9시7분경 제주항공 여객기가 랜딩기어 고장으로 무안국제공항에 비상 착륙을 시도하다가 공항 외벽을 들이박고 폭발했다. 치솟는 불길 속에 탑승객 175명 승무원 6명이 갇혔다. 뒤꼬리 부분에 탔던 승무원 2명만 생존하고 전원 사망이라는 엄청난 비보를 접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맛보았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귀하고 귀한 생명이 한꺼번에 억울한 죽임을 당하다니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유가족의 슬픔은 오죽하겠는가. 비명에 횡사한 이들 가운데는 팔순을 맞이한 할머니와 딸과 사위, 외손자, 손녀들까지 모두 9명의 일가족이 여행을 다녀오다 참변을 당했다. 또 어떤 젊은 약혼자와 약혼녀는 3월에 결혼을 앞두고 여행을 떠났다가 황천객이 되고 말았다. 그 외에도 구구절절 사연이 많은 승객들…. 어떻게 이들의 영혼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남은 유가족의 비통함은 오죽하랴.   사고 당시의 상황을 이렇다고 한다.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 즉 새들이 엔진에 빨려들어가 엔진 고장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모든 기기가 연달아 고장을 일으켜 ‘랜딩기어(landing gear)’가 내려오지 않아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가 속력을 줄일 수 없어 활주로를 이탈하여 공항 외벽을 들이받았다고 한다.   물론 블랙박스와 항공기록일지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사고원인 규명을 하겠지만, 나대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비행기 기장이 활주로 말고 다른 곳으로 착륙을 시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허드슨 강의 기적’의 주인공 체슬리 ‘설리’ 셀렌버거 기장을 떠올렸다. 그가 몰던 항공기도 새 때의 습격을 받아 엔진 고장을 일으켰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는 현명한 판단으로 뉴욕 허드슨강에 비상 착륙하여 탑승객 전원을 살릴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1월15일 뉴욕 허드슨강에 US 항공기 1549편이 불시착해 155명 탑승객 전원이 구조되는 기적에 온 세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설렌버거 기장은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해 샬롯테 더글러스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 중이었다. 이륙한 지 얼마 안 되어 거위 떼들이 비행기를 향해 돌진해 엔진으로 빨려들면서 엔진에 불이 나 엔진이 멈춰 버렸다. 순간 기장은 이륙한 공항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혹은 가장 가까운 테터보로(Teterboro) 공항에 착륙할 것인가 고민했지만, 고도가 너무 낮아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비상착륙 할 때까지 3분28초가 걸렸고 탑승객 전원이 24분 만에 구조될 수 있었다. 기장은 탑승객 전원이 비상 구명보트에 탈 때까지 끝까지 비행기 안에 남아 진두지휘하고 맨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내렸다.   무안국제공항은 바다에 가깝다고 했다. 비상착륙지를 바다로 선택했더라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 안타까워 혼자 생각해 보았다.   손녀 딸이 유나이티드 항공 승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사고당하지 않도록 늘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렸으니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수영 / 수필가이 아침에 무안국제공항 참사 비행기 기장 탑승객 전원 엔진 고장

2024-12-30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미주 한인들과 유가족 온라인 간담회

조지아주를 비롯해 인디애나주, 보스턴 등 전국에서 시민 30여명이 후회와 감사, 다짐을 나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세월호를 잊지않는 애틀랜타 사람들의 모임'(애틀란타 세사모)이 12일 유가족과의 간담회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단원고 희생자인 시찬군의 아버지 박요섭씨와 창현군의 어머니 최순화씨, 예은양의 어머니 박은희씨가 한국을 넘어 10년간 이어지는 국제적 연대의 물결에 감사를 표하며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박은희씨는 "많은 사람들이 참사를 잊지 않는 것을 알기에 외로워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또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참사를) 열린 결말로 놔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이끈 장승순 조지아텍 재료공학과 교수는 "50대 중반 인생을 돌이켜볼 때 5분의 1은 세월호를 품고 살아왔다"며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해나가자"고 같은 마음을 표현했다.   참사 이후 10년간 외쳐온 '안전한 사회 만들기'는 여전히 절실한 과제다. 최순화씨는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목소리의 동력을 잃지 않고 꾸준히 안전 사회 건설을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으며 박요섭씨 역시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 만들기가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3년 뒤 발생한 2017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재난이 반복되는 현실이 연대의 중요성을 더욱 깨우쳐준다는 독일 뮌헨의 클레어씨의 발언도 있었다.   희생자 추모는 오는 27일 조지아 로렌스빌에서 열리는 가수 홍순관씨의 ‘춤추는 평화’ 콘서트에서 이어진다. 조지아 평화포럼이 주최하는 이 공연은 평화와 인권,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기획됐다.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애틀랜타 추모 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세월호 참사 조지아 평화포럼

2024-04-15

몬터레이파크 총격 희생자 후원금 도난

몬터레이파크 총격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자 추모 후원금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24일 NBC4뉴스는 ‘아케이디아 도넛’ 가게 부부가 지난 주말 동안 몬터레이파크 총격 참사 1주기 추모 및 생존자 상담치료를 돕기 위해 모금한 후원금 2000달러를 신원미상 절도범이 훔쳐갔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케이디아 도넛 가게 안주인 셸리 엉은 1년 전인 2023년 1월 21일 몬터레이파크 스타 볼룸 댄스 스튜디오 총기난사 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당시 셸리는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싸 총격 피해를 면했지만,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로 MPK 호프 레질런시센터에서 상담치료를 받아야 했다.   엉 부부는 총격 참사 1주기를 맞아 희생자 11명을 추모하고 상담센터에서 치료받는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 도넛 가게에서 모금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24일 오전 누군가 도넛 가게 앞에 주차된 업주의 세단에 접근했고, 유리창을 깬 뒤 트렁크에 있던 노트북과 후원금 2000달러를 챙겨 달아났다. 범행 장면은 도넛 가게 방범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아케이디아 도넛 가게 업주 프란코이스엉은 NBC4 인터뷰에서 “방범카메라 화면을 보니 누군가 뛰는 모습이 보였고 차로 가보니 (유리창이)깨져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아케이디아 도넛 가게는 피해 사실을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알리고, 온라인 모금 웹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9903cbf1)에서 새 후원금 모금에 나섰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몬트레이파크 희생자 몬트레이파크 총격 희생자 추모 총격 참사

2024-01-24

[열린 광장] 컨셉션호 참사가 주는 교훈

불은 삽시간에 탈출구를 막았다. 갑판 아래에서 잠을 자던 승객 33명과 선원 1명이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들은 전화를 붙들고, 신을 신다가, 또는 서로 끌어안은 채로 발견되었다. 모두 질식사했다고 한다.   2019년 9월 2일 새벽 남가주 샌타크루즈 섬에 정박 중이던 길이 75 피트 잠수정 ‘컨셉션(Conception)’호에서 화재가 발생해 많은 승객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아직도 정확한 화재 원인은 모른다. 다만 리티움 배터리와 전기 연결선의 과부하에서 발화한 불이 플라스틱 쓰레기통으로 번졌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난 6일 LA연방법원에서 배심원단은 선장의 과실로  34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유죄 평결을 내렸다. 선장은 약 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검찰은 34명에 각 10년씩, 합계 340년의 징역형을 구형하려 했으나, 재판부는 변호인의 요구대로 한 건의 사고로 간주했다.   공교롭게도 선장은 34년의 경력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는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가장 큰 과실은 불침번을 세우지 않은 것이다. 선원들의 소방과 대피 훈련도 없었다. 선박에는 방화용으로 두 줄의 50피트짜리 고무호스가 있었으나, 선원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소화기도 쓰지 않았다. 안내 방송 시스템은 가동되지 않았고 철제 쓰레기통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갑판 위에서 자고 있던 선장은 승객들을 향해 ‘메이데이(mayday·국제 위험 신호)’를 몇 번 외친 다음, 바다로 뛰어들었다. 불길이 배를 휩쓸어 손을 쓸 여유가 없었다고 선장은 진술했다. 검찰 측에서는 선장은 승객 구출 노력을 하는 것이 마땅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고 후로 미 해양경비대는 작은 선박이라도 두 개 이상의 탈출구, 화재 탐지 경보기, 소방 훈련, 소화기 설치 의무화 등의 안전 규정을 보강했다.     ‘컨셉션호’ 와 세월호의 선장이 취한 행동은 비슷하다. 승객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경험한 한국 사회의 ‘안전 의식’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교훈이다. ‘안전제일!’을 자랑하는 미국에도 그늘은 있었다. 바로 컨셉션호의 참사였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직장 또는 공장의 재난 대피 지침을 점검할 때다. 우선 대피 계획을 도면으로 작성한다. 그리고 경보기의 작동 방법을 알려준다. 또 각 종업원의 책임과 탈출구 및 탈출로, 그리고 집합 장소 등을 명시한다. 주기적으로 대피 훈련도 해야 한다. 컨셉션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 광장 컨셉션호 참사 이태원 참사 탈출구 화재 소방과 대피

2023-11-26

[열린광장] 참사로 이어지는 자동차 과속

맑은 하늘의 날벼락이다. 지난 10월 17일 밤 9시쯤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에서 4명의 페퍼다인 대학 졸업반 여학생들이 과속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사고를 낸 22세의 운전자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렸으면 주차된 차 3대를 들이받고 옆에 서 있던 여학생들까지 덮쳤을까.   어이없는 참변을 당한 여대생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페퍼다인 대학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 운전자는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이 됐다. 그의 인생도 망가진 셈이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얼마나 마음이 괴로울까. 그도 불쌍하기 짝이 없다.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끼고 있는 샌타모니카 파머스 마켓에서는 지난 2003년 86세의 시니어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군중 속으로 질주한 사건이 벌어졌었다. 당시 10명이 숨지고, 부상자가 70명이나 발생하는 큰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캘리포니아주는 시니어의 운전면허 갱신 조건을 강화했다.   요즘 눈이 텁텁하고, 오른쪽 눈은 자꾸 감기려고 한다. 시력이 나빠지고 있다. 눈에 좋다는 비타민은 모두 챙겨 먹고 당근도 많이 먹지만 앞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은근히 걱정이다. 시력이 더 나빠지면 운전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 날개 부러진 새가 된다. 매일 약국,도서관, 월마트, 코스트코, 그리고 타겟 등을 드나드는데 운전을 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요즘도 가능한 밤 운전은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하루 평균 시니어 운전자 20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700명이 부상을 입는다고 한다. 은퇴자협회(AARP)에 의하면 시니어들이 운전대를 놓는 평균 나이가 75세다. 미국에서 운전은 연령 제한이 없다. 나는 앞으로 10년 그러니까 100세까지 운전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체력을 기르고 인지 능력을 향상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가장 좋은 체력 훈련은 수영이다. 인지 능력 훈련으로는 독서, 신문 읽기, 그리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나는 아직 종이 신문을 고집한다.     이번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 사건은 젊은이나 시니어 운전자나 과속하면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자동차는 편리한 교통수단이지만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 요즘 나는 복잡한 주차장에서는 주위를 살피며 더 천천히 운전한다. 아직 천천히 운전한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손주들의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운전 교육 비용을 주고 있다. 전문가에게서 도로 규정, 방어운전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운전은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되며,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운전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은 가장 값진 투자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자동차 참사 시니어 운전자 운전자 20명 운전면허 갱신

2023-10-29

[살며 생각하며] 하인리히 법칙과 이태원 참사

하인리히 또는 1:29:300 라는 법칙이 있다. 사고로 1명이 사망하는 데는 비슷한 원인으로 29명의 경상자에 사고를 당할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가량 있었을 수 있다는 재해예방지침이다.   1931년 Travelers 보험회사 직원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7만5000건의 재난사고를 분석하여 얻어낸 통계로 재해현장에서 교과서처럼 인용되는 가설이다.   내일은 10월 29일, 정확히 1년 전 이태원에서 꽃다운 한국 젊은이 133명, 이란 5명, 중국, 러시아 각 4명, 일본, 미국 각 2명 등 15개국 158명이 압사하고 196명이 다친참사 발생 1주기다. 이날 아침부터 이태원 일대는 핼러윈 축제에 참석하려는 각국의 청년들이 몰렸고 저녁 6시가 되면서 문제의 해밀턴호텔 옆, 길이 45m 폭 3~4m 좁은 내리막길은 세계음식거리 및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로 컨트롤 불가 상황이 몇 시간째 방치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의 저녁 10시 15분! 더는못 버틴 1~2명이 쓰러졌고 그 위로 수십 수백명이 덮치는 도미노 연쇄 깔림 현상이 일어나면서 더러는 내장파열로 더러는 숨을 못 쉬어 산채로 죽어간 전대미문의 미개형 참사가 수도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것이다.   3주 전인 10월 7일 오전 6시 30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예고 없이 장벽 넘어 이스라엘을 향해 20분에 걸쳐 5000여발의 로켓포 발사와 함께 차량을 통해 민가 및 군사시설에 침투하여 1300여명을 살상하고 200명이 넘는 사람을 인질로 잡아갔다. 여기에 더하여 키부츠 인근에서 이스라엘의 전통 초막절 축제 ‘퍼노바음악제’에참석 중이던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공격 살상한 뒤 수십명을 붙잡아감으로 국제적 공분까지 자초하고 있다. 졸지에 일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가자지구 전체를 포위한 뒤 물과 전기 등 일체의 보급을 차단함은 물론 온갖 수단의 보복공습을 통해 피아 6000~7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많은 건물과 도로, 학교, 병원 같은 공공시설이 피격되면서 유엔조차 외면하는 사면초가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 구약적 전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전투의 ‘불의 고리’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다. 아브라함이 주시겠다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못 기다리고 부인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의 후손’ ‘300’이라는 잠재적 부상자를 생성시킨 것이 사단이다. 이후 끊임없는 시오니즘 운동을 통해 1948년 5월 14일 본래의 땅으로 회귀하였으나 숙명적인 1, 2, 3, 4차 중동전쟁을 벌여야 했고 이제 ‘29’에 해당하는 잠재적 핵심 부상자인 하마스 같은 독종들과 결전 중이지만 궁극적인 최후의 ‘1’을 남겨두고 있음은 지구촌 전체의 불행이다.   이태원 참사 또한 하인리히 법칙상 예외는 아니다. 12년 전, 미국이 버린 핼러윈 귀신놀음을 인구 1/4이 기독교도인 한국의 이태원에서 재점화된 것이 ‘300’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건 발생 4시간 전, 20분 간격으로 11회에 걸쳐 ‘압사’까지 경고하면서 112에 신고한 ‘29’에 해당하는 경상자들의 애끊는 호소를 당국은 흘려들었다. 그때 한 사람의 의인만 있었다면 ‘1명 아니 158명’의 생명은 지켜지지 않았을까? 안타깝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하인리히 이태원 이태원 일대 미개형 참사 잠재적 부상자

2023-10-27

회사 홈페이지서 ‘열성 슈터’로 소개…일가족 ‘살해 후 자살’ 진 송씨

시카고 교외의 한 주택에서 한인 일가족간의 총기 참사가 발생해 4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은 가운데 사건 관련 추가 정보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     지난 9일 크리스탈 레이크시 와일드 플럼로드 인근 가정집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에 대해 멕헨리 카운티 검시소는 사망자가 74세 송창희(영어명 Chang Song), 49세 송유나(Yuna Song), 32세 로렌 스미스-송(Lauren Smith-Song)씨 등 여성 3명과 남성인 44세 진 송(Jean P. Song)씨라고 밝혔다.〈본지 8월 12일자 A-1면〉   시카고 총영사관 여태수 영사는 “숨진 일가족은 모두 한국계로 파악하고 있다”며 “생존자 역시 성이 송씨로 모두 가족관계다”라고 말했다.   당시 멕헨리 셰리프국은 “현장에서 사망한 3명의 여성과 중상을 입은 1명의 여성을 발견했으며, 가해자로 보이는 남성 역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밝히며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 사건으로 추정했다.     사건이 발생한 주택은 숨진 진 송씨와 송유나씨의 공동명의로 돼 있다. 부동산 거래 정보에 따르면 이 집이 가장 최근 거래된 것은 2013년 6월이다.   해당 주택의 주소는 진 송씨가 운영하는 권총집(holster) 업체 ‘BORAII’의 주소와 일치한다.     진 송씨는 이 회사의 소유주 겸 대표로 있으면서 ‘존(John)’이라는 이름도 사용했다. 회사 홈페이지는 그를 “열렬한 사격 선수(avid shooter)”라고 묘사하며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확고하게 믿고 매일 사용한다” 소개한다.   진 송씨의 아내로 추정되는 피해자 로렌 스미스는 이 회사의 마케팅책임자(CMO)로 알려졌다.     회사 홈페이지와 온라인에 따르면 백인 여성인 로렌 스미스는 호주 출신으로 시드니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2014년 미국으로 이민해 이듬해 8월 진 송씨와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앞서 시카고트리뷴은 법원 기록을 인용해 “가해자로 추정되는 진 송씨가 1997년 폭행 혐의로 기소돼 1년간 법원 관리감독을 받은 기록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온라인 법원 기록에 따르면 멕헨리 카운티에서는 그의 범죄 기록이 없었다. 또한, 셰리프국은 해당 주소로부터 신고 전화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아직 범행 동기와 자세한 사건 경위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여태수 경찰 영사는 “경찰 측에서는 이 사건이 ‘non social harm(비사회적 해악)’ 사건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제1순위로 두며 국적 및 개인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다”며 “사망자 중 가장 고령인 피해자의 경우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생존 피해자의 영사조력 요청을 기다리며 경찰에 적극적으로 협조 중이다”고 말했다.   장수아 [email protected]시카고 일가족 한인 일가족간 총기 참사 사격 선수

2023-08-14

'세월호 참사' 유병언 차남 한국 송환…미국 도피 9년 만에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역할을 하고 있는 유병언(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유혁기씨가 4일 오전 한국으로 송환됐다.     미국 영주권자인 유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미국으로 도피해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2020년 체포돼 강제 입국하게 됐다.   한국 법무부는 3일 유씨의 신병을 미국 당국으로부터 넘겨받아 4일 오전 5시 20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됐다고 밝혔다. 유씨는 세월호 사건 관련 해외로 도피한 4명 중 한국으로로 송환되는 마지막 범죄인이다.   검찰은 유씨가 청해진해운의 실질적인 운영자라고 보고 있다. 세월호 수사가 시작된 뒤 도피 생활을 하다 2014년 6월 전남 순천의 야산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된 유병언 전 회장의 후계자로서 계열사 경영을 도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영주권자인 유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미국으로 도피했다. 2014년 4월 말 이후 검찰의 3차례 출석 요구에 모두 불응했다. 검찰은 인터폴을 통해 유씨에 대해 적색 수배령을 내리고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유씨는 2020년 7월 뉴욕에서 체포됐고, 법원은 유씨가 범죄인 인도 대상에 해당된다며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유씨는 이에 불복해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했지만, 지난 1월 연방대법원에서 기각됐다. 이후에도 미 당국의 인도 승인 절차가 계속되자 법무부는 ‘한·미 형사협력 실무회의’를 열어 송환을 요청했고, 미국이 최종 승인하면서 유씨를 데려올 수 있게 됐다.   검찰이 파악한 유씨의 횡령 및 배임 혐의 액수는 559억원이다. 그간 유씨는 도피 생활 중에도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혐의와 관련된 보도를 적극 반박하며 청해진해운과 연관성을 부인해왔다.   앞서 유병언 전 회장의 장녀인 유섬나씨도 2017년 프랑스에 체류하다 한국으로 송환돼 유죄가 확정됐다. 세모그룹 자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4년이 확정됐고, 자신이 운영하던 디자인컨설팅 회사가 매출자료를 허위로 꾸며 세무서에 제출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철웅·심석용 기자 [email protected]미국 세월호 세월호 참사 한국 송환 세월호 선사

2023-08-03

숨가빴던 참사 현장 '4분' 경찰 바디캠 공개

‘4분’, 지난 5월 6일 대낮 텍사스주 댈러스 외곽 대형 쇼핑몰 총기난사 사건 발생부터 경찰이 총격범을 제압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당시 쇼핑몰 순찰에 나섰던 경찰은 어린이에게 안전띠 중요성을 강조하다 총성을 듣자마자 현장에 달려갔다. 총기난사로 한인 부부 조모씨와 강모씨, 자녀 1명 등 8명이 목숨을 잃고 7명이 다쳤지만, 경찰의 발 빠른 대응이 더 큰 참사를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8일 텍사스 앨런 경찰국은 당시 총기난사 범인을 진압한 경찰 바디캠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공개 전날 현지 법원 대배심은 진압 경찰의 무력 사용은 “법에 따라 정당하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영상에 따르면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앨런 경찰국 한 경관은 쇼핑몰 앞 주차장에서 엄마와 함께 있는 어린이 2명에게 “차에 탈 때는 안전띠를 잘 매야 한다. 알았지?”라며 따뜻한 말을 건넸다. 아이는 외국어로 답을 했고 엄마가 “자기는 항상 안전벨트를 잘 맨다고 한다”고 통역했다. 경관이 어린이 대답에 웃는 순간 총성 여러 발이 울렸다.     경관은 경찰차 안에서 소총을 꺼내 들어 총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범행 현장으로 뛰어가면서 사람들에게 “여기를 벗어나라”고 외쳤고, 무전으로 “총기난사가 벌어진 것 같다”고 알렸다. 그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쇼핑몰까지 뛰어가는 도중에도 “부상자를 지나쳤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고 있다”고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총격이 발생한 뒤 3분 30분, 숨을 헐떡일 정도로 뛰어간 경관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총기난사 범인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는 1차 대응사격, 2차 대응사격으로 20발 가까이 총을 쐈다. 총격범에게 “무기를 버려라”고 외치던 그는 곧이어 “내가 그를 쓰러트렸다”고 무전으로 보고했다. 쓰러진 총격범에게 다가가다 다른 경관을 본 그는 “그가 쓰러졌나?” 물었고, 다른 경관은 “그는 죽었다”고 대답하며 상황이 종료됐다.   가슴에 부착된 보디캠 영상은 경관이 총을 쏘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 모습, 튕겨 나가는 탄피와 총알, 모자이크 처리된 범인의 쓰러진 모습 등이 찍혔다.     유튜브 등으로 영상을 본 이들은 “진정한 영웅이다. 경관을 지지한다”는 댓글을 남기고 있다.   앨런 경찰국 브라이언 하비 서장은 성명을 통해 “이 영상은 (경찰 업무에서)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가 얼마나 빨리 생사를 가르는 상황으로 바뀌었는지 보여준다”며 “이 경관은 총성을 향해 달려가 위협을 무력화시켰고, 그의 행동에 대해 앨런 커뮤니티는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당시 총기난사 범인은 신나치즘을 드러냈던 마우리시오 가르시아(33)로 확인됐다. 그는 총기 8정을 현장에 가져가 3정을 몸에 소지하고 있었다. 범행 동기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경찰 참사 앨런 경찰국 총기난사 범인 진압 경찰

2023-06-29

[기고] 어떤 애도

4월은 애도의 달이다. 4·3이 있고, 4·16이 있었다. 4·16 세월호 참사는 9년째인데도 애도는 희미해지지 않는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 최근 몇 번 갔다. 논픽션 작가 마쓰모토 하지무라의 『궤도 이탈』을 편집하면서다.   2005년 4월 25일 JR 서일본의 다카라즈카발 도시샤마에행 쾌속 제5418M 열차가 사고를 일으켜 107명이 사망하고, 562명이 부상했다. 이 사고로 아내와 여동생을 잃고 딸이 중상을 입은 아사노 야마카즈라는 사람이 있다. 아사노는 유가족으로서 정부 및 대기업과 진실을 둘러싼 공방을 치열하게 벌이는데, 이 책은 한 작가가 그의 10년 궤적을 쫓는 내용이다.   책을 처음 접한 건 지난해 11월 초로, 번역가는 세월호를, 나는 이태원 참사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편집 과정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께 원고를 읽어주길 부탁드리며 찾아뵈었다. “지금은 아이들을 기억하도록 해주는 일이라면 기자든 작가든 영상 제작자든 가리지 않고 다 만나지만, 결국 그 사람들은 일 마치면 끝이고 우리 유가족들은 섬처럼 고립되겠지요.” 고 최유진의 아버지 최정주씨는 프로젝트성 만남의 끝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는데, 그건 애도의 진정성을 분별하는 벼락같은 말이었다.   당신은 정말 애도했는가? 애도 후 자리를 떠 만개한 벚꽃 사이를 거닐며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면, 당신은 두 감정 사이의 널뛰기로 인해 자기를 비난할 수밖에 없게 된다. 파주에 사는 나는 2022년 9월 14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슬픔과 분노에 젖어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추모 공간을 찾았지만, 그 김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러 최우람 작가의 전시를 보면서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그날 자아분열을 겪는 것처럼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건 평소 SNS를 하면서 ‘슬퍼요’와 ‘좋아요’를 몇십 초 간격으로 누를 때도 느끼는 감정이다. 요즘의 탄식은 분초를 다투는 단발성 탓에 쓰라림·침잠·분노·참을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 하고, 그리하여 우리는 늘 실패한 감정을 산다.(이것은 보르네오섬 다약족 사람들이 2~10년에 걸쳐 치르는 장례, 애도와 대척점에 놓인다.)   그러니 관건은 목격자로서의 반복, 되돌아감, 끈질김이다. 손쉽게 죄책감을 덜어내지 않는 것이 참사를 빈번히 목격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윤리성이리라. 『궤도 이탈』의 작가 하지무라는 유가족을 10년간 쫓았고, 미국의 사진작가 애니 아펠은 마리아라는 빈곤 여성을 카메라에 한 번 담았다가 그 가족에게 꼼짝없이 마음이 붙들려 25년간 아티스트이자 목격자로서 함께했다. 같은 선상에서 사회학자 그레이스 조의 기록도 들여다볼 만하다.   그레이스의 어머니는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남자들을 상대하다 그중 한 명과 결혼해 미국에 이민 갔고, 훗날 딸은 그런 자기 어머니를 인류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아 『전쟁 같은 맛』을 썼다. 이 책은 한국전쟁, 전쟁고아, 미군 ‘위안부’ 여성, 미군의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먹던 친인척들, 이민자, 모국의 음식이 불러일으키는 기억, 인종차별과 정신질환의 관련성 등 온갖 층위가 복잡하게 얽힌 연구 에세이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에 나오는 유령처럼, 어느 날 ‘옥희’라는 유령의 목소리가 그레이스 엄마의 세계를 지배한다. 조현병을 앓게 된 엄마는 50대 중반부터 죽을 때까지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다. 이런 이의 삶은 비극으로 치닫게 마련이지만, 딸이 엄마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그는 엄마라는 장소로 첨벙 뛰어들어 유령의 목소리를 함께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방구석에서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문지방을 결코 넘지 못하는 엄마에게 다가가기 위해, ‘미친 사람’으로 지목된 엄마가 실은 사회적 요인으로 병자가 된 것임을 밝히기 위해 십몇 년의 세월 동안 엄마 곁에 붙어 위로하고, 먹이고, 이해하려 애쓴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는 오랜 애도가 이어지는데, 그 글들이 독자에게도 조현병자의 삶에 몇 번이고 들어가게 한다.   만남, 애도, 연구, 취재가 지속한다는 것은 세간에 떠도는 말과 상관없이 우리가 진실에 가까운 것들을 채집하도록 도와준다. 지속성을 갖는 이들은 종종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의 문제를 자기 안에 내포하고 있다.   그레이스는 그 자신이 유령을 다독이거나 유령과 싸우는 장소가 되면서 그 전에는 자기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조현병자나 양극성 장애인들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펼쳐 보여준다. 그건 스쳐 지나간 사람들, 짧게 머물렀던 사람들은 알지 못할 심원함이다. 시간의 축적은 마침내 한 사람의 마음속에 넓은 터를 만들어 역사가 그 안에 새겨지도록 하는 반면, 짧게 목격하고 떨쳐냈던 이들은 훗날 예전의 자신을 반추하면서 알맹이 없는 공허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기고 그레이스 엄마 사회학자 그레이스 세월호 참사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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