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 현장에서] 잠비아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지난해 2월부터 잠비아는 극심한 전력난에 신음하고 있다. 하루에 고작 두세 시간, 심지어 이틀이나 사흘에 단 두 시간만 전기가 공급되는 상황은 이곳 주민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냉장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한국에서 가져와 아껴 먹던 떡, 단무지, 유부초밥도 모두 상해 버렸다. 얼마나 아깝던지. 우리 집 막내는 속상한 나머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번 전력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이다. 잠비아는 전체 전력 생산량의 85% 이상을 수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된 가뭄으로 인해 주요 발전원인 카리바 댐의 수위가 현저히 낮아지면서 발전량은 평소의 15% 수준으로 급감했다. 문제는 단순한 생활 불편을 넘어선다. 굿네이버스 잠비아가 활동하는 농촌 지역 주민들은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1년에 단 한 번의 우기에 의존해 옥수수를 재배하는 이들에게 가뭄은 곧 생계의 위협이다. 짧아진 우기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옥수수 밭은 텅 비었고, 이는 곧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이어졌다. 잠비아 정부가 국가 재난을 선포하고 비축 식량을 배분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생존 위협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수확 실패로 생계가 막막해진 빈곤 가정에서는 식량 확보를 위해 어린 딸을 조혼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참금은 물론, 그나마 경제적으로 나은 가정에 보내면 굶주림이라도 면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 작용한 결과다. 현재 잠비아의 조혼율은 30%에 달하며, 가뭄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더 많은 아이들을 노동 현장으로 내몰고 있다. 특히 시골 지역 아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적이다. 길거리에서 과일을 팔거나 가축을 돌보는 일, 숯을 만드는 것 외에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가 폐광산 노동이다. 세계적인 구리 생산국인 잠비아에는 버려진 광산이 많고, 이곳에서 아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구리가 섞인 돌을 주워 생계를 이어간다. 어린 손으로 하루 종일 돌을 주워도 손에 쥐는 돈은 1kg당 약 300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안전 설비조차 없는 폐광산은 언제든 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안타깝게도 인명 사고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인간의 생존과 존엄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특히 사회적, 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저소득 국가의 취약 계층에게는 더욱 가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후 불평등’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마주하게 된다.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된 책임은 역사적으로 선진국에 있다. 그러나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저소득 국가들이 떠안고 있는 불균형한 현실이 바로 기후 불평등이다. 일부 저소득 국가들은 선진국의 해외 원조를 통해 위기에 대응하기도 하지만, 최근 미국의 해외 원조 중단은 잠비아를 비롯한 여러 아프리카 국가를 더욱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일각에서는 저소득 국가들의 원조 의존성을 비판하며 원조는 의무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단순한 자선이나 호의의 문제가 아닌, 기후 위기를 초래한 국가들의 명백한 책임 영역이다. 우리는 누가 이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어떻게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굿네이버스 잠비아는 가뭄으로 고통받는 주민들과 함께 긴급 식량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CSA(Climate Smart Agriculture) 농법을 보급하고 있다. 공동 농장 조성, 관개 시설 구축, 친환경 퇴비장 마련, 그리고 농업 실패에 대비한 양계장 운영 등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지역 사회의 자립을 돕고 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일회성 지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농업 비즈니스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인류 공동의 과제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분담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것인가. 이제 국제 사회는 그 답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이재웅 / 굿네이버스 잠비아 대표구호 현장에서 잠비아 그림자 굿네이버스 잠비아 잠비아 정부 현재 잠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