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과 만나다] 나의 모비 딕<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무엇일까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톨스토이가 얼마나 그 첫 문장에 사력을 다했는지를 알려주는 유명사례가 되어있지만, “나를 이스마엘이라고 불러다오”라는 모비 딕의 첫 문장 또한 만만치 않다. 당시 주류였던 기독교 사회가 아닌 이슬람계 사람인 이스마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암시를 넌지시 던지며 책이 시작되는 것이다. 1851년 출간된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주어가 무엇이었던가 잊어버릴 지경으로 긴 만연체인 점이 좀 불편했으나, 그 당시 유행하던 문체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화자 이스마엘이 벼랑 끝까지 몰린 삶에서 벗어나고자 고래잡이배 피쿼드호에 오르기 전, 흑인 식인종과 숙소에서 만나는 책의 시작점부터, 책은 일단 잡기만 하면, 그 두께에 상관없이 참으로 잘 읽힌다. 대서양에서 맞닥뜨린 적이 있던 고래 모비 딕이 에이해브 선장이 탄 배를 박살내면서 선장의 한 쪽 다리가 절단났고, 향유고래 뼈로 만든 의족을 차게 된 선장은 “그 고래가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면서 오로지 모비 딕을 잡기 위해 무의미한 항해 속으로 피쿼드호를 빠뜨리고, 배의 선원들이 속절없이 희생양이 되어가던 중에, 모비 딕은 상상이 빚어낸 괴기보다 더 더욱 충격적인 실체로 나타나, 모든 것을 박살내버린다는 것이 책의 기본 줄거리이다. 선장 에이해브와 퀴퀘그, 스타벅, 스터브 등의 선원들을 통해, 대자연에 대한 겸손함은 물론 생명체에 대한 존중도 없었던 당시 서구 기독교 문명의 오류와 자만, 인간 욕망과 아이러니, 문명과 야만의 차이, 삶과 죽음, 신에 대한 성찰, 믿음의 뿌리 등… 가장 원초적이고도 심오한 우리 삶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소설이다. 지금과는 달리 포경업이 엄청난 번영을 구가했던 19세기 초,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포경선 에섹스호가 거대한 향유고래에게 공격당해 침몰한 실제 사건이 발생했는데, 선원 21명이 죽은 동료선원들의 인육을 먹는 비극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이 창작되었다고 한다. 바다 한가운데서의 무한방대한 내용에 더하여, 책에는 고래의 종류, 포경의 역사, 포경 방법과 장비 등 고래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놀랍도록 꼼꼼하게 서술된다. 모비 딕을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고래잡이를 직접 경험한 젊은이 멜빌이 7년 동안 셰익스피어, 호손, 성경 등을 섭렵하고, 고래에 관한 지식을 도서관에서 촘촘히 흡수한 다음, 그 경험과 지식을 낱낱이 세상에 알리는 ‘1800년대의 시대상’을 만나는 일이라 하겠다. 바로 이 점에 모비 딕이라는 소설의 위대하고 탁월한 힘이 있는 것이다. 비극과 허무로 종결되는 소설의 끝을 마주하다보면, 선연히 떠오르는 실체가 있다. 나의 다리를 절단낸 원수를 반드시 포획하고 처절하게 복수해줘야하는데 그 응당 이뤄져야 할 것들이 ‘없음’으로만 덩그마니 남은 허무와 이율배반을 보며, 나도 혹시 삶의 본질은 제쳐두고 망상에 갖혀 허덕이는 것이 아닐까 - 에이해브 선장의 집착이 나의 집착은 아닐까 - 그런데 과연 인생은 무엇인 것인가…먹먹하고 기가 막히고 의미 없어 보여도 그것이 인생인가를 묻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났다는 것은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는 뜻이니,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밑줄을 진하게 그어 둔, 책의 일부 글이다. 박영숙 / 시인멜빌 고래잡이배 피쿼드호 젊은이 멜빌 화자 이스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