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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의 저울] 관세 전쟁사는 현재의 거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전 세계가 관세 전쟁에 돌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를 부과했고, 이에 맞서 3개국 역시 미국 제품에 보복 관세를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한국을 직접 언급하며 한국의 관세가 미국보다 네 배나 높다고 지적했고, 이로 인해 한국 역시 관세 정책의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인 동맹국조차 예외가 아닌 보호무역 강화 흐름 속에서, 주식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국제사회도 관세 전쟁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관세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미국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주제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 의회가 통과시킨 ‘차법(Tea Act)’으로 촉발되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에 특별 세금이 부과되자, 미국 식민지인들은 “대표 없는 과세(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는 구호를 내걸며 영국이 자신들의 의회 동의없이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시민들이 동인도회사의 차 상자들을 바다에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초기 미국 정부는 관세를 주요 세수원으로 활용했다. 당시 연방 정부 수입의 90% 이상이 관세에서 나왔으며,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 등의 선진국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노예제 폐지가 주요 이슈로 기억되는 남북전쟁에서도 관세 정책은 중요한 갈등 요소였다. 농업 중심의 남부는 자유무역을 지지한 반면, 공업이 발달한 북부는 유럽산 제품으로부터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원했다. 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나면서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후 1890년 맥킨리 관세법과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시행되었지만, 이로 인해 각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무역이 위축되었고, 소비자 물가 상승 등 경제적 부작용이 심화되었다. 특히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보호무역 강화는 경제 회복을 지연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GATT 체제’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의 시대가 열렸다. 1947년 체결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는 최근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질서의 기본 틀이 되었다. 이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양한 무역협정을 통해 자유무역 기조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 1기 당시인 2017년부터 보호무역으로의 회귀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25% 이상의 고율 관세 부과로 촉발된 미·중 무역전쟁이다. 트럼프의 집권 2기에는 전통적인 우방들도 가리지 않는, 더욱 확실한 보호무역 강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관세 부과 권한은 원칙적으로 의회에 있다. 미국 헌법 제1조 8항에 따르면 의회가 무역 및 관세 관련 입법 권한을 갖지만, 국가안보나 외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는 특별한 경우에는 대통령이 관세를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최근에는 오히려 이러한 대통령의 예외적 권한이 일반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는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행정명령을 통한 관세 정책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관세로 촉발된 미국독립전쟁을 통해 탄생한 미국이라는 나라가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을 오가는 역사적 경로를 살펴보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 시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특히 2차 대전 직전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이 경제에 미친 영향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을 주도하며 세계 경제 질서를 구축한 만큼, 보호무역으로의 회귀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김한신 / 변호사니케의 저울 전쟁사 관세 보호무역 강화 홀리 관세법 보호무역 기조

2025-03-12

[독자 마당] 끝나지 않은 전쟁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했다. 전쟁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당하는 등 한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이후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전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맥아더 장군의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이 결정적이었다. 이어 9월28일에는 서울 탈환에 성공했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압록강까지 북진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달라졌다. 그 겨울 영하 30~4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 동사자까지 발생했다. 세계 전쟁사에 겨울 전투로 유명한 ‘장진호 전투’도 이때 벌어졌다.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대가 주축인 유엔군 3만 명이 중공군 10만 명에 맞서 벌인 전투였다. 당시 유엔군은 끝 없이 밀려오는 인해전술의 중공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백마고지 전투도 국군 9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에 맞서 벌인 전투였다. 10일 내내 백마고지의 주인이 24차례나 바뀔 정도였다니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런 전투 중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전쟁 발발 3년1개월2일(1129일)만이다. 무수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지만 전쟁은 휴전했을 뿐이지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도 북한은 온갖 도발 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다. 끊임없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젠 오물풍선까지 남한으로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휴전선은 1953년 휴전 협정을 통해 생겼다. 지금도 남북 간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다.     올해는 9·28 서울 수복 74주년이 되는 해다. 6·25 전쟁의 교훈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가 필요하다. 전쟁은 힘의 대결이고 평화도 힘이 있어야 유지된다.  강한 힘만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킬 수 있다. 노영자·풋힐랜치 거주독자 마당 전쟁 세계 전쟁사 백마고지 전투도 장진호 전투

2024-09-24

“끝나지 않은 전쟁, 통일이 곧 분단 역사의 마침표”

 제74주년 6.25 전쟁 추념식이 지난 6월25일(화) 오전 11시 달라스 한인문화센터에서 거행됐다. 달라스 한인회(회장 김성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회장 오원성), 주달라스영사출장소(소장 도광헌)가 공동으로 주최한 추념식에는 100여명의 한인들이 참석해 6.25 전쟁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을 추모했다. 우성철 달라스 한인회 수석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념식은 윤석렬 대통령의 축사 영상으로 시작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한 도광헌 소장을 대신해 이율리 영사가 기념사를 했고, 이철모 6.25 참전전우회 전 회장, 김성한 달라스 한인회 회장, 그리고 오원성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 회장 순으로 기념사를 했다. 이율리 영사는 기념사에서 “74년 전에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과 참전용사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면서 “이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대한민국을 더 크게 발전시키고 지켜 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철모 달라스 6.25 참전 전우회 전 회장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소련과 중공의 공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진격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현재의 휴전선을 기점으로 해서 마침내 1953년 7월 27일을 기해서 3년 간의 전쟁을 종식하고 휴전으로 들어갔다”고 설명하며 “전쟁 중 목숨을 잃은 18만여 명의 전사들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닥칠지 모를 국난의 때를 대비해 다같이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다. 이철모 전 회장은 6.25 전쟁 당시 미육군단에 예속된 한국군 64단 수석 중대장으로서 세계 전쟁사에 기록된 용문산 전투에서 부대를 이끌며 전쟁에 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서부전선에 이상 없다’는 소설의 한구절인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오직 사라질뿐이다”를 외치며 기념사를 마쳤다. 김성한 한인회장은 “6.25 전쟁에서 한국군 13만 8천명이 전사하고 45만명이 부상했으며 2만5천명이 실종되었다. 이 전쟁으로 대한민국은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으나 다시 일어서서 세계10위권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고 상기시키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참전용사들이 전쟁터에서 흘린 땀과 피와 눈물의 댓가다. 남북 평화를 위해서 미국 주류사회와 전 세계에 평화와 화해를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자”고 호소했다. 마지막 기념사에서 오원성 회장은 “6.25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포성을 멈추게 한 정전협정은 현재진행형이다. 통일된 한반도를 이뤄내야 비로소 6.25 전쟁은 분단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다함께 힘을 모으기를 거듭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통일을 꿈꾸면 통일은 반드시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도 민주평통 달라스협의회는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정책에 기여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통일된 한국을 이끌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전하며 기념사를 맺었다.   모든 기념사가 끝난 후 6.25 기념 영상 시청을 통해 호국용사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이후 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태극기를 들고 6.25 노래를 제창하면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추념식에는 달라스에 거주하는 총 5명의 참전용사들 중 이철모, 김성제, 정명진 참전용사가 참석했다. 이들에게는 감사의 표시로 꽃다발이 증정됐다. 정명진(91) 참전용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미국에 이민 와서 36년 동안 살고 있지만 항상 고국을 잊지 못하고 고국의 번영을 바라고 있다”고 전하며 “기념식에 참석한 다른 참전용사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 조국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도광헌 소장은 6.25 전쟁 추념식에 앞서 6월18일(화) 한식당 수라에서 6.25 한인 참전 유공자들을 초청해 오찬을 갖고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오찬에는 DFW 지역에 거주하는 4명의 참전용사들이 참석했다.    캐서린 조 기자마침표 전쟁 전쟁 추념식이 김성한 한인회장 세계 전쟁사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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