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주·조연 수상, 명성과 커리어 큰 영향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남녀 주연상 및 조연상 등 4개의 연기상이 주어진다. 작품상에 노미니된 영화들에 출연한 주·조연 배우들이 주로 연기상 후보에 오르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점쳐졌던 데미 무어의 출연작 ‘서브스턴스’는 작품성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졌음에도 후보 지명을 받았다. 오스카를 수상한 배우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없다. 그러나 오스카 수상 배우에게는 커리어 내내 그 명예가 따라 다닌다. 높은 출연료의 캐스팅 제의가 줄을 서고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우를 받게 된다. 최우수 남우주연상은 당초의 예상대로 ‘브루탈리스’의 애드리언 브로디가 수상했다. 2002년 29세에 ‘피아니스트’로 이 부문 최연소 수상을 기록한 이래 22년 만에 다시 남우주연상을 수상, 2회 이상 받은 11번째 배우가 됐다. 브로디는 공교롭게도 두 작품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연기했다. 브래디는 모국 헝가리에서의 명성을 뒤로하고 미국에 이민, 부유한 자들 앞에서 굴욕을 견뎌내야 했던 건축가 라슬로 토스 역을 연기했다. 그는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수많은 이민의 혼합체를 상징하는 인물 라슬로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동시에 트라우마의 생생한 고통을 감내해낸 인물을 연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컴플리트 언노운’의 티모시 샬라메가 강력한 경쟁 후보였지만 배우조합상(SAG)에서의 수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많은 비평가는 브로디가 ‘피아니스트’에서의 연기를 뛰어넘는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배우가 캐릭터에 녹아 들어간 듯한 그의 연기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라슬로처럼 모든 걸 잃어버리고 헝가리를 떠나야 했던 그의 어머니가 모티브가 됐다. 유대계인 브로디는 자신의 개인사에서 어머니를 상기하고 그 이미지를 허구적 캐릭터 라슬로에 반영했다. 불과 26세의 유대계 배우 마이키 매디슨은 데뷔 45년 차 베테랑 무어를 제치고 2025년의 신데렐라로 부상하며 작품상 수상작 ‘아노라’의 여주인공 아노라 역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초 최우수 여우주연상은 ‘서브스턴스’에서 호연한 데뷔 45년 차 베테랑 데미 무어가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됐다. 올드 팬들은 65세가 되어서야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인정받은 무어가 수상하길 바랐다. 실제로 무어는 오스카 이전 골든글로브, 비평가상(Critics’ Choice), 배우조합상(SAG)의 여우주연상을 연거푸 수상, 오스카도 그녀의 차지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지난 45년 동안 과소평가되어온 무어의 연기가 시상식에서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끝내 오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무어의 여우주연상 수상 실패를 ‘아노라’의 5관왕보다 더 큰 뉴스로 다뤘다. 국제영화 부문 수상작 ‘아이 엠 스틸 히어’에서 강철 같은 의지로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5자녀를 지켜낸 어머니 유니스를 연기한 페르난다 토레스를 올해 최고의 여배우로 평가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비영어권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인색한 할리우드의 전통을 깨지 못했다. 최우수 남우조연상은 예상대로 드라마 코미디 ‘리얼 페인’에서 열연한 ‘나혼자 집에’의 아역스타 키에런 컬킨이 차지했다. 남우조연상은 이미 오스카상 이전의 모든 상을 휩쓸고 있던 컬킨의 차지가 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컬킨이 연기한 벤지 역이 현재 그가 출연 중인 드라마 ‘석세션’에서의 로만과 매우 유사한 캐릭터라는 점, 그리고 이 부문 경쟁자들인 유라 보리소브(아노라), 가이 피어스(브루탈리스트), 에드워드 노튼(컴플리트 언노운)처럼 출연작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사실 등이 취약점으로 지적됐지만 컬킨의 강세를 꺽지 못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할머니의 죽음 후, 사촌 형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와 함께 할머니의 고향 폴란드를 방문, 할머니를 추억하는 중 느끼게 되는 학살된 영혼들의 고통을 체험하는 벤지는 2025년 관객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캐릭터 중 하나였다. 컬킨의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연기 덕분에, 무례하며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늘 사고를 치는 인물 벤지가 인간으로서 느끼는 성장통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관객의 마음속에 각인됐다. 세대를 잇는 아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냉소적 유머로 접근, 위험한 영역 안에서 코믹함과 엄숙함을 동시에 끌어내려는 아이젠버그 감독의 의도는 컬킨의 빛나는 연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에밀리아 페레즈’에서 유색인종에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변호사 리타로 분한 조 샐다나의 최우수 여우조연상 수상도 예견됐던 일이다. 샐다나는 이날 오스카상을 받은 최초의 도미니카계 배우로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샐다나는 제작사의 캠페인 전략상 여우조연상에 노니미됐지만 주연상 부문에서 경쟁을 벌였어도 수상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했다. 실제로 그녀는 칸 영화제에서 이례적으로 다른 3명의 여배우들과 함께 최우수주연상을 받았다. 여우주연상에 노미니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보다 진정 영화를 살린 건 조 샐다나의 연기였다. 대중의 관심이 트랜스젠더 배우 가스콘에게 몰리는 동안, 평단은 이 영화에서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인 샐다나의 연기를 더 높이 평가했다. 그녀는 상대적으로 에밀리아에 비해 캐릭터의 깊이가 부족한 리타 역을 노래와 춤, 연기로 조화된 매혹적 퍼포먼스로 캐릭터와 작품 전체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 샐다나는 ‘에밀리아 페레즈’를 통해 완벽함에 가까운 뮤지컬 배우로 거듭났다. 리타의 변호사로서의 직업적 윤리, 도덕적 갈등, 에밀리아를 향한 자매애는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뮤지컬 ‘에밀리아 페레즈’의 중추적인 소재다. 그녀가 영화에서 보인, 8분간의 폭발적 퍼포먼스는 전율을 전하는 올해 최고의 씬스틸러 장면이었다. 여우조연상 부문에는 ‘콘클레이브’에서 가부장적 세계에서 여성이 지닌 침묵의 권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수녀 아네스 역의 이사벨라 로셀리니와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밥 딜런의 연인 조안 바에즈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모니카 바르바가 경쟁했지만 샐다나의 강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에밀리아 페레스’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큰 피해를 본 작품이다. 만약 샐다나마저 조연상을 놓쳤다면 13개 부문에 후보를 내고 고작 주제가상 1개 부문만을 수상, 오스카 사상 최악의 결과를 낳은 영화로 기록됐을 것이다. 전멸에 가까운 ‘에밀리아 페레즈’의 참담한 결과는 정당한 이유보다 부당한 이유가 더 많았을 것이라는 씁쓸함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김정 영화 평론가 ckkim22@gmailcom오스카 커리어 오스카 수상 작품상 수상작 수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