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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말하기와 글쓰기

명랑한 아주머니들의 수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참으로 볼만하다. '만화방창 화란춘성' 거침이 없어서 도무지 막을 재간이 없다.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일단 재미있다. 잘 들어보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말만 줄기차게 하는데도 신통하게 잘 통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신기한 것이 또 있다. 그 수다의 달인 아주머니들에게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냥 날려버리지 말고, 글로 써서 남기면 좋겠다”고 권하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친다. 말과 글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삼팔선보다도 진한 선을 긋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말과 글은 하나이고, 말을 글자로 적어놓으면 글이 된다고 믿는다. 내가 주로 연극판에서 대사(말) 중심의 공연 대본을 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과 글은 별개일 수 없다.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 사람이 왜 글쓰기는 어렵고 거북하게 여기는 걸까?   “내 이야기를 글로 쓰면 장편 소설 몇 권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보통사람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별로 많지 않다. 말과 글은 전혀 다른 것이고,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깨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에는 역사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지배계층의 권력자들은 글공부를 독점했다. 일반 백성들이 글을 배워서 똑똑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따로 공부해야 하는 특별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말과 글은 다르다고 여긴다. 물론, 문법이나 맞춤법 같은 기초적 공부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크게 어렵거나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글은 배워야 잘 쓰는 것이 아니다. 공부가 오히려 방해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보기에는 글쓰기의 형식에서 자유로운 보통사람들이 진솔하게 쓴 시나 글이 어설픈 문인의 작품보다 한결 감동적이고 울림이 크다. 거추장스러운 제약에 얽매이지 않기에 순수하다. 철들기 전의 어린아이 그림이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과 이치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다. 이를 증명할 예들도 많다. 가령, 한국 경상북도 칠곡군 할매시인들도 좋은 예다. 평균 연령 78세의 할매시인들은 마을학당에 모여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주옥같은 글들이 참 많이 탄생했다. 김용택 시인이 100여명의 어머니가 쓴 감동적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엄마의 꽃씨’도 좋은 예다.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1911-2013)가 98세 때 펴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읽어봐도, 일상의 말을 그대로 글로 적은 것처럼 편안하다. 쉽고 편하지만 감동의 울림이 크고, 시에 담긴 유머 감각과 긍정적인 태도가 호평을 받으면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본열도를 감동하게 했다.   말과 글은 본디 하나다. 역사적으로 보면, 태초에 먼저 말이 있었고, 한참 지나서 글자가 만들어졌다. 그 후에도 말의 힘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비문학, 신화와 전설, 노래, 민요, 민화 등의 서사구조와 정신세계는 오래 전승되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가령 어린 시절 들었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어머니의 자장가 같은 것의 영향은 평생 간다.   많은 이들이 자기의 삶과 생각을 글로 썼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해보면 생각보다 쉽고 재미도 있다. 실제로는 이미 전 국민이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심각한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꾹꾹 누르는 글자들이 곧 글이다. 금방이라도 세계 명작이 나올 것 같은 진지한 표정이다. 그 글에다 자기만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고, 좀 길게 쓰면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모든 사람은 시인이요, 작가'인 시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글쓰기 옛날이야기 어머니 할머니 시인 달인 아주머니들

2024-06-27

[살며 생각하며] 내가 너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토요일 오후, 종잡을 수 없는 봄 날씨였다. 뉴욕에 사는 친구와 함께한 갤러리를 찾아갔다. 전시실 가운데 이불 수백 개가 포개져서 천정까지 올라가 있다. 컴포터, 담요, 퀼트, 손뜨개 등 온갖 종류의 이불이 사각으로 접혀서 탑을 만들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이불마다 가격표보다 조금 큰 쪽지가 붙어 있다. 쪽지에는 이불을 보낸 사람의 이름과 사는 곳, 사연이 적혀있다. 콜로라도, 일리노이, 샌디에이고 등 전국에서 보내왔다. 다음은 한 쪽지에 적힌 내용이다.     ‘나의 이름은 페트리샤. 나의 엄마는 15살이 되기 전에 엄마와 할머니를 모두 잃었다. 그들은 다행히도 죽기 전에 엄마에게 크로켓 뜨개질을 가르쳐 주었다. 엄마는 슬픈 날이나 기쁜 날이나 손에서 뜨개질을 놓지 않았다. 그 후로 가족의 중요한 행사에 손뜨개 한 이불을 선물하곤 했다. 누구나 엄마의 손이불을 받으면 기뻐했다. 우리는 아이오와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다. 나는 우리 가문에서 최초로 대학에 간 영광스러운 아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기숙사로 떠날 즈음, 엄마는 밤새워 뜨개질을 시작했다. 떠날 날이 되었지만, 엄마는 한 귀퉁이를 마치지 못했다. 이불은 조금 찌그러진 사각형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부분, 엄마가 짜다가 만 그곳에 코에 대고 밤에 잠든다.’   이불을 쌓아 올린 작가 마리 와트(Marie Watt)는 세네카 인디언과 독일계통의 혼혈이다. 마리의 엄마는 어린 시절에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보내졌다. 엄마는 자신의 언어는 잊었지만, 딸인 마리에게 세네카 부족의 신화를 들려주었다. 하늘에서 한 소녀가 땅으로 떨어지던 중에 거북이가 나타났다. 소녀는 거북이 등에 타고 포틀랜드 땅에 무사히 안착했다. 마리는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으로는 헝겊을 만지작 거라곤 했다. 엄마가 이어서 만들어준 헝겊 이불에 천착하다 보니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이불들을 모아서 전시하게 되었다. 아픈 친구가 죽을 때까지 덥던 이불, 쌍둥이 형제가 헤어지면서 나눠 가진 이불. 이불 틈에는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개개인의 숭고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나는 가끔 나의 부모님이 사셨던 격동기의 한국을 상상한다. 어느 날 아침 외출을 나갔다가 쓰러져 숨을 거둔 아버지가 그날 만난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이야기를 듣고 혈압이 올랐을까? 궁금한 점이 꼬리를 문다. 어머니는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분도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무엇이라도 남아 있다면, 편지든 메모든… 침묵 속으로 영면한 사연은 알 길이 없다.     “할머니의 엄마는 어떤 분이야?” 어느 날, 8살 손녀가 뜬금없이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또 이렇게 묻기도 한다. “정말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어?” 한글 학교에서 선생님이 들려주는 역사가 옛날이야기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역사 시간과 한국 음식 먹는 시간이 제일 좋다고 한다. 손녀는 언젠가는 한글을 읽게 될지도 모른다. 또 그러고 나면, 누가 아는가. 나의 어느 후손이 미국에 건너온 선조에 관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끄적거리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내 이야기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오늘 첼시의 한 갤러리에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 한 조각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기록이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고유의 가치가 있다.     마리 와트의 이불 작품에는 ‘너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나의 이야기도 변한다. (My story changes when I know your story)’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어느 먼 훗날, 책상 서랍 혹은 먼지 낀 책장 구석에서 나의 글 조각이 툭 튀어나온다면, 그것을 후손 중 누군가가 읽어본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더 알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확장할지 누가 알겠는가.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이야기 역사가 옛날이야기 헝겊 이불 이불 쌍둥이

2024-05-13

[삶의 뜨락에서] 옛날이야기가 많은 나라 -아이슬란드 여행기(4·끝)

여행 전 책을 읽으며 인구 35만의 작은 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고 시인이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길다. 가족들은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식사하고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이를 Saga(Tale, Story)라고 부른다. 우리도 어렸을 때 긴긴밤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옛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해주는 선생님이 인기가 있었다.     아이슬란드인의 조상은 바이킹, 해적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수도 레이캬비크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 사람을 죽이고 노예 몇 명 데리고 도망온 범죄자였다. 아이슬란드에는 원주민이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수 세기 전 Irish Monk들이 들어오고 이어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어부가 왔다고 한다. 그 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바이킹이 들어와 미리 온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섬에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스토리들이 많고, 이를 책이나 영화로 후손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호텔 근처에 있는 Saga Museum을 찾았다. 전설이나 설화가 많은 줄 알았는데 ‘역사박물관’이었다. Saga는 역사뿐 아니라 로맨스, 빙산에 나타났다는 귀신 이야기, 화산폭발, 지진 발생에 생긴 실화도 포함돼 있다. Saga는 시를 낳았다. 처음 시들은 교훈적인 것, “가축도 죽고, 친족도 죽는다. 그러나 선하게 살다 떠난 사람의 명예는 죽지 않는다.” 1807년 이 나라에 세워진 첫 동상이 시인이었다. 조나스 헬그림손이었는데 그는 자연 시를 주로 썼다. 아이슬란드를 Frost-white mother로 묘사한 국민시인이었다. 195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Laxness는 아이슬란드의 자랑, 그는 거리의 언어로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다. 이어서 Jon Stefausson이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 노벨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랐다. 1996년 레이건-고르바초프 회담이 열린 Hofdi House는 유명한 시인의 집이었다. 시인이 떠난 후 집은 한동안 비어있었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유령’이 살았다고 수군댔다고 한다. 이 흰 집은 그 후 정부에 귀속돼 역사적인 미-소 정상회담장이 되었다. 이 집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큰 회담이 이렇게 작은 집에서 열리다니’ 생각했다. 그러다가 곧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핵 군축을 논의하는데 왜 큰 장소가 필요했겠는가’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묵은 호텔은 크지는 않으나 편리했다. 호텔에는 예상외로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주로 이 나라 역사, Saga를 소개하는 책이었다. 옆에 있는 라운지에도 서가에 많은 책이 진열돼 있었다. 이런 문화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이 나라의 연 관광객은 230만, 인구의 6배로 주민들을 먹여 살린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슬란드 사람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다. 북유럽 피를 받은 그들은 키가 크고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았다. 그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화산 이끼 하나라도 소중하게 취급했다. 그들은 특히 영어를 잘했다. 길거리에 누구를 붙들고 물어도 나보다 나은 영어로 대답해 주었다. 인구 35만 작은 나라지만 자랑스러운 고유언어를 보존해 오고 있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 대합실에서 ‘들어오는 사람, 떠나는 사람’을 관찰했다. 휠체어에 몸을 던진 노인들, 엄마 품에 안긴 아이들, 노인은 마지막 여행이 될지 모르지만 아이는 넓은 세상을 누비고 다닐 것이다. 나는 다시 이 나라를 찾지 않을 것이다. 늦기 전에 아직 못 가본 곳을 가봐야 하니까.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북극 언 땅에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옛날이야기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여행기 아이슬란드 사람들 나라 역사

202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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