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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광야를 채우는 첫사랑의 기억

어쩌면 인간은 사랑 이야기에 질릴 법도 하다. 문학, 음악, 예술, 영화는 물론이고, 주변의 감동적인 사랑의 순간들까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많은 사랑 이야기를 접해왔다. 누구나 가슴속에 사랑 노래 한두 곡쯤, 잊지 못할 사랑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여전히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사랑 이야기를 갈망하며 귀 기울이는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명확하다. 삶의 근원적인 힘이 되어주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사랑을 아직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인간의 깊은 갈증과 아픔 때문일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의 환경은 인류에게 더욱 절실하게 진정한 사랑과 희망의 증표를 찾도록 요구한다. 임상목회학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인은 에른스트 베커의 “죽음 부정의 시대”나 빅터 프랭클의 “의미를 찾아나선 인간”에서 제시된 무거운 주제들과 다시금 마주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질병과 죽음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려 하고, 내면의 공허함의 이유를 애써 외면하며, 노년을 성숙과 삶의 결실의 계절이 아닌 돌봄과 의존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디어가 묘사하는 노년의 모습에서도 노화 과정과 노인에 대한 편견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미지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현대인은 고독과 아픔 속에서 소진되지 못한 삶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내면 깊숙이 자리한 영혼의 목마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더 큰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인류는 어김없이 새로운 사순절을 맞이하여 40일간의 거룩하고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묵상의 여정을 시작했다. 학생, 직장인, 질병과 싸우는 환자,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은퇴자, 타지에서 헌신하는 이, 그리고 남모르는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이 40일간의 묵상 여정에 동행하자.   동시에, 올해의 사순절 여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감사히 여기며 시작하자. 또 다른 사순절은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묵상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다. 이 기간을 통해 우리는 역사적인 첫 부활절 새벽의 기쁨과 소망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특별한 시간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성경은 그 소망의 언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만약 누군가가 우리 대신 갚아야 할 빚을 “전액 완불”해 주었다면, 우리는 그날부터 시작된 새로운 삶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현대라는 광야에서 길을 잃을 때, 우리에게 먼저 베풀어주신 그 거룩한 “먼저 사랑”에 의지하며, 이전보다 더욱 풍성한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 가득 채워지는 사순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효남 / HCMA 원목협회 디렉터열린광장 첫사랑 광야 사랑 이야기 사순절 여정 묵상 여정

2025-03-30

[열린광장] 한국학교 학생들의 만세 삼창

학생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토요일 아침 한국학교에 온다. 특히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2세 엄마들도 자녀들을 교실에 들여보내며, 젊은 부모들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열의와 집념을 엿볼 수 있다. 주말 아침, 충분히 휴식하고 놀 수 있는 시간임에도 한국어 교과서를 펴고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하다.   풀러턴 한국학교는 남가주 한국학원 산하 10개 한국학교 중 가장 많은, 약 350명의 학생이 다니는 대규모 학교다. 교장 선생님은 사랑과 정성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며, 선생님들에게도 늘 감사의 마음을 전하시는 분이다. 그 따뜻한 리더십 아래 학교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정을 쏟는 선생님들, 그리고 탁자를 직접 옮기고 무거운 물통을 들며 학생들의 간식을 준비하는 학부모 회장님의 솔선수범은 학교의 든든한 힘이다.   올해 풀러턴 한국학교의 3.1절 기념행사는 예년과는 조금 달랐다. 1교시에는 학생들이 태극기를 직접 만들었다. 음과 양을 나타내는 붉은색과 푸른색을 도안에 색칠하고, 하늘, 물, 불, 땅을 상징하는 사괘에 정성껏 검은색을 채우며 태극기에 담긴 깊은 뜻을 배웠다.   2교시에는 유관순 열사 역할을 맡은 선생님께서 태극기가 그려진 흰 티셔츠에 검정 치마를 입고 선두에 섰고, 학생들과 TA, 교사들은 흰 상의와 검정 바지 또는 치마를 입은 채 손수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교내를 행진하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마지막으로 교무실 외벽에 부착된 큰 태극기 앞 간이 연단에 모여 애국가를 제창한 뒤, 교장 선생님께서는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학교가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이어가길 바란다는 말씀을 전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큰 목소리로 “만세” 삼창을 외치며 기념행사를 마무리했다.   모국을 떠나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멕시코 등지에서 독립자금을 모았던 선열들의 애국 활동은 더욱 뜻 깊다. 특히 도산 안창호 선생이 남긴 “오렌지 하나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라는 말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문학 역시 그 시대를 반영한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에는 만주 일대에서 항일 투쟁을 벌이던 독립군의 의지와 고향을 떠난 동포들의 고달픈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갑이 아제’는 만주에서 홀로 벌목일을 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강물에서 목욕한 여윈 몸에 베옷을 걸친 채, 학의 날개짓 같은 몸짓으로 참담한 현실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절절한 소리로 풀어낸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한 민중의 삶과 소망이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의 시는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었다. 모국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한국의 학교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보다, 이곳 한국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애국가를 부를 때 더욱 깊은 울림을 느낀다. 첫 소절부터 눈시울이 젖는 경험을 하곤 한다.   먼 조국의 태극기를 직접 그리며, 선열들처럼 함께 만세를 외치는 한국학교 학생들의 가슴 속엔 분명 새로운 씨앗이 심어졌을 것이다. 권정순 / 풀러턴 한국학교 교사열린광장 한국학교 학생 이곳 한국학교 대한독립 만세 한국어 교과서

2025-03-27

[열린광장]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젊었을 때, 힘든 시기를 보낼 때마다 작고하신 어머니께서 자주 해주셨던 말씀이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가정이 빈곤에 허덕였지만, 우리 집은 유독 더 가난했다. 8남매를 둔 어머니는 36세에 청상과부가 되어 자식들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공부는 사치였다. 결국 나는 중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가구 공장에서 일하며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이른 아침 공장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심정과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좋아했던 여자애가 여고생이 되어 단정한 교복 차림에 자주색 책가방을 들고 등교하는 모습과, 공장으로 향하는 남루한 작업복 차림의 내 모습이 중간에서 마주칠 때였다. 그 순간이 너무 창피해서 매일 다니던 길 대신 20분을 더 걸어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동생보다 더 아껴주던 친구의 누나가 “남자라면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고 설득하며 야간 고등학교 등록금을 내주었다. 동창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나는 비로소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그때부터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구두닦이, 신문팔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어느 날, 혼담이 오가던 둘째 누나가 나를 불러 앉혔다. “너 때문에 시집을 못 가게 생겼다.” 울먹이는 누나는 나를 부둥켜안고 하소연했다. 명동 한복판에서 신문을 팔던 내 모습을 매형 될 사람이 보았던 것이다.   이후, 작은 무역회사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준비했지만, 끝내 세 과목을 치르지 못한 채 군 입대를 해야 했다. 대학생은 입영 연기가 가능했지만, 고등학생은 예외였다. 제대 후 다행히 손해보험회사에 취직했지만, 고졸 출신은 진급이 늦었다. 나보다 늦게 입사한 대졸 후배가 내 상사가 되었고, 평생 과장 자리에서 머무는 선배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꼈다. 학벌과 학위가 전부인 회사 시스템에 절망했고, 결국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주경야독 끝에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 시절, 야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었다.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 때 얻은 위장병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어머니 말씀은 단순히 고생을 감수하라는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젊을 때의 고생은 훗날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니 받아들이라는 의미였고, 고진감래의 순간이 올 것이니 견디라는 격려였으리라. 하지만 나는 어머니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듣기 싫었다. 맹자는 “걱정과 어려움이 나를 살게 하고, 안락함이 나를 죽음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이는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안락할 때 방탕하지 말라는 경고다.     독일의 한 연구소에서는 지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역경을 극복한 사람과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더욱 지혜로우며, 특히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인생의 어두운 면을 일찍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젊을 때의 어려움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발전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아니겠는가.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지금 내가 미국에서 이만큼 살아가는 것도 그때의 경험이 밑거름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젊은 시절의 고생이 결국 성공의 기회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이진용 / 수필가열린광장 고생 고등학교 졸업 야간 고등학교 어머니 말씀

2025-03-23

[열린광장] 고목 간추리기

연방 공무원 사회가 감축, 감원, 해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방성 정문에서 신임 국방부 장관(예비역 소령)에게 깍듯이 경례하던 4성 장군 브라운 합창 의장도 해고되었다. 트럼프의 심복 일론 머스크는 공무원들에게 매주마다 다섯 가지 프로젝트를 기록해서 보고하지 못하면 사퇴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일하지 않는, 쓸모없는 고목을 간추리기 위해서다.   일하지 않는 고목 같은 공무원이 있는가. 물론 있다. 공무원으로 잔뼈가 굵은 나는 알고 있다. 한국전쟁 와중에 월남한 나는 인천에 정착하여 용현동 미군 유류 창에서 소화기 검사원으로 공무원의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 소화기 검사원이 나중에 국방성 조달청 서부 지역 계약 사령부에서 ‘직업 안전관리 감사관(Safety and Health Specialist)’으로 보잉의 안전 관리를 감사하는 공무원이 될 것을 누가 알았을까.   나는 미군 유류 창에서 감독자의 호의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 일해 외국어 대학을 졸업했다. 군사고문단 (KMAG)에서 모집하는 통역관 시험에 합격해, 육군본부 인사처에서 민간인 고문관과 막대한 인명과 재산 손실을 감축하는 대한민국 육군의 비전투 사고 방지 업무를 지원하는 일을 했다.   한국에서 21년 공무원 생활을 하고 특별이민으로 호놀룰루에 정착했다. 주 정부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일본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고 있는데 주정부 노동청 직업안전 인사과에서 안전 검사원으로 채용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식당의 일본계 웨이트리스들이 우리 식당 접시닦이가 주정부 청소부도 아니고 안전 검사원으로 간다고 한참 동안 입방아를 찌었다.     그 후 6년을 안전 검사원, 교육 및 홍보, 안전 규정 편찬을 지냈다. 하와이 큰 섬, 마우이, 카우아이로 출장다니며 건축 공사장도 검열했다. 그 정점이 마우나케아산(Mauna Kea)의 천문대 건축 공사장 검열(중앙일보 2011년 신인문학상 참조)이었다.   하와이주 공무원들은 대개 진주만을 바라다보고 산다. 선박수리소의 연방정부 공무원들은 높은 봉급에 생활수당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의 별 따기로 경쟁이 심하다.   진주만 옆의 공군기지에 지상 안전관 모집에 응모했다. 안전관리의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인 나는 퇴역 공군 장교들을 물리치고 국방성 공무원이 되었다.   아이들이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진학한 뒤 방학 때마다 집에 왔다. 아이들 항공요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롱비치 해군 선박 수리소에 공석이 생겨 미 본토로 이주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었다. 더글러스 항공기 제작소의 공군 소속 현장 파견대에서 일하다가 진급되어, 조달청 서부 지역 계약 사령부의 부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자격이 의심되는 매니저를 도와주는 내게 시선이 몰렸다. 나의 영어 실력에 바닥이 드러났다. 공문 초안을 작성하여 상부에 제출하면 붉은 펜으로 ‘다시’라고 그어져 돌아왔다. 정관사와 부정관사, 단수와 복수 사용이 왜 그렇게 까다로운지.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의 ‘문법 도움이’도 없었다. 달구지를 끌고 나무하러 다니던 촌놈이 바윗덩어리 같은 컴퓨터의 DOS 프로그램 조작은 어려웠다.     그래서 ‘무능하면 파도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make no waves)’고 생각했다. 무사안일주의였다. 공무원은 프로베이션 기간만 지나면 무능해도 해고되지 않는 철밥통이다. 대신 일찌감치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조기 은퇴의 탈출구가 보였다. 30년 전 2만5000불의 ‘상여금(buy out)’을 받고 시원섭섭하게 은퇴했다. 돌아보면 나 같은 사람이 바로 고목(dead wood)이 아니었을까. 윤재현 / 전 연방공무원열린광장 고목 직업 안전관리 공무원 생활 공무원 사회

2025-03-20

[열린광장] 일류의 조건

대기업에 다닐 때다. 회사 전체의 다음연도 손실과 이익 계획을 경영계획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회사 전체의 경영계획을 관리팀의 직원 한 사람이 관리했다. 엑셀(Excel) 프로그램 하나로 직원 한 사람이 4000명이 넘는 회사 전체의 연간 수입과 지출 계획을 관리했던 것이다. 그 직원은 혹시나 다른 직원이 자신이 관리하는 엑셀 프로그램을 알거나 건드릴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자신이 아는 기술이나 지식을 꼭 부여잡고 평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아는 걸 남에게 알려주면 자기 밥그릇이 날아간다고 여기는 것 같다. 어쩌다 얻게 된 노하우나 지식 하나를 부여잡고 평생을 사는 것이다.   요즘에는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기가 쉬워졌다. 하지만 예전에는 ‘도제 교육’이라고 해서, 숙련된 전문가 아래서 초보인 제자가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영화를 보면 제자는 일평생 스승 아래서 마당만 쓸다가 스승이 눈을 감기 직전에 지식을 전수받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교육학자인 사이토 다카시는 ‘일류의 조건’이란 책에서 ‘훔치는 기술’을 말한다.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잘 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훔치는 기술은 남에게 ‘지식을 훔치는’ 기술이다. 그가 말하는 ‘일류’는 꾸준한 자기 성장을 하며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일생을 성장하는 사람이다.     항상 성장하는 사람은 자기 밥그릇을 쉽게 남에게 내어 줄 수 있다. 자기는 이미 다른 밥그릇을 쳐다보기 때문이다. 남에게 가르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은 자기 밥그릇만 본다. 남이 금방 자기 밥그릇을 차지할까봐 늘 전전긍긍한다.     남에게 쉽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기는 두 개 세 개를 새로 깨우쳐야만 한다. 그것이 일류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것이다.   동경대 법대를 나와서 일본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저자는 ‘일류’가 되기 위한 또 다른 조건으로 ‘요약하는 힘’을 꼽는다. 업무 지시를 하다 보면 5분만 지나도 졸고 있는 직원을 본다. 그는 졸면서 나에게 외치는 것 같다. ‘제발 요약해서 본론만 말하라’고 말이다.     요즘은 영화도 짧게 요약한 것들이 유튜브에 많이 나와있다. 책의 내용도 요약되어 있다. 업무지시를 하든 강의를 하든, 고객에게 설명을 하든 ‘요약’해야 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받은 교육 중에 내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 하나만 꼽으라면 ‘짧은 글 짓기’다. 글을 짧게 짓기 위해서는 내용을 여러 번 곱씹어 보고 완전히 내 것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남의 입장이 되어 내 글을 읽어보아야 한다. 과연 이 말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까.   다카시 교수의 마지막 일류가 되기 위한 조건은 ‘추진하는 힘’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추진력은 매일 샘솟지 않는다. 그래서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몸은 처음에는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계속해서 습관으로 만들면 몸이 알아서 혼자 움직인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습관은 성격을 만들고 성격은 운명이 된다.” 작지만 계속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한다. 손헌수 / 변호사·공인회계사열린광장 일류 마지막 일류 자기 밥그릇 엑셀 프로그램

2025-03-19

[열린광장] 광화문 광장의 민주주의, 어디로 가나

헌법에도 명시된 바와 같이, 모든 권력의 근원은 국민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의 목소리에 있으며, 이는 국민의 권리로 보장된다.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의 외침과 집회는 이러한 민심을 대변해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은 연일 ‘집회 없는 날이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지만, 때로는 법과 질서보다 앞서는 군중의 외침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3·1절과 같은 국경일까지도 대규모 집회로 인해 국민적 기념일이 아닌 갈등의 장이 되어가는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안긴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조차 이제 ‘광화문 집회’는 관광 목록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 과거에는 천막을 치고 자리까지 마련하며 장기간 집회를 이어가는 모습도 흔했다. 단식투쟁을 하며 명상하듯 시위를 벌이는 이들도 있었고, 정부를 향한 항의의 목소리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집회 문화는 과연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인가.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둘러싼 찬반 집회는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 의회민주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갈등이 거리에서 표출되며, 집회는 다시금 국민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영국에서는 반정부 시위대가 의회와 궁전을 불태우겠다고 모였을 때, 한 교통경찰관이 나서서 “의회로 갈 사람은 이쪽, 궁전으로 갈 사람은 저쪽”이라며 길을 정리해 군중을 자연스럽게 해산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이는 국가와 국민이 갈등을 조율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방식의 한 사례로 꼽힌다.   대한민국 역시 집회의 역사를 지나왔다. 1960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며 “데모로 해가 떠서 데모로 해가 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자유당 시절 연간 50건에 불과하던 집회가, 1960년에는 불과 10개월 만에 1000건을 넘었다. ‘데모한다, 고로 민주주의는 존재한다’는 구호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한국의 집회 문화는 3·1운동(1919), 6·10 만세운동(1926), 광주학생운동(1929) 등 역사적 사건을 통해 발전해 왔다. 해방 이후에는 반탁·찬탁 시위가 국토 분단과 6·25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4·19 혁명은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전야의 민주당 정권 시기의 혼란스러운 시위는 한국 집회 문화의 가장 어두운 단면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데모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도한 집회로 인해 외국 기업들이 한국을 기피하는 나라로 인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광화문의 외침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목소리가 중요하지만, 그 방법 또한 성숙해야 한다. 법과 질서 속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이루어질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열린광장 민주주의 광화문 광화문 광장 광화문 집회 외침과 집회

2025-03-13

[열린광장] 문학의 ‘쓸모’에 관하여

오렌지글사랑 모임이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매월 공부해온 세월이 어느새 30년이 된 것이다. 도대체 문학이 무엇인가, 거기에 무슨 마력이 있어 그렇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일까.   중학 졸업 후 진학을 못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때였다.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참 막막한 시절이었다. 한 달에 한 번쯤 마을 이발소에 들렀다. 그곳에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 한 폭과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 한 편이 걸려있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 괴로운 날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 오리니 / 인생은 언제나 슬픈 것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매월 꼬박꼬박 만나게 되는 그 시 한 편이 가만가만 나를 어루만지며 위로하기 시작했다.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온다’는 대목을 되뇌며 힘든 날을 견뎌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만났던 한 편의 시가 지금까지도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문학의 힘이다.   작년에 글사랑 회원 세 분이 수필집을 출간했다. 수필은 자신의 바닥을 내보이는 글이다. 쑥스럽고 부끄럽고 남세스러운 일까지를 빨랫줄에 걸어놓은 일이다.     밑바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남의 밑바닥 얘기를 들으면서 내 밑바닥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야기 속의 나와 내 속의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이다. 공감하고 감동한다. 밑바닥이 밑바닥을 만나면 부둥켜안고 울기 십상이다. 울음은 엉킨 가슴을 풀어주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준다. 문학의 힘이다.   쉬운 인생은 없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삶이다. 벼라 별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원망과 미움, 자책과 서러움 등이 차곡차곡 쌓인다. 들끓는 마음의 충동, 불안하고 어두운 자의식을 고백하기는 쉽지 않다. 글쓰기를 통해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세상이 보이듯, 글을 쓰고 나면 삶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글을 마친 다음 어느 작가는, ‘가슴에 맺혀있던 돌덩이 하나가 쑤욱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글쓰기를 통해 영혼을 위로받고 아픔이 치유되었다는 놀라운 체험을 얘기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물론 독자에게도 위로와 위안을 준다. 문학의 힘이다.   최근,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변론에 나선 변호인들의 주장을 TV를 통해 지켜보았다. 청구인과 피청구인 측을 대변하는 모든 변론 중, 장순욱 변호사의 변론이 단연 돋보였다.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을 얘기한 그의 말은 정연하고 담백하고 아름다웠다. 헌재의 최종 결과와는 무관하게, 상대를 설득하여 공감하고 감동시키는데 문학적 표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입증해준 변론이었다. 그의 변론은 ‘문학의 힘’이 얼마나 큰지, 문학의 쓸모가 어디에 있는가를 일깨워 주었다.   문학은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다. 삶의 굽이굽이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잘 살아낼 수 있는가. 문학은 이야기를 통해 그 길을 조곤조곤 안내해 준다. 정찬열 / 시인열린광장 문학 문학적 표현 밑바닥 얘기 오렌지글사랑 모임

2025-03-12

[열린광장] 창고에 묻혀있는 이승만 초상화

미국의 인물화 화가 보리스 샬리아핀(1904~1979)이 1950년 제작한 작품 ‘한국의 이승만(Korea’s Syngman Rhee)’은 그해 10월 16일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표지를 장식했다.     표지에는 “We have not despaired; we must not be disappointed(우리는 절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낙담해서는 안 된다)”라는 부제가 함께 실렸으며, 6페이지 분량의 한국전쟁 관련 종군 기사와 함께 발간되었다. 이 표지는 당시 한국전쟁의 참상을 미국 사회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리스 샬리아핀은 이 작품을 수채화 물감에 고무를 섞어 불투명 효과를 낸 ‘구아슈(Gouache)’ 기법으로 제작했다. 모델은 이승만 대통령이 6.25 전쟁 중 서울을 잃고 대전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중 미국 ‘LIFE’ 잡지와 인터뷰한 사진이었다. 표지의 부제는 이승만 대통령의 한국전쟁 대국민 연설에서 발췌한 문구였다. 필자는 당시 발행된 ‘TIME’지를 소장하고 있어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1978년 보리스 샬리아핀의 부인은 이 작품의 역사적 가치와 희귀성을 인지하고, 이를 워싱턴 소재 국립인물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NPG)에 기증했다. 그러나 기증 후 이 작품은 미술관 전시에서 제외되어 현재까지 창고에 보관된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의 크기가 작아 전시 기준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 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워싱턴에 거주하는 필자의 지인은 NPG 관계자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전해줬다. 필자는 한인으로서 새로운 대형 유화 초상화를 제작해 박물관 전시에 적합한 작품을 기증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인물 자료를 수집하고, 그의 내면 세계와 시대적 배경을 연구하는 과정을 거쳤다. 수개월간의 작업 끝에 새로운 대형 유화 초상화를 완성했다. 특히, 기존 보리스 샬리아핀의 작품에서 잘못 표현된 태극기의 괘를 바로잡아 보다 정확한 태극기를 배경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평소 추상화를 주로 작업해 온 필자에게 박물관 수준의 대형 유화 초상화 제작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다. 이 작품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의 정부 공식 흑백 사진을 모델로 하여 그의 단호한 내면과 최고 지도자로서의 근엄한 자세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국립인물화미술관(NPG)은 1856년 설립된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부속 미술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명성을 자랑하며 연간 1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 이곳에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 도널드 트럼프까지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으며,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초상화도 포함되어 있다.   필자는 한인 서양화가로서 개인적으로 본 작품을 국립인물화미술관에 기증하고 전시를 추진하고자 한다. 현재 기증 방법을 모색 중이며, 미술관의 심사 기준을 통과할 경우 대한민국의 글로벌 위상에 걸맞은 공공외교의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제이 황 / 화가열린광장 초상화 창고 이승만 대통령 한국전쟁 대국민 미술관 전시

2025-03-10

[열린광장] 단국대 미주 아카데미를 마치며

단국 대학교가 주최하는 미주문학아카데미가 LA에서 1주일 간 열렸다. 시와 수필을 창작하는 코스로, 열기가 대단했다.     단국대 문예창작과의 교수이며 한국 문단의 최고봉에 있는 안도현 시인과 해이수 소설가의 열강이 매일 오후 5시간씩 펼쳐졌다. 참가자 40여 명은 대부분 캘리포니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인 작가들이었다. 북가주와 샌디에이고 쪽에서 온 작가들은 LA 인근의 호텔에 일주일 간 머물며 강의를 들었다. 2014년부터 해마다 단국대가 미주 작가들을 지원해 온 겨울 캠프로 많은 작가들이 도움을 받아왔다.   안도현 시인과 해이수 소설가의 공통적 키워드는 훈련, 훈련, 훈련이었다. 많이 읽기, 매일 꾸준한 연습, 내용과 형태의 다양한 시도, 채찍질 같은 타인의 평가를 겸손하게 수용하며 훈련을 거듭하는 것이었다.     안도현 시인은 낯선 환경을 과감히 접해보고, 자신의 우물에서 벗어나, 사고의 틀 흔들어 주면, 전혀 새로운 시어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특히 ‘나’를 버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를 버리면, 작가가 객관화된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된다고 했다. 시인은 ‘나’를 버리는 글쓰기 연습을 3년 동안 하라고 주문했다.   해이수 작가는 첫 강의에서 자신의 에베레스트산 등반과 호주 사막 여행,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 가졌던 사색과 독서 등이 자신의 인생과 작품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해이수 소설가는 글을 쓰는 행위가 이미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읽고, 매일 쓰고, 매일 감동 받으려 노력하면, 타인의 삶에 울림이 있는 글을 쓰게 된다고 가르쳤다. 작가가 되겠다는 용기는 매일 쓰겠다는 결심과 훈련, 그리고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사물의 본질을 깨닫게 됨으로써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6일에 걸친 아카데미 강의는 미주 작가들이 느껴온 목마름이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강의는 스파르타식으로 진행되었다.     우리는 제자리에서 시간 안에 20편 정도의 수필 작품을 읽어내고 평가하는 훈련을 했다. 시는 왜 꼭 12행 내외여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혔냐는 질책을 받으며 30행 이상의 시를 써내라는 과제를 받기도 했다.     오후 내내 강의를 들은 후, 다들 집에 가서 수필과 시를 밤늦도록 써서 다음날 제출했다. 그리고 도마 위의 생선처럼 혹독하게 난도질 받을 각오를 하고 합평 시간을 맞았다. 참가자들은 배움에 진지했다.   미주 작가들의 문학에 대한 갈망은 6일간의 아카데미 캠프라는 단비를 맞았다. 시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고, 수필의 격을 높이는 싹을 틔웠다. 참가자들이 마지막 날 제출한 작품들은 시작 첫날에 제출한 작품보다 월등하게 좋아져 있었다.     우리 미주 작가들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스스로의 성장을 목격했다. 우리는 귀한 지식과 경험뿐만 아니라 열정까지 나누어 받았다. 해마다 멀리 귀한 지원을 해주는 단국 대학교 미주 아카데미에 깊이 감사한다. 송마리 / 시인열린광장 아카데미 단국대 아카데미 강의 아카데미 캠프 단국대 문예창작과

2025-03-09

[열린광장] 100세까지 운전하려면

운전하지 말라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눈이 텁텁하다. 차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다. 고속도로에서 옆 차와 접촉할 뻔했다. 우선 속도를 줄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한다.     그러나 오늘 오후 인식력, 즉 판단 미스로 또 사고 날 뻔했다. 우리가 사는 주택단지 후문으로 나오면 링컨 도로다. 우측 회전을 하기 전 좌측을 보니 차가 계속 오고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끊이지 않는다. 약간 틈이 난 사이 회전했다. 파란색 세단이 내 차의 뒤를 받을 뻔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차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구순이 지나니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기적거리며 걷는다. 운전할 때 고개를 돌리기가 힘들다. 미국에서 75세 이상의 시니어 약 80퍼센트가 운전을 그만두거나 줄인다고 한다. 보통 7~10년만 더 운전한다는 통계가 있다. 나는 이 통계를 무시하고 아직 운전대를 붙들고 있다.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미국에서 운전을 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아내는 매주 여러 번 병원에 간다. 약국에서는 거의 매일 두 사람의 처방약을 가져가라고 연락이 온다. 나는 풀단지에 쥐 나들듯 시장에 자주 간다. 운전을 하지 못하면 발이 묶인다. 바쁘게 일하는 딸에게 부탁해야 한다. 택시를 부른다. 택배를 부른다. 아이고, 맙소사.       운전은 시력, 청력, 체력, 인식력이 뒷받침해줘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시력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그동안 눈 관리를 게으르게 했다. 오른쪽 눈에 안질이 생겼다. 더러운 손으로 눈을 만진 탓이다. 눈곱이 자꾸 나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에 가서 항생제 안약을 처방받아 눈에 넣으며, 아침저녁으로 더운 물로 거즈 수건을 적시어 습포(濕布)를 했다. 안과 의사를 만나 보았다. 황반변성 증상이 없다고 한다.   눈은 먹는 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부작용으로 눈이 텁텁해지거나 감긴다. 두통, 설사 또는 어지러운 증상도 생긴다. 난 반대로 약을 먹지 않으면 눈이 감긴다.     눈에 좋다는 루테인, 비타민 D와 E 그리고 피시 오일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피곤하지 않도록 고양이 잠을 자주 잔다. 앞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운전하려면 시력을 가꾸어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나는 운전하지 못하면 날개 부러진 새라고 주장하지만, ‘그만’이 기다리고 있다. 면허를 한 번 더 갱신하면 97세까지 운전할 수 있다. 욕심으로 3년을 더 해 100세까지 운전하고 싶다. ‘Aim high’. 목표를 높이 세우자.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운전 시력 청력 황반변성 증상 우측 회전

2025-03-03

[열린광장] 고 김윤경 선생을 추모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김윤경은 경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거쳐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을 철학, 신학, 역사 연구에 바쳤습니다. 그가 고민한 것은 ‘진정한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와 ‘남북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였습니다.   그와의 첫 만남은 1986년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강연에 참석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 비판에 대한 강의는 무려 여섯 시간 동안 이어졌고, 깊이 있는 해석과 논증이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그의 설명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원죄 개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설명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자식의 입이 쓰겠느냐? 내가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묻지 않겠다’는 성경 말씀을 전하며 “원죄를 지닌 인간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깊은 사색을 유도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가 ‘능력만큼 일하고 번 만큼 소비하는 체제’라면, 공산주의는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체제’라는 비교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철학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습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1년간 강의했습니다. 칸트의 묘비명인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 그리고 내 마음의 도덕법칙’을 되새기며 철학 공부를 다시 이어갔습니다.     특히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의미 있는 자료를 찾아 제공할 정도로 연구 범위가 방대했습니다. 그가 건네준 책 중 하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 음악가이면서 목사였던 슈바이처가 37세에 의과대학 졸업 논문으로 발표한 예수에 대한 정신의학적 연구였습니다. 그가 이끈 ‘86역사모임’은 1986년 시작되어 33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강연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적 논점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분석하였습니다. 예컨대, 맥아더 장군이 남한을 유엔의 관리하에 둔다고 선언한 반면, 소련은 북한을 독립국가로 인정했다는 문서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소련군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 북부를 점령하려 했고, 미국이 이를 막기 위해 두 차례 원자폭탄을 투하했다는 논점도 다루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왜 이렇게 공부만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진정 원하는 바를 하지 않는 인생은 낭비한 것”이라 답했습니다. 이 때문에 화가였던 부인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두 딸은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고등학교 3년을 월반하여 대학에 진학하는 기록을 세웠고, 현재는 인류를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윤경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이들이 이민 생활 속에서 깊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월 21일 금요일 밤, 잠든 채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중국어로 된 역사서 400여 권, 독일어 원서를 포함한 철학 서적, 그리고 3000여 권의 영어 서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어려운 성장기를 겪었지만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고, 평생을 ‘가장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데 바쳤습니다. 그를 떠올리면 “지면을 지그시 누르는 바위의 무게는 날아오르는 새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의 열정과 애정이 AI 시대에 더욱 산만해져 가는 인간 정신세계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로 남기를 바랍니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열린광장 김윤경 선생 김윤경 선생 철학 서적 철학 공부

2025-03-02

[열린광장] 노인의 시 공부

은퇴한 후, 치매 예방에 좋을 것 같아서,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늙었기에, 내 두뇌 또한 늙었다. 두뇌가 늙었는데 시를 쓸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해보았다. 이때 바로 일본의 시바타 도요라는 할머니의 시가 유행되었다. 시바타는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100세에 시집을 발간했다. 그 시집이 일본에서 100만 권 이상 팔렸다. 한국에도 그녀 시집이 번역되어 많이 읽혔다. 시바타를 보고서, 두뇌가 늙었어도 시를 쓰는 데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테의 수기’에서 독일 시인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젊어서 시를 쓴다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 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이 아닌 것이다 (감정이라면 젊었을 때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시는 경험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도시와 온갖 사람들, 그리고 여러 가지 사물을 알아야만 한다. 추억이 많아지면 추억 또한 잊혀야 한다. 그 추억이 우리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몸짓이 되고, 이름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마침내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 없게 됨으로써, 아주 우연한 순간에 한 편의 시의 말이 솟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늙어오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시를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동네 미국 도서관에 가 보았다. 한국소설이나 수필 책은 수두룩하게 많아도, 시집은 단 한권도 없었다. 그래도 이리저리 시집을 구해서 많이 읽었다.   막상 시를 쓰려고 하니까 전연 써지지 않는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경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를 쓰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있어야 한다. 그에 따른 사색(思索)이 있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안 된다. 시를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소수의 천재는 배움 없이 시를 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 쓰는 방법을 꼭 배워야 한다. 배우기 위해서, 시 선생을 찾았다. 뉴욕에는 시를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하나도 없었다.   2017년, 내 나이 여든. ‘중앙일보 문학 동아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전화해서 참여했다. 김정기 선생님을 만났다. 시 작법을 배웠다. 많은 시간을 시 공부에 열중했다. 시라는 게 배운다고 해서 쉽게 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또 알았다. 운동선수들이 매일 고된 연습을 하는 식으로, 시 또한 매일 써보고 또 써보면서, 고치고 또 고쳐가면서 실력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인 나태주는 “산문은 작정하고 쓸 수 있지만, 시는 작정하고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시는 내가 쓰는 게 아니고, 시 자체가 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시상(詩想)은 뜬금없이 저절로 떠오른다. 떠오른 시상은 금방 없어진다. 없어지기 전에얼른 종이에 적어놓아야 한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 기억해내기 어렵다. 종이에 적어놓은 시상을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수정한 후에 한 편의 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써놓은 시를 아내한테 읽어보라고 한다. 아내가 좋아할 때까지 혹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시를 고치고 수정한다. 시를 쓰다 보면 짜증도 나고 골치도 아프다.   그런데 다 써놓은 후 완성된 시를 읽어볼 때의 기분은, 마치 높은 산 정상에 도달했었을 때의 만족감이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임상 조교수열린광장 노인 공부 그녀 시집 시인 나태주 김정기 선생님

2025-02-25

[열린광장] 춤, 시대를 비추는 거울

춤이 시대의 사회성과 정치를 반영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춤은 단순한 신체적 움직임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는 강력한 예술적 표현 수단이 된다. 이는 바체바 댄스컴퍼니의 ‘모모’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지난주 뮤직센터에서 공연한 모모를 진발레스쿨 발사모(발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단원들과 함께 관람했다. 바체바 댄스 컴퍼니는 1964년 바체바 드 로스 차일드가 마샤그라함을 예술고문으로 해서 창립된 이스라엘 무용단인데 한 번도 관람한 적이 없고 생소하여 무척 궁금했다. 마침 공연이 뮤직센터에서 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특히 천재적 안무가로 추앙받는 오하드 나하린의 모모는 미국 초연이라 해서 더욱 관심이 갔다. 한미무용연합회 (KOA Dance Federation)는 뮤직센터에 등록된 비영리단체로 무용공연 관람 시 20% 할인 혜택이 있다. 단원들은 단체 티켓을 구입하고 미리 바체바 댄스컴퍼니에 대해 배웠다.     공연장 입구는 다른 공연과는 달리 무장한 군인도 보였고 보안 경비가 삼엄했다. 입구 양쪽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표시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군중도 보였다.  공연내용이 주목하는 현재 정치와 맞물려 그런 거 같다는 생각을 혼자 했다. 공연 도중에도 사진과 비디오를 찍지 말라고 공지할 정도였다. 바체바 댄스 컴퍼니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엄청 큰 단체인 것을 알고 나서 더 흥미를 갖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정치적 맥락 속에서 춤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모모‘ 역시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과 힘의 균형을 탐구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갈등과 정체성을 암시하는 듯했다.     춤은 역사적으로도 사회 변화를 반영해 왔다. 19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고전 발레가 민중을 위한 예술로 변화한 것이나, 미국에서 흑인 사회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현대무용이 발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오늘날에도 춤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공감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바체바 댄스컴퍼니의 모모는 두 개의 영혼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묘사된다. 하나는 원시적이고 남성적인 힘을 상징하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는 단순한 미학적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이중성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의 권력과 개별성의 균형을 조명하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처럼 춤은 시대의 거울이며, 때로는 미래를 비추는 창이 되기도 한다.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변화를 담아낸 춤은 단순한 공연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관객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춤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의 고민과 희망을 읽을 수 있다.     현대무용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다양하다. 전날 공연을 본 딸은 충격과 쇼크를 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무엇을 표현하는지 모르는 느릿한 동작, 성의없어 보이는 의상, 텅 빈 무대 공연 내내 지루해서 졸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해석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현대무용은 정해진 정답이 없는 예술이다. 관객 각자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는 무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공연을 반복적으로 감상하고, 무용수와 안무가의 의도를 탐구해 보며 천천히 다가가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감각과 깊이 있는 감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를 얻는다. 진 최 / 최한미무용연합회회장 진 발레스쿨 원장열린광장 비추 거울 무용공연 관람 공연장 입구 사회적 메시지

2025-02-23

[열린광장] 따끈따끈한 지과(地果)

밖에는 겨울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다. 따뜻한 온돌방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황해도 몽금포의 고향 집으로 돌아간다. 온돌방에 이불을 깔고 그 속에 발을 넣고 앉아서, 잿불에 구운 따끈따끈한 지과를 먹으면 눈물겹도록 맛있었다. 황해도에서 고구마를 땅에서 나오는 과일, 地果라고 부른다. 그럴듯한 사투리다.   붉은 흙과 자갈이 섞인 땅에서 거둔 지과가 달고 맛있다. 사람보다 산돼지가 지과를 더 좋아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넝쿨이 무성하고 고구마가 메추리알처럼 달리기 시작하면 돼지와 싸움을 벌인다. 그들은 밤에 내려온다. 먹는 것은 좋지만 지과 밭을 일구어 망가트린다.   나는 밤에 밭고랑에 거적때기를 깔고 잠을 잔다. 모기를 쫓기 위하여 마른 쑥을 피운다. 가끔 일어나서 양철 대야를 두들긴다. ‘돼지야 물러가라!’ 교가도 소리 높이 부른다. 돼지와 모기와 싸우다 보면 잠을 설친다.   이 지과를 수확해서 집 윗방에 모신다. 광에 저장하면 지과가 냉동된다. 윗방에 수숫대로 둥글게 발을 치고 지과를 바닥부터 천정까지 쌓아 올린다. 겨울에 쪄먹고, 구워먹고, 날것으로 먹는다.     봄이 되면 윗방에 흙을 깔고 지과를 심고 물을 주어 싹을 낸다. 싹이 자라면 밭에 옮겨 심는다.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싹 주위에 물을 부어준다. 허리가 부러지듯 힘든 일이다.   오늘도 점심에 지과를 한쪽 먹었다. 옛날 지과 맛이 나지 않는다. 배가 부른 탓이다. 요즘 모든 음식이 맛이 없다. 우리는 너무 풍요롭고 호화롭게 산다. 풀 단지에 쥐 드나들 듯 시장에 자주 가서 먹을 것을 사 온다. 더 넣을 틈이 없는 냉장고, 스위치만 돌리면 에어컨디션이 나오는 집에서 산다.   부에나파크에 사는 나는 오늘 아침도 마켓에 가다가 바로 담장 밖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걸어가는 무숙자를 보았다. 비를 맞아 어기적거리며 걷고 있다. 어디서 잠을 잤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노숙자는 미국의 골칫덩어리다. 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어도 화로에 눈 녹듯 흔적이 없고, 노숙자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면 누가 그들을 구제하는가. 열 숟가락이면 밥 한 그릇을 만든다(십시일반·十匙一飯)는 말대로 모든 종교 단체가 협력하면 좋은 결과가 맺을 것으로 생각한다. LA 한인 타운에 천주교 신부와 울타리 선교회의 목사가 노숙자 쉼터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단체의 지역사회 봉사사업을 높이 평가한다.   몇 년 전 어떤 비교 종교학자의 저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종교를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전구 와트와 비교했다. 내가 소속한 종교 단체는 어두운 이웃을 돕는데 어느 정도 자원을 할애하는가. 10와트부터 100와트 사이 얼마나 밝게 비추고 있는가.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종교 단체 노숙자 쉼터 비교 종교학자

2025-02-20

[열린광장] 쓸쓸한 대춘부<待春賦·봄을 기다리는 시>

폭설과 한파가 한반도를 한바탕 휩쓸고 갔지만 산골짜기나 개울가 응달에는 여전히 잔설이 혹한의 꼬리를 잡고 추위를 흩뿌리고 있네.     입춘은 진작에 지났는데 동장군의 미련은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가. 꽃샘 추위는 아직 음지에 숨어 때를 노리고 있어서 거리에는 코트 자락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서두르는 모습들이 시야를 채우네.   그러나 너나없이 포근한 봄바람과 따듯한 햇볕, 파릇한 생명력을 기다리고 있고, 겨울은 어차피 밀려갈 태세이니, 봄은 필경 잰걸음으로 가까이 오고 있겠지. 땅 밑에서는 생명의 싹이 꼬물거릴 터이고, 나무 가지도 움을 틔울 준비로 소리없이 바쁘겠지.   싱그러운 희망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강추위에 떨던 민초들이 봄기운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의 터전이고 위로인 산과 하천, 뜰은 촉촉하게 녹을 기색이 없네.     꽁꽁 얼어붙고 찢어진 세상은 다시 힘차게 일어설 실마리를 풀 수 있을까. 정치인들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부류들이 빚어놓은 대치와 혼란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인데, 그 분열과 추락을 멈출 해빙이 아득하니 뜻있는 이들이 마음을 졸이는 소리가 아련히 들리네.     포근한 화해의 조짐도 가물거리고, 추상같은 법의 기세도 물렁거리니 이대로라면 알고 모르게 스며들 국운의 쇠락을 막지 못할 진데 새 풀 옷을 입은 봄 처녀도, 말 탄 패기의 기수도 보이지 않는다는 탄식이지.   올해 경제성장률은 1.6%~1.7%(한국은행) 추락이 예상되고, 근근한 살림살이에서도 깊은 한숨소리가 들리고 있지. 트럼프 정권에 의한 국가 이기주의로 안보와 외교, 경제도 몰려올 강한 외풍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지 않은가.   인류의 문명을 빠르게 바꾸고 있는 AI 혁명이 바짝 다가왔음에도 중국은 세계 AI 인재의 47%까지 키웠다는데 한국은 고작 2%라니. 중국이 AI 관련 대학 학과를 2000개 신설할 동안 한국은 의료대란에 매몰돼 잠자고 있었으니 추위는 더욱 차갑게 옷소매를 파고드네.     국가가 처한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정권과 정파의 이익에만 혈안이 돼있고, 국민은 정치를 따라 둘로 갈라져서 바람처럼 몰려다니며 증오와 닭싸움만 일삼고 있으니 이대로 가면 나라가 어디까지 추락할지 우려의 소리가 아프게 들리네.   녹아라 강토여! 칼날 같던 삭풍은 북쪽 너머 너의 고장으로 돌아가 버리고, 미래를 꽃피울 봄이여 어서 오라.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노래한 ‘동방의 등불’로 이 나라가 다시 깨어나 빛나도록!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열린광장 꽃샘 추위 국가 이기주의 트럼프 정권

2025-02-18

[열린광장] 2월은 깨끗하게 시작하는 달

2월을 일컫는 February의 의미는 깊다. 이 낱말의 본디 뜻은 ‘깨끗게 한다’란 뜻을 지닌 라틴어 ‘februare’에서 비롯되었다. 기원전 700년에 로마의 왕 폼필리우스가 그때까지 열 달밖에 없던 달력에 두 달을 더 붙여서 열두 달로 만들고 맨 끝 달의 이름을 ‘February’ 라 불렀다고 한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고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기원전 46년에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가 그때까지 첫 달이었던 March 앞에 January와 February를 붙이면서 맨 끝 달이었던 February가 둘째 달이 됐다.   줄리어스는 제 이름을 따서 만든 7월(Jury)을 31일로 만들려고 2월에서 하루를 떼어내어 7월을 31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도 제 이름과 같은 8월(August)을 31일로 만들기 위해 2월에서 하루를 떼어왔기 때문에 2월은 28일로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2월은 로마 황제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은 달이었다. 물론 2월은 아직 추운 겨울 날씨처럼 쌀쌀하다. 그런 탓인지 즐거운 운동 경기도 열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늘은 이달을 축복하였는지 이달에 태어난 뛰어난 인물들이 다른 달보다 훨씬 많다. 특별히 이달에 미국의 이름난 네 사람의 대통령이 태어났다. 초대 조지 워싱턴, 9대 윌리엄 해리슨,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40대 로널드 레이건이 그들이다.   특별히 우리들이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도 나열해보면 놀랄 만하다.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전기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철학자 찰스 다윈, 소설가 찰스 디킨스, 성악가 테너 엔리코 카루소, 작가 빅토르 위고, 음악가 조지 핸델, 화가 그린 우드, 연극 배우 존 배리모어, 부흥사 드와이트 무디,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 들이다. 이 달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존 글렌 (나중에 상원의원)은 1962년 2월20일에 미국인 최초로 우주여행을 했다.   2월의 달 이름처럼 이 세상엔 깨끗하게 되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17 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은 영국 국교밖엔 종교활동을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영국 교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그들 자신을 ‘청결한 교인’이란 뜻으로 ‘퓨리턴’ 이라 불렀다. 이 퓨리턴들 가운데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 땅으로 건너온 영국의 교인들이 바로 그 이름난 ‘필그림’들이다. 이들이 오늘의 미국의 터전을 닦았고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무엇이든지 깨끗하게 시작하면 그 끝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법. 2월에 숨은 뜻이 주는 교훈이다.   2월에 숨은 재미있는 전설도 있다. 마멋(Ground-hog)이란 동물은 2월 2일에 제 그림자를 찾으려고 굴 속에서 나왔다가 햇빛이 비칠 때 제 그림자를 보게 되면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은 걸로 생각하고 다시 굴 속으로 들어가 동면을 취하다가 다시 나와서 제 그림자를 볼 수 없으면 비로소 봄이 온 걸로 알고 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날을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로 지키는 나라도 있다. 또한, 카톨릭 교회에선 2월 2일을 ‘성촉절(Candlemas Day)’로 지키기도 한다.     아무튼,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이나 사물이 그 속에 깨끗한 정신이나 특성이 스며 있으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될 날이 있다는 교훈을 2월을 통해서 찾아 보게 된다. 이는 마치 굴 속에서 뛰쳐 나와 새봄을 맞아 힘껏 기지개를 펴는 마멋과도 같지 않을까.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시작 로마 황제들 아우구스투스 황제 음악가 조지

2025-02-17

[열린광장] 이산가족 상봉, 이젠 주인 없는 잔치

불러도 대답이 없다. 남북 이산가족협회가 이산가족 상봉을 촉구하는 성명을 또 발표했다. 북측은 반응이 없다. 한국 전쟁 와중에 월남한 실향민이 연로하여 몇 사람 남지 않았다. 구순이 지난 나 같은 경우, 북한의 부모와 형은 연로하여 생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형의 자손들은 살아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조카들을 만나러 북한에 간다? 천만에! 이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주인 없는 잔치가 되어버렸다.   가족끼리 서신이나 전화 연락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생사도 모른다. 이런 비극이 어디 또 있나. 미국인 친구들에게 말하기도 창피하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이나 베트남 사람들은 서로 왕래한다는데.     이제는 눈물도 말랐다. 그러나 꿈은 가끔 꾼다. 집 뒷산 소나무 사이로 따발총을 멘 인민군이 내 뒤를 쫓아온다. 거의 잡힌다. “아이고 어머니!” 외마디를 지른다. 아내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눈을 떠보니 우리 집 침대 위다. 꿈이야, 고맙다.   재작년 컴퓨터 전문가인 조카에게 고향 집 주소를 세계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입력하라고 부탁했다. 깜짝 놀랐다. 고향 산천이 흑백으로 선명히 나타났다. 우리 집은 흰색으로 좀 크게 보였다. 개조한 것 같다. 월남한 아들이 있는 집이라고 몰수되고 노동당 세포 위원장이 사는지 모른다.     집 앞 개울이 흰색으로 보인다. 개울가에 키위같이 좀 작은 복숭아가 익으면 먹을 만했다. 장마가 끝나면 꽃뱀이 복숭아나무에 매달려 일광욕을 즐겼다. 집 앞에 제방을 쌓아 만든 논에 세워놓은 볏단도 보인다. 집 옆에는 텃밭이 있고 붉은 흙 언덕에 칡넝쿨이 자랐다. 이른 봄에 가느다란 뿌리를 뽑아 씹으면 뱉을 것이 없이 달고 맛있었다. 집 뒤 약산에 올라가면 황금, 하수오(何首烏), 작약(芍藥)을 캐던 골짜기도 보인다. 우리 동네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보인다. 전시용 군사 보급 도로인 것 같다.   이 사진을 내 서재 벽에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고향 집을 방문한다. 지구는 노출되어 있다. 이제는 숨을 곳이 없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그와 참모들이 미 해군 특공대가 빈 라덴의 저택을 습격하던 광경을 본 기억이 있다. 이 시간에도 수십 개의 첩보위성이 하늘에서 각국 수뇌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첩보 위성이 한국의 DMZ도 부처님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전쟁과 같은 기습작전이란 있을 수 없다. 인공위성의 첩보 작전은 세계대전 발발의 억지력이 될 수 있다.   전쟁은 억지되고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 공존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옛날 유대 민족은 포로생활 70년 만에 해방되었다. 우리 민족이 이산된 지 75년이 지났다. 하나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이산가족 상봉 이산가족 상봉 남북 이산가족협회 황금 하수오

2025-02-16

[열린광장] 숙면을 위한 작은 노력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가 수면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면의 중요성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하루하루 업무와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저하되고, 결국 생산성까지 떨어진다. 그제야 비로소 수면 부족의 영향을 실감하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은 하루 7~8시간의 수면을 취해야 뇌 기능, 호르몬 분비, 면역 체계, 신진대사가 정상적으로 조절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숙면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점점 늘어난다.   스마트폰, TV,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의 사용을 자제하면 수면의 질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체적 변화나 건강상의 문제로 인한 수면 장애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얼마 전, 미주중앙일보 오피니언 지면에서 ‘기저귀 떼는 날을 기다리며’ 라는 글을 읽었다. 기고자는 “밤에 다섯 번, 여섯 번 화장실에 가느라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사실 말을 하지 않을 뿐, 많은 시니어들이 야간뇨(夜間尿)로 인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노화로 인해 방광의 용량이 줄어들고, 당뇨병, 전립선 문제, 요로 감염 등이 야간뇨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숙면을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각자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기고문의 필자는 자신이 고안한 최면 기법을 소개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팔다리를 가볍게 스트레칭하며 단전호흡을 한 뒤, 성경 구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반복하면 어느새 잠이 든다고 한다.   나 역시 비슷한 방법을 쓴다. 한밤중 잠이 깼을 때 다시 잠들기 위해 찬송가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를 1절부터 3절까지 부른다. 학창 시절부터 익숙한 찬송가이지만, 아직도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억력 테스트도 겸해 제대로 암기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수십 번 연습한 끝에 드디어 3절까지 외울 수 있었다. 마치 작은 승리를 거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다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1절의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와 2절의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3절의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가 뒤섞이며 가사를 부를 때 한 박자씩 늦어지기 일쑤였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나름의 효과가 있다. 가사를 맞게 불러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어 있다.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사실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해도 상관없다. 조금 틀리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숙면을 취하는 것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 밤 푹 잘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숙면을 돕기 위해서는 생활 습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잠들기 두 시간 전에는 수분 섭취를 줄여 야간뇨를 예방하는 것이 좋다. 또한, 규칙적인 수면 습관, 균형 잡힌 식습관, 적절한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숙면의 질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결국, 숙면은 우리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기본적인 요소다. 작은 노력만으로도 더 나은 수면을 취할 수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백인호 / 수필가열린광장 숙면 노력 근심 걱정 걱정 근심 기억력 테스트

2025-02-13

[열린광장] 과유불급

아침 쾌변은 시원하고 기분이 좋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다’는 건강의 기본이다.     많은 시니어 특히 여자들은 변비 증세가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배설하지 못하면 변비라고 하는가. 어떤 사람은 하루에 몇 번 배설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삼일에 한 번 배설한다. 나는 대장이 짧은지 매일 아침 배변하지 못하면 그날은 몸이 찌뿌드드하고 입맛도 없다.     변비도 내력, 즉 유전인가 보다.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변소에서 “큰 아이야, 나 죽겠다, 좀 살려다오” 소리를 지르시곤 했다. 아버지는 작은 대나무 꼬챙이를 가지고 변소로 달려가서 할아버지의 변을 파냈다. 꼬챙이에 피가 묻었다.   식이섬유질이 풍부한 식사, 규칙적 운동, 그리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변비 예방법이라고 한다. 나는 채식, 운동, 물을 많이 마셔도 변비가 있어 ‘완하제(laxative)’를 복용한다. 그동안 네 가지 종류를 사용해보았다. 가장 무난한 섬유질인 메타뮤실, 복용이 힘든 마그네슘 미라 럭스, 자극성 세나(senna), 그리고 알약 소프트 젤이다.   요즘 사용하는 완하제는 내가 조제한 비방(秘方)이다. 한 테이블스푼의 메타뮤실, 한 테이블스푼의 치아 씨앗과 반 테이블스푼의 비트 가루를 섞어 마신다. 비트는 하늘이 내려주신 보혈 강장제다. 비트를 넣으면 마시기도 쉬워진다. 사람은 모두 다르게 때문에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해서 완하제를 선택해야 한다.   몇 년 전 멋도 모르고 세나 완하제를 먹고 혼난 적이 있다. 시애틀 사는 딸 식구와  글레시어 국립공원에 갔었다. 여행하면 변비 증세가 심해 완하제를 준비했다. 공원을 구경한 다음 떠나기 전 날 저녁, 메타뮤실에 마른 자두 세 개와 세나 한 알을 먹었다. 메타뮤실과 자두는 훌륭한 완하제다. 하지만 세나는 내장을 자극한다. 어쩌다가 세나를 먹었는지 과유불급이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먹은 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모텔을 떠나기 전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을 참고 떠났다. 한 시간 지난 다음 참을 수 없어, 길가의 어느 식당 주차장에 차를 멈췄다. 차에서 내려서 식당을 향해 시멘트 복도를 걸어가는데 왈칵 흘러내렸다. 바지를 움켜쥐고 식당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내복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고, 세면대에 바지를 대강 빨아서 입었다. 화장실 안에 냄새가 진동했다. 도망치듯 화장실을 나와서 차에 타고 줄행랑쳤다. 떠나면서 뒤돌아보니 그 식당 주인이 호스로 시멘트 복도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못 하고 떠났다. 왜 그 식당으로 들어가서 냄새를 풍겼을까. 두고두고 후회한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과유불급 식당 화장실 심해 완하제 변비 증세

2025-02-06

[열린광장] 생활 영어에 필요한 '코드'

해가 바뀌면 누구나 한가지쯤은 새로 해보겠다고 결심을 한다.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는 영어공부도 그중의 하나다.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처음 맞닥뜨리는 문제는 무엇으로 공부해야 하나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서점의 영어책 코너에서 고민했다면 지금은 유튜브 여러 채널 중에서 고민한다.   학습자의 수준이나 공부하는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처음 혹은 다시 영어 회화를 공부하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영어 코드’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고,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음악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내게 음악적인 재능이 전혀 없음을 금방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 찬송가를 펴놓고 피아노로 반주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멜로디만 치다가 나중에 알토, 테너, 베이스까지 같이 칠 수 있게 됐다. 수십 년이 지나자 쉬운 곡은 4부로 반주할 수 있게 됐다. 재능에 관계없이 반복 연습만으로도 가능했다. 그러나 아주 쉬운 곡도 악보가 없으면 칠 수 없었다.   영어 수업중 이런 내 고충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내 수강생 중에 한국에서 미국에 와서 음악공부를 마치고, 고향 강원도에 가서 학원을 하면서 음악을 가르치려는 학생이 있었다. 내가 악보를 봐야만 피아노를 친다는 말에 그는 “그건 음악 코드를 몰라서 그렇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다음날 인터넷에서 모든 코드를 프린트해 와서 대강 설명했다. 이것만 모두 외우면 찬송가를 거의 다 반주할 수 있다고 했다. 아! 처음부터 이 코드를 가지고 연습했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영어에도 음악의 코드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내가 음악 코드를 몰라 수십 년을 헤매었듯이 수많은 사람이 이 코드를 몰라 공부하다가 효과가 나지않아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1세대 스타 영어강사로 유명했던 문단열씨는 그의 저서 ‘말 못하는 영어는 죽은 영어다’에서 회화영어는 ‘쓰리 S’로 공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Structure(문장구조), Situation(상황), Sound(소리)를 말한다.   영어도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이니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장구조를 알아야 한다. 처음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도중에 포기하게 했던 주범은 바로 문법이다.   그러나 문법을 따로 공부하지 말고 문장을 익히면서문장 속에서 문법을 익히는 방법은 문법을 따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한다. 문장구조는 문장을 이해하고 만들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하면 된다.   그런 다음 상황이 설정된 내용으로 공부한다. 공부하는 목적에 따라 특화된 교재나 방법이 필요하겠지만 회화공부는 다양한 상황이 설정된 대화체로 말하는 것처럼 공부하는 것이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기에 효과적이다.   마지막 소리는 말을 하듯이 크게 소리 내어 읽으며 연습해 머리가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리듬을 익히면서 소리 내어 연습하면 몸에 영어가 체화되어 말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긴다.   이것이 내가 수십 년간 수천 명에게 생활 영어를 가르치면서 알게 된,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어 코드’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열린광장 생활 영어 영어 코드 생활 영어 음악 코드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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