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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양간도와 북간도, 그 사이

양간도(洋間島).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은 미국의 교포사회를 일러 ‘양간도’라고 불렀다. 북간도에 비유한 표현이다. 여러 가지로 음미하고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그럴듯한 비유다.   양간도라는 말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 어정쩡하게 떠 있는 섬’ 정도의 뜻이겠다. 최인훈 작가는 이 말을 미주 한인사회를 낮잡아보는 투로 사용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북간도에서 태어나서 양간도에서 살고 있는 중생인지라, 두 이름 사이의 상징적 의미를 비교해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간도(間島)는 글자 그대로 ‘사잇섬’이다. 사전의 설명을 빌리면, 간도는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북쪽의 조선인 거주 지역을 일컫는 말로, 일반적으로 간도라 하면 현재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역을 가리키며, 두만강 북쪽인 연변 지역을 ‘북간도’, 그 서쪽인 압록강 북쪽 지역을 ‘서간도’라 부르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북간도는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자 온상이었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이곳에서 힘을 얻었고, 후원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일송정 푸른 솔은…’으로 시작되는 가곡 〈선구자〉는 만주(특히 북간도)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군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란강, 용두레 우물가, 용문교, 용주사, 비암산…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용정의 노래〉였다.   그 밖에도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 15만원 탈취사건, 신흥무관학교 등… 북간도는 종교와 파벌을 넘어선 대단결을 이루어낸 터전이었다.   또한, 간도는 우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많은 인재를 길러낸 곳이기도 하다. 악랄한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조선과는 달리 일찍이 개화된 이곳에는 명동학교, 은진중학교, 대성중학교, 명신여중학교, 광명중학교 등 여러 곳의 학교와 교회가 세워져, 서양 선교사들이 들여온 근대식 교육으로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그 중심에 정신적 지도자 김약연 목사가 있었다.   ‘별의 시인’ 윤동주를 비롯하여, 문익환 목사, 독립투사 송몽규, 영화 〈아리랑〉의 나운규 감독 등이 여기서 공부했다. 강원룡 목사, 모윤숙 시인, 강경애 소설가 등도 이곳 출신이다. 잠시 거쳐간 이는 훨씬 더 많다.   연변 조선족 사람들은 이곳의 우리 이민문화사를 산업으로 만들고, 문화테마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명동촌과 용정 일대에 윤동주 생가와 명동교회. 명동소학교 등이 복원되어 있고, 윤동주 기념관, 연변조선족박물관도 지었다.   이에 비해, 태평양 건너 양간도 주민인 우리들에게는 그 옛날 북간도에서와 같은 절박감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제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피맺힌 안쓰러움이나 허망함도 없다. 잘 먹고 잘살아보겠다고 제 발로 걸어온 땅이니 서러움을 마음껏 드러낼 수도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북간도에서처럼 독립운동이나 조국광복 같은 뚜렷한 목표도 없다. 물론 미국에서도 초기 이민의 경우에는 조국 독립이라는 커다란 구심점이 있었다. 그것을 향해 하나로 뭉칠 수 있었고, 피땀 흘려 번 돈을 아낌없이 나라에 바치는 것을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뜨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뜨거운 구심점도 공동체 의식, 공동의 목표도 없다. 오로지 개인적 행복 챙기기에 바쁘다. 그래서 지금은 얼음짱 세상이다. 차디찬 땅 위에서 무슨 나무 한 그루인들 제대로 키우랴.   이민은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있는 합법적인 영토확장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영토확장을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 현실을 똑바로 파악하는 눈이 필요하다. 그 위에 우리 나름의 문화전통을 세워야 비로소 우리의 삶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마음으로 광복 80주년을 맞는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양간도 북간도 연변 지역 연변 조선족 압록강 북쪽

2025-03-20

[문화 산책] ‘양간도’의 불편한 진실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재미 동포사회를 ‘양간도(洋間島)’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만주의 북간도(北間島)에 빗댄 말이다.   양간도? 조국과 서양 사이에 떠있는 섬,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한인사회를 낮잡아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살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러 모로 새겨봐야 할 상징적이고 절묘한 비유임을 느낀다. 내키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양간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섬이다, 외로운 섬. 미국땅 한 귀퉁이에 고달프게 떠있는 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여기에도 못 미치고 저기에도 못 미치는 어정쩡한 섬, 그래서 외롭고 고달프고 서러운 양간도 주민이다.   섬 살림은 고달프다. 조국과 미국 사이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끼어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니 늘 긴장해야 한다. 균형이 깨지면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아니면 어설픈 미국 사람처럼 일그러지게 된다. 그렇다고 완전한 미국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서럽다.   하지만 서럽다고 주저앉아 한탄이나 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양간도를 축복의 섬으로 만드는 일이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양쪽을 이어주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쪽을 든든하게 이어주는 연결고리,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양쪽을 이어주려면 우선 내가 바로 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양간도에는 본질적인 ‘불편한 진실’이 한 가지 있다. 한인커뮤니티가 지금처럼 계속 발전을 거듭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이민이 계속 줄어들고, 새로운 이민이 오지 않으니, 한인사회가 빠른 속도로 노령화하고 쇠퇴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앞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유대계처럼 완전히 미국 사회에 녹아들어 살면서 민족적·정신적 정체성을 고집스럽게 지킬 수도 있고, 차이나타운처럼 요란하게 드러내 놓고 개성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일본 커뮤니티와 비슷한 운명일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아무튼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바람직한 방향설정을 위해서는 1세와 2세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함께 공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화예술도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준비해야 한다. 특히, 언어를 다루는 문학이나 연극 같은 분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한글로 된 문학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줄어들 테니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방향전환이 불가피하다. 영어로 쓰든가, 한국의 독자를 대상으로 작품을 쓰든가….   아마도 영어로 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로 쓴 작품도 한국문학인가라는 문제는 별개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지만 아무튼 주인공은 당연히 2세, 3세들이다. 당연히 앞날의 계획이나 방향 설정은 2세, 3세들을 주역으로 설정하고 세워야 한다.   2세들에게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 이들은 우리 같은 ‘교포’나 ‘재미한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난 미국사람인데도 사회생활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고, 부모 세대나 비슷한 갈등을 겪는다. 그래서 정체성과 자신감이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확신이 없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 2세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이들을 위해 판을 깔고, 마당을 펼쳐주는 것이 1세들의 의무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양간도 불편 양간도 조국 우리 양간도 재미 동포사회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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