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수리할 의무’
얼마 전,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이 차 안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더니, 차 문을 여는 순간 손잡이가 부러져 한동안 차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20년을 넘긴 차니 이곳저곳에서 고장이 날 만도 했다. 정비소에 맡기면 꽤 비싼 수리비가 들 터였다. 그렇다고 손잡이 하나 부러졌다고 차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문득 ‘유 선생님’이 떠올랐다. ‘유 선생님’은 ‘유튜브(YouTube)’와 ‘선생님’이 합쳐진 말로, 선생님으로부터 배움을 얻듯, 유튜브 영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 선생님’은 아들이 타는 차와 똑같은 모델의 문 손잡이 교체 방법을 상세히 알려 주셨다. 자동차 부품을 구입해 유튜브에서 하라는 대로 했더니 손쉽게 자동차 손잡이를 교체할 수 있었다. 자동차 손잡이를 고치고 나서 얻은 자신감에 기대어 내친김에 좀 더 까다로운 수리에 도전하기로 했다. 부엌에 있는 냉장고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문이 한쪽으로 주저앉은 지 오래였다. 새 냉장고를 사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바꾸기 전에 버리는 셈 치고 한 번 고쳐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유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먼저 부품을 주문했다. 안전을 위해 전기 코드를 뽑은 뒤 조심스럽게 볼트를 풀어 냉장고 문을 떼어냈다. 냉장고 아래쪽에 있는 낡은 힌지를 제거하고 새것을 장착한 후, 냉장고 문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윗부분을 고정하고 뚜껑을 씌우니 한쪽으로 주저앉았던 냉장고 문이 반듯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20달러짜리 부품으로 자동차 문을 고쳤고, 같은 값으로 냉장고도 고치니 뿌듯했다. 무엇보다 멀쩡한 것을 버리지 않고 더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만약 전문가를 불렀다면 많은 수리비가 들었을 것이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는 웬만한 가전제품은 고쳐 쓰기보다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하면서 소비를 장려한다. 물론, 최신 제품은 신기술이 적용되어 품질이 우수하고, 에너지 효율성 면에서도 뛰어나겠지만, 그로 인한 환경 파괴와 쓰레기 배출, 가전제품 수리업의 쇠퇴 등 사회적 영향도 두루 고려해야 한다. 환경보호에 무던히 신경을 쓰는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가전제품 제조업체가 합리적 가격으로 부품과 수리 도구를 일정 기간 이상 공급하고, 수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수리 시설을 유지하도록 하는 법을 마련했다. 이를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라고 부른다. 가전제품에는 ‘수리할 권리’와 더불어 수리를 포기할 자유가 있지만, 사람에게는 ‘수리할 권리’ 대신 ‘수리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몸이 아프면 치료받고, 마음이 힘들면 누군가에게 속풀이라도 하고, 때로는 조용히 상처를 돌보아야 한다. 아무리 금이 가고 망가져도 사람은 반드시 수리되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고장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망가질 때마다 잘 고쳐가며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리받고 회복되어 다시 일어서야 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자. 그렇게 다시 일어선 삶은 이전보다 더 단단한 인생이 될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수리 의무 수리 시설 수리 도구 자동차 손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