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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지역 최악 산불 사태] 새벽 5시 대피령…한인들도 불안·초조 뜬눈

지난 8일 LA 인근 3곳에서 대형 산불이 확산하면서 하늘은 온통 잿빛 연기로 뒤덮였다. 흩날리는 재로 인해 달리는 자동차 유리도 뿌옇게 변했다.     특히 알타데나 지역에서 발생한 이튼 산불은 한인 거주자가 많은 라카냐다, 라크레센타, 글렌데일 지역까지 위협하면서 이들 지역에는 이날 새벽 5시부터 대피령 안내 메시지가 주민들에게 전달됐다.     샌마리노에 사는 김은지(39) 씨는 “밤 새 강풍으로 인해 정전이 됐고 새벽쯤 대피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며 “이쪽 지역은 초토화된 분위기며,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목격한 이튼 산불의 피해는 엄청났다. 이 지역의 대형 요양원 투팜스너싱센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소했다. 요양원 앞 길거리에는 파손된 휠체어와 병원용 침대가 널브러져 있었다. 곳곳에서 불길이 보였고 짙은 연기가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이튼 캐년은 한인들에게도 유명 하이킹 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산불로 전면 통제됐다. 이튼 캐년을 알리는 간판도 새까맣게 불에 타 녹아 있었다. 그 옆으로 불에 타서 뼈대만 남은 차량에서는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알타데나 남쪽 지역에 사는 최대용(48) 씨는 “7일 밤부터 상황이 안 좋아져서 가족 3명과 함께 LA 한인타운으로 잠자리를 옮겼다”고 전했다.     이날 취재 과정에서 이튼 캐년 인근 한 주택가의 활활 타오르는 집 주변으로 두 차례나 폭발음이 들릴 정도로 상황은 위험했다. 지역 주민들도 저마다 마스크나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둘러 집을 떠날 채비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LA카운티 정부는 산불 피해지역 주민을 위해 곳곳에 대피소를 운영 중이다. 패서디나 컨벤션센터, 엘카미노리얼차터 고등학교, 웨스트우드 레크리에이션센터, 피어스칼리지 및 LA 승마센터, 아고라 애니멀센터 등에 대피소가 마련됐다. 당국은 211번 전화로 산불 피해자들에게 숙소 정보 등도 제공하고 있다.    대피령이 내려진 3곳의 산불 지역 인근 주요 도로도 통제되고 있다. 이튼 산불이 난 알타데나 지역은 라카냐다에서 엔젤리스 국유림을 관통하는 2번 하이웨이 양방향을 전면 차단했다.     팰리세이즈 산불이 난 말리부 지역은 크로스 크릭 로드 기준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PCH) 남쪽 방면, 맥클루어 터널 기준 PCH 북쪽 방면, 링컨 블러바드 기준 10번 프리웨이 서쪽 방면, PCH-무홀랜드 연결 토팽가 캐년 블러바드 구간의 운행이 금지됐다.     허스트 산불이 난 실마 지역은 록스포드 스트리트 기준 210번 서쪽 방면, 5번 프리웨이와 만나는 210번 동쪽 방면, 5번 프리웨이와 14번 하이웨이 분기점 구간도 부분 통제돼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     이튼 산불이 발생한 알타데나 지역과 인접한 아케디아 H마트는 정전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산불로 인해 정전이 발생하면서 H마트 인근 교차로 신호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마트에는 고객들로 북적였고 마트 측은 신속히 자가 발전기를 사용해 기본적인 전력만 사용했다.     마트 내 푸드코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손모 씨는 “오늘 받은 식품을 보관할 냉장고에 보관할 수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다”며 “마트에서 아침 일찍 정전 안내를 해줘서 그나마 빨리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산대에서는 일부 한인들이 휴대폰 불빛을 이용해 영수증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베이커스필드에서 온 한 한인 노부부는 “손주를 보러 이곳에 여행을 왔는데, 산불 연기 때문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며 “산불이 퍼져 도로가 더 통제될지 모르기 때문에 빨리 돌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는 팰리세이즈 산불이 시작된 지난 7일부터 LA 수도전력국(LADWP)과 남가주 에디슨사(SCE) 등이 산불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지역별로 강제 단전 조처인 공공 안전 차단 프로그램(PSPS)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전 지역 및 피해 상황 등은 LADWP 웹사이트(www.LADWP.com/outages/power-outage-map)와 SCE 웹사이트(www.sce.com/outage-center/check-outage-status)를 통해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산불 피해가 심해지자 한인들은 카카오톡 등을 통해 현장 사진과 도로 상황을 공유하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 이날 오전 LA 한인타운의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인 모습을 본 김단비(32) 씨는 “집 창문을 닫아도 틈으로 먼지가 엄청 많이 들어왔다”고 우려했다.     라크레센타에 거주하는 크리스 김(44) 씨는 “일단 LA 한인타운의 사무실로 대피했고 상황이 심해지면 머물 곳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남가주대기관리국(SCAQMD)은 산불 연기로 대기질(AQI)이 안 좋다며 외출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8일 정오 기준 말리부와 샌타모니카 해안가 AQI 수치(좋음 기준은 40)는 위험 수준인 194를 기록했다. 샌게이브리얼 지역도 위험 수준인 153, LA 도심 전역은 위험 단계인 138로 나타났다.     한편, 국립기상대(NWS)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1월 6일까지 남가주 지역 강우량은 예년보다 턱없이 낮다. 이번 산불은 샌타애나 강풍, 예년과 달리 ‘마른 우기’, 낮은 습도 등과 맞물려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형재·김경준·정윤재 기자LA지역 최악 산불 사태 대피령 새벽 산불 피해지역 이튼 산불 la 한인타운

2025-01-08

[커뮤니티 액션] 앤디 김 의원과 트럼프 당선

올해 선거에서 앤디 김 하원의원이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됐다. 이 둘의 정책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그런데 이 둘을 모두 지지하고 당선에 손뼉을 치는 한인들도 있어 어리둥절하다.   앤디 김 의원의 당선은 그가 한인이라는 까닭만으로 환영하기는 부족하다. 한인 의원들이 한인사회와 아시안, 이민자 커뮤니티에 돌을 던지고 반이민 정책에 앞장서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그렇지 않다. 서류미비자의 합법화와 건강 보험 확대를 지지한다. 민주당 안에서도 가장 앞선 이민정책을 갖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어떤가?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반이민 공약이 수없이 많다. “이민자의 피는 더럽다”고 했다. 서류미비자 수천만 명을 군대를 동원해 추방하겠다고 했다. 가족이민과 출생 시민권 제도를 없애고, 서류미비 청년 추방유예(DACA) 프로그램도 끊임없이 폐지하려고 한다.   앤디 김 의원과 트럼프가 다른 점은 이민정책만이 아니다. 복지, 보건, 치안, 교육, 낙태, 기후 위기 등 중요한 정책 현안에서 어느 하나 비슷한 것조차 없다. 그래서 민주당 앤디 김 의원의 당선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이번 선거로 공화당은 대통령과 연방의회 모두를 장악했다. 트럼프 1기 때처럼 다수인 민주당 의원들에게 발목을 잡힐 일이 없다. 공화당 의원들이 법안을 통과시켜 트럼프가 원하는 정책들을 손쉽게 시행할 수 있게 자리를 깔아줄 수 있다.   트럼프가 당선된 날 아침부터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서류미비자로 10년째 세금을 내며 살고 있는데 하나뿐인 아이가 장애인이다. 추방되면 큰일인데 신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설마 수천만 명을 어떻게 다 쫓아낼까 싶지만 정말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죠?” “DACA를 폐지하면 정부가 개인 정보도 모두 가진 상태에서 꼼짝없이 추방령을 받을 것 같은데 한국말도 못 하고 어릴 때 이후에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한국으로 쫓겨나면 어떻게 하죠?”   6일 새벽 트럼프 당선이 거의 확정된 순간 CNN에 출연한 밴 존스 정치 해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어떤 ‘엘리트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오늘 밤 상처를 받고 있을지를 생각한다. 드라이 클리너에서 옷을 다루는 서류미비자, 당신들을 위해 청소를 해주는 서류미비자, 그들은 지난밤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그는 또 “엘리트들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내일에 대한 큰 꿈을 안고 잠들었던 수많은 사람이 아침부터 악몽을 겪으며 깨어날 것”이라며 소수계 커뮤니티의 현실을 전했다.   최초로 연방상원에 진출한 한인 앤디 김 의원은 무거운 짐을 안고 출발한다. 그가 가장 앞장서서 해줘야 할 일은 트럼프에 맞서는 것이다. 소수정당의 한계 탓에 싸움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과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한인사회와 아시안, 이민자 커뮤니티를 지켜줘야 한다.   올해 선거는 한마디로 ‘여성, 인종, 이민자 차별 정책’ 그리고 ‘백인 우월주의’의 승리다. 현 선거제도를 최대한 활용한 차별 정책의 승리로 미국의 앞날은 어두워졌다. 트럼프 정책의 소수계에 대한 폭력과 민주주의 파괴를 막고 캄캄한 앞날에 등불이 되는 것이 앤디 김 의원과 커뮤니티 단체들이 해야 할 일이다. 김갑송 / 민권센터·미주한인평화재단 국장커뮤니티 액션 트럼프 당선 도널드 트럼프 새벽 트럼프 반면 트럼프

2024-11-0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에게 거는 최면

가을을 반납했다는 G 작가의 글을 접하고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시간과 계절을 내려놓았을까? 암 투병과 함께 지긋지긋한 통증에 약효가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통증이 가시면 글을 쓰고 있다는 G 작가를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있다. 가을을 반납하고서라도 써야 할 그 무엇에 박수를 보낸다. 아무쪼록 그 글의 완성이 책으로 엮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이 온다   우수수 낙엽이 날려도 먼동이 트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햇살이 눕는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누군가는 짙은 커피 향에 취해   떠나는 계절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그리울 때 갈대는 땅으로 눕는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꿈과 현실의 갈래길에서 한길을 택해   언덕을 내려오다 쓰러진 나무를 보았다   거기 나는 속이 텅 빈 나무처럼 땅으로 눕는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꿈은 꿈 자체로 아름답다. 기쁨과 슬픔의 조건조차 현실을 인식하는 우리 내면의 의식에서 빚어진다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상의 결과가 그 가치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함부로 타인의 인생을 평가한다거나 스스로의 삶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본다. 늘 사람을 대할 때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사고로 대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망이 아닐까 한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직 이 지구상에 존재하므로 세상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흰’을 읽고 있다. 소설이라기보다 짧은 수필의 연결 같기도 하고 자세히 읽다 보면 깊은 시 같기도 했다. 흰 것들에 대한 기억과 사유들을 덤덤히 적어 간 그의 글 속에서 인간의 진진한 삶의 고뇌와 덤으로 살고있는 아픔과 고마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속도보다는 방향의 진의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빨리 결론지으려는 조급함이 때론 방향감을 상실한 채 표류하기도 하기에 우리는 자연의 변화처럼 천천히, 바른 방향으로 그렇게 물들어 가야 한다. 글을 읽는 내내 차분하지만, 영감이 자유로운 그의 내면을 송두리째 접할 수 있었다. ‘흰’의 마지막 소제목 ‘모든 흰’의 내용은 이러했다.     당신의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 낮에 뜬 반달의 서늘함을 볼 것이다. 언젠가 빙하를 볼 것이다. 각진 굴곡마다 푸르스름한 그늘이 진 거대한 얼음을, 생명이었던 적이 없어 더 신선한 생명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올려다볼 것이다. 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겨울 해가 드는 창의 정적 속에서 볼 것이다. 비스듬히 천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최면 새벽 언덕 노벨 문학상 시인 화가

2024-11-04

3일 서머타임 해제…새벽 2시→새벽 1시로, 국적기 운항시간 변경

  일광절약시간제(서머타임)가 오는 3일 오전 2시에 해제된다. 동부지역의 한국과의 시차도 13시간에서 14시간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한국 국적기 3사의 뉴욕~인천 노선 운항 시간도 변경된다. JFK공항 출발 기준, 아시아나항공 주간편(OZ221)의 출발 시각은 오후 12시30분에서 오전 11시40분으로 약 1시간 앞당겨진다. 인천공항 도착 시각은 다음날 오후 5시로 동일하다.     인천발 뉴욕행 주간편(OZ222)의 경우, 출발 시각은 오전 9시50분으로 동일하며, 뉴욕 도착시각은 오전 10시40분에서 오전 10시로 40분 당겨진다.     대한항공의 경우 뉴욕발 인천행 KE086편의 출발 시각은 오전 0시 50분으로 동일하다. KE082편은 오후 1시 출발, 오후 5시45분 도착에서 정오 출발, 오후 5시45분 도착으로 바뀐다.     인천발 뉴욕행 KE081편 역시 출발하는 시각은 오전 10시로 동일하지만, 도착은 기존 오전 11시에서 오전 10시로 변경된다. KE085편은 인천 출발 시각은 오후 7시30분으로 동일하지만, 도착시각은 오후 8시30분에서 오후 7시30분으로 바뀐다.     뉴저지주 뉴왁공항에 취항하는 뉴욕발 인천행 에어프레미아 YP132편의 스케줄은 오전 1시 출발에서 오전 12시 1분으로 한 시간 앞당겨진다.     자세한 최신 운항 스케줄은 각 항공사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은별 기자새벽 서머타임 국적기 운항시간 서머타임 해제 뉴욕 도착시각

2024-10-3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눈물 대신 작은 점 하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 낙엽은 흩날리지만 지축 향해 몸을 의탁한다. 떠나 와 세상 이곳 저곳을 떠돌아도 조국은 영원한 목숨줄이다. 살아있는 동안 외로운 영혼을 가누고 지탱하는 피에로의 안식처다. 피에로(Pierrot)는 다른 광대와는 달리 슬픈 얼굴로 분장을 한다. 얼굴에 분칠을 하며 립스틱 짙게 바르고 원뿔형 모자 쓰고 타국에서 어울려 사는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바람이 거세게 폭풍으로 몰아치고 먹고 사는 게 부대낄 때는 그리움은 둥지를 틀지 못한다. 텅 빈 가슴 속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는 속으로 흐느끼지만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무시 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곡간을 가득 채우는 것이 성공이라 믿었다. 성공의 탑은 높이 쌓을수록 쉽게 허물어진다. 물질과 허영, 교만으로 생을 가득 채울 때는 비어 있는 것들의 평온과 기쁨을 알지 못했다. 가슴 뚫고 지나가는 세월의 바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비어 있는 것들은 산사에 울리는 새벽 종소리로 가슴 저미며 울려 퍼진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은 작은 신음소리로 비어있는 공간 속으로 번져 나간다.   멀리 떠나와도 조국은 산수화의 여백으로 남는다. 품을 수 없어도 그리움으로 남는다. 비어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아도 가슴으로 만질 수 있다.   동양화의 여백은 그냥 빈 것이 아니라 기(氣)의 표상이고 응축(凝縮)의 미학이다. 화가들은 ‘산수의 기상(山水氣象)’을 묘사하기 위해 여백을 남긴다. 여백은 광(光)과 기를 확대시키고 여운을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필선을 최소화한 감필과 절파화풍으로 표현을 억제하는 여운을 통해 여백은 광대한 공간을 암시하는 ‘여백의 미’를 창조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아는 것보다 추구하는 삶, 실용적인 것보다 가치있는 것. 여백은 비어 있는 아름다움의 세계로 생의 깊이를 탐구한다.   동양화를 그릴 때는 산수, 사람, 집을 최소한의 형태로 표현해 여백을 남기는데, 광활한 자연의 기운을 담기 위한 장치다. 형상은 사라지지만 내면이 풍성해지는 역설로 ‘비움’은 채워지지 못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영혼의 술래잡기는 없는 것을 찿으려는 구도자의 발걸음마다 새겨진 고뇌다.     ‘전화 걸면 날마다 / 어디 있냐고 무엇하냐고 / 누구와 있냐고 또 별 일 없냐고 / 밥은 거르지 않았는지 잠은 설치지 않았는지 / 묻고 또 묻는다 / 하기는 아침에 일어나 / 햇빛이 부신 걸로 보아 / 밤사이 별일 없긴 없었는가 보다 /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 이제 지구 전체가 그대 몸이고 맘이다.-나태주의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그리움은 공백에서 헤어나오려는 존재의 부대낌이다. 보이지 않는 그대 사랑을 향해 부단히 추구하는 붓놀림이고 멈출수 없는 생의 몸부림이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강물처럼 흐를 때면 그리움은 무시로 떠다닌다. 둥지 튼 여백을 가슴 깊히 간직하면 진눈개비 내리는 날에도 그대 사랑은 따스하다.   죽음과 이별, 고난과 상처의 무게에 짓눌려 못질 하듯 오늘을 살아도 그리움으로 비워둔 화선지에 눈물 대신 작은 점 하나 찍는다.   그대 사랑은 비어 있는 하늘의 끝자락에서 펄럭인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눈물 눈물 대신 가슴 저미 새벽 종소리

2024-10-29

[살며 생각하며] 새벽은 오고야 만다

  피를 철철 흘리는 아이를 안고 아버지가 뛴다. 히잡을 두른 여인은 아이 대신에 자기를 죽이라고 군인에게 절규한다. 병원이 폭격당하고 아파트도 무너졌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뉴스가 나온다. 나는 체한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해 온다. 철나고 평생 들어왔던 팔레스타인 문제다. 평소에 무심히 넘겼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작년 10월부터 뉴스를 지나치지 못했다. 거리마다 죽음이 무더기 휴지처럼 뒹굴었다. 흰 포대 속에 싸인 자들이 내다 만 신음이 나를 뚫고 들어왔다. 그것은 쉬지 않고 떨리는 진동 소리로 변하여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분노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궁금증이 몰려왔다.     이 땅은 원래 누구 것인가? 왜 땅 하나에 두 나라가 들어가 있는가? 영국 정부에서 1917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 팔레스타인 땅 전체가 아닌 ‘일부’에 수립을 지지한다는 선언이다. 문제의 소지는 그때부터 있었다. 전 세계에서 흩어져 있던 유대인은 자치 국가의 꿈을 안고 이주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이 선언을 할 당시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 아니었다. 아랍인 70만 명이 이미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이주 초기에 아랍인과 유대인은 친구처럼 잘 지냈다. 저녁이면 텐트에서 술을 나누면서 덕담을 하는 좋은 이웃이었다.   1948년에 영국이 팔레스타인 신탁통치를 끝냈다.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선언하자, 네게브 사막 근처에서 이집트와 말썽이 생겼다. 이것이 1948년 1차 중동 전쟁의 시작이다. 몇 차례 전쟁을 겪는 동안에 대부분의 땅이 이스라엘로 넘어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서안, 가자 혹은 주변국의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근거는 무엇일까? 세 가지 담론이 있다. 약속된 땅 가나안의 회복 담론이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선조가 지나갔던 가나안을 되찾는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황무지 개간 담론이다. 낙타를 데리고 사막을 더욱 황폐하게 하는 베두인에게 이 땅을 버려둘 수 없다.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서 흩어진 유대인을 다시 모은다는 생존권이 걸린 담론이다.     글을 쓰고 있는 새벽에 문자가 들어왔다. 보스턴의 한 대학에서 강의하는 전승희 교수님이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쉬블리가 2024년 아시아 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이다. 나는 ‘교수님 축하드려요’ 라고 답했다. 전 교수는 쉬블리의 소설 ‘사소한 일’을 한국어로 번역한 분이다. 소설은 양쪽의 입장에서 서사를 펼친다. 이스라엘 점령군 장교와 팔레스타인 지식인 여성의 입장에서 각각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가 쉬블리는 선제공격이 어떻고 하는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고 강조한다. 지금의 현상을 고슴도치를 삼킨 뱀에 비유했다. 뱀이 너무 절박한 나머지 앞뒤 사정 보지 않고 사막에 어슬렁거리는 고슴도치를 삼켰다. 삼키고 나서 아뿔싸 한다. 고슴도치의 가시가 뱀의 목에 걸려서 내장을 찌른다.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뱀과 고슴도치는 둘 다 서서히 죽어간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학자, 과학자 등 지성인들이 탈 이스라엘을 하고 있다. 산업은 성장을 멈추었다.     끝없는 보복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양측 지도자가 ‘너희는 값을 치를 것’이라는 보도가 화면에 붉은 고딕체로 나온다. 구호물자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목숨으로 값을 지불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은 거대한 죽음의 용광로가 되었다. 이름 없이 죽어간 원혼이 그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저 어둠이 언제쯤 걷힐까? 나는 검은 연기가 배회하는 화면 속의 하늘을 쳐다본다. 그래도 새벽은 오고야 마는 것 아닌가?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새벽 팔레스타인 신탁통치 팔레스타인 지식인 팔레스타인 영토

2024-10-22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떠나는 시간 붙잡고 울지 말기

시간은 고무줄이다. 늘어나고 줄어든다. 하루를 일년처럼 부지런히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년을 하는 일 없이 지루하게 허송세월로 보내기도 한다. 허송세월(虛送歲月)은 가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모습을 말한다.   시계 추는 다른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추가 좌우로 흔들림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태엽이 풀리며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특별한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아침부터 밀려오는 하루의 시작(중략)/ 평범하게 씻고 평범한 식사를 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침이 지나가면(중략)/ 똑딱거리는 시곗바늘에 맞춰/ 시계추마냥 왔다갔다 하는 하루들/ 하루가 모여 한달, 일년을 넘어가면/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걸까’-유니의 ‘시계추’ 중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매달려 인생의 시계는 돈다. 인생의 시계는 수동이다. 멈추지 않게 하려면 태엽을 감든지 베터리를 갈아끼워야 한다. 매일 새벽 4시, 캄캄한 어둠을 뚫고 하루를 맞는다. 눈 여겨 보는 이 없어도 밤새 어둠 속에서 홀로 반짝이던 새벽별과 작별하고, 제일 먼저 가슴 스치는 바람과 악수한다. 어둠에 묻힌 잔디는 작은 진주알 같은 이슬을 품고 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는, 정갈하고도 고요한 하루의 시작에 가슴 떨린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왠 수다냐고? ‘나이 들면 새벽에 깬다’며 아들은 나의 새벽 세러모니를 평가절하 한다. ‘나쁜 놈, 저도 늙어봐라.’ 하려다가 늦잠꾸러기로 어머니 애간장 태우고 지각 밥 먹듯 하며 벌 서던 생각이 나서 히죽이 웃는다.   절실하면 이루어진다. 성격은 바꾸기 힘들지만 버릇은 길들이기에 달렸다. 화랑과 창작예술센터 운영하고 아이 셋 건사하다 보면 해뜨고 질 때까지 내 시간은 일 분도 허락되지 않았다. 애들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이 유일한 피신처요 탈출구였다. 그 때부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내 ‘새벽 동화’가 시작된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고통과 권태를 견디고 영롱한 새벽별 보고 폭풍이 지나간 하늘에 뜬 무지개를 만나는 사람은 슬퍼도 울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편한데로 세상을 본다. 자기 생각대로 옳고 그름, 좋고 나쁨, 길고 짧음을 판단한다. 마음은 변덕쟁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는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힘든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흐른다.   한국행 비행 시간은 왜 그리 느리게 가는지. 아이폰 꺼내 보고 또 꺼내 봐도 병아리 눈물만큼 움직인다. 한국에 있는 시간은 번개처럼 지나간다. 옛 동무나 지인 만나 동대문에서 갈치솥밥, 냄비우동, 꼬마김밥. 옛날 짜장면, 추억의 오뎅국물 즐기며 먹방투어 하다보면 날벼락처럼 휘가닥 시간이 달아난다.   ‘동짓달 기니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시는 밤 꺼내고 싶은 황진이 사랑은 에로틱하며 서정적이다.   사랑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흘러간다. 안 하는 것보다 시작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을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할 지 고민이면 지금 시작하면 된다. 시작의 종창역은 끝이 아니다.   쓰러지고 무너져도 떠나는 시간 붙잡고 울지 않기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시간 동안 시간 새벽 세러모니 허송세월로 보내기

2024-09-10

새벽 5시 5마일 하이킹 인기…주 3일 그리피스 파크서

LA 지역 달리기 동호회 인기에 이어 하이킹 모임이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이킹을 좋아하는 1인이 시작한 모임은 인스타 팔로워 1만1700명이 넘었고, 주 3일 오전 5시에 그리피스 파크에서 매번 100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 LA데일리뉴스는 매주 화요일·목요일·토요일 오전 5시 그리피스 파크 메리-고-라운드(merry-go-round) 주차장에는 수많은 하이커가 모인다고 전했다. 이들 중 약 50%는 모임에 처음 나온 이들이지만 다들 반갑게 인사한다고 한다.     꼭두새벽 LA카운티 전역에서 모인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5마일 구간의 그리피스 파크 트레일을 걷고 1625피트 정상에 올라서는 일이다.     지난해 6월 그리피스 파크 ‘오전 5시 산 오르는 사람들(5 AM Crew hikes)’을 처음 시작한 오마르 코바루비아스는 “사람들이 하이킹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할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이라며 모임 성장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있다.     코바루비아스는 오전 5시 하이킹 모임을 시작하던 초기부터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영상 등을 올렸다고 한다. 곧 LA카운티 주민들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팔로워는 1만1700명 이상으로 늘었다.     특히 지난 5월 1일 코바루비아스가 올린 하이킹 영상은 지난 7월까지 55만 명 이상이 보면서 호응했다. 지금은 인종에 상관없이 새벽 하이킹에 흥미를 느낀 이들이 모임을 찾는다고 한다.     주최 측은 그리피스 파크 정상·할리우드 사인 트레일에 이어 앤젤레스 국유림 트레일까지 코스를 늘리고 있다. 또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초보자에게 안전교육을 하고 인솔에도 나선다.   코바루비아스는 “하이킹 친구를 만나 즐겁게 운동을 하고 싶은 사람 누구나 환영한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그리피스 하이킹 그리피스 파크 새벽 하이킹 참여하이킹 친구들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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