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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읽기] 북극항로라는 잿빛 환상

몇 달 전 덴마크 왕실이 문장 교체 소식을 알렸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노골적으로 그린란드에 대한 영토 야욕을 드러내자 왕실 문장에서 그린란드를 상징하는 북극곰의 크기를 부쩍 키워버리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나 국내에서는 그중 북극항로(NSR)의 가능성에 더 이목이 쏠렸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 감소 혹은 쇄빙선을 이용한 적극적 항로 개척을 통해 북극해를 이용하는 단축 항로가 열리면 물류 혁명이 일어날 거란 주장이다. 사실일까.   해상 운송은 크게 광물이나 곡물 같은 벌크 화물(bulk cargo)을 실어 나르는 벌크 해운과 주로 완제품을 컨테이너에 담아 운반하는 컨테이너 해운으로 나눌 수 있다. 비중으로 따지면 벌크 화물이 80~85%로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이들 벌크 화물이 이동하는 경로는 주로 남북 항로를 따른다. 적도 부근이나 남반구에 있는 자원이 북반구의 선진국과 제조업 기지로 이동하고, 거기서 완제품으로 가공된 다음 컨테이너에 담겨 세계 각지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즉 해운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벌크 화물은 애초 북극을 지나지 않는다.   컨테이너 해운을 뜯어봐도 마찬가지다. 2023년 기준 약 1억6000만 개의 컨테이너가 세계 바다를 이동했는데 그중 64%는 역내 운송 혹은 비주류 항로를 통해 비교적 짧은 거리를 이동했다. 전체 컨테이너 화물 중 14%가 아시아에서 출발해 수에즈 운하로 유럽으로 도달하는 남방 항로 물량이다. 북극해가 열린다고 한들 전체 해운의 2.8%가 북극항로의 최대치인데 역내 이송을 위한 환적 등의 인프라를 고려하면 그마저도 줄어들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극항로를 이유로 그린란드를 탐낸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테다.   현재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통해서도 안정적으로 해운 물류를 유지할 수 있다. 바꿔 말해 아시아에서 수에즈 운하까지 이르는 해로는 미국으로의 물류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 그러니 세계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축소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는 남방 항로 보호를 불필요한 ‘비용’으로 인식할 개연성이 크다. 게다가 해당 권역에서 미 해군력이 증발하면 애가 타는 건 동아시아 국가들과 유럽이다. 그들이 북극항로라는 대안적 경로를 강제로 고를 수밖에 없어지면 그 이익은 북극항로 관문이 될 그린란드를 틀어쥔 미국이 누리게 된다. 나가는 비용은 줄이고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트럼프식 통치와 결이 잘 맞는다.   아직은 추측뿐인 음모론이지만 우크라이나에 종전을 대가로 희토류 광물자원의 절반을 내놓으라는 ‘새로운 미국’에 이것이 정말 불가능한 시나리오일까. 나는 북극항로에 대한 트럼프의 열망이 꽤 두렵게 느껴진다. 박한슬 / 약사·작가숫자 읽기 북극항로 잿빛 컨테이너 해운 벌크 해운 벌크 화물

2025-03-12

[기고] 보이지 않는 북극 전쟁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극 지역 개발을 위해 거물급 인사를 극지 연구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는 북극항로에 대한 전략과 비전을 나타낸 것으로 아시아(한국, 일본 및 중국)와의 물동량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과 북극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최근 중국 화물선의 북극항로 이용이 크게 늘고 있다. 수에즈 운하와 희망봉 항로는 효율 면에서 최악이기 때문이다. 미국 또한 북극항로 개척에 천문학적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북극과 아무 관계가 없는 국가다. 100여 년 전 알래스카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미국의 북극항로 개척 전초기지는 알래스카 서부지역의 대표도시이며 북극 입구에 위치한 놈(Nome)이다. 놈은 한국 극지 연구소와의 공동 연구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우선 놈에 항공모함이나 유람선도 접안할 수 있는 규모의 부두 개발 예산을 확보했다. 이 부두는 베링해와 북극해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이것은 북극항로의 수요가 점차 증가할 것을 예상한 투자이다. 2009년 이래 북극항로 이용 선박이 두 배나 늘어난 시점에서 시기적절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특히, 연안경비 강화 차원에서 놈에 군 주둔이 필요하다. 선박의 안전운항 및 사고방지를 위해 인적 및 물적 지원을 한다는 복안이다. 더욱이 사고로 인한 오염 및 기후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등 방법도 포함하고 있다. 놈은 원주민이 3800명으로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한다. 앞으로 많은 인구 증가가 예상되며 대부분의 토지는 원주민이 소유하고 있어 원주민의 역할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북극의 해빙 감소로 북극항로의 활용이 증가할 것은 뻔하다. 그래서 북극은 미래의 전략기지이자 핵심 무역 항로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북극에서 유전 및 천연가스를 개발하면서 한국에 LNG선을 주문한 적이 있다. 한국은 이런 사례를 활용해야 한다. 러시아가 일 년 내내 북극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 쇄빙선을 보유한 덕이다.     반면 캐나다 방면의 북동항로는 섬이 많아 쇄빙선이 있어도 러시아보다 활용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선뜻 항로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미국은 놈을 개발하기 위해 큰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새로운 쇄빙선 건조도 2025년 마무리 된다고 한다. 이 쇄빙선은 해안경비대 소속이 된다고 한다.     북극은 군사 목적의 군함 출입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한국도 제2의 쇄빙선을 건조한다고 하지만 시기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의 쇄빙선(아라온)만으로 남극과 북극을 감당하기엔 무리다. 선장과 선원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는 형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항공, 우주, 천연자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러시아와 지속해서 연구 및 산업활동을 해야 한다. 불곰사업은 한국의 군수물자 수출에 원동력이 되었고,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에도 러시아의 기술이 접목되어 있다. 비록,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모든 과학 및 산업 분야의 통로가 차단된 상태지만 말이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사할린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천연가스를 개발해 안정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지난 2023년 11월 앵커리지 주재 일본 영사관에서 산업 및 환경에 관한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다. 우연한 기회에 참석했지만,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평화 속에서는 뭐든 할 수 있다. 심지어 전쟁 중이라도 국가는 자국 산업과 국민을 위해 뭐든 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과연 북극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러시아와의 관계는 물밑에서라도 긴밀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북극 전쟁 북극항로 이용 북극항로 개척 이래 북극항로

2024-09-10

[열린광장] 북극해의 소음 공해

국제해사기구(IMO)는 북극을 포함한 해양 환경을 소음 공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점진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환경 단체와 환북극원주민협의회(ICC; Inuit Circumpolar Council)는 이것으로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국제해사기구 소위원회는 소음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2014년 수중 소음 지침을 개정했다. 소위원회는 이전에도 북극에서의 중유 사용 및 블랙 카본 배출에 관한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필자는 작년 2월 ‘오염되는 북극해 항로’라는 칼럼을 통해 북극항로 증가에 따른 수중 소음 문제를 지적했었다.       북극청정동맹 및 세계야생동물기금을 포함한 국제 환경단체는 선박의 수중소음 문제에 대한 IMO의 진전을 환영하면서도 더 신속한 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또 환북극원주민협의회는 소음 감소 계획 및 특정 선박 운항 감소 목표에 대한 포괄적인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해사기구는 2014년부터 선박 설계 및 건조 소위원에서 권고사항을 개정했지만, 자발적 지침을 의무 규정으로 전환하는데 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세계해사기구의 가이드라인은 본질적으로 권장사항이기에 아직 이를 구현한 선박이 없다. 이는 선박설계 및 건조에 따른 경제성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극항로 이용 선박의 증가로 인해 수중 음파에 의존에 먹이 활동을 하고 짝짓기 파트너를 찾는 북극 해양 포유류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일각고래와 흰돌고래와 같은 대형 포유류는 인위적 소음에 민감해 이로 인한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 현상을 보인다.     북극해는 상대적으로 오염되지 않는 지구 위의 마지막 해양이지만, 기후 변화와 산업 발전으로 인해 북극 해양환경도 막대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북극 해빙 감소로 북극항로가 확대되면서 소음 공해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해빙이 선박 운항을 제한했을 뿐 아니라 소음 피해도 줄이는 ‘사운드 버퍼(sound buffer)’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극청정동맹은 IMO의 2014년 수중 소음 지침 개정에 환영하지만, 신속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북극 항로를 운항하는 배는 6년 전보다 거의 두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과거 북극해는 인간이 만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제한된 수의 연구용 쇄빙선과 잠수함조차 출입을 통제했다. 그러나 북국의 교통량과 해양 경제활동이 늘면서 2013~2019년 사이 소음 공해는 두 배로 늘었다.       최근 북극은 기후변화 및 온난화로 인한 해빙의 급격한 감소 현상이 뚜렷해졌다. 예를 들어 캐나다 북쪽 배핀섬과 그린란드 서해안 사이의 항로는 철광산 벌크선의 운송량이 2013년부터 2019년 사이에 75%나 증가했다. 캐나다 북쪽의 많은 섬은 과거에는 쇄빙선이 아니면 갈 수 없었지만 최근에는 해빙의 감소로 이들 섬 간의 선박 운송이 활발해지고 있다.     환경 단체와 원주민 협의회는 세계해사기구 측에 북극해 이용 규제와 소음 감소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소음 공해 문제는 북극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해양에서도 보편적으로 발생하지만, 극지방의 고유 환경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연은 파괴에 대한 회복력을 갖고 있지만, 인간활동으로 그 복원력은 점차 약화하고 있다. 이에 자연은 극단적인 기상 및 기후 변화를 인간에게 되돌려 주고 있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열린광장 북극해 소음 수중소음 문제 소음 공해 북극항로 증가

2023-04-10

[기고] 북극해의 소음 공해

국제해사기구(IMO)는 북극을 포함한 해양 환경을 소음 공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점진적인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환경 단체와 환북극원주민협의회(ICC ; Inuit Circumpolar Council)는 이것으로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국제해사기구 소위원회는 소음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2014년 수중 소음 지침을 개정했다. 소위원회는 이전에도 북극에서의 중유 사용 및 블랙 카본 배출에 관한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필자는 작년 2월 ‘오염되는 북극해 항로’라는 칼럼을 통해 북극항로 증가에 따른 수중 소음 문제를 지적했었다.       북극청정동맹 및 세계야생동물기금을 포함한 국제 환경단체는 선박의 수중소음 문제에 대한 IMO의 진전을 환영하면서도 더 신속한 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또 환북극원주민협의회는 소음 감소 계획 및 특정 선박 운항 감소 목표에 대한 포괄적인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해사기구는 2014년부터 선박 설계 및 건조 소위원에서 권고사항을 개정했지만, 자발적 지침을 의무 규정으로 전환하는데 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세계해사기구의 가이드라인은 본질적으로 권장사항이기에 아직 이를 구현한 선박이 없다. 이는 선박설계 및 건조에 따른 경제성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북극항로 이용 선박의 증가로 인해 수중 음파에 의존에 먹이 활동을 하고 짝짓기 파트너를 찾는 북극 해양 포유류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일각고래와 흰돌고래와 같은 대형 포유류는 인위적 소음에 민감해 이로 인한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 현상을 보인다.     북극해는 상대적으로 오염되지 않는 지구 위의 마지막 해양이지만, 기후 변화와 산업 발전으로 인해 북극 해양환경도 막대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북극 해빙 감소로 북극항로가 확대되면서 소음 공해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해빙이 선박 운항을 제한했을 뿐 아니라 소음 피해도 줄이는 ‘사운드 버퍼(sound buffer)’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극청정동맹은 IMO의 2014년 수중 소음 지침 개정에 환영하지만, 신속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북극 항로를 운항하는 배는 6년 전보다 거의 두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과거 북극해는 인간이 만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제한된 수의 연구용 쇄빙선과 잠수함조차 출입을 통제했다. 그러나 북국의 교통량과 해양 경제활동이 늘면서 2013-2019년 사이 소음 공해는 두 배로 늘었다.       최근 북극은 기후변화 및 온난화로 인한 해빙의 급격한 감소 현상이 뚜렷해졌다. 예를 들어 캐나다 북쪽 배핀섬과 그린란드 서해안 사이의 항로는 철광산 벌크선의 운송량이 2013년부터 2019년 사이에 75%나 증가했다. 캐나다 북쪽의 많은 섬은 과거에는 쇄빙선이 아니면 갈 수 없었지만 최근에는 해빙의 감소로 이들 섬 간의 선박 운송이 활발해지고 있다.     환경 단체와 원주민 협의회는 세계해사기구 측에 북극해 이용 규제와 소음 감소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소음 공해 문제는 북극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해양에서도 보편적으로 발생하지만, 극지방의 고유 환경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선박의 수중 방사 소음 규제 등과 같은 강제 조치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해사기구에서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선박 소유자와 운영자의 의지에 북극 해양 포유류의 생태 및 존재의 미래가 달린 셈이다.   자연은 파괴에 대한 회복력을 갖고 있지만, 인간활동으로 그 복원력은 점차 약화하고 있다. 이에 자연은 극단적인 기상 및 기후 변화를 인간에게 되돌려 주고 있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페어뱅크스 교수기고 북극해 소음 수중소음 문제 소음 공해 북극항로 증가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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